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잠이 깨서 흙과 풀로 된 당신의 촌스러운 침대에 앉으시려고 몸을 일으키실 때 새벽이 겨우 밝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는 일어나셔서 샌들과, 이슬과 밤의 찬 기운을 막으려고 덮으셨던 당신의 겉옷을 집으시고, 당신 주위에 잠들어 있는 사도들의 다리와 팔과 몸통과 머리가 뒤얽혀 있는 가운데로 조심해서 지 나 가신다. 그리고 나뭇잎이 우거진 아래에서는 빛 같을까 말까 한 희미한 새벽빛으로 어디를 디디는지 보시려고 자세히 들여다보시며 몇 미터쯤 멀어져 가신다. 탁 트인 풀밭으로 가신다. 나무들 사이 빈틈으로 깨어나는 호수 한 모퉁이와 하늘의 많은 부분이 보인다. 하늘은 밤이 끝나가는 하늘의 독특한 빛깔인 회청색에서 엷은 파랑으로 변하면서 밝아 오고, 동쪽에서는 회청색이 벌써 밝은 노랑으로 연해지고, 이 빛깔은 또 점점 더 강조되어서 엷은 노랑에서 분흥색을 띤 노랑으로, 그 다음에는 지극히 우아한 엷은 산호색으로 변한다.
매우 엷은 안개가 끼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새벽은 날씨가 좋으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안개는 저 동쪽에서는 하늘의 영역을 자꾸만 빛에 빼앗기고, 몹시 엷은 베일처럼 보여서, 하늘의 파란 빛이 그것으로 인하여 손상되지 않고, 마치 그것이 금빛과 산호빛 술을 단 매우 흰 모슬린인 것처럼 더 아름답게 보인다. 그 모슬린은 자꾸 변하고 점점 더 아름다워져서, 마치 날이 밝아 태양의 승리로 그것을 부수기전에 그것의 덧없는 아름다움의 완전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것 같다. 반대로 서쪽에서는 몇몇 천체가 비록 밤의 광채는 벌써 잃었지만 점점 더 환해지는 빛에서 아직 저항하고, 산의 능선 뒤로 거의 사라지게 된 달은 죽은 유성과 같이 빛을 잃고 창백하게 하늘을 지나가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슬에 젖은 풀속에 맨발로 서서, 팔짱을 끼시고, 솟아오르는 해를 쳐다보시려고 머리를 드시고 곰곰이 생각하신다. …또는 영의 대화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신다.
아주 많은 이슬방울들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말할 수 없이 조용하다.
예수께서는 팔짱을 끼신 채 서서 얼굴을 숙이시고 한층 더 깊은 묵상에 잠기신다. 당신 자신에 완전히 집중하여 계신다. 크게 떠진 예수의 찬란한 눈은 풀에서 어떤 대답을 끌어내시려는 것처럼 땅을 뚫어지게 내려다보고 있지만, 나는 풀들의 느린 움직임을 보지도 못한다고 생각한다. 풀들은 새벽의 서늘한 바람을 받아 일종의 전율을 일으킨다. 잠이 깨서 기지개를 켜고, 돌아눕고, 잠을 완전히 깨서 힘줄과 힘살을 다시 민첩하게 놀리려고 몸을 떠는 사람의 전율과 같은 전율을 말이다. 예수께서는 바라보기는 하시지만, 가지와 잎과 꽃부리에서 꽃잎이나 꽃송이나 이삭이나 과일송이로 옮아가는 풀과 들풀들의 이 잠깸을 보지는 못하신다. 어떤 꽃들은 꽃받침이 하나씩 떨어져 있고, 어떤 것들은 부채살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거나 금붕어꽃 모양이거나 풍요의 뿔*이나 깃털장식이나 장과(漿果)의 모양을 하고 있다. 어떤 꽃들은 줄기 끝에 꼿꼿이 서 있고, 어떤 꽃들은 제 줄기가 아닌 줄기에 감겨서 흐느적거리며 늘어져 있고, 어떤 것들은 땅에 아무렇게나 기어가고 있다. 어떤 꽃들은 작고 보잘것없는 많은 꽃들이 무리를 지어 있고, 어떤 것들은 외따로 있는데 넓고 빛깔과모양이 세차다. 모든 꽃들이 이제는 이슬보다 해를 더 갈망하여 꽃잎에서 이슬방울을 떨어 버리느라고 여념이 없다. 꽃들은 욕망이나 배치가 변덕스럽다…. 이 점으로는 꽃들이 사람들과 매우 비슷하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것에 만족하는 일이 절대로 없다.
예수께서는 귀를 기울이시는 것 같다. 그러나 점점 더 커지면서 가지들을 흔들어 이슬을 떨어뜨리는 장난을 하는 바람의 살랑거림도 분명히 듣지 못하시고, 잠이 깨서 서로 지난밤의 꿈 이야기를 하거나, 부드럽고 선율적인 둥지에서 서로 느낌을 이야기하는 새들의 점점 더 커지는 속삭임도 듣지 못하신다. 새둥지에서는 양털이나 건초조각들 속에서 어제는 아직 발가벗었던 새새끼들이 깃을 입기 시작하거나 부리를 엄청나게 크게 벌려 욕심 사납게 그 놈들의 빨간 목구멍을 보이며 먹이에 대한 첫번째 요구를 요란스럽게 나타낸다. 예수께서는 귀를 기울이시는 것 같다. 그러나 티티새의 비웃는 것 같은 첫번째 부르는 소리로, 머리가 까만 꾀꼬리의 부드러운 노래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려고 기꺼이 올라가는 종달새의 화려한 전음도, 둥지를 튼 바위들에서 나온 제비 떼들이 조용한 공기를 가르며 땅과 하늘 사이에 지칠 줄 모르고 날아다님으로 피륙을 짜면서 내는 새액 새액 소리도 분명히 듣지 못하신다. 또 예수께서 그 곁에 계신 떡갈나무 가지에서 몸을 기울이고 예수께 “당신은 누구요? 무얼 생각하고 있소?” 하고 물으면서 놀리는 것 같은 까치의 재잘거림도 듣지 못하신다. 이것도 예수의 묵상을 중단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나 까치들이 짓궂다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이놈 아마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인 작은 풀밭에 있는 침입자에 지쳐서, 떡갈나무에서 달라붙은 도토리 두 알을 따서 사격 선수와 같이 정확하게 예수의 머리 위에 떨어뜨린다. 그것은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무거운 발사체는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지니까 명상하는 사람의 주의를 끌만한 힘은 넉넉히 있다. 예수께서는 위를 올려다보시다가, 날개를 펴고 조롱하는 듯이 절을 꾸벅꾸벅하며 제 사격솜씨를 즐기고 있는 새를 보신다.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고, 머리를 흔드시고, 마치 묵상을 끝마치기 위하신 것처럼 한숨을 쉬시고, 이쪽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시면서 움직이신다. 까치는 놀리는 것처럼 웃고 객객 소리를 내며 내려 와서 재잘거리며, 침입자에게서 해방된 풀을 파고 뒤진다.
예수께서는 물을 찾으시지만 찾아내지 못하신다. 단념하시고 사도들에게로 돌아가시려고 하신다. 그러나 새들이 물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 드린다. 새들은 떼를 지어 꽃받침이 매우 넓은 꽃들로 내려오는데, 그것들은 물이 들어 있는 작은 컵들과 같다. ‘또는 털이 덮인 넓은 잎에 와서 앉기도 하는데, 그 털 하나하나에는 이슬이 한 방울씩 맺혀 있다. 새들은 거기서 물을 먹기도 하고 깃을 씻기도 한다. 예수께서도 새들이 하는 대로 하신다. 손을 오목하게 오그려서, 거기에 꽃받침의 물을 받아 얼굴을 다듬으시고, 털투성이의 넘은 잎들을 들으셔서 그것으로 맨발의 먼지를 닦으시고, 샌들을 닦으셔서, 신고끈을 매신다. 다른 잎들을 가지고 손이 깨끗해진 것을 보실 때까지 씻으신다. 그리고 빙그레 웃으시며 속삭이신다. “조물주의 숭고한 완전!”
예수께서는 축축한 손으로 머리와 수염을 다듬으셨기 때문에 이제는 산뜻하게 되시고 정돈되셨다. 그래서 처음 햇살이 풀밭을 금강석이 깔린 식탁보 모양으로 만들어 놓는 동안 사도들과 여자들을 깨우러 가신다.
여자들과 사도들은 몹시 피곤하기 때문에 깨기가 힘들다. 그러나 성모님은 깨어 계시지만 작은 머리를 성모님의 턱 밑에 대고 품에서 몸을 오그리고 자고 있는 어린 아이 때문에 움직이지 않고 계신다. 어머니는 그의 예수가 동굴 어귀에 나타나는 것을 보시고, 엷은 파란색의 부드러운 눈으로 미소를 보내시고, 아들을 보는 기쁨으로 뺨이 볼그레해진다. 움직이는 바람에 조금 칭얼거리는 어린 아이에게서 빠져 나오셔서 일어나시어, 얌전한 비둘기와 같은 가볍게 일렁거리는 걸음으로 예수께로 향하여 가신다.
“아들아, 하느님께서 오늘 네게 강복하시기를 바란다.”
“하느님께서 어머니와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밤이 어머니께 고생스러웠지요?”
“조금도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지극히 행복했다. 아주 어린 너를 품에 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네 입에서 이로, 말할 수 없이 부드럽게 울리는 금으로 된 강 같은 것이 흘러나오고, 말을 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오! 참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말씀이 세상을 부유하게 하고 그것을 듣고 거기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지복(至福)을 준다. 능력과 시간과 공간에 한계가 없는 말씀이 구원할 것이다’하고. 오! 아들아! 말씀은 내 아들 너다! 나를 네 어미가 되게 해 주신 것을 영원하신 분께 감사할 수 있게 많이 살고 많이 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니?”
“어머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머니의 심장의 고동 하나하나가 하느님께는 갚음이 됩니다. 어머니는 하느님께 살아있는 찬미이시고, 언제나 그러실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는 계시기 시작하신 때부터 하느님께 감사하고 계십니다….”
“예수야, 나는 그것을 넉넉히 하는 것같이 생각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은 너무도 크고 또 크다! 결국 내가 나와 같이 있는 네 제자인 이 모든 착한 여인들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내 아들인 네가 우리 아버지께 내가 받은 은혜에 마땅한 만큼 감사를 드리게 허락해 주십사고 말씀드려라.”
“어머니! 제가 어머니를 위해 그것을 청하는 것이 아버지께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버지께서는 어머니가 이 완전한 찬미를 위하여 바치셔야 할 희생을 어머니를 위해 벌써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큰 희생을 드리시고 난 뒤에는 완전하게 되실 것입니다….”
“내 예수야!… 네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 듣겠다…. 그러나 그 시간에 내가 생각할 수 있겠느냐?…. 보잘것없는 네 어미가….”
“영원한 사랑의 지극히 행복하신 정배(貞配)! 어머니는 이런 분이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사랑이 어머니 안에서 생각할 것입니다.”
“아들아, 네가 그렇게 말하니, 나는 네 말을 신뢰한다. 그러나 너는… 이들 중의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데 벌써 임박한… 그 시간에 나를 위해 기도해 다오… 임박했지? 임박한 것이 사실이지 아마?”
이 대화중에 성모님의 얼굴 표정이 어떠하였는지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양과 불명확한 색조로 그 표정을 망가뜨리지 않고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문필가는 없다. 씩씩하면서도 마음을,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성모님의 얼굴이 지금 나타내는 표정을 마음속으로 그의 얼굴에 띠게 할 수 있다.
예수께서 성모님을 바라다보신다…. 우리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없는 또 하나의 표정이다. 그러면서 대답하신다. “그리고 어머니도 죽음의 시간에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이 사람들중의 아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탓이 아닙니다. 사탄이 그들이 보지 못하고, 술취한 사람과 귀머거리처럼 되고, 따라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휘기 쉽게 하려고 공허한 일들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저는 사탄의 계략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할 것입니다. 어머니, 이제부터 그들을 어머니께 맡겨 드립니다. 이 말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을 어머니께 맡겨 드립니다. 제 유산을 어머니께 드립니다. 저는 이 세상에 어머니 한분 밖에 가진 것이 없는데, 어머니를 하느님께 바칩니다. 제물과 함께 제물로. 그리고 제 교회를 어머니께 맡겨 드립니다. 제 교회에 유모가 되어 주십시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리옷의 사람이 그의 모든 결함과 함께 그들에게서 다시 살아날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한 것이 얼마 안 됩니다. 그리고 예수가 아닌 어떤 사람은 그 흠 있는 사람을 물리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를 물리치지 않겠습니다. 저는 예수입니다.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은 교회의 계급에서는 베드로가 으뜸이고 어머니는 신자이시기 때문에 베드로 다음으로 오시지마는, 그러나 그 신비체의 머리인 저를 낳으셨기 때문에 교회의 어머니로서 모든 사람에 앞서 첫째이신 어머니께서는 수많은 유다를 물리치지 마시고 구제해 주십시오. 그리고 베드로와 사촌들과 요한, 야고보, 시몬,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안드레아, 토마, 마태오에게 물리치지 말고 구제하라고 가르치십시오. 저를 따르는 사람들 안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새로 태어나는 교회를 흩어놓고 해체하고자 하는 자들에게서 저를 지켜 주십시오. 그리고 어머니,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항상 전구(轉求)하시는 분, 제 교회와 제 사제들과 제 신자들을 악과 벌과 그들 자신에게서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도와주시는 분이 되어 주십시오…. 어머니,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유다가 있을 것입니까! 그리고 정신장애자와 같이 이해하지 못하고, 소경과 같아서 볼 줄을 모르고, 귀머리와 같아서 들을 줄을 모르고, 불구자나 마비환자와 같아서 올 줄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어머니, 모두를 어머니의 겉옷 밑에 받아 주십시오! 어머니만이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에 대한 영원하신 분의 벌을 주는 명령을 지금도 바꾸실 수 있고, 장차도 바꾸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삼위일체께서 당신의 유일한 꽃에게 거절하실 수 있을 것은 절대로 아무 것도 없겠기 때문입니다.”
“아들아, 그렇게 하마. 내게 달린 것에 대해서는 안심하고 네 목적을 향해 가거라, 네 어미는 교회 안에서 언제나 너를 지키기 위하여 여기 있다.”
“어머니, 하느님의 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리 오십시오! 향기로운 이슬이 가득 들어있는 꽃받침들을 따 드릴 테니, 제가 한 것처럼 그것으로 얼굴을 시원하게 하십시오. 그것들은 지극히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마련해 주셨고, 새들이 그것들을 제게 가리켜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정리하신 만물에서는 어떻게 모든 것이 도움이 되는지 보십시오! 갈릴레아 바다에서 올라오는 구름과 이슬을 끌어당기는 큰 나무들 때문에 매우 기름져서 가무는 여름동안에도 풀과 꽃이 무성하게 자랄 수 있게 해 주는 호수 가까이에 있는 이 높은 고원을 보십시오. 당신의 지극히 사랑하는 자녀들이 세수를 할 수 있도록 풍성한 비처럼 이 꽃받침들을 가득 채우는 이 이슬을 보십시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것은 이런 것입니다. 옛습니다. 새로운 낙원의 하와를 시원하게하기 위한 하느님의 잔에 가득 찬 하느님의 물입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매우 넓은 그 꽃들을 따셔서, 그 밑에 괴어 있는 물을 성모님의 두 손 안에 부으신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도 몸단장을 하였고, 휴식처에서 몇 미터쯤 떨어져 계신 예수를 찾아온다.
“선생님, 저희들은 준비가 되었습니다.”
“좋다. 이쪽으로 가자.”
“그렇지만 이게 좋은 길입니까? 수풀이 여기서 끝나는데, 지난번에는 수풀속으로 걸었었는데요…” 하고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이의를 제기한다.
“지난번에는 호수에서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곧장 가는 길로 갈 수가 있다. 너희들 보느냐? 가말라는 동쪽과 남쪽 사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다른 세 방향은 산양이 아닌 사람은 다닐 수가 없으니까, 다른 길은 없다.”
“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렇게 하면 마귀들린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우리가 본 메마른 골짜기를 피할 것입니다” 하고 필립보가 말한다.
일행은 빨리 걸어서 오래지 않아 그들이 잔 수풀을 버리고, 조그마한 골짜기 너머에 있는 돌이 많은 길로 접어든다. 그 길은 가말라가 달라붙어 있는 이상하게 생긴 산으로 가까이 가면서 점점 더 험해진다. 산에서 동, 북, 서 세 쪽으로는 가파른 비탈이 내려오고, 그 지방의 나머지 부분과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하나밖에 없는 직통 도로로 연결되는데, 그 길은 동쪽에 있는 들판과 서쪽에 있는 참나무숲에서 길을 갈라놓는 바위가 많고 황량한 두 계곡 사이에 높이 나있다.
참나무 숲을 향하여 가는 돼지떼 가운데에서 지나가는 돼지 지키는 사람이 많이 있다. 사각으로 자른 돌들을 운반하는 짐수레들이 걸음이 느린 소들에게 끌려서 삐걱거리며 지나간다. 말탄 사람 몇이 먼지를 구름같이 일으키며 속보로 지나간다. 아마 노예나 형벌을 치르는 사람들인 토목인부들의 작업반(作業班) 여럿이 누더기를 걸치고 핏기없는 얼굴로 지나가는데, 그들은 간수들의 무자비한 감시 아래 일을 하러 가는 것이다.
산이 가까워지고 길이 올라가는데 따라서, 산허리를 보호하는 가락지들처럼 산에 둘러 펴져 있는 방어설비가 되어 있는 도랑들이 보인다. 그 도랑들을 파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거의 앞으로 불쑥 내민 어떤 곳에서는 더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이미 있는 방어시설을 정비하거나 다른 것들을 준비하기 위하여 일을 하고 있고, 옷을 입지 않은 어깨에 네모 나는 돌들을 메고 오느라고 일하는데, 그 돌들은 불행한 사람들의 몸을 굽게 하고 옷을 걸치지 않은 어깨에 피어린 자국을 남긴다.
“아니, 저 사람들 뭘 하는 거야? 혹 지금이 전시라서 저렇게 일을 하는 건가? 저 사람들 미쳤구먼!” 하고 제자들이 자기들끼리 말한다. 그리고 여자들은 힘에 겨운 피로를 겪을 수밖에 없는 영양이 나쁘고 반 벌거숭이인 불행한 사람들을 동정한다.
“그런데 누가 저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는 거야? 분봉 왕인가, 아니면 로마인들인가?” 하고 사도들이 또 묻는다. 그들은 서로 토론을 한다. 그것은 가말라가 말하자면 필립보의 사분령(四分領)과 헤로데의 사분령에서 독립해 있다시피 하고, 또 여러 사도들에게는 내일에는 그들에게 대항해 쓰일지도 모르는 방어시설을 로마인들이 다른 나라에 와서 떠맡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편집광(偏執狂)의 고정관념 같은 메시아의 지상왕국이라는 변함없는 사상이 마치 벌써 보장된 승리와 민족의 영광과 독립의 깃발과 같이 나부낀다.
그들이 하도 크게 떠드는 바람에 간수들이 가까이 와서 듣는다. 분명히 히브리 민족이 아닌 교양 없는 사람들인데, 여러 사람은 나이가 들었고, 어떤 사람들은 몸에 상처자국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들 중의 한 사람의 경멸적인 무례한 말로 알 수 있다. “‘우리 나라’라구! 티투스 자네 들었나? 주먹코들! 당신들 나라는 벌써 이 돌들 밑에 깔려 버렸소. 적에 대항해서 건설하는데 적을 사용하는 자는 적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이건 뿌블리우스 꼬르피니우스의 말이오. 그리고 알아듣지 못하거든 오래 사시오. 돌들이 수수께끼를 풀어 줄 거요.” 그러면서 기진맥진하여 비틀거리다가 주저앉는 일꾼을 보았기 때문에 채찍을 들면서 웃는다. 그리고 만일 예수께서 앞으로 나아가셔서 그에게 “당신은 그렇게 할 권리가 없소. 이 사람도 당신과 같은 사람이오”하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막지 않으셨더라면 그를 때렸을 것이다.
“당신은 누구기에 참견을 하고 노예를 변호하는 거요?”
“나는 자비요. 사람으로서의 내 이름은 당신에게는 아무 뜻도 없을 거요. 그러나 내 속성(屬性)은 당신에게 자비로우라고 일깨워 주오. 당신은 ‘적에 대항해서 건설하는데 적을 사용하는 자는 적에게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했소. 당신은 비통한 진리를 말했소.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빛나는 진리를 하나 말하겠소.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은 자비를 얻지 못할 것이다’하는 거요.”
“당신은 웅변술 교사요?”
“나는 자비라고 당신에게 말했소.”
가말라 사람들이나 그리로 가는 사람들은 말한다. “갈릴레아의 선생님이시다. 병과 바람과 물과 마귀들에게 명령하시고, 돌을 빵으로 변하게 하시는 분이시고, 아무 것도 이분에게 반항하지 못한다. 시내에 달려가서 알리자. 병자들은 오라고 하고! 이분의 말씀을 듣자, 우리도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그리고 서로 이렇게 말하면서 뛰어 가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선생님 둘레로 몰려온다. 조금 아까의 그 간수가 말한다. “저 사람들이 선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사실입니까?”
“사실이오.”
“기적을 하나 행하시오. 그럼 믿겠습니다.”
“믿기 위하여 기적을 청하는 것이 아니오. 믿기 위하여,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기적을 얻기 위하여 믿음을 청하는 것이오. 믿음과 이웃에 대한 연민을.”
“나는 이교도인데도….”
“그것은 근거있는 이유가 아니오. 당신은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고, 이스라엘은 당신에게 돈을 주오.”
“내가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니오. 일을 시키기 때문이오.”
“나는 일을 시킬 줄 압니다.”
“그렇소, 무자비하게, 그러나 만일 당신이 로마인이 아니고 이스라엘 사람이었더라면, 당신이 저들 중의 한 사람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소?”
“허!… 그야 물론이지요…. 그렇지만 나는 신들의 덕택으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만일 참 하느님께서 당신을 벌하기를 원하시면 당신의 헛된 우상들이 당신을 보호할 수 없을 거요. 당신은 아직 죽지 않았소. 그러니 자비를 얻기 위하여 자비를 베푸시오….”
그 사람은 대꾸하고 토론하려고 하다가 이내 무시하는 태도로 어깨를 들썩하며 등을 돌리고, 단단한 바위의 맥을 곡괭이로 다루는 일을 중단하고 있는 어떤 사람을 가서 때린다.
예수께서는 매를 맞은 불쌍한 사람과 매를 때린 사람을 바라보신다. 같기는 하지만 성질이 다른 연민을 나타내는 두 눈길이다. 그리고 하도 깊은 슬픔이 깃든 눈길어서 수난 동안의 그리스도의 어떤 눈길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어떻게 하실 수 있는가? 간섭하실 수가 없는 예수께서는 당신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지금 보신 불행의 무게를 안으신 채 다시 길을 가기 시작하신다.
그러나 가말라에서 틀림없이 유력자들인 주민들이 빨리 내려와서 예수께로 와서는 깊이 몸을 숙여 인사를 하고 시내로 들어오셔서 주민들에게 말씀을 하시라고 청한다. 주민들은 또 주민들대로 떼를 지어 오고 있다.
“당신들은 가고 싶은 데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 사람들은(그러시며 일꾼들을 가리키신다) 그렇게 못합니다. 아직 시원한 시간이고, 우리가 있는 위치에서는 해도 피할 수 있으니, 저 불행한 사람들도 생명의 말을 듣게 저 사람들 곁으로 갑시다” 하고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그런 다음 발길을 들리셔서 제일 먼저 그 쪽으로 향하신다. 그리고 바로 산 아래, 일이 제일 힘든 곳으로 가는 울퉁불퉁한 오솔길로 들어서신다. 그리고는 유력자들에게로 몸을 돌리시고 말씀하신다. “당신들이 그렇게 할 권한이 있으면, 일을 중단하라고 명하시오.”
“물론 저희들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저희들이 돈을 냅니다. 그러니까 일을 하지 않은 시간도 값을 쳐 주면, 아무도 불평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하고 가말라의 사람들이 말한다. 그리고 일을 지휘하는 사람들과 교섭을 하러 간다. 조금 후에 일을 지휘하는 사람들이 어깨를 들썩하는 것이 보인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신들의 마음에 든다면, 우린 상관없소”하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작업반들에게 휴식을 알리는 신호로 호각을 분다.
그동안 예수께서는 가말라의 다른 사람들과 말씀을 하신다. 이 사람들이 동의한다는 표를 하고 빨리 시내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인다.
일꾼들은 겁을 내며 감시자들 둘레로 몰려 온다.”일을 그쳐라. 소음은 철학자에게 방해가 된다”하고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명령을 내리는데, 아마 그들의 우두머리 인 모양이다.
일꾼들은. “철학자”라고 불리며, 그들에게 일을 쉬게 하는 선물을 주는 사람을 피로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니 이 “철학자”는 그들을 연민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눈길과 감시자의 말에 이렇게 대답하신다. “소음이 내게 방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의 비참이 가슴 아픔니다. 여러분, 오시오. 여러분의 사지를 쉬게 하고, 특히 여러분의 마음을 하느님의 그리스도 옆에서 쉬게 하시오.”
일반 서민, 노예, 죄수, 사도, 제자들 모두가 산과 도랑 사이 빈터에 빽빽이 들어서고, 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더 높은 긴 구덩이 위에 기어 올라가거나 땅에 엎어진 바위 위에 올라앉는다. 그리고 제일 불운한 사람들은 단념하고 벌써 햇살이 내려오는 길로 간다. 그리고 가말라에서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오거나 다른 곳에서 가말라로 가던 사람들이 멎거나 한다.
많은 군중이다. 그런데 조금 전에 떠나갔던 사람들이 그 가운데를 헤치고 온다. 그들은 바구니들과 무거운 그릇을 가지고 온다. 그들은 군중을 헤치고 예수에게까지 오는데, 예수께서는 일꾼들을 맨 앞줄에 앉게 하자고 사도들에게 명하셨다. 그들은 바구니와 항아리들을 예수의 발 앞에 내려놓는다.
“이들에게 사랑의 선물을 주시오”하고 예수께서 명하신다. “이들은 벌써 음식을 먹었소. 그리고 아직도 빵과 식초를 탄 물이 남아 있소. 너무 많이 먹으면, 몸이 무거워서 일을 못하오”하고 감독이 외친다.
예수께서 그를 바라보시고 명령을 되풀이 하신다. “이 사람들에게 사람이 먹는 음식을 주고, 그들의 음식은 내게로 가져오시오” 사도들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명령을 이행한다. 그들의 음식! 짐승들도 먹으려고 하지 않을 일종의 딱딱하고 검은 빵껍질과 식초를 탄 물 조금이다. 이것이 그 죄수들의 음식이다! 예수께서는 그 보잘것없는 음식을 들여다보시고, 그것을 산비탈에 따로 놓아두게 하신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먹어야 하던 사람들을 바라보신다. 영양불량인 육체들. 그 육체에서 비정상적인 피로로 인하여 고도로 발달한 근육만이 물렁물렁한 피부 위로 툭 튀어나온 섬유 다발로 저항할 뿐, 눈은 열에 들뜨고 겁에 질려 있고, 입은 그들이 예기치 않았던 훌륭하고 풍부한 음식을 베어 물고, 포도주를, 힘을 나게 하고 시원한 진짜 포도주를 마실 때에는 동물적인 식욕을 보일 정도로 탐욕스럽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식사를 끝내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시는데, 하도 식성이 좋아서 모든 것이 이내 끝났기 때문에 많이 기다리실 필요가 없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침묵을 요구하기 위하여, 말씀을 하시겠다는 것을 알리는 늘 하시는 몸짓으로 팔을 벌리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이곳에서는 사람의 눈이 무엇을 감탄하며 보게 됩니까? 자연이 파 놓았던 것보다 더 깊게 판 계곡들과, 사람이 만든 토대와 흙으로 쌓아 올려 만든 언덕들과 짐승들의 굴처럼 산속으로 뚫고 들어가는 구불구불한 길들을 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왜 하는 것입니까? 어디서 올지는 모르지만, 소나기가 쏟아질 듯한 하늘에 있는 우박을 실은 구름과 같이 위협하는 것을 느끼는 위험을 막기 위해서 입니다.
여기서는 사실 인간적인 힘과 인간적인, 또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방법으로, 인간적으로 자기를 지키려고, 또 공격 방법을 마련하려고 준비합니다. 그러면서 가장 효과 있는 초인간적인 방법 덕택으로 어떻게 인간적인 불행을 막을 수 있는지를 그의 국민에게 가르치는 예언자의 말은 잊고 있습니다. 예언자는 이렇게 외칩니다. ‘너희들의 마음을 달래고… 예루살렘을 위로하여라. 그의 노예의 신분이 끝났고, 너희들의 죄가 속죄되었으며, 예루살렘이 주님의 손에서 그 죄의 곱절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고 그리고 약속을 한 다음에, 그 약속을 현실로 나타나게 하기 위하여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주님의 길을 닦고, 쓸쓸한 곳에 하느님의 길을 곧게 하여라. 골짜기란 골짜기는 메워질 것이고, 산이란 산은 낮아질 것이며, 구불구불한 길이 곧아질 것이고, 울퉁불퉁한 길은 판판해 질 것이다. 그 때에는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고, 모든 사람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주님을 뵈리니, 주님의 입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하느님의사람, 세례자 요한이 다시 했고, 오직 죽음만이 이 말씀을 그의 입술에서 없애버렸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사람의 불행에 대한 참다운 방어입니다. 무기에 대한 무기나 공격에 대한 방어가 아니고, 교만이나 사나움이 참다운 방어가 아닙니다. 그럴지 않고, 초자연적인 무기들, 조용한 가운데에서, 즉 개인의 내부에서, 사랑의 산을 쌓아올리고, 교만의 산꼭대기를 깎아내리고, 정욕의 구불구불한 길을 곧게 하고, 길에서 관능성의 장애물을 치움으로 자기를 거룩하게 하려고 힘쓰는 자기 자신과 홀로 닦은 덕행들이 참다운 방어입니다. 그 때에는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고, 사람은 하느님에 의하여 영적인 적들과 육체적인 적들에 대하여 방어될 것입니다. 사람의 타락 또는 그저 냉담으로 인하여 받게 된 하느님의 벌에 대해서 구덩이 몇 개, 비스듬한 제방 몇 군데, 요새 몇 군데가 무엇을 해 주기를 여러분은 바라는 것입니까? 지금은로마인이라고 불리지마는 옛날에는 바빌로니아 인이나 펠리시테인이나 에집트인이라고 불렸지마는 사실은 하느님의 벌이고, 또 그 것뿐이며, 너무나 많은 교오와 관능성과 탐욕과 거짓말과 이기주의와 십계명의 거룩한 율법에 대한 불복종으로 받게 된 벌인 이 벌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아무리 힘센 사람이라도 파리 한 마리에 의해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방어시설을 잘한 도시라도 사람과 도시에 대한 하느님의 보호가 없어지게 되면, 사람이나 도시의 죄 때문에 이 보호가 도망치고 쫓겨나면, 점령될 수 있습니다. 예언자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풀과 같고, 그의 모든 영광은 들에 핀 꽃과 같다. 주님의 입김이 닿기만 하면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
여러분은 어제까지 여러분에 의해서 일하도록 강요당하는 기계로 보던 이 사람들을 오늘은 내 뜻에 의해서 동정을 가지고 봅니다. 오늘은 내가 이 사람들을 형제들 가운데 형제로, 부유하고 행복한 여러분 가운데 가난한 사람으로 데려다 놓았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즉 사람으로 봅니다. 업신여김과 무관심이 많은 사람의 마음에서 사라지고, 연민이 그리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짓눌린 이 육체를 넘어 더 깊이 들어가시오. 그 육체 안에는 그들의 안에는 여러분에게와 같이 한 영혼이 있고, 생각과 감정들이 있습니다. 전에는 이 사람들도 여러분과 같이 건강하고 자유롭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마르는 풀과 같지만, 사람의 안락은 훨씬 더 불안정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건강한 사람들이 내일은 병들 수도 있습니다. 오늘 자유로운 사람이 내일은 노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행복한 사람은 내일은 불행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 가운데에는 분명히 죄지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죄를 심판하지 말고, 이들의 벌을 기뻐하지 마시오. 내일 여러분도 여러 가지 원인으로 죄있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무자비한 죄갚음을 할 수밖에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내일이 어떨지를 알지 못하니, 자비를 베푸시고. 내일은 하느님과 사람의 온자비가 필요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니까요. 그만큼 내일은 오늘과 다를지도 모릅니다. 사랑과 용서에 마음이 끌리도록 하시오. 하느님의 용서와 동류 중의 어떤 사람의 용서가 필요 없을 만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용서를 받기 위하여 용서하시오.
예언자는 또 말합니다. ‘풀은 마르고, 꽂은 떨어진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남아 있다.’ 이것이 무기이고 방어물입니다…. 여러분의 행동의 규범이 된 영원한 말씀 말입니다.
여러분을 위협하는 위험에 대하여 이 참다운 성벽을 세우시오.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받아들이고 여러분에게 말하는 사람을 받아들이시오. 그러나 도시의 성안에 한 시간 동안 물질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여러분의 마음속에 영원히 받아들이시오. 나는 알고 행동하고 또 강력하게 지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를 믿는 양떼에 풀을 뜯기는 착한 목자이며 아무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신분이 낮은 사람도, 지친 사람도, 운명에 의하여 상처를 입었거나 타격을 입은 사람도, 그의 잘못을 슬퍼하는 사람도, 부유하고 행복하면서, 참된 재산과 참된 행복, 즉 죽을 때까지 하느님을 섬기는 행복을 위하여 모든 것을 무시하는 사람도. 주님의 성령이 내 위에 계십니다. 그것은 온유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낙심한 마음을 고쳐 주고, 노예들에게 자유를, 갇힌 사람들에게 해방을 전하라고 주님이 나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혼란을 선동한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반란을 부추기지 않고, 노예와 갇힌 사람들에게 탈출하라고 권하지 않고, 다만 사슬에 묶인 사람, 노예가 된 사람에게 참된 자유와 참된 해방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빼앗아 갈 수도 없고 제한할 수도 없는 자유, 사람이 거기에 몸을 맡기면 맡길수록 그만큼 더 커지는 자유, 즉 정신적인 자유, 죄에서의 해방, 고통을 당하는 중에 가지는 온유, 사슬로 묶는 사람들 위에 계신 하느님을 알아볼 줄 아는 자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사람이 용서하지 않는 곳에서 용서하신다는 것을 아는 자유, 자기의 불행속에서 착하게 살고, 죄를 뉘우치고, 주님께 충실할 줄은 아는 사람으로서는 영원한 상을 받는 곳에 가기를 바랄 줄 아는 자유를 말입니다. 내가 특별히 말을 하는 여러분은 울지 마시오. 나는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거두어 주려고 왔고, 그들의 어두움에 빛을, 그들의 영혼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려고 왔고, 죄가 없는 사람에게와 마찬가지로 뉘우치는 사람에게도 기쁨의 처소를 약속하려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처해 있는 처지에서 주님을 섬길 줄 아는 사람들을 하늘에서 기다리는 이 현재를 막을 과거는 없습니다. 불쌍한 자식들인 여러분, 주님을 섬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하늘에서 행복한 것을 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주님을 섬기는 쉬운 방법을 주셨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겉으로 보기에는 가장 인간적인 일에도 감추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혹 여러분의 형제의 피를 흘렸을지도 모르는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 여러분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분명히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지만, 지금 여러분이 속죄로 사랑에 대한 여러분의 빚을 갚으라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원수에 대하여 반항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지만, 전에 여러분이 교만해서 여러분의 불행을 초래한 것과 같이, 지금은 겸손하라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크게나 작게나 여러분의 것이 아닌 것을 부정한 수단으로 가로채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여러분의 마음에 여러분의 죄를 지닌 채 하느님께로 가지 않도록 벌을 받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또 지금 행복한 사람들, 자기들이 안전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 그 어리석은 자신 때문에 자기들 안에 하느님의 나라를 준비하지 않고, 그래서 시험을 당할 때에는 아버지의 집을 멀리 떠나서 고통의 채찍 아래 폭풍우에 내맡겨진 채로 있게 될 사람들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두 정의로 행동하고 아버지의 집을, 하늘나라를 향해 눈을 드시오. 하늘나라의 문이 그것을 열려고 온 사람에 의해 활짝 열리면, 누구든지 의덕에 도달한 사람은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지 않을 것입니다.
팔다리가 잘리고, 불구가 되고, 고자가 되거나, 정신적으로 사지가 잘리고, 불구가 되고, 정신적인 능력으로 고자가 되고, 이스라엘에서 내쫓긴다 하더라도 하늘나라에서 자리를 얻지 못할까봐 걱정하지 마시오. 육체의 절단, 변형, 불고, 따위는 육체와 더불어 사라집니다. 감옥이나 노예 신분같이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어느 날 끝납니다. 영에 영향을 주는 것, 과거의 죄의 결과도 착한 뜻으로 갚아집니다. 육체적인 절단은 하느님의 눈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절단은 사랑 가득한 뉘우침이 덮혀 있으면 하느님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됩니다.
거룩한 민족에 대하여 외국인이라는 사실은 이제 주님을 섬기는 데에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유일한 왕, 자기의 새 민족을 만들기 위하여 모든 민족을 오직 하나로 모아놓는, 모든 왕과 모든 민족의 왕 앞에서는 이 세상의 국경들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민족에서는 히브리인이건 이방인이건 또는 우상숭배자이건, 모든 선의의 사람들이 지킬 수 있는 십계명을 거짓말로 지킴으로써 주검을 속이려고 하는 사람들만이 배제될 것입니다. 착한 뜻이 있는 곳에는 의덕을 향한 자연적인 경향이 있는데, 의덕을 지향(志向)하는 사람은 참 하느님을 알게 되었을 때 그분을 숭배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고, 그분의 이름을 존경하고 명절들을 거룩히 지내고, 부모를 공경하고 사람을 죽이지 않고, 도둑질을 하지 않고, 거짓 증언을 하지 않고, 간통죄나 간음죄를 짓지 않고,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을 탐내지 않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일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자기 영혼을 구하고 하늘나라에 자리를 얻기 위하여 이제부터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들이 내 계약을 존중하면, 그들에게 행복하게 하겠다’ 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거룩한 뜻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거룩한 분들 중에서도 거룩하신 분은 모든 사람의 공동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내 말은 끝났습니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줄 돈이 없습니다. 그리고 돈이 이 사람들에게는 유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 만난 이후로 주님의 길로 많이 나아간 가말라의 여러분에게 말합니다만, 여러분의 도시를 위하여 가장 효력이 있는 방어물을 세우시오. 즉 여러분들 사이에, 그리고 이 사람들이 여러분을 위하여 고생하는 동안 내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구제함으로써 이 사람들을 위하여 사랑의 방어물을 세우시오. 그렇게 하겠습니까?”
“예, 주님”하고 군중이 대답한다.
“그러면 갑시다. 만일 내 부탁에 대해서 여러분의 마음이 ‘아니오’라고 대답했더라면, 나는 여러분의 도시 안에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남아 있는 여러분은 축복받기를 바랍니다…. 갑시다….”
예수께서는 이제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 길로 돌아오셔서 도시로 올라가신다. 이 도시는 혈거인(穴居人)의 도시처럼 말하자면 바위속에 건설된 도시이지만, 잘 정돈된 집들이 있고, 아우라니티게스의 산들이나 갈릴래이 바다 쪽으로, 또는 저 멀리 있는 대(옷) 헬몬산이나 요르단강의 푸른 계곡 쪽으로, 이렇게 보는 각도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변화 있는 훌륭한 전망을 가진 도시이다. 이 도시는 높은 곳에 위치하고 또 독특한 양식으로 건설된 데다가 거리들이 뜨거운 해를 피할 수 있게 되어서 서늘하다. 도시는 오히려 엄청나게 큰 상과 일련의 요새와 비슷하다. 반쯤 담을 쌓고, 반쯤은 산을 파고 지은 집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모든 광장들 중에서 제일 높아서 시내의 맨 꼭대기에 있는 제일 큰 광장에는 -이곳에는 산과 수풀과 호수와 강들의 넓은 지평선이 내려다 보인다. – 가말라의 병자들이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지나가시면서 그들을 고쳐 주신다….

* 역주 :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유모인 산양신의 뿔로, 풍요의 상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