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새벽빛이 호수의 물을 진주처럼 반짝이게 하고 야산들을 모슬린 베일로 가리듯 엷은 안개로 감싼다. 그 엷은 안개를 통하여 올리브나무들과 호두나무들과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마을들의 집들과 둥그스름한 언덕들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배들은 조용하고 말없이 가파르나움 쪽으로 미끄러져 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베드로가 키의 손잡이를 홱 돌리는 바람에 배가 한편으로 기울어졌다.
“뭘 하는 거야?” 하고 안드레아가 묻는다.
“교제를 싫어하는 사람의 배가 있어. 지금 가파르나움에서 나오는 길이야. 난 눈이 좋고, 어제 저녁부터는 경찰처럼 냄새도 잘 맡는단 말이야. 나는 그들이 우리를 보는 것을 원치 않아. 난 강으로 돌아가. 걸어서 가기로 하자.”
다른 배도 그 조작을 따른다. 그러나 키 손잡이를 잡고 있는 야고보가 베드로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하는 거야?”
“나중에 말할께, 따라오기나 해.”
고물에 앉아 계시던 예수께서는 거의 요르단 강 근처에 왔을 때에야 잠을 깨셔서 “아니, 뭘 하는 거냐, 시몬아?” 하고 물으신다.
“여기서 내립니다. 비열한 인간이 하나 보입니다. 오늘은 가파르나움에 갈 수가 없습니다. 제가 먼저 가서 형편을 알아보겠습니다. 시몬과 나타나엘도 저와 같이 갑니다. 비열한 사람 셋에 대해서 의젓한 사람 셋입니다. … 비열한 사람이 더 많이 있으면 몰라도.”
“이제는 아무데서나 함정을 보지 말아라. 저것은 바리사이파 사람 시몬의 배가 아니냐?”
“맞습니다.”
“그 사람은 요한을 잡으러 가지 않았었구나.”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은 내게 대해서 항상 경의를 표했다.”
“모르겠습니다.”
“너는 나를 겁쟁이로 보이게 하는구나.”
“모르겠습니다.”
비록 웃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거룩한 고집 때문에 빙그레 웃으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래도 가파르나움에 가야 한다. 오늘 못 가면 나중에라도 …”
“말씀드렸듯이 제가 먼저 가서 형편을 알아보겠습니다. …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 그 일까지도 하겠습니다. …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 선생님께 대한 사랑으로 하겠습니다. … 저는 … 저는 백부장을 찾아가서 보호를 청하겠습니다 ….”
“아서라, 그것은 안된다.”
배는 베싸이다 맞은편 사람이 없는 작은 호반에 닿는다. 모두가 내린다.
“자네 둘은 이리 오게. 필립보, 자네도 오게. 자네들 젊은이들은 여기 남아 있게. 우린 빨리 끝낼 걸세.”
새 제자 엘리야가 간청한다. “선생님, 제 집으로 가십시다. 선생님을 모시면 저는 정말 행복하겠습니다 ….”
“가마, 시몬아, 엘리야의 집으로 나를 따라오너라. 잘 가라, 시몬아, 가자. 그러나 착하고 조심성 있고 자비롭게 굴어라. 입맞춤하고 강복하게 이리 오너라.”
베드로는 친절하고 참을성있고 자비롭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 그는 말없이 선생님과 입맞춤을 주고 받는다. 열성당원과 바르톨로메오와 필립보도 작별의 입맞춤을 교환한다. 그리고 두 패는 헤어져서 반대되는 두 방향으로 간다.
그들이 코라진에 들어갈 때에는 이미 새벽이 아니라 날이 환히 밝았다. 이슬이 반짝이지 않는 풀줄기가 없다. 새들이 사방에서 노래한다. 젖맛이 나는 것 같기까지 한 깨끗하고 시원한 공기가 있다. 동물성 젖보다도 식물성 젖맛이다. 이삭 안에서 생겨나고 있는 낟알과 열매가 많이 달린 편도나무의 냄새 … 내가 뽀 평야의 기름진 밭에서 시원한 아침에 맡은 그런 냄새이다.
그들은 매우 빨리 엘리야의 집에 이른다. 그러나 벌써 코라진의 많은 사람이 선생님께서 도착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 예수께서 문지방에 발을 올려 놓으시려는 순간에 어떤 어머니가 달려오면서 부르짖는다. “다윗의 후손 예수님, 제 아이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여인은 열 살쯤 된 계집 아이를 안고 있는데, 아이의 얼굴빛은 밀랍빛깔이고 매우 야위었다. 살갗은 밀랍빛깔보다도 오히려 누르스름한 빛깔이다.
“당신 딸은 무슨 병이 있습니까?”
“열병입니다. 얘는 요르단강가에 있는 목장에서 열병에 걸렸습니다. 저희들은 어떤 부자의 양치기들이니까요. 저는 애 아버지가 불러서 어린 병자를 돌보러 왔습니다. 남편은 이제 산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이 병에 걸리면 높은 곳에는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여기 남아 있을 수 있습니까? 주인이 지금까지는 저를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양털과 양새끼 낳는 일을 돌봐야 합니다. 저희들 양치기에게는 일하는 때가 왔습니다. 제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 저희들은 쫓겨나든지 서로 갈라져 살든지 해야 합니다. 제가 헤로몬산으로 가면 제 딸이 죽는 꼴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저는 엘리세오의 목동 다니엘에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우리 아기는 무엇이든지 고칩니다. 메시아를 찾아 가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메론 호수 저쪽에서부터 이 애을 안고서 선생님을 찾으려고 왔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찾아낼 때까지 계속 걸었을 것입니다 ….”
“이제는 당신 집과 일자리로 안심하고 돌아가기 위해서만 걸으시오. 내가 그렇게 원하니까 당신 딸은 나았습니다. 평안히 가시오.”
여인은 딸을 내려다보고 예수를 쳐다보고 한다. 아마 어린 딸이 당장에 살아 통통해지고 얼굴빛이 아름답게 되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그런데 계집 아이가 지금까지는 감고 있던 피곤한 눈을 크게 뜨고 예수를 쳐다보면서 방긋 웃는다.
“아주머니, 염려 마시오. 나는 당신을 속이지 않습니다. 열병은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날이 갈수록 얼굴빛이 좋아질 것입니다. 걸어가게 놔두시오. 이제는 비틀거리지도 않고 피로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어린 딸을 땅에 내려놓으니, 계집 아이는 몸을 꼿꼿이 가누고 점점 더 명랑하게 미소짓는다. 마침내 그의 맑은 목소리로 재잘거린다. “엄마, 주님을 찬미해! 난 다 나았어! 난 그걸 느껴.” 그러면서 양치기 소녀와 어린 계집아이의 순박한 마음으로 예수의 목에 달려들며 입맞춤한다. 어머니는 아이가 가르치는 대로 조심성있게 땅에 엎디어 주님을 찬미하면서 그 옷에 입맞춤한다.
“가시오. 그리고 당신들이 하느님에게서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착하게 사시오. 평화가 당신들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군중이 엘리야의 집 작은 정원에 모여서 선생님의 말씀을 요구한다. 그래서 비록 예수께서는 세례자가 붙잡힌 것과 붙잡힌 방식으로 인하여 슬픔에 잠겨 계신 만큼 말씀을 할 마음이 별로 나지 않지만 양보하셔서 나무 그늘에 가서 말씀을 시작하신다.
“이삭에 알이 생기는 이 좋은 계절에 나는 여러분에게 낟알에서 따온 비유를 하나 내보이고자 합니다. 들어보시오.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밭에 좋은 씨를 뿌린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과 하인들이 자는 동안에 그 사람의 원수가 와서 밭고랑에 가라지 씨를 뿌리고 갔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겨울이 와서 비가 오고 서리가 내렸습니다. 데벳달의 월말이 되면서 싹이 텄습니다. 겨우 땅에서 돋아나는 연초록색의 작은 잎들이었습니다. 그것들이 순진하게 어릴 때에는 모두가 똑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스밧달이 되고, 그 다음에 아달달이 되었습니다. 곡식대들이 생겨나고 이삭에 낟알들이 생겼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은 초록빛이 모두가 낟알이 아니고, 가늘고 떨어지지 않는 덩굴손으로 밀대에 칭칭 감겨 있는 가라지도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인의 하인들이 집으로 와서 말했습니다. ‘주인 어른, 어떤 씨를 뿌리셨습니까? 다른 씨는 섞이지 않은 잘 고른 씨가 아니었습니까?’
‘암 그렇고 말고. 나는 종자를 모두 같은 질의 것을 골랐었다. 그래서 다른 씨가 있었더라면 내가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인 어른이 뿌리신 밀 가운데 왜 가라지가 그렇게 많이 났습니까?’
주인은 곰곰히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원수가 내게 해를 끼치려고 그런 짓을 한 것이다.’
그러자 하인들이 물었습니다. ‘저희들이 밭고랑에 가서 참을성 있게 가라지를 뽑아서 밀이삭에서 가라지를 떼어낼까요. 명령만 하십시오. 그렇게 할 테니까요.’
그러나 주인은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너희들이 혹 밀대도 뽑을지 모르겠고,또 아직 여린 밀이삭을 상하게 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것들을 수확할 때까지 같이 내버려두어라. 그때에 나는 거두어들이는 사람들에게 <모두 함께 베어라. 그런 다음 곡식단을 묶기 전에, 이제는 날씨가 가물어서 가라지의 덩굴손이 부서지기가 쉽고, 또 빽빽하게 된 밀이삭은 더 든든하고 단단하게 되었으니까 가라지는 밀과 분리해서 다발들을 따로 만들어라. 그런 다음 그것들을 태워버려라. 그러면 땅에 비료를 주는 것이 될 것이다. 좋은 낟알은 곡식창고에 갖다 넣어라. 그러면 훌륭한 빵을 만드는 데 쓰여서, 원수는 그의 악의 때문에 하느님께 멸시당할 만한 자가 되었다는 것밖에 얻은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창피를 당하게 될 것이다.> 하고.’
이제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 원수가 몇 번이나 또 얼마나 많은 씨를 뿌렸는지 여러분끼리 곰곰히 생각해 보시오. 그리고 잘 고른 씨에 가라지가 별로 섞이지 않게 얼마나 참을성 있고 끈기 있게 살펴야 하는지를 이해하시오. 가라지의 운명은 불에 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불에 타기를 원하십니까, 또는 나라의 시민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은 나라의 시민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이 될 줄 아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원수는 그것을 해롭게 만들려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밀가루를 가라지 가루에 섞으면 쓰고 장에 해로운 빵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영혼에 가라지가 있으면 여러분의 착한 뜻으로 그것을 따로 분리해서 버릴 줄을 알아서 하느님께 마땅치 않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하시오. 여러분 가보시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천천히 흩어진다. 정원에는 여덟 사도와 엘리야와 그의 형과 어머니, 그리고 늙은 이사악이 있을 뿐이다. 이사악은 그의 구세주를 쳐다보는 것으로 영혼의 양식을 얻는다.
“내 둘레에 와서 들어라. 이 비유의 완전한 뜻을 설명해 주겠다. 이 비유에는 내가 군중에게 말한 면 이외에 두 가지 면이 더 있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비유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밭은 이 세상이다. 좋은 씨는 하느님께서 세상에 뿌리신 하느님 나라의 아들들이어서, 그들은 그들이 완전히 여물어 낫으로 베어지고 이 세상의 주인에게로 운반되어 가서 곡식창고에 넣어지기를 기다린다. 가라지는 마귀의 아들들인데, 그들도 세상의 주인을 괴롭히고 하느님의 밀이삭에도 해를 끼칠 생각으로 하느님의 밭에 뿌려놓은 것들이다. 하느님의 원수가 요술로 일부러 뿌려놓은 것이다. 마귀는 정말 사람을 변질시켜 자기의 것을 만들기까지 해서, 다른 방법으로는 굴복시킬 수 없었던 다른 사람들을 타락시키기 위해 그 인간을 뿌려놓기 때문이다. 추수, 아니 그보다도 곡식단을 만들어서 곡식창고로 옮기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고, 그것을 책임 맡은 것은 천사들이다. 천사들은 곡식을 벤 다음에 가라지 알들을 따로 떼어놓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비유에 가라지는 불에 태우는 것과 같이 최후의 심판에서 지옥벌의 선고를 받은 사람들은 영원한 불 속에서 탈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서 그의 나라에서 추문과 타락을 만들어내는 모든 사람을 치울 것이다. 그 때에는 나라가 땅 위와 하늘에 있을 것이고, 땅 위의 나라의 시민들 사이에는 원수의 많은 아들이 섞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수의 아들들은 예언자들도 말한 것과 같이 그들의 모든 지상 활동에서 추문과 가증스러움이 극도에 도달해서 영의 아들들에게 엄청난 걱정을 끼칠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천사들이 마지막 수확물이 나란히 서 있는데 낫질을 해서 베어 밀알과 가라지를 갈라놓고, 가라지는 활활 불타는 가마에 집어던질 것이다. 거기에는 이를 갈며 우는 울음 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의인들, 즉 고른 낟알은 천사들이 영원한 예루살렘으로 데려갈 것인데, 거기서 그들은 내 아버지이시며 너희 아버지이신 분의 나라에서 태양과 같이 빛날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뜻이다. 그러나 너희들에게는 너희가 여러 번, 특히 어제 저녁부터 너희들 자신에게 하는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다른 뜻이 또 하나 있다. 너희들은 이렇게 자문한다. ‘아니 그런데 제자들의 무리 중에 배반자들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고. 그러면서 너희들은 마음 속으로 공포와 두려움으로 몸을 떤다. 배반자가 있을 수 있다. 분명히 있다.
씨 뿌리는 사람은 좋은 씨를 뿌린다. 이 경우에는 뿌린다는 말보다는 ‘고른다’는 말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 경우에 있어서나 세례자의 경우에 있어서나 선생은 그의 제자를 골랐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들이 타락했느냐? 아니다, 이렇게 말할 것이 아니다. 제자들을 ‘씨’라고 말한 것은 표현을 잘 못한 것이다. 그러면 ‘밭’이라고 말하겠다. 제자의 수대로 밭도 그만큼 있다. 그것들은 하느님 나라의 타작마당, 하느님의 재산을 만들기 위하여 주인이 선택한 밭들이다. 주인은 이 밭들을 가꾸어서 100 퍼센트의 소출을 내게 하려고 애를 쓴다. 온갖 정성을 모두 들인다. 참을성을 가지고, 사랑과 지혜와 피로와 끈기로, 선생은 그들의 경향과 메마름과 탐욕도 알고 있다. 그들의 고집과 약함도 안다. 그러나 그는 바라고 여전히 또 바란다. 그리고 그들은 완전으로 인도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의 바람을 기도와 고행으로 강화한다.
그러나 밭들은 무방비 상태이다. 밭은 두꺼운 담을 빙 둘러쳐서 주인만이 차지하고 그만이 들어갈 수 있는 정원이 아니다. 밭들은 세상 한가운데에 세상 사람들 사이에 놓여진 개방된 곳이다. 모든 사람이 가까이 갈 수 있고, 모든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아무나 아무것이나. 오! 나쁜 씨로는 가라지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가라지는 세속의 정신의 뼈저린 경솔의 상징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원수가 뿌린 다른 모든 씨에서 싹이 돋아난다. 쐐기풀이 있고, 개밀이 있고, 새삼이 있고, 메싹이 있고, 끝으로 독당근과 독초들이 있다. 왜? 왜? 이것들은 무엇이냐?
쐐기풀은 많은 독으로 상처를 입히고 몹시 불쾌하게 하는 콕콕 찌르는 길들일 수 없는 정신이다. 개밀은 주인을 몹시 피로하게  만들고, 귀찮게 굴고 자양분을 흡수하는 것밖에 모르는 기생식물로서, 주인의 일을 이용하고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니, 개밀로 인해서 요구되는 보살핌으로 인하여 주인이 방해를 받지 않으면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더 큰 이익을 얻어낼 것이다. 메싹은 다른 초목을 이용해야만 땅에서 올라올 수 있는 기력이 없는 풀이다. 새삼은 그렇지 않아도 고생스러운 주인의 길에 고통을 더해 주고 선생을 따라가는 제자들에게도 고통이 된다. 새삼은 달라붙고, 박히고, 찢고, 할퀴고 의혹과 고통을 가져다 준다. 독초들은 제자들 중에 있는 죄인들, 즉 독당근과 다른 독초들과 같이 배신하여 생명을 끊기에 이르는 사람들이다. 너희들은 희고 붉고 청자색의 작은 알이 되는 작은 꽃들을 가진 이 독당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본 적이 있느냐? 가운데 금빛 작은 중심이 있는 희거나 약간 분홍색을 띤 별모양으로 생긴 저 꽃부리가, 새들과 아이들이 몹시 좋아하는 다른 장과(漿果)와 아주 비슷한 저 여러 가지 빛깔의 산호 같은 것들이 익으면 죽음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누가 말하겠느냐?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순진한 사람들이 달려든다. 그들은 그것들이 자기들처럼 좋은 것으로 믿는다. … 그래서 따먹고 그로 인해 죽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기들처럼 착하다고 생각한다! 오! 이것은 정말 선생을 높이 올리고 선생을 배반하는 사람은 단죄하는 기막힌 진리이다! 아니? 착함이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지 못하는가? 착함이 악의를 품은 사람을 해가 없게 만들 수 없는가? 그렇게 못한다. 타락해서 원수의 먹이가 된 사람은 고상한 모든 것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되기 때문에 악의를 품은 사람을 해가 없는 사람이 되게 할 수는 없다. 고상한 모든 것이 그가 보기에는 모습이 변한다. 착함은 짓밟아도 괜찮고 그의 악의를 돋우는 약함이 된다. 마치 맹수의 경우에 목을 물어 죽이고자 하는 의지가 피냄새로 돋워지는 것과 같다. 그런데 선생까지도 항상 순진한 사람이다. … 그래서 배반자가 그를 독살하도록 내버려둔다. 선생은 사람이 무죄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생의 밭인 제자들에게로 원수들이 온다. 원수는 참 많다. 그런데 으뜸은 사탄이다. 다른 원수들은 사탄의 종들, 즉 사람과 격정과 세속과 육신이다. 저기 제자가 있다. 그 제자가 선생님 아주 가까이에 있지 않고, 선생과 세속 사이에서 불안정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원수들이 그에게 더 쉽게 다다른다. 그는 자기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에게 온전히 속해 있기 위하여 세속과 육신과 격정과 마귀라는 것과 헤어질 줄 모르고 헤어지기를 원치도 않는다. 이것들이 그에게 세속, 육신, 격정, 마귀라는 그놈들의 씨를 뿌린다. 황금과 권력과 여자와 교만과 세상 사람들에게 나쁘게 평가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실리주의 따위 씨를. ‘유력자들이 가장 힘있다. 자 그들을 친구를 삼게 그들을 섬기겠다.’ 그래서 저 보잘 것 없는 것들 때문에 범죄자가 되고 영벌을 받게 된다.
‘이 사람이 나를 죽일 것이다.’ 하는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제자의 결점을 잘 알고 있는 선생이 자기를 따라다니는 제자들 중에서 왜 그를 쫓아내지 않는가? 이것이 너희들이 내게 하는 질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무익하기 때문이다.그렇게 하더라도 그를 원수로 가지게 되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고, 발각되었다거나 쫓겨났다거나 하는 데에서 오는 격노와 고통으로 인하여 이중으로, 그리고 더 악착스러운 원수가 되는 것을 막지도 못할 것이다. 고통스럽다, 그렇다, 이것은 나쁜 제자가 때로는 자기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귀가 하는 일은 하도 치밀해서 제자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마귀가 되면서도 그가 그런 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지 못한다. 격노, 그렇다. 마귀와 그 추종자들의 일을 모르고 있지 않는 터에 그러한 사람으로 알려진 데 대한격노이다. 마귀의 추종자들이란 성인의 착함에 그들이 비교하는 그들의 악의 때문에 그들에게 모욕을 주는 성인을 세상에서 없애기 위하여 약한 사람을 그의 약함을 가지고 유혹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래서 성인은 기도를 하고 자신을 하느님께 맡긴다. ‘사람들이 행하도록 허락하신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다만 이 유보조건을 덧붙인다. ‘그것이 당신의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이라는 이 유보조건을. 성인은 가라지가 그의 수확물에서 나쁜 가라지가 분리되는 시간이 오리라는 것을 안다. 누가 분리하겠는가? 당신의 사랑의 의지가 승리하는 데 유익한 것 이상의 것이 이루어지게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느님이 친히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선생님이 그것이 항상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의 일이라고 인정하시면 … 그 때문에 그 제자의 책임이 적어질 것 같은데요.” 하고 마태오가 말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라. 악이 있지만 선도 있다. 더불어 자유도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의 의지가 승리하는 데 유익한 것 이상의 것이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면 만일 하느님께서 그 잘못을 허락하시면 그 잘못이 유익하고 하느님의 뜻이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되겠군요.” 하고 가리옷 사람이 덧붙인다.
“그러니까 너는 마태오와 같이 이것이 제자의 죄를 정당화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로구나. 하느님께서는 사납지 않은 사자와 독이 없는 뱀을 창조하셨다. 그런데 지금은 사자는 사납고 뱀은 독이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이유 때문에 그놈들을 사람과 갈라놓으셨다. 이것을 묵상하고 그것을 적용하여라. 들어가자. 해가 벌써 뜨겁다. 소나기가 시작되려는 것처럼 너무 뜨겁다. 그런데 너희들은 밤을 뜬 눈으로 새웠으니 피곤하다.”
엘리야의 어머니가 말한다. “집에는 옥상이 크고 시원한 방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서 쉬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바깥 층계로 해서 올라간다. 그러나 제자들만이 쉬려고 자리에 눕는다. 예수께서는 매우 키가 큰 떡갈나무로 한 구석에 그늘이 진 옥상으로 나오셔서 생각에 잠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