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집은 아리마태아의 요셉의 집이 아니라, 세포리스의 늙은 갈릴래아 사람의 집이다. 이 사람은 알패오의 아들들, 특히 제일 나이 많은 아들들의 친구이다. 그것은 그가 지금은 고인이 된 늙은 알패오의 친구였었고, 또 아마 먼 친척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겐네사렛 호수의 건어물 거래 때문에 제베대오의 아들들과도 계속적인 연락을 취하고 있다. 이 건어물들은 고향을 떠나 예루살렘에 와서 사는 갈릴래아 사람들에게 소중한 갈릴래아의 다른 산물들과 같이 수도(首都)에 수입되는 것이다. 알패오의 두 아들과 요한이 토마에게 말하는 것에서 내가 추론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한편 예수께서는 조금 뒷쪽에 마나헨과 같이 계신데, 그에게 아리마태아의 요셉과 니고데모에게 가서 당신 계신 곳으로 오라고 부탁하라는 책임을 맡기시니, 마나헨은 즉시 그렇게 한다. 예수께서는 잠시 동안 또 세 사람과 같이 계시면서 “그들을 안전하게 하여 준 레위파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회화할 때에 조심하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들을 떠나 오솔길로 해서 성큼성큼 걸어가신다. 그러나 요한이 이내 예수를 따라 갔다.
“왜 왔느냐?”
“저희들은 선생님을 이렇게 혼자 계시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왔습니다.”
“그러면 그 많은 사람에 대항해서 너 혼자 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그건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선생님보다 먼저 죽기는 할 것입니다. 제게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너는 나보다 매우 오래 후에야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너를 세상에 남겨 두시는 것은, 네가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의 말씀을 섬기라고 그러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요?….”
“후에도 너는 봉사할 것이다. 우리의 두 마음이 원하는 것과 같이 내게 붕사하기 위해서는 네가 얼마 동안이나 살아야 하겠느냐? 그러나 죽고 나서도 너는 내게 봉사할 것이다.”
“선생님, 제가 어떻게 그렇게 하게 됩니까? 만일 제가 선생님과 함께 하늘에 있으면, 선생님께 경배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는 세상에서 선생님께 봉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런데 나는 네게 말하는데, 너는 내가마지막으로 다시 올 때까지 내게 봉사할 것이다. 강들이 마르는 것과 같이, 그래서 파랗고 유익한 아름다운 물줄기였던 것이 푸석푸석한 부식토와 메마른 돌무더기가 되는 것과 같이, 많은 것이 마지막 시간이 오기 전에 마를 것이다. 그러나 너는 아직 내 말이 울리고, 내 빛을 반영하는 강으로 있을 것이다. 너는 전혀 영적인 빛일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상기시키기 위하여 남아 있을 최후의 빛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시기는 빛에 대항하는 어두움의 싸움이고 영에 대한 육체의 싸움일 것이다. 믿음을 꾸준히 지킬 줄 아는 사람들은 네가 뒤에 남겨 놓을 것에서 힘과 바람과 위안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네 뒤에 남겨 놓을 것은 아직도 너일 것이고 또 무엇보다도 나일 것이다. 그것은 너와 내가 서로 사랑하고, 네가 있는 곳에 내가 있고, 내가 있는 곳에 네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베드로에게 내 반석을 우두머리와 기초로 가지게 될 교회가지옥의 되풀이 되고 점점 더 사나워지는 공격으로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은 네게 말하는데, 역시 나일 것인 그것, 빛을 찾는 사람들을 위하여 네가 빛으로 남겨 놓을 그것이, 그것을 없애려고 하는 지옥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수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를 받아들이면서도 내 베드로는 받아들이지 않겠기 때문에 나를 불완전하게 믿을 사람들까지도 조종사도 없고 나침반도 없는 작은 배들과 같이 항상 네 등대로 끌릴 것이다. 그 배들은 그들의 폭풍우를 뚫고 빛을 향하여 간다. 빛은 구원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주님, 제가 무엇을 남겨 놓겠습니까? 저는 보잘 것 없고… 무식한데요…. 저는 사랑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다. 너는 사랑을 남겨 놓을 것이다. 그리고 네 예수에 대한 사랑이 말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아주 많은 사람이, 내 교회에 속해 있지 않고, 아무 교회에도 속해 있지 않고, 다만 채워지지 않은 그들의 정신에 자극되고, 사람들이 그들의 고통을 동정하기를 바라는 욕구로 빛과 위안을 찾을 사람들도 네게로 와서 나를 발견할 것이다.”
“선생님을 제일 먼저 발견하는 사람들이 저 흉포한 유다인들, 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저 율법학자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꽉 차 있는 곳에는 아무 것도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나 너는 낙심하지 말아라… 자, 요셉의 집에 다 왔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고 들어가자.”
좁고 높은 집인데, 곁에는 낮고 쌓아둔 상품으로 인하여 고약한 냄새가 나는 상점이 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위쪽이 불쑥 나온 담들 때문에 어두워진 마당이 있는데, 그 마당은 그 당시의 여관들과 같은 여관의 마당과 같은 것이었다. 즉 상품들을 넣어 두는 회랑들이 있고, 나귀들을 매 두는 마구간이 있고 손님들을 위한 방들이나 큰 침실들이 있다. 여기에는 포석이 제대로 깔려 있지 않은 마당과 수반과 낮고 어두운 두 마구간이 있고, 집에 대서 짓고 상점 안으로 통하는 문이 있는 회랑으로 쓰이는 투박한 헛간이 있다. 그리고 이것들 말고 내가 말한 낡고 어두운 집이 있는데, 문이 높고 좁으며, 닳아빠진 돌로 된 세 단으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요한이 문을 두드리고 기다리고 있노라니, 이윽고 좁은 틈이 빠끔히 벌어지고 작은 노파의 주름진 얼굴이 나타나 희미한 속을 살핀다. “아이고! 요한! 곧 열겠네. 하느님께서 자네와 함께 계시기를!”하고 그 주름진 얼굴에 딸린 입이 말하고, 빗장 소리가 요란스럽게 나며 문이 열린다.
“할머니, 저 혼자가 아닙니다. 선생님을 모시고 왔어요.”
“갈릴레아의 영광인 선생님께도 평화. 그리고 참된 이스라엘 사람의 집에 거룩하신 분의 발을 옮겨 온 이 날은 복된 날일세. 주님, 들어오십시오. 곧 가서 요셉에게 알리겠습니다. 음산한 에타민달에는 황혼이 빨리 오기 때문에 마지막 인도(引渡)를 하는 중입니다.”
“일을 하게 그냥 두세요, 할머니. 우리는 내일까지 여기 있을 것입니다.”
“저희들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선생님을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선생님의 형님 요셉이 선생님의 소식을 물으러 사람을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 남편이 더 낫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겁니다. 이상입니다. 선생님은 여기 그대로 계셔도 됩니다…. 저는 주님을 떠납니다. 지금 빵을 다 구어 가고 있는 중이니까요 .황혼이 되기 전에 구워져야 합니다. 무엇을 원하시면, 요한이 저 있는 데를 압니다.”
“안심하고 가세요. 우리에게는 숙소를 주시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치 않습니다.”
얼마 동안 두 분만이 남아 있다. 그러다가 무서워하면서도 동시에 호기심 많은 작은 갈색 얼굴이 방과 복도를 갈라놓는 커튼 뒤에 보인다.
“저 어린이는 누구냐?” 하고 예수께서 요한에게 물으신다.
“모르겠습니다, 주님. 다른 때 왔을 적에는 없었는데요. 하긴 선생님을 모시고 있은 뒤로는 아버지를 위해서 여기 오지 않았습니다. 얘야, 이리 오너라.” 어린 아이는 잔걸음으로 다가온다.
“너 누구냐?”
“말하지 않을래.”
“왜?”
“기분 나쁜 말을 듣기 싫어서 그래. 아저씨가 그런 말하면 내가 대답을 할 텐데.할아버진 그걸 싫어한단 말이야.”
“별난 소리 다 듣겠구나!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요한은 어린 아이의 논거가 재미있어서 웃는다.
예수께서도 빙그레 웃으신다. 그러나 손을 들어 어린 아이를 끌어당기시고 살펴보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그럼, 너는 내가 누구인지는 아니?”
“알구 말구요! 아저씨는 메시아야. 온 세상을 자기 것을 만들 사람이야. 그 때에는 사람들이 나 같은 어린 아이들에게 기분 나쁜 말을 하지 않을 거야.”
“너, 이스라엘 아이는 아니지?”
“난 할례를 받았어…. 아주 아팠어. 그렇지만… 배고픈 것도 아팠어. 그리고… 엄마가 없게 되고 아무도 없게 된 것도…. 그렇지만 사람들이 우리를… 말하는 걸 듣는 건 지금도 아파….” 어린 아이는 처음의 대담성을 잃고 운다.
“이 애는 외국 고아인 것 같다. 요한아, 요셉이 동정해서 거두고, 할례를 받게 한 모양이구나… ” 하고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의 논거(論據)와 울음에 놀라셔서 요한에게 설명하신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당신 무릎에 앉히신다.
“얘야, 이름을 말해 봐라. 나는 너를 좋아한다. 예수는 모든 어린이를 사랑하고, 특히 고아들을 많이 사랑한다. 나도 고아를 하나 데리고 있는데, 이름은 마륵지암이라고 하고 또….”
“나도 그래. 나는 (작은 목소리가 이제는 겨우 들을 수 있을까 말까한 속삭임에 지나지 않게 된다), 나는 로마 아이거든….”
“내가 말한 대로다! 그리고 너도 고아지?”
“응… 아빠는 기억도 안나. 엄마는 기억나. 내가 벌써 컸을 때 엄마가 죽었거든… 그래서 난 혼자 남았어. 아무도 날 받아주지 않았어. 주인이 멀리 떠나간 다음에 나는 가이사리아에서 걸어서 여행자들의 뒤를 따라 왔어. 그리고 아주 배가 많이 고팠어. 그런데 내가 이름을 말하면 매를 맞았어… 이름으로 알게 되는 모양이지. 응? 그리고 나는 어떤 명절에 여길 왔어. 그런데 배가 고팠어. 나는 대상을 따라서 마구간으로 들어가서 나귀들에게 주는 귀리와 케롭(지중해 연안산 콩과의 상록수인 캐롭나의 열매)을 먹으려고 밀짚 속에 숨어 있었어. 그런데 나귀 한 마리가 나를 물었어. 그래서 울부짖었더니 사람들이 달려 와서 나를 때리려고 했어. 그런데 요셉 할아버지가 말했어. ‘안 돼. 선생님은 그렇게 하셨고, 당신이 하시는 대로 하라고 말씀하셨네. 그러니까 나는 이 애를 거두어서 이스라엘 아이를 만들겠네’ 하고. 그리고 할아버지는 나를 거두어서 마리아 할머니와 함께 보살폈어. 그리고 다른 이름을 하나 지어 주었어. 내 이름은… 엄마는 나를 마르시알이라고 불렀었어….” 그러면서 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럼, 나도 네 엄마처럼 마르시알이라고 부르마. 요셉 할아버지가 하신 건 썩 잘 하신 거다. 너는 요셉 할아버지를 많이 사랑해야 한다.”
“응, 그렇지만 난 아저씨를 더 좋아해야 돼, 할아버지는 늘 그러는걸. ‘언젠가 메시아인 나자렛의 예수를 만나면, 정성을 다해서 사랑해야 한다. 너를 잘못된 것에서 구해 준 건 예수님이니까’하고. 그리고 할머니는 곁에 있는 하녀한테 메시아가 집에 있다고 말했어, 그래서 나를 구해 준 사람을 보러 온 거야.”
“저는 요셉이 이런 일을 한 줄은 몰랐습니다. 요셉은 몹시… 인색했거든요…그분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도무지 생각 못했습니다…. 가엾은 요셉! 인색하고 자식들과는 사이가 나빴구요. 자식들은 아버지의 백발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안다. 그러나 봐라. 어쩌면 이 어린 아이를 통해서 그가 새로워지고… 잊어버리는지도 모른다. 하느님께서는 그가 어린 아이를 위해서 한 것을 이렇게 갚아 주신다. 지금은 네 이름이 뭐냐?”
“못생긴 이름이야. 난 내 이름처럼 시작되는 것 때문에만 그 이름을 좋아해. 내 이름은 마낫세야!…. 그렇지만 할머니는 눈치를 채고 날 ‘만’이라고 불러.” 그리고 어린 아이가 그 말을 어떻게나 애석하게여기는 태도로 하는지 예수와 요한은 빙그레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를 위로하기 위하여 설명하신다. “마낫세는 우리에게는 매우 기분 좋은 뜻을 가진 이름이다. 이 이름은 주님이 내게 모든 고통을 잊게 하셨다는 뜻이다. 요셉 할아버지가 네게 그 이름을 붙여 주신 것은 네가 할아버지의 모든 고통을 잊게 하리라는 뜻으로 그러신 거다. 그러니까 얘야, 할아버지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해라. 너 자신도 네 새 이름으로, 주님이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하셔서 네게 아버지와 엄마와 집을 다시 주셨다고 생각해라. 그렇지?”
“응, 그렇게 설명하니까 그래…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나보구 내 집까지도 잊어버려야 한다구 말해. 난 엄마는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
예수께서는 요한을 바라보시고, 요한은 예수를 바라본다. 그리고 작은 갈색 머리 위로 진짜 눈길의 대화가 오간다….
“얘야, 엄마는 잊어버리지 않는 거다. 요셉 할아버지가 잘못 설명하신 거다. 아니, 오히려 네가 잘못 알아들은 거다. 할아버지는 분명히 네가 지난날의 모든 고통을 잊어버리고, 지금은 이 집이 있으니까 네 집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네가 행복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거다.”
“아! 그러면 됐어. 할머니도 착하고 나를 기쁘게 해줘. 지금도 나주려고 비스킷을 만들고 있어. 다 구워졌는지 가볼래. 그리구 아저씨한테도 갖다 주겠어.” 그리고 예수의 무릎에서 미끄러져 내려가 방밖으로 뛰어 나간다. 작은 맨발 소리가 긴 복도로 사라진다.
“우리 중의 가장 착한 사람들에게까지도 엄하게 하려는 저 경향이 항상 있구나! 불가능한 것을 고집하는 것 말이다! 하느님의 백성의 자식들이 하느님보다 더 엄하다! 가엾은 어린 것! 어떤 어린 아이가 이제는 할례를 받았으니까 어머니를 잊어버릴 것이라고 우길 수 있겠느냐? 요셉에게 그 말을 해 주겠다.”
“저는 요셉이 이런 일을 한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많은 갈릴래아 사람들처럼 명절 때에는 여기에 드시는데, 이 일을 알지 못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시고, 요한도 따라 일어나서, 들어오는 집주인에게 마땅히 표해야 하는 경의를 표하며 인사할 준비를 갖추신다. 주인도 역시 몸을 깊숙이 구부리며 들어와서 마침내 예수의 발 앞에 와서 무릎을 꿇는다.
“일어나세요. 할아버지, 보시다시피 제가 왔습니다.”
“기다리시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금요일은 중요한 날이라서요! 요한, 잘 있었나? 제베대오의 소식을 들었나?”
“부모님을 뵌 장막절 이후로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도 안녕하시고 어머니도 안녕하시다는 걸 알게. 오늘 아침에 고기를 마지막 보내는 것과 함께 최근의 소식을 전해 왔네. 그리고 선생님께도 친척들이 나자렛에 모두 무사히 있다는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리온 사람들이 안식일 다음날 떠납니다. 소식을 보내고 싶으시면… 두 분뿐이십니까?”
“아닙니다. 얼마 안 있어 다른 사람들이 올 것입니다….”
“좋습니다. 모두가 들 만한 자리가 있습니다. 이 집은 충실한 집입니다. 마리아가 빵 때문에 바쁘고, 저는 물건 파는 일로 바쁜 것을 섭섭하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두 분만 남겨 놓고… 선생님께 경의를 표하는 것을 소홀히 했고, 손님에 대해서 마땅히 해야 하는 것처럼 상대가 되어 드리는 것을 소홀히 했습니다. 그것도 중요한 손님에 대해서”
“할아버지와 같은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다 같습니다.”
“어! 아닙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이시지요. 저는 저 유다인들처럼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선생님은 메시아이십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의한 것이고요. 그러나 내 뜻과 내 의무로 말하면, 할아버지와 같이 율법의 아들입니다.”
“아! 선생님을 중상하는 사람들은 선생님이 지금 말씀하시고 늘 행하시는 것처럼 말하고 행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내가 가르치는 것을 많이 하시더군요. 어린 아이를 보았습니다. 할아버지….”
“아! 그 놈을 보셨습니까? 왔었군요! 제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을 알면서! 선생님 때문에… 저는 그렇게 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아닌 다른 사람일 수도 있었거든요….”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 것입니까?”
“그… 그것이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왜요? 사람들의 칭찬을 듣지 않으려구요? 할아버지의 생각은 칭찬할 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는 할아버지가 그 애를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입니다!”
“사실이라구요? 왜요? 그것을 설명해 주십시오.”
“이렇습니다. 그 애는 히브리인에게서나 개종자에게서 난 히브리인도 아니고, 우리나라 여자와 이방인 사이에서 난 히브리인도 아닙니다. 그 애는 해안의 가이사리아에 있던 어떤 로마인의 집에 살던 해방된 노예인 두 로마인에게서 태어난 아이입니다. 그 주인은 그곳에 있는 동안은 아이를 돌보았습니다. 그러나 해안의 가이사리아를 떠나면서 어린 아이는 상관하지 않아서 그 애 혼자 남았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자연 그 애를 거두어 주지 않았습니다. 로마인들은… 로마인들이 어떤지는 선생님도 아시지요… 특히 가이사리아의 저 로마인들은! 그 애는 빌어먹으면서….”
“예, 그건 압니다. 그 애는 여길 왔고, 할아버지가 그 애를 거두어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할아버지의 행위를 하늘에 새겨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애에게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갈아주었습니다. 그 애 이름은! 이교도의 이름! 우상숭배자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애가 사람들 앞에 나타나고 제 과거를 기억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왜요?”하고 예수께서 조용히 물으시고 이렇게 덧붙이신다.
“어린 아이가 그것을 괴로워합니다. 그 애는 엄마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어떤… 아이를 거두어 주었다고 비난받고 싶어하지 않는게 소원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없는 어린 아이를 거두어 준 것입니다. 그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할아버지. 더 높은 심판, 즉 하느님의 심판은 할아버지의 행위가 거룩하기 때문에 그것을 승인하는데, 왜 사람들의 판단을 두려워하십니까? 왜 인간적인 체면이나 보복이 두려워서 착한 행동을 부끄러워하십니까? 왜 어린 아이에게 이름을 가는 것에서 나타나는 것 같은 이중성의 본보기를, 할아버지에게 손해가 될까봐 두려워서 과거를 덮어버리는 이중성의 본보기를 주려고 하십니까? 왜 어린 아이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업신여기는 마음을 불어넣어 주려고하십니까? 할아버지, 아시겠습니까? 할아버지는 칭찬받을 만한 행동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행동에 그 불완전한 사상의 먼지를 뒤집어씌우십니다. 할아버지는 내 행위 중의 하나를 본받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내 말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왜 이일을 솔직하게 행하셔서 나를 본받는 것을 완전하게 하시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그렇다. 이 아이는 로마 아이였다. 그런데 이 아이가 너희들과 똑같이 창조주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혐오감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이 아이가 우리 율법을 따르기를 원해서 그에게 할례를 베풀었다’하고. 정말로… 이제 참다운 할례가 오고 사람들의 마음에 행해져서, 세 가지 사욕의 목을 죄는 듯한 고리를 없앨 것입니다. 따라서 저 아이가 그 때까지 아이로 있었다 하더라도… 그러나 할아버지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인인 할아버지가 저 아이를 히브리인을 만드신 것은 잘 하신 일입니다. 그렇지만 저 애의 이름은 그대로 두세요. 오! 장차 얼마나 많은 마르시알과 까이우스와 펠릭스와 꼬르넬리우스와 끌라우디우스와 그 밖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하늘의 사람이 될지 모릅니다! 히브리인이 무엇이고 이방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새 성전과 새 사제들을 가진 참된 새로운 율법이 제정되었을 때에야 성년이 될 저 아이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아이는 할아버지가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 새로운 성전에 이르지 않고, 하느님의 심사를 받고 당신의 성전에 들어올 자격이 있다고 인정되어 들어올 것입니다. 저 애에게 엄마가 붙여 준 이름을 그대로 두십시오. 저 애에게 그것이 아직 엄마의 애무가 될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저 애에게 마낫세라는 이름을 주신 뜻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마르시알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두십시오. 그리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그렇소. 마르시알이오. 마리아가 그 이름을 지어준 그리스도의 제자와 거의 같은 거요’하고. 할아버지, 용맹하게 선을 행하세요. 그러면 크게 매우 크게 되실 것입니다.”
“선생님… 하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제가 사람으로서도 잘 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잘 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고통 때문에 할아버지가 착하게 되셨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하신 것이 다 잘 하신 것이고, 이 행위도 착한 것입니다.”
거리 쪽으로 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대화가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