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사도들과 제자들과 같이 다시 성전으로 들어가신다. 그런데 어떤 사도들은 -그리고 사도들뿐 이 아니다. – 그렇게 하는 것이 조심성 없는 것이라고 예수께 지적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대답하신다. “무슨 권리로 나를 들어가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느냐? 혹 내가 유죄선고를 받은 사람이라도 되느냐? 지금 당장은 아직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어떤 이스라엘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제단을 향하여 올라간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말씀을 하실 생각을 가지고 계시지요….”
“그런데 이곳이 라삐들이 일반적으로 말을 하려고 모이는 곳이 아니냐? 말을 하고 가르치기 위하여 이곳 밖으로 간다는 것은 예외이고, 라삐가 취하는 휴식이나 어떤 개인적인 필요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각자가 제자들을 가르치기를 즐기는 곳은 이곳이다. 라삐들 둘레에는 유명한 라삐들의 말을 적어도 한번은 듣기 위하여 가까이 오는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느냐? 그것은 그들의 고국에 돌아가서 ‘우리는 어떤 선생님, 어떤 철학자가 이스라엘식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가 아니냐? 벌써 히브리인이 되었거나 되기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선생님이고, 엄밀한 의미의 이방인들에게는 철학자이다. 그리고 라삐들은 이방인들을 개종자를 만들 것을 희망해서 그들이 자기들의 말을 듣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바람은 만일 겸손하면 거룩할 것인데, 그런 바람이 없으면, 이교도들의 마당에 있지 않고, 히브리인들의 마당에서 말하겠다고 요구하고, 또 가능하면 바로 거룩한 곳에서 말하겠다고 요구할 것이다. 그들이 자신에 대해서 하는 판단에 의하면 그들은 하도 거룩해서, 다만 하느님만이 그들보다 더 높으실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인 나는 선생들이 말하는 곳에서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염려 말아라! 아직 그들의 때가 되지 않았다. 그들의 때가 되면, 너희들이 마음을 굳세게 하도록 그 말을 해 주마.”
“그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하고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왜?”
“선생님이 그것을 아실 수 없을 테니까요. 어떤 표도 그걸 선생님께 알려드리지 않을 겁니다. 제가 선생님과 같이 있는 것이 거의 3년이 됩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항상 위협을 당하시고 박해를 당하시는걸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만 해도 혼자셨지요. 지금은 선생님 뒤에 선생님을 사랑하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백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더 강하십니다. 무엇이 선생님께 그 때를 가르쳐 드릴 수 있습니까?”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보기 때문이다.”
유다는 잠간 동안 어리둥절해 있다. 그러다가 말한다. “그리고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또… 선생님은 저희들의 용기를 의심하셔서 저희들을 너그럽게 봐 주십니다.”
“선생님이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하지 않기 위해서야” 하고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그것도 있어. 그러나 분명히 그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나는 너희들에게 그 말을 해 주겠다. 그러니까 내가 너희들에게 그 말을 해 주지 않는 동안에는, 내게 대한 어떤 폭력이나 증오를 보더라도 무서워하지 말아라. 그것들은 아무 중요성도 없는 것이다. 먼저들 가거라. 나는 여기서 마나헨과 마륵지암을 기다리고 있겠다.”
열두 사도와 그들과 같이 있는 사람은 마지못해 앞서 간다. 예수께서는 두 사람을 기다리시려고 성곽의 문께로 돌아오시고, 길로 나오기까지 하셔서 안토니아 쪽으로 돌아서신다.
요새 근처에 있는 군단의 병사들은 예수를 서로 손가락질 하여 가리키며 자기들끼리 말한다. 토론 같은 것이 조금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그 중의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말한다. “내가 저 사람에게 물어보겠네.” 그리고 떨어져서 예수께로 온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안에서 말씀하십니까?”
“빛이 당신을 비추기를 바라오. 그렇소 말하겠소.”
“그러면… 조심하십시오. 상황을 잘 아는 어떤 사람이 저희들에게 알렸고, 선생님을 우러러보는 어떤 여자가 주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저희들은 동쪽 지하통로 근처에 있을 것입니다. 그 입구를 아십니까?”
“모르지 않소. 그러나 그 지하도는 양쪽이 다 막혀 있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병사는 잠간 웃는다. 그러나 그의 투구의 그늘에서 그의 눈과 이가 빛나며 그를 더 어려 보이게 한다. 그런 다음 몸을 꼿꼿이 하고 인사한다.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귄뚜수 펠릭스를 기억하십시오.”
“기억하겠소. 빛이 당신을 비추기를 바라오.”
예수께서는 다시 길을 가기 시작하시고, 병사는 그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 동료들과 말한다.
“선생님, 저희들이 늦었지요? 문둥병자들이 너무 많아서요!” 하고 짙은 밤색의 수수한 옷을 입은 마나헨과 마륵지암이 동시에 말한다.
“아니오. 빨리 했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갑시다. 마나헨, 당신이 로마인들에게 알렸소?”
“무엇을요, 주님? 저는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렇게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로마 여자들은 예루살렘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시 성곽의 문 근처에 왔다. 우연히 그곳에 있는 것처럼 레위파 신관 즈가리야가 거기 있다.
“선생님께 평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 안에서 항상 선생님 계신 곳에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저를 놓치지 말고 보십시오. 그리고 소동이 벌어지는데 제가 떠나가는 것을 보시거든, 항상 저를 따라 오도록 힘쓰십시오. 그 사람들은 선생님을 몹시 미워합니다. 저는 그 이상의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저를 이해해주십시오….”
“당신이 하느님의 말씀에 베푸는 동정을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고 당신에게 강복하시기를 바라오. 당신이 말하는 대로 하겠소. 그리고 내게 대한 당신의 사랑을 누가 알까봐 걱정하지 마시오”
그들은 헤어진다.
“아마 저 사람이 로마인들에게 말했나보군요. 저 사람은 안에 있으니까 알았을 것입니다…” 하고 마나헨이 속삭인다.
그들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 기도하러 간다. 사람들은 그들을 여러가지 다른 감정을 가지고 바라본다. 그리고 예수께서 기도를 마치신 다음 히브리인들의 마당에서 돌아오실 때에는 예수께로 모인다.
둘째 성곽 밖에서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려고 하신다. 그러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제들의 혼합된 집단에 둘러싸이시게 된다. 성전의 행정관 중의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말한다.
“당신 아직 있습니까? 당신은 우리가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까? 여기서 당신을 위협하는 위험도 염려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기도하러 들어오는 것을 우리가 가만 놔두는 것만도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허락지 않습니다.”
“옳소, 가시오. 가요,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
“예. 당신들이 가라고 하면 가겠습니다. 그리고 이 성곽 밖으로만 가지 않겠습니다. 나는 떠날 것입니다. 나는 벌써 떠나고 있는 중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따라 오지 못할 더 먼 곳으로. 그리고 당신들도 나를 찾을 시기가 올 것입니다. 그 때는 나를 박해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나를 쫓아낸 것 때문에 타격을 받지 않을까 하는 미신적인 공포와 자비를 얻기 위하여 당신들의 죄에 대한 용서를 받아야 하겠다는 미신적인 불안으로도 나를 찾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은 자비의 시간이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이 한번 지나가고 나면, 어떤 피난처도 쓸데없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찾아내지 못하고, 당신들의 죄 속에서 죽을 것입니다. 당신들이 온 땅을 두루 다니고 천체와 유성에까지 가게 된다 하더라도 나를 찾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가는 곳에 당신들은 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이미 말했습니다마는, 하느님께서 오셨다가 지나가십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느님께서 지나가실 때에 그분을 그분의 선물들과 더불어 맞아들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하느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그냥 놔둡니다. 그리고 다시는 절대로 만나지 못합니다. 당신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지만, 나는 하늘에서 왔습니다. 당신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지만,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들의 것인 이 세상 밖에 있는 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당신들은 나를 다시는 찾아내지 못할 것이고, 당신들의 죄 속에서 죽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믿음으로 영적으로 나 있는 데로 올 줄도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자살을 하려는 거요, 사탄? 그러면 분명히 난폭한 자들이 내려가는 지옥으로 우리가 당신을 쫓아갈 수는 없을 거요. 지옥은 천벌을 받은 자들, 저주를 받은 자들의 것인데, 우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축복을 받은 자식들이기 때문이오” 하고 어떤 사람들이 말한다.
그리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찬성한다. “틀림없이 저자는 자살하려는 거야. 그가 가는 곳에 우리는 가지 못한다고 말하니까 말이야. 저자는 들켰다는 것을, 제가 하려고 하던 일을 실패했다는 걸 깨닫고, 가짜 그리스도인 다른 갈릴래아 사람처럼 제거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살을 하는 거야.”
또 호의를 가진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데 반대로 저 사람이 정말로 그리스도이고, 그를 보내신 분께로 정말 돌아가면?”
“어디로? 하늘로? 아브라함도 거기 없는데, 저자가 거길 가리라는 거야? 그 전에 메시아가 오기로 되어 있어.”
“그렇지만 엘리아는 불수레에 태워져서 하늘로 실려 갔어.”
“불수레에 실려간 건 맞아. 그렇지만 하늘에 갔다는 건!… 누가 그걸 보증하느냐 말이야?”
그리고 토론이 계속되는 동안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과 행정관들과 사제들, 그리고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예속한 사람들은 마치 사냥개 떼가 그 놈들이 발견한 짐승을 괴롭히듯이 넓은 행각들 복판에서 그리스도를 괴롭힌다. 그러나 적의를 품은 사람들의 집단 가운데에서도 착한 사람들인 어떤 사람들, 정말 올바른 욕망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헤치고 예수께로 와서, 사랑으로 또 증오로 내놓는 것을 내가 벌써 많이들은 적이 있는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저희가 어떻게 처신해야할지 알게 말씀해 주십시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이름으로 진실을 말씀해 주십시오” 하는 걱정스러운 질문을 한다.
“나는 진리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거짓말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팔레스티나의 모든 곳에서 군중들에게 말한 첫날부터 항상 어떤 사람이라고 언명한 그 사람, 이곳 지성소 옆에서 여러번 어떤 사람이라고 말한 그 사람입니다. 나는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지성소의 벼락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 날이 계속되는 동안, 그리고 이 백성에 관해서 말해야 할 것과 심판해야 할 것이 아직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게 저녁이 벌써 가까워지기는 했지만, 나는 그 말들을 하리라는 것과 모든 사람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나를 보내신 진실하신 분께서 그것을 내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영원한 사랑의 포옹 속에서 나와 말씀을 하시면서 당신의 모든 생각을 내게 말해 주셔서 내가 그 말씀을 내 말로 세상에 말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세상에 전할 때까지는 내가 잠자코 있을 수가 없고, 아무도 내게 입을 다물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당신 아직도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고 있소? 계속해서 당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거요? 그러나 누가 당신 말을 믿는단 말이오? 누가 당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본단 말이오?” 예수의 원수들은 증오로 미치다시피 하여 손짓을 몹시 하고, 주먹을 거의 예수의 얼굴에 갖다 대며 말한다.
사도들과 제자들과 호의를 품은 사람들이 그들을 밀어내며 선생님을 보호하기 위하여 일종의 바리케이드를 만든다. 레위파 신관 즈가리야는 흥분해서 떠드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그의 움직임을 조절하면서 마나헨과 알패오의 두 아들 곁에 계신 예수에게까지 살그머니 뚫고 들어왔다.
그들이 이제는 이교도들의 행각 끝에 와 있다. 사람들이 서로 반대되는 흐름으로 인하여 걸음이 느려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동쪽의 마지막 기둥인 당신이 늘 계시던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신다.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셨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는 이교도들도 참다운 이스라엘 사람을 쫓아내면 군중을 흥분시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음험하게도 그렇게 하는 것을 피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곳에서 당신의 연설을 다시 시작하셔서 당신께 모욕을 주는 사람들에게 대답하시고, 그들과 더불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신다. “당신들이 사람의 아들을 높이 올렸을 때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이 외친다.
“그래 누가 당신을 높이 올린단 말이오? 미친 수다쟁이와 하느님께 창피를 당한 하느님 모독하는 자를 왕으로 가진 나라는 비참한 나라요. 우리 중의 아무도 당신을 높이 올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실히 아시오. 그리고 당신에게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빛으로, 당신이 시험을 당할 때에 늦지 않게 그것을 알게 되었소. 당신은 우리가 당신을 절대로 우리 왕을 삼지 않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소.”
“나도 압니다. 당신들은 나를 옥좌에 올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높이 올리기는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높이 올리면서 나를 낮추는 줄로 믿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나를 낮추었다고 생각할 바로 그 때에 나는 높이 올려질 것입니다. 팔레스티나 위에 뿐 아니라, 세상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전체 위에 뿐 아니라, 온 세상 위에, 이교도의 나라들 위에까지, 세상의 학자들이 아직 모르는 곳들 위에까지. 그리고 나는 사람의 한 평생 동안만 높이 울려져 있지 않고, 세상이 있는 동안 줄곧 높이 올려져 있을 것이고, 내 옥좌의 닫집의 그림자는 세상에 점점 더 넓게 퍼져서 세상을 완전히 덮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내가 돌아올 것이고, 당신들이 나를 볼 것입니다. 오! 나를 보고, 말고요!”
“아니 이 미치광이의 논증을 들어보시오! 우리가 저 사람을 낮추면서 높이 올리고, 높이 올리면서 낮춘답니다! 미치광이요! 미치광이! 그리고 그의 옥좌의 그림자가 온 땅을 덮는다구! 키루스보다 더 위대하다구! 알렉산더보다도! 카이사르보다도 더 위대하다구! 당신은 카이사르를 어디다 두는 거요? 카이사르가 당신이 로마 제국을 빼앗게 내버려 둘 걸로 생각하시오? 그리고 저 사람이 세상이 존재하는 동안 줄곧 옥좌에 남아 있을 거라구! 하! 하! 하!” 그들의 빈정거림은 채찍보다도 더 가차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이 말하게 내버려 두신다. 예수께서 당신을 비웃는 사람들과 당신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외침 속에서 들리게 하시려고 목청을 돋우시니 성난 바닷소리와 같이 그 목소리가 그곳을 꽉 채운다.
“당신들이 사람의 아들을 높이 올렸을 때, 그 때에 당신들은 내가누구인지를 깨닫고 내가 나 자신의 자의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내 아버지께서 내게 가르쳐 주신 것만을 말하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보내신 분은 나를 혼자 놔두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 계십니다. 그림자가 몸을 따라다니는 것과 같이, 내 뒤에는 비록 보이시 지는 않지만, 아버지께서 계시며 지키십니다. 아버지께서는 내 뒤에 계시면서 내 용기를 돋우어 주시고 나를 도와주시며, 내가 항상 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에 내게서 멀리 떠나지 않으십니다. 이와 반대로 하느님께서는 자녀들이 당신의 법과 당신의 영감을 따르지 않을 때에는 멀리 떠나가십니다. 그 때에는 떠나가시고 그들을 혼자 내버려 두십니다.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이 처리하도록 버려진 사람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지키기는 어렵고, 쉽게 뱀의 나사 홈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정말 정말 잘 들어두시오. 하느님의 빛과 자비에 반항하는 당신들의 죄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들에게서 멀리 떠나가시어, 이곳과 당신들의 마음을 당신이 없어 텅 비게 하실 것이고, 예레미야가 그의 예언과 애가에서 한탄한 것이 정확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예언의 말씀을 묵상하고, 떨고, 착한 정신으로 반성하시오. 위협을 듣지 말고, 아직은 속죄를 하고 구원을 받는 것이 허락될 때에 당신 자녀들에게 경고하시는 아버지의 인자한 말씀을 들으시오. 말과 사실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시오. 그리고 만일 묵은 이스라엘이 당신들을 질식시키기 때문에 내 말을 믿고 싶지 않으면, 적어도 묵은 이스라엘의 말은 믿으시오. 묵은 이스라엘에서는 주 하느님께로 돌아서서 구세주를 따르지 않으면, 성도(聖都)와 우리 조국 전체가 당할 위험과 불행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 민족은 지난 세월에 벌써 하느님의 손이 짓눌렀습니다.
그러나 과거나 현재는 이 민족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을 받아들이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기다리고 있는 무서운 미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이스라엘을 기다리는 것은 그 준엄함으로도 기간으로도 비교가 안 됩니다. 많은 세기를 바라보며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부러져서 세찬 강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진 나무와 같이,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히브리 민족이 그러할 것입니다. 히브리 민족은 끈질기게 이 지점이나 저 지점의 강안(江岸)에 자리 잡으려고 애쓸 것입니다. 그리고 원기가 있기 때문에 순이 돋아나고 뿌리를 내릴 것입니다. 그러나 영구히 자리 잡았다고 믿을 때에 다시 세찬 물살에 휩쓸려서 또 뽑아지고 뿌리와 순이 부러져서, 더 멀리 가 고통을 당하고 또 달라붙고, 그랬다가 또 다시 뽑혀서 흩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그에게 평화를 주지 못할 것이니, 그를 못살게 구는 물살은 하느님의 분노와 다른 민족들의 업신여김이겠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고 거룩하게 하는 피의 바다에 뛰어드는 것으로만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그 피가 히브리 민족을 또 권유하겠지만, 천상의 아벨을 죽인 카인인 그들에게는 그들을 부르는 그 피가 아벨의 피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이 생각되기 때문에 그것을 피할 것입니다.”
성전 구내에 다른 광범한 소음이 밀물 소리처럼 퍼진다. 그러나 그 소음 속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와 그들에게 충실한 유다인들의 사나운 목소리는 없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이용하여 떠나가시려고 한다. 그러나 멀리 있던 사람들이 가까이 오며 말한다. “선생님, 저희 말을 들으십시오. 저희들은 모두 저 사람들(그러면서 원수들을 가리킨다)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선생님을 따르기가 힘듭니다. 그것은 선생님의 목소리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말하는 수백 수천의 목소리에 대해서 오직 하나뿐이고, 또 그들이 말하는 것은 저희가 어려서부터 저희 아버지들에게서 들은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의 말씀은 믿으라고 저희들을 끌어당깁니다. 그러나 완전히 믿고 생명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희들은 과거의 생각으로 결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내 말에 집착하면, 그것은 새로 태어나는 것과 같을 것이고, 여러분이 완전히 믿어 내 제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과거를 떨쳐버리고 내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가르침은 과거를 전부 지워버리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과거의 것에 거룩하고 초자연적인 것은 그대로 두고 새로운 힘을 주고, 항상 불완전한 인간적인 가르침이 있던 곳에 완전한 내 가르침을 두어서 인간적인 군더더기를 없앱니다. 만일 여러분이 내게로 오면 진리를 알 것이고,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선생님 저희들이 마치 과거에 매여 있는 것 같다고 말씀드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끈은 감옥도 아니고 노예 상태도 아닙니다. 저희들은 영적인 사정에 있어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과연 저희가 오류에 빠져 있지 않으면, 노예의 후손인 아가르의 후손과는 대조적으로 영적인 후손이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희가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나는 이스마엘과 그의 자손들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지적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사악과 이스마엘의 아버지였으니까요.”
“그러나 그는 노예인 에집트 여자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불순한 후손이었습니다.”
“나 진정으로, 분명히 여러분에게 말합니다만, 노예 상태는 죄의 노예 상태 하나밖에 없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돈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속량(贖良)할 수 없는 노예 상태에, 그것도 냉혹하고 흉포한 주인에 대한 노예 상태에 있는 노예가 됩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서 최고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모두 잃습니다. 노예, 전쟁이나 불행으로 인해서 노예가 된 사람은 착한 주인의 소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그를 잔인한 주인에게 팔 수 있으므로, 그의 좋은 처지는 항상 불안정합니다. 그는 하나의 상품이지, 그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노예를 빚 갚는 돈처럼 쓰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는 울 권리조차도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하인은 주인의 집에서 사는데, 그러나 주인이 내보낼 때까지만 삽니다. 그러나 아들은 항상 아버지의 집에 남아 있고, 아버지도 아들을 내쫓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들은 그의 자유의사로만 집에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노예 신분과 하인의 신분, 하인의 신분과 친자관계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노예 신분은 사람을 예속상태에 놓아두고, 하인신분은 사람을 주인의 자의(恣意)에 맡기는데, 친자관계는 사람을 영구히 일생 동안 아버지의 집에 둡니다. 노예 신분은 인간을 없애고, 하인신분은 어떤 사람에게 지배받게 하는데, 친자관계는 사람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합니다. 죄는 끝없이 가장 흉포한 주인인 사탄의 노예가 되게 합니다. 하인신분은 이 경우에는 옛날 율법인데, 사람을 하느님에 대해서 마치 양보 없는 존재에 대해서 모양으로 겁을 집어먹게 합니다. 친자관계, 즉 맏아들인 나와 함께 하느님께로 오는 사실은 사람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합니다. 사람이 그의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의 사랑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내 가르침을 받는 것은 사랑받는 많은 아들들 중의 맏이인 나와 함께 하느님께로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슬을 끊어달라고 내게로 오기만 하면, 나는 여러분의 사슬을 끊어줄 것이고, 그러면 여러분은 참으로 자유롭게 되고, 나와 함께 하늘나라의 공동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을 나도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들 중에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공경하지 않고 사탄을 공경하며, 충실한 노예로서 사탄을 섬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내 말을 물리치고, 그래서 내 말이 여러분들 가운데 많은 사람 안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강제로 믿게 하지 않으시고, 강제로 나를 받아들이게 하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을 알리라고 나를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아버지 곁에서 보고 들은 것을 말하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서 나를 박해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암시하는 것을 합니다.”
어떤 병에서 병세가 뜸하다가 다시 절정에 이르는 것과 같이, 좀 가라앉은 것 같던 유다인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분노가 맹렬하게 되살아난다. 그들은 예수를 빽빽이 둘러싸고 있는 군중을 쐐기 모양으로 뚫고 들어와 예수께로 가까이 가려고 애쓴다. 군중 가운데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의 감정이 서로 반대되는 것과 같이 서로 반대되는 물결과 같은 움직임이 일어난다. 유다인들은 분노와중오로 얼굴이 창백해져 가지고 부르짖는다. “우리의 아버지는 아브라함이오. 우리는 다른 아버지가 없소.”
“사람들의 아버지는 하느님이십니다. 아브라함 자신도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신 분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참 아버지를 버리고, 아버지가 아닌 사람에게로 가는데, 그 사람은 아버지는 아니지만 그들의 무절제한 욕망을 만족시키는 데 더 힘있고 더 그렇게 할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들들은 아버지가 하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합니다. 만일 당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면 왜 아브라함이 한 일을 하지 않습니까? 당신들은 아브라함이 한 일을 알지 못합니까? 내가 그의 행위의 성질과 상징을 열거해 주어야 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순종해서 하느님께서 그에게 일러주신 곳으로 갔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곳으로 가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릴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의 상징입니다. 아브라함은 동생의 아들에 대해 친절해서, 그가 더 좋아하는 지방을 선택하게 놔두었습니다. 이것은 이웃에 대하여 가져야하는 행동의 자유의 존중과 사랑의 상징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그를 특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나타내신 다음에도 겸손해서 자기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항상 깨닫고, 맘브레에서 그분을 공경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그의 하느님께 대해서 항상 가져야 하는 공손한 사랑의 입장의 상징입니다. 아브라함은 가장 믿기 어려운 일과 가장 행하기 힘든 일에서도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순종했으며, 자기가 안전하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고, 소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수많은 순종에 대한 갚음을 원해서 주님과 계약을 맺지 않았고, 주님을 끝까지, 마지막 한계에 이르기까지 공경하기 위하여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기까지 했습니다.”
“제물로 바치지는 않았소.”
“아브라함은 순종하려는 의지로 길을 가는 동안, 사실은 마음속으로 벌써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로 바쳤었기 때문에 그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다만 아들의 가슴을 갈라놓는 순간에 아버지의 마음이 벌써 찢어지고 있을 때 천사가 그 제사를 중단시킨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공경하기 위하여 아들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사탄을 공경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아들을 죽입니다. 그러면 당신들은 당신들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분이 한 일을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당신들은 그가 한 것과 같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내가 하느님에게서 들은 대로 당신들에게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에서 오던 목소리를 죽이려고 하지 않고, 그 목소리에 순종했습니다. 아닙니다. 당신들은 아브라함의 행위를 하지 않고, 당신들의 아버지가 알려주는 행위들을 합니다.”
“우리는 창녀에게서 나지 않았고, 사생아가 아니오. 사람들의 아버지는 하느님이시라고 당신 자신이 말했소. 그리고 우리는 선택된 민족의 사람들이고, 그 민족 중에서도 선택된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오. 그러니 우리는 하느님을 오직 한 분뿐이신 아버지로 모시고 있소.”
“만일 당신들이 영과 진리로 하느님을 아버지로 인정하면,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고 하느님에게서 왔으니까 나를 사랑할 것입니다. 나는 나 스스로 오지 않았고, 하느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따라서 당신들이 정말 아버지를 알면, 하느님의 아들이요, 당신들의 형제이며 구세주인 나도 알 것입니다. 형제들이 서로 알아보지 못할 수가 있습니까? 오직 한 분뿐인 아버지의 자녀들이 오직 한 분뿐인 아버지의 집에서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면 왜 내말투를 알아듣지 못하고, 내가 하는 말을 용납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나는 하느님에게서 오고, 당신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아버지의 집을 떠났고, 거기 사는 분의 얼굴과 말투를 잊어 버렸습니다. 당신들은 자진해서 하느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 지배하고, 다른 말씨를 쓰는 다른 지방의 다른 집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지배하는 자는 그곳에 들어가기 위하여는 그의 아들이 되고 그에게 복종하기를 강요합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그렇게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하느님 아버지를 버리고 모른다고 하며, 다른 아버지를 택합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사탄입니다. 당신들은 마귀를 아버지로 두었고, 그가 암시하는 것을 행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마귀의 욕망은 죄와 폭력의 욕망인데, 당신들은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진리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킨 그는 그의 안에 진리에 대한 사랑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진리에 꾸준하지 못했습니다. 마귀가 말할 때에는 저 생긴 대로 말합니다. 즉 거짓말쟁이와 음험한 자로서 말합니다. 사실 그는 거짓말쟁이이고, 교만으로 배여서 반란으로 길러진 다음 거짓말을 배서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의 안에 모든 사욕(邪慾)을 가지고 있고, 모든 인간들을 중독 시키려고 그것을 내뱉고 불어 넣습니다. 그는 음험한자이고 빈정거리기 잘하는 자이고, 기어 다니는 저주받은 뱀이며 치욕이요 추악한 존재입니다. 오랜 옛날부터 그의 행위는 사람을 괴롭히고, 사람들의 지능을 눈앞에 그 행동의 표와 결과를 봅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거짓말을 하고 파멸시키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참되고 좋은 말을 하는데도 당신들은 내 말을 믿지 않고 나를 죄인으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증오를 가지거나 사랑을 가지고 내게 가까이 온 이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내가 죄짓는 것을 보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누가 정말 진정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내게 확인시키고 나를 믿는 사람들에게 확인시킬 수 있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십계명 중에서 어떤 계명을 어겼습니까? 내가 율법과 관례, 계명, 전통, 기도를 어기는 것을 보았다고 누가 하느님의 제단 앞에서 맹세할 수 있습니까? 모든 사람 가운데에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내가 죄를 지었다는 것을 확인케 해서 내게 얼굴빛을 변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 중에서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고, 천사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에 ‘그는 죄가 없다’고 외치십니다. 여기 대해서는 당신들도 확신합니다. 그리고 당신들과 나 사이에 누가 옳은지는 나를 비난하는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속해 있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 말씀이 당신들의 영혼 안에서 밤낮으로 쾅쾅 울리는 데도 당신들은 그것을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그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당신들이 하느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위하여 살고, 지극히 높으신 분을 공경하기 위하여 계명들을 가장 엄밀하게 지키면서 사는 우리가 하느님의 사람이 아니란 말이오? 그래 당신이 감히 그런 말을 하는 거요? 아!!!”
그들은 마치 밧줄이 그들의 목을 조르는 것처럼 증오로 숨이 막히는 것 같다.
“그러니 우리가 당신을 마귀들린 사람이라고 사마리아인이라고 말해야 되지 않겠소?”
“나는 마귀들린 사람도 아니고 사마리아 사람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비록 당신들이 나를 비난하기 위하여 그것을 부인하지만 내 아버지를 공경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의 비난이 나는 괴롭지 않습니다. 나는 내 영광을 찾지 않으니까요. 내 영광을 돌보시고 심판하시는 분이계십니다. 나는 이 말을 나를 모욕하고자 하는 당신들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착한 뜻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내 말을 받아들일 사람이나 이미 받아들인 사람으로 그것을 지킬 줄 알 사람은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아! 이제는 당신에게 붙어 있는 마귀가 당신 입술로 말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겠소! 당신이 직접 그 말을 했소. ‘마귀는 거짓말쟁이로 말한다’고. 그런데 당신이 말한 것은 거짓말이오. 그러니까 당신의 말은 마귀의 말이오. 아브라함도 죽었고, 예언자들도 죽었소. 그런데 당신은 당신의 말을 지킬 사람은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소. 그럼 당신은 죽지 않을 거란 말이오?”
“나는 사람으로서만 죽었다가 은총의 시대에 부활할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으로서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은 생명이라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의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고, 내가 그를 부활시킬 것이므로 하느님 안에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 미치광이! 마귀! 우리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고 예언자들도 죽었는데, 당신은 그들보다 낫단 말이오? 당신을 누구라 주장하는 거요?”
“당신들에게 말하는 나는 근원이오.”
소란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동만 레위파 사람 즈가리야가 예수를 행각의 한 구석으로 느낄 수 없을 만큼 천천히 미는데, 이 일을 알패오의 아들들과 다른 사람이 도와준다. 이 사람들은 아마 무엇을 하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 같다.
예수께서 벽에 단단히 기대시구 당신 앞에 있는 가장 충실한 사람들에 의해 보호되셨을 때, 그리고 마당 안에도 소란이 좀 가라 앉았을때, 예수께서는 깊이 파고드는 지극히 아름다운 목소리, 가장 어지러운 순간에도 지극히 침착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내가 나 자신을 찬양하면, 내 영광은 가치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이십니다. 당신들은 그분을 당신들의 아버지라고 말하지만, 도무지 당신들의 아버지가 아니신 것이, 당신들은 그분을 알지 못하고, 그분을 전에도 안 적이 없었고 그분을 알기 때문에 그분에 대해서 말하는 나를 통해서 그분을 알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또 만일 내게 대한 당신들의 증오를 가라앉히기 위하여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당신들이 그분을 안다고 말할 때에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과 같이 나도 거짓말쟁이가 될 것입니다. 나는 내가 어떠한 이유로도 거짓말을 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의 아들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 그에게 죽음을 가져다주게 되더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쉽니다. 만일 사람의 아들이 거짓말을 하면, 그는 이미 진리의 아들이 아닐 것이고, 진리가 그를 멀리 쫓아내겠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느님을 압니다. 하느님으로서도 알고, 사람으로서도 압니다. 그리고 하느님으로서, 또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지킵니다. 이스라엘이여, 깊이 생각하시오! 여기서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그 약속은 내게서 이루어집니다. 내 정체를 알아보시오! 당신들 조상 아브라함은 내 날을 보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예언적으로 내 날을 보았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내 날에 살고 있는 당신들은….”
“입닥치시오! 당신은 쉰 살도 안 됐는데, 아브라함이 당신을 보았고, 당신이 아브라함을 보았단 말이오?” 그리고 그들의 빈정거리는 웃음은 독이 들어 있는 물결이나 부식(腐食)하는 산(酸)처럼 퍼진다.
“나 진정으로 분명히 당신들에게 말하지만,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있습니다.”
”‘나는 있습니다.’ 하느님만이 영원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소. 당신은 그렇게 말할 수 없소!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 ‘나는 있소!’ 저주받으시오!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다니, 당신이 하느님이라도 된다는 거요?”
어떤 사람이 예수께 이렇게 외친다. 그 사람은 온지가 얼마 안 되는데, 그가 오자 모든 사람이 거의 공포에 질리다시피 되어 비켜났기 때문에 벌써 예수 가까이에 와 있는 것으로 보아 큰 인물인 모양이다.
“당신이 바로 말했습니다”하고 예수께서는 천둥소리 같은 목소리로 대답하신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질문을 한 사람이 소름끼칠 정도로 분개한다는 일련의 몸짓을 하며, 자기 두건을 잡아채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마구잡아 뽑고, 혐오로 인하여 졸도할 것 같이 느껴지는듯이 옷을 목에 고정시키는 죔쇠들을 푸는 동안, 흙을 한줌씩과 돌들을 선생님께로 던진다. 돌들은 비둘기와 다른 짐승들을 파는 사람들이 울타리의 밧줄을 팽팽하게 하는 데 쓰는 것이고, 또 환전상들이 목숨보다도 더 집착하는 그들의 돈궤를 조심스럽게 지키기 위하여 쓰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행각 밑 너무 안쪽에 계셔서 맞힐 수가 없기 때문에 흙과 돌은 자연 군중 위에 떨어지고, 군중은 투덜거리고 한탄한다….
래위파 사람 즈가리야는 예수를 한번 세게 민다. 행각의 담에 감추어져 있는 것으로 벌써 열 준비가 되어 있는 낮은 작은 문으로 예수를 가시게 하는 데에는 그 방법밖에는 없다. 그리고 그는 알패오의 두 아들과 요한과 마나헨과 토마와 같이 예수를 그리로 밀어 넣는다. 다른 사람들은 밖에 소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남아 있다. 그 소음은 약해져서 돌로 된 두꺼운 두 벽 사이에 있는 긴 복도에까지 들어온다. 이 돌로 된 벽을 건축용어로 무엇이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다. 그 벽의 돌들은 박아 넣어서 더 넓은 돌들이 더 작은 돌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도 있고, 그와 반대되는 것도 있다. 내가 설명을 잘 하는지 모르겠다. 그 돌들은 우중충하고 두껍고 대강 다듬은 것인데, 이곳에 환기를 하고 완전히 어두운 것을 막기 위하여 위쪽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낸 틈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으로 겨우 보일 뿐이다. 그것은 좁은 통로인데, 무슨 소용인지는 모르겠지만, 행각 전체의 밑을 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엄밀한 의미의 성전, 즉 지성소의 울타리들과 같은 행각들의 담을 보호하고 막아주고 겹쳐놓기 위하여, 그래서 더 저항력 있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잘 모르겠다. 나는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습기냄새, 어떤 포도주 지하광에서와 같이 찬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습기의 냄새가 있다.
“그래 여기서 우리는 뭘 하는 거야?”하고 토마가 묻는다.
“잠자코 있어! 즈가리야는 자기가 올 터이니까 꼼짝 말고 조용히 있으라고 내게 말했네”하고 타대오가 대답한다.
“그렇지만… 믿을 수 있을까?”
“그럴 걸로 생각하네.”
“염려 말아라.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하고 예수께서 그들의 용기를 돋우어 주시려고 말씀하신다.
밖에서는 소란이 밀어져 간다. 얼마 동안 시간이 지난다. 그런 다음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오고 펄럭이는 작은 빛이 어두운 저 속에서 다가온다.
“선생님, 거기 계십니까?” 하고 들리기를 바라면서 들릴까봐 염려하는 듯한 목소리가 말한다.
“그렇소, 즈가리야.”
“야훼께 찬미! 기다리셨지요? 저는 사람들이 모두 다른 문으로 달려가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오십시오, 선생님…. 선생님의 사도들은… 시몬에게 베데스다로 가서 거기서 기다리라고 말해 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내려갑니다…. 그다지 밝지는 않지만, 길은 안전합니다. 빗물받이 웅덩이로 내려가서…. 키드론 개울 쪽으로 나가게 됩니다…. 이것은 오래된 길인데, 언제나 좋은 일에만 쓰이지는 않던 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좋은 일에 쓰입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이 길이 거룩하게 됨니다….”
일행은 계속하여 등불의 펄럭이는 희미한 빛만으로 비추어지는 어두움 속을 내려간다. 마침내 다른 종류의 빛이 저기 끝 쪽에서 보이고… 그 저편으로는 초록빛 도는 빛이 보이는데,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격자가 어떻게나 촘촘한지 보통문과 같이 보이는 창살문으로 통로가 끝난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구해 드렸습니다. 이제는 가셔도 됩니다. 그러나 제 말씀을 들으시고, 얼마 동안은 오지 마십시오. 언제나 사람들에게 눈치 채이지 않고 선생님을 도와드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길과 여러분을 이 길로 인도한 저를 선생님도 잊으시고 여러분도 잊으십시오” 하고 즈가리야는 육중한 문에 있는 장치를 움직여, 겨우 사람들이 빠져나갈 수 있게 벙긋이 열면서 말한다. 그리고 “제게 대한 동정으로 잊어 주십시오”하고 다시 말한다.
“염려 마시오. 우리 중의 아무도 말하지 않을 거요. 그리고 당신의 이 사랑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바라오.” 예수께서는 손을 들어 젊은이의 숙인 머리에 얹으시며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나오시고, 사촌들과 다른 사람들도 따라 나온다. 올리브밭 앞에 있는 가시덤불이 뒤엉킨 황량한 작은 공간으로 겨우 모두가 들어설 수 있는 곳이다. 좁고 험한 길이 가시덤불 사이로 급류를 향하여 내려간다.
“가자. 곧 이어서 양들의 문 있는 곳으로 다시 올라갈 터인데, 나는 내 사촌들과 함께 요셉의 집으로 갈 터이니, 그동안 너희들은 베테스타에 가서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나 있는 데로 오너라. 내일 저녁 황혼이 지난 다음에 노베에 가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