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자캐오의 집에서 나오신다. 아침나절 시간이 좀 흘렀다. 예수께서는 자캐오와 베드로와 알패오의 야고보를 데리고 계신다. 다른 사도들은 아마 벌써 시골로 흩어져서 선생님이 시내에 와 계시다는 것을 알리는 모양이다.
자캐오와 사도들을 데리고 계신 예수의 집단 뒤에는 얼굴 모습과 나이와 옷이 아주… 가지각색인 다른 집단이 있다. 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어쩌면 서로 적대하는 종족들에 속하여 있는데, 인생의 여러가지 사건으로 인하여 팔레스티나의 이 도시에 와서, 그들이 있던 깊숙한 곳에서 빛을 향하여 올라오기 위해 모여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가 어렵지 않다. 대부분은 인생을 여러 가지로 이용하고 남용한 사람들의 퇴색한 얼굴들이고. 어떤 사람들에게서는 국고금 횡령이나 거친 명령… 같은 일에 오래 훈련되어서 탐욕스럽고 냉혹하게 된 눈길을 보게 되는데, 때로는 이 이전의 눈길이 새로운 생활이 그것을 덮어놓은 초라하고 생각에 잠긴 베일을 들치고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은 특히 예리고의 어떤 사람이 업신여기는 태도로 그들을 바라보거나 그들에게 대하여 불손한 언동을 보이거나 할 때에 일어난다. 그러다가는 그들의 눈길이 다시 지치고 겸손한 눈길이 되고, 그들의 머리는 기가 꺾여 숙여진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살펴보시느라고 두 번 뒤돌아서신다. 그리고 말씀을 하시기 위하여 택하셔서 벌써 사람이 잔뜩 모인 장소에 가까이 오는 데 따라 뒤에서 그들이 걸음을 늦추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기다리시기 위하여 걸음을 늦추시고 마침내 말씀하신다. “내 앞으로 지나가시오. 그리고 겁내지 마시오. 당신들은 악을 행할 때에 세상에 저항했으니, 악을 떨쳐버린 지금 세상을 무서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때 세상을 제압하는데 소용되었던 것, 즉 세상으로 하여금 판단하는데 싫증이 나게 하는 유일한 무기인 세상의 판단에 대한 무관심을 지금도 쓰시오. 그러면 세상은 당신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데 싫증이 날 것이고, 비록 느리기는 하겠지만 당신들을 흡수해서 당신들을 이 보잘것없는 세상이라는 무명의 큰 집단 속에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사실 사람들이 너무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열다섯 명인 그 사람들은 복종하여 앞으로 간다.
“선생님, 저기 시골 병자들이 옵니다”하고 예수께로 마주 가며 햇볕으로 따뜻하게 된 한 구석을 가리키면서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가겠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
“사람들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을 벌써 보았으니까. 곧 올 것입니다. 그들과 같이 솔로몬과 엠마오의 요셉과 에페소의 요한과 아르벨라의 필립보도 있습니다. 그들은 아르벨라의 필립보의 집으로 가는데, 요빠와 릿다와 모딘에서 왔습니다. 그들은 해안의 사람들과 여자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은 어떤 여자에 대해서 해야 할 판단에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을 찾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선생님께 말씀을 드릴 겁니다….”
과연 예수께서는 이내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다른 제자들에게 둘러싸이신다. 그들 뒤에는 새로 예수의 가르침에 끌린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에페소의 요한이 없어서, 예수께서 그 이유를 물으신다.
“그 사람은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서 어떤 여자와 여자의 부모와 같이 어떤 집에 있습니다. 여자는 마귀들린 사람인지 예언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고장 사람들의 말로는 그 여자가 놀라운 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여자의 말을 들은 율법학자들은 그 여자를 마귀들린 여자로 판단했습니다. 부모는 여러번 마귀 쫓는 사람들을 불렀었지만, 그 여자에게 붙어 있으면서 그 여자에게 말을 하게 하는 마귀를 내쫓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의 한 사람은 여자의 -그 여자 친정에 그대로 있는 처녀과부입니다. –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당신의 딸에게는 메시아 예수가 필요하오. 그분은 당신 딸의 말을 알아듣고 그 말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 것입니다. 나는 그 여자 안에서 말하는 영에게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고 명하려고 해 보았습니다. 내가 이 이름을 쓸 때에는 어두움의 영들이 항상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즉 베엘제불 자신이 직접 말을 하고, 내가 부르는 이름에까지도 대항하기에 이르던가,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의 성령 자신이고, 따라서 하느님의 영은 그리스도와 오직 한분이시니까 두려워하지 않으신다고. 나는 첫째 해석보다는 오히려 이 둘째 해석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확실히 알기 위하여는 그리스도만이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말을 알아들을 것이고, 그 말이 어디에서 오는지도 아실 것입니다’하고
그래서 그 사람은 거기 있는 율법학자들에게 구박을 당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그 사람도 그 여자와 선생님처럼 마귀들린 사람이라고 언명했습니다. 선생님께 이런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율법학자들은 저희들을 놓아주지 않았고, 여자 곁에도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이 오신 것을 사람들이 그 여자에게 알릴 수 있었는지를 밝히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여자는 선생님의 얼굴과 목소리를 알고, 그래서 수천 명 가운데서라도 선생님을 알아볼 것이라고 말합니다. 15년 전 그의 남편이 혼인잔치하기 전날 죽은 그 시절부터 그 여자가 그의 마을에서 절대로 나온 일이 없고, 그의 집에서조차도 나온 일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또 선생님이 베틀레키라는 그의 마을로 지나가신 일이 한번도 없다는 것도 증명되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은 그 여자가 마귀들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이 마지막 증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여자를 곧 보시겠습니까?”
“아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해야 하는데 여기 이 군중 가운데에서 만나면 너무 소란스러울 것이다. 가서 에페소의 요한과 여자의부모와 율법학자들에게도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에 강을 끼고 있는 수풀, 걸어서 건너는 곳의 오솔길에서 그들 모두를 기다리겠단다고 말해라. 가라.”
그리고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말한 솔로몬을 보내신 다음, 예수께서는 병이 낫기를 청하는 병자들을 보러 가셔서 고쳐 주신다. 관절염으로 관절에 경직이 생긴 나이 먹은 여인과 남자 마비환자와 저능한 젊은이와 결핵에 걸린 것 같은 소녀와 눈병이 있는 두 사람이 있다. 군중은 기쁨의 환성을 지른다.
그러나 병자의 무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슬픔으로 인하여 얼굴이 흥하게 된 한 어머니가 친구인지 친척인지 두 여자의 부축을 받으며 와서 무릎을 꿇으며 말한다. “제 아들이 죽어 갑니다. 그 애를 이리 데려올 수가 없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제한 없이 믿을 수 있소?”
“모두 믿습니다, 주님!”
“그러면 집으로 돌아가시오.”
“제 집으로!… 선생님을 모시지 않고!…” 여자는 한동안 몹시 불안해하며 예수를 쳐다본다. 그러다가 알아듣는다. 가엾은 얼굴이 환하게 변한다. 그리고 여자는 외친다. “가겠습니다, 주님. 그리고 선생님을 보내신 지극히 높으신 분은 찬미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동행한 여자들보다도 더 날쌔게 뛰어 간다….
예수께서는 예리고의 어떤 사람, 점잖은 주민에게로 몸을 돌리시고 물으신다.
“저 여자는 히브리 여자입니까?”
“아닙니다. 적어도 히브리 태생은 아닙니다. 저 여자는 밀레에서 왔습니다. 그렇지만 저희 중의 한 사람과 결혼했고, 그 때부터 우리와 믿음을 같이합니다.”
“저 여자는 많은 히브리인보다 더 잘 믿을 줄 알았습니다” 하고 예수께서 지적하신다.
그리고 어떤 집의 낮은 층계 위에 올라가셔서, 강연을 하시기 전에 침묵을 명하는데 소용되는 팔을 벌리는 늘 하시는 몸짓을 하신다. 사람들이 조용해지자, 몸짓을 하실 때에 가슴 앞에 벌어졌던 겉옷의 주름을 모아서 왼손으로 잡으시고, 오른손은 맹세를 하는 사람의 자세로 내리시면서 말씀하신다. “예리고의 주민 여러분, 주님의 비유를 들으시오. 그런 다음 각자가 마음속으로 그 비유들을 묵상해서, 교훈을 끌어내어 그의 정신에 양식을 주도록 하시오. 여러분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하느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 어제나 지난달의 일도 아니고, 지난겨울의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선생이 되기 전에 내 예고자 요한이 내가 오는 것에 대한 준비를 시켰고, 내가 선생이 된 다음부터 내 제자들이 이 땅을 일곱 번씩 일곱번이나 갈아서, 내가 그들에게 준 모든 씨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말과 비유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죄인이었다가 나중에 회개한 사람들을 누구와 비교할까요?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병이 낫는 병자들과 비교하겠습니다. 공공연하게 죄를 짓지 않았거나, 이런 사람은 검은 진주보다도 더 드물지만, 숨어서라도 중한 죄를 지은 일이 없는 다른 사람은 어떤 사람과 비교할까요? 그런 사람들은 건강한 사람에 비하겠습니다.
세상은 영의 문제에 있어서나 살과 피의 문제에 있어서나 이 두가지 부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비교들은 같다 하더라도, 육체에 병이 들었다가 나은 병자들에 대해서 세상이 쓰는 방법은 회개한 죄인들, 즉 건강을 회복하는 영적인 병자들에 대해서 쓰는 방법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어떤 병자가, 가장 위험한 병자이어서 그 위험 때문에 격리해야 하는 문둥병자까지도 치유의 은총을 얻게 되면, 사제의 검사를 받고 정결례를 행한 다음, 사회에 다시 받아들이고, 그가 살던 도시의 사람들은 그가 나아서 목숨을 다시 얻고, 가족과 사업에 돌아왔기 때문에 그를 환영하기까지 합니다. 문둥병자였던 어떤 사람이 은총을 얻어 병이 낫게 되면, 그 가족과 도시에 큰 즐거움이 됩니다! 집안 식구들이나 주민들은 앞 다투어 이 물건이나 저 물건을 가져다주고, 그 사람이 혼자이고 집도 없고 가구도 없으면, 침대나 가구를 그에게 줄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이렇게 말합니다.‘저 사람은 하느님의 특은을 받은 사람이다. 하느님의 섭리가 코를 낫게 하셨으니 그를 명예롭게 하고, 그를 다시 창조하신 분을 공경하자’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또 이와 반대로 불행히도 어떤 사람이 문둥병의 첫번 증세를 보이면, 아직 그렇게 할 수 있는 동안은 부모와 친구들이 얼마나 가슴아파하는 사랑을 가지고 그에게 애정을 듬뿍 줍니까? 마치 여러 해에 걸쳐 그에게 주었을 애정의 보배를 단 한번에 주어서, 살아서 들어가는 그의 무덤으로 그것들을 가져가게 하려는 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왜 다른 병들에 대하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죄를 짓기 시작하고, 집안 식구들과, 특히 동향인들이 그것을 봅니다. 그러면 왜 그들은 그 사람을 사랑으로 죄에서 빼내려고 힘쓰지 않습니까? 어머니, 아버지, 아내, 자매는 아직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형제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벌써 어렵고, 사촌형제들이 그렇게 한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끝으로 동향인들은 비판하고, 조롱하고, 건방지게 굴고, 눈쌀을 찌푸리고, 죄인의 죄를 과장하고, 그 사람을 손가락질 할 줄밖에 모릅니다. 그리고 가장 의로운 사람들은 그 사람을 문둥병자처럼 멀리하고, 의롭지 못한 사람들은 그 사람의 비용으로 즐기기 위해서 공범자가 될 줄밖에 모릅니다. 한 입과 특히 한 마음이 연민과 굳셈과 참을성과 초자연적인 사랑을 가지고 그 불행한 사람을 찾아가서, 죄 속으로 내려가는 것을 억제하는데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영의 병이 더 중하고, 정말 중하고 치명적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병이 하느님의 나라를 영원히 빼앗아 가지 않습니까?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첫째 사랑이 그의 영혼의 이익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 죄인의 병을 고쳐 주는 그 일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한 죄인이 회개했을 때, 왜 그를 끝내 비판하려 하고, 그가 영적인 건강을 회복한 것을 애석하게 여기는 것 같이 합니까? 여러분의 동향인들 중의 한 사람에 대한 확실한 영벌을 점치던 여러분의 예상이 거짓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을 보아서 그렇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오히려 그것을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거짓이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자비로우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혹은 더 중하고 혹은 덜 중한 잘못을 저지른 후에 여러분에게 다시 용기를 내게 하시려고 당신 인자를 듬뿍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어떤 마음의 착한 뜻이 깨끗하고, 훌륭하고, 형제들의 존경과 그들의 감탄까지도 받을 만하게 만든 것을 왜 끝내 더럽혀지고, 업신여길만하고 외따로 떨어져 있어 마땅한 것이 남아 있는 것을 보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나 나귀나 낙타나 양떼의 양이나 마음에 드는 비둘기가 병들었다가 나으면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외부 사람이 문둥병자로 격리되어 있던 시절에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겨우 이름이나 아는 그 사람이 다시 병이 나은 사람이 되면 분명히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저 영의 병나음과 하느님의 저 승리는 왜 기뻐하지 않으십니까? 한 죄인이 회개하면, 하늘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하늘, 즉 하느님과 가장 순수한 천사들, 죄를 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인 여러분은 하느님보다도 더 단호하게 되고자 하십니까?
제발 여러분의 마음을 올바르게 하시오. 그리고 성전의 유향 연기와 찬송가 속에, 대사제를 통하여 주님의 거룩하심이 들어가야 하고, 그 이름이 가리키는 것처럼 거룩해야 하는 곳에만 주님께서 계신 것을 인정하지 말고, 다시 살아난 저 영들의 기적과, 하느님의 사랑이 제물에 불을 붙이기 위하여 당신의 불을 가지고 내려오시는 새롭게 봉헌된 제단의 기적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시오.”
예수의 말씀은 찬미의 환성을 올리며 예수께 경배를 드리고 싶어하는 조금 전의 어머니 때문에 중단된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의 말을 들으시고 강복을 주시고 집으로 돌려보내시고 나서 중단된 말씀을 다시 시작하신다.
“또 전의 여러분에게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광경을 보였던 한 죄인에게서 교훈이 되는 광경을 받게 되거든 그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오히려 본받으시오. 다른 사람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은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전에 비난의 대상이었다 하더라도 항상 들어야 하는 교훈입니다. 도와주고 본받으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주님을 찬미하고, 주님의 말씀을 이해했다는 것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말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속으로 비판하는 그런 사람들 같이 되지 마시오. 오히려 여러분의 모든 착한 행동이 여러분의 모든 착한 말을 완성하도록 하시오. 그러면 영원하신 분께서 정말 호의를 가지고 여러분을 보시고 여러분의 청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어떤 것들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알기 위하여 이 다른 비유를 들으시오. 이 비유는 여러분에게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좋지 않은 생각을 고치도록 가르쳐 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들 자신을 스스로 판단합니다. 그런데 천 명 중에서 한 사람이나 참으로 겸손하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는 완전하다고 판단하면서 이웃에게서는 수백 개의 죄를 알아보는 일이 생깁니다.
어느날 볼 일이 있어서 예루살렘에 갔던 두 사람이, 어떤 이스라엘사람이든지 착한 사람이면 성도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파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전자는 어떤 상점들의 수입을 받고 성도 근처에서 살고 있던 관리인들에게서 회계 보고를 받기 위해서 갔었습니다. 후자는 그가 징수한 세금을 바치고, 배와 그물에 대한 세금을 낼 수가 없는 과부의 이름으로 동정을 구하려고 갔었습니다. 과부의 맏아들이 하는 고기잡이로는 다른 많은 아들을 먹이기도 빠듯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기 전에, 바리사이파 사람은 상점 경영자들에게 들러서 상점들을 살펴보았는데, 상점에는 상품과 사는 사람이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만족을 느끼고, 그곳 경영자를 불러서 말했습니다. ‘자네 장사가 잘 되는 걸 알겠네.’
‘예, 하느님 덕택으로, 저는 제 일에 만족합니다. 상품 재고를 늘릴 수 있었는데, 한층 더 늘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상점을 개량했습니다. 그래서 오는 해에는 진열대와 선반에 대한 지출이 없겠습니다. 그러니까 이익이 더 남을 것입니다.’
‘좋네! 좋아! 그게 기쁘네! 이 장소 값을 얼마 내나?’
‘한 달에 100드라크마입니다. 비쌉니다. 그렇지만 자리가 좋습니다.
‘자네 말이 맞네. 자리가 좋으네. 따라서 납부금을 곱절로 올리겠네.’
‘아니, 나으리’하고 장사꾼이 부르짖었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나으리께서 이득을 전부 빼앗아 가시는게 됩니다!’
‘그건 정당하네. 혹 내가 내 희생으로 자네를 부자를 만들어야 하겠나? 빨리 2천 4백 드라크마를 내게. 그것도 즉시 그렇지 않으면 자넬 내쫓고 물건을 내가 가지겠네. 이 장소는 내 것이니까 내가 마음대로 하네.’
그의 첫째, 둘째, 셋째 경영자에게 이렇게 해서 납부금을 모두에게 곱절로 올리고, 무슨 청을 해도 못 듣는 체했습니다.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셋째 경영자가 저항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는 경비원들을 불러 봉인을 하게하고, 불쌍한 사람을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그런 다음, 그의 저택에서 관리인들을 게으름쟁이로 몰아 벌하고, 그들이 정당한 권리로 떼어둔 몫까지 빼앗을 구실을 찾아내기 위하여 관리인들의 장부를 검사했습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은 아들이 죽어 가서 많은 지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약값을 치르기 위해 그의 기름을 일부분 팔았었습니다. 그러므로 까다로운 주인에게는 아무 것도 줄 것이 없었습니다.
‘주인어른,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심시오. 제 가엾은 아들이 죽어갑니다. 그러니까 다음에 추가로 일을 해서 주인어른께서 정당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을 갚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시다시피 할 수가 없습니다.’
‘할 수가 없어? 자네가 할 수 있는지 할 수 없는지 내가 보여 주겠네.’ 그러면서 가엾은 관리인들을 데리고 압착기에 가서, 그 사람이 보잘것없는 양식으로 또 밤 동안에 아들을 간호할 수 있게 하여 줄 등잔에 기름을 넣으려고 남겨 두었던 나머지 기름을 빼앗았습니다.
한편 세리는 상관에게 가서 징수한 세금을 바치고 나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엔 3백 60아스(AS, 고대 로마 시대의 청동화폐.)가 모자라는구먼. 어떻게 된 일인가?’
‘이렇습니다, 말씀 드리지요. 그 시내에는 아이 일곱을 둔 과부가 있습니다. 맏이만 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만, 배를 몰고 호숫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는 가지를 못합니다. 팔이 아직 약해서 노를 저을 수도 없고 돛을 다룰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배를 부릴 사환도 쓸 수가 없습니다. 호숫가 가까이에만 있기 때문에 고기를 별로 잡지 못해서, 그가 잡는 고기로는 불쌍한 여덟 식구를 먹여 살리기에도 벅찹니다. 그래서 저는 세금을 요구할 마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알겠네. 하지만 법은 법일세. 법이 동정을 하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불행한 일일세! 모두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한 이유들을 찾아낼 터이니까. 그들이 세금을 낼 수 없으면, 젊은이가 직업을 바꾸고 배를 팔라고 하게.’
‘그것이 미래의 그들의 밥벌이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추억이기도 하구요.’
‘알겠네. 하지만 타협할 수가 없네’
‘좋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들의 유일한 재산을 잃은 불행한 여덟 사람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제 주머니에서 3백 60 아스를 물겠습니다.’
이런 일들을 하고 나서 두 사람은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헌금함이 있는 방을 지나가면서 바리사이파 사람은 보라는 듯이 품에서 묵직한 돈주머니를 꺼내서 마지막 한 년까지 헌금함에 털어 넣었습니다. 그 주머니 속에는 장사꾼에게서 가외로 받아낸 돈과 관리인에게서 빼앗아서 즉시 장사꾼에게 판 기름 값이 들어 있습니다. 한편 세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떼어 놓은 다음 동전 한 줌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그러니까 두 사람 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을 바쳤는데, 바리사이파 사람은 그가 가지고 있던 것을 마지막 한 푼까지 바쳤기 때문에, 남보기에는 가장 너그러운 것으로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저택에는 다른 돈이 있었고, 돈 많은 환전상들에게 빌려준 돈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거기서 두 사람은 주님 앞으로 갔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은 맨 앞으로 지성소 쪽으로 있는 히브리인들의 안마당이 있는 경계에까지 갔고, 세리는 저 끝쪽, 거의 여자들의 마당으로 가는 둥근 천장 밑에서 하느님의 완전에 비해서 자기가 얼마나 비참한가 하는 생각에 짓눌려 몸을 구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기도를 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은 마치 자기가 그곳 주인이고, 자기가 방문객에게 경의를 표해 주기라도 하는 듯이 꼿꼿이 서서 말했습니다. ‘여기 제가 우리의 영광인 집에 당신을 공경하러 왔습니다. 제가 의인이기 때문에 당신이 제 안에 계시다는 것을 느끼지만 저는 왔습니다. 저는 의인일 줄을 압니다. 그러나 비록 그런 것이 제 공로로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법률이 그렇게 명하기 때문에 제가 그런 것에 대해서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저와 동시에 동전 한 줌을 헌금함에 집어넣은 저 세리와 같이 탐욕스럽지도 않고, 부정(不正)하지도 않고, 간통자도 아니고, 죄인도 아닙니다. 저는 당신도 보셨지만, 제 몸이 지녔던 것을 모두 바쳤습니다. 이와 반대로 저 인색한 자는 두 몫을 만들어서 작은 몫은 당신께 바쳤고, 다른 몫은 틀림없이 진수성찬과 여자들을 위해서 남겨 놓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깨끗합니다. 저는 더럽히지 않습니다. 저는 깨끗하고 올바릅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을 하고, 제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해서 십일조(十一租)를 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거룩하기 때문에 깨끗하고 올바르고 축복받았습니다. 주님, 이것을 잘 기억하십시오’
세리는 그가 있는 멀리 떨어진 구석에서 성전의 값진 문들을 향하여 감히 눈을 들지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의로우시고 거룩하시지만, 사람은 죄인이고, 또 당신께로 오지 않으면 마귀가 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여기 오는 것을 제게 아직 허락하십니다. 오! 주님! 저는 밤낮으로 당신을 공경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많은 시간을 제 일에 매여서 지냅니다. 가장 불행한 제 이웃에게는 그것이 고통이기 때문에 제 기를 꺾는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 밥벌이이기 때문에 제 상관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하느님, 제 상관들에 대한 의무를 불쌍한 제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 일치시킬 줄을 알게 하셔서, 제 일에서 제 유죄판결을 얻지 않게 해 주십시오.제 마음속에 항상 당신의 사랑이 머물러 있게 하시어, 당신이 큰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과 같이, 보잘것없는 인간인 제가 제 밑에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길 줄을 알게 해 주십시오. 주님, 제가 주님께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는 것을 당신은 아십니다. 그러나 성전에 드리기로 된 돈을 헌금함에 넣어서 죄없는 불행한 사람 여덟 명에게 슬픔으로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보다는 그 불행한 여덟 마음을 구해주기 위해서 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만일 제가 잘못 생각했으면 알려 주십시오, 그러면 마지막 한 푼까지도 당신께 바치고 제 고장으로는 걸어서 걸식을 해 가면서 돌아가겠습니다. 당신의 정의를 깨닫게 해 주십시오, 주님, 저는 큰 죄인이오니,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이것이 비유입니다. 나 정말 진정으로 말합니다마는, 바리사이파사람은 이미 모리아산을 더 올라가기 전에 지은 죄들에 새 죄를 더 보태 가지고 성전에서 나왔는데, 세리는 의롭게 되어서 성전에서 나왔고, 하느님의 강복이 그를 집에까지 따라 가서 머물렀습니다. 세리는 겸손하고 자비로웠고, 그의 행동이 그의 말보다 훨씬 더 거룩했는데, 바리사이파 사람은 말로만 그리고 겉으로만 착하고, 마음속으로는 사탄의 일꾼이 되어 교만과 냉혹한 마음으로 사탄의 행동을 했고, 그런 이유로 하느님께서 그를 미워하셨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조만간 항상 창피를 당할 것입니다. 여기서 당하지 않으면, 내세에서 당할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특히 저 하늘에서 찬양을 받을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사람의 행동의 참다운 진실을 보는 것입니다.
자캐오, 갑시다. 자캐오와 같이 있는 사람들과 내 사도들과 제자들도 가자. 나 너희들에게 개별적으로 또 말하겠다.”
그리고 겉옷으로 푹 감싸시고 자캐오의 집으로 돌아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