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마투살렘 또는 샬렘의 기적

  지난 며칠 동안의 비가 온 다음 날씨가 회복되었고, 매우 깨끗한 하늘에는 해가 빛나고 있다. 비로 청소가 된 땅도 대기처럼 깨끗하다. 얼마나 신선하고 깨끗한지 몇 시간 전에 만들어진 것 같다. 맑은 아침에 모든 것이 빛나고 모든 것이 노래한다.
  예수께서는 정원의 가장 외딴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거니신다. 어떤 정원사 하인만이 아침 이른 시간의 이 혼자서 하는 산책을 지켜본다. 그러나 아무도 선생님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선생님을 조용히 계시게 하려고 소리없이 물러간다.
  게다가 오늘은 쉬는 날인 안식일이라, 정원사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생애 만큼이나 오래 된 습관으로 인하여 밖에 나와서 초목들과 벌통들과 꽃들을 살펴본다. 그것들에게는 안식일이 없어, 4월의 해와 조용한 바람을 향하여 향기를 내뿜고, 살랑거리고,윙윙거린다. 그러다가 정원이 천천히 활기를 떤다. 처음에는 남녀 하인들, 그 다음에는 사도들과 여자 재자들, 맨 마지막으로 라자로가 나온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로 가시면서 인사를 하신다.
  “선생님, 언제부터 여기 계셨습니까?”하고 라자로가 예수의 굽슬거리는 머리에서 이슬방울들을 털면서 묻는다.
  “새벽부터요 당신의 새들이 하느님을 찬미하라고 나를 불렀소. 그래서 이리 나왔소. 우주의 아름다움 속에서 하느님을 주시하는 것은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이고, 정신의 감동으로 기도하는 것이오. 땅은 아름답소. 그리고 하루의 첫 시간, 오늘과 같은 하루의 첫시간에는 땅이 처음 생겨났을 때에 그랬던 것처럼 신선하게 우리에게 나타나오.”
  “정말 과월절다운 날씨입니다. 날씨가 좋아졌는데, 월초에 순풍과 더불어 날씨가 좋아졌기 때문에 좋은 날씨가 오래 계속될 것입니다” 하고 베드로가 언명한다.
  “그것이 나는 기쁘다. 비가 오는 과월절은 우울하다.”
  “그보다도 더한 것이 있습니다. 비는 곡식에 해롭습니다. 낟알은 수확기가 가까워진 지금 햇볕이 필요합니다”하고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나는 여기 조용히 있는 것이 참 좋아. 오늘은 안식일이라 아무도 오지 않을 거고, 우리 가운데에 외부인은 없을 거니까”하고 안드래아가 말한다.
  “당신 생각은 틀렸소. 손님이 한 사람 있어요. 작은 손님이. 그 애는 아직 자고 있습니다. 침대가 부드럽고 배가 부르고 하니까 마냥 자게 되는군요. 그 애를 보러 갔었는데, 노에미가 지키고 있습니다”하고 라자로가 말한다.
  “아니, 그게 누굽니까? 언제 왔습니까? 누가 데려 왔습니까? 당신은 왜 그 사람이 어린 아이인 것처럼 말합니까?” 하고 남자들과 여자들이 묻는다.
  “어린 아이입니다. 불쌍한 어린 아이. 그의 고통이 그를 이리 데려왔어요. 그 애는 저기 철책 창살에 매달려서 집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맞아들이셨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었습니다…. 왭니까?”
  “그것은 어린 아이가 편안히 있을 필요가 있어서 그랬다”하고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그리고,
  “또 라자로의 집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을 줄을 알기 때문이다”하고 말씀을 끝내실 때에는 예수의 얼굴이 깊은 생각에 잠긴다.
  한 하인이 와서 마르타에게 무슨 말을 하더니, 물러갔다가 양젖 항아리들과 사발들과 버터나 꿀을 곁들인 빵을 담은 쟁반들을 가지고 오는 다른 하인들과 함께 다시 온다. 모두는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한다. 그러나 곧 이어 다시 선생님 둘레로 모이기로 결정하고 선생님께 비유를 청한다.
  “니산달의 이 날처럼 맑은 아름다운 비유를” 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비유를 하나 아니라 둘을 주겠다. 들어 보아라.
  어떤 사람이 어느 날 어떤 명절에 주님을 공경하기 위하여 등불 두개를 켜 놓고자 하였다. 그래서 크기가 같은 두 그릇을 가져다 놓고, 거기에 같은 품질의 기름 같은 분량을 넣고, 같은 심지를 꽂았다. 그 사람은 그에게 허락된 대로 일을 하는 동안 자기 대신 기도를 하라고 같은 시간에 그 두 등잔에 불을 붙였다. 얼마 후에 돌아와 보니, 등잔 중의 하나는 강한 불꽃을 내고 있는데, 다른 등잔은 아주 잔잔한 작은 불꽃을 내고 있어, 등잔들이 타고 있는 언저리에 겨우 밝은 점을 만들어 놓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그 심지가 잘못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심지를 살펴보았는데, 그게 아니라, 심지는 제대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등불은 다른 등불만큼 명랑하게 타려고하지 않았다. 다른 등잔은 그 불꽃을 불혀 모양으로 흔들리게 하고, 어떻게나 명랑하게 타는지 정말 말을 하는 것같이 보였고, 어떻게나 흔들리면서 밝히는지 가볍게 속삭이기까지 하는 것 같았다.
  ‘이 등불은 정말 지극히 높으신 주님의 찬미를 노래하는 거다!’하고 그 사람은 혼잣말을 했다. ‘그런데 이 등불은! 내 영혼아, 이 등불을 보아라! 이 등불은 어떻게나 별로 열렬하지 않게 주님을 공경하는지, 주님을 공경하는 것이 짐스럽게 여겨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일을 하러 돌아갔다.
  얼마 후에 다시 왔다. 한 불꽃은 한층 올라갔고, 이 불꽃은 더 찬란하게 펄럭이고 있는데, 다른 불꽃은 한층 더 낮아지고 점점 더 조용히 타고 있었다. 그 사람은 두번째 다시 와 보았다. 마찬가지였다. 세번째 다시 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네번째 와서 보니, 방 안에는 구역질이 나는 짙은 연기가 가득 차 있고, 그 사이로 작은 불꽃 하나만이 빛나고 있었다. 그는 등잔들이 놓여 있는 선반으로 가서, 처음에는 그렇게도 이글거리며 타오르던 등불은 완전히 타버려 꺼멓게 되고, 그 불혀로 횐 벽을 더럽히기까지 한 것을 발견했다. 반대로 다른 등불은 여전히 한결같은 빛으로 계속 주님을 공경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이 작은 사건에 대비하려고 하는데, 그 때 그의 곁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 현상을 바꾸지 말고, 하나의 상징인 이 등불들을 묵상하여라. 나는 주님이다.’
  그 사람은 방바닥에 얼굴을 대고 경배하며, 몹시 두려워하며 감히 말했다. ‘저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지혜이신 주님, 등불들의 상징을 설명해 주십시오. 가장 활발하게 주님을 공경하는 것처럼 보이던 등불은 손해를 끼쳤습니다. 그런데 다른 등불은 계속 빛을 내고 있습니다.’
  ‘그래, 설명해 주마. 사람의 마음들도 이 두 등불과 같다. 처음에는 타고 빛나서 그 불꽃이 얼마나 완전하고 변함없는 것 같은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영혼들이 있다. 또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고, 주님을 공경하는데 열의가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조용한 광채를 가진 영혼들도 있다. 그러나 첫 번째나 두 번째나 세 번째 확 타오르는 것이 지난 다음, 세 번째와 네 번째 확 타오르는 사이에서 첫 번째 영혼들은 손해를 끼친 다음, 완전히 꺼지면서 해를 끼친다. 그것은 그 영혼들이 확실한 빛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 영혼들은 주님을 위해서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을 위해서 빛나고자 했고, 교만이 그들을 얼마 안 되는 시간에 검고 짙은 연기 속에 다 타버리게 해서 공기까지 흐리게 하였다. 다른 영혼들은 오직 한 가지 꾸준한 뜻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것은 오직 하느님만을 공경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칭찬은 상관하지 않고, 오래 가고 깨끗한 불꽃으로, 연기와 고약한 냄새 없이 자기 자신을 불태웠다. 꾸준한 빛만이 주님의 뜻에 맞는 것이니 그 빛을 본받을 줄을 알아라.’
  그 사람은 고개를 쳐들었다…. 공기는 연기가 가셔서 깨끗해졌고, 이제는 충실한 빛의 별만이 홀로 하느님을 공경하기 위하여 깨끗하고 굳세게 빛나고 있었고, 등잔의 금속을 마치 순금으로 만든 것처럼 반짝이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그 등불이 몇시간 동안이고, 항상 똑같이 빛나다가 마침내 조용히, 연기도 고약한 냄새도 없이, 그의 옷을 더럽히지도 않고, 불꽃이 마지막으로 한번 환하게 빛나고 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불꽃은 기름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을 훌륭하게 공경한 다음에 하늘로 올라가 별들 사이에 자리잡는 것 같았다.
  나 너희들에게 분명히 말한다마는, 처음에는 큰 불꽃을 내서, 사람들의 행동의 외면밖에 보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의 감탄을 얻지만, 곧 이어서 꺼멓게 타고 자극이 심한 냄새를 풍기면서 죽어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나 분명히 말하지만, 하느님께서 그들의 불꽃이 인간적인 목적을 위해서 오만하게 타는 것을 보시기 때문에 그 불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신다.
  둘째 등불을 본받아서 꺼멓게 타지 않고 그들의 꾸준한 사랑의 마지막 펄럭임으로 하늘에 올라갈 줄 아는 사람들은 지극히 행복하다.”
  “정말 이상한 비율세! 그러나 참말이야! 아름답고! 내 마음에 드는 걸! 나는 우리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빛들인지 알고 싶구먼. 사도들은 그들의 느낌을 서로 이야기한다.
  유다는 혹평을 할 방법을 찾아낸다. 그는 막달라의 마리아와 제베대오의 요한을 공격한다.
  “마리아, 조심해요. 그리고 요한 자네도. 자네들은 우리 가운데에서 타오르는 빛들이지…. 자네들에게 불행이 닥쳐오지 않게 해야 해!”
막달라의 마리아는 대답을 막 하려고 한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올라온 말을 하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문다. 마리아는 유다를 바라본다.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나 그 눈길이 어떻게나 격렬한지 유다는 웃음을 그치고 똑바로 쳐다보던 것도 그만둔다. 비록 사랑으로 불타고 있기는 하지만 마음이 온유한 요한은 조용히 대답한다.
  “하긴 내가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걸세. 그러나 주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네. 그래서 우리 주 하느님을 공경하기 위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탈 수 있기를 바라네.”
  “그럼, 다른 비유는요? 선생님은 비유 둘을 약속하셨지요.” 하고 알패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내 둘째 비유는 이렇다. 그 비유가 곧 올 것이다….” 그러시면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 닫혀진 집의 문을 가리키신다. 커튼은 바람에 천천히 움직이다가 한 하인의 손으로 움직여 젖혀지며, 늙은 노에미가 들어와서 예수의 발 앞으로 달려오면서 말한다.
  “아니 아이가 성합니다! 이제는 보기 흉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밤사이에 고쳐 주셨습니다. 그 애가 잠이 깼기에 라자로님이 따로 두셨던 옷을 가지고 밤 동안에 지은 속옷과 옷을 입히기 전에 그 애 몸을 씻어 주려고 목욕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얘야, 이리 오너라’하고 말하면서 담요를 젖혔을 때 저는 어제는 보기 흉하던 그의 작은 몸이 전과 같이 않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떤 어린 아이가 제 침대에서 자고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던 사라와 마르첼라가 달려 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이 말씀을 드리려고 그들을 떠나 왔습니다….”
  모두가 호기심에 사로잡힌다. 질문들을 하고 몹시 보고 싶어 한다. 예수께서 손짓으로 소란을 가라앉히신다. 그리고 노에미에게 명령하신다.
  “아이에게로 돌아가서, 씻기고 옷을 입혀서 이리 데려 오시오.” 그리고 제자들에게 몸을 돌리시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둘째 비유이다. 그리고 이 비유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참된 정의는 원수를 갚지 않고 차이도 두지 않는다.’
  어떤 사람, 아니 그 보다도 사람의 아들인 사람이 원수들과 벗들을 가지고 있다. 친구들은 별로 없고 원수는 많다. 그는 원수들의 미움도 생각도 잘 알고 있고, 그들의 뜻도 알고 있는데, 그 뜻은 아무리 소름끼치는 어떤 행동 앞에서도 꺾이지 않을 것이다. 이 점으로는 그의 원수들이 친구들보다 더 강하다. 그의 친구들은 공포나 실망이나 또는 지나친 자신으로, 쓸데없이 그들의 힘을 감추는 숫양처럼 되고 만다.
  많은 원수를 가지고, 사실이 아닌 많은 일로 비난을 받는 이 사람의 아들이 어제 한 어린이를, 그의 원수인 어떤 사람의 아들인, 어린이들 중에서 가장 비탄에 잠긴 어린이를 만났다. 그 어린이는 보기 흉하고 불구인데, 이상한 은혜를 청하였다. 죽는 은혜를 청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사람의 아들에게 명예와 기쁨을 청하고, 건강을 청하고, 생명을 청한다. 그런데 그 가엾은 어린이는 더 이상 고통을 당하지 않게 죽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그 어린이는 벌써 육체와 마음의 가지가지 고통을 겪었다. 그것은 이 아이를 낳은 사람으로 이유없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그가 낳은 죄없는 불행한 그 어린이도 미워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어린이가 더 이상 고통을 당하지 않고, 육체의 건강 이상으로 정신적 건강에 이를 수 있게 하려고 그를 고쳐 주었다. 그의 작은 영혼도 병들었다. 아버지의 미움과 사람들의 업신여김이 그에게 상처를 입혔고 그에게서 사랑을 빼앗아갔다. 그 어린이에게는 하늘과 사람의 아들에 대한 믿음만이 남아 있었고, 그에게, 아니 그들에게 죽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저기 온다. 그의 말을 듣게 될 것이다.
  머리를 빗고 세수를 하고 노에미가 밤새 빨리 지은 흰 모직으로 된 작은 옷을 입은 어린 아이가 늙은 유모의 손에 이끌려 나아온다. 비록 이제는 등도 굽지 않고 다리도 구부러지지 않지만 작다. 그러나 벌써 어제보다는 더 커 보인다. 그의 얼굴은 균형 잡히지 않은 작은 얼굴이고 고통으로 인하여 조숙하게 어른같이 된 어린 아이의 약간 시들은 얼굴이다. 그러나 이제는 불구는 아니다. 신발을 신지 않는 그의 작은 발은 다리가 구부러진 사람들의 절룩거리는 걸음이 아닌 확실한 걸음걸이로 방바닥을 딛는다. 그의 야윈 어깨는 야위기는 하였지만 반듯하다. 가느다란 목이 어깨 위로 솟아 있는데, 균형이 잡히지 않은 쇄골 속에 파묻혀 있던 어제에 비하면 길어 보인다.
  “아니…. 아니, 저 애는 나훔의 안나의 아들인데요! 정말 환영받지 못할 기적이로군요! 이렇게 함으로 이 애 아버지와 나훔을 친구를 만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사람들은 더 증오에 불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불행한 결혼의 소산인 이 아이가 죽기만을 바라고 었습니다”하고 가리옷의 유다가 외친다.
  “나는 친구들을 얻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지 않고, 인간들에 대한 연민으로 그리고 내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 기적을 행한다. 나는 인간의 비참에 대해서 동정을 가지고 관심을 기울일 때 절대로 차별도 두지 않고 타산을 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박해하는 사람에 복수를 하지 않는다.”
  “나훔은 선생님의 행위를 복수로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이 아이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했었다. 나는 이 아이 이름도 아직 모른다.”
  “이 애를 업신여겨서 마투살라 또는 마투살렘이라고 부릅니다.”
  “엄마는 나를 샬렘이라고 불렀어요. 엄마는 나를 예뻐했어요. 엄마는 아저씨와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처럼 인정머리 없지 않았어요.” 하고 어린 아이는 분노에 타오르는 눈으로 말한다. 그것은 너무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한 사람과 짐승의 힘없이 타오르는 분노의 눈길이다.
  “샬렘아, 이리 내게로 오너라. 건강한 것이 좋으니?”
  “예…. 그렇지만 죽는게 더 좋았어요. 어떻든지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할 거예요 엄마가 아직 있었으면 기분 좋았을 거예요 그렇지만 이대로는… 나는 언제나 불행할 거예요.”
  “이 애 말이 맞습니다. 저희들이 어제 이 아이를 만났습니다. 이 애는 선생님이 베다니아의 라자로의 집에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저희들은 이 애가 거지인 줄 알았기 때문에 동냥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애는 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애는 어떤 밭 가장자리에 있었습니다”하고 열성당원이 말한다.
  “자네도 이 애를 알지 못했었나? 이상한데”하고 가리옷의 유다가 말한다.
  “자네가 이 일들을 그렇게까지 잘 알고 있는 것이 더 이상하네. 자넨 내가 선생님께로 올 때까지 박해받는 사람들 가운데 있었고, 그 다음에는 문둥병자들 가운데 있었다는 걸 잊었나?”
  “그럼, 자넨 내가 안나가 신임하는 사람인 나훔의 친구라는 것을 잊었나? 나는 자네들에게 이걸 결코 숨기지 않았네.”
  “됐네, 됐어. 그것은 중요하지 않네,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가 이 아이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일세. 이 아이 아버지가 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아이에 대한 권리는 여전히 가지고 있네. 그들이 우리게 대해서 호의를 더 가지고 있으니까, 신중하게 행동해서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하네”하고 나타나엘이 말한다.
  유다는 큰 소리로 비꼬는 웃음을 웃는다. 그러면서 왜 웃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어린 아이를 무릎에 놓고 계신 예수께서 천천히 말씀하신다.
  “나는 나훔과 과감히 맞서겠다…. 나는 그에게서 미움을 더 받지 않을 것이다. 그의 증오는 더 커질 수가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의 중오는 벌써 극도에 달해 있다.”
  그를 행복하게 하는 생각 중의 하나에 잠겨서 한번도 말을 하지 않은 안날리아가 말한다.
  “만일 제가 남아 있었으면 이 아이를 맡는 것이 좋았을 텐데요, 저는 젊지만 어머니 마음을 가지고 있거든요.”
  “너는 떠나니? 언제?”하고 여자들이 묻는다.
  “곧이요.”
  “아주? 그래 어디로 가니? 유다 밖으로?”
  “예. 멀리, 아주 멀리, 영원히요 그리고 저는 그것이 몹시 기쁩니다.”
  “네가 할 수 없는 일을, 아버지가 이 아이를 넘겨주면,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다.”
  “여러분이 꼭 그렇게 하고 싶으면 내가 나훔에게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아이 아버지보다도 이 사람이 중요합니다. 내가 내일 그 말을 하겠습니다” 하고 가리옷의 유다가 약속한다.
  “안식일이 아니었으면…. 이 애를 맡아 가지고 있던 그 요시아를 내가 찾아갈 덴데”하고 안드레아가 말한다.
  “이 애를 잃어버린 걸 슬퍼하는지 보려고?”하고 마태오가 묻는다.
  “제 생각에는 그들이 벌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그들이 그것을 더 슬퍼할 것입니다”하고 조금 전에 가까이 온 막시민이 입 속으로 중얼거린다.
  어린 아이는 말이 없다. 그는 예수께 바싹 붙어 있으면서, 병약하고 고통 중에서 살아 온 어린 아이들이 흔히 가지는 그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의 둘레에 있는 얼굴들을 살펴본다. 그는 얼굴보다도 마음을 살펴보는 것 같다. 그리고 베드로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니?” 하고 묻자 어린 아이는 베드로의 손에 그의 손을 놓으면서 대답한다.
  “아저씨는 착해요.” 그리고 고쳐 말한다.
  “모두 착해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했으면 좋았을 덴데. 나는 무서워요….” 그러면서 가리옷의 유다를 바라본다.
  “내가 무서운 거지? 내가 네 아버지한테 말할까봐. 그렇지만 내가 네 아버지에게 너를 우리에게 넘겨주겠는지 물어보려면 분명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지만 네 아버지가 너를 빼앗아 가지는 않을 거다!”
  “나도 그건 알아요. 그렇지만 다른 것이 있어요…. 나는 멀리, 이 아가씨가 가는 멀리로 가고 싶어요…. 엄마의 나라에는 새파란 산들 가운데 파란 바다가 있어요. 저 아래에는 그 바다에 떠 다니는 흰 돛단배들이 많이 있고, 둘레에는 아름다운 도시들이 있어요. 그리고 산위에는 굴이 많은데, 거기서는 산벌들이 단 꿀, 아주 단 꿀을 만들어요, 나는 엄마가 죽고 요시아의 집으로 가게 된 다음부터는 꿀을 먹지 못했어요. 필립보와 요셉과 엘리사와 다른 아이들은 실컷 먹어요. 그렇지만 나는 못 먹어요. 그들이 꿀단지를 밑에 두어두면, 내가 하도 먹고 싶으니까 그걸 먹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높은 선반에 얹어놓는데, 나는 필립보가 하는 것처럼 식탁 위에 올라갈 수가 없었어요. 난 꿀이 몹시 먹고 싶은데!”
  “오! 가엾은 어린 것! 내가 가서 너 먹고 싶은 만큼 가겨오마!”하고 마르타가 측은해서 말하며 빨리 떠나간다.
  “그런데 네 어머니는 어디서 왔었니?”하고 베드로가 묻는다.
  “이 애 어머니는 세펫 근처에 집 여러 채와 농지를 가지고 있었네. 외딸로 고아가 되고 큰 재산을 상속 받았는데, 벌써 나이가 많고, 추녀이고 다리가 약간 구부러졌었지. 그러나 아주 재산이 많았네. 늙은 사독을 사이에 놓아서 안나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아들이 그 여자를 아내로 얻게 되었네…. 사랑은 없고 순전히 타산적인, 진짜 파렴치한 거래인 계약이었지. 그 사람은 여기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하면서, 처음에 관리인의 것이었던 작은 집 하나만 남겨놓고, 아내의 재산을 팔았네. 그 작은 집은 관리인이 옛날 주인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인데, 그의 일생과 사대손(四代孫)의 일생 동안 쓸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네. 이 애 아버지는 불운한 투기로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하네.
  그렇지만… 나는 그걸 믿지 않네. 사실 나는 그가 전에는 가지고 있지 않던…  훌륭한 땅을 강변 쪽에 가지고 있다는 걸 아네…. 그러다가 결혼생활 몇 해 후, 여자가 거의 쇠퇴기에 이르렀을 때 이 아들이 난 거지…. 그리고 그것은 아내를 버리고, 사론평야의 젊고 아름답고 돈 많은 다른 여자를 데려오는 핑계가 되었네…. 소박맞은 여자는 늙은 관리인 집으로 피해 가서 살다가 거기서 죽었네. 나는 그들이 이 아이를 왜 그대로 기르지 않았는지 모르겠어. 이 애 아버지는 이 아이를 죽은 것으로 치고 있었거든”하고 가리옷 사람이 설명한다.
  “그건 요한이 죽고 마리아도 죽고, 아이들은 하인으로 딴 곳으로 갔기 때문이예요. 그러니 아들도 아니고 일도 할 수 없는데, 누가 나를 맡아가지고 있어야 했겠어요, 그렇지만 미카엘과 이사악, 그리고 에스테르와 유딧도 착했어요. 지금도 이들은 착해요. 명절을 쇠러 올 때면, 이들은 내게 선물들을 가져와요. 그렇지만 요시아가 그의 아이들을 위해서 그것들을 가로채요.”
  “그렇지만 그들이 너를 받아주지 않는데”하고 유다가 대꾸한다.
  “내가 꼿꼿하고 튼튼한 지금은 나를 받아주려고 할 거예요. 그 애들은 하인들이거든요! 내가 말했지만, 그 애들은 주인에게 ‘이 병든 병신을 데려 가세요’하고 말할 수는 없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 애들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네가 요시아의 집에서 도망쳐 나왔으니, 그 애들이 어떻게 너를 찾아낼 수 있니?”하고 바르톨로메오가 그 아이에게 생각하게 하려고 말한다.
  어린 아이는 올바른 지적으로 충격을 받아 곰곰 생각한다. 그것은 불구로 인하여 그의 얼굴이 조숙하게 어른스러워진 것과 같이 조숙하게 생각이 깊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절망적으로 말한다.
  “맞아요! 난 그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그리로 돌아가라. 요새 그 애들이 올 거다….”
  “그리루요?  안 가요. 그리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차라리 죽겠어요!” 그는 그를 마구 뒤흔들어 놓는 거친 분노에 빠져든다. 그러나 곧이어 눈물을 흘리며 예수의 무릎에서 몸을 뒤로 젖히고 말한다.
  “왜 나를 죽게 하지 않았어요?”
  꿀단지를 가지고 오던 마르타는 이 슬픔에 놀라고, 바르톨로메는 그 슬픔을 유발한 것이 괴로워서 변명을 한다.
  “저는 좋은 의견을 내놓는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모두에게, 아이에게도 선생님께도 라자로에게도 좋은 의견을… 여러분이나 우리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새로이 미움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맞아! 정말로 난처한 일이야!”하고 베드로가 상황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혼잣말로 결론을 내린다. 그 결론은 가벼운 휘파람으로 끝나는데, 그것은 해결하기 까다롭고 어려운 문제에 부닥뜨릴 때에 그의 기분을 나타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하자고 제안하고, 어떤 사람은 저렇게 하자고 제안한다. 나훔을 가서 만난다든지, 요시아의 집에 가서 미카엘과 이사악을 라자로의 집으로 보내라고 말한다든지, 또는 그렇지 않아도 예수와의 친분 때문에 미움을 받는데 그 이상 더 라자로가 미움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이 사려깊은 일일 것이니까 아이가 가 있을 다른 곳으로 보내라고 하자는 것이다. 또는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아이를 착실한 어떤 제자에게 주어서 사라지게 하자는 것이다. 가리옷의 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토의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그의 옷의 술장식을 다듬었다 흐트러뜨렸다 하며 장난을 하고 있다.
  예수께서도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어린 아이를 쓰다듬고 달래시고, 그의 얼굴을 쳐들고 두 손에 작은 꿀단지를 놓아 주신다. 샬렘은 어린 아이이다. 항상 고통을 당한 열 살 먹은 불쌍한 아이이지만, 그리고 고통 때문에 성숙하게 되기는 하였지만 역시 어린 아이이다. 그래서 그 같은 꿀의 보물을 앞에 놓고는 마지막 눈물이 걷히고 황홀한 놀람이 갈마든다. 그에게서 아름다운 것이라고 그것뿐인 눈을, 크고 영리한 갈색 눈을 치켜떠서 예수와 마르타를 번갈아 쳐다보며 묻는다.
  “이걸 얼마 먹으면 돼요? 이 숟가락으로 하나나 둘이요?”하고 동그란 은숟가락을 가리키며 그것을 황금빛 꿀 속으로 천천히 들여보낸다.
  “얘야,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네 마음대로 실컷. 나머지는 내일 먹던지 나중에 먹던지 해라. 그 꿀은 다 네 것이다!”하고 마르타가 그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다 내거요!!! 아이고! 나는 꿀을 이렇게 많이 가져본 일이 없어요!! 다 내거야! 오!” 그러면서 아이는 그것이 무슨 보물이나 되는 것처럼 꿀단지를 가슴에 경건하게 껴안는다. 그러나 그는 곧이어 꿀단지보다도 그것을 주는 사랑이 더 값지다는 것을 깨닫고 작은 단지를 예수의 무릎에 놓고, 팔을 들어 그의 위로 몸을 구부리고 있는 마르타의 목을 껴안고 그에게 입맞춤을 한다. 이것이 그의 감사하는 마음이 할 수 있는 전부이고, 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버려진 어린이인 그가 줄 수 있는 전부이다. 다른 사람들은 계획하던 것을 중단하고 이 광경을 지켜본다. 그리고 베드로는 말한다.
  “이 애는 마륵지암보다도 한층 더 불행하구먼. 마륵지암은 적어도 할아버지와 다른 농부들의 사랑은 받고 있었지! 우리가 한 없다고 생각한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 항상 있다는 것이 사실이야!”
  “그래, 인간의 고통의 구렁은 그 바닥을 아직 드러내지 않았어. 그 구렁이 아직 얼마나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는지…. 또 미래 시대에 얼마나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지 누가 알겠나!”하고 바르톨로메오가 생각에 잠기며 말한다.
  “그럼, 자네는 기쁜 소식을 믿지 않는 건가? 그 기쁜 소식이 세상을 바꿔놓으리라는 것을 믿지 않는단 말인가? 이 말은 예언자들이 했고, 선생님이 되풀이하시는 건데 바르톨로메오 자네는 의심 많은 사람이로구먼”하고 가리옷 사람이 약간 빈정거리는 투로 말한다.
  열성당원이 그에게 대답한다.
  “나는 무엇이 어때서 바르톨로메오가 의심이 많다는 것인지 모르겠네, 선생님의 가르침은 모든 불행에 대한 위안을 마련해 주고, 관습과 풍속의 사나움을 변경도 할 걸세. 그러나 그것이 고통을 없애지는 못할 걸세. 선생님의 가르침은 미래의 기쁨에 대한 선생님의 숭고한 약속으로 고통을 견딜 수 있게는 할 걸세. 고통이 없어지려면, 또는 적어도 고통의 대부분이 없어지려면 – 언제까지나 병과 죽음과 자연의 큰 재난은 있을 것이니까. –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것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할 걸세, 그렇지만….”
  가리옷 사람이 그의 말을 가로막는다.
  “사실 그렇게 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메시아가 세상에 오신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렇게 해야 할 것이라고 우리는 말하네. 그러나 유다, 말해 보게. 혹 우리 사이에 그렇게 됐나? 우리는 열두명이고 선생님과 함께 사는 것이 3년째이고 선생님의 가르침을 우리는 공기를 마시듯이 흡수하네. 그런데? 우리 열두 사람이 모두 거룩한가? 라자로가 하는 것, 스데파노와 니콜라이, 이사악, 마나헨, 그리고 요셉과 니고데모, 그리고 여자들과 어린이들이 하는 것과 우리가 하는 일 다른 것이 무엇인가? 나는 우리의 조국인 이 조국의 의인들에 대해서 말하는 걸세. 이 모든 사람들은, 지혜롭고 부자이거나 가난하고 무식하거나 모두 우리가 하는 일을 하네. 조금 잘 하고, 조금 잘못 하고 하네. 그러나 완전히 새로워지지는 못했네. 나는 많은 사람이, 아주 많은 사람이 우리보다 낫다고까지 자네에게 말하겠네. 그래,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들 중에서 사도들인 우리보다 나은 사람이 많네…. 그런데 자네는 사도들인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마음을 가지지 못했는데 세상사람 모두가 그런 마음을 가지기를 바라겠는가? 우리는 다소간 나아지기는 했네…. 적어도 그렇게 되었기를 바라세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아는 것도 어렵고, 자기 곁에 사는 형제를 알기도 힘들기 때문일세. 육체의 베일은 너무 빽빽하고 두껍고, 사람의 생각은 뚫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너무나 주의를 하고 있어서, 사람이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네. 자기 자신을 살펴보거나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거나, 항상 표면에 남아 있는 걸세. 우리 자신을 살펴볼 때에 그렇다는 것은 우리 자존심에 타격을 입지 않고 변해야 할 필요성으로 고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 자신을 알고자 하지 않기 때문일세. 남에 대한 경우에 그런 것은, 심사원으로서의 우리의 자존심 때문에 우리가 불공평한 심판이 되고, 우리가 심사하는 사람의 자존심은, 마치 굴이 그 껍질로 제 안에 있는 것을 감추듯, 꽉 죄기 때문일세”하고 열성당원이 말한다.
  “말 잘 했네. 시몬, 자네는 정말 지혜의 말을 했네!” 하고 유다 타대오가 칭찬하고,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일제히 찬성한다.
  “그렇다면, 메시아가 아무 것도 변경시키지 못하게 된다면, 무엇 때문에 왔나?”하고 가리옷 사람이 대꾸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가르침에 대해서 벌써 작용하고 있는 것, 즉 빛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의 증오가 장차 있을 것이니까 그렇다. 그것은 나를 따르는 사람들의 힘에 대항하여 사탄을 따르는 자들의 힘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많은 모습으로 그럴 것이냐! 완전하기 때문에 변함이 없는 내 가르침에 대하여 항상 새록새록 생겨나는 얼마나 많은 이단의 교리가 반대하겠느냐! 그 이단의 교리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싹트게 하겠느냐! 너희들은 미래를 알지 못한다. 너희들에게는 지금 세상에 있는 고통이 큰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은 내가 너희들에게 설명해 주어도 이해되지 않을 소름끼치는 일들을 보고 계신다…. 내가 오지 않았더라면 불행했을 것이다! 장차 있을 사람들에게 가장 착한 사람들에 있어서 본능을 억제하는 규범과 미래의 평화에 대한 약속을 주기 위하여 오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만일 내가 옴으로 인하여 사람이 자신을 영의 생명으로 ‘살아 있게’간직할 수 있고, 상급을 확실히 받도록 간직할 수 있는 영적인 요소들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불행이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오지 않았더라면,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땅은 넓은 지상의 지옥이 되었을 것이고, 인류는 서로 갈라져서 창조주를 저주하면서 파멸하였을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분은 홍수와 같은 전 세계적인 벌은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틀림이 없습니다”하고 유다가 말한다.
  “그렇다. 시몬의 유다야, 그것은 사실이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홍수와 같은 전반적인 재앙을 다시는 보내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스스로 점점 더 끔찍한 재앙을 만들어낼 것이니, 그 재앙들에 비하면 대홍수와 소품과 고모라를 파괴한 불비는 동정 가득한 벌로 보일 것이다. 오!….”
  예수께서는 미래의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연민의 몸짓을 하시며 일어나신다.
  “좋습니다! 선생님은 아십니다…. 그러나 우선은 이 아이를 어떻게합니까?”하고 가리옷 사람이 그의 꿀을 조금씩 맛보면서 아주 기뻐하고 있는 어린 아이를 가리키며 묻는다.
  “하루하루에는 그 날의 걱정이 있다. 내일이 그것을 말해 줄 것이다. 우리가 내일 아직 살아 있을지 알지도 못하는데, 다음 날 걱정을 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저는 선생님같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디 가서 살지, 어디서 만찬을 먹을지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일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가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으면, 시내는 팍 찹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 게쎄마니도 안 되고, 세포리스의 요셉의 집도 안 되고, 요안나의 집도 안 되고, 니까의 집도 안 되고, 라자로의 집도 안 됩니다. 그러면 어디로 갑니까?”
  “아버지께서 당신의 말씀을 위하여 피신처를 마련해 주실 곳으로.”
  “선생님은 제가 가서 일러바치려고 그것을 알려고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말은 네가 하는 것이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샬렘아, 오너라. 내 어머니는 네가 여기 와 있는 줄은 아시지만, 아직 너를 보지는 못하셨다. 내 어머니께 데리고 가게 이리 오너라.”
  “그런데 선생님의 어머니께서는 병드셨습니까?”하고 토마가 묻는다.
  “아니다. 기도하신다. 어머니는 많이 기도하실 필요가 있다.”
  “그래요. 마리아는 많이 괴로워하고 많이 울어요. 그리고 그를 위로하는 것으로는 기도밖에 가지고 있지 못해요.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때에 마리아는 기도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하고 알패오의 마리아가 설명한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멀어져 가신다. 다른 쪽에는 예수께서 성모님을 뵈러 같이 가자고 권하신 안날리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