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사랑하시지 않는 제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그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보라, 이분이 너의 어머니시다!”
십자가 바로 옆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 바로 옆에, 마리아와 다른 부인들과 제자 요한이 서있다. 그들은 십자가 앞에까지 주님을 따라갔다. 그들은 크나큰 사랑과 충실함의 표시로서 예수님의 고통에 깊이 동참하여 그 희생을 위로하고자 했다.
참된 사랑이라면 사랑하는 사람 가까이 가려하지 않겠는가! 참된사랑이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고통을 겪고 싶지 않겠는가!
마리아는 구세주의 어머니시다. 그녀는 구세주를 이 세상에 데려오시고 낳으셨다. 이제 그리스도의 소명과 구원 사업은 그 완성에 가까이 간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마리아의 모성도 완성으로 나아가야 하고, 예상할 수 없는 저 새로운 곳으로 올려져랴 한다. 구세주의 어머니는 모든 구원받은 이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의 어머니는 모든 사람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천상의 머리이신 분의 어머니는 온전한 신비체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교회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어머니는 당신과 나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또한 네 어머니시다
사랑받는 제자 요한 안에서 우리 모두는 각자가 다 요한이 된다. “예수가 사랑한 제자… .” 그 말이 가리키지 않는 사람이 우리들 중에 누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지극한 경외와 겸손으로 말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지 않는 제자가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그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보라, 이분이 너의 어머니시다!”
그렇다. 보라. 그녀를 보라.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라. 신앙의 눈으로 여기 십자가 밑에 서 계신, 당신의 어머니가 되실 여인을 바라보라! 그때, 마리아도 우리 모두를 당신의 끝없이 위대한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실 것이다. 그녀의 마음은 우리 모두가 당신 아드님의 소망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느끼고 또 알기 때문이다. “어머니, 여기 당신의 아들을 보십시오! 당신의 딸을 보십시오!”
십자가 열매
이제부터 구세주의 어머니와 구세주의 제자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함께 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원하셨으므로. 마리아의 모성이 모두를 포용하고 새로워진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희생 제물이 되신 열매다. 마리아의 모성이 십자가 나무에서 교회의 손 안에 빛나는 금빛 열매를 떨어뜨린 것이다.
그렇다. 마리아의 모성은 ‘변화’ 되었다. 구세주의 어머니는 구원받은 자들이 어머니가, 구원받아야 할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내가 이 세상을 떠나 높이 들리게 될 때에는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나에게 오게 할 것이다.”(요한 12,32) 라고 말씀하셨다. 십자가에 높이 들리신 주님은 모든 사람을 당신께로 끌어가시는 동시에 마리아의 모성의 신비 속으로 끌어가신다.
마리아를 삶 안에 받아들이기
복음서는 제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7).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리아를 어머니로 주신 그 순간부터 제자 요한은 어머니 마리아를 자신의 집에 모셨다. 성서 원본에도 문자 그대로 그렇게 쓰여있다. “이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 그렇다 그는 자신의 삶 안에, 집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느낌 속에, 자신의 말과 대화 속에, 자신의 의문과 문제 속에, 자신의 기쁨과 어려움 속에,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 속에 그분을 모셔 들였다.
우리도 요한처럼 하자! 마리아를 십자가에서부터 우리의 삶 안으로, 삶의 모든 영역 안으로 모셔 들이자. 그렇다. 당신이 누구든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든지 간에 구세주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에게 하신 그 말씀을 잊지 말라. 그분은 내려다보시며 말씀하신다. “보라,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어느 시대든지 위대한 신학자들은 십자가 밑에 서 계신 마리아의 고통을 영적이고 초 자연적인 산고로 표현해왔다. 이 ‘고통’, 이 산고 속에 마리아는 우리의 어머니가 되시고, 우리를 영적인 방법으로 낳으신다. 하느님을 위해 우리를 낳으신다.
이러한 생각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바울로 사도도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렇게 썼다. “나의 자녀인 여러분,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가 형성될 때까지 나는 또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겠습니다”(갈라 4,19). 그러므로 마리아는 십자가 밑에서 우리 모두를 위해 해산의 고통을 겪고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셨다.
여인이여, 보십시오. 당신 아들입니다!
아들아, 보아라. 네 어머니시다!
십자가 밑에서 고통 중에 저를 낳으셨으니
제가 처한 이 시련의 순간에 저를 도우소서!
언젠가 제가 죽어 천국 문 앞에 설 때에,
부디 제 곁에 계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그분의 죽음의 고통과 함께 하시며
어머니, 당신은 모든 자녀들과 함께
저도 낳으셨나이다.
그분이 죽어가며 당신께 요한을 아들로 주셨을 때,
그 제자와 함께 저도 당신의 보호 아래 주셨나이다.
– 요한 카울만 신부
– 마리아 1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