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마리아야, 일어나라. 복음서의 한 쪽으로 이 날을 거룩하게 하자. 내 말은 거룩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아라. 마리아야, 세상에서 지낸 그리스도의 날들을 바라다보는 것은 거룩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아야, 글을 써라. 그리스도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은 거룩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말하는 것을 되풀이 하는 것은 거룩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전파하는 것은 거룩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형제들을 가르치는 것은 거룩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랑에 대해서 큰상이 네게 주어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라마를 떠나셨고, 벌써 예루살렘이 보이는데 와 계신다. 예수께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규정된 시편을 노래하시며 나아가신다. 사람이 매우 많이 다니는 길에서 지나가는 사도들의 집단을 보려고 많은 사람이 돌아본다. 어떤 사람들은 공손히 인사하고, 어떤 사람들은 경건하게 미소 지으면서 바라다보기만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주로 여자들이다. 바라다보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빈정거리고 멸시하는 웃음을 짓는다. 끝으로 어떤 사람들은 거만하게, 분명히 악의를 가지고 지나간다.
예수께서는 깨끗하고 적절한 옷을 입으시고 침착하게 걸어가신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예수께서는 거룩한 도시에 적절하게, 그리고 예절 바르게라고 할 수 있게 들어가시기 위하여 옷을 갈아 입으셨다. 마륵지암도 올해에는 새 옷을 입어 상황에 어울리게 되었는데, 변성기이기 때문에 어지간히 듣기 싫은 목소리로 기쁘게 노래 부르며 예수 곁에서 걸어간다. 그러나 그의 불완전한 음조는 같이 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의 선명한 합창 속에 파묻힌다. 그의 목소리는 높은 음에서는 홀로 맑게 올라간다. 높은 음들은 아직 분명하고 자신 있게 낸다. 마륵지암은 행복하다….
그들은 벌써 보이기 시작한 다마스커스문으로 해서 들어갈 참이다. 그러나 길 전체를 차지하여 교통을 중단시키고 사람들을 길 가장자리에 남아 있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호화로운 여행자들의 무리 때문에 멈추고 노래를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이 길이 가장 가까운 길이다. 그때에 마륵지암이 묻는다.
“주님, 여기 없는 아들을 위해서 아름다운 비유를 또 하나 말해 주지 않으실래요? 제가 가지고 있는 다른 글에 그걸 덧붙이고 싶어요. 베다니아에서는 그 아저씨가 보낸 사람과 소식을 보게 될 게 분명하니까요. 그리고 저는 제가 약속한 것처럼, 그리고 그 아저씨의 마음과 제 마음이 바라는 것처럼 아저씨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요….”
“그래라, 얘야. 물론 네게 그 비유를 이야기해 주겠다.”
“정말 아저씨를 위로하곤 주님이 항상 아저씨를 사랑하신다고 말해줄 그런 비유를요….”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마, 그리고 그 때문에 나는 기쁨을 맛볼 것이다. 진실을 말할 테니까 말이다.”
“주님, 언제 말씀해 주시 됐어요?”
“즉시.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것과 같이, 즉시 성전으로 간다. 그리고 거기서 사람들이 내가 말하는 것을 막기 전에 말을 하겠다.”
“그리고 그 아저씨를 위해서 말씀하실 겁니까?”
“그렇다, 얘야.”
“주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헤어져 있는 건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 일거예요…”하고 마륵지암이 말하는데, 그의 까만 눈에는 눈물 한 방울이 반짝인다. 예수께서는 그의 머리 위에 한 손을 없으시고, 열두 제자에게 가까이 와서 다시 걷기 시작하라는 표를 하시려고 돌아보신다. 과연 열두 사도들은 선생님을 믿는 사람들인지 또는 선생님을 알기를 원하는 사람들인지 알 수 없는 어떤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고 걸음을 멈추었었다. 그 사람들도 예수와 제자들과 같은 이유로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선생님, 곧 갑니다. 저희들은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 중에는 멀리서 온 개종자들이 있는데, 어디에서 선생님께 가까이 올 수 있겠느냐고 저희에게 물었습니다”하고 베드로가 달려오면서 말한다.
“어떤 동기로 그걸 바란다더냐?”
그러니까 이제는 다시 걷기 시작하신 예수 곁에 온 베드로가 말한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를 바라고, 또 어떤 병들이 고쳐지기 위해서 랍니다. 저 맨 뒤에 있는 포장을 씌운 마차가 보이지요? 저 사람들은 디아스포라의 개종자들인데, 율법에 대한 존경보다도 선생님께 대한 믿음으로 이 여행을 하도록 자극되어서 바다나 먼 길을 통해서 왔답니다. 에페소와 페르가와 이코니움에서 온 사람들도 있고, 또 가엾게도 필라델피아에서 온 사람도 하나 있는데, 대부분 부유한 상인인 그들이 그렇게 하면 주님이 호의를 가지시게 하리라고 생각해서 동정심으로 그를 마차에 태워 주었답니다.”
“마륵지암아, 저 사람들에게 가서 성전으로 나를 따라오라고 일러라. 그러면 그들이 두 가지를 다 얻게 될 것이다. 말로 그들의 영혼의 건강을 얻고, 믿음을 가질 줄을 알면 육체의 건강도 얻을 것이다.” 젊은이는 빨리 간다. 그러나 열두 제자들에게서는 성전에서 남의 눈에 띄도록 하려고 하시는 예수의 “조심성 없음”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일제히 올라온다….
“우리가 성전에 가는 것은 바로 그들에게 내가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이다. 어떤 위협도 나로 하여금 계명을 어기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아직 그들의 장난을 알아차리지 못했느냐? 저 모든 위협, 곁으로만 우호적인 저 모든 충고의 목적은 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해서 참다운 고소거리를 얻자는 것이다. 비겁하게 되지 말아라, 믿음을 가져라, 내 때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왜 우선 어머님을 안심시켜 드리러 가지 않으십니까? 선생님을 기다리고 계실 텐데요…”하고 가리옷의 유다가 말한다.
“아니다. 나는 우선 성전으로 간다. 성전은 영원하신 분께서 정하신 순간까지는 하느님의 집이다. 내 어머니는 내가 성전에서 전도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 것보다는 나를 기다리시는 것으로 고통을 덜 당하실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내 아버지께서는 내 과월절의 첫 시간들을 맏물로 드리고, 어머니께는 안심을 드림으로써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한다. 가자, 두려워 말아라. 하긴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게쎄마니에 가서 여자들 가운데에서 그의 공포를 품도록 해 라.”
사도들은 이 마지막 나무람으로 자극되어 입을 다문다. 그들은 다시 세 사람씩 줄을 짓는데, 예수께서 계신 첫째 줄에는 마륵지암이 와서 다섯 사람으로 보충할 때까지는 네 사람뿐이다. 그래서 타대오와 열성당원은 그대로 베드로와 마륵지암 사이에서 걸어가시는 예수의 뒤로 가게 된다.
다마스커스문에서 그들은 마나헨을 만난다. “주님, 상황에 대한 일체의 의심을 없애기 위해서 저를 보시게 하는 것이 나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증오 외에는 주님께 대해 위험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장담합니다. 안심하고 가셔도 됩니다.”
“나도 알고 있었소, 마나헨. 그러나 고맙소. 만일 짐스럽게 느껴지 지않으면, 나와 같이 성전으로 갑시다….”
“짐스럽게 느껴지다니요? 아니, 주님을 위해서는 온 세상과도 맞서겠습니다! 저를 피로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가리옷 사람이 무슨 말인지 중얼거린다.
마나헨이 화가 나서 돌아본다. 그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여보시오 그렇지 않소 ‘말’뿐이 아니오. 나는 선생님께 제 진실성을 시험하시라고 청하겠소.”
“그럴 필요 없소 마나헨, 갑시다.”
그들은 빽빽한 군중을 뚫고 나아가서, 어떤 친한 집에 이르러 배낭들을 내려놓으니,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아가 모두를 대신하여 길고 어두운 안마당에 들여놓는다. 그리고는 동료들 있는 데로 간다. 그들은 안토니아탑 근처를 지나서 성전 구내로 들어간다. 로마 병사들은 바라다보기는 하지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말을 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아는 사람이 있는지 보시려고 그들을 살피신다. 그러나 퀸틸리아노도, 병사 알렉산드르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성전 안에, 장사아치들과 환전상들이 있는 첫번째 마당들의 별로 신성하지 못한 우글거림 가운데 와 있다. 예수께서는 바라다보시고 몸을 떠신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걸음걸이가 어떻게나 엄숙한지 키가 한층 더 커 보인다.
가리옷 사람이 예수를 유혹한다. “왜 거룩한 행동을 되풀이하지 않으십니까? 보십니까? 저들은 잊어버렸습니다.…그래서 독성(瀆聖)이 다시 하느님의 집에 있습니다. 그 때문에 흥분이 되지 않으십니까? 하느님의 집을 옹호하시기 위해 궐기하지 않으십니까?” 아름답지만 조소적이고, 또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하여 유다가 노력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위장된 갈색 얼굴은 마치 존경 가득한 경의로 그러는 것처럼 약간 숙이고 밑에서 예수를 엿보며 이 말을 할 때 거의 여우의 얼굴 같다.
“지금은 그 시간이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하고 예수께서 결연히 말씀하신다.
유다는 빙그레 웃으면서 주를 단다. “사람들의 ‘영원히’! 너무나 덧없는 것입니다. 선생님! 보시는 바와 같이!…”
예수께서는 아리마태아의 요셉에게 멀리서 인사하시는데 몰두해 계시기 때문에 유다에게 대답을 하지 않으신다. 아리마태아의 요셉은 호화로운 겉옷을 입고 지나가는데, 다른 사람들이 따라간다.
예수의 일행은 관례적인 기도를 하고 나서 이방인들의 마당으로 돌아와서, 사람들이 몰려 있는 행각(行閣) 아래로 간다.
길에서 만난 개종자들은 예수를 따라왔다. 그들은 그들의 병자들을 끌고 데리고 와서, 지금은 행각 아래 그늘에 선생님 곁에 뉘어 놓는다. 그들을 여기서 기다리고 있던 그들의 아내들은 아주 조용히 다가온다. 모두 베일을 썼다. 그러나 아마 병자인 한 여인은 벌써 앉아 있다. 그래서 같이 온 여자들이 다른 병자들 곁으로 데려간다. 다른 사람들도 예수 둘레로 몰려든다. 유다교 교사들의 여러 집단이 예수께서 공공연히 오셔서 전도하시는 것에 깜짝 놀라고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평화가 내 말을 듣는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과월절이 충실한 자식들을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축복받은 우리 과월절은 자식들의 이익에 마음을 쓰는 어머니입니다. 과월절은 자식들을 오라고 큰 소리로 부릅니다. 참으로 중요하고 유익한 관심사, 즉 주님이시고 아버지이신 분을 공경하는 관심사를 위하여 일체의 관심사를 중단하고 사방에서 오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형제인지를 깨달게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윽한 증언을 통하여 이웃을 자기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명령과 약속이 생겨납니다. 우리가 서로 만난 적이 없었습니까? 우리가 서로 몰랐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과월절 잔치에 참여하라고 우리더러 당신 집으로 오라고 하시는 오직 한 분뿐이신 아버지와 자식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왔으니, 우리는 육체적인 감각으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확실히 상등 부분으로는 우리가 오직 한 분에게서 온 동등한 형제들이라는 것을 느끼고, 마치 함께 자란 것과 같이 서로 사랑합니다. 우리의 결합인 이 사랑의 결합은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하느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모두 하느님의 사랑에 포옹되어 누릴 더 완전한 결합을 미리 이루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고 사랑의 아들인 나와 하느님의 아들이며 사람인 여러분과의 결합, 맏아들인 나와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내가 어린 양이 되기까지 일체의 인간적인 한도를 넘는 사랑하는 형제들인 여러분과의 결합을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 아버지의 집에서 우리의 형제적인 결합을 즐기고 있는 우리들은 멀리 있으면서도 주님 안에서나 혈통으로 우리의 형제들인 사람들로 기억합시다. 그들을 우리 마음에 지닙시다. 거룩한 제단 앞에서 여기 없는 그들을 우리 마음에 지닙시다. 밀리서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를, 여기 오고 싶어 하는 그들의 향수를, 그들의 한숨을 우리 마음으로 받아 넣으면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그리고 여기 없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저 의식적인 한숨을 거두어들이는 것과 같이, 자기들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오직 한 분의 자손들이라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것인 영혼들의 한숨도 받아들입시다. 세상의 모든 영혼이 그들의 육체의 감옥 안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을 향하여 부르짖습니다. 그들의 어두운 감옥 속에서 빛을 향하여 탄식합니다. 참된 믿음의 빛 속에 있는 우리는 그들을 불쌍히 여깁시다.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온 인류에 거룩히 빛나게 하십시오! 아버지의 이름을 아는 것은 거룩함을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이방인들, 이교도들이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하시고, 이미 오래 지났지만, 이 세상에 구속이 임하는 것과 관계되는 것은 아무것도 무기력한 것이 없기 때문에 무기력하지는 않은 시기의 세 현자들과 같이, 그들도 하느님께로 아버지이신 당신께로 오게 하십시오. 야곱의 별, 샛별에 인도되어, 다윗 가문의 왕이며 구세주인 이에게 인도되어, 아버지께서 기름 발라주시고, 이미 세상의 죄를 없애는 희생이 되기 위하여 바쳐지고 봉헌된 그에게 인도되어 오게 하십시오.
아버지의 나라가 사람들이 아버지를 알고 사랑하거나 또는 아직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세상의 어느 곳에나 임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아버지의 나라가 특히 삼중으로 죄있는 사람들에게 이르게 하십시오. 그들은 아버지를 알면서도 아버지의 행동과 빛의 나타남을 보고도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고, 그들은 어두움의 영혼이기 때문에 세상에 온 빛을 물리치고 끄려고 애씁니다. 그들은 암흑의 행실을 더 좋아하고, 세상의 빛을 덮어 끄고 아버지께 죄짓기를 원할 줄밖에 모릅니다. 아버지는 지극히 거룩하신 빛이시며, 아버지의 빛을 착한 뜻을 가진 모든 영혼에게 가져다주기 위하여 사람과 말씀이 된 빛을 위시하여 모든 빛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의 뜻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마음속에서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즉 모든 마음이 구원되고, 어떤 마음에도 큰 희생의 제사가 헛되지 않게 하십시오. 사람이 구원되고, 이제 주어질 용서가 있은 뒤에 거룩하신 아버지를 누리라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이다.
주님, 주님의 도움을, 주님의 모든 도움을 저희에게 주십시오. 주님의 도움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기다린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십시오. 구원하는 뉘우침을 가진 죄인들에게 주시고, 그들을 흔들어 깨우는 주님의 부르심으로 상처를 입은 이교도들에게 주님의 도움을 주십시오. 주님의 도움을 불행한 사람들에게 주시고, 자기 집에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과 귀양살이하는 사람들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들에게 주십시오. 모든 것이신 주님,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도움을 주십시오. 자비의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인자하신 아버지, 자식들의 죄를 용서하십시오. 가장 중대한 아버지의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이 바로 이 백성에게 빛을 주셨는데, 오류 속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죄를 짓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도 가치가 있는 영혼들이 없는데도, 그리고 아버지께서 그들을 창조하셨기 매출에 그들을 사랑하시는데도, 악습을 가르치는 타라한 이교로 인하여 멍청하게 된 사람들과 짓누르고 유독한 이교에 빠진 사람들도 용서하십시오. 저를 위시하여 저희 모두는 아버지께서 용서하실 수 있도록 용서합니다. 그리고 인간들의 약함에 대하여 아버지의 보호를 비오니, 모든 죄악과 모든 우상숭배와 모든 잘못과 모든 유혹과 오류가 오는 악의 근원에서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을 구해 주십시오. 오 주님, 그들을 무서운 마왕에게서 구해 내시어 그들이 영원한 빛으로 올 수 있게 하십시오.”
사람들은 이 장엄한 기도에 주의를 기울였다. 유명한 선생들이 가까이 왔다. 그들 가운데에는 수염난 턱을 한 손으로 괴고 생각에 잠겨있는 가믈리엘도 있었다.…그들의 얼굴을 가리는 일종의 두건이 달린 겉옷으로 몸을 감싼 한 떼의 여자가 가까이 왔다. 그러니까 교사들은 멸시하는 태도로 비켜섰다.…선생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충실한 많은 제자들도 달려 왔다. 그 중에는 헤르마와 스테파노와 사제 요한도 있었다. 그리고 늘 붙어 다니는 두 사람인 니고데모와 요셉, 그리고 내가 이미 본 것 같은 그들의 친구 중에서 다른 사람들도 왔다. 주님의 기도에 뒤따른 휴식 동안에 예수께서는 장중하고 준엄하게 명상을 하고 계시는데,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말하는 것이 들린다. “그래 가믈리엘 선생, 당신에게는 이것이 아직 주님의 말씀으로 보이지 않소?”
“요셉, 나는 이런 말을 들었었소. ‘내 말소리를 듣고 이 돌들이 부르르 떨 것입니다’하는 말을….”이렇게 가믈리엘이 대답한다.
스테파노가 세차게 외친다. “주님, 기적을 마저 행하십시오! 명령하십시오. 그러면 이 돌들이 흔들릴 것입니다! 건물은 무너져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주님께 대한 믿음의 벽이 쌓아 올려지면, 그것은 큰 은혜일 것입니다! 제 선생님께 그 기적을 행하십시오!”
“하느님을 모욕하는 자야!”하고 화가 몹시 난 교사들과 그들의 생도들의 무리가 외친다.
“아니다”하고 이번에는 가믈리엘이 외친다. “내 제자는 영감을 받은 말을 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천사가 아직 하느님의 제단에서 가져온 숯으로 우리의 과거를 깨끗이 씻지 못했기 때문에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그리고 어쩌면 저분의 외침이.”그러면서 예수를 가리킨다. “이 문의 돌쩌귀들을 뽑아놓더라도, 우리는 아직 믿을 줄을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는 아주 하얀 그의 겉옷 한자락을 치켜올려 머리를 덮어 얼굴을 거의 가리다시피 하고 떠나간다.
예수께서는 그가 가는 것을 바라다보신다.…그리고는 자기들끼리 중얼거리는 몇몇 사람에게 대답하시기 위하여 다시 말씀을 시작하신다. 그들은 분개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들의 분노를 더 분명히 나타내려고 일련의 불평을 가리옷의 유다에게 쏟아 놓는다. 사도는 어깨를 으쓱하고, 도무지 만족스럽지 않은 얼굴로 저항하지 않고 당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정말 잘 들어 두시오. 사생아같이 보이는 사람들이 진짜 아들들이고, 진짜 아들인 사람들은 사생아가 됩니다. 여러분 모두 비유를 하나 들으시오.
전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사업 관계로 아직 어린 자식들을 두고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어야 했습니다. 그는 그가 있는 곳에서 큰 아들들에게 편지를 보내 멀리 떨어져 있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항상 간직하게하고, 그의 지시를 그들에게 상기시키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떠난후에 난 막내아들은 다른 종족의 여자인 아내의 고향인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어떤 여자에게 맡겨져 아직 젖을 먹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그 아들이 아직 어리고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에 죽었습니다. 형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애를 지금 있는 우리 외가에 그대로 둬두자. 어쩌면 아버지가 그애를 잊어버릴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되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될 때 유산을 나누어 가질 사람이 하나 덜 할 테니까 우리의 이익이 된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멀리 떨어져 있는 그 아이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게 양육되며 살았고, 아버지의 지시를 모르고, 아버지와 형들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또는 그보다 더 나쁜 것으로는, ‘마치 내가 사생아이기나 한 것처럼 모두가 나를 배척했다’고 하는 이 생각의 쓰라림을 맛보면서 살았고, 또 하도 자기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자기가 사실 사생아라고 믿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어른이 되어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사실 그는 이런 생각으로 몹시 분격해 있었기 때문에, 간통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그의 어머니의 친정까지도 미워하게 되었었습니다. 우연히도 이 젊은이가 그의 아버지가 있는 도시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고 자주 만났고,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을 기회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있는 아들들에게서 만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 그 아들들이 이제는 제멋대로 행동하고, 멀리서 사는 아버지와는 그저 그들이 ‘그의’아들들이라는 것이나 기억하라고, 또 유언을 쓸 때에 자기들을 기억하라고 관례의 관계만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 그가 있던 도시에서 가까이 할 기회가 있는 젊은이들에게 조리 있는 충고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많은 젊은이에 대한 아주 아버지다운 이 올바른 태도에 끌려서 그 사람을 자주 만날 뿐 아니라, 그의 모든 말을 그의 귀중한 것으로 삼았고, 그로 인하여 분격한 그의 정신을 낫게 만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병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해야했습니다. 젊은이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르신네. 어르신네만이 정의로 말씀하셔서 제 마음을 향상시키셨습니다. 제가 하인으로 어르신네를 따라가게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제가 떨어져 있던 악에 다시 떨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나하고 같이 가세. 소식을 들을 수가 없는 내 아들의 자리를 자네가 차지하게.’ 그래서 그들은 함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도 형들도 그 젊은이 자신도 주께서 같은 핏줄의 사람들을 같은 집에 다시 모아 놓으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가 알던 아들들 때문에 많이 울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의 가르침을 잊고, 탐욕스럽고, 마음이 냉혹하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게 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마음속에 많은 우상숭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만과 인색과 음란이 그들의 신이었고, 인간적인 이익에 대한 것이 아닌 다른 말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와 반대로 외부에서 온 그 젊은이는 점점 더 주님께 가까이 가고, 의롭고 , 착하고, 다정스럽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아버지가 이 외부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형들은 그를 미워했습니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사랑 속에야말로 평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었기 때문에 용서하고 사랑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들의 행동에 진저리가 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어머니의 친정 부모님과 너희 동생에게까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너희는 야곱 아들들이 동생 요셉에게 한 행동을 내게 상기시킨다. 나는 그 나라에 가서 너희 동생의 소식을 알아보고자한다. 내가 그 애를 만나서 위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들들과 알지 못하는 젊은이와 작별했습니다. 젊은이에게는 그가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 조그마한 가게를 낼 수 있도록 작은 자본을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잃어버린 아내의 도시에 도착하니, 장인 장모는 버림받은 아들이 처음에는 모세라는 이름을 가졌었는데 마낫세라는 이름으로 바꿨었다고 이야기하며, 그것은 그가 나면서 아버지가 그를 버림으로써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을 잊게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를 나무라지 마십시오. 저는 아이의 종적을 잃었다는 말을 들었고, 또 장인 장모님 집안의 사람을 만날 희망도 가지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애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어떻게 생겼습니까? 튼튼해졌습니까? 제게 그 애를 낳아 주면서 죽은 사랑하는 제 아내를 닮았습니까? 마음이 착합니까? 저를 사랑합니까?’
‘튼튼하긴 튼튼하네. 그리고 눈이 분명히 까맣다는 것 외에는 제 어미와 같이 아름다우네. 제 어미에게서는 옆구리에 캐롭(지중해 연안에 사는 상록수 캐롭나무 열매) 같은 모반(母班)까지 물려받았네. 반대로 자네에게서는 약간 즈즈 하는 발음을 물려받았네. 커서는 제 어미의 정숙함에 대해 의심을 가지고, 자네에게 대해 원한 가진 터라 자기 처지에 대해 화가 나서 이곳을 떠났네. 그애가 마음속에 그 원한만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착한 사람이었을 걸세. 그 애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 트라페지우스로 가서….’ ‘트라페지우스라고 하셨습니까? 시노프지방이요? 아이고! 말씀해 주세요! 제가 그곳에 있었는데 약간 즈즈 소리를 내는 청년을 한 사람 알았습니다. 외톨이고 침울한 청년인데, 외양은 무뚝뚝했지만 마음은 몹시 착했습니다. 그 애입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그 애인지도 모르겠네. 찾아보게. 오른쪽 옆구리에는 자네 처가 가졌던 것과 같은 거무스름하고 튀어나온 캐롭 같은 모반이 있네.’ 그 사람은 그의 집에서 아직 그 외부인 젊은이를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급히 떠나 왔습니다. 그 젊은이는 시노프 식민지로 돌아가려고 떠난 뒤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그리로 다시 가서.…젊은이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젊은이를 오게 해서 옆구리를 들쳐보고,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무릎을 끊고, 다른 아들들보다 더 나은 자기 아들을 돌려주신데 대해 하느님을 찬미했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점점 더 어러석어져 가는데 이 아들은 흘러간 몇 달 동안에 점점 더 거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착한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형들의 몫까지 네게 주마. 너는 아무에게서도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도 그 누구보다도 더 의로운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고.
사실 그것이 올바른 일이 아니었습니까? 물론 올바른 일이었습니다. 나 분명히 여러분에게 말합니다만, 진짜 선의 아들들, 즉 세상에서 배척을 당하고, 업신여김을 받고, 미움을 받고, 비난을 당하고, 사생아처럼 버림을 받고 수치와 죽음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이 집안에서 자랐으면서도 집의 법을 어기는 아들들을 능가할 줄 압니다. 이스라엘 사람인 것이 하늘에 대한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고, 바리사이파 사람이나 율법학자나 박사인 것이 이 운명을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착한 뜻을 가지고, 사랑의 가르침에 용감하게 오는 것, 그 가르침을 통하여 영과 진리로 하느님의 아들이 되기 위하여 그 안에서 새로워지는 것이 하늘에 대한 권리를 주는 것입니다.
내 말을 듣는 여러분 모두, 이스라엘에서 자신이 있다고 믿는 많은 사람이 그들이 보기 에는 세리들이고, 창녀들이고 이방인이고, 이교도이고 죄수들인 사람들에게 밀려나 자리를 빼앗기리라는 것을 아시오. 하늘나라는 진리와 사랑을 받아들여 자기를 새롭게 할 줄을 아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몸을 돌려, 개종자인 병자들의 무리 쪽으로 가신다. “여러분은 내가 말한 것을 믿을 줄 압니까?” 하고 큰소리로 물으신다. “예, 주님!”하고 그들은 일제히 대답한다.
“진리와 사랑을 받아들이기를 원합니까?”
“예, 주님.”
“내가 당신들에게 이것만을 주더라도 당신들은 만족하겠습니까?”
“주님, 주님은 저희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아십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평화와 영원한 생명을 주십시오.”
“일어나시오, 그리고 가서 주님을 찬미하시오! 당신들은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병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빨리 첫번째로 만나시는 문 쪽으로 향해 가시어, 이교도들의 마당에 있는 흥분하고 깜짝 놀란 군중이 호산나를 외치면서 당신을 찾을 수 있기도 전에 예루살렘을 꼭 메운 군중 속에 섞이신다. 사도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예수를 놓친다. 예수의 겉옷 자락을 끊임없이 쥐고 있는 마륵지암만이 예수 곁에서 행복하게 뛰어 가며 말한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요한 아저씨를 대신해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동안 저는 다 썼습니다.기적 이야기만 덧붙이면 됩니다. 오! 정말 아름답습니다! 정말 아저씨를 위해서! 아저씨가 몹시 기뻐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