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주. 구마사제로 오랜 경험을 쌓으신 채드 리퍼거 신부님의 강연입니다. 본문에 나온 의견은 가톨릭 교리에서 자세히 다뤄지지 않은 내용이나, 신부님의 개인 경험, 견해에서 나온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 악마의 이름들에 대해서는 주의가 필요하겠습니다.

 

그럼 기도로 시작하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 당신의 거룩한 영감으로 저희의 모든 행위를 이끌어 주시고, 당신의 은총 어린 도우심으로 그것을 완성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모든 기도와 일이 당신에게서 시작되어 당신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지극히 강하신 동정녀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저녁 강연의 주제는 기본적으로 악마론(demonology)입니다. 악마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그들의 심리가 어떠한지, 그리고 우리가 현재의 문화 속에서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는 것을 보고 있는지, 또 그것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다루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여러 수준에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을 잠깐만 지켜봐도 우리가 악마들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요 (청중 웃음).

자, 먼저 천사들의 창조와 그들의 심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사들의 계급(hierarchy)을 창조하셨을 때, 수십억, 수백억에 이르는 천사들로 이루어진 전체 계급을 창조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인간에게는 수호천사가 있습니다. 그러니 수호 천사 계급만 생각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은 전체 천사 무리 가운데 단 하나의 계급에 불과한데도, 그 계급 안에만 약 200억의 천사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창조된 다른 모든 천사들을 포함하지도 않습니다. 즉, 아홉 천사 계급 전체가 한순간에, 동시에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창조되었을 때, 그들의 인식 방식, 즉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은 우리와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사실상 정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다양한 사물들과 접촉합니다. 우리는 여러 종류의 개들을 보고, 그로부터 “개란 무엇인가”라는 개념을 추상해 냅니다. 그리고 나서 “개는 네 발 달린 동물이다”와 같은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한 개념적 지식을 얻기 위해 실제로 그것들과 일정 기간 접촉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것을 이해하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천사들은 달랐습니다. 성 토마스에 따르면, 천사들에게는 이른바 “세 순간”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순간은 그들이 창조된 순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완전한 인식 행위 안에 창조하셨습니다. 여기서 “완전한”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자신들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자신들의 본성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자신들에게 맡겨진 임무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다른 모든 천사들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도 알았습니다. 만일 자신들의 임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알았습니다. 반대로 충실하게 임무를 받아들인다면 지복직관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또한 성 토마스는 그들이 믿음·희망·사랑의 주입된 덕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들이 강생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에 대한 지식도 가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을 보면 악령들이 처음에는 “이분이 바로 그분인가?” 하고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질문하고, 그분을 시험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내려고 하며, 정말 이분이 그분인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기적을 정기적으로 행하시기 시작하신 뒤에야, 그들은 “바로 이분이다”라고 깨닫게 됩니다. 그분이 바로 그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면서도 하느님이신 분, 곧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경우가 아니라면 이런 일들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주목한 것들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예언자들이나 율법의 수여자들과는 달리 악마들에 대해 완전한 강제적 권능을 가지고 계셨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조금 뒤에 다시 돌아와 설명하겠습니다. 그 말은, 그분께서 악마들에게 단지 “나가라” 하고 명령하시면 즉시 끝이었다는 뜻입니다. 쾅, 바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악마들은 그분의 명령이 단순히 인간의 명령이 아니라, 성삼위의 제2위격이신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명령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천사들은 처음 창조될 때 완전하고 충만한 인식의 행위를 받았습니다. 성 토마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그 인식의 행위를 받은 다음에는, 그에 수반되는 의지의 기쁨이 있었다고 합니다. 즉, 그들이 하느님 계획의 아름다움을 처음 보았을 때, 그것을 순간적으로 이해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완전히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의 의지 안에는 깊은 기쁨이 생겨났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때 그들에게는 커다란 기쁨이 있었으며, 심지어 악마들조차도 — 구마 중에 그들을 심문할 때 — 그 첫 번째 순간에 느꼈던 그 기쁨을 억지로 떠올리게 만들 수 있는데, 그렇게 하면 그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 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때 하느님의 계획의 아름다움을 완전히 보았고, 그것을 사랑했으며, 그 안에서 더없는 기쁨을 누렸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선(善)을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영원히 거부했다는 사실도 함께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기억 자체가 그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순간은 천사들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임무를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한 때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임무를 받아들였다면, 성 토마스는 세 번째 순간에 하느님께서 상이나 벌을 미루실 이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즉시 지복직관, 곧 하느님을 직접 뵈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느님께 충실했다면 말입니다. 이제 그 타락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었는지 조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반면에 악마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임무를 거부했을 때 즉시 단죄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곧바로 하느님의 심판을 체험했고, 자신들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즉시 상실의 고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옥에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는 한 측면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열세 가지 형태의 고통을 겪는데, 이것은 그중 하나입니다. 또 다른 고통은 양심의 고통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연법적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천사에게 그 천사 고유의 자연법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인간에게 자연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자연법이 있는데, 그것은 이성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일부는 공동체와 질서를 이루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과 같은 규모의 정부나 오늘날 우리가 보는 방식 그대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본성적으로 질서 있는 사회를 이루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하느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성향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는 자연법에 따른 여러 성향들이 존재합니다. 천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천사는 하나의 독립된 종입니다. 구마 예식 중에 이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악마가 사람을 사로잡고 있다가 표면으로 나오고, 다른 악마는 잠시 물러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보면 그들의 개성은 인간의 개성보다 훨씬 더 뚜렷합니다. 그들의 특성도 훨씬 더 두드러집니다. 또 하느님께서 각 천사를 특정한 방향으로 기울여 놓으셨기 때문에, 그들의 자연적 성향이 매우 분명하고 독특한 대상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는 그들의 자연법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뒤에도 그들은 여전히 그 자연법적 성향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인간에게 비유하자면, 우리가 배가 고플 때 먹고 싶어지는 욕구를 느끼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에게는 먹으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아니, 나는 절대로 먹지 않겠다”고 선택했고, 그 결과 굶주리고 있다고 해 봅시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나는 먹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지금 굶어 죽어 가고 있다.” 악마들의 상태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다만 그들의 고통은 훨씬 더 강렬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자연적 성향은 우리의 성향보다 훨씬 더 분명하고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께로부터 특정한 임무를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 임무를 거부하면, 그것은 단순히 어떤 일을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임무는 곧 그들 자신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만드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모든 인격적 완성은 그 임무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악마들이 그 임무를 거부했을 때, 그것은 완전한 자기혐오의 행위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악마들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자기 자신을 미워하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인간 안에서 그런 현상, 곧 자기혐오와 자기증오가 재현되기 시작하는 것을 볼 때면 저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반드시 멈추라고 말합니다. 우선 그것은 사랑의 계명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바로 악마들이 우리 안에 재현하려고 하는 심리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실 여러분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어떤 영적 결함이라도 있다면 — 그리고 여러분 모두에게는 그런 결함이 있습니다 — 그것은 여러분의 심리 안에 악마들이 평생 동안 심어 놓으려 애써 온 어떤 심리적 적합성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계속 유혹합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이 점점 더 조종하기 쉬운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결함을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혐오와 자기증오, 그리고 자신을 해치고 싶어 하는 충동은 모두 그들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심리입니다. 그들은 완전한 자기혐오를 가지고 있습니다(한숨). 하지만 또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그들의 시험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천사들이 창조되었을 때, 그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앞에서 말했듯이, 다른 모든 천사들과의 관계도 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다른 천사들 안에서, 그리고 훗날 존재하게 될 성인들 안에서 자신들보다 더 높은 어떤 완전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완전성은 자기 본성에 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결코 가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은 자신의 본성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 앞에는 자신들에게는 속하지 않는 더 높은 완전성이 놓여 있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들은 선택해야 했습니다. 희생의 선택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바라보던 그 선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것을 희생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받아들였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보상으로 당신을 직접 뵈는 복을 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고, “아니, 나는 여전히 저것을 원한다.” 고 선택했다면, 그 결과는 단죄였습니다. 이것이 본질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악마들은 실제로 하느님을 직접 뵈는 복보다 자기들의 상상 속 환상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선택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어떤 악마에게 말했습니다. “그건 비이성적이잖아.” 그러자 그가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그래. 그것만 봐도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지.” 하지만 그것은 또한 그들이 여전히 그 대상을 원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심리를 움직이는 중요한 원동력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또한 그것은 그들이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실패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 안에는 깊은 실패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간들 가운데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태도 역시 멈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원했던 것, 그들이 지은 죄, 그리고 특정한 임무를 향하도록 창조된 본성 때문에 천사들 사이에는 서로 다른 역할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천사들은 주로 인간을 돕도록 맡겨졌고, 중간 계급의 천사들은 다른 천사들과의 관계 안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다스리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계급의 천사들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반면 아래 계급의 천사들은 주로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천사에게는 각자 맡겨진 고유한 임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임무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선택하는 순간, 그들의 의지는 그 임무가 발견되는 곳마다 그것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거부한 선을 어디에서 보든지 그것을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들이 맡았어야 할 역할이 인간 안에서 실현되는 것을 보면 그것을 방해하려 하고, 다른 천사들이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을 보면 그것을 거스르려 하며, 결국 자신들이 거부한 하느님의 계획 전체에 반대하는 방향으로 의지가 굳어지게 된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로키(Loki)라는 악마가 있습니다. 네, 실제로 존재하는 악마입니다. 로키(Loki) 말입니다. 제가 한 구마 사례에서 그를 상대한 적이 있었는데, 그의 원래 임무는 사람들이 수도생활에 들어가고 사제가 되도록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주된 역할은 성소를 북돋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요? 지금 그는 사탄(Satan)을 섬기면서 정반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들을 세속적인 삶에 빠뜨려 성소를 무너뜨리는 것이 그의 현재 임무입니다. 요즘 우리가 거의 모든 곳에서 보고 있는 현상입니다. 이 악마는 그 일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또 다른 예로 루치페르(Lucifer)를 들 수 있습니다. 루치페르라는 이름은 두 개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는데, 뜻은 “빛을 나르는 자”, 또는 “빛을 가져오는 자”입니다. 이 이름은 그의 본래 역할이 지성과 관련된 것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어느 시점에 저는 그에게서 이 사실을 실토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세 번의 다른 사례에서 루치페르를 상대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원래 자신에게 맡겨졌던 임무가 성모님의 지성을 밝혀 드리는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루치페르, 곧 “빛을 가져오는 자”라고 불렸던 것입니다. 그의 주된 임무는 성모님의 지성을 밝혀 드리고, 성모님께서 더욱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시도록 돕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처음 창조되었을 때 성모님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이 첫 순간에 받은 인식 안에는 자신의 선택에 필요한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각 천사는 “이것이 나의 임무다.”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임무를 받아들일지 거부할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도 함께 보았습니다. 각 천사는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선택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분명히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루치페르는 성모님의 내적인 아름다움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성모님의 내적 삶이 너무나도 완벽하게 아름다워서, 자신이 언제나 두 번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아름다움이 자신이 원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저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시 그는 성모님의 호칭인 “정의의 거울(Mirror of Justice)”에 대해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성모님 안에서 본 것은 사실 그분이 아니라 하느님이었지, 그렇지 않느냐?” 구마 사제들이 악마에게 “네가 보고 있는 것은 하느님이다”라고 말할 때 쓰는 다소 공식적인 표현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성모님의 내적 삶이 완벽했던 이유는, 그분이 하느님을 완벽하게 비추는 거울이었기 때문이 아니냐?” 그러자 그는 대답했습니다. “그렇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느님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권력이 탐나서가 아니었다. 그분의 질서를 뒤엎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나는 그분의 아름다움을 나 자신의 것으로 갖고 싶었다.” 이 말은 꽤 흥미롭습니다. 원래 루치페르에게 맡겨졌던 임무 가운데 하나가 아름다움과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음악도 그의 역할 가운데 하나였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아름다움을 깊이 인식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음악이 점점 더 감각적이고 저속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그리고 루치페르의 또 다른 임무는 우리의 정신을 밝혀 주어 우리가 지금보다 더 희생적인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가끔 아무렇지도 않게 엄청난 말을 툭 던질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영적 생활 전체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뜻을 하느님의 뜻에 희생으로 바치는 데 달려 있다.” 그는 마치 별것 아닌 이야기처럼 지나가며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영적 생활 전체를 요약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이 진실입니다. 루치페르가 성모님을 보았을 때도 바로 그 점을 본 것입니다. 제가 지금 설명하려는 것은 악마들의 심리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의 개성은 매우 뚜렷합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일정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나름의 심리적 패턴을 지니고 있습니다. 루치페르에게 일어난 일은 이렇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성모님에 관한 어떤 사실을 그에게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전 강연을 들으신 분들은 제가 이 이야기를 한 번 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루치페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모님은 평생 동안 자신을 끊임없이 희생하셨다고. 그리고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그 희생의 개인적인 대가를 계산해 본 적이 없었다고, 자신이 무엇을 잃게 될지, 얼마나 힘들지, 얼마나 아플지를 따져 본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성모님이 이 방에 있는 모든 사람과 다른 이유다. 그분은 우리와 같은 분이 아니다. 그분은 완전히 다른 분이다.”

우리는 그 점에서 성모님과 같지 않습니다. 성모님도 분명 인간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모님은 어떤 일이 고통스럽거나 어렵거나 힘든 일이 될 때에도, 그것으로 인해 자신이 치러야 할 대가를 단 한 번도 계산하지 않으셨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한두 번의 희생이 아니었다고. 성모님의 희생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고. 평생 동안, 거듭해서, 또 거듭해서 자신을 희생하셨다고. 결코 자신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고, 결코 자신을 계산에 넣지 않았으며, 오직 그렇게 하시는 것이 옳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빙의된 사람 안의 악마가 말한 것처럼,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얼마나 선하신 분인지를 보셨고, 그것을 본 순간 자신을 완전히 하느님께 내어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루치페르는 자신의 임무가 성모님을 더욱 희생적인 분이 되도록 돕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곧 자신의 도움을 통해 성모님의 내적 아름다움이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하느님께 침을 뱉었다고. 그것을 절대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이 이야기에는 매우 중요한 점이 담겨 있습니다. 천사들은 결정을 내릴 때 전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받아들이거나, 완전히 거부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애매한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전부이거나 전무입니다. 들어가 있거나 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처럼 어중간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흔히 “조금은 하느님 편이고, 조금은 내 편이고, 조금은 세상 편이다.”라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천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선택할 때는 존재 전체를 걸고 선택합니다. 한번 선택하면 그 선택은 완전히 확정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인식은 너무나 명확하고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인간은…우리가 꽤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결정을 내릴 때 천사들처럼 전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결심은 대개 완전히 마음을 다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좋아, 이렇게 해야지.”라고 결정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 그건 별로였네.” 라고 생각하고 다시 마음을 바꿉니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입니다. 자유로운 선택이란 본질적으로 여러 선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의지를 특정한 방향으로 향하게 합니다. 즉, 의지를 어떤 대상으로 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정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처음에는 단지 어떤 성향이나 경향만 생긴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한 번 하면, 다음에 같은 선택을 할 때는 그 방향으로 약간 더 기울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반복할수록 의지는 점점 더 그 방향으로 굳어집니다. 그래서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면, 결국 선을 추구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됩니다. 그것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됩니다. 그들은 악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선을 향해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악한 방향으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정치인들이나 악한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지금 정치인과 악한 사람을 동일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점은 분명히 해 두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을 보면 일정한 심리적 패턴이 나타납니다. 구마 사제들은 그것을 빙의의 이차적 징후 가운데 하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빙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악마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고방식의 패턴입니다. 그것은 악의(惡意)입니다. 어떤 사람이 악의를 품기 시작하면 그 안에서 특정한 심리 구조가 형성됩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이런 예를 듭니다. 잠시만 참고 들어 보십시오. 그냥 예를 들기 위한 이야기입니다. 가령 우리가 아주 무능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청중 웃음). 정말로 그런 사람을 뽑았다고 가정해 보는 것입니다. 자, 그냥 예를 위한 가정이니 조금만 참고 따라와 보십시오. 농담처럼 들린다는 건 압니다. 그래도 잠시만 따라와 보십시오.

아무리 바보라도 가끔은 우연히 올바른 일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가능한 한 최대한의 피해를 만들어 내는 방향으로만 흘러간다면, 그것을 악의라고 부릅니다. 바로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이것입니다. 어디를 돌아보아도, 나라 전체가 모든 영역에서, 모든 문제에서, 무슨 일이든지 간에 계속해서 타격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악의입니다. 그리고 악마들은 바로 그런 악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선택은 인간의 선택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의지가 어떤 방향으로 완전히 굳어지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사실 우리의 의지는 죽을 때까지 완전히 굳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야 하느님께서 그것을 확정하십니다. 우리가 은총의 상태에 있었는지 아닌지에 따라 선 안에서든 악 안에서든 확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다릅니다. 그들에게는 중간 단계가 없습니다. 전부이거나 전무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한 상태에서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을 내리는 순간, 그들의 의지는 그 악 안에 완전히 고정됩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그들의 사고방식이 그렇게 유지되는 이유입니다.

요즘 다시 떠오르고 있는 오래된 이단이 하나 있습니다. 아포카타스타시스(Apocatastasis)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이 이단은 결국에는 악마들도 회복될 수 있고, 지옥에 있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단죄되었습니다. 가톨릭 신자라면 이 주장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가르침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곧 그들의 형벌이 영원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구마 중에 악마들에게 큰 고통을 주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한 측면을 끄집어내어 이렇게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영원히. “너에게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이 말을 들으면 그들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그래서 중요한 점은, 그들의 의지가 악 안에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어떤 악마들은 특정한 사람들을 특별히 괴롭히게 됩니다. 매우 자주, 어떤 악마가 어떤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지는 그 악마가 원래 맡았던 임무의 뒤집힌 형태와 관련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본래 자신이 증진시키도록 창조되었던 선을 정반대로 파괴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정한 종류의 문제나 장애와 관련된 특정한 악마들이 존재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음란의 악마들이 있습니다. 베엘제붑(Beelzebub)도 음란과 관련된 악마이고, 바알(Baal)도 그렇습니다. 아스모데우스(Asmodeus) 역시 음란과 관련된 악마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도 같은 종류의 악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각자 특정한 영역을 선택하여 활동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가끔 우리에게 찾아오는 사람들 가운데,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남성이면서 동시에 빙의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거의 틀림없이 아스모데우스(Asmodeus)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가 그 일을 주도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악마들이 사람들의 약점을 계속 건드리면서 특정한 심리적 행동을 부추긴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악마들은 그런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이제 다시 인간의 인식 방식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제가 처음에 말했듯이, 인간은 여러 사물을 접한 뒤에 거기서 공통된 개념을 추상해 냅니다. 예를 들어 여러 마리의 개를 보고 난 뒤에야 비로소 “개란 무엇인가”를 개념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런데 천사들은 정반대입니다. 그들의 인식 방식은 인간과 완전히 반대입니다. 그들은 가장 먼저 개념 자체를 압니다. 천사들이 창조되었을 때, 하느님께서는 앞으로 존재하게 될 모든 사물의 본성과 모든 개념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창조되는 순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나무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단지 나무를 생각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즉시 자신의 지성이 도달할 수 있는 한도까지 나무의 본질을 완전히 파악합니다.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무엇인지만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면 인간의 모든 능력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유전자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기질과 유전자의 관계가 어떠한지, 인간의 욕구와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영혼의 여러 능력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도 완벽하게 알고 있습니다. 사물들이 왜 일어나는지, 어떤 원인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이런 것들을 매우 정확하게 이해합니다. 그래서 노스트라다무스가 점술이나 마술을 이용하여 미래의 많은 일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악마들이 현재 상황을 보고, 원인들이 어떤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완벽하게 이해하기 때문에, 그 결과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상당 부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악마들은 미래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태와 원인들의 움직임을 매우 정확하게 파악하여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지를 계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미래를 아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설명하곤 합니다. 인간도 어느 정도는 그런 종류의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천사들 수준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항상 드는 예가 있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을 건물 옥상에서 밀어 떨어뜨린다면, 중력의 법칙 때문에 그 사람이 땅에 부딪힐 것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것은 예측이라기보다 원인과 결과를 아는 것입니다. 천사들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다만 그들은 훨씬 더 복잡한 상황들을 볼 수 있고, 원인들의 본성을 훨씬 더 정확하게 알며, 그 결과가 대체로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최근에 악마들이 자신들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때가 짧다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특정한 징후들이 하나씩 맞아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도 이런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하느님께서 결국 그것을 끝내셨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제 충분하다.”라고 말씀하시고 상황을 끝내 버리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악마들은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이제 오래 남지 않았다.”라고 말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이것입니다. 악마들은 처음 창조될 때 받은 완전한 개념적 지식을 잃지 않습니다. 그 지식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지성 면에서 엄청난 불리함을 안고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지적이며, 엄청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사물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구마 예식 중에 빙의를 진단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도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가끔 악마가 어떤 말을 하는데, 그 사람이 알 수 없는 신학적 구분이나 매우 복잡한 신학적 설명을 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그런 지식을 배운 적도 없고 알 수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럴 때는 구마 사제가 중요한 단서로 삼기도 합니다.

이제 다시 그들의 인식 방식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들은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어떤 개별적인 사물을 이해할 때는, 그 개체를 그 개념 안에서 바라봅니다. 천사들은 지성과 의지만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처럼 감정이나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성과 의지만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개념을 생각한 다음, 그 개념 안에 포함된 특정한 대상을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 방식으로 그들은 인간을 알게 됩니다. 그들에 따르면, 역사 시작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개별적인 물질적 사건들에 대한 지식이 계속해서 그들의 지성 안에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질적 사건을 알고 있다고 그는 설명합니다. 물론 항상 모든 것에 동시에 집중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특정한 대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그들이 당신을 지켜보고 싶다면, 당신에게 주의를 돌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당신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자면, 그들은 이미 오랫동안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물론 여러분을 편집증 환자로 만들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농담처럼 말하듯이, “정말로 누군가가 당신을 따라다니고 있다면, 그건 편집증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지요.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들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제한하시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를 정해 놓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를 매우 면밀히 관찰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행동 패턴을 살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리의 행동을 관찰하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단순히 관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DNA만 보아도 우리가 어떤 성향을 가질 가능성이 높은지, 어떤 기질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악덕에 특히 약할 것인지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행동 양식도 계속 관찰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덕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악덕을 가지고 있는지, 영적으로 어디가 약한지, 어디가 강한지,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그들이 관찰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 안에 주신 은총이 밖으로 어떻게 드러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도 살펴봅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을 벌일 때 그것까지 고려하여 자신들의 전략을 세웁니다. 또한 그들은 전쟁에 관한 지식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이 알고 있고, 영적 전쟁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며, 수십 년 동안 한 사람을 관찰해 왔기 때문에, 만약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그 사람을 넘어뜨리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그는 설명합니다.

이 점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평범한 상황이 아닙니다. 그러나 동시에 반드시 이해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을 철저하게 통제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악마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유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유혹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까지 유혹할 수 있는지, 어떤 내용으로 유혹할 수 있는지,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께서 정하십니다.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빙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빙의될 수 있는지, 어느 정도까지 빙의될 수 있는지, 어떤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지,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지, 어떻게 해방될 것인지, 신체의 어느 부분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언제 드러날 수 있고 언제 드러날 수 없는지, 각 증상이 어느 정도까지 나타날 수 있는지,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께서 결정하십니다. 악마들은 극도로 짧은 목줄에 묶여 있는 존재들입니다. 악마들이 놀라울 정도로 일관된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그들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본성에 따라 행동합니다. 둘째, 그들이 저지른 죄는 그들을 특정한 행동 양식 안에 고정시켜 놓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늘 같은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셋째, 하느님께서 그들을 통제하시며,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영적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악마들이 하는 모든 행동은 결국 하느님의 허락 아래에서만 이루어지며, 그 허락조차도 궁극적으로는 영혼의 선익을 위한 계획 안에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악마들이 빙의 사례 안에서도 자신들이 빙의된 사람의 성화를 위한 도구가 되고 있음을 인정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거룩한 이들 중 일부는 빙의를 겪었거나 지금도 겪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알던 한 여성은 빙의가 풀려 가던 시기에 기도의 네 번째 단계에 도달했고, 신비적 관상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네 번째 단계입니다. 그녀는 네 단계까지 올라갔습니다. 기도의 단계는 아홉 단계가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번째 단계조차 넘지 못합니다. 또 지금 제가 돕고 있는 사례 가운데 한 여성은 베엘바(Beelba)라는 음란의 악마에게 빙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녀가 6개월 동안 단 한 번의 소죄도 짓지 않고 지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빙의 사실이 드러난 후 14년 전에 정결 서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단 한 번도 그것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결국 그 악마는 그녀의 성화를 위한 도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녀는 매우 거룩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제가 진정한 고행의 덕, 곧 기꺼이 고통을 받아들이는 덕을 가진 사람을 꼽으라면 그녀를 꼽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악마들마저도 사용하십니다. 물론 빙의를 겪은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말합니다. “이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은 많지만, 다시 빙의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어쨌든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악마들이 심리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서로 다른 악마들을 상대해 보면, 그들의 사고방식의 패턴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각의 특징이 다르고, 각각의 성격도 다릅니다. 제가 앞서 말했듯이, 그들의 개성은 매우 뚜렷합니다.

이제 인간의 유혹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유혹은 세 가지 원천에서 옵니다. 세상, 육신, 그리고 악마입니다. 세상은 육신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악마들 역시 세상이나 육신을 통해서만 우리를 유혹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핵심은 육신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모든 유혹이 악마에게서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악마들은 자신들이 주로 어떤 방식으로 인간을 유혹하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성인들은 악마들이 주로 인간의 상상력 안에 어떤 생각이나 이미지를 집어넣는 방식으로 유혹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악마들은 우리가 어떤 유혹에 약한지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우리의 행동 패턴을 관찰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특정한 죄나 약점 때문에 계속해서 고생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전에 말한 것처럼 그 분야를 주로 다루는 악마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극단적인 분노를 생각해 봅시다. 극단적인 분노는 이시스(Isis)라는 악마의 영역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시스(Isis)의 타락이 그리스도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자비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이 상대해 본 악마들 가운데 가장 잔인하고 가장 사악한 존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사탄보다도 더 다루기 어려운 존재라고 말합니다. 물론 사탄에게도 고유한 특성과 악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시스(Isis)는 특별히 잔혹함과 잔인함이라는 면에서 두드러집니다.

이것은 그 악마가 바로 그런 종류의 것들을 부추긴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특정한 악습에 점점 기울어지기 시작하면, 그 악마와 일종의 적합성, 즉 서로 맞물리는 상태가 형성됩니다. 그러면 점점 더 쉽게 조종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자기 삶에서 악습을 뿌리 뽑는 것입니다. 모든 악습을 제거하고, 덕을 기르며, 자신의 영적 결함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또한 일정한 기도 생활을 세워야 합니다. 이 역시 정의의 덕에 속하는 일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면 악마가 여러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은 점점 약해집니다. 우리는 흔히 악마들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악마들은 더 강해지지 않습니다. 그들의 힘은 증가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의지의 힘은 이미 고정되어 있습니다. 천사들의 위계 안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가는 그들의 본성에 달려 있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영적 존재의 탁월함의 정도가 지성의 정도를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즉, 더 지적인 천사일수록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의지는 그 지성에 비례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괴롭히는 악마들 가운데서는 사탄이 가장 강력한 의지를 가진 존재라고 그는 말합니다. 지옥 안에는 매우 엄격한 서열 체계가 존재합니다. 하급 악마들은 상급 악마와 논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상급 악마는 자신의 의지의 힘으로 그들을 강제로 복종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따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서로 속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언가를 숨기기도 하고, 가끔은 서로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서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두 인정합니다. 또 자연법의 일부 가운데 하나는 하느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마들은 하느님께 불순종할 기회를 단 한 번 가졌습니다. 바로 타락의 순간입니다. 그 이후로는 다시는 하느님께 불순종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물론 그들은 구마 사제나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 저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하느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우리의 힘을 길러 주시고, 덕을 성장시키시며, 악마들에 대한 정당한 권위를 행사하도록 훈련시키십니다. 따라서 악마들이 저항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조차도, 실제로는 하느님의 허락과 통제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마 중에는 악마에게 어떤 일을 명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시키는 대로 하게 만드는 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결국은 하긴 합니다. 어느 정도의 순응은 항상 있습니다. 하지만 해방 과정에는 여섯 단계가 있는데, 마지막 여섯 번째 단계의 끝에 가까워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때가 되면 악마는 구마 사제가 시키는 모든 일을 합니다. 심지어 다음 명령이 무엇인지 기다리고 있다가 곧바로 실행하려고 합니다. 그저 빨리 끝내고 나가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구마 중에 가끔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갑자기 악마가 어떤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대개 하느님께서 그 악마에게 그것을 말하라고 명령하셨다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물어보면 악마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래. 그분이 네게 말하라고 하셨다.” 그들은 즉시 복종합니다. 즉시 말입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그들의 지성 안에 권위의 질서를 새겨 넣으셨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이 권위의 질서는 자연법의 일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그들의 지성 안에 넣어 두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가 권위를 가지고 있는지, 누가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은지, 누가 무엇에 대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 경계선을 정확하게 압니다. 자신들 사이에서도 그렇고,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는 이것이 사탄이 왜 하와(Eve)를 먼저 공격했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이유라고 말합니다. 교부들에 따르면 상황은 이렇습니다.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 하느님께서는 직접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은 하느님과 직접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아라.” 이 계명은 직접 아담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후 하와가 창조되었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전통적인 가톨릭 도덕신학은 하와가 일정한 종속의 질서 안에서 창조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즉 아담 아래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잠시 후에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어쨌든 그런 질서 안에 있었기 때문에, 하와는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담으로부터 그 계명을 들었습니다. 아담이 하와에게 “그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와가 그 열매를 먹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녀는 두 겹의 권위 구조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첫째는 하느님께 대한 순종의 질서에서 벗어났고, 둘째는 남편의 권위 아래에서 벗어났습니다. 권위의 가장 중요한 두 기능은 보호와 돌봄입니다. 그런데 하와는 이제 영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악마들이 지금도 하려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정당한 권위 구조 밖으로 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공격하기가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성 토마스에 따르면 타락 이전의 종속 상태는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아담은 하와를 사랑했습니다. 그녀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녀를 돌보았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녀의 선익을 생각했습니다. 여성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와, 정말 멋진데요?”라고 생각할 것입니다(청중 웃음). 그러나 타락 이후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하와는 종속이 아니라 예속의 상태로 들어갔습니다. 그 말은 아담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 바오로가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는 아내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고, 아내의 선익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게 되었으며, 관계 자체가 왜곡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다르다고 그는 말합니다. 천국에서는 여성도 종속 상태에 있지 않고, 예속 상태에도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천국에서는 어떤 여성들이 다스리는 위치에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와의 저주는 통제하려는 욕망입니다. 그리고 그 욕망을 극복하지 못하면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 편의 강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세히 들어가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3장에서 “너의 갈망은 남편을 향할 것이다.”라고 번역되는 구절의 히브리어 원문은 실제로는 지배하려는 욕망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하와의 저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여성이 극복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제 평생 동안 정말로 이것을 극복했다고 생각한 여성은 다섯 명밖에 만나지 못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영성가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성이 하와의 저주를 극복할 수 있다면, 어떤 덕목이라도 정복할 수 있다고.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존재 가운데 하나가 된다고. 반대로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가장 비참한 존재 가운데 하나가 된다고. 흥미로운 일입니다. 결국 아주 훌륭해지거나, 아주 비참해지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와의 저주를 극복해야 합니다.” 성 바오로는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노예가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종살이를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비굴하게 굴라는 뜻도 아닙니다. 올바르게 질서 잡힌 방식 안에서 그렇게 하라는 뜻입니다. 이 부분도 제가 여러 차례 강의한 주제입니다. 올바르게 질서 잡힌 방식 안에서 말입니다. 그렇게 하여 하와의 저주를 극복하고 덕을 쌓아 가면, 남편보다 더 거룩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남편보다 더 높은 자리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영원토록 남편을 부리며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단기적인 보상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 남편을 통제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거룩해지십시오. 올바른 질서 안에서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다음 생에서는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한편 아담의 저주도 있습니다. 아담의 저주는 무책임함과 나약함입니다. 오늘날 남성들에게서 특히 많이 보이는 모습입니다. 요즘 남성들을 조금만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를 보면 말입니다. 네, 보인다고요. 참고로 저는 밀레니얼 세대를 자주 놀립니다. 너무 쉬운 표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좋은 밀레니얼 세대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악마들은 이런 약점을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 타락의 구조를 알고 있습니다. 죄가 우리를 어떻게 무질서하게 만드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그것을 노립니다. 악마들 자체가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그 죄로 인해 생겨나는 무질서는 악마들의 영역이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특정한 영역에서 그들에게 영향력을 넘겨주게 됩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우리는 그 영역에서 악마들의 영향력을 키워 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힘 자체가 커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지는 것입니다. 또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죄를 반복하는 빈도입니다. 죄를 더 자주 지을수록,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지을수록, 그만큼 악마들의 영향력은 세상 안에서 더 커집니다. 이것은 아주 분명한 일입니다. 제처럼 하루 종일 악마들과 씨름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저는 농담처럼 이렇게 말합니다. “내 직업은 지적인 존재들을 고문하는 것이다.” 그게 내 직업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어도 세상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행동 양식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거짓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을 가리켜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였고 살인자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살인자라는 부분은 지금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그가 왜 처음부터 살인자였는지 드러난 적이 있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되면 정말 경악하게 됩니다. 정말 악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거짓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습니다. 한번은 사탄을 사흘 동안 상대했습니다. 사흘 내내 철저히 몰아붙였는데도, 단 한 번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편이 자기에게 훨씬 유리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들은 그만큼 거짓에 묶여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정치나 공적 영역에서도 같은 패턴을 볼 수 있습니다. 거짓말이 너무 습관이 되어 버려서, 과연 저 사람들이 진실을 말할 수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왜 악마들은 거짓말을 할까요? 권력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조종하기 위해서입니다. 통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지난 몇 년 동안 특정한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들었을까요? 사람들을 속이고, 통제하고, 조종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코로나(COVID)가 실제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다만 그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전달된 내용들 가운데 상당 부분은 명백히 세뇌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도의 강의도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들어 보십시오.

중요한 점은, 우리가 지금 악마들의 활동 방식이 인간들 안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것을 보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점점 더 죄를 짓게 될수록, 악마들은 이 세상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악마들도 한 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한계를 정해 두신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충분하다.” 그리고 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이 끝없는 추락 속으로 내려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제는 바닥을 쳤겠지 하고 생각할 때마다, 또 다른 형태의 타락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묻게 됩니다. “도대체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해낸 거지?” 어떤 형태의 타락은 악마들조차도 보고 이렇게 말할 정도입니다. “그래, 그건 정말 심하다. 나조차도 역겹게 느껴진다.” 한번은 교회의 어떤 고위 성직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습니다. 그 악마가 말했습니다. “아, 나도 그 사람은 싫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왜?” 그러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조차 나에게는 역겹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이제 왜 우리가 그렇게 많은 통제권을 넘겨주고 있는지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가정해 봅시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하루에 소죄를 단 한 번만 짓는다고 합시다. 정말 단 한 번만.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하루에 70억 번 모욕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음번에 누군가 여러분을 모욕했다고 불평하려거든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것은 소죄만 계산한 것입니다. 실제로는 매일 수십억 건의 대죄가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심각한 모욕을 받고 계십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이르면, 계속해서 대죄를 짓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악마들이 들어오도록 허락하십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늘 이렇게 말합니다. 죄는 사탄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그 문턱을 얼마나 넘어올 수 있게 허락할 것인지는 하느님께서 결정하십니다. 어떤 종류의 대죄든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본 사례들 가운데는 교만 때문에 빙의된 사람도 있었고, 간음 때문에 빙의된 사람도 있었고, 음란물 때문에 빙의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어떤 형태의 대죄라도 빙의로 이어질 수 있는 열린 문이 됩니다. 사실 대죄의 본래 결과는 빙의입니다. 왜냐하면 대죄를 짓는 순간, 하느님의 권위 아래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특정한 법을 주셨는데, 대죄를 지음으로써 그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사탄의 영향 아래 두게 됩니다. 그것이 대죄가 영혼 안에서 만들어 내는 본질적인 결과입니다.

문은 여러분이 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턱을 넘어 악마가 들어올 수 있을지는 하느님께서 결정하십니다. 대부분의 경우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막으십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무질서, 육체적 무질서든, 자연적 무질서든, 도덕적 무질서든, 영적 무질서든, 그 모든 무질서는 악마들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행위가 죄인지 아닌지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핵심이 아닙니다. 그 행위에는 객관적인 결과가 따릅니다. 죄에는 두 종류의 결과가 있습니다. 하나는 주관적 결과입니다. 죄를 짓는 순간 그것은 의지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의지는 약해집니다. 그리고 여러 내적 손상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죄에는 객관적인 결과도 있습니다. 한번은 어떤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왜 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15살 정도 된 소녀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없는 문제구나.” 간음의 객관적 결과 가운데 하나는 임신입니다. 그 행위가 죄라고 생각하든 안 하든 상관없습니다. 임신할 수 있다고 믿든 안 믿든 상관없습니다. 객관적인 결과는 그대로 발생합니다. 대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죄의 객관적인 결과 가운데 하나는 악마가 인간 삶에 개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 행위가 악마의 개입을 허용하는 문을 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행했다면,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현상 가운데 하나는, 상황이 너무 심각해져서 악마들이 사람들을 손쉽게 휩쓸고 있다는 것입니다. 악마들이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상상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들은 감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제 인간 심리와 악마들이 그것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조금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오늘날 그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다섯 가지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다섯 감각을 통해 현실과 접촉합니다. 감각을 통해 들어온 정보는 뇌로 들어갑니다. 토미즘 철학에서는 이것을 공통감각이라고 부릅니다. 뇌의 뒤쪽 부분과 관련된 기능입니다. 이 기능은 다섯 감각에서 들어온 정보를 하나로 통합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상상력 안에 이미지의 형태로 표현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저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아도, 여전히 제 모습을 마음속에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기능이 작동한다는 증거입니다. 또 하나의 기능이 있습니다. 이를 판단력이라고 부릅니다. 이 기능은 기억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현재 떠오른 이미지를 바라본 다음, 과거의 경험과 비교합니다. 그 후 과거의 정보와 현재의 이미지를 결합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해 훨씬 더 풍부하고 깊은 이해를 얻게 됩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알츠하이머병이 바로 그 예입니다. 알츠하이머 환자는 어떤 사람을 봅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방 안으로 들어온다고 합시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이 판단 능력이 기억 속으로 들어가서 “이 사람은 당신의 아내다.”라는 정보를 끌어내고, 그는 즉시 아내를 알아봅니다. 그런데 알츠하이머에서는 이 기능이 기억에 접근하지 못합니다. 신경세포에 쌓인 플라크 때문에 그렇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원인에 대한 새로운 이론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어쨌든 기억의 정보가 현재의 이미지와 결합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 과정입니다. 이 판단 능력은 또 하나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순전히 물질적 차원에서 평가하는 능력입니다. 보통은 쾌락과 고통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평가는 대상에 대한 관점을 형성합니다.

왜 이것이 중요할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여러분이 어떤 이미지에 대해 가지는 관점이, 그 이미지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특정한 관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관점이 이미지 위에 놓이는 순간 감정이 움직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남자가 결혼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아내를 보며 말합니다. “정말 아름답다. 정말 멋진 사람이야.” “정말 친절해.” “정말 다정해.” “성격도 훌륭해.” “소파에 누워 있으면 맥주도 가져다준다.” 이런 식으로 계속 생각합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고, 그동안 수많은 기억이 쌓입니다. 그러면 이 판단 능력이 기억 속으로 들어가 정보를 끌어냅니다. 그리고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그 이미지 위에 부정적인 평가를 덧씌웁니다. 그러면 그는 슬픔이나 짜증 같은 감정을 느끼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휴, 저 잔소리꾼 또 왔네.” 하지만 실제로 변한 것은 아내가 아닙니다. 그녀는 그대로입니다. 변한 것은 그녀를 바라보는 여러분의 관점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관점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의 감정 생활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왜 이것이 중요할까요? 악마들은 여러분의 상상력 안에 있는 이미지들에 특정한 관점을 덧씌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여러분의 감정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어떤 관점을 주입하느냐에 따라 감정을 움직이고, 감정을 통해 여러분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마들은 사람들이 감정을 따라 살도록 만드는 데 엄청난 시간을 쏟습니다.

사람이 감정을 따라가기 시작하면, 악마들은 그 감정만 움직이면 됩니다. 특정한 관점을 덧씌우기만 하면 감정이 움직이고, 감정이 움직이면 사람도 움직이게 됩니다. 그렇게 사람을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 문화에 일어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감정을 따라 살도록 훈련받아 왔습니다. 습관이 되도록 길들여져 왔습니다. 뉴스를 5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려주어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만듭니다. 그 다음에는 두려움을 자극합니다. 그 다음에는 또 다른 감정을 자극합니다. 끊임없이 감정의 흐름을 쏟아 붓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따라가도록 길들여집니다. 심지어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감정을 따르지 않는다면 당신은 냉혈한이다.” 아닙니다. 나는 그냥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 문화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러한 습관화가 바로 그들이 사람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방식입니다. 악마들이 하는 일도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그런데 문화 전체가 점점 더 그런 방향으로 흘러갈수록, 악마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집니다. 왜냐하면 이성보다 감정을 앞세우는 것은 무질서한 상태이며, 악마들은 바로 그 무질서를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마들은 인간들이 그런 사고방식과 정신 상태를 갖도록 부추깁니다. 사람들이 감정을 따라 살도록 만들려는 것입니다. 완벽한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동성결혼입니다. 15년 전, 저는 약 40명의 가톨릭 심리학자들 앞에 서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토마스 철학에 기초한 심리학 책을 쓴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신 건강을 결정하는 기준은 다수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닙니다. 만약 그것이 기준이라면 죄도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정신 건강이란 인간의 정신이 하느님께서 설계하시고 자연법에 따라 만드신 방식대로 기능하는 것입니다. 우리 정신의 구조는 현실과 접촉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감정이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진통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강한 감정이 생기면 현실과의 접촉이 약해집니다. 관심이 외부 현실이 아니라 자기 안쪽으로 향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이것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누군가에게 화가 나거나, 매우 큰 상처를 받았을 때, 우리는 현실을 바라보기보다 자신의 내적 고통에 집중하게 됩니다. 결혼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자가 상처 주는 말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대부분은 자기 상처에 집중합니다. “내가 얼마나 아픈가.”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가.” 를 생각합니다. 대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내 배우자에게 영적으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일까?” “이 사람의 영혼을 위해 내가 해야 할 가장 좋은 일은 무엇일까?” 거의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정은 사람을 안쪽으로 수축시킵니다. 그리고 현실과의 접촉을 약화시킵니다. 사람들이 감정을 따라 살면 살수록 현실과 점점 멀어집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현실과 멀어질수록, 감정을 따라 살수록, 자연법과 그 질서에서 멀어질수록, 악마들은 사회 안에서 더 큰 영향력과 통제력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제가 성전환 문제를 예로 든 적이 있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이성이 무너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이성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때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LGBT 문제도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자연법을 인식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성 토마스는 이를 “흐려짐”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람이 자연법의 성향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죄 때문이거나, 잘못된 교육 때문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공교육 체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이것입니다. 잘못된 형성입니다. 예를 들어 교실에서 이렇게 말한다고 합시다. “샐리에게는 엄마가 두 명 있어.” “조니,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만약 조니가 올바른 교육을 충분히 받았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정신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말입니다. 성전환 수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수술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1980년대부터 그런 수술들이 시작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들조차 그것을 “시뮬레이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도 그 사람의 성별이 실제로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일정한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술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후회합니다. 수술 이후 높은 자살률, 높은 우울증 비율, 그리고 여러 문제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것은 사람들을 돕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 결과 그런 시도들은 중단되었습니다. 그런데 약 15~20년 전부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엄청난 돈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전환 수술 한 건당 대략 10만 달러에서 20만 달러 정도가 됩니다. 엄청난 돈이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현상을 움직이는 주요 원인입니다.

어쨌든 중요한 점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더 무질서해질수록, 악마들은 이런 현상들을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나머지 사람들은 자연법을 따르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곧 교회의 도덕적 가르침을 따르고, 옳은 일을 하며, 덕을 쌓는 일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반면, 죄가 많은 곳에 은총도 더욱 풍성하게 주어집니다. 세상이 더 죄악스러워질수록, 우리가 충실하기만 하다면 하느님께로부터 더 많은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은총에 더 충실할수록, 하느님께서는 더 많은 은총을 주십니다. 그 결과 우리는 더욱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항상 은총의 상태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어떤 대죄도 짓지 마십시오. 제가 계속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항상 은총의 상태 안에 머무르십시오.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를 보십시오. 성사를 받으십시오. 주일뿐 아니라 의무 축일에도 미사에 참여하십시오. 혼인 상태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도 바로잡으십시오. 이 모든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규칙적인 기도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아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저는 장엄 구마를 약 16~17년 동안 해 왔습니다. 그리고 초기 상담과 심사를 맡는 평신도 보조자가 한 명 있습니다. 저는 그에게 별명을 붙여 놓았습니다. “크로마뇽인(Cro-Magnon)”이라고 부릅니다. 왜 그런 별명을 붙였냐고요? 그 친구가 원래 범죄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할 때는 오히려 그런 사람이 딱 적합합니다. 왜냐하면 늘 저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실제로는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 그저 호기심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런 사람들을 가려내는 데 아주 뛰어납니다. 어쨌든 그는 거의 25년 동안 구마 사제들을 도와 왔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둘이 함께 앉았습니다. 그 배경에는 긴 이야기가 있지만, 결국 우리가 시작한 것은 일종의 “기도 처방”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특정한 기도를 규칙적으로 바치게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침 6시, 정오 12시, 저녁 6시에 삼종기도를 바치고, 또 아욱실리움 크리스티아노룸(Auxilium Christianorum)의 기도문들을 바치게 했습니다 (역주: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성모님 기도회). 그 기도문은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앱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도움(Auxilium Christianorum) 기도문들을 아침 6시, 정오 12시, 저녁 6시에 바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관찰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악마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약해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매일 실천함으로써 스스로 빙의에서 해방되기도 했습니다. 약 6개월 정도 걸렸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의 패턴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평신도 보조자와 저는 늘 패턴을 관찰합니다. 그는 원래 변호사이지만 그 전에 목장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둘 다 관찰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저 역시 악마들과 일을 시작한 첫날부터 패턴을 관찰했습니다. 심리학 책도 썼기 때문에, “이것은 악마에게서 나오는 심리적 패턴이다.” “이것은 인간 자체의 심리다.” “이것은 둘이 섞였을 때 나타나는 모습이다.” 이런 것들을 구분하려고 계속 관찰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가지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기도 생활을 꾸준히 하면 악마들이 물러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혹은 적어도 악마의 공격에 대한 일종의 면역이 생겼습니다. 그 과정에서 두 가지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는, 오늘날 구마 사제들이 점점 더 발견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모든 경우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구마 성공은 가톨릭 교리의 두 가지 핵심 진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육화(Incarnation), 다른 하나는 주님의 수난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성혈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두 교리와의 연결을 통해 해방, 구마의 성공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발견한 것은 이것입니다. 예전부터 구마 사제들은 악마의 외적 공격, 즉 압박을 끊는 방법은 기도 생활을 늘리는 것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기도를 꾸준히 늘려 가면 시간이 지나면서 공격이 점점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관찰한 결과, 악마적 집착에 시달리는 사람들, 악마적 압박을 받는 사람들, 심지어 빙의된 사람들까지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도 생활과 영성 생활 안에 있는 아주 기본적인 규율 부족이었습니다. 정말 기본적인 수준의 부족이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것은 단순히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묵주기도는 매일 바쳐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매일 반복되는 자기 부정을 요구하는 규율입니다. 예를 들어 아침 6시에 일어나 삼종기도를 바치고,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성모님(Auxilium Christianorum) 기도문을 바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는지 모릅니다. “신부님, 7시에 하면 안 됩니까?” 안 됩니다. 6시에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규율입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꾸준히 그것을 지켜 나가는 규율입니다. 바로 그것이 악마가 사람을 붙들고 있는 힘을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공격이 멈추기 시작합니다. 결국 문제는 영성 생활 안에 있는 아주 기본적인 규율 부족입니다. 그래서 보호를 원한다면, 일관된 기도 생활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꾸준한 고행도 실천해야 합니다. 매일 자기 부정을 요구하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합니다.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꾸준함입니다. 날마다 계속 실천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공동체 안에서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는 구마 사역을 하는 공동체인데, 매일 3시간에서 4시간 정도 기도합니다. 매일 3~4시간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대체로 보호받는 이유입니다. 또 한 가지는 장엄 구마를 하는 동안에는 일주일에 여섯 번, 하루 한 끼만 먹으며 단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꾸준히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물론 그것이 우리 자신의 힘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희생에 응답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압니다. 하지만 그런 꾸준한 규율이 사람을 보호해 줍니다. 또 하나는 앞서 말한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성모님(Auxilium Christianorum) 기도회입니다. 이 단체는 두 명의 구마 사제가 시작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40만 명 정도가 이 기도문을 바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도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매일 5~7분 정도면 됩니다. 그리고 회원이 되는 방법도 간단합니다. 그 기도문을 매일 바치면 됩니다. 회원이 되면 모든 회원이 서로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여러분은 자신과 가족의 영적 보호를 위해 전 세계 40만 명의 기도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 기도문만 바치다가 빙의에서 해방된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훌륭한 진단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한번은 어떤 가족이 딸 문제로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성모님 기도문을 바쳐 보십시오.” 그 가족이 기도를 시작한 순간부터 멈출 때까지, 그 딸은 이유 없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녀는 가족이 그 기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신호입니다. 악마들은 이런 기도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징후입니다. 또한 덕을 기르고, 모든 악습과 결함을 없애야 합니다. 영성 생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톨릭 신앙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자신의 신앙을 모른 채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만약 신앙을 모른다면 결국 휩쓸려 버릴 것입니다. 문화의 흐름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악마들에 의해서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하는 빙의된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리의 어떤 부분에 대해 이해의 결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가톨릭 교회의 기본 교리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도 발견하고 있습니다. 정말 기본적인 교리도 모릅니다. 지금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특히 사제들과 주교들이 점점 더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좋은 사제들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가만히 지켜보면 거의 매일 점수를 매길 수 있을 정도입니다. 팝콘을 들고 앉아서 “오늘은 어느 주교가 또 무슨 황당한 말을 했나?”하고 구경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을 모르면 영적으로 해로운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틈을 악마들이 이용합니다.

또 한 가지는, 악마들은 성소를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소를 공격한다는 것은 결국 혼인을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혼인을 어떻게 공격할까요? 아까 말한 “이미지에 대한 관점”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한 배우자가 다른 배우자를 바라보는 이미지 위에 특정한 관점을 덧씌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을 심리적으로 갈라놓기 시작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배우자와 심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이미 어느 정도는 당한 것입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 승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것과 싸워야 합니다. 배우자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기 시작해야 합니다. 여성들에게 저는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하와의 저주 가운데 하나는 이것입니다. 하와가 열매를 먹은 뒤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만약 아담이 이 열매를 먹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그런데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하느님께서 “왜 이런 일을 했느냐?” 라고 물으시자, 아담이 제일 먼저 한 일은 하와를 탓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와의 저주 가운데 하나는, 여성들이 남편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는 경향이라고 저는 말합니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요. 우리 모두 압니다. 당신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압니다. 당신은 남편이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다 압니다. 그것이 바로 여성들이 싸워야 할 부분입니다. 물론 정말 바보인 남편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점은 인정합니다. 가끔 아내가 “신부님,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으면, 저도 어느 정도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남편들도 아내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정말 하루 종일 말을 하는구나.” 뭐, 그런 식입니다. 이제 질문과 답변으로 넘어가기 전에 분위기를 조금 가볍게 해 봅시다. 뇌 연구를 했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여성은 말을 할 때 남성보다 무려 열 배나 많은 쾌감 물질이 뇌에서 분비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남편은 조용히 앉아 있는데, 아내는 “어쩌고저쩌고, 어쩌고저쩌고, 어쩌고저쩌고…” 계속 이야기합니다. (청중 웃음) 그런데 저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사실 그것은 하나의 완전성입니다. 단지 절제가 부족할 뿐입니다. 왜 그런지 설명해 보겠습니다. 1920년대쯤 독일에서 숲속을 뛰어다니는 한 소년이 발견되었습니다. 열 살 정도 되는 아이였습니다. 옷도 입지 않은 채 숲속을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너무 빨리 달려서 사슴을 따라갈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늑대들이 이 아이를 키웠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그 아이는 붙잡혔습니다. 그런데 언어를 전혀 몰랐습니다. 정말 하나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어를 가르치려 했습니다. 하지만 끝내 정관사와 부정관사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가르쳐도 안 됐습니다. 오랫동안 언어학자들은 “아마 교육 방법이 잘못되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또 다른 사례가 발견되었습니다.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였습니다. 부모가 이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아이를 방에 가둬 놓고 먹을 것만 주었습니다. 말도 하지 않았고, 밖에도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 역시 언어를 전혀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언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정관사와 부정관사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습니다. 사실 어떤 아시아 언어 사용자들에게서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정관사와 부정관사가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배울 때 “a”, “an”, “the”를 익히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단수, 복수 개념을 적용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뇌 연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밝혀진 것 가운데 하나가 이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느껴 보셨을 것입니다. 특히 외국에 가서 새로운 언어를 배워 본 사람이라면 알 것입니다. 대체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훨씬 더 분명하고 또렷하게 말합니다. 연구자들이 발견한 것은, 아이의 생애 첫 5년 동안 신경세포들이 특정한 연결 경로를 형성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특히 어머니가 아이에게 규칙적으로 말을 걸어 주지 않으면, 그 신경 경로들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뇌 손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여성에게 주신 말하려는 성향은 하나의 완전성입니다. 다만 그것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지 남편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청중 웃음) 왜 이 이야기가 중요할까요? 악마들은 우리의 장점과 완전성마저도 우리를 공격하는 데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혼인을 공격합니다. 성소를 공격합니다. 온갖 것들을 공격합니다. 그러니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편집증적으로 살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악마 하나와 씨름을 끝내고 나면, 이제 시가 한 대 피우고 스카치 한 잔 마실 생각을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한번은 어떤 악마가 있었는데, 그 녀석이 하는 일을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그 악마는 밤마다 저에게 아주 생생한 꿈을 꾸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멈추게 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데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 꿈들 속에서 그 악마는 구마 예식 때 자신이 겪는 경험을 저에게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그 꿈 가운데 하나에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악마는 몹시 화가 나 있었습니다. 구마 예식 때마다 제가 나타나서 자비 없이 몰아붙이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냥 가 버리는 것이 너무 화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것 때문에 열이 받아 있었습니다.

어쨌든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진정한 가톨릭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미사에 참석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제공하는 준성사들도 사용하는 것입니다. 성 베네딕도 메달(Benedict Medal), 스카풀라(Scapular), 성수 같은 것들입니다. 전통 안에서 전해 내려온 온전한 가톨릭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렇게 산다면 심각한 악마적 영향 아래 놓일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유혹은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짊어져야 할 인간의 몫입니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그것을 겪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해 유혹을 겪으셨습니다. 그분이 약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가톨릭 삶을 살고 있다면, 악마적 영향 아래 놓일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또한 특별한 형태의 강한 유혹을 겪을 가능성도 훨씬 줄어듭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아까 제가 아주 기본적인 규율이 악마를 멀리하게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관찰하면서 발견한 패턴이 하나 있습니다. 자녀를 잃지 않았고, 또 자녀들이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 가톨릭 신앙 안에 머무르는 가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 가정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기본적인 규율입니다. 그 가정에는 꾸준한 자기 부정이 있었습니다. 가족 전체가 규칙적으로 실천하는 자기 부정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게 하는 것, 자기 부정을 실천하게 하는 것, 어떤 규칙을 지키게 하는 것, 정기적으로 단식하게 하는 것, 심지어 자녀들에게도 그런 실천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밖으로 나간 뒤를 살펴보면, 신앙을 잃어버리는 비율이 거의 없었습니다. 실질적으로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적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경우에도 신앙 안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발견한 것은 그 밑바탕에 반드시 이 기본적인 규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이런 규율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녀들을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권위 구조 안에 머무르십시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머물고, 교회의 권위 아래에 머물러야 합니다. 권위의 가장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보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족 안에서도 전통적인 가톨릭의 가족 구조와 권위 질서를 따라야 합니다. 남편은 가정의 가장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이것을 말한다고 해서 여성을 반대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남편보다 훨씬 더 거룩한 여성들도 많습니다. 문제는 권력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악마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여성운동의 많은 부분을 보면, 하와(Eve)의 저주가 극단적으로 확대된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전통적인 가톨릭의 이해를 따른다면,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 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선익을 위해 권위를 행사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아내를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가 그 질서 안에서 순종한다면, 그 권위 구조 안에 머무르게 되고, 그 결과 보호를 받게 됩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권위 아래에서 벗어나면 다치게 됩니다. 마당에서 놀던 아이에게 “길로 뛰어가지 마라.”라고 말했는데, 아이가 길로 뛰어가다가 차에 치이는 경우와 같습니다. 권위 아래 머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가족 구조를 따르십시오. 올바른 방식으로, 사랑 안에서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보호막이 되어 줄 것입니다.

자, 이제 여기서 멈추고 질문과 답변 시간을 갖겠습니다. 약 30분 정도 하겠습니다(박수). 30분 정도 질문을 받고 끝내겠습니다. 그 이상 하면 밤새도록 여기 있게 될 테니까요.

질문: 구마 사제가 악마를 “두들겨 팬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초기 교회에는 실제로 악마를 사람에게서 쫓아내기 위해 뺨을 때리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한번은 제가 그 이야기를 어떤 빙의된 여성에게 했더니,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필요하다면 뭐든지 하세요.” 그 말에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악마를 두들겨 팬다”는 것은 주로 교회의 기도문을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구마 예식서에 있는 장엄 구마 기도문을 바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여러 기도들을 바치기도 합니다. 악마에게 특정한 성물에 경의를 표하게 하기도 하고,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신체 부위에 성유물(Relics)이나 성물을 접촉시키기도 합니다. 기도를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떤 사실을 인정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결국 악마의 의지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악마에게 고통을 줍니다. 그리고 고통이 커질수록 악마는 약해집니다. 그러면 우리가 알아야 할 정보를 말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이것은 주로 기도를 사용하는 일입니다. 또한 악마에게 기도를 하게 하거나, 특정한 기도에 직면하게 하거나, 유물이나 성물을 사용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악마를 두들겨 팬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악마들에게는 매우 가혹한 경험입니다. 구마 예식 중 악마가 겪는 고통은, 구마 사제인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저도 한동안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이 녀석은 겉으로 드러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겪고 있구나. 심지어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큰 고통을 겪고 있구나.”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몸이 가진 한계 때문입니다. 만약 악마가 자신이 겪는 고통을 인간의 몸을 통해 전부 표현하려 한다면, 그 사람은 그대로 죽어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그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들은 큰 고통 속에 있습니다.

질문: 우리가 죽은 뒤에도 지성과 의지는 지금 살아 있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합니까?

아닙니다. 어느 정도는 다르게 작동합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지금 우리의 지성은 상상력 안에 어떤 이미지가 있어야만 그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죽은 뒤에는 더 이상 상상력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국에서의 우리의 인식은 천사들의 인식 방식에 더 가까워집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합니다. 여러 가지를 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압니다. 다만 그 인식 방식이 천사들의 인식 방식과 더 비슷해지는 것입니다.

질문: 악마들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까?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느님의 계시입니다. 하느님께서 “저 사람이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라고 알려 주시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거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제가 앞서 말한 심리적 패턴입니다. 그들은 평생 동안 우리를 관찰합니다. 그리고 배우자들이 서로에게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합니다. 배우자가 가끔 이렇게 말하죠. “당신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왜 그럴까요? 상대방의 반응과 행동 패턴을 오래 봐 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항상 맞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악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행동 패턴을 관찰합니다. 또 우리의 몸도 읽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합니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하면 눈 주위의 온도가 올라갑니다. 그것도 하나의 신호입니다.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다른 생리적 반응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악마들은 우리의 사고 패턴과 대화 내용, 그리고 생리적 반응들을 관찰하면서 어느 정도 연결 지어 추측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직접 말해 주는 것입니다. 네 번째 방법도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여러분 마음속에 집어넣었는데, 여러분이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들은 여러분이 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질문: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과 오래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에도 올바른 권위 질서가 유지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 노력이 필요합니다. 알코올 중독은 당연히 남편이 올바르게 가정을 이끄는 능력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아내는 상황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만약 남편이 너무 심한 알코올 중독 상태라서 정상적으로 기능조차 하지 못한다면, 아내가 일정 부분 책임을 떠맡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게 되면, 그 책임들을 다시 남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때로는 쉽지 않습니다. 한편 기능은 하고 있는 알코올 중독자의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남편이 올바른 방식으로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그 권위를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질문: 신앙심 있는 부모는 어떻게 자녀들이 영적으로 깨어 있도록 가르치면서도, 모든 것 뒤에 악마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습니까?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음,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에게 성 미카엘 기도(St. Michael Prayer)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혹을 받을 때는, “그만해.”라고 악마에게 말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나이와 이해 수준에 맞추어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이가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보고 설명해야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18세가 될 무렵에는 영적 전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악마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공격한다는 것, 생각을 집어넣는다는 것,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이 모두 자기 생각은 아니라는 것, 감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이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기도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경계선이 있습니다. 그런 기도가 기도 생활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도의 중심은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을 청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정상적인 영성 생활이 중심이어야 합니다. 악마와 관련된 부분은 필요할 때만 다루면 됩니다. 성 베드로는 “깨어 있고 경계하라.”고 말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악마가 나타나면 한 대 치고, 그리고 다시 자기 일을 하라는 뜻입니다. 그들에게 집착하지 마십시오. 과도하게 집중하지 마십시오. 삶의 중심에 두지 마십시오.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상대해야 할 때는 상대하십시오. 그 외에는 무시하십시오.

질문: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는 얼마나 정확합니까?

상당히 정확합니다. 다만 조금 얕은 면은 있습니다. 그래도 꽤 정확합니다.

질문: 악마들은 누구를 빙의시킬지 어떻게 선택합니까?

사실 그들은 선택권이 없습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입니다. 빙의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경우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사람을 빙의시켜도 된다.”라고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악마들의 의지는 악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일종의 강박 상태와 비슷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길을 따라갈 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면 그대로 실행합니다. 두 번째 경우는 더 특이합니다. 하느님께서 “너는 이 사람을 빙의시켜야 한다.”라고 명령하시는 경우입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징집(conscription) 이라고 부릅니다. 하느님께서 빙의를 허락하시거나 명령하시는 이유는, 그 사람이나 가족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어떤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제가 맡았던 사례 가운데 친자매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빙의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악마 몇 명이 두 자매 모두에게 있었습니다. 한쪽에만 추가로 붙어 있는 악마 하나가 있었지만, 나머지는 동일했습니다. 조사를 해 보니, 하느님께서 사실상 그 빙의를 허락하셨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왜냐하면 가족 대대로 이어져 오던 특정한 세대적 악영향, 특정한 영적 문제를 가문에서 뿌리 뽑으시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악마들은 그 문제에 대해 실제로 선택권이 없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현재 사례들 가운데 하나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그 사례에 있던 악마들 가운데 하나는 아주 낮은 계급의 악마였습니다. 원래 이름은 유스투스(Eustus) 였습니다. 뜻은 “의로운 자”입니다. 그는 성모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단 한 번도 누구를 빙의시킨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그에게 “너는 이 여자를 빙의시켜야 한다.” 고 명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여성이 그 악마를 몰아내기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매우 높은 수준의 성덕에 도달하게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천국에서 그 악마가 차지했어야 할 자리와 같은 수준에 도달하게 될 예정이었습니다. 성모님과의 관계까지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천국에서의 위치는 같게 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악마들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악마들 스스로도 그것을 인정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인정합니다. 다만 원하지 않는 노예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합니다.

질문: 하느님께서는 왜 악마들이 그런 일을 하도록 허락하십니까?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성화를 위해서입니다.

질문: 구마 예식 중에 사탄에게 직접 공격받은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적어도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미에서는 아닙니다. 물론 “공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특별하고 비정상적인 방식의 공격을 말한다면,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몇 번은 있었습니다. 구마 예식 중에 악마가 제 내면을 공격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저는 빙의된 사람이 평소에 겪고 있는 심리적 공격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악마들은 경험 많은 구마 사제를 공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구마 사제라는 것은 마치 권투 링에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진짜 권투 선수에게 물어보면 이런 말을 합니다. “상대 선수 영상을 아무리 많이 봐도 소용없다.” “실제로 링 위에 올라가 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이 어떤 선수인지 모른다.” 링 안에 들어가야 상대의 기술과 전략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악마가 경험 많은 구마 사제를 공격하면, 구마 사제는 비교적 빨리 그것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 걸음 물러나 “방금 저 공격이 어떤 방식이었지?” 하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그 공격 방식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면 다음 구마 예식 때 그 악마를 더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악마에게 훨씬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악마들은 그런 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끔 공격받는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닙니다. 또 하나의 원칙이 있습니다. 공격받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싫습니다. 하지만 공격을 받게 되면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적어도 저 녀석을 지켜볼 수는 있겠군.” 악마들은 공격할 때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 거기 있었구나.” “내가 보고 있다.” “계속 지켜보고 있다.”(청중 웃음) 오히려 걱정해야 할 때는 공격이 전혀 없을 때입니다. 그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측면에서 기습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모님께 자주 이렇게 청합니다. “제 측면을 지켜 주십시오.” 저는 함정을 전부 볼 수 없습니다. 저는 한계가 있는 인간입니다. 한번은 어떤 악마가 갑자기 튀어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약 30초 정도였는데, 마치 유도 경기 같았습니다. 그 녀석은 계속 저를 치려고 했고, 저는 그것을 막고 있었습니다. 몇 번 맞은 적은 있습니다. 한 번은 정통으로 얼굴을 얻어맞았습니다. (청중 웃음)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갑자기 휙 하고 날아오더니, 정확하게 제 눈을 가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좋아, 알겠다.” 하지만 우리는 구마 예식이 시작될 때 악마들을 제압하는 일련의 기도들을 바칩니다. 그리고 저는 나쁜 행동에는 대가가 따라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악마가 그런 짓을 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을 정도로 후회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목표입니다.

질문: 심한 불안이나 공황발작은 악마나 영적인 원인과 관련이 있습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순수하게 심리적 원인으로도 그런 상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악마가 그런 상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질문: 그렇다면 심리적 원인인지 영적 원인인지 어떻게 구별합니까?

그것은 심리적 패턴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정신질환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기질적 원인이 있는 경우는 제외합니다. 예를 들어 뇌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리면, 모든 정신질환이 화학적 불균형 때문인 것은 아닙니다. 《화학적 신화》(The Chemical Myth)라는 책이 있습니다. 매우 좋은 책입니다. 그 책은 제약회사들이 1980년대에 이미 많은 향정신성 약물들이 기대했던 방식으로는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 시장에는 매년 수십억 달러가 걸려 있습니다. 이 주제는 별도의 강의가 필요할 정도라서 지금은 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심리적 원인으로 생기는 정신질환도 있습니다. 그런 정신질환은 기본적으로 반복적 사고 습관에서 비롯됩니다. 어떤 사고 패턴이 오랫동안 반복되어 굳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매우 일관된 양상을 보입니다. 그리고 외부 자극에 반응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남자가 와서 이렇게 말한다고 합시다. “제 아내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눈빛만 조금 이상하게 줘도 갑자기 폭발합니다.” 물론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그 반응이 특정한 외부 자극에 의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패턴이 일정합니다. 외부 원인에 반응합니다. 반면 악마적 집착은 그런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물론 악마도 기회주의자이기 때문에 외부 자극을 이용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악마적 집착의 경우에는 갑자기 시작됩니다. 그리고 또 갑자기 사라집니다. 왜 시작됐는지 알 수 있는 외적 원인이 없고, 왜 멈췄는지 설명할 만한 외적 원인도 없습니다. 사제들은 고해성사에서 이런 패턴을 자주 봅니다. 제가 설명하면 많은 사제들이 “맞다. 그런 경우를 본 적 있다.”고 할 것입니다. 대개 20대의 젊은 남성입니다. 정결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넘어집니다. 그래서 고해성사를 봅니다. 그러면 마치 무거운 짐이 벗겨진 것처럼 느낍니다. 유혹이 사라집니다. 하루 이틀 동안은 평온합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면 유혹이 다시 강하게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결국 또 넘어집니다. 다시 고해성사를 봅니다. 그러면 또 유혹이 걷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식으로 반복되는 패턴은 악마적 집착(diabolic obsession)의 전형적인 양상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끊어 버리는 방법들도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자주 보는 대표적인 패턴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저는 이 일을 17년 동안 해 왔고, 그 전에 이미 심리학 책도 썼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악마적 패턴들을 관찰해 왔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패턴들을 상당 부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 패턴들은 사제용 판본에는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평신도용 판본에는 넣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CSI 효과(CSI effect)”라고 부르는 문제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빙의된 사람들의 행동 양상이나 우리가 관찰하는 패턴들을 읽고, 그것을 흉내 내기 시작하면 분별이 훨씬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제외했습니다. 또 하나의 구별 방법은 이것입니다. 만약 원인이 영적인 것이라면, 기도에 반응합니다. 자신이 직접 기도해도 반응합니다. 결박 기도(binding prayer)를 바치거나, 아까 말했던 것처럼 아침 6시, 정오 12시, 저녁 6시의 규칙적인 기도를 시작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 현상이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원인일 수 있다는 하나의 신호가 됩니다.

질문: 모든 죄에 악마가 개입합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그냥 나빠서 죄를 짓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점입니다. 가끔 구마 사제들조차, 특히 초보 구마 사제들은 이런 실수를 합니다. “그 여자가 악마적 현현을 보였다.” “무슨 뜻입니까?” “나쁘게 행동했다.” 하지만 나쁘게 행동하는 것이 항상 악마의 현현은 아닙니다. 우리는 악마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나쁘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질문: 죄를 선택할 때 자유의지는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합니까?

죄는 전적으로 의지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죄의 정도는 자유의 정도에 비례합니다. 자유롭게 선택했을수록 책임도 커집니다. 한번은 이 성당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80세쯤 된 노인이 뒤쪽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청중 웃음) 그런데 방금 휴대전화를 꺼 둔 저 훌륭한 청년과는 달리, 그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성당 뒤에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지금은 통화 못 해.” “나 미사 중이야.” (청중 웃음)

질문: 아홉 단계의 기도란 무엇입니까?

그것만으로도 별도의 강의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저는 “아홉 단계의 기도”라는 강의를 온라인에 올려 두었습니다.

질문: 수호천사는 빙의를 막아 주거나 구마 중에 도움을 줍니까?

네. 그렇습니다. 수호천사가 여러분을 얼마나 보호하고 삶에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는지는 두 가지에 달려 있습니다. 첫째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무엇을 명령하시고 의도하시는가입니다. 많은 경우 천사들은 여러분이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 겪게 될 결과들로부터 여러분을 보호합니다. 하느님께서 “이 사람을 보호하여라.” 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경우에는 다릅니다. 하느님께서 악마들에게 “이 사람을 시험하도록 허락한다.”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천사들은 한 걸음 물러섭니다. 선한 천사들은 모두 악마에게 떠나라고 명령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강제력(coercive power) 이라고 부릅니다. 성모님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천국의 모든 성인들은 악마들에 대한 완전한 강제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본성상 그런 권능을 가지십니다. 반면 천국의 성인들과 천사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도구로 사용하심으로써 그 권능을 행사합니다. 성모님은 조금 특별합니다. 성모님 역시 악마들에 대한 완전한 강제력을 가진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다른 천사들이나 성인들보다 훨씬 더 자주 그 권능을 행사하도록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실제로 구마 예식에서도 도움을 줍니다. 어떤 경우에는 빙의된 사람을 보호하기도 합니다. 악마가 현현하는 동안에도 천사들이 개입하여 특정한 피해를 막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리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정신 기능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빙의된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제 사제직의 수호천사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제가 서품을 받으면 보통 하나의 천사를 더 받습니다. 대개 대천사들의 계층에 속한 천사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실제 환시 체험자들, 그러니까 단순히 “아, 나 천사 보여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수호천사를 실제로 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제가 아는 열 살짜리 소년이 있는데, 그 아이는 천사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아이의 묘사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합니다. 성인들이 남긴 묘사들과도 일치합니다. 어쨌든, 사람들이 말하기로는 개인의 수호천사는 그 사람과 닮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 천사의 고유한 임무가 바로 그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오직 여러분을 위해 한 천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천사의 본성 자체가 여러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가 자신의 임무를 받아들였을 때, 그 첫 번째 선택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을 보호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봉사하는 방식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수호천사가 자기 보호 대상과 닮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반면, 사제직의 수호천사를 본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말합니다. “엄청나게 크다.” “거대하다.” 한번은 빙의된 여성이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저는 늘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구마 예식 사이에는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면 전화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그 여성이 전화해서 말했습니다. “제가 바닥에 눌려 있어요.” 가끔 악마들이 그녀를 바닥에 꼼짝 못 하게 눌러 놓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저를 돕는 보조자에게 전화를 넘겼습니다. 보조자가 말했습니다. “신부님, 저희가 움직여 보려고 해도 전혀 안 됩니다.” “완전히 눌려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저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려고 탑승권을 내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비행시간이 한 시간 정도니까 도착하면 전화하겠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이 듣지 않는 곳으로 가서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직도 눌려 있습니까?” “네.” 그래서 간단한 결박 기도를 바쳤습니다. 악마를 결박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가 말했습니다. “끊어야겠어요.” 그리고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습니다. 5분 뒤에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이제 놔줬어요.” 제가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러자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가 물러났어요.” 사실 저는 그때까지 다섯 시간 동안 화장실도 못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 (청중 웃음) 그런데 제가 비행기를 타기 전에 했던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말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전화를 끊은 뒤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제 사제직의 수호천사여, 가서 그녀를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 수호천사가 그녀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녀가 해방될 때까지 계속 곁에 있으면서 손을 잡아 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식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거대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신부님은 왜 그렇게 큰 악마들을 상대하십니까?”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워낙 작은 사람이니까 보호도 더 많이 필요한 겁니다.” (청중 웃음)

질문: 약혼한 커플들에게 해 주실 가장 좋은 조언은 무엇입니까?

하지 마십시오. 결혼하지 마십시오. (청중 웃음) 농담입니다. 가장 좋은 조언은, 가능하다면 제가 한 「구애의 네 단계」(The Four Stages of Courtship) 강의를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래 가톨릭 국가들에서 사회가 무너지기 전까지 실제로 사용되던 구애의 구조입니다. 연애와 약혼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그 과정을 제대로 거쳐 결혼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결혼하기 전에 이미 자기희생의 덕과 서로를 위한 희생을 배우게 되었기 때문에, 결혼생활이 훨씬 더 순조롭고 안정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함께 기도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결함을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자기 자신에게 철저히 정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연애하거나 약혼하는 시기가 그 사람이 평생 가장 좋은 모습을 보이는 시기라고 말입니다. (청중 웃음) 그러니 그것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질문: 동성애의 악마가 있다면, 왜 그들은 그런 행위를 역겹게 여기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악마들도 자연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자연법 역시 질서 있는 것을 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것을 거부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하지만 자연 자체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행위를 볼 때, 그들도 자연법이 느끼는 혐오감을 느낍니다. 우리와 비슷한 방식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런 행위를 부추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것을 부추깁니다. 그들의 태도는 대략 이런 식입니다. “좋아, 저 사람이 저 행동을 하도록 만들자.” 그것에 가깝습니다.

질문: 결박 기도(binding prayer)를 미신적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결박 기도도 결국 다른 기도와 같습니다. 기도의 효력은 그 사람이 가진 공로와 권위에 관련됩니다. 예를 들어 부모는 자기 가정 안에서 악마를 대적하는 결박 기도를 바칠 권한이 있습니다.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자신이 의미하는 바를 실제로 이루어 냅니다. 따라서 실제로 악마적 영향이 있는 경우라면, 결박 기도를 바쳤을 때 어떤 형태로든 반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무조건 결박 기도를 바쳐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정직하게 상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정말 영적인 문제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단순히 아이가 버릇없이 행동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가끔 사람들이 아이를 데리고 저를 찾아옵니다. 신기하게도 거의 항상 열 살 정도의 남자아이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말합니다. “신부님, 이 아이가 빙의된 것 같아요. 통제가 안 됩니다.” 그러면 저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묻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훈육한 게 언제입니까?” 그러면 어머니가 말합니다. “신부님, 저는 그런 체벌을 믿지 않아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청중 웃음) 어쨌든,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죠? 아, 맞다. 결박 기도 말이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결박 기도도 다른 모든 기도와 마찬가지로 사용해야 합니다. 적절한 상황에서, 분별력을 가지고, 균형 있게 사용해야 합니다. 무슨 일만 생기면 자동으로 “악마다.”라고 생각하며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만약 기도를 한 뒤 변화가 보인다면 계속 유지하십시오. 하지만 변화가 없다면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넘어가십시오. 그리고 계속 기도하면 됩니다. 그래서 “미신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내가 이 기도를 바쳤으니 반드시 이런 결과가 나와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기계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질문: 수호천사는 자신이 보호하던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을 맡게 됩니까?

아닙니다. 수호천사가 존재하는 이유 자체가 바로 여러분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임무가 끝나면 하느님을 뵙게 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생각해 보면 꽤 멋진 일입니다. 저는 한 번 제 수호천사에게 사과한 적도 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하필 저 같은 사람을 맡게 되셔서요.”(청중 웃음)

질문: 구마 사제가 되려면 어떤 자격이 필요합니까?

교회는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우선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이란 단순한 연령이 아니라, 사제로서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는 뜻입니다. 어느 정도 경륜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충분히 단단하게 자리 잡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속한 사제 공동체는 구마 사역만을 수행합니다. 그런데 사제품을 받은 지 최소 5년이 지나지 않으면 지원조차 할 수 없습니다. 보통은 10년 이상을 선호합니다. 현재 우리 공동체에 있는 사제들은 모두 최소 10년 이상 사목한 사람들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내면이 단단히 자리 잡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내면에서 벌어지는 싸움이 많습니다. 제가 전에 말했듯이 악마들은 구마 사제를 공격합니다. 특히 처음 2년 정도는 정말 힘듭니다. 내적으로 계속 공격받습니다. 매우 혹독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익숙해집니다. 공격이 무엇인지 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악마들을 더 효과적으로 상대하게 됩니다. 그러면 악마들도 점점 여러분을 피하려고 합니다. 몇 번 크게 당하고 나면, 더 이상 상대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들을 좋아하지 않겠지만, 그들은 여러분을 더 싫어합니다. 사실 그들은 여러분을 증오합니다. 오늘 점심 식사 자리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번은 어떤 악마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정말 싫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아니야. 네가 미워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분이지.” 그러면서 하느님을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그 악마가 말했습니다. “맞아. 나는 그분을 미워한다. 하지만 너도 미워한다.” 그래서 저는 “그래, 알겠다.”라고 했습니다. 어쨌든 구마 사제는 일정한 연륜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일정 수준의 신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말은 무엇보다 주교의 권위 아래에 머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교의 직무 자체를 존중해야 합니다. 주교가 완벽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교의 직무에 대한 존경심은 있어야 합니다. 또 일정한 영성 생활이 자리 잡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식도 필요합니다. 사실 이것이 오늘날 가장 큰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종종 묻습니다. “이 나라에 구마 사제가 몇 명이나 있습니까?” 대략 130명 정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약 20명 정도뿐입니다. 그 이유의 상당 부분은 제대로 된 신학적 배경이 없거나,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아예 잘못된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질문: 구마 사제가 되려면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합니까?

저는 예전에 레오 13세 연구소(Leo XIII Institute) 에서 가르쳤습니다. 그곳은 미국 주교들의 요청으로 시작된 기관입니다. 저도 여러 해 동안 그곳에서 강의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만두었습니다. 그 이유는 교육 과정이 2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주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2년이나 기다릴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가 별도의 교육 과정을 만들었습니다. 1주일 집중 과정입니다. 하루 8시간씩, 구마 사역에 필요한 모든 내용을 압축해서 가르칩니다. 악마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을 집중적으로 교육합니다. 그 다음에는 실제 구마 예식에 참관하도록 합니다. 직접 앉아서 보게 합니다. 구마 예식이 어떤 흐름으로 진행되는지, 악마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왜냐하면 악마들도 일정한 행동 범위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 범위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질문: 구마가 필요한 사람과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을 어떻게 구별합니까?

앞서 말했듯이, 매우 뚜렷한 패턴의 차이가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도 저는 심리학자들을 대상으로 그 차이점에 대해 강의했습니다. 앞서 악마적 집착(diabolic obsession)의 예를 들어 설명했듯이, 빙의의 경우에도 비슷한 패턴들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심리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추가로 나타납니다. 스위스에는 한 주교가 있습니다. 그는 구마 사제를 없애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장합니다. “이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부 심리적 문제다.” 사람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그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구마 예식 중에 어떤 사람이 공중에 떠서 천장에 붙어 있다면, 그건 심리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청중 웃음) 사람의 모습이 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성이 갑자기 남성의 형상처럼 보인다든지, 동물 같은 모습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도 심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언어를 말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처음 맡았던 빙의 사례를 예로 들겠습니다. 그 사람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페니키아어(Phoenician) 의 한 형태를 말했습니다. 그 언어는 무려 3,500년 전에 사라진 언어입니다. 정상적인 일이 아닙니다. 심리학적 문제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중요한 구별 기준이 됩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 하나만 받겠습니다. 선택되지 않은 분들은 “왜 내 질문은 안 뽑혔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청중 웃음)

질문: 악마들은 어떻게 정부를 통제합니까?

이 질문은 예전 온라인 강의에서도 어느 정도 답한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아주 긴 설명이 필요한 주제입니다. 그래서 간단히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또 한 가지는 규칙적인 신심 생활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규칙적인 기도 생활, 그리고 가정 안에서의 규율을 세워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가족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한다.” 라고 정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부담이 있어야 합니다. 조금은 어렵고, 조금은 희생이 필요한 것이어야 합니다.

질문: 선한 천사들은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영원히 단죄되었는데,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그렇게 오래 참으십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청중 웃음) 정말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하느님의 자비는 무조건적인 것이 아닙니다. 혹시 그런 말을 들었다면,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두 가지 이유로 주어집니다. 첫 번째는 통회(contrition) 때문입니다. 사람이 진심으로 뉘우칠 때입니다. 왜냐하면 통회할 때는 자신의 죄를 바라보며 지적으로 교정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선택할 때는 그 죄를 어떤 선으로 여기고 선택합니다.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통회할 때는 “아니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즉, 지성 안에서 교정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깁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십니다. 성경에서도 하느님께서는 통회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이유는,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청중 웃음) 정말 몰랐던 경우입니다. 더 잘 알지 못했던 경우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도 자비를 베푸십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조심해야 합니다. 결국 하느님의 자비를 받는 사람은 통회하는 사람과, 정말 몰랐던 사람, 이 두 부류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느님께서 “이 사람은 정말 몰랐구나.” 하시며 관대하게 대해 주십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심리적 문제 때문에 판단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있습니다. 혹은 그 행동이 잘못이라는 것을 한 번도 배우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숙에 관한 문제를 보십시오. 대부분의 여성들은 정숙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연법의 어떤 영역들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죄를 지으면서 “몰랐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라면 다릅니다. 심각한 정신적 문제나 잘못된 형성 때문에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사정을 고려하십니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이성을 사용할 수 있다면, 성 토마스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가 드는 예는 음행입니다. 음행은 대죄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왜 이것이 사실인지 아십니까? 동거하는 커플들에게 가서 이야기해 보십시오. 오늘날 약 98%의 커플이 결혼 전에 동거합니다. 가톨릭 신자들도 97% 정도입니다.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해 보십시오. “당신들의 관계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거의 모두가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이미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것입니다. 인간의 통회는,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와도 “나는 속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반면 악마들은 속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완벽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단 한 번의 선택이 그들을 영원히 고정시켰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앞서 말했듯이, 완전히 형성되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는 그렇게 똑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 안에 자신을 굳히든, 악 안에 자신을 굳히든,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강복을 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강복하시고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아멘. 하느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