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모두 넓고 아무 장식도 없는 방에 모였다. 전에는 틀림없이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큰 방일 뿐이다. 그들은 식당이나 침실들에서 의자와 침대를 가져다 놓고 모두 선생님을 둘러싸고 빙둘러 앉았다. 그리고 선생님은 수직직(垂直織)의 양탄자를 깐, 순전히 조각된 나무로 된 일종의 안락의자에 앉으시게 하였다. 그 안락의자가 집 안에서 가장 호화로운 가구이다.
자캐오는 그들끼리 추렴한 돈으로 산 소유지에 대하여 말한다. “저희들은 그대로 뭔가 해야 했습니다! 한가함은 죄를 짓지 않는 데 좋은 약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희들처럼 소홀히 했었고 또 저희들처럼 가시덤불과 돌과 메마른 곳과 잡초가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아직 별로 기름진 땅은 아닙니다. 니까가 저희들에게 농사꾼 하인들을 빌려주어서 소홀히 했던 우물들을 치고, 밭에서 잡초를 제거하고 거기 있는 얼마 안 되는 나무들을 다듬고 어린 나무들을 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게 했습니다. 저희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람으로서의 거룩한 일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에게는 몹시 생소한 이 일에서 저희들은 정말 새로운 삶을 찾아냅니다. 저희들 주위에는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양심만이 그것들을 생각나게 해 줍니다마는,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저희들은 죄인입니다…. 그것을 보러 가시겠습니까?”
“여기서 함께 나가서 요르단강 쪽으로 갑시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 머무르겠소. 그곳은 바론 강으로 가는 길에 있다고 말했지요….”
“예, 선생님. 그러나 나쁜 상태에 있습니다. 집이 쓰러져 가고 가구가 도무지 없습니다. 저희들은 모든 것을 갖출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이웃에 대한 저희들의 과실을 갚고 난 후에는 말입니다. 너무 나이가 많아서 어떤 불편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여기서 자는 데메데스와 발렌스와 레위를 빼놓고는 건초로 만족합니다, 주님.”
“나는 그곳조차도 없는 때가 많았소. 자캐오 나도 건초 위에서 자겠소. 나는 처음 잠을 건초 위에 잤는데, 사랑이 그것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건초가 부드러웠소. 나도 거기에서 그 잠을 잘 수가 있는데, 착한 뜻이 돌아온 사람들 가운데에서 자겠기 때문에 그 잠은 불안하지 않을 거요.”
그러면서 여러 나라의 이 맏물을 바라보시는데, 그 눈길은 애무와도 같다. 그들도 예수를 바라본다…. 그들은 눈이 여린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흐르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얼굴은 그대로 그들의 불행한 과거가 쓰여 있는 책들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의 새 생활이 그 말들의 거칢을 가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어떤 구렁에서 빛을 향하여 올라오는지를 볼 수 있게 할 만큼은 그 말들을 꿰뚫어볼 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착한 뜻으로 돌아왔다고 선생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을 때, 그들의 얼굴은 환하게 빛나고 그들의 눈길은 자신을 얻고, 초자연적인 소망과 정신적인 만족의 빛이 거기서 빛난다.
자캐오가 말한다. “그러면 제가 한 모든 것을 승인하시는 겁니까? 보십시오. 선생님, 그날 저는 ‘선생님을 따르겠습니다’하고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실제적으로 선생님을 따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날 저녁에 데메테스가 어떤 일로… 그의 고약한 거래 중의 하나 때문에 제 집에 왔습니다…. 그러면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도시가 거룩하다고 말들 하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치욕이란 치욕은 다 만납니다. 그리고 그 치욕을 제일 먼저 원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저희들에게 마치 문둥병자이기나 한 것처럼 돌을 던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저는 저희들의 죄를 말해야 하는 것이지 저들의 죄를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돈이 없었습니다. 모두 선생님께 드렸었거든요. 제 집에 아직 있는 돈도 벌써 준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저는 그 돈을 가지고 제가 고리대금으로 빼앗았던 사람들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몫들을 벌써 만들어 놓았었으니까요.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돈이 없네. 그렇지만 모든 보물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을 가지고 있네’ 하고 그리고 제 회개와 선생님의 말씀과 제 안에 있는 평화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말을 했던지 새로 밝아오는 날의 빛이 들어와서 얼굴들을 희게 비추었고, 제가 아직 말을 하고 있는 동안에 등불들을 쓸데없게 했습니다. 제가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그가 저희가 앉아 있던 식탁을 탕 하고 주먹으로 치면서 이렇게 외친 것입니다. ‘메르쿠리우스고대(로마인들의 상업과 도둑과 여행자들의 신)가 충실한 신하를 하나 잃었고 사티로스(반인반수(半人半)의 숲의 신.)들이 동무를 하나 잃었네. 내 돈까지 받게. 범죄를 하는데는 충분하지 않았지만, 거지에게 빵을 주는 데는 넉넉할 걸세. 그리고 나도 받아 주게. 그 숱한 악취를 맡은 다음에 향기를 좀 맡고 싶네’하고 그리고 남아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예루살렘으로 함께 갔습니다. 저는 물건들을 팔려고, 그는 일체의… 약속을 면하려고 갔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저는 오래간만에 성전에서 어린 아이와 같이 깨끗하고 평화롭게 된 마음으로 기도했었습니다. – 저는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리고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선생님을 따르는 것이 아닐까. 혹 더 잘 따르는 것이 아닐까? 거기에서는 나처럼 불행한 내 친구 세리들, 도박장 경영자들, 뚜쟁이, 고리대금업자, 갤리선 노예들과 도형수와 노예들의 감독, 가지가지 비참한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사람들, 법도 동정도 모르는 군인들, 그들의 가책을 취중에 잊기 위해 소란떨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저주받은 돈을 쓰거나, 내게 사업을 제안하거나 나를 연회나 다른 불명예스러운 더러운 짓들을 하자고 권하러 오니까 말이야. 시내 사람들은 나를 업신여기고, 히브리인들은 나를 항상 죄인 취급을 하지만, 저들은 그렇지 않다. 저들은 나와 같다. 저들은 불결하다. 그러나 마음속에 그들을 선으로 이끄는 무엇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는 그들이 악을 행하는 것을 도왔다. 어쩌면 그들이 내 권유 때문에, 내가 간혹 그들에게 부탁한 것 때문에 죄를 지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이 선으로 오도록 도와줄 의무가 있다. 내가 피해를 입힌 사람들에게 보상을 한 것과 같이, 동향인들에게 대해서 배상한 것과 같이 그들하고 속죄하도록 힘써야 한다’하고
그래서 그대로 여기 눌러 앉았습니다. 저들은 어느 때는 이 사람이오고, 어느 때는 저 사람이 왔고. 어떤 때는 이 도시에서 어떤 때는 저 도시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모두가 데메테스 같지는 않았습니다. 더러는 저를 무시하고 나서 도망쳤고 더러는 주저했고, 더러는 머물렀지만 얼마 후에는 그들의 지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저희 자신과 싸우기 위해서, 저희들을 용서할 줄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견디기 위해서 제가 이렇게 선생님을 따라야 하고, 저희가 이렇게 선생님을 따라야 한다고 느낍니다. 세상이 용서하지 않는 것을 볼때에, 기억들이 되살아날 때에는 저희들의 마음에 눈물이 흐릅니다…. 그런데 그 기억들은 너무 많고 몹시 괴로운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기억들이….”
“저희들의 죄를 비난하고, 사후에 복수를 약속하는 무시무시한 네메시스( 인간의 오만, 부덕을 벌한 응보의 여신 (그리이스 신화).)입니다” 하고 그 중의 한 사람이 말한다.
“기진맥진해 있는 것을 일을 시키느라고 제가 때린 사람들의 통곡입니다.”
“고리(高利)로 그들의 전 재산을 빼앗은 다음 노예를 만든 사람들의 저주입니다.”
“세금을 낼 수 없는 것을, 법의 이름으로 그들의 마지막 재원까지 몰수했던 과부와 고아들의 애원입니다.”
“정복된 나라들에서, 패전으로 인해 공포에 떠는 무장해제된 사람들에 대해서 행한 잔인한 행위들입니다.”
“제가 모든 것을 쾌락으로 낭비하는 동안, 궁핍으로 인해서 죽은 제 어머니와 제 아내와 딸의 눈물입니다.”
“그것은… 아이고! 제 경우에는, 말로 할 순 없는 죄입니다! 주님, 저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고, 돈을 훔치지 않았고, 지나친 세금을 매기지 않았고, 고리를 받지 않았고, 전쟁에 진 사람들을 때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지가지 불행을 이용했고, 패전한 사람들의 죄없는 딸들과 여자 고아들과 빵을 얻기 위해 상품처럼 팔려 온 여자들로 돈을 모았습니다. 저는 군대의 뒤를 따라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기근이 있는 곳, 강이 넘쳐서 식량이 모두 없어진 곳, 전염병으로 어린 생명들이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있는 곳에서 그 기회들을 잡아서 그들을 가지고 상품을, 증오할 만한, 그러나 죄없는 상품을 만들었습니다. 거기서, 돈을 얻어내던 저로서는 증오할 만한 죄였고, 그것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것인지를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죄없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제 손에는 능욕을 당한 소녀들의 처녀성이 있고. 정복된 도시들에서 잡아 온 젊은 아내들의 정절이 있습니다. 제 상점들과… 창가(娼家)는 유명했습니다. 주님, 그것을 아신 지금 저를 저주하지 마십시오!….”
사도들은 말을 한 이 마지막 사람에게서 무의식중에 물러났다. 예수께서는 일어나셔서 그에게로 가까이 가신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신다. “사실이오! 당신의 죄는 크오. 당신은 속죄를 많이 해야 하오. 그러나 자비 자체인 나는 당신이 바로 마귀이고 ,세상의 모든 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당신이 원하면, 모든 것을 속죄할 수 있고 하느님께, 위대하시고 온정이 넘치는 참 하느님께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오. 당신이 원하면 당신의 뜻을 내 뜻에 합하시오. 나도 당신이 용서받기를 원하오. 나와 일치하시오. 손상되고 몰락한 당신의 불쌍한 영, 당신이 죄를 떠난 뒤로 상처투성이 이고 비천해진 당신의 불쌍한 영을 내게 주시오. 당신의 영을 나는 가장 큰 죄인들을 넣는 내 마음속에 넣어서 구속하는 제사로 가져가겠소. 가장 거룩한 피, 내 마음의 피, 사람들을 위하여 소모될 마음의 마지막 피가 가장 심한 폐허에 부어져서 그것들을 재생시킬 거요. 지금 당장은 하느님의 자비에 대하여 바람을, 당신의 엄청난 죄악보다는 더 큰 바람을 가지시오. 여보시오, 하느님의 자비는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한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오.”
그 사람은 자기 어깨에 얹힌 그 손을, 당신의 갈색옷과 자기의 든든한 어깨 위에 비하여 너무도 창백하고 너무도 야윈 그 손을 잡아 입맞추고 싶지만, 감히 그러지를 못한다. 예수께서 그것을 알아차리시고, 그에게 손을 내미시며 말씀하신다. “여보시오 손바닥에 입맞추시오. 나는 그 입맞춤을 내 고문 중의 하나를 고치기 위하여 다시 찾아내겠소. 입맞춤을 받은 손, 상처를 입은 손, 사랑으로 입맞춘 손, 사랑으로 상처 입은 손. 오! 모든 사람이 큰 희생자에게 입맞춤할 줄을 알고 그 희생자가 옷같이 상처에 뒤덮여서 죽으면서, 그 상처 하나하나에 구속된 모든 사람의 입맞춤과 애정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죽었으면!” 그러면서 당신의 손바닥을 그 사람의 수염을 깎은 입술에 대고 계신다. 그 사람의 모든 차림으로 보아서 로마인인 것 같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이 주님의 자비를 하느님의 손바닥에서 마셔서 그의 가책의 타는 듯한 느낌을 끈 다음 만족하여 손에서 입술을 뗄 때까지 그대로 계신다.
예수께서는 당신 자리로 돌아오신다. 그리고 지나시는 길에 아주젊은 사람의 굽슬굽슬한 머리 위에 손을 얹으신다. 기껏해야 스무살이나 되었을 것 같고, 혹은 그보다도 더 젊은 것 같기도 하다. 그 사람은 말을 도무지 하지 않았다. 그는 틀림없이 히브리족의 사람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신다. “그런데 자네는 자네 구세주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나?”
젊은이는 고개를 들고 예수를 쳐다본다…. 그 눈길에는 사연이 많이 들어 있다. 그것은 고통과 증오와 뉘우침과 사랑의 이야기이다. 예수께서는 약간 그에게로 몸을 숙이시고 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시며, 거기에서 말없는 어떤 이야기를 읽으시고 말씀하신다. “그 때문에 자네를 ‘여보게’ 라고 부른 걸세. 자네는 혼자가 아닐세. 같은 피를 나눈 모든 사람과 외국인들을 하느님께서 자네를 용서하시는 것처럼 용서하게, 그리고 자네를 구해 준 사랑을 사랑하게. 잠간 나를 따라 오게. 자네에게 개별적으로 한 마디 하고 싶네.”
젊은이가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 간다. 둘이서만 있게 되었을 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다. “여보게, 자네에게 이 말을 하고 싶네. 비록 피상적인 판단으로는 그것이 나타나지 않지만, 주님은 자네를 많이 사랑하셨네. 인생이 자네에게 많은 시련을 겪게 했네. 사람들이 자네에게 많은 해를 끼쳤네. 인생과 사람들이 자네를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몰아갈 수 있었네. 그들 뒤에는 자네의 영혼을 새암하는 사탄이 있었네. 그러나 그의 위에는 하느님의 눈이 있었고, 이 복되신 눈이 자네 원수들을 억제했네. 주님의 사랑은 자네가 가는 오솔길에 자캐오를 보내셨고, 자캐오와 더불어 자네에게 말하고 있는 나를 보내셨네.
이제 자네에게 말하는 내가 확실히 말하겠는데, 자네는 이 사랑에서 자네가 가지지 못했던 모든 것을 얻어내야 하고, 자네의 기분을 거스른 모든 것을 잊어야 하고, 자네 어머니를 용서하고 또 용서해야 하고, 고약한 자네 주인을 용서해야 하고, 자네 자신을 용서해야 하네. 여보게, 자네 자신에 대해서 나쁜 증오를 가지지 말게. 자네가 죄를 지은 때를 미워하지, 그 죄를 떠날 줄 안 자네 정신을 미워하지는 말게. 자네 생각이 자네의 영에 대해서 좋은 친구가 되고, 함께 완전에 이르기를 바라네.”
“완전하게요? 제가요?”
“자네는 내가 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지? 그렇지만 저 사람은 심연의 밑에 내려가 있었네!… 그리고 여보게, 고맙네!”
“무엇 때문에요, 주님? 제가 주님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텐데요….”
“나를 배반하라고 사람들을 매수하는 사람들에게로 가기를 원치 않은데 대해서 말일세.”
“이이고! 주님. 주님이 저희들을, 도둑인 저희들까지도 업신여기지 않으시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있었습니까? 저도 주님께 가릿산에 어린 양을 가져다 드린 사람들 중에 있었습니다. 저희들 중의한 사람이 로마인들에게 붙잡혔습니다. -적어도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확실한 것은 장막절 훨씬 전에 그 사람을 도둑들의 소굴에서 다시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모든 근처의 어떤 계곡에서 주님 말씀을 해 주었습니다…. 그 때는 제가 아직 도둑들과 함께 있지 않았으니까요. 거기에는 지난 아다르달 말에 갔다가 에타님달 초에 그들과 헤어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주님이 고맙다는 말씀을 하실 만한 일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주님은 친절하셨습니다. 저도 착해지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친구 한 분에게 알리려고 했습니다…. 자캐오를 그렇게 부를 수 있습니까?”
“그럼, 그렇게 부를 수 있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가 내 친구들일세… 자네도 내 친굴세. “
“아이고!… 저는 주님이 당신 몸을 조심하시도록 알려 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경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자네에게 되풀이 해 말하네 마는, 자네가 매수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맙게 여기는 걸세. 그것이 가치가 있는 걸세.”
“그러면 경고는 그렇지 않구요?”
“여보게. 증오가 나를 습격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은 아무 것도 없네. 자넨 급류가 넘치는 것을 본 일이 있나?”
“예, 야베스 갈라앗 근처에 있었는데, 요르단강에 이르기 전에 하상에서 넘쳐 나온 강으로 인해서 생긴 폐허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물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있었나?”
“없었습니다. 물이 모든 것을 덮어서 폐허를 만들었고, 집들까지 쓰러뜨렸습니다.”
“증오도 이와 같네. 그러나 증오가 나를 쓰러뜨리지는 못할 걸세. 증오 속에 잠기기는 할 걸세. 그러나 부수어 지지는 않을 걸세, 그리고 지극히 쓴 시간에 죄없는 사람을 미워하려고 하지 않은 사람의 사랑이 내 위안이 될 것이고, 어두움의 그 시간에 어두움 속에서 내 빛이 될 것이고, 쓸개와 몰약(沒藥)을 섞은 포도주잔 속에서 내 단맛이 될 걸세.”
“주님이?… 주님이 당신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마치… 그 잔은 도둑들을 위한 것, 십자가의 죽음으로 가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도둑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죄가 없습니다! 주님은….”
“구속자일세. 여보게 내게 입맞춤을 해 주게.”
예수께서는 젊은이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으시고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신다. 그런 다음 젊은이의 입맞춤을 받으시려고 몸을 숙이신다. 그것은 야윈 뺨을 스치는 수줍은 입맞춤이다…. 그런 다음 젊은이는 울면서 예수의 가슴에 쓰러진다.
“여보게 울지 말게! 나는 사람으로 희생이 되네. 그리고 인생으로는 그것이 고통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즐거운 희생일세.
“예수께서는 젊은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품에 안고 계시다가 손으로 붙잡아 당신 곁에 두신 채 데리고 전에 베드로가 있던 자리로 돌아오신다.
예수께서는 다시 말씀하기 시작하신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동안에 당신들 중의 한 사람,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사람이 설명을 한 가지 청하고 싶다고 말했소. 우리가 곧 사람들 있는 곳으로 가서 서로 헤어져야 할 터이니까, 지금 물어보도록 하시오.”
“제가 그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기를 바라는 사람은 여럿 있습니다. 자캐오도 그것을 잘 설명할 줄 모르고. 저희 중에 선생님의 종교를 믿는 다른 사람들도 설명을 못합니다. 선생님의 제자들이 이곳으로 지나갈 때에 그들에게 물었습니다만, 그들도 명백히 말해 주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알고자 하오?”
“저희들은 우리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적어도 그것을 알고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옛날 작가들이… 그러나 저희들은 고대 작가들의 책을 읽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짐승 같은 인간들이거든요… 그래서 그 영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희는 그걸 모릅니다. 영혼은 무엇입니까? 혹 이성인가요? 저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왠고하니, 그렇다면 저희는 영혼이 없어야만 했을 테니까요. 그런데 저희들은 영혼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도대체 영혼이라는 것이 이성이 아니라면, 무형의 것이라고 하고 불사불멸의 것이라고 하는 영혼은 무엇입니까? 생각은 형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생명과 더불어 끝나니까 불멸의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도 죽은 다음에는 생각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거 보시오. 영혼은 생각이 아니오. 영혼은 영이고, 생명의 무형의 근원이고, 어떤 사람에게도 생명을 주고 사람이 죽은 후에도 계속되는, 만져서 느껴지지 않는, 그러나 참된 근원이오. 그것은 하도 숭고한 것이어서 아무리 강력한 생각도 그것도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요 생각은 끝이 있소. 그러나 영혼은 비록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소. 더없이 행복하게 되거나 지옥에 떨어지거나 계속해서 존재하오. 그 영혼을 깨끗하게 보존하거나 더럽게 했다가 다시 깨끗하게 해서, 창조주께서 사람에게 그의 인성에 생명을 주라고 주셨던 대로 그분께 돌려드릴 줄을 아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하오.”
“그렇지만 영혼이 우리들 안에 있습니까, 또는 하느님의 눈처럼 우리들 위에 있습니까?”
“우리 안에 있소.”
“그러면 죽을 때까지 갇혀 있군요? 노예로?”
“아니오. 여왕으로 있소. 영원하신 분의 생각에는 영혼, 즉 영은 사람 안에, 사람이라고 불리는 창조된 동물 안에 군림하는 것이오. 영혼은 모든 왕중의 왕이시고, 모든 아버지 중의 아버지이신 분에게서 왔고 그분의 입김과 그분의 모습, 그분의 선물과 그분의 권리이며, 사람이라고 불리는 피조물을 가지고 위대한 영원한 나라의 왕을 만들고, 사람이라고 불리는 피조물을 가지고 이 세상의 생명이 끝난 다음 신(神)을 만들라는 사명을 가졌고,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을 가지고 지극히 높으시고 오직 한 분뿐이신 하느님의 집에서 ‘사는 사람’을 만들라는 사명을 가졌으며, 영혼은 여왕으로, 여왕의 권위와 운명을 가지고 창조되었소.
그의 하녀들은 사람의 모든 덕행과 기능이고, 그의 대신은 사람의 착한 뜻이고, 하인은 생각이고, 하녀와 생도는 사람의 생각이오. 생각은 영으로 능력과 진리를 얻고, 정의와 지혜를 얻고, 훌륭한 완전에 올라갈 수가 있소 영의 빛이 없는 생각에는 언제나 결함과 어두움이 있을 것이고, 절대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할 거요. 과연 영혼의 왕권을 잃었기 때문에 하느님과 헤어진 사람에게는 그 진리들이 신비들보다도 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오. 세상을 떠나서 높은 곳으로 비약하면서, 완전한 지능, 완전한 능력, 한마디로 말해서 천주성을 만나러 올라가고 이해하는데 필요불가결한 지렛대의 받침점이 없으면 사람의 생각은 눈이 어둡고 얼이 빠질 거요. 데메테스, 이것은 당신에게 하는 말이오. 그것은 당신이 항상 환전상만은 아니었으므로 알아들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오.”
“선생님은 정말 예언자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환전상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 내리막길의 마지막 단계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나 만일 영혼이 여왕이라면, 왜 군림하지 못하고, 사람의 나쁜 생각과 나쁜 육체를 굴복시키지 않습니까?”
“굴복시키는 것은 자유도 공로도 아닐 것이고, 압제일 거요”
“그러나 생각과 육체는 자주 영혼을 괴롭힙니다. 이건 저와 저희들에 대해서 말라는 것입니다만, 그래서 영혼을 노예를 만드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영혼이 우리 안에 노예로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도 고상한 -선생님은 그것을 ‘하느님의 입김과 그분의 모습’이라고 정의 하셨지요. – 것이 하등의 것에 의해서 품격이 떨어지는 것을 어떻게 하느님께서 허락하실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생각은 영혼이 노예상태를 겪지 말라는 것이었소. 그러나 당신은 하느님과 사람의 원수를 잊고 있소? 하등(下等)의 영들은 당신들도 알고 있소”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영들은 모두가 잔인한 욕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제가 어떤 아이였는지를 기억하면서 제가 이런 인간이 돼서 늙음의 문턱에까지 이른 것은 오직 지옥의 영들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그 때의 길잃은 어린 아이를 다시 찾아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그 때처럼 깨끗하게 될 만큼 어린 아이가 될 수 있겠습니까? 혹 뒤로 돌아 걸어가는 것이 허용됩니까?”
“뒤로 돌아갈 필요는 없소. 당신이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거요. 흘러간 세월은 다시 돌아오진 않소. 흘러간 시간을 돌아오게 할 수도 없고 흘러간 시간으로 돌아갈 수도 없소. 그러나 그것은 필요하지 않소.
당신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피타고라스학파의 학설을 아는 곳에서 왔소. 그것은 틀린 학설이오. 영혼들은 세상에 머무르는 기간이 지난다음에는 절대로 이 세상의 육체로는 돌아오지 않소. 어떤 동물 안으로 돌아올 수 없는 것은, 그와 같이 초자연적인 것이 짐승 안에서 사는 것이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오. 어떤 사람 안으로도 돌아올 수 없는 것은, 만일 그 영혼이 여러 육체 안에 들어 있을 수 있었다면, 최후의 심판에서 육체가 영혼과 다시 결합한 다음에 어떻게 갚음을 받겠느냐 말이오. 그 학설을 믿는 사람들은 계속적인 생(生)을 누리며 계속해서 깨끗해지는 동안에 최후의 재생(여기서 「재생」(再生)이라고 번역한 것은 rfincamation, 즉 영혼이 다른 육체에 들어가 다시 살아난다는 뜻임.)에서야 영혼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완전에 이르기 때문에 그 마지막 육체가 즐거움을 누린다고 말하오. 이것은 오류이고 모욕이오! 이것은 하느님께서 제한된 숫자의 영혼밖에 창조하지 못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류이고, 하느님께 대한 모욕이오. 또 사람을 하도 타락해서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을 얻기가 힘들다고 판단함으로 오류이고 사람에 대한 모욕이오. 사람은 곧 상을 받지 못하고, 백의 아흔 아홉은 죽은 다음에 깨끗하게 함을 거쳐야 할 거요. 그러나 깨끗하게 하는 것은 기쁨을 준비하는 것이오. 그러므로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사람은 벌써 구원을 받은 사람이오. 그리고 구원을 받은 다음에는 마지막 날 이후에 그의 육체와 더불어 즐거움을 누릴 거요. 사람은 그의 영혼을 위하여 육체를 하나밖에 가질 수 없고, 이 세상에서 한 생명밖에 가질 수가 없으며, 그를 낳아준 사람들이 만들어 준 육체와 그 육체에 생명을 주라고 창조주께서 창조해 주신 영혼을 가지고 상급을 받으러 갈 것이오.
시간을 뒤로 거슬러 걸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것과 같이 재생(여기서 「재생」(再生)이라고 번역한 것은 rfincamation, 즉 영혼이 다른 육체에 들어가 다시 살아난다는 뜻임.)이라는 것은 허락되지 않소. 그러나 자유로운 의지의 충동으로 새로 만들어지는 것은 허락되오. 그렇소. 하느님께서는 이 의지에 강복하시고 그것을 도와주시오. 당신들은 모두가 이 의지를 가졌었소. 그러니까 죄인이고 악습에 젖고, 더럽혀지고, 사악하고, 도둑질 하고, 타락하고, 타락시키고, 살인자이고, 독성자(瀆聖者)이고, 간통자인 사람이 뉘우침의 목욕을 하고 나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고, 마치 자신의 죄를 갚고자 하는 의지가 그 속에 어떤 보물이 감추어져있는 병적인 껍질을 산(酸)이 침식해서 부수어 놓는 것과 같이 묵은 사람의 타락한 본질을 부수고, 한층 더 타락한 정신적인 자아를 흩어버리고, 다시 건강하게 되어 새로운 생각과 깨끗하고 좋고 어린애다운 새 옷으로 꾸며진 자신의 깨끗해진 영을 드러내 좋소. 오!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다시 만들어진 영혼을 훌륭하게 덮어 그를 완성된 거룩함인 그의 초월적인 창조에까지 지키고 도와 줄 수 있는 옷이오. 그 완성된 거룩함이 내일에는 -인간적인 정신과 인간적인 시간의 단위로 보면 먼 장래이겠지만, 영원의 생각으로 보면 매우 가까운 내일-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광스러울 것이오.
그리고 그렇게 하기를 원하면 모든 사람이 그들 안에 어린 날의 깨끗했던 어린 아이를 다시 만들 수 있소. 어머니가 가슴에 껴안고,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하느님의 천사가 사랑하고,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바라보시던 다정스럽고 겸손하고 솔직하고 착하던 어린 아이를 말이오. 당신들의 어머니들! 그 어머니들은 어쩌면 덕행을 많이 가진 여민들이었는지 모르오…. 하느님께서는 그 어머니들의 덕행에 상급을 주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지는 않으실 거요. 그러므로 모든 덕행있는 사람을 위하여 오직 한 가지, 즉 착한 사람들을 위한 하느님의 나라만이 있을 때, 그 어머니들과 같이 있게 같은 상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시오. 혹 어머니들이 좋지 않아서 당신들의 파멸에 이바지했을 수도 있소. 그러나 그 어머니들이 당신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당신들이 사랑을 알지 못하고, 이 사랑이 없는 것으로 인해서 당신들이 나쁘게 되었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사랑이 당신들을 거두어들인 지금, 당신들은 거룩하게 되어서, 천상의 기쁨 속에서 어떤 사랑도 초월하는 사랑을 누리도록 하시오.
다른 것 물어볼 것이 있소?”
“없습니다, 주님. 저희들은 모든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다른 것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나는 요한과 안드레아를 며칠 동안 당신들에게 남겨 두겠소. 그다음에는 착하고 지혜로운 제자들을 보내 주겠소. 나는 야생 망아지들이 이스라엘의 망아지들과 같이 주님의 길과 주님의 풀밭을 알기를 원하오. 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왔고, 그들을 모두 똑같이 사랑하기 때문이오. 일어나시오, 갑시다.”
그리고 제일 먼저 개간된 정원으로 나오시고, 그 뒤를 사도들이 바짝 따라 나오며 조용히 불평한다. “선생님은 선생님이 택하신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일이 별로 없는 것처럼 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불평하느냐? 사랑하는 어떤 사람의 마음을 끌고자 할 때에 세상에서도 그렇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나 우리를 온전히 사랑하고, 그래서 이제는 우리 집안 식구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기교가 필요치 않다. 서로 기쁨과 평화 속에 있기 위하여는 서로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하고 숭고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씀하신다. 정말 기쁨을 전달할 만큼 아주 훌륭한 미소이다. 그러니까 사도들은 불평을 하지 않고 서로 주고받는 사랑의 기쁨 속에서 매우 행복스럽게 서로 바라보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