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마의 46개의 별

망토를 자세히 보십시오.

과달루페 틸마의 별 지도

16세기 가난한 농부가 걸쳤던 거친 틸마(망토) 위에는 46개의 별이 흩어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그저 장식으로만 봅니다. 민속적인 무늬, 오래전에 이미 썩어 없어졌어야 할 값싼 용설란 섬유 천 위에 더해진 아름다운 장식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 그림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만일 저 별들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만일 그것이 하나의 표징이라면?

1981년, 멕시코시티의 의사이자 아마추어 천문학자는 이 46개의 별을 분석하여, 그것들이 1531년 12월 12일, 멕시코 계곡 상공의 겨울 하늘과 일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땅에서 올려다본 하늘이 아니라, 별들의 뒤편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시점, 다시 말해 하늘의 관점에서 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발현이 있었던 바로 그날 아침의 하늘을, 마치 하늘에서 바라본 것처럼 말입니다.

별을 뜻하는 히브리어 ‘코카브’

히브리어에서 코카브(Kokab) 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별을 읽는다는 말을 들으면 미신이나, 순진한 사람들의 미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실제로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성경은 오히려 하늘을 하느님을 가리키는 표징으로 읽으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창세기부터 요한 묵시록까지, 그리고 여러분이 이번 주일에 참례하게 될 미사에 이르기까지, 그 하나의 실을 따라 함께 걸어가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별 지도의 이면에 숨겨진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과연 하늘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말해 줄 수 있는가?

우주는 정말 침묵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느새 우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믿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별은 그저 가스 덩어리일 뿐이고, 경이로움은 어린아이들이나 품는 감정이며, 누군가가 어떤 표징을 말하면 사람들은 단지 인간이 존재하지도 않는 패턴을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성모님의 망토에 있는 별들이 특정한 날 아침의 하늘과 일치한다고 말하면 현대인의 반응은 즉각적입니다.

“우연이겠지.”

“화가가 영리했던 거겠지.”

하지만 서명이 들어 있는 그림을 생각해 보십시오. 누구나 밤하늘을 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그림 속의 별들이, 그 그림이 묘사한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날, 바로 그 장소의 실제 하늘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게다가 그날이 기적이 일어난 날이었다면, 그 정확성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작가의 서명과 같은 역할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서명 그 자체가 아닙니다. 서명은 누가 그 작품을 만들었는지를 알려 줍니다.

이것은 단지 여러분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과 관계된 문제입니다. 하느님의 표징을 하나도 읽지 못하는 세대는, 결국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 자체를 멈추게 됩니다. 과달루페는 800만 명의 사람들에게 하늘을 올려다볼 이유를 주었고, 그리고 그 시선을 그리스도께 향하게 할 이유를 주었습니다. 그 표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발라암의 별

그렇다면 이러한 가르침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망원경이 발명되기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민수기 24장 17절에서, 이방인 예언자 발라암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의 입에서 오히려 축복의 예언을 나오게 하십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여기에서 은 하나의 이미지 안에서 결합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약 300년 전, 이집트의 유다인 학자들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칠십인역에서는 이 구절을 매우 인상적인 방식으로 옮겼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야곱에게서 한 별이 솟아오르고, 이스라엘에게서 한 사람이 일어나리라.”

여기서 별은 한 인격이 됩니다. 또한 그리스도 이전에 유다인들이 기록한 사해 두루마리 역시 이 예언을 장차 오실 기름부음 받은 임금에 대한 약속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별이 메시아를 알린다는 사상은 그리스도인들이 새롭게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수 세기에 걸쳐 이어져 온 유다인들의 희망이었습니다. 발라암이 사용한 단어는 코카브(Kokab), 곧 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1장 14절에서부터 하느님께서는 하늘의 빛들을 표징과 절기를 위하여 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두 번째 책이다

창세기 1장 14절에서 하느님께서는 하늘의 빛들을 표징과 절기를 위하여 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표징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오트(אוֹת, ‘ôt)입니다. 이 한 구절은 유다교 전례력 전체가 자라난 씨앗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달은 절기를 정했고, 태양은 하루의 시간을 정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예배는 하늘의 움직임에 맞추어 이루어졌습니다. 심지어 성전의 메노라(일곱 가지 등잔대)도 고대 유다인들의 저술에서는 하늘을 축소하여 보여 주는 모형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곧, 예배와 우주가 하나로 엮여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요한 묵시록 12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사도 요한은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을 봅니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점을 주목하십시오. 태양과 달, 그리고 별들이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이 모습에는 성경 안에서 분명한 선례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창세기 37장에서 요셉이 꾼 꿈입니다. 그 꿈에서는 태양과 달, 그리고 열한 개의 별이 요셉에게 절합니다. 그 별들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 곧 이스라엘 온 집안을 상징합니다. 창세기에서는 열한 개의 별이었지만, 요한 묵시록에서는 열두 개의 별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온 집안이 완전하게 갖추어진 것입니다. 구약의 예표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늘의 영광으로 관을 쓰고 있습니다. 신약에서 그 예표는 메시아를 낳는 여인 안에서 성취됩니다. 초대교회는 이 사실을 매우 분명하게 이해했습니다. 2세기의 성 유스티노 순교자는 『트리폰과의 대화』에서 발라암이 예언한 그 별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같은 시대의 성 이레네오는 『이단 논박』에서 마리아를 뱀의 머리를 짓밟을 후손을 낳는 새 하와라고 부릅니다. 또한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411항은 창세기 3장 15절을 복음의 첫 선포, 곧 여인과 그 아들이 옛 원수와 맞서게 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해석합니다. 이것은 어느 한 지역이나 소수의 신학자들의 독특한 의견이 아닙니다. 수 세기에 걸쳐 교회 전체가 한마음으로 하늘을 읽어 온 전통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하느님께서 쓰신 두 권의 책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주는 원리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두 권의 책을 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는 성경이라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창조라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두 책 모두에서 한결같은 언어로 말씀하십니다. 예언 속에 별을 두셨고, 동방박사들을 별로 베들레헴까지 이끄셨으며, 요한 묵시록의 여인에게 별들의 관을 씌우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나타나시기로 택하신 바로 그날 아침의 하늘을 한 폭의 성화 위에 당신의 서명으로 남기시는 일도 충분히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바로 이것이 과달루페가 점성술이 아닌 이유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점성술은 별들이 여러분을 지배하고, 여러분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별들은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별들을 만드신 분을 가리키는 표징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다시 성모님의 망토를 바라보십시오. 이번에는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오. 별들은 여인을 둘러싸고 있지만, 태양은 그녀의 뒤에 있으며, 아기는 그녀의 태 안에 계십니다. 모든 별은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또한 연구자들 가운데 일부는 성모님의 태가 있는 위치 위에 사자자리와 그 으뜸별이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고대 사람들은 그 별을 작은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다른 연구자들은 그 자리에 처녀자리(Virgo)가 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해석을 따르든 메시지는 동일합니다. 한 여인이 품고 있는 왕. 여기서 하늘은 미래를 예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NASA가 증명했다는 말은 사실일까?

이제 신앙에는 정직함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한 가지를 분명히 바로잡고 넘어가겠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NASA가 과학적으로 과달루페의 별 지도를 증명했다.”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별자리 연구는 1981년, 멕시코시티의 한 천문대에서 멕시코의 의사이자 아마추어 천문학자였던 후안 에르난데스 일레스카스(Juan Hernández Illescas)가, 사제이자 나우아틀어 연구자였던 마리오 로하스 신부(Father Mario Rojas)와 함께 수행했습니다. 이후에는 메리다(Mérida)의 수학자이자 평신도 연구자인 페르난도 오헤다 라네스(Fernando Ojeda Llanes)가 수십 년에 걸쳐 이 성화를 계속 연구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실제 원형은 지금 널리 알려진 모습보다 더 좁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오히려 그것이 더 아름답습니다. 신앙은 과장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신앙에 필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진리의 하느님께서는 어떤 꾸밈도 필요로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하늘이 여러분에게 설교하도록 하십시오. 오늘 밤 밖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십시오. 별들을 바라보며, 창조 세계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미사에 참례할 때에도 같은 감각을 가져 보십시오. 교회의 오래된 부활 찬송(Exsultet)에서는 부활초를 결코 지지 않는 샛별이라고 노래합니다. 그 샛별은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마침내 떠오르신 야곱의 별이 아니겠습니까? 옛 성전은 하늘의 움직임에 맞추어 예배의 시간을 정했습니다. 오늘날 미사 역시 그러합니다. 모든 축일과 모든 전례 시기는 하늘의 빛을 기준으로 질서 있게 이루어집니다.

“그 여인”은 이스라엘인가, 마리아인가?

이제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많은 개신교 형제자매들은 요한 묵시록에 등장하는 그 여인은 마리아가 아니라 이스라엘, 혹은 교회를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는 해석입니다. 태양과 달, 그리고 별의 상징은 분명 요셉의 꿈에서 나온 것이며, 열두 지파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해석은 옳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꺼이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리아를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마리아를 더욱 굳건하게 세워 줍니다. 그 여인은 민족들을 다스릴 한 특정한 아들을 낳습니다. 그리고 본문이 분명히 말하듯이,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나머지 자녀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소명이 마침내 구체적인 얼굴을 갖게 된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가톨릭의 대답은 “마리아냐, 이스라엘이냐”가 아닙니다. 둘 다입니다. 그리고 이 별에 대한 희망을 처음 품었던 우리 유다인 형제들에게 우리는 깊은 존경을 드려야 합니다. 야곱에게서 한 별이 솟아오리라는 희망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뿌리입니다. 우리가 다른 점은 단 하나입니다. 그 별이 이미 떠올랐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별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바르 코크바의 비극적인 반란은, 그 희망을 단지 정치적·군사적으로만 이해했을 때 어떤 결과에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참된 별께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승리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분은 적들의 머리를 짓밟음으로써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 짓밟히심으로써, 그리고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승리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로마를 이기신 것이 아니라, 죽음 자체를 이기셨습니다.

오늘 밤 하늘을 올려다보십시오

그렇다면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우리를 어디로 이끌까요? 발라암의 별에서부터, 태양과 달과 별이 등장하는 요셉의 꿈을 거쳐, 요한 묵시록의 태양을 입은 여인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에는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늘은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어머니를 통하여 세상에 오실 것을 가리키도록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과달루페에서는 그 오래된 표징이 다시 한번 나타났습니다. 가난한 한 사람의 거친 틸마 위에 새겨졌고, 온 대륙이 하늘을 우러러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하늘을 올려다보십시오.

오늘 밤 열린 하늘 아래에서 묵주기도 한 단을 바치십시오. 요한 묵시록 12장을 펼쳐 천천히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이번 주일 미사에서 빛이 행렬 가운데 들어올 때, 야곱의 별을 기억하십시오. 하늘은 한 임금에 대하여 말하였고, 그분의 어머니는 우리를 집으로 이끌기 위하여 하늘을 몸에 입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