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또 산중에 계신데, 사도들과 제자들 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따라 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이제는 이전에 목자였던 제자들도 있는데, 아마 일행이 지나온 어떤 작은 마을에서 만난 모양이다. 예수께서는 계곡에서 산비탈을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로 해서 산으로 올라가시는데, 그 길은 흔동할 수 없는 포장공사와 정성들인 유지로 보아 로마인들이 만든 길인 것이 틀림없다. 이런 것들은 로마인들이 건설하고 유지하는 도로에서만 만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길을 지나서 계곡 쪽으로 가거나, 꼭대기에 마을이나 도시가 있는 산맥으로 올라간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와 예수 뒤에 따라가는 사람들을 보고누구냐고 물으면서 따라 오고, 어떤 사람들은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비웃는다.
로마 군인들의 한 분견대가 무기와 갑옷의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육중한 걸음으로 일행을 따라 왔다. 그들은 로마인들의 길을 떠나 마을이 있는 꼭대기로 가는 유다인들의… 길로 들어서려고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려고 얼굴을 돌린다. 그 길은 조약돌이 많고 비가 왔기 때문에 질다. 그래서 조약돌을 밟는 발이 미끄러지기도 하고 수레바퀴 자국에 빠지기도 한다. 병사들도 분명히 같은 도시 쪽으로 가는 모양인데, 잠간 쉬고 나서 다시 행진을 시작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엄격하게 통솔된 분견대에 자리를 내주기 위하여 길옆으로 비켜 설수밖에 없게 된다. 욕설 몇 마디가 공중으로 날카롭게 울린다. 그러나 열을 지어 행진하는 규율은 병사들에게 같은 말로 대꾸하는 것을 막는다.
병사들은 다시 예수 가까이에 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지나가게 하시려고 비켜서서 지극히 온화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신다. 그 눈은 사파이어 빛깔의 홍채(虹彩)의 빛으로 그들에게 강복하고 그들을 어루만지는 것 같다. 병사들의 딱딱한 얼굴은 희미한 미소로 빛나는데, 그 미소는 빈정거리는 웃음이 아니라, 오히려 인사와 같이 경의를 표하는 웃음이다.
그들은 지나간다. 사람들은 맨 앞에 서서 가시는 예수의 뒤에서 다시 걷기 시작한다. 한 젊은이가 군중에서 떨어져 나와 선생님께로 와서 공손히 인사한다. 예수께서도 그에게 답례를 하신다.
“무슨 말씀을 한 가지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말하시오.”
“저는 과월절 후에 가릿 협곡 근처의 산 곁에서 우연히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저도 선생님이 부르시는 사람들 가운데 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기 전에, 저는 할 필요가 있는 것이 무엇이며,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어떤 사람은 저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더 강경하고 덜 강경한 차이는 있어도 모두가 한가지 점에는 일치하는데, 그것은 완전해야 한다는 의무에 대해서였기 때문에 자신이 없고 공포에 사로잡히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주님. 그리고 완전은 하느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두번째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직접 ‘완전하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낙심했습니다. 세번째는 며칠 전 성전에서 였습니다. 그런데 비록 선생님이 엄하기는 하셨지만 완전하게 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왜 그런지조차도 모르겠고, 어떻게 이해할지 어떻게 선생님께 설명 드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거나 신이 되는 것 같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그렇게도 위험한 일이면, 우리를 구하러 오신 선생님이 우리에게 그것을 권하지 않으셨을 것 같이 생각되었습니다. 자만은 죄이고, 하느님같이 되기를 원하는 것은 루치펠의 죄니까요. 그러나 아마 죄를 짓지 않고 하느님같이 되기 위해 완전하게 되는 방법이 있을 터인데, 그것은 확실히 구원의 가르침인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일 것입니다. 제가 말씀을 제대로 드렸습니까?”
“제대로 말했소. 그런데?”
“그래서 저는 계속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았고, 선생님이 라마에 계시다는 말을 듣고 그리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선생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점점 더 오고 싶습니다….”
“그러면 오시오! 무엇을 염려하오?”
“모르겠습니다…. 저 자신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묻고 또 묻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선생님의 말씀을 듣노라면 쉬운 것 같이 생각되어서 오기로 결심을 하는데, 그 다음에 곰곰 생각하고,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에게 물어보면 너무 어려운 것 같이 생각됩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말해 주겠소. 그것은 당신을 오지 못하게 하려는 마귀의 계략이오. 마귀는 환상으로 당신에게 겁을 주고, 당신을 정신없게 만들고, 당신과 마찬가지로 빛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게 하오… 왜 직접 내게로 오지 않았소?”
“그것은… 저는… 무서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제들과 라삐들은! 대단히 엄격하고 교만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저는 감히 선생님께 가까이 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엠마오에서, 어제! …오! 저는 겁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와서 제가 알고 싶던 것을 선생님께 여쭈어 보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선생님의 사도 한 분이 ‘겁내지 말고 가 보시오. 선생님은 죄인들에 대해서까지도 인자하시오’하고 말했습니다. 또 한 분은 ‘당신의 신뢰로 선생님을 기쁘게 해 드리시오. 선생님께 신뢰를 가지는 사람은 선생님이 어머니보다도 더 다정스러우신 것을 알게 되오’하고 말했습니다. 또 한 분은 ‘내가 잘못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선생님은 완전히 사람애 있다고 말씀하실 거라고 장담하오’하고도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사도들이 말해 준 것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제자들보다 더 친절한 어떤 사도들은 말입니다.
그렇지만 전부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 중에는 선생님의 목소리의 메아리 같은 어떤 사람들이 있지만, 그 수는 별로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도들 가운데에는 저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에게는 겁을 주는… 분도 더러 있습니다. 그중 한 분은 착하지 않은 웃음을 웃으면서 ‘완전하게 되고 싶다구요? 사도들인 우리도 완전하지 못한데, 당신이 완전하기를 원한다구요? 그건 불가능한 일이오’하고 말했습니다. 만일 다른 분들이 말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낙심해서 도망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시도를 합니다…. 만일 선생님도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씀해 주시면….”
“젊은이, 그래 내가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일을 권하려고 올 수 있었겠소? 완전하게 되고 싶다는 그 욕망을 누가 당신 마음에 생기게 한 줄로 생각하오? 당신의 마음이 그렇게 생각했소?”
“아닙니다, 주님. 제 생각에는 선생님이 선생님의 말씀으로 그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당신은 진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소. 그러나 또 대답하시오. 당신 생각에 내 말은 무엇이오?”
“올바른 말씀입니다.”
“됐소.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내 말이 사람의 말이냐, 그렇지 않으면 사람 이상인 어떤 이의 말이냐 하는 것이오.”
“오! 선생님은 영원한 지혜처럼 말씀하시는데, 훨씬 더 부드럽고 명백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말씀은 사람 이상인 어떤 분의 말씀이라고 장담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성전에서 말씀하신 것을 제가 잘 알아들었으면, 제 생각이 틀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때 선생님은 선생님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말씀하셨고 따라서 선생님은 하느님으로서 말씀하시는 것 같이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제대로 이해했고 제대로 말했소. 그러면 누가 당신 마음에 완전에 대한 욕망을 넣어 주었소?”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이신 선생님을 통해서 넣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이시오. 이제는 곰곰 생각해 보시오. 사람의 능력을 아시는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내게로 오너라. 완전하게 되어라’하고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이 원하기만 하면 완전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하느님께서 아신다는 뜻이 되오. 이것은 오래 된 말이오. 이 말은 맨 처음 계시처럼, 명령처럼, 권고처럼 아브라함의 귀에 울렸소. ‘나는 전능한 하느님이다. 너는 내 앞을 떠나지 말고 흠없이 살아라’하고. 하느님께서는 성조(聖祖)가 이 명령의 거룩함과 권고의 진실함에 대하여 의심을 하지 않도록 하시려고 그에게 나타나셨소. 당신 앞을 떠나자 말라고 명령하신 것은 사는 동안에 움직이는 사람이 그것을 하느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한다고 확신하면, 나쁜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오. 따라서 그는 하느님께서 그렇게 되라고 권하시는 대로 완전하게 될 수 있는 조건에 있게 되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것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 선생님!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때는 정말 모든 것을 알아듣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왜 선생님의 제자들과 그 사도까지도 성덕에 대해서 그렇게도… 무서운 생각을 나타냅니까? 혹 그 사람들은 그 말들과 선생님의 말씀을 참말이라고 믿지 않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하느님 앞에서 움직일 줄을 모르는 것입니까?”
“그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지 마시오. 판단하지 마시오. 이거 보시오, 젊은이. 때로는 완전하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과 그들의 겸손이 결코 그렇게 되지 못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게 하오.”
“그렇지만, 그러면 완전에 대한 욕망과 겸손은 완전하게 되는데 장애가 됩니까?”
“아니오. 욕망과 겸손이 장애가 아니오. 그것들을 깊이있게, 그러나 질서 있게 가지도록 힘쓰는 것까지도 필요하오. 무분별하게 서두르지 않고 이유없이 낙담하지 않고, 사람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전하게 될 수가 없다고 믿는 것 같은 의심과 불신이 없을 때 욕망과 겸손은 질서 있는 것이 되오. 모든 덕행이 필요하고, 의덕에 이르고자하는 강한 욕망도 필요하오.”
“그렇습니다. 제가 질문을 한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덕행들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런 덕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이들은 저런 덕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거룩하게 되는데 불가결한 것이라고 추천하는 덕행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확언했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저는 겁이 났습니다. 어떻게 모든 덕행을 완전한 형태로 갖출 수 있고, 그것들을 여러 가지 꽃으로 만들어진 꽃다발처럼 함께 나게 할 수 있습니까? 시간이 필요한데… 인생은 몹시 짧으니 말입니다! 어떤 덕행이 불가결한 것인지 선생님이 설명해 주십시오.”
“그것은 사랑이오. 당신이 사랑하면 거룩할 거요. 지극히 높으신 분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모든 덕행과 모든 선행이 오기 때문이오.”
“그렇습니까? 따라서 더 쉽군요. 그러면 거룩함은 사랑이고, 제가 사랑을 가지면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것이로군요…. 거룩함은 이것으로 이루어졌군요.”
“그것으로, 또 다른 덕행들로 이루어졌소. 거룩함이란 겸손만 하거나 조심성 있기만 하거나 순결하기만 하거나 등등이 아니라, 덕행들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오. 이거 보시오, 젊은이. 어떤 부자가 연회를 하고자 할 때에 혹 요리를 한 가지만 시키오? 또 어떤 사람이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드리려고 꽃다발을 만들고자 할 때에 혹 꽃 한 송이만을 쓰오? 그렇지 않지요? 한 가지 요리만을 식탁들에 놓으면, 손님들은 주인이 손님들의 다양한 취미에는 마음을 쓰고 또 각자가 이 요리나 저 요리를 배불리 먹을 뿐 아니라 즐기기도 바라는 양반의 통찰력은 보이지 않고 그의 물건 살 수 있는 능력을 보이는 데만 마음을 쓰는, 무능한 주인이라고 비난하겠기 때문이오. 또 꽃다발을 만드는 사람도 마찬가지요. 꽃 한 송이로는, 그것이 아무리 큰 꽃이라도 꽃다발이 되지 못하고,꽃다발을 만들려면 많은 꽃이 필요하오. 그래야 여러 가지 빛깔과 향기가 눈과 후각을 즐겁게 하고, 주님을 찬미하게 하오. 주님께 바치는 꽃다발처럼 생각해야 하는 거룩함은 모든 덕행으로 이루어져야 하오. 어떤 정신에서는 겸손이 우세할 것이고, 어떤 정신에서는 힘이, 어떤 정신에서는 절제가, 또 어떤 정신에서는 참을성이, 또 어떤 정신에서는 희생  정신이나, 속죄 정신이 우세할 것인데, 이 모든 덕행이 사랑이라는 아름답고 완전한 향기가 나는 초목의 그늘에서 나는 것들이오. 이 사랑의 꽃이 항상 꽃다발에서 지배적이겠지만, 거룩함을 이루는 것은 모든 덕행이오.”
“그런데 어떤 덕행을 더 정성스럽게 닦아야 합니까?”
“내가 말한 것과 같이 사랑이오.”
“그 다음에는요?”
“순서가 없소, 젊은이. 만일 당신이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이 당신의 선물들을 당신에게 주실 것이오. 즉 자기 자신을 주님이 당신에게 주실 것이오. 그러면 당신이 힘있게 자라게 하려고 애쓰는 덕행들이 은총의 태양 아래에서 자랄 것이오.”
“달리 말하면, 사랑하는 영혼 안에는 하느님이 계셔서 크게 활동하신단 말씀이지요?”
“그렇소. 크게 활동하시는 하느님이 계신데,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스스로 완전을 지향하고자 하는 그의 자유의지와 그가 할 생각을 가진 것에 충실하기 위하여 유혹을 물리치려고 하는 노력과 육신과 세속 마귀가 공격할 때에 그것들과의 싸움을 보태게 내 버려두시오. 그런데 이것은 당신의 아들이 그의 성덕에 공로가 있게 하기 위란 것이오.”
“아! 그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같이 완전할 수 있게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매우 옳은 것이로군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이제는 제가 알았으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당신 생각을 내 마음 속에 간직하겠소. 가시오, 그리고 하느님께서 당신을 도움없이 내버려두실까 봐 걱정을 하지 마시오.”
젊은이는 만족하여 예수와 헤어진다….
일행은 이제 마을 가까이에 왔다. 바르톨로메오가 스테파노와 같이 예수께로 와서, 예수께서 젊은이와 말씀하시는 동안 바리사이파사람 엘키아의 친척인 베테론의 어떤 사람이 와서 선생님을 즉시 죽어 가는 자기 아내 곁으로 모셔와 달라고 청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가자. 말은 나중에 하겠다. 그 여자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
“그 사람이 하인 한 사람을 남겨 놓았습니다. 하인은 뒤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오게 하여라. 그리고 걸음을 재촉하자.”
하인이 달려온다. 튼튼한 노인인데, 비탄에 잠겨 있다. 그는 인사를 하고 예수를 아래쪽에서 올려다본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미소를 지으시며 물으신다.
“당신의 안주인이 무슨 병으로 죽어갑니까?”
“저… 아기를 낳게 되어 있었지만, 아기가 뱃속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피가 썩었습니다. 미친 사람처럼 헛소리를 하고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열을 내리게 하느라고 정맥을 절개했습니다만, 피에 완전히 독이 들어 있어서 돌아가실 것입니다. 열을 식히기 위해서 빗물받이 웅덩이에 넣었습니다. 안주인이 찬 물 속에 있는 동안은 열이 내리지만, 그 다음에는 전보다도 더 높아지고, 기침을 하고 또 합니다…. 돌아가시게 됐습니다.”
“물론이지! 그런 치료로는!” 하고 마태오가 입 속으로 중얼거린다.
“언제부터 병들었습니까?”
하인이 대답하려고 하는데 로마 중대장이 내리받이로 뛰어 내려온다. 그는 예수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이 나자렛 선생님이시지요?”
“그렇소. 내게 무엇을 원하시오?”
예수를 따라 가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나 하고 달려온다
“어느날 저희 말들 중의 한 마리가 히브리 어린이에 부딪쳤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히브리인들이 저희를 반대해서 시위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어린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이제는 히브리인의 돌들이 병사 한 사람을 쓰러뜨려서 다리가 부러진 채 누워 있습니다. 저는 임무 수행 중이어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마을에서 아무도 그 병사를 받아 주지 않습니다. 그는 걸을 수가 없고, 저는 다리가 부러진 그를 끌고 갈 수가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모든 히브리인이 그러는 것처럼 저희들을 업신여기지 않으시는 것을 압니다.”
“나더러 그 병사를 고쳐 달라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선생님.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 주셨고. 발레리아의 어린 딸도 고쳐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의 동포들의 분노에서 알렉산데르를 구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고위층에서도 알고 있고, 일반 서민들도 알고 있습니다.”
“병사를 보러 갑시다.”
“그러면 제 안주인은요?”하고 하인이 불만스럽게 말한다.
“나중에.” 그리고 예수께서는 계급을 지닌 병사 뒤로 걸어가신다. 하사관은 근육이 발달하고 거추장거리는 옷의 방해를 받지 않는 다리로 성큼성큼 길을 걸어간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사람 앞에 걸어가면서도 그는 바로 뒤에 따라 오는 사람에게 몇 마디 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사람은 예수이시다. 하사관은 말한다. “저는 알렉산데르와 함께 있었습니다. 알렉산데르는 선생님을… 선생님에 대한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지금 저를 선생님 곁에 있게 하는군요.”
“우연이오? 왜 하느님이라고. 말하지 않소? 참 하느님?”
군인은 잠시 잠자코 있다가 예수만이 들으실 수 있을 만큼 말한다. “참 하느님은 히브리인들의 하느님일 터인데요. 그러나 사랑을 받게 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 하느님이 히브리인들 같다면! 그들은 동정심이 없습니다. 부상자에 대해서까지두요….”
“참 하느님은 히브리인들의 하느님이신 것과 같이 로마인, 그리이스인, 아랍인, 파르티인, 스키티아인, 이베리아인, 갈리아인, 켈트족 사람들, 리비아인, 북방 민족들의 하느님이시오. 하느님은 한 분밖에 안계시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어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소. 만일 그들이 하느님을 잘 알면, 형제들과 같을 것이고, 불의 ,증오 중상, 복수, 음란, 도둑질과 살인, 간통과 거짓말이 없을 거요. 나는 참 하느님을 알고 있소. 그리고 그분을 알게 하려고 왔소.”
“사람들이 말하기로는… 저희는 백부장들에게 보고하기 위해 항상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합니다. 백부장들은 총독에게 보고하구요. 사람들이 말하기로는 선생님이 하느님이시라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병사는 그 말을 할 때에 매우… 열중한다. 그는 투구 그늘 밑에서 예수를 쳐다보고, 거의 겁을 집어먹은 것 같다.
“나는 하느님 이오.”
“맙소사! 그러면 신들이 내려와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군기를 따라 세상을 두루 다닌 다음 나이 먹어 여기 와서 신을 한 분 만나다니!”
“하느님이오. 오직 한 분뿐인. 신 한분이 아니오” 하고 예수께서 바로잡아 주신다.
그러나 신 한분의 앞장을 서서 간다는 생각에 어리둥절하여… 이제는 말을 하지 않고… 곰곰 생각한다. 그는 그들이 바로 마을 어귀에서 땅에 누워 신음하는 부상자 둘레에 정지하여 있는 분견대를 발견할 때까지 곰곰 생각한다.
“여깁니다” 하고 하사관은 매우 간결하게 말한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헤치시고 가까이 가신다. 다리는 몹쓸 골절상을 입어 발이 안쪽으로 돌아갔고, 다리는 벌써 붓고 납빛이 되었다. 그 사람은 많이 아픈 모양으로 예수께서 손을 내미시는 것을 보고 애원하며 말한다. “많이 아프게 하지 마세요!”
예수께서는 미소를 지으신다. 그리고 납빛으로 된 동그라미가 골절 부위를 나타내는 곳을 손가락 끝으로 겨우 만질까 말까 하신 다음 말씀하신다. “일어나시오.”
“그러나 이 사람은 좀 더 위 허리께에 또 다른 골절상이 있습니다” 하고 하사관이 말한다. 그것은 분명히 “그 곳은 만지지 않으십니까?” 하는 뜻이다.
그 때에 베테론의 주민 한 사람이 와서 말한다.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은 이교도들과 시간을 허비하시는데 제 아내는 죽어갑니다!”
“가서 아내를 데려 오시오!”
“할 수 없습니다. 제 아내는 미쳤습니다!”
“만일 나를 믿으면, 가서 데리고 오시오.”
“선생님, 아내를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옷을 벗고 있는데, 옷을 입힐 수가 없습니다. 미쳐서 옷을 찢습니다. 죽어 가서 가만히 있질 못합니다.”
“만일 당신의 믿음이 이 이방인들의 믿음보다 못하지 않거든. 가서 데리고 오시오.”
그 사람은 불만스럽게 간다.
예수께서는 당신 발 앞에 누워 있는 로마인을 내려다보신다. “그럼, 당신은 믿음을 가질 수 있소?”
“저는 가질 수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어나야 하오.”
“조심하게 가밀로, 그…” 하고 하사관이 말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병사는 벌써 나아서 날쌔게 일어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호산나라는 함성을 올리지 않는다. 고쳐진 사람은 히브리인이 아닌 것이다. 그들은 불만족스러운 것 같기까지 하거나 적어도 그들의 얼굴은 예수의 행위에 대한 비난을 나타낸다. 그러나 병사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짧고 넓은 단검을 칼집에서 뽑아서 기쁨의 표시로 단검으로 방패를 친다음 음산한 하늘을 향하여 단검을 쳐든다. 예수께서는 칼날이 만든 원의 한가운데에 계신다.
하사관은 예수를 바라본다. 한 신 옆에 있는 그는, 하느님 곁에 있는 이교도인 그는 자기의 생각을 어떻게 나타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 그는 곰곰 생각하다가 적어도 그가 카이사르에 할 것은 하느님께 대하여 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황제에게 하는 군대식 인사를 명령한다. (병사들이 뻗친 팔위로 단검들을 거의 수평으로 들고 있을 때 칼날이 번쩍이는 동안 힘찬 “아베”(“Ave.” 로아식 인사말. “인사드립니다“로 번역할 수 있을까?)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으로 보아서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것으로도 아직 만족하지 않아서 하사관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안심하고 가십시오, 밤이라두요. 도로는… 모두 감시되어 있습니다. 도둑에 대한 복무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안전하실 것입니다. 저는….” 그는 이제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중단한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미소를 보내시며 말씀하신다. “고맙소. 가시오, 그리고 착하게 사시오. 도둑들에게도 인정을 베푸시오. 당신 임무에 충실하시오. 그러나 흉포하지 않게 하시오. 그들은 불행한 사람들이오. 그리고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하느님 앞에 책임을 져야 할 거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선생님을 또 쉽고 싶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뚫어지게 보시더니 말씀하신다. “우리는 다시 말날거요. 다른 산 위에서.” 그리고 되풀이 하신다. “착하게들 사시오, 안녕.”
병사들은 다시 행진을 시작하고, 예수께서는 마을로 들어가신다. 몇 미터를 가신 다음, 당신과 당신을 따라 오는 사람들에게로 이러쿵저러쿵 떠들면서 많은 사람의 무리가 마주 오는 것을 보신다. 그리고 그 무리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우선 남자가- 떨어져 나와 예수 앞에 몸을 굽히고, 여자는 무릎을 꿇고, 남자는 절만 한다.
“일어나서 주님을 찬미하시오. 그러나 여보시오. 당신에게는 당신의 양심이 맑지 않다고 말해야 하겠소. 당신이 내게 호소한 것은 이기주의로 그런 것이지. 내게 대한 사랑으로나 내게 대한 믿음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소. 당신은 내 말을 의심했소. 그런데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소! 그리고 당신은 내가 이방인을 고쳐 주기 위해서 걸음을 멈추었기 때문에 좋지 않은 생각을 가졌었소. 마찬가지로 마을 전체도 부상자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함으로 좋지 않은 태도를 가졌었소. 나는 지극한 자비로, 그리고 당신 마음을 착하게 만들어 보려고 당신 집에 들어가지 도 않고 당신 아내를 고쳐 주었소. 당신은 그런 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었소. 내가 그렇게 한 것은 내가 행동하기 위하여는 갈 필요가 없고, 원하기만 하면 넉넉하다는 것을 당신에게 보이기 위해서였소. 그러나 당신들 모두에게 진정으로 말하지만, 당신들이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당신들보다 낫고, 내 능력을 당신들보다 더 믿을 줄 아오. 아주머니, 일어나시오. 당신은 이성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죄가 없소. 가시오, 그리고 이제부터는 주님께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믿을 줄을 알도록 하시오.”
주민들의 태도는 예수의 꾸지람을 듣고 냉냉하고 불손해진다. 그들은 찌푸린 얼굴로 예수를 광장까지 따라 온다. 회당장이 회당으로 들어오시라고 청하지 않고, 아무 집도 선생님을 맞아들이지 않으므로,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 위하여 광장에서 걸음을 멈추신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실 때에는 사람들이 어떤 이름을 가진 불행이든지 불행에 대항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지 않을 때에는 사람들이 불행에 대항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도시는 그 연대기에서 이 일을 여러번 상기시킵니다. 하느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계셨기에 여호수아가 가나안의 왕들을 무찔렀고, 또 이 길에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원수들 위에 하늘에서 큰 돌들을 보내시어’ 여호수아를 도와 원수들을 쳐부수게 하셨고, ‘검으로 죽은 것보다는 돌우박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고 여호수아기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시리아 군대의 두목 세론의 강력한 군대를 바라보기 위하여 그의 작은 군대를 이끌고 이 야산 위로 전진한 유다 마카베오와 함께 계셨고, 빛나는 승리로 이스라엘의 지도자의 말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우리와 함께 모시는데 필요한 조건은 올바른 동기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전투에서는 승리가 수에 달려 있지 않고, 하늘에서 오는 도움에 달려 있다’고 마카베오가 말합니다. 인생의 모든 일에 있어서 행복은 재산이나 권력이나 다른 원인들에서 오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도움에서 옵니다. 그런데 하늘의 도움은 우리가 좋은 일을 위하여,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계율을 위하여 청하기 때문에 온다고 역시 마카베오가 말합니다. 그러나 나쁘거나 순수하지 못한 목적을 위하여 하느님께 빌 때에는 그분의 도움을 청해도 소용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대답을 하지 않거나, 강복 대신에 벌로 대답하거나 하실 것입니다.
이 진리는 지금 이스라엘에서 너무 잊혀져 있고, 사람들은 좋지않은 목적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라고 기원합니다. 덕행들을 닦지 않고 계명들을 실제적으로 지키지 않습니다. 즉 계명들 중에서 사람들이 보고 칭찬할 수 있는 것은 합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 아래 감추어진 것은 매우 다릅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러 왔습니다. 여러분의 행동을 솔직하게 하시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셔서, 마음속에는 죄와 증오와 나쁜 욕망이 가득 차 있는데 제물과 기도드리는 것을 다만 예배 한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만 하면, 그 제물이 무익한 것이고, 그 기도가 헛된 것이라고.
베테론아, 네 주민들이 압디아가 에돔에 대해 말한 것과 같이 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안전하다고 믿고 있던 에돔은 서슴지 않고 야곱을 압제하였고, 그의 실패를 기뻐하였다. 사제들의 도시야, 그렇게 하지 말아라. 압디아의 두루마리를 집어 가지고 묵상하여라. 묵상하고, 묵상하고, 또 묵상하여라. 그리고 네 길을 바꾸어라. 무서운 세월을 체험하기 싫거든 정의를 따라라. 그 때에는 네가 이 꼭대기에 위치함으로 인해서도 겉으로 보기에 전쟁의 길에서 벗어나 있는 네 위치로 인하여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나는 네 안에서 하느님을 모시고 있지 않은 사람들과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여러분은 불평을 하십니까? 나는 진실을 말합니다. 나는 진실을 말하려고, 여러분을 아직 구하려고 여기까지 올라 왔습니다.
여러분은 이름 하나만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이 전부가 아니었습니까? 그러면 왜 이스라엘이 갈라져서 이름 둘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오! 정말이지 이것은 오세아와 창녀의 결혼과 간음한 여자에게서 난 자식들을 내게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수는 바다의 모래알 수와 같을 것이다…. 그 때에는 그들에게 <너희들은 내 백성이 아니다>하고 말하는 대신에 <너희들은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유다의 자손들과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모여서 오직 한사람의 지도자를 뽑을 것이고, 땅에서 올라갈 것이니, 예즈라엘의 날이 위대하기 때문이다’하고. 오! 그러나 모든 것을 모아서 오직 하나뿐인 민족을, 위대한 민족을, 하느님이 그러신 것처럼 오직 하나인 민족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그리고 지금은 죽은 것 같이 보이는 사람들까지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사람들의 모든 아들이 하느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한다고 여러분은 왜 비난하십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내 행동과 그들의 마음과 여러분의 마음을 판단할 수 있습니까? 빛이 어디에서 옵니까? 빛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그러나 만일 하느님께서 오직 하나뿐인 왕권 아래 모든 사람을 모으라는 임무를 주셔서 나를 보내시는데, 빛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사물을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과 반대되는 방식으로 보게 한다면, 여러분이 어떻게 정말 하느님에게서 오는 빛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과 반대되는 방식으로 보십니다.
불평하지 마시오. 이것은 진실입니다. 여러분은 정의에서 벗어나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불의로 끌어들이는 사람들이 정의에서 더 벗어나 있고, 그들은 이중으로 벌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적과, 즉 우리를 지배하는 자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나는 여러분의 마음을 환히 들여다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의 아들을 공격하는 사람의 편이 됨으로써 사탄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나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증오심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의 얼굴을 압니다. 호세아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나는 양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사랑이 가득 찬 마음을 가지고 와서, 나를 사랑하게 하기위하여 가장 다정스럽게 여러분을 끌어들이려고 애썼습니다. 나는 내 백성에게 영원한 사랑과 평화와 정의와 자비를 내보이면서 신랑이 신부에게 말하듯이 말했습니다. 나를 배척하는 백성과 백성이 왕없이,  지도자없이, 제사와 제단이 없이 있도록 부추기는 지도자들을-나는 그들을 압니다. -못하게 막기 위하여는 아직 한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증오가 가장 강렬하고 벌이 가장 엄할 소굴 근처에서는 사람들이 양심들을 죄악으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매수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오! 정말이지 양심들을 일탈시켜 빗나가게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빗나가게 한 사람들보다 일곱 곱절이나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 입니다.
가자, 나는 와서 기적을 행하고 진리를 말해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려고 했습니다. 이제 나는 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 의로운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나를 따라 오시오.유혹하고 배반하기 위하여 뱀들이 도사리고 있는 이곳의 장래는 매우 참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오신 길로 가시려고 돌아서신다.
“선생님, 왜 그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들이 선생님을 미워할 것입니다”하고 사도들이 묻는다.
“나는 거짓말과 타협하면서 사랑을 얻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지 않는 것이 낫지 않았습니까?”
“아니다. 아무 의심도 남겨 놓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누구를 설득하셨습니까?”
“아무도. 지금 당장은 아무도 설득하지 못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들은 말할 것이다. ‘우리는 경고를 받았는데 행동하지 않았으니까 아무도 저주할 수 없다’고. 그리고 만일 그들이 하느님께서 그들을 벌하신다고 비난하면, 그들의 비난은 하느님께 대한 모독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말씀하실 때에 누구를 넌지시 가리키고자 하셨습니까? ….”
“가리옷의 유다에게 물어보아라. 유다는 이곳 사람들을 많이 알고, 그들의 간계도 안다.”
모든 사도가 유다를 바라본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거의 엘키아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엘키아가….” 태연한 척하느라고 바로잡던 허리띠에서 눈을 들다가 예수의 눈길, 너무도 반짝이고 꿰뚫는 듯하여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 같은 눈길과 마주친 유다의 입술에서 말이 죽어 버리고 만다. 그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을 끝마친다. “확실히 이 고장은 이곳을 지배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교만하고 가증스런 고장입니다. 각자는 그가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을 가집니다. 저들은 엘키아를 가지고 있고, 저희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당신이 알고 계신 것을 썩잘 알고 계신 것을 그들에게 알려 주시기를 잘 하셨습니다.”
“저 사람들은 확실히 나쁘네. 자네들 보았지? 기적이 있은 다음에 인사 한 마디, 헌금 한 푼 없었네! 아무 것도!” 하고 필립보가 지적한다.
“그렇지만 나는 선생님이 그들의 정체를 폭로하실 때는 떨리네”하고 안드레아가 한숨을 쉰다.
“그렇게 하는 거나 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들은 선생님을 똑같이 미워해. 나는 갈릴래아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하고 요한이 말한다.
“갈릴래아로! 그래!” 하고 베드로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리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생각에 잠긴다.
뒤에서는 예수를 따라 와서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제자들과 같이 끊임없이 이러쿵 저러쿵들 평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