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이것은 마리아 막달레나의 삽화와 같이 자비에 관한 삽화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책을 만들면, 사건들을 범주에 따라서 보다는 연대순으로 차례차례 적어놓고, 각 삽화가 어떤 범주에 속하는 것인지를 처음에 말하거나 주를 다는데 그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내가 왜 유다의 인물을 눈에 띄게 하는가? 여러 사람이 이것을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내 대답은 이렇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유다의 모습이 너무나 변형되었다. 그리고 요 근래에는 완전히 왜곡되었다. 어떤 학파에서는 유다가 구속에 있어서 제2의 그리고 불가결한 장본인인 것처럼 그를 자기네 학파의 최고의 영예로 삼다시피 하였다. 그리고 그가 유혹자의 뜻하지 않은 맹렬한 습격에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타락은 어떤 것이든 시간을 두고 준비되는 것이다. 타락이 중하면 중할수록 그만큼 준비가 더 되는 것이다. 전례들이 사실을 증명한다. 선에 있어서도 악에 있어서도 갑작스럽게 떨어지지도 않고 갑작스럽게 올라가지도 못한다. 내려가는 데에는 오랫동안 은밀히 진행되는 원인들이 있고, 올라가는 데에는 참을성이 있고 거룩한 원인들이 있다.
유다의 불행한 비극은 너희가 구원을 얻는데, 그리고 구렁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용서하기 위한 하느님의 방법과 그분의 자비를 아는데 아주 많은 것을 너희에게 가르칠 수가 있다. 너는 유다가 죄를 지은 다음 악마같은 정신착란에 이르러 몸부림치는 것을 보았는데, 여러 해 동안 기분 좋게 추구한 지옥에나 있음직한 습관으로 완전히 타락하지 않은 사람이면 그런 정신착란에는 이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짓더라도, 그의 이성을 흐리게 하는 어떤 뜻밖의 사건에 끌려서 하였으면, 그는 괴로워한다. 그러나 속죄할 줄을 안다. 그의 마음에는 아직 지옥의 독의 해를 입지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 너무나 사탄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자각하지 못할 정도가 되고 사탄을 빨아들여서 자기의 자아의 일부가 되게 하였기 때문에 사탄을 부인하는 세상에게 나는 사탄이 존재하고 영원하며, 너희들을 그의 희생물을 만들기 위하여 쓰는 방법이 변함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당장은 이것으로 넉넉하다. 너는 내 평화와 함께 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