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동안 네게 말하겠는데, 만일 너희가 정확한 작품을 만든다면, 수요일(1944년 9월 20일)의 삽화는 내가 죽기 1년 전에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 삽화가 내가 서른두 살 되던 해 추수 때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 사랑하는 딸아, 너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위로와 교훈의 필요로 인하여 거기에 관계되는 환시와 불러주기를 해 주는데 특별한 순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3년 동안의 공생활의 삽화들을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 적당한 시기에 너희에게 일러주겠다. 복음서의 순서는 좋다. 그러나 연대순으로는 완전하지 않다. 주의 깊은 관찰자는 그것을 알아본다. 내가 복음 전파를 시작한때부터 내가 승천할 때까지 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사실들의 정확한 순서를 말할 수 있었을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과연 빛의 진짜 아들인 요한은 인간의 육체 안에 들어 있는 천주성의 실재를 공격하던 이단자들의 눈에 육체의 옷을 통하여 빛을 빛나게 하는 일을 하고 그 일에 골몰하였다. 요한의 숭고한 복음서는 그 초자연적인 목적은 달성하였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내 공생활의 연대기(年代記)는 도움을 받지 못하였다. 다른 세 복음서의 작자는 사실에 대하여는 서로 비슷한 모습을 나타낸다. 그들도 시간의 순서를 바꾸어 놓는다. 그것은 그들 중에서 마태오 한 사람만이 내 공생활 거의 전 기간에 있었는데, 그의 복음서를 15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썼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그보다도 더 늦게, 그리고 내 어머니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과 제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썼기 때문이다.
3년 동안의 사실들을 1년 1년씩 모아 놓도록 너희를 인도해 주마.
이제는 보고 써라. 이 삽화는 수요일 (1944년 9월 20일)의 삽화 뒤에 오는 것이다.”

나는 예수께서 달이 비추는 시골의 오솔길을 천천히 왔다 갔다 하시는 것을 본다. 만월이다. 그리고 그 웃는 얼굴이 아주 맑은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그러나 질 차비를 하고 있는 하늘에서의 그 위치 때문에, 나는 지금은 자정이 지났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예수께서는 곰곰 생각하시며 걸으시는데, 비록 말은 들리지 않지만 틀림없이 기도를 드리시며 걸으실 것이다. 그러나 둘레에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으신다. 한번은 아르페지오 트레몰로로 된 일련의 선율과 독창곡 곡조를 길게 뽑는 사람에 빠진 밤꾀꼬리의 긴 노래를 미소를 머금고 걸음을 멈추시며 들으신다. 그 소리가 어떻게나 강하고 긴지 그것이 것밖에 없는 것 같은 그 작은 새에서 올 수는 없는 것같이 생각될 지경이다. 그 놈을 오솔길 위를 걷는 샌들과 풀을 스치는 옷소리만으로라도 방해하지 않으시려고, 걸음을 멈추시고, 팔짱을 끼시고 미소를 띤 얼굴을 드신다. 이제는 듣는 일에 더 잘 전념하시려고 눈을 감기까지 하신다. 그리고 밤뵈꼬리가 3도 음정의 간격을 두고(내 기억이 틀리지 않으면) 올라가고 올라가고 또 올라가고, 마침내 숨이 다할 때까지 오랫동안 뽑은 몹시 높은 음으로 끝나는 날카로운 소리로 노래를 끝내자, 예수께서는 만족의 미소를 띠시고 머리를 두세번 끄덕여 칭찬을 하시고, 말없이 박수를 보내신다.
한편 이제는 수많은 흰 꽃받침이 짙은 냄새를 풍기는 꽃이 되어있는 인동(忍冬) 덩굴 한 포기에 몸을 숙이신다. 꽃받침들은 하품을 하는 뱀의 입을 닮았는데, 그 안에서는 노르스름한 혀같은 꽃술이 떨고 있고, 아래쪽 꽃잎에는 금빛 흔적이 빛나고 있다. 꽃들은 달빛 아래서는 마치 은을 입힌 것처럼 한충 더 희게 보인다. 예수께서는 꽃들을 감상하시고, 향기를 맡으시고, 손으로 쓰다듬으신다.
예수께서는 발길을 돌리신다. 남쪽에 달빛으로 틀림없이 호수의 일부분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약간 높은 곳인 모양이다. 틀림없이 호수의 일부분일 것이라고 말한 것은 달빛을 받은 유리처럼 반짝이는 것인데, 예수께서 계신 쪽의 반대쪽에는 야산들이 가장자리를 둘러치고 있으므로 강이나 바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여름밤의 고요 속에서 판판한 거울 같은 그 고요한 수면을 바라보신다. 그러다가 남쪽에서 서쪽으로 몸을 돌리시고, 기껏해야 2킬로미터, 그 보다 덜 떨어지면 덜 떨어졌지 더 떨어지지는 않은 하얗게 보이는 마을을 바라보신다. 아름다운 마을이다. 예수께서는 마을을 바라보시려고 걸음을 멈추신다. 그리고 당신을 몹시 슬프게 하는 어떤 생각을 하시면서 머리를 흔드신다. 그런 다음 다시 천천히 거닐면서 기도를 시작하셨다가 마침내 키가 매우 큰 나무 아래 있는 큰 돌 위에 앉으셔서 늘 취하시는 자세를 취하신다. 팔꿈치를 무릎에 세우시고, 아래팔을 앞으로 내미시고, 기도하기 위하여 합장을 하시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한동안 이렇게 계시는데, 만일 어떤 사람이, 어떤 그림자가 나무덤불에서 예수를 향하여 와서 “선생님?” 하고 부르지 않았더라면 더 오랫동안 그대로 계셨을 것이다.
앞으로 나아오는 사람이 뒤에서 오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몸을 돌리시며 “유다냐? 무슨 일이냐?” 하고 말씀하신다.
“선생님, 어디 계십니까?”
“호두나무 아래 있다. 앞으로 나아오너라.” 그러시면서 예수께서는 일어나셔서 유다가 볼 수 있도록 달빛이 비추는 오솔길로 오신다.
“유다야, 네 선생의 동무가 좀 되어 주려고 왔느냐?” 이제는 두 사람이 서로 가까이에 있고, 예수께서는 다정스럽게 한 팔을 제자의 어깨에 얹으신다.
“또 코라진 사람들이 나를 요구하느냐?”
“아닙니다, 선생님. 그런 일은 조금도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만나뵈러 오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오너라. 이 바위에는 두 사람이 앉을 만한 자리가 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는다. 침묵이 흐른다. 유다는 말을 하지 않고, 예수를 쳐다본다. 그는 싸우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를 돕고자 하신다. 그를 다정스럽게, 그러나 통찰력을 가지고 들여다보신다.
“유다야, 얼마나 아름다운 밤이냐! 모든 것이 얼마나 깨끗한지 보아라! 나는 땅을 굽어보고 지상낙원에서 잠든 아담을 굽어보고 웃은 첫번째 밤도 더 깨끗하지도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꽃들의 향기를 맡아 보아라. 냄새를 맡기만 하고 따지는 말아라. 이 꽃들이 몹시도 아름답고 몹시도 깨끗하다! 꽃들을 따는 것은 그것들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도 꽃을 따지 않았다. 초목에 대해서도 짐승에 대해서도, 짐승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언제나 좋지 않다. 왜 생명을 빼앗는 것이냐? 생명을 잘 쓰기만 하면 그렇게도 아름다운 것을!….
그런데 이 꽃들은 향기를 풍기고, 모양과 냄새로 기쁘게 하고, 벌과 나비들에게 꿀을 주고, 꽃술의 금빛 가루를 그 놈들에게 주어서 그 놈들의 진주빛 날개에 작은 황옥의 점을 찍어 놓고, 새둥지의 침대 노릇을 하기 때문에 생명을 잘 쓴다…. 조금 전에 네가 여기 있었더라면 밤꾀꼬리 한 마리가 삶의 기쁨과 주님을 찬미하는 기쁨을 아주 즐겁게 노래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사랑스러운 새들! 그 놈들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본보기가 되는지 모른다! 그 놈들은 얼마 안되는 것으로, 또 허락되고 거룩한 것, 즉 창조주이신 아버지께서 그놈들에게 주시기 때문에 낟알 한 알과 작은 벌레 한 마리만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그런 것이 없으면 성을 내거나 원한을 느끼지 않고, 주님의 찬미와 소망의 기쁨을 노래하게 만드는 넘쳐흐르는 마음으로 그 놈들의 몸의 굶주림을 달랜다. 그 놈들은 이기주의에서가 아니라 새끼들에 대한 사랑으로, 따뜻하고 폭신하고 안전한 둥지를 만들기 위하여 새벽에서 저녁까지 날아다니느라고 지친 것을 기뻐한다. 그리고 그 놈들은 올바르게 서로 사랑하는 기쁨을 노래하고, 밤꾀꼬리 수컷은 암컷을 위해서, 두 놈은 새끼들을 위해서 노래한다.
짐승들은 그 놈들의 마음에 그 놈들에게 무엇인가를 비난하는 가책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항상 행복하다. 사람은 악의가 있고, 존경심이 없고, 강압적이고, 잔인하기 때문에 우리가 짐승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리고 인간은 같은 인간들에 대해서 악의를 가지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의 악의는 그보다 못한 존재에까지 쏟아져 간다. 사람은 가책이 있으면 있을수록 양심의 자극을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의 악의를 더 미치게 한다. 오늘 땀을 뻘뻘 흘리고 몹시 지친 그의 말에 피가 나도록 박차를 가하고, 하도 채찍질을 해서 목과 옆구리, 그리고 콧구멍과 그렇게도 인종하고 그렇게도 유순한 눈위로 고통스럽게 내리감기는 눈꺼풀에까지도 털이 곤두서게 한 그 말탄 사람은 평온한 마음을 가지지 못했었다고, 정직에 어긋나는 죄를 지려고 하던가 죄를 지은 길이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예수께서 입을 다무시고 생각하신다.
유다도 말이 없다. 그도 생각한다. 그러다가 말한다.
“선생님,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은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모든 것이 눈과 정신과 마음에 분명해집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저는 착하게 되고 싶습니다’하고 말하는 것까지도 다시 쉬워집니다. 선생님께… 선생님께… 선생님께 ‘선생님, 저도 흐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깨끗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선생님, 제게 대해서 혐오감을 가지지 마십시오!’하고 말씀드리는 것까지두요.”
“오! 내 유다야! 내가 혐오감을 가지다니? 벗아, 아들아, 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선생님, 저를 선생님 곁에 두어 두십시오. 저를 꼭 껴안아 주십시오…. 저는 선생님이 제게 몹시 다정스럽게 말씀하신 때부터 착하게 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저는 처음 얼마 동안의 유다가 다시 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따르고, 신랑이 신부를 사랑하듯이 선생님을 사랑했고, 선생님에게서 모든 만족을 발견해서 선생님만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이렇게 사랑했습니다….”
“나도 안다…. 또 그래서 너를 사랑했다…. 그러나 상처를 입은 가엾은 내 벗아, 아직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제가 상처 입은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무엇을 보고 아십니까?
침묵이 흐른다. 예수께서는 유다를 아주 부드러운 눈으로 들여다보신다…. 눈물 한 방울이 그 광채를 약하게 하여 더 크고 더 부드럽게 하는 것 같다. 온전히 사랑에 바치는 죄없고 노여움이 없어진 어린 아이 같은 눈이다.
유다는 예수의 발 앞으로 미끄러져 내려가서 예수의 무릎에 얼굴을 대고 양팔로 예수의 옆구리를 껴안으며 탄식한다. “선생님, 저를 선생님 곁에 놔두십시오…. 저를 지켜 주십시오…. 제 육채가 마귀처럼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을 들어주면, 모든 악이 몰려옵니다…. 저는 선생님이 알고 계시지만 그래도 제가 말씀드리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선생님,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하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사람아, 나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하고 말해서 품격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면 행동을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유다야, 그러나 이것에는 훌륭한 약이 하나 있다. 죄를 말하느라고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죄짓는 것을 삼가게 된다. 그리고 죄를 지었으면,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는 고통이 벌써 속죄하는 보속이 된다. 그리고 만일 어떤 사람이 교만으로나 벌에 대한 공포로 괴로워하지 않고, 위반함으로써 고통을 주었다는 것을 말기 때문에 괴로워하면, 그 때에는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죄가 사라진다. 구원하는 것은 사랑이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저는 몹시 약합니다…. 오! 선생님은 저를 사랑하실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깨끗하시고, 또 깨끗한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선생님이 저를 사랑하실 수 없는 것은 제가… 제가… 오! 예수님, 제게서 육욕의 갈망을 없애 주십시오! 선생님은 그것이 어떤 마귀인지를 아십니까?”
“나도 안다. 나는 그 갈망을 들어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지도 안다.”
“아시지요? 아시지요? 선생님이 거기에 대해 너무도 혐오감을 가지셔서 그 말만 하셔도 선생님의 얼굴이 엉망이 됩니다…. 오! 선생님은 저를 용서하실 수가 없습니다!”
“유다야. 너는 마리아를 기억 못하느냐? 마태오를? 문둥병자가 된 저 세리를 기억 못하느냐? 내 용서를 받은 다음에 거룩하게 하는 힘을 가질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에게 천국에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한 로마의 창녀였던 저 여자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오! 제 마음에는 어떤 악이 들어 있는지요!…. 오늘 저녁 저는 도망쳤습니다….” 코라진에서 도망쳤습니다…. 만일 거기 있었더라면… 거기 있었더라면… 제가 파멸했겠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저는 술을 마셔서 그것으로 인해 병자가 되는 사람과 같습니다…. 의사가 그에게서 술과 취하게 하는 음료를 어느 것이든지 빼앗아 버리면, 그 사람은 병이 낫고, 그 맛을 느끼지 않는 동안은 건강한 몸으로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만이라도 견디지 못하면 그 맛을 다시 느끼게 되고… 갈증이… 그 음료에 대한 갈증이… 저항할 수 없게 될 만큼 강하게 와서… 마시고 또 마셔서… 다시 병자가 되고… 영원히 병자가 되고… 미치광이가 되고… 마귀들린 사람… 자기의 마귀에게 붙잡힌 사람이 됩니다…. 오!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말씀하지 마십시오…. 저는 모든 사람 앞에서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내 앞에서는 그렇지 않다.”
유다는 잘못 알아듣는다. “맞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선생님은 완전하시니까 다른 어떤 사람 앞에서보다도 선생님 앞에서 더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다, 이 사람아. 내가 말한 것은 그 말이 아니다. 네 고통과 네 슬픔이 네 굴욕이 네게 진리를 가려서는 안 된다. 내가 말한 것은 네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끄러워할 수는 있지만 내 앞에서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아들은 인자한 아버지 앞에서는 무서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며, 병자도 유능한 의사 앞에서는 무서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아들이나 병자는 아버지와 의사에게 두려움없이 자기의 속을 털어놓는다. 그것은 한 사람은 사랑하고 용서하고 또 한 사람은 이해하고 고쳐 주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이해한다. 그래서 너를 용서하고 고쳐 준다. 그러나 유다야, 말해 다오. 너를 네 마귀에게 넘겨주는 것이 누구냐? 너냐? 네 형제들이냐? 방탕한 여자들이냐? 아니다. 네 의지이다.
이제는 내가 너를 용서하고, 고쳐 준다…. 내 유다야, 네가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느냐! 그렇지 않아도 나는 노래들이 기쁘게 해주는 자고 향기로운 이 밤을 많이 즐기고, 그로 인해서 주님을 찬미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네가 내게 주는 기쁨이 저 달빛과 이 향기들과 이 평화와 이 노래들을 능가한다. 들리느냐? 밤꾀꼬리가 이 기쁨에 합류해서 나와 함께 네 착한 뜻이 기쁘다는 말을 네게 하려는 것 같다. 그가 창조된 목적을 달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는 착한 뜻이 가득 찬 저 작은 가수가 말이다. 또 꽃들을 스치고 지나가며 잠을 깨우고 오목한 꽃받침에 금강석 같은 이슬을 맺히게 해서, 나비와 햇살이 그것을 발견해서, 하나는 목을 축이고 또 하나는 그 큰 광채를 반사하는 작은 거울이 되게 하도록 하는 아침의 이 첫번 바람도 보아라. 처다보아라, 달이 지려고 한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닭의 울음소리와 더불어 새벽이 밝아오려고 한다. 밤의 어두움과 밤의 환영들이 사라진다. 네가 내게 오지 않았더라면, 권태와 가책 속에서 지나갔을 시간이 얼마나 빨리 즐겁게 지나갔는지 보아라. 너 자신이 무서울 때에는 언제든지 오너라. 자신의 자아!!! 대단한 친구, 큰 유혹자, 무서운 원수, 무서운 심판자이나 유다야! 또 알겠느냐? 네가 착했으면 네 자아가 진실하고 충실한 친구인데, 네가 착하지 않으면 네 자아가 진실성이 없는 친구가 될 줄도 안다. 그리고 네게 공범 노릇을 하고 나서 네게 맞서서 준엄한 심판자가 되고 그 비난으로 너를 괴롭힌다…. 자아는 사납게 비난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그러면 가자, 밤이 다 지나갔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쉬지 못하시게 했군요…. 그런데 선생님은 오늘 말씀을 많이 하셔야 하지요….”
“나는 네가 내게 준 기쁨 속에서 쉬었다. 나는 ‘오늘 파멸하는 어떤 사람을 구했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나은 휴식이 없다. 오너라, 와… 코라진으로 내려가자! 오! 이 도시가 너를 본받을 줄 알았으면 좋으련만, 유다야!”
“선생님… 제 동료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들이 묻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만일 물어보면, 우리가 하느님 자비 이야기를 했다고 말하겠다…. 이것은 참된 주제이고, 하도 무제한 한 것이어서 아무리 장수하는 사람이라도 여기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수 없을 지경이다. 가자….”
그리고 두 사람은 내려오는데, 키가 크고, 아름다운 것이 서로 다르지마는 똑같이 젊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 어떤 나무숲 뒤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