– 소개글 –
성서가 보통으로 천사라고 부르는, 육체를 가지지 않은 영적인 존재는 믿어야 할 진리이다. 성전 전체의 증언이 일치하고 있듯이, 성서의 증언도 명백한 것이다. .. 교회는 생활의 모든 면에서 천사들의 신비하고 능력 있는 도움을 받는다. .. 사람은 일생 동안, 생명의 시작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천사들의 보호와 전구로 도움을 받는다. “모든 신자들의 곁에는 그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보호자며 목자인 천사가 있다.” (가톨릭 교리 328,334,336항)
말하자면 카톨릭 교회의 교리는 이러한 믿을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이 이성주의적이고 “개화된” 현 시대의 성서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종종 마귀와 천사들을 ‘비신격화’ (혹은 초자연적인 것들에 대한 무시?)하려고 애씁니다. 구약과 신약 성서에 나타난 모습들을 단순하게 원시적인 생각이라든지, 고대의 문화적으로 형성된 믿음의 산물로써,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주장하는 것입니다. 현존하시는 그리스도 그분조차도 말입니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예를들어 복음에 나타난 마귀들린 사람들과 그리스도께서 그 마귀들을 쫓아내시는 사례들을 현대 심리학과 의학으로써 간질발작이나 신경증, 치매발작 등으로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어쨌든,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들과 마귀들의 존재를 명백하게 확증하셨습니다. 천사의 경우는 복음에서 언급하심으로써, 마귀의 경우는 직접 쫒아내심으로써 말입니다. 하지만, 몇몇 학자들이 고수하고 있는것처럼, 그리스도 그분의 존재조차 문화적으로 형성된 원시적인 믿음이라고 여겨버림으로써, 그분께서 나타내시는 신성과 신적 지식에 대한 믿음이 모르는 사이에 훼손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학문적 이성주의에 빠져있는 오늘날, 당황스럽게도 천사들의 세계에 대한 믿음이 살아나며 널리 퍼지는 것을 직면한다는 것은, 정말 신성한 아이러니가 아닐까요? 성서에의 시대 뿐만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 시대에도 그런 개입이 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유명한 책인 조앙 웨스터 앤더슨의 ‘천사가 거니는 곳’, ‘기적이 일어나는 곳’과 소피 버넴의 ‘천사의 책’ 등이 현대의 삶에 나타난 천사들의 개입에 대한 명백한 기록으로써의 증거입니다.]
아래에 있는 세 개의 게시물은, 발또르따의 ‘1945년-1950년 노트’에서 특별히 번역된 것으로써, 마리아 발도르따가 그녀의 수호천사 ‘아자리아’로부터 받아쓴 세 개의 글입니다. 이 글에서, 아자리아는 발또르따와 우리에게 수호천사의 사명과 목적를 가르쳐줍니다. 그 이후에, 아자리아는 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의 미사경본에 따른 주일미사와 대축일미사의 예식에 대한 깊은 설명을 자세하게 받아쓰게 합니다. (영문판으로 ‘아자리아의 책’이 나와있답니다)
아마도 이 세 게시물은, 오늘날의 이성주의적인 학문이 계속해서 무너뜨리고 파괴하려는 천사들에 대한 새로워진 관심과 믿음을 “무지한 사람들”에게 확인시키고, 강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영문판 역주
밤에 있었던 그 기쁨을 적지 않는다면 병이 날것같아요!
그래서 씁니다 : 우린 밤 12시 15분쯤 누웠어요. 마르타(발또르따의 친구, 각주 참고)는 바로 잠이 들었죠. 마르타는 잘때 정말 깊이 잔답니다! 저는 성보(聖寶)를 꺼내서 혼자 기도할 준비를 했어요. 사탄에 대항해서 저와 친구를 위해 기도하려구요. 왜냐면 사탄이 우리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더욱 주의를 집중하고 있다는게 느껴졌거든요. 통회의 기도를 바치고, 영적인 일치(신영성체)를 한 다음, 이렇게 기도했어요. “제가 여기 있나이다, 사랑하올 착한 예수님… 당신의 다섯 상처를 묵상하나이다.. 운운” 그리고나서 십자가의 기도와 봉헌 기도를 바쳤어요. 저녁마다 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광의 찬가’을 거룩한 대천사들과 천사들, 마지막으로 저의 수호천사를 위해서 바치며 끝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잠시 제가 기도를 멈추고 그에게 중얼거렸습니다. “근데 당신은 뭐라고 불리우죠? 이름이 있을텐데! 저는 당신을 “내적 의논상대”라고 부르겠지만, 이름을 부르고 싶군요.”
그 때, 그가 제 침대 오른편, 발쪽을 향해서 나타나서는 미소를 지으면서, 즉시 말했습니다: “아자리아”
“아자리아? 정말이에요?”
그는 다시 한번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를 믿지 못합니까? 우리 함께 ‘오소서 성령이여’와 일곱번의 ‘영광송’을 바치도록 합시다. 내가 여러해동안 필요할 때마다 성령님으로부터 해답과 인도를 얻기 위해 가르쳐준 것처럼요. 그리고 성서를 아무데나 펼쳐보세요. 맨 처음에 보이는 이름이 내 이름입니다.”
저는 그와 함께 기도를 바치고 성서를 펼쳤어요. 596쪽, 역대기 하권 15장이었고 첫 줄은 “아자리아, 오뎃의 아들…” 이었습니다.
천사는 계속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의 의미는 토비트서 페이지 아래쪽의 설명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토비트서로 빨리 넘겼죠. 5장의 맨 아래쪽에서 “아자리아”는 “주님의 도우심”이라는 뜻이라는걸 찾아냈습니다. 그러므로 아나니아의 아들 아자리아는 ‘주님의 선하심의 아들, 주님의 도우심”이라는 의미였어요.
“그래요.” 천사가 미소지으며, 저를 다정하게 쳐다보며 말했어요.
나는 그를 살펴봤습니다: 키가 크고 잘생겼어요, 어두운 밤색 머리에 약간 둥근 얼굴, 얼굴 색과 선은 완벽하게 아름다웠고, 크고 부드럽고 매우 아름다운 밤색 눈을 가졌어요. 그의 느슨한 웃옷은 단정한 튜닉이었습니다. 매우 희고, 매우 아름다웠으며, 큰 소매가 있고, 목의 옷깃은 사각이었으며, 벨트나 망토는 없었습니다. 은백색이었어요. 맨 아래는 은빛에 약간 푸르스름한 기운이 있었습니다. 가장 훌륭한 부분인 약간 튀어나온 무늬는 빛나는 흰색이었는데, 어떤 눈송이나 꽃잎보다 더 흰 빛을 띄고 있었습니다. 무늬는 열린 꽃받침을 가진 백합 줄기 모양으로 줄지어 있었습니다. 위에서 아래쪽으로 비스듬한 방향으로 말이죠. 그래서 천사는 활짝 핀 백합 송이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목과 소매와 맨 아랫단은 은색 선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코멘트 : 발또르따의 노트에는 간단하게 그림으로 옷을 그려놨습니다.)
나는 “1932년 1월 4일인가와 같은 옷이군요, 같은 모습이고!”
“그래요, 바로 나였습니다.”
“다른 때라도 내가 나타날 때면, 세가지 거룩한 색깔을 하고 나타납니다. 수호 천사는 당신의 삶을 언제나 돌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드리려는 것입니다. 천사는 자기가 맡은 영혼 안에 있는 복음의 세가지 덕을 중심으로 돌보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나는 쓰라린 고통의 온 밤을 그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며, 그의 이름을 말하고 음미하며 잠의 그림자 없이 보냈습니다…
이제부터는 “내적인 의논상대”를 그의 이름인 아자리아라고 쓰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나의 영적인 눈에 보일 수 있도록 스스로를 낮췄고, 내게 문안하며 이름을 가르쳐줬기 때문입니다. “모든 수호천사들은 아자리아입니다. 특별한 경우에, 하느님의 명령에 의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스스로를 나타내는, 주님의 도우심이기 때문입니다.”
아자리아:
수호천사가 맡은 영혼이 죽으면, 수호천사의 임무가 끝나게 된다고 생각들을 합니다. 하지만, 그건 언제나 맞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인이 죽는다면, 수호천사들은 극도의 슬픔 속에서 그 임무를 끝내게 되긴 합니다. [반면] 지상에서 천국으로 곧바로 가게되는 성인이 죽는다면, 그의 천사도 기쁨과 영원한 영광으로 거룩하게 변모하게 됩니다. 하지만, 속죄와 정화를 위해 지상에서 연옥으로 가는 영혼이라면, 수호천사의 임무도 계속됩니다: 그가 맡은 영혼을 중재하고 사랑하는 보호자로서 말입니다. 그리고는, 우리 수호천사들은 하느님의 옥좌 앞에서 그 모두를 위해 사랑으로 기도합니다. 또한 지상에서 그들을 위해 그 부모님들과 친구들이 바치는 모든 기도에 우리의 사랑의 기도를 합칩니다. 오! 연옥에서 속죄하는 영혼들과 그 수호천사들이 얼마나 생생하게, 활발하게, 다정하게 결합해 있는지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병들었던 아들이 나아갈 때, 건강을 되찾게 하려고 애쓰는 어머니와 같이, 감옥에 갇힌 신랑을 기다리며 재회할 날을 세고 있는 신부와 같이, 우리가 그렇습니다. 사랑의 불길 속에서 깨끗해지는 그 영혼과, 하느님의 사랑이신 정의, 그 모두를 주의깊게 살피는 데에 우리는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습니다. 또한 매 순간 그 영혼이 사랑이신 그분께 가까이 가게 되며, 매 순간 그분의 왕국에 합당해 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기쁨에 넘칩니다. 그러다가 빛이신 그분께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을 내리시면 “가서 그 영혼을 끌어내어, 이 곳으로 데려와라,” 우리는 화살보다 빠르게 연옥으로 날아내려가서 여전히 그 곳에서 속죄하며 남아있어야할 영혼들에게 신앙이며, 희망이고, 안식이 될- 천국의 순간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는 맡았던 그 영혼을 꼭 잡고 위로 올라가며 우리는 천국의 호산나를 가르칩니다.
수호천사의 임무 중에 가장 기쁜 두 번의 순간이 있습니다. 한번은 자비이신 그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입니다. “내려가라, 새로운 사람이 생겨났고, 너는 그를 내가 가진 보석처럼 지켜야 한다.” 또 한번은 그를 천국으로 데려올 때입니다. 하지만, 두번째 경우가 더욱 기쁩니다. 다른 기쁨의 순간들은, 영혼이 세상에 대해서, 육신과 마귀에 대해서 이겨냈을 때입니다. 하지만 보호를 하면서도 그 영혼들의 유혹에 대한 연약함에 우리가 얼마나 떠는지, 모든 승리 이후에 얼마나 두근거리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원수들은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영혼이 해낸 것을 무너뜨리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으로 영혼과 함께 들어서게 되는 순간은 정말이지 가장 완전한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완성된 모든 것이 더이상 망가질 수 없으니까요.
이제, 나의 영혼이여, 당신의 내면 깊숙한 곳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해드리죠: 하느님께서 이 집에 다른 수호천사가 있음을 만족하시는지 말입니다.
(주: 아마도 발또르따의 집에 있는 아기의 수호천사를 뜻하는 것 같다. 옆집에 부모가 살고 있는데, 4개월 전에 그 신생아를 이 집에 갖다놨다.)
오, 당신은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지만, 당신의 영혼은 열어놓고 계십니다. 당신은 모를 것이고, 당신의 의지또한 그렇지 않지만, 때때로 당신의 욕구는 당신 영혼에 강한 의문을 써놓습니다. 너무 적은 사람들만이 갖고있는 천사에 대한 합당한 존경을 위해, 당신께로 스스로를 낮춘 천사에게 자제하고 계신 그 의문: 당신과 같이 하느님께 소중한 영혼이며 사람들에게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 답을 주고, 평안을 주는 것은 제 기쁨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대답은, 네, 하느님께서는 만족해하십니다. 이 집에는 하느님의 보석인, 방금 창조된 영혼을 보살피며 행복해하고 있는 천사가 있기 때문에 만족해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아이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만족해하십니다… 나머지는 당신의 영혼에게[만] 말하겠습니다.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소용 없는 아름다움이기 때문에 우리 사이의 비밀로 남깁시다. 세상은 하느님의 기쁨과 하느님의 영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자리아 :
수호천사의 다른 활동으로는, 모든 순간에, 하느님 가까이에서 놀라울 정도로 활동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명령을 듣거나, 자기가 맡은 영혼의 선행을 하느님께 바쳐드리거나, 그 영혼이 간청하는 바를 도우며 하느님께 전해드리고, 징벌에 대해 중재합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초자연적인 선생이 되어서, 곧은 길로 가도록, 감화와 빛과 하느님께대한 견인으로 그를 인도합니다.
오! 우리의 불꽃은, 우리를 창조하신, ‘자비’이신 그 분의 불이며, 우리에게 당신 열정으로 지니게 해주신 불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맡은 영혼에 그 촛점을 모읍니다. 마치 씨를 품은 흙 위에 태양이 비추고, 따뜻하게 하여 싹을 틔우고, 줄기를 자라게 하고, 강하게 해서 크고 튼튼한 나무가 되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불꽃으로 당신을 위로하고, 당신을 따뜻하게 해주며, 힘을 주고, 빛을 비추어 주고, 가르치며, 주님께로 이끌어갑니다. 하지만 완고하고 차갑고 무정한 영혼이 우리가 스며들고 돕는 것을 못하게 한다면, 그리고 자비로운 화음과 우리의 가르침을 환영하지 않고, 피하여, 영혼을 현혹시키고 착란을 일으키게하는 시끄럽고 흉악한 음악을 쫓는다면, 그때는 우리의 탓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하느님 다음으로 가장 사랑하는, 우리의 온 힘을 다해 가장 사랑하는 그 영혼에 대한 사랑의 실패에 대해서 슬픔이 있게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맡은 영혼에 가까이 있습니다. 성인이나 죄인이나 똑같이 말입니다. 처음 영혼이 육신에 불어넣어지는 순간부터, 마지막 분리되는 순간까지, 우리는 지극히 높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람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것(모든 사람에게는 가까이에 천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주변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 그들을 돕고, 사랑으로 반기며, 존중하는 데에 말입니다. 그 사람에게 그러지 못한다면, 그의 아주 가까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아자리아”에게 그렇게 하십시오. 천사는 언제나 존중받고 사랑받기에 합당합니다.
만일, 언제나 어디서나 보고 계신 하느님의 눈 외에도, 두 천사가 곁에서 당신 이웃에 대해 당신이 하는 모든 행동을 보고, 감독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당신의 행동에 대해서 기뻐하고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당신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행동이 얼마나 좋게 되겠습니까! 생각해보세요. 어떤 사람을 환영하거나, 예우하거나, 혹은 굴욕을 줄 때. 그를 돕거나, 그를 외면할 때. 그와 함께 죄를 짓거나, 그를 죄로부터 빼낼 때. 그에게 가르침을 받거나, 그를 가르칠 때. 그에게 이익을 주거나, 그에게서 이익을 얻는 때에, 두 천사가, 당신의 천사와 그의 천사가 가까이에 있고, 당신의 보이는 행동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의 숨겨진 진심까지 보고 있습니다. 진실한 사랑으로 대하는지, 사랑을 가장한 것인지, 앙심을 품고 음모를 꾸민 것인지 다 알고 있다는 것이에요.
자선금을 줄 때? 두 천사가 당신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있습니다. 주지 않는다면? 두 천사는 당신이 주지 않는 진짜 이유를 보고 있어요. 나그네들을 따뜻하게 대하거나, 거절할 때? 두 천사들이 그 친절함을 보고있고, 행동 안에 숨겨진 영적인 진심을 보고 있습니다. 아픈 사람을 찾아갈 때? 의심하는 사람에게 충고할 때? 괴로움을 겪는 사람을 위로할 때? 죽은 사람에게 경의를 표할 때?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정의를 상기시킬 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울 때? 이러한 모든 자비의 행동에 두 천사가 증인이 됩니다. 당신의 천사와, 당신의 자비를 받고 있는, 혹은 거절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 상대 사람의 천사가 말입니다.
누군가 당신을 찾아오거나, 당신을 성가시게 하려고 온다면? 언제나 기억하십시오. 그 사람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그의 천사도 함께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사랑을 가지셔야 합니다. 범죄자 조차도 그의 천사를 갖고 있고, 맡은 영혼이 범죄자라고 해도, 천사는 범죄자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사랑으로 맞이하십시오. 비록 타산적으로 유보해둔 사랑이라도, 방어적으로, 혹은 당신을 찾아오는 상대가 자신의 행동이 당신에게 괘씸하고 슬프게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해줄 만큼, 그래서 스스로를 변하게 할 만큼 그렇게 심한 사랑이라도 말입니다. 당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하느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랑으로 기쁘게 맞이하십시오. 만일 당신이 아주 싫어하거나,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나, 당신을 귀찮게 하는 사람이거나, 당신 기대에 어긋나게 행동하는 사람을 당신이 맞아들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또한 그 사람 곁의 보이지 않지만 거룩한 손님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오는 모든 이웃들은 집 안으로, 혹은 당신 곁으로 그의 보호자인 천사를 데려오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기분나쁘게 하는 사람과 가까이에서 살아야만 한다면? 무엇보다도, 판단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판단하는 법을 모릅니다. 인간은 거의 언제나 공정하게 판단하지 못합니다. 설사 편견이나 인간적인 원한 없이 긍정적인 요소 만을 기초로 하여 공정하게 판단한다 하더라도, 사랑을 게을리하면 안됩니다. 당신 이웃에 대해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천사에 대한 사랑도 안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잘 생각한다면, 얼마나 쉽게 혐오감과 원한, 증오와 적의를 극복할 수 있고, 사랑하고, 또 사랑할 수 있으며, 주님이시고 심판자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이렇게 말씀할 수 있게 되겠습니까 : “나의 오른쪽으로 오너라, 복을 받은 이여” (주, 마태오복음 25장 33-34절)
몸을 일으키세요! 조금 더 노력해서, 언제나 끊임없이 이것을 묵상하십시오. 믿음의 눈으로, 모든 사람 곁에 있는 수호 천사를 본다고 말입니다. 당신의 모든 행동은 그 하느님의 천사에게 하는 것이라고 여기십시오. 그 천사는 하느님 앞에서 당신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 곁에 있는 그 수호천사는 -틀림없이- 당신의 천사와 한 목소리로 주님께 말씀드릴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여, 이 사람은 언제나 사랑에 충실하였습니다. 사람으로 계신 당신을 사랑했고, 피조물 사이의 초자연적인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이 영적인 사랑으로, 이 사람은 모욕과 공격을 견뎌냈고, 용서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로웠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그분의 적들을 보셨던 당신 아드님께서, 그분의 지극히 거룩한 성령의 힘으로 적들 곁에 괴로워하며 시달리는 천사들을 보시고, 그 천사들을 예우하시며 그들이 (가능한 많은 영혼들을 악마에게서 구해냄으로써) 지극히 높으신 당신께 영광을 돌려드리도록, 그 맡은 사람들을 회개시키기 위한 노력에 도움을 주셨던 당신 아드님처럼 말입니다.”
(마리아 발또르따,) 당신은 기쁨에 넘칩니다. 이곳에 오시는 주님께서 그분을 경배할 천사를 하나 더 만나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갖고 있는 수호천사의 존재를 믿고, 내 말들을 믿으십시오. 당신을 만나러 오는 모든 사람들과 어떻게든 당신과 접촉할 모든 이들에 대해서, 언제나 내 말을 기억하고, 그들의 수호천사를 생각하면서 행동하십시오. 그렇게 해서 싫증과 혐오감을 이겨내고, 모든 피조물들을 공평하게 사랑하십시오.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그들의 수호 천사를 존경으로 대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들의 수호천사를 도와주세요.
깊이 묵상하십시오. 나의 영혼이여. 주님께서 당신들 모두를 얼마나 존중하시는지, 우리 천사들이 얼마나 당신들을 잘 대하는지, 우리가 -왕이신 그분과 영적인 신하들인 우리가- 어떻게 당신에게 당신의 적절한 말과 행동으로, 특히 무엇보다도 확고한 선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옳은 길로 되돌아오게 함으로써 다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주는지를 말입니다. 확고한 행동은, 인간적인 우정을 잃는 두려움 때문에 관대함이나 타협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느님과의, 천사들과의 우정을 잃지 않기를 염려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