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마 성모님은 평화를 원하셨다. 그리고 평화로 가는 길을 보여 주셨다!”

   1917년, 거룩하신 동정녀께서 어린 목동들에게 발현하셨을 때,
   그분은 러시아의 회심을 위해 기도하기를 바라셨으나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그 말씀을 간과하였다.
   그러나 환시는 20세기의 세상에 보내는 천상의 지침이며 경고임이 증명되었다.

   알려진 바대로, 발현 목격자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루치아 수녀는 2005년 2월 13일 5시 25분에 포르투칼 코임브라의 가르멜 수도원에서 98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많은 사람들은 루치아 수녀가 가르멜회 수녀로서 지난 세월 동안 수천 개의 묵주를 만들었다는 것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좀 다르다. 루치아 수녀의 전구를 바라면서 전 세계에서 보내오는 수없이 많은 청원의 편지에 그녀는 70년대에 이미 전동 타자기를 이용해서 답했다. 그리고 1984년에는 포르투칼에서 최초로 퍼스널 컴퓨터를 가진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94세에도 그녀는 여전히 현대 기술을 사용했다.

   하느님께서 루치아 데 예수스 도스 산토스를 동정 마리아의 발현을 목격하고 그분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으로 뽑으셨을 때, 그녀는 10살이었다. 그때 그녀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녀를 친절하게 대했고 그녀에게 자문을 구했다. 루치아는 겸손했고, 파티마 작은 마을 알유스트렐 농가의 7남매 중 막내로 자라면서 갖게 된 유머 감각을 평생 지니고 있었다.
   동정녀의 발현은 코바 다 이리아에서 1917년 5월 13일에 시작 되었다. 파티마 메세지의 핵심은 회심, 기도, 보속이었다. 발현은 10월 13일까지 여러 달 동안 계속되었다. 그날은 기적이 있으리라고 예언되었기 때문에 약 7만명의 구경꾼이 모였다.  
   신문 기자인 아벨리오 데 알마이다는 그 당시 교회에 적대적인 신문 ‘오 세쿨로’ 지에 냉소적이긴 하지만 매우 정확하게 태양의 기적을 기고했다. “수많은 군중들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떠있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태양은 마치 뿌연 은쟁반같이 보였고, 맨눈으로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태양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태양이 회전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이 순간 커다란 외침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기적이다! 기적이다!’ 라고 소리 지르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놀라서 하늘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앞에서 태양은 요동치며 갑자기 믿을 수 없게도 자연 법칙을 거슬러 움직였다. 사람들의 표현에 의하면, 태양이 ‘춤을 췄다… .’ 사람들은 서로 무엇을 봤는지 묻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양이 요동치며 춤추는 걸 보았다고 진술했다. 어떤 사람들은 거룩하신 동정녀의 얼굴을 보았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태양이 거대한 불바퀴처럼 저절로 회전했으며 태양 광선으로 지구를 태워 버릴 듯이 지상으로 돌진했다고 맹세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태양이 끊임 없이 여러 가지 빛깔로 변했다고 말했다.”

   루치아의 사촌인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는 1918년과 1919년에 죽었다. 그래서 루치아만이 파티마 발현을 증언하기 위해 남겨졌다.
   마리아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곧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를 데려 가겠다. 그러나 너는 내게 올 때까지 좀 더 여기 남아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나를 알고 사랑하는 걸 배우도록 예수님께서는 너를 필요로 하신다. 내 티없는 성심이 온 세상에서 공경받게 되기를 예수님께서 원하신다.”
   동정녀는 루치아가 읽고  쓰는 걸 배우기 위해 마을에 있는 학교에 다니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가족들을 성가시게 했다. 그래서 그녀의 어머니는 16살이 된 딸 루치아를 1923년 파티마에서 떨어진 포르토 인민 마을에 있는 도로티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데려갔다. 거기서 그녀는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마리아 다스 도레스(고통의 마리아)” 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925년 루치아는 스페인 폰테베드라에 있는 도로티 수녀원의 수련 수녀로 입회했다가 1926년 투이로 옮겼고, 1928년 거기서 서원 수녀가 되었다.
   루치아 수녀는 1925년과 1926년 그리고 1929년에 그곳에서 아기 예수님과 함께 계신 거룩한 동정녀의 환시를 보았다. 마리아는 그곳에서 루치아 수녀에게 이 세상의 죄악을 보속하기를 요구하셨던 파티마 메세지를 상기시키시며, 연이어진 다섯번의 첫 토요일에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을 거스르는 죄를 보상하기 위한 지향으로 미사에 참례할 것을 강조하셨다.
   거룩하신 동정녀는 스탈린의 무력 혁명이 시작되던 1929년, 온 세상을, 특히 러시아를 당신의 티없으신 성심에 봉헌할 것을 교황에게 청하라고 루치아 수녀에게 부탁하셨다. 그러나 교회는 이때까지 파티마에 그 어떤 공식적인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다! 다음 5년 동안 천만명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농민들이 굶어 죽었고, 수백만 명이 강제 수용소에서 그리고 ‘숙청’ 에 의해 죽었다.

교회의 인정과 불안

   1930년, 파티마에 속해 있는 라이리아 교구의 주교는 어린이들의 환시가 ‘초자연적’ 임을 선언했다.
   루치아 수녀는 거룩한 동정녀의 메세지를 먼저 비오 11세와 비오 12세에게, 후에는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 교황에게 전했다. 루치아 수녀의 겸손과 끈기로써 결국 하느님의 명령이 이루어졌다. 루치아 수녀는 주교와 지도 신부의 요구에 따라 파티마의 환시를 4개의 보고서에 기록했다.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을 그만 두지 않으면 가공할 만한 전쟁이 또 일어나리라고 경고했다. 이것은 파티마의 예언 중 하나로, 성모님께서 북쪽 하늘에 엄청나게 밝은 빛이 보이면 이 전쟁이 시작된다는 표시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1938년 1월 25일, 전 유럽과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보통 때와는 아주 다른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 그 빛은 50만㎢의 넓이를 뒤덮었고 그 높이가 700㎞에 달했다. ‘뉴욕타임즈’ 는 1938년 1월 26일자 신문에 이렇게 보도했다. “남쪽과 서쪽 유럽에 나타난 오로라는 지난 밤 포르투칼과 남부 오스트리아 지방 사람들에게 공포를 일으켰다. 수천 명의 영국인들은 놀라서 거리로 달려나왔다.”
   붉은 빛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도시가 불길에 휩싸였다고 생각했다. 윈저궁이 불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소방대의 사이렌이 울렸다. 빛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도 아주 잘 보였다.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의 눈 덮인 알프스 산봉우리가 붉게 타오르는 빛 속에 잠겼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꺼야 할 불은 실제로는 어디에도 없었다. 포르투칼의 주민들은 세상 종말이 왔다는 두려움에 떨면서 집 밖으로 뛰어나왔다. 스위스와 프랑스 당국에는 화재가 났는지, 전쟁이 났는지, 세상 종말이 왔는지를 문의하는 수천 건의 전화가 쇄도했다. 1939년 전쟁이 터졌다. 두 달 후, 아돌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강점하고 여름에는 체코슬로바키아를 무력으로 점령하였다.
   원치않은 유명세 때문에 루치아 수녀는 평화를 얻지 못했으며 언제나 똑같은 질문을 받아야 했다. “거룩하신 동정녀의 모습은 어땠는가? 하늘나라는 어떠한가?” 마침내 루치아 수녀는 1946년 포르투칼로 돌아와서, 교황 비오 12세에게 수도회를 바꿀 수 있도록 허락을 청했다. 가장 가까운 포르투칼의 가르멜 수도원은 파티마에 있었는데 루치아 수녀는 발현 장소에 너무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르멜 수녀 원장은 독재자 살라자르에게 1844년 포르투칼의 모든 종교 시설의 추방령에 따라 국유화되어 병영으로 쓰이고 있던 코임브라의 수도원을 다시 내줄 것을 청했다. 1948년 3월 25일 루치아 수녀는 41세의 나이로 코임브라 산타 데레사 가르멜 수도회에 들어갔다. 거기에서 앞으로 57년간을 보낼 것이었다.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세상을 봉헌하는 일에 관해 말하자면, 교황 비오 12세가 이 봉헌을 거행하긴 했다. 하지만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원하셨던 러시아를 분명하게 언급하면서 온 세상의 주교단과 함께 한것이 아니라 유감스럽게도 1942년 혼자서 봉헌했다. 그렇지만 바로 한 달 후에,  연합국은 엘 알라마인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것은 제 2차 세계대전의 전환점이 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암살 기도가 있은 지 함참 뒤인 1984년 3월 25일에서야 비로소 많은 주교들과 함께 일치하여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온 세상을 봉헌했다. 그러나 이때에도 많은 주교들은 교황의 호소에도 그리고 마리아의 요청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마리아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했다기 보다는 ‘정치적 난제’ 에 대한 불안이 더욱 컸던 것 같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었을 때, 루치아 수녀는 비록 늦긴 했지만 하늘나라가 1984년의 봉헌을 받아들였다고 천명했다.
   바티칸이 2000년 공개한 파티마 제3비밀은 흰옷을 입은 한 주교에 대해 말한다. 그는 산 꼭대기에 있는 십자가에 다다르기 위해 몸을 떨며 시체가 널려있는 그 길을 간다. 그는 십자가의 발치에서 한 무리의 군인들에게 총살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파티마의 동정녀께서 암살 기도에서 생명을 구하도록 관여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한 손은 총을 쏘고, 또 다른 한손은 총알을 비껴가게 했다.” 라고 말했다.
   루치아의 영어 통역관 카를로스 에바리스토는, 특히 미국의 방문객들이 “세상 멸망이 언제인가? 전쟁이 일어날 것인가? 라는 비현실적이고 묵시록적인 질문을 하면 루치아는 그런 질문에 억측하지 않고 오히려 파티마 메세지를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성서의 말씀과 비교한다고 말한다. 천사가 베들레헴의 목동들에게 나타났을 때, 천사는 “땅 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말하지 않고 “착한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말했다. 지상에는 완전한 평화가 주어지지 않을 거라는 것이 서글프다. 모든 사람이 다 착하진 않으니까.
   이름은 또한 암시다! 파티마는 아랍식 이름이다. 이슬람교도들도 마리아를 공격하기 위해 파티마에 온다. 그리고 많은 이슬람 여인들은 마돈나의 발현에 매혹되었다. 파티마 메세제는 전투적인 이슬람주의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아주 잘 해낼 것이다!

– 스위스 [FATIMA-BOTE 2005]에서
– 마리아 1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