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침인 것으로 보아 일행은 가말라에서 밤을 지낸 모양이다. 바람이 부는 아침이다. 아마 집들의 건축 양식과 위에서 성곽의 경계에까지 계단식으로 내려오는 그 배치 때문에, 아마 이 도시는 동방 땅에서 매우 기분 좋은 이 바람의 혜택을 받는 모양이다. 성곽은 육중하고 역시 육중하고 쇠를 붙인 진짜 요새의 성문들이 달려 있다. 어제 이 도시가 환한 햇빛을 받고 있을 때 아름답게 보였지만, 지금은 찬란해 보인다. 집들은 그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넓은 전망을 보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과연 어떤 집의 옥상이 윗쪽거리에 있는 집의 대지와 같은 높이에 있어서 거의 하나하나가 지평선을 내다볼 수 있는 긴 옥상이 된다. 산 위에는 파노라마 전체를 보여주는 지평선이고, 아래로 내려오면 반원으로 줄어들지만 그래도 역시 넓고 매우 아름다운 전망이다. 산 밑에는 참나무 숲이나 들판의 푸른 빛이 가말라산을 둘러싸고 있는 메마른 골짜기 너머로 에메랄드의 거미발을 형성한다. 그리고 동쪽에는 까마득히 고원의, 아끄로꼬로(acrocoro)*의 농작물들이 이어진다.

제 생각에는 저 넓고 낮은 지각(地殼)의 둔덕을 이렇게 부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틀렸으면 제 대신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제 손 닿는 곳에 사전이 없고, 또는 저는 제 방에 혼자 있습니다. 따라서 제게서 3미터도 못되는 곳에 있는 사전을 가져올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하는 것은 제가 침대에 붙박여 있으면서 글을 쓴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고원 너머로는 아우라니티데스의 산들이 보이고, 더 멀리에는 더 높은 바산산의 꼭대기들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파란 요르단강과 강 동쪽에 있어서 고원의 지맥(地脈)과 같은 나무가 우거진 연속된 고지들 사이에 띠 모양으로 생긴 기름진 땅이 있고, 북쪽으로는 레바논산맥의 먼 산들이 보이는데, 그 가운데에는 아침 시간의 여러 가지빛깔로 아름답게 된 대(大) 헬몬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밑 바로 서쪽으로는 진주와 같은 갈릴레아 바다가 있다. 그것은 요르단강의 파란 긴 목걸이에 달려 있는 정말 진주이다. 요르단강의 파란 빛깔은 호수에 들어올 때와 호수에서 나갈 때에 호수의 파란 빛깔이 다른데, 들어올 때에는 엷은 파랑이고, 정말 성경에 나오는 강으로 파란 두 기슭 사이로 햇볕을 받으며 조용히 남쪽을 향하여 다시 흘러 나갈 때에는 더 짙은 파란 빛깔이 된다. 이와는 반대로 작은 메론 호수는 베싸이다 북쪽에 있는 야산들에 가려 보이지 않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들판의 한충 더 짙은 초록빛으로 짐작할 뿐이다. 이 들판은 그 다음에는 갈릴레아 바다와 메론 호수 사이 서북쪽으로, 코라진이 있는 평야로 이어진다. 나는 전에 사도들이 이 평야를 겐네사렛 평야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것 같다.
예수께서는 주민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시는데, 그들은 도시인의 자존심으로 지평선의 아름다움과 상수도용 수로와 공동 목욕탕과 아름다운 건물들을 갖춘 그들의 도시의 아름다움을 서둘러 예수께 보여 드린다. “이 모든 것이 저희들 수고와 돈의 결과입니다. 사실 저희들은 로마인들의 학교에서 배웠고, 그들에게서 편리한 것은 빌려 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데카폴리스의 다른 도시들 같지 않습니다! 저희들은 돈을 냅니다. 그래서 로마인들이 저희들에게 봉사를 합니다. 그러나 그리고 나서는?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희들은 충실합니다. 그 고립까지도 충실입니다….”
“여러분의 충실이 순전히 형식적인 것이 아니고, 실제적 이고 내적이고 올바른 것이 되게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방어물 공사가 무익할 것입니다. 이 말을 되풀이 합니다. 보시요. 여러분은 튼튼하고 유익한 저 상수도용 수로를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있는 샘이 수로에 물을 대주지 않으면, 이 수로가 여러분에게 분수와 공동목욕탕 물을 주겠습니까?”
“아닙니다. 아무 것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쓸데없는 건조물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말대로 쓸데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연적이거나 물질적인 방어물들도, 만일 그것을 짓게 하는 사람이 그것을 하느님의 도움으로, 힘있는 것이 되게 하지 않으면 쓸데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친구가 아닌 사람은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선생님께서는 저희들이 하느님에 대한 필요를 많이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어떤 일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팔레스타나의 다른 모든 도시보다도 하느님에 대한 필요를 더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 매우 고통스러운 오! 소리이다.
가말라 사람들은 매우 놀라서 예수를 쳐다본다. 가장 대담한 사람이 묻는다.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저희들이 옛날의 소름끼친 일을 또 겪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훨씬 더 긴… 긴… 오! 내 조국! 그렇게도 긴 공포… 그런데 내 조국이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저희들은 선생님을 모셔 들였습니다. 그러면 저희들은 구원을 받았군요! 지난번에는 저희들이 어리석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내게 대한 오늘의 정의에 그대로 남아 있고, 율법에 의한 정의가 점점 더 커지도록 하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님.”
그들은 예수를 더 따라 오고, 더 붙잡아두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나귀를 타고 먼저 떠난 여자들과 합류하기를 원하셔서, 그들의 간청에서 억지로 빠져나오셔서 어제 오실 때에 걸어오신 길로 해서 빨리 내려가신다. 일꾼들이 일하는 작업장에 오셨을 때에만 불행한 사람들에게 강복하시기 위하여 손을 드시려고 걸음을 늦추신다. 그들은 예수를 하느님을 쳐다보듯이 쳐다본다.
산 아래에 와서 길은 두 방향으로 갈라진다. 하나는 호수 쪽으로 가고, 또 하나는 내륙 쪽으로 간다. 나귀 네 마리는 여름해로 뜨거워진 이 길에 들어서서 종종걸음을 치며 그 긴 귀를 흔든다. 이따금씩 여자 중의 한 사람이 예수께서 같이 가려고 따라 오시는지 보려고 뒤돌아보고. 예수와 같이 가려고 걸음을 멈추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벌써 해가 내리쬐는 가려지지 않은 길의 짓누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길을 계속해서 아페카로 올라가는 수풀에 이르도록 하라는 손짓을 하신다.
대상의 길 위에 푸른 둥근 천장을 얼기설기 얽히게 한 시원한 수풀들이다. 그들은 안도의 함성을 지르며 즐겁게 그리로 들어간다. 아페카는 가말라보다 훨씬 더 안쪽으로 산 가운데 있다. 그래서 갈릴레아 호수가 이제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길이 시야를 가리는 둥근 산 둘 사이로 나 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과부는 제일 가까운 길을 가리키기 위하여 앞서 간다. 아니 그 보다도 대상의 길을 떠나 산으로 기어 올라가는 훨씬 더 시원하고 그늘진 오솔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나는 사라가 나귀 안장에서 뒤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을 때 이렇게 돌아가게 된 동기를 이해하였다. “보십시오. 이 수풀들이 제 것입니다. 값나가는 나무들입니다. 부자들의 궤를 만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이 나무들을 사러 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늙은 나무들이지만, 저는 늘 갈아 심은 묘목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러면서 나귀를 아래에 있는 도랑들 사이로, 위에 있는 구릉들로 몰고 간다. 그러다가 수풀 사이로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나귀를 몰고 가는데, 거기에는 사실 벌써 베어도 좋은 다 자란 나무들이 있는 지역들이 있고, 대로는 파란 풀 가운데 땅에서 몇 센티미터쯤 올라온 어린 나무들이 있는 지역들도 있다. 풀들은 산의 모든 향기를 풍기고 있다.
“아름답고 잘 보살펴진 곳이로군요. 당신은 영리합니다” 하고 예수께서 칭찬을 하시며 말씀하신다.
“오!… 그러나 저 혼자만을 위한 것입니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더 기꺼이 이것들을 보살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대답을 하지 않으신다.
일행은 길을 계속한다. 벌써 사과나무와 다른 과일나무에 둘러싸인 아페카가 보인다.
“이 과수원도 제 것입니다. 저 혼자를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습니까….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도 벌써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녁이면 너무 비고 너무 큰 집에서, 저희에게 너무 많은 것을 마련해 주는 돈을 보면서 서로 바라다보며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고 그런데 지금 저는 이 말을 한층 더 합니다….” 자녀를 두지 못한 결혼생활의 슬픔 전체가 여인의 말에 나타난다.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있습니다…”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 집에서는 날마다 그들을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그 다음에는요?….”
“당신이 세상을 떠난 때를 말하는 것입니까?”
“예, 주님. 제가 그렇게도 정성을 기울인 물건들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남겨 두는 것이 괴로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연민의 뜻이 뚜렷한 엷은 미소를 지으신다. 그러나 인자하게 대답하신다. “당신은 하늘의 일에 대해서보다는 세상의 일에 대해서 더 영리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나무들이 잘 자라서 당신의 수풀 속에 빈터가 생기지 않도록 마음을 씁니다. 당신은 이다음에는 지금처럼 그 나무들을 돌보지 않으리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슬퍼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별로 현명하지 못하고, 아주 어리석기까지 합니다. 당신은 나무니 실과니 돈이니 집이니 하는 보잘것없는 것들이 내세에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들이 무시당하는 것을 보는 것이 마음 아플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아주머니, 생각을 고치시오. 그곳에서는 세 나라 중의 어떤 나라에도 이곳의 생각이 있지 않습니다. 지옥에서는 증오와 벌이 사나운 무분별을 일으키고, 연옥에서는 속죄에 대한 갈망이 다른 어떤 생각도 없애버리고, 임보에서는 의인들의 복된 기다림이 어떤 관능성으로도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 불행과 더불어 멀리 있고, 세상이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다만 초자연적인 필요, 영혼에 대한 필요일 뿐, 물건에 대한 필요는 아닙니다. 지옥에 가지 않은 죽은 이들은 다만 초자연적인 사랑으로 그들의 정신으로 세상으로 돌리고,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지, 다른 것을 위해 기도를 드리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의인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면, 하느님을 뵙는 사람에게 세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귀양살이 하는 곳이 어떻게 생각되겠습니까? 그에게 있어서 그가 남겨 놓고 갈 물건들이 무슨 가치가 있을 수 있습니까? 해가 낮을 비추고 있을 때에 낮이 연기 나는 등불을 그리워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고!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남기고 가게 될 것을 왜 갈망합니까?”
“그러나 저는 자식이 계속….”
“세상의 재물을 누려서, 재물에서 초탈하는 것이 영원한 재물을 얻는 사다리인데, 세상 재물에서 완전하게 되는 데에 장애물을 만나기를 원한다는 말입니까? 이거 보시오, 아주머니. 저 죄없는 어린이를 얻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아들에 대한 권리를 가진 그의 어머니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입니다. 저 아이는 죄없는 어린 아이고, 슬퍼하는 죄없는 어린 아이이지만, 역시 바로 그의 고통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죄없는 어린 아이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가진 재산 때문에 저 아이를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을 만들고, 어쩌면 행실이 고약한 사람을 만들면, 그에게서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빼앗지 않겠습니까? 또 저 죄없는 어린이들을 보살피는 내가 생각을 깊이 하지 않은 탓으로 죄없는 제자가 빗나가게 내버려두는, 무분별한 선생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선 당신 자신을 고치고, 아직 너무 강렬한 인간성을 때어버리고, 당신의 의덕을 쇠약하게 하는 그 인간성이라는 껍데기에서 그것을 구해내시오. 그러면 당신이 어머니가 되는 자격을 얻을 것입니다. 사실 아들을 낳거나 양자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그의 동물적인 인간의 필요에 주의를 기울이는 여자가 반드시 어머니는 아닙니다. 저 아이의 어머니도 저 아이를 낳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저 아이의 육체도 영도 돌보지 않기 때문에 어머니가 아닙니다. 죽는 것, 즉 육체에 대해서 뿐 아니라, 특히 죽지 않는 것, 즉 영에 대해서 걱정을 할 때에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을 사랑하는 사람은 올바른 사랑을 가지고 있을 것이니까 육체도 사랑할 것이고, 그렇게 해서 의인이 되리라는 것을 믿으시오.”
“저는 아들을 잃어서, 그것을 이해합니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소원으로 당신이 거룩하게 되는데 자극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청을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일행은 처음 집들에까지 이르렀다. 아페카는 가말라나 이포와 겨룰 수 있을 만한 도시는 아니다. 아페카는 도시보다는 오히려 시골티가 난다. 그러나 아마 도로들의 중요한 분기점이기 때문에 가난하지 않은 모양이다. 내륙지방에서 호수로, 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는 대상들이 지나다니는 곳이므로, 아페카는 여행자들에게 숙소와 옷과 샌들과 양식을 제공하기 위한 설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상점과 많은 여관이 있다.
과부의 집은 광장 옆에 있는 어떤 여관 곁에 있는데, 아래층에는 별별 것이 다 있는 넓은 상점이 들어 있다. 상점은 주먹코에 수염이 난 늙은이가 관리하고 있는데, 그는 미치광이처럼 날뛰며 인색한 손님들과 흥정을 하고 있다.
“사무엘!” 하고 여자가 부른다.
“주인님!” 하고 늙은이는 그의 앞에 쌓여 있는 상품 봇짐에 닿을 만큼 몸을 굽히며 대답한다.
“엘리야나 필립보를 불러 가지고 집으로 나를 찾아오시오”하고 과부가 명령한다. 그리고 선생님께로 향하여 말한다. “오셔서 제 집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리고 제 집의 반가운 손님이 되십시오.”
모두가 상점을 지나 들어가고, 사환 하나가 나귀들을 어디론지 끌고 간다. 집에 별로 예술적인 모습을 띠게 하지 않는 상점을 지나니, 양쪽에 회랑이 달린 아름다운 안마당이 있다. 한 가운데에 분수나 또는 물이 솟아오르고 있지 않으니까 적어도 수반이 있다. 가장자리에는 하얗게 회칠을 한 벽에 그늘을 드리우라고 심은 든든한 플라타너스들이 있다. 층층대가 옥상으로 올라가고, 방들은 회랑이 없는 쪽으로 문이 나 있는데, 상점에서 제일 떨어진 곳이다.
“전에 제 남편이 살았을 때에는 여기가 꽉 찼었습니다. 갑자기 밤을 만난 장사아치들을 재워주었거든요. 물건들은 회랑에 두고, 짐승들이 있을 외양간이 있고, 저기에는 짐승들에게 물을 먹일 수 있는 수반이 있었구요. 방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러면서 과부는 안마당을비스듬히 건너질러서 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으로 간다. 그리고 “마리아! 요안나!” 하고 부른다.
두 하녀가 달려오는데, 한 사람은 손이 밀가루 투성이이고, 또 한사람은 비를 들었다.
“주인님, 주인님이 돌아오신 지금, 평화가 주인님과 저희들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너희들과도 함께 있기를. 요사이 난처한 일은 없었느냐?”
“저 덤벙거리는 요셉이 주인님이 몹시 사랑하시는 장미나무를 부러뜨렸습니다. 제가 따끔하게 혼을 내 주었습니다. 제가 어리석어서 그 사람이 장미나무에 가까이 가는 것을 내버려 두었으니 저를 벌해주십시오.”
“상관없다….” 그러나 사라의 눈에 눈물이 괸다. 사라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 장미나무는 제 남편이 건강하던 마지막 봄에 제게 가져다 준 것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다리 하나가 부러졌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큰 장이 서는 이 시기에 그의 조수가 없게 됐기 때문에 몹시 화가 나 있습니다…. 엘리야는 주인님이 돌아오셨을 때 벽이 희게 칠한 것을 보시게 하려고 몸을 기울이다가 사다리 저쪽으로 떨어졌습니다” 하고 또 한 여자가 말하고, 이렇게 말을 끝낸다. “몹시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앙가발이가 될 겁니다. 그런데 주인님은 여행을 잘 하셨습니까?” “내가 바라던 것보다도 더 잘 했다. 나는 갈릴레아 선생님을 모시고 왔다. 빨리! 나와 함께 계신 분들을 위해 준비를 해라. 선생님, 들어오십시오!”
그들은 깜짝 놀란 하녀들 앞을 지나 집안으로 들어간다.
어슴푸레한 속에 의자들과 궤들이 있는 넘고 서늘한 방이 일행을 맞이한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을 부르셔서 당신이 오신 것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준비를 시키라고 시내로 보내신다. 사무엘이 물건 파는 사람에서 집주인으로 변해서 들어온다. 하녀들이 식사 전에 손을 씻는데 쓰일 항아리와 대야들을 가지고 그를 따라 온다. 넓은 쟁반에 빵과 과일과 양젖을 가져온다.
주인여자가 돌아온다. “하인에게 선생님이 여기 오셨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선생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리고 저도 역시 자비를 청합니다. 장막절 때문에 사람들이 이리로 많이 지나갑니다. 또 티스리 새달에 들어서면서도 즉시 많이 지나갑니다. 그가 앓고 있으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더러 이리 오라고 하시오.”
“올 수 없습니다. 일어설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그를 보러 가지 않지만 그를 보고 싶어 한다고 말하시오.”
“사무엘과 요셉더러 업고 오라고 하겠습니다.”
“설상가상이로군! 저는 늙고 지쳤습니다요”하고 사무엘이 투덜거린다.
“엘리야더러 걸어오라고 말하시오. 내가 명령합니다.”
“가엾은 선생님! 가믈리엘같은 선생도 그렇게 못할 겁니다” 하고 늙은 하인이 또 투덜거린다.
“입 다물어요, 사무엘!… 선생님, 용서하십시오! 이 사람은 충실한 하인입니다. 여기서 제 남편의 집 하인들에게서 났는데, 능숙하고 정직합니다…. 그러나 묵은 이스라엘 사람의 사상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하고 주인여자가 그를 변호하기 위하여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이 사람의 정신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기적을 보면 변할 것입니다. 엘리야에게 가서 오라고 말하시오. 그러면 올 것입니다.”
과부가 갔다가 돌아온다. “가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 꺼멓게 되고 부어 오른 다리로 방바닥을 디디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도망쳐 왔습니다.”
“당신은 기적을 믿지 않습니까?”
“저는 믿습니다. 그렇지만 그 다리는 소름끼칩니다…. 괴저로 인해서 다리가 완전히 썩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다리가 반들반들합니다…. 소름끼쳐요. 그리고… 오!” 주인여자가 하인을 보았기 때문에 말이 중단되고 탄성이 나온다. 엘리야는 건강한 사람보다도 더 잘 뛰어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엎드리며 말한다. “이스라엘의 왕께 찬미.”
“찬미는 하느님께만 드려야 하네. 어떻게 왔나? 어떻게 감히 걸어왔나?”
“저는 순종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거룩하신 분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고, 어리석은 일을 명령하실 수가 없다. 나는 믿음을 가졌다. 나는 믿는다’ 하고 그러면서 다리를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아프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다리를 땅바닥에 놓았습니다. 다리가 제 몸을 지탱하더군요. 한 걸음을 떼어놓았습니다. 걸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달려 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사람들을 속이지 않으십니다.”
“일어나게. 나 진정으로 당신들에게 말하지만 이 사람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 믿음이 누구에게서 왔나?”
“선생님을 전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지나간 선생님의 제자들에게서 왔습니다.”
“그들의 말을 자네 혼자 들었나?”
“아닙니다. 다들 들었습니다. 오순절 후에 그 사람들을 여기 받아들였었으니까요.”
“그런데 자네 혼자만 믿었구먼… 자네의 영은 주님의 길에 많이 나아갔네. 계속하게….”
늙은 사무엘은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격렬히 몸부림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과 같이 새 것을 받으려고 묵은 것을 버릴 줄을 모르고 태도가 굳어지며 말한다. “마술! 마술! ‘내 백성은 마술사들과 점쟁이들에게 물들지 말아라. 만일 누가 그렇게 하면, 내가 그에게서 얼굴을 돌리고, 그를 멸망시키겠다’고 성경에서 말합니다. 주인님, 법에 충실치 않는 것을 두려워하십시오!” 그러면서 마치 마귀가 집 안에 들어앉은 것을 보기라도 한 듯이 분개하며 엄한 태도로 나간다.
“선생님, 저 사람을 벌하지 마십시오! 저 사람은 늙었습니다! 저 사람은 항상 저렇게 믿었습니다….”
“염려 마시오. 만일 내가 나를 마귀라고 부르는 사람을 모두 벌해야 한다면, 많은 무덤이 열려 그 희생물을 집어삼킬 것입니다. 나는 기다릴 줄을 압니다…. 나는 해가 질 때쯤에 말하겠습니다….그리고 아페카를 떠나겠습니다. 지금은 당신의 집에 머무르는 것을 수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