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공기가 보통 때보다 한층 더 선명한 찬란한 아침나절이다. 먼 곳이 더 가까워 보이는 것 같고 아주 세밀한 것까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돋보기를 통해 물건들을 보는 느낌이다. 군중은 선생님의 말을 들을 채비를 하고 있다. 자연은 한창 무르익은 봄의 호사스러운 옷을 입어 나날이 더 아름다워진다. 팔레스티나에서는 봄이 한창 무르익는 때가 정확히 3월과 4월 사이인 것 같다. 그 때가 지나면 밀이 여물고 나뭇잎들이 벌써 무성하게 퍼지고 해서 벌써 여름 모습을 띠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오직 한 송이 꽃일 뿐이다. 꽃이 피기에는 가장 적당치 않은 곳에까지 꽃이 뒤덮인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아직 나긋나긋한 밀이 물결치는 것 같은 들판이 보이는데, 수염 속에서 밀알을 여물게 하고 있는 이삭 꼭대기에 바람이 지나가면서 겨우 엷은 황금색을 띠기 시작한 청록색의 물결을 일으킨다. 가벼운 바람에 물결치고 있는 밀밭 위에는 과일나무들이 꽃으로 뒤덮여 우뚝 서 있다. 어마어마하게 큰 분바르는 분첩 같기도 하고, 또는 희거나 아주 엷은 분홍색 또는 짙은 분홍색, 또는 아주 새빨간 사(絲)를 뭉쳐 놓은 것 같기도 하다. 보속을 하는 고행자와 같은 옷을 입고 명상에 잠긴 것 같은 올리브나무는 기도를 드리는데, 그것들의 기도는 눈 같은 작은 흰 꽃으로 변하지만, 아직은 그렇게 확실하지 않다.
헤르몬산의 꼭대기는 분홍빛 도는 설화석고(雪花石膏) 같은데 햇빛에 반짝이고 거기에서 금강석 실 두 줄기가 내려오고 있다. 여기서 보면 그 실들은 햇빛을 받아 마치 환상적인 섬광을 내다가 푸른 숲 속으로 들어가 사라진다. 그러다가 계곡에서야 다시 보게 되는데, 거기에서는 그것들이 물줄기를 만들어, 틀림없이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메론 호수 쪽으로 흘러간다. 그러다가 메론 호수에서 요르단강의 아름다운 물과 함께 나와서 그 다음에는 다시 엷은 사파이어 빛깔인 갈릴래아 바다로 들어간다. 갈릴래아 바다는 태양이 보석과 불꽃의 역할을 하는 찬란한 광채의 반짝임이라고나 하겠다. 기묘한 정원들과 들판에 둘러싸인 저 고요하고 빛나는 거울 위를 차례로 지나가는 돛단배들은 하늘에 있는 다른 바다를 누비고 다니는 가벼운 구름의 인도를 받는 것 같다.
정말이지 이 봄날, 이 아침 시간에 만물이 웃음을 짓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오고 또 몰려온다. 사방에서 올라오는데, 노인들도 있고, 건강한 사람들과 병자들도 있고 아기들도 있고, 그들의 생활을 하느님의 말씀의 축복으로 시작하기를 원하는 젊은 부부들도 있고 거지들도 있고 넉넉한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사도들을 불러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헌금을 하는데, 어떻게나 숨어서 그 일을 하는지 꼭 고백을 하는 것 같다. 토마는 그들의 배낭 중의 하나를 가지고 와서 그 돈의 보물을 닭의 모이나 되는 듯이 침착하게 배낭 속에 쏟아 넣는다. 그리고는 전부를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위 곁으로 와서 기뻐서 웃으며 말한다. “선생님, 기뻐하십시오. 오늘은 모든 사람에게 줄 수 있을 만큼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그리고 슬픈 사람들이 즉시 기뻐하게 즉시 시작하자. 너와 네 동료들은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내서 앞으로 데려오너라.”
이 일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다. 그것은 이러이러한 사정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토마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바위에 올라가서 그 큰 목소리로 “육신에 고통을 받는 분들은 모두 내 오른쪽 그늘이 있는 저리로 가시오.” 하고 외쳐서 효율적인 조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별나게 크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가리옷 사람도 토마를 본받아 자기도 외친다. “동냥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리 내 둘레로 오시오. 그리고 선생님의 눈은 사람들의 마음 속을 읽으시니까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단단히 조심하시오.”
군중은 웅성거리면서 병자들과 가난한 사람들과 그저 가르침만 기다리는 사람들, 이렇게 세 집단으로 나누인다. 그러나 이 마지막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두 사람, 그 다음에는 세 사람이 건강도 돈도 아닌, 그러나 그런 것보다 더 필요한 어떤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여자 한 사람과 남자 두 사람이다. 그들은 제자들을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하면서 감히 말을 하지 못한다. 열성당원 시몬이 근엄한 태도로 지나간다. 그리고 베드로는 바삐 돌아다니면서 장난꾸러기 여남은에게 연설을 하며 끝까지 조용히 있으면 올리브를 주마고 약속하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동안 시끄럽게 굴면 뺨을 때리겠다고 한다. 나이들고 근엄한 바르톨로메오가 지나가고, 다음에는 마태오와 필립보가 빽빽한 군중 사이를 뚫고 나오기가 어려웠을 불구자를 안고 온다. 그 다음에는 주님의 사촌들이 눈이 거의 먼 거지와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불쌍한 여인을 붙잡고 오는데, 여인은 울면서 야고보에게 그의 모든 불행을 이야기한다. 다음에는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틀림없이 병이 들었을 가엾은 어린 소녀를 어머니에게서 받아 안고 오는데, 어머니는 몹시 걱정이 되어 군중이 딸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고 그를 따라온다. 마지막으로 떨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안드레아와 요한이 지나간다. 떨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이라고 한 것은 요한이 거룩한 어린이와 같은 조용한 성질로 인하여 모든 동료와 똑같이 어울리지만, 안드레아는 몹시 수줍어서 고기잡이와 세례자에 대한 믿음으로 오랜 동료와 같이 있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요한 산길이 엇갈리는 곳에 있으면서 군중을 지도하여 그들의 자리로 가게 하였었다. 그러나 이제는 돌투성이의 산길에 다른 순례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두 제자는 그들이 받은 헌금을 가지고 선생님께 가려고 합친다.
예수께서는 벌써 병자들에게로 몸을 구부리고 계신데, 기적이 일어날 때마다 기쁨의 함성을 지른다.
몹시 고민하는 듯한 여인이 안드레아와 말을 하면서 웃고 있는 요한의 옷을 용기를 내서 끈다. 요한은 몸을 구부리고 “아주머니 왜 그러십니까?” 하고 묻는다.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
“병이 있습니까? 가난하지는 않으신 것 같은데 …”
“저는 병자가 아니고 가난하지도 않아요. 그렇지만 저는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 열이 없는 병이 있고 가난하지 않은 불행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 불행은 … 제 불행은 …” 그러면서 여인은 운다.
“안드레아, 알겠지. 이 여자는 슬픔이 있어서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싶은 거야, 어떻게 하지?”
안드레아는 여인을 보면서 말한다. “틀림없이 알리기가 괴로운 일일 거야 ….” 여인은 그렇다는 표로 머리를 끄덕거린다. 안드레아가 다시 말한다. “울지 마세요. … 요한, 이 여자를 우리 천막으로 데리고 가게. 선생님을 그리로 모셔갈 테니까.”
그러자 요한은 빙그레 웃으면서 지나가게 비켜 달라고 청하고, 그 동안 안드레아는 예수께로 가려고 반대 방향으로 간다. 그러나 고민하는 두 남자가 이들의 거동을 살피다가, 그 중 한 사람은 요한을 붙들고 또 한 사람은 안드레아를 붙잡는다. 그래서 조금 후에는 그 두 남자가 요한과 여인과 함께 천막의 벽노릇을 하는 나뭇잎이 우거지 뒤에 가 있게 되었다.
안드레아는 예수께서 불구자를 고치시는 순간에 그리로 간다. 불구자는 목발을 전리품 모양으로 쳐들고 춤추는 사람같이 재빨리 움직이면서 축복의 말을 소리높이 외친다. 안드레아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한다. “선생님, 우리 천막 뒤에 우는 사람 셋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드러낼 수 없는 마음의 고통입니다 ….”
“알았다. 나는 아직 이 계집 아이와 이 여자를 돌봐야 한다. 그런 다음 가마. 그들에게 가서 믿음을 가지라고 일러라.”
안드레아는 간다. 그 동안 엄마가 다시 안은 계집 아이를 내려다보시며 “이름이 뭐냐?” 하고 물으신다.
“마리아.”
“그럼, 내 이름은 뭐냐?”
“예수” 하고 계집아이가 대답한다.
“그럼 내가 누구냐?”
“몸과 영혼에 좋은 일을 하려고 온 주님의 메시아.”
“누가 그 말을 했니?”
“나를 살리려고 선생님에게 바라는 엄마 아빠가.”
“살아라, 그리고 착하게 굴어라.”
계집 아이는 척추를 앓는 것 같았다. 나이가 일곱 살도 더 되었는데도 손밖에 움직이지 못하고, 겨드랑이에서 엉덩이 위까지 아주 단단하고 두꺼운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붕대를 보이려고 작은 옷을 벌렸기 때문에 그것을 볼 수 있다. 계집 아이는 몇 분 동안 꼼짝 안하고 있다가 펄쩍 뛰며 엄마의 품에서 땅으로 미끄러져 내려와, 무슨 병을 앓는지 알 수 없는 여자 병자를 고쳐 주고 계신 예수께로 달려간다.
병자들은 모두가 청이 들어졌다. 그래서 “하느님의 영광이요, 우리의 영광이신 다윗의 후손.” 을 찬양하는 수많은 군중 속에서 제일 크게 외치는 것이 이 사람들이다.
예수께서는 천막쪽으로 가신다. 가리옷의 유다가 외친다. “선생님! 이 사람들은요?”
예수께서는 돌아다보시며 말씀하신다. “거기서 기다리라고 하여라. 그 사람들도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는 나뭇잎이 우거진 뒤로, 안드레아와 요한과 더불어 고민을 하는 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빨리 가신다.
“우선 여인을 보자. 저 수풀 속으로 나를 따라오시오. 겁내지 말고 말하시오.”
“주님, 제 남편이 매춘부 때문에 저를 버렸습니다. 저는 아이가 다섯인데 막내는 두 살입니다. … 제 고통은 큽니다. … 그리고 저는 제 자식들을 생각합니다. … 남편이 아이들을 원하려는지 제게 남겨두려는지 모릅니다. 사내 아이들은, 적어도 맏이는 원하겠지요. … 그렇지만 그 애를 세상에 낳아준 제가 그 애를 보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돼야 합니까? 그리고 그 애들이 아버지와 저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저희들 중 한 사람은 나쁘게 생각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애들이 아버지를 비판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
“울지 마시오. 나는 삶과 죽음의 주재자요. 당신 남편은 그 여자와 결혼하지 않을 것입니다. 평안히 가시오, 그리고 항상 착하게 사시오.”
“그렇지만 … 주님이 그를 죽게 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오! 주님, 저는 남편을 사랑합니다!”
예수께서는 미소를 지으신다.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제 할 일을 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하느님보다 높지 않다는 것을 아시오. 당신의 읍내로 돌아가면 악의있는 여자가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당신 남편이 무엇을 할 참이었는지를 깨달아서 당신을 새로워진 사랑으로 사랑하게 될 만큼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인은 그의 머리에 얹으신 예수의 손에 입맞춤을 하고 떠나간다.
두 남자 중의 한 사람이 온다. “주님, 저는 딸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 애가 친구들과 같이 티베리아에 갔었는데, 독약을 먹은 것과도 같습니다. 그 애는 취한 사람처럼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그 애는 그리이스인과 같이 가려고 했습니다. … 그러다가 … 아니 그 애가 왜 제게 태어났습니까? 제 어미는 홧병이 났습니다. 어쩌면 그 병으로 죽을지도 모릅니다. … 저는 … 지난 겨울에 들은 선생님의 말씀 때문에만 그 애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씀드려 제 마음은 벌써 그 애를 저주했습니다.”
“안 됩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이미 저지른 끈덕진 죄만 저주하십니다. 그런데 내게서 무엇을 바라십니까?”
“주님께서 그 애를 뉘우치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당신의 딸을 알지 못하고, 당신의 딸이 분명히 내게로 오지도 않는걸요.”
“그렇지만 주님은 멀리서도 마음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누가 저를 주님께로 보냈는지 아십니까? 쿠자의 요안나입니다. 요안나가 그 고약한 그리이스 사람을 아는지 물어보려고 요안나의 저택에 갔을 때 요안나는 예루살렘으로 떠나려는 참이었습니다. 저는 요안나가 티베리아에 살고 있으면서도 착하기 때문에 그 그리이스 사람을 알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쿠자는 이방인들과 교제가 있기 때문에 … 요안나는 그 남자를 모릅니다. 그러나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가서 만나보세요. 예수님은 내 영을 아주 먼 곳에서 도로 불러오셨고, 그렇게 불러오시는 것으로 내 폐병을 고쳐 주셨어요. 예수님이 따님의 마음도 고쳐 주실 것입니다. 나도 기도하겠으니, 선생은 믿음을 가지세요.’ 하고. 선생님이 보시다시피 저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선생님,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당신의 딸은 오늘 저녁이 되면 어머니 무릎에 엎드려 울면서 용서를 빌 것입니다. 당신도 어머니와 같이 친절을 베풀어 용서하시오. 과거는 죽었습니다.”
“그러겠습니다, 선생님. 하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찬미받으십시오.”
그는 떠나려고 돌아선다. … 그러다가 다시 돌아와서 말한다. “선생님, 용서하십시오. … 하지만 저는 겁이 납니다. … 음란은 아주 못된 마귀입니다! 선생님이 옷의 섬유를 한 가닥 주십시오. 그걸 딸의 베개 밑에 넣어 주겠습니다. 그 애가 자는 동안에 마귀가 유혹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머리를 저으신다. …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이 더 안심하도록 그러지요. 그러나 하느님께서 ‘내가 이렇게 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시면 다른 것이 필요없이 마귀가 가버린다는 것을 믿으시오. 나는 당신이 이것을 내 기념품으로 간직하길 바랍니다.” 하고 말씀하셔서 그를 만족시켜 주시고, 당신 옷의 술에서 작은 뭉치 하나를 떼어 주신다.
셋째 사람이 나타난다. “선생님, 제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줄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은 돈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형제들끼리 먹을 것이 없지 않으니까 그것은 그저 조그마한 불청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맏이여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제 두 아우가 저더러 돈을 없앴다고 비난하면서 도둑질했다고 저를 걸어 소송을 하겠다고 합니다. 제 마음을 아시지요. 저는 동전 한 푼도 훔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돈을 작은 궤 안에 쇠로 만든 작은 상자에 넣어서 보관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저희들은 작은 궤를 열어 보았는데 쇠로 만든 상자는 거기에 없었습니다. 아우들은 ‘오늘밤 우리가 자는 동안에 형이 금궤를 가져갔어.’하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희들 사이에 평화와 존경을 회복하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를 똑바로 들여다보시며 빙그레 웃으신다.
“선생님, 왜 웃으십니까?”
“당신 아버지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장난감을 누가 가져가지 못하게 감추는 어린아이와 같은 잘못이지요.”
“그러나 제 아버지는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아버지는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나도 그것은 압니다. 그러나 그 분은 연세가 매우 높았지요. … 그것은 노인들의 병입니다. … 아버지는 당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돈을 안전한 곳에 두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나친 애정으로 당신들의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그러나 철궤는 지하창고 계단 밑에 파묻혀 있습니다. 이 말을 하는 것은 내가 그 일을 안다는 것을 당신이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동안 아주 우연히 당신의 막내 아우가 화가 나서 땅을 구르다가 땅이 흔들리게 해서 아우들이 금궤를 찾아낸 것입니다. 아우들은 부끄러워하며 당신을 비난한 것을 후회합니다.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시오, 그리고 아우들에게 친절하게 구시오. 존경을 어겼다고 그들을 나무라지 마시오.”
“주님, 안 그러겠습니다. 저는 집에도 가지 않고 남아서 주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집에는 내일이나 가겠습니다.”
“그런데 아우들이 당신 돈을 빼앗아가면 어쩌려고요?”
“선생님은 탐욕을 가지지 말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저는 탐욕을 가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저희들 사이에 평화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 뿐 아니라 … 저는 그 철궤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몰랐었으니, 부정확한 고백을 할까 봐 걱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 돈을 잃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아우들이 그 돈을 제게 주기를 거절하면, 전에 살아온 대로 지금도 계속 살겠습니다. 아우들이 저를 도둑이라고 부르지 않기만 하면 제게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길에 매우 많이 나아갔습니다. 그대로 계속하시오. 그리고 평화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사람도 만족해서 간다. 예수께서는 군중에게로, 가난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셔서 좋다고 판단하시는 대로 돈을 나누어 주신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만족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말씀을 하실 수가 있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내가 여러분에게 주님의 길을 설명하는 것은 여러분이 그 길을 가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과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동시에 갈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쪽 길로 가면 다른 쪽 길을 버려야 하니까요. 두 길이 가까이 있다 하더라고 여러분은 한 발은 이 길로 한 발은 저 길로 계속 걸어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결국은 피로하고야 말 것이고, 여러분이 내기를 했더라도 결국은 실수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길과 사탄의 길 사이에는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고, 그 거리는 끊임없이 더 멀어지기만 합니다. 마치 이 두 오솔길이 여기서 만나지만, 계곡으로 내려가는 데 따라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것과 꼭 같습니다. 하나는 가파르나움으로 가고 또 하나는 프톨레마이스로 가는 길이니까요.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인생은 과거와 미래 사이로, 악과 선 사이로 흘러갑니다. 한 가운데에는 의지와 자유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양극단에는 한 쪽에는 하느님과 그 분의 하늘이 있고 또 한 쪽에는 사탄과 그의 지옥이 있습니다. 사람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그를 강제하지 않습니다. 아랫길로 내려가는 것을 변명하느라고 ‘그렇지만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는 걸요.’ 하고 말하지 말것입니다. 하느님께서도 당신 사랑으로 우리를 유혹하시는데, 이 유혹은 매우 강합니다. 말로도 유혹하시는데, 그 말은 매우 거룩합니다 약속으로도 유혹하시는데, 그 약속은 대단히 매력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왜 두 쪽 중에서 한 쪽의 유혹에만, 그것도 들을 만한 가치가 더 없는 쪽의 유혹에만 끌려 가는 것입니까? 하느님의 말씀과 약속과 사랑이 사탄의 독을 중화시키기에 충분하지 못합니까?
그것이 여러분에게 좋지 않게 되지 않을까 조심하시오. 어떤 사람이 육체적으로 매우 건강해도 감염은 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감염을 쉽게 극복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벌써 병이 들었고 따라서 몸이 약해졌으면 새로운 감염으로 거의 확실히 죽게 됩니다. 또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첫 번보다도 더 병이 중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가 피 안에 전염성 병원균을 완전히 파괴할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상등 부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굳세다 하더라도 유혹을 면하지는 못하지만 악이 그의 안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것을 믿으시오. 어떤 사람이 내게 ‘나는 이 사람 저 사람과 교제를 하고, 이 책과 저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과 저 사람을 선으로 인도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그들의 정신과 마음에 있던 악과 책에 있던 악이 내 안에 들어왔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나는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그것은 당신이 침투에 유리한 지반(地盤)을 벌써 만들어 놓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도덕적 × 정신적 기력이 없는 약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원수들에게서까지도 선을 끌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잘못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그 잘못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지적인 사람은 그가 듣는 아무 학설에나 매혹되지 않습니다. 어떤 학설에 푹 젖어 있는 사람은 그의 안에 다른 학설에 자리를 마련해 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다른 가르침에 대해 확신을 가진 사람들을 참 교리를 따르라고 설득하는 데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되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생각이 변한다고 말하면 나는 당신이 빈 자리투성이이고, 당신의 정신적인 힘에 사방에 균열이 생겼고, 당신의 생각을 붙잡아 두는 둑에 수없이 많은 구멍이 나서 그리로 건강에 좋은 물이 빠져나가고 썩은 물이 들어오는데, 당신은 하도 어리석고 무기력해서 그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거기에 아무런 구제책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신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고.
그러므로 여러분은 관능성과 세상의 지식과 마귀의 유혹에 저항하고 저항하고 또 저항하면서 두 갈래 길 중에서 좋은 길을 택해서 그리로 갈 줄을 아시오. 혼합된 믿음, 타협, 서로 반대되는 계약 따위는 세상 사람들에게나 남겨놓으시오. 사람들이 성실하면 세상 사람들 사이에도 그런 것들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느님의 사람들인 여러분은 그런 것을 가지지 마시오. 여러분은 하느님과도 맘몬과도 타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안에 그것들을 가지지 마시오. 그것들은 값어치가 없을 것이니까요. 착한 것과 착하지 않은 것이 섞인 여러분의 행동은 아무 가치도 없을 것입니다. 완전히 좋은 행동들이 그렇지 않은 행동들로 인하여 무효하게 될 것입니다. 나쁜 행동들은 여러분을 직접 원수의 손에 떨어지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행하지 마시오. 그러지 말고 성실하게 섬기시오.
아무도 생각이 다른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한 편은 사랑하고 다른 편은 미워할 것이고, 한 편은 미워하고 다른 편은 사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똑같이 하느님과 맘몬의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정신은 세상의 정신과 타협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는 올라가고 하나는 내려갑니다. 하나는 거룩하게 하고 또 하나는 타락시킵니다. 만일 여러분이 타락했으면 어떻게 깨끗하게 행동할 수 있습니까? 타락한 사람들 안에서는 관능성이 흥분하고, 관능성에 따라서 다른 욕망들도 흥분합니다. 여러분은 하와가 어떻게 타락했는지, 그리고 하와를 통해서 아담이 어떻게 타락했는지를 벌써 알고 있습니다.
사탄이 여자의 눈에 입맞춤을 하고 지독히 홀려서 그때까지는 무엇이든지 깨끗하게 보이던 것이 여자에게는 더러운 모습으로 비치게 되었고 이상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탄은 귀에 입맞춤을 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지식, 즉 그의 지식의 말이 들리게 했습니다. 하와의 생각까지도 필요치 않은 것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런 다음 사탄은 악에 눈이 뜬 눈과 생각에 그것들이 처음에는 보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했던 것을 보여 주었고, 이렇게 해서 하와에게서는 모든 것이 눈을 뜨고 타락했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에게 가서 그의 비밀을 털어놓고 보기에 대단히 아름다운, 그 때까지 금지되었던 새 과일을 맛보라고 아담을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하와는 아담에게 입을 맞추고 벌써 사탄의 혼미가 들어 있는 입과 눈으로 아담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아담에게로 타락이 스며들어가 그의 눈은 금지된 과일을 보고 탐했습니다. 아담은 여자 동무와 같이 과일을 깨물었고, 그래서 까마득한 높이에서 진흙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어떤 사람이 타락하면, 진정한 의미의 성인이 아닌 다른 사람을 타락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시선을 조심하시오. 눈의 시선과 정신의 시선을. 시선이 타락하면 나머지를 타락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눈은 몸의 빛이고, 여러분의 생각은 마음의 빛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의 눈이 깨끗하지 않으면 여러분 안의 모든 것이 흐려질 것이고, 유혹의 망상이 여러분 안에 부정한 상상들을 만들어놓을 것입니다. 기관이 생각에 복종하는 결과로 타락한 생각이 관능을 타락시키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깨끗한 사람은 모든 것이 깨끗합니다. 깨끗한 생각은 깨끗한 시선을 가지게 하고, 하느님의 빛은 관능이 방해를 하지 않는 곳에 내려와서 주인 노릇을 합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나쁜 의지로 눈이 흐린 것을 보도록 습관을 들여 놓으면 여러분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어두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거룩한 것들을 보아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밤에는 어두움 밖에 없을 것이고, 여러분은 어두움의 일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지식인 여러분, 여러분 자신에 대하여 여러분을 보호하시오. 모든 유혹을 주의깊게 스스로 경계하시오. 유혹을 당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투기자(鬪技者)는 투쟁으로 승리를 준비합니다. 그러나 훈련을 하지 않고 조심을 하지 않은 탓으로 지는 것은 악입니다. 모든 것이 유혹에 쓰인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금지는 신경질나게 한다는 것도 압니다. 싸움을 하면 기진맥진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자, 이런 것들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마련해 주는지를 생각하시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지 한 시간 동안의 쾌락을 위해서 영원한 평화를 잃고자 하겠습니까? 육체와 황금과 생각의 쾌락이 여러분에게 남겨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들을 물리침으로써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입니다. 나는 죄인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니까요. 그러면 정말 내게 말해 보시오. 관능이나 교만이나 탐욕을 만족시킨 다음에 여러분은 더 싱싱하고 더 만족하고 마음이 더 편안하게 느껴졌습니까? 만족에 뒤따르는 시간은 언제나 곰곰히 생각하는 시간인데, 그 때 여러분은 사실상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느꼈습니까? 나는 이 관능성의 빵을 맛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오. 쇠퇴와 불만과 불안과 구역질과 공포와 혼란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한 시간의 쾌락이 여러분에게 마련해 준 국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제발 부탁입니다. ‘이런 일은 결코하지 마시오.’ 하고 말할 때에 나는 또 여러분에게 이렇게도 말합니다. 실수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냉혹하게 굴지 마시오.’ 하고. 여러분은 모두가 같은 육체로 되어 있고 같은 영혼을 가진 형제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시오. 어떤 사람을 죄짓도록 이끌어가는 원인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시오. 죄인들을 자비롭게 대하고 친절하게 그들을 일으키고, 그들이 걸어간 길에는 육체와 생각과 정신에 대한 위험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그들을 하느님께로 데려오시오. 이렇게 하시오.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큰 상을 받을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착한 사람들에게 자비로우시고 백배로 갚아 주실 줄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예수께서 내게 말씀하신다.
“보고서 써라.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또 특히 자기들이 이 죄녀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자비의 복음이다. 나는 이들에게 이 죄녀의 구속(救贖)을 따르라고 권한다.”
예수께서는 바위에 올라서서 수많은 군중에게 말씀하신다. 이 곳은 아고산지대(亞高山地帶)이다. 계곡 둘 사이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야산이다. 이 야산의 꼭대기는 멍에, 아니 그보다도 낙타의 육봉(肉峰)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꼭대기에서 몇 미터 안 내려와서 자연적인 원형 경기장 모습을 하고 있어서 대단히 잘 지어진 음악당에서와 같이 목소리가 아주 분명하게 울려 퍼진다.
야산은 온통 꽃으로 뒤덮여 있다. 계절은 늦봄이나 초여름인 것 같다. 평야의 농작물은 황금빛을 띠기 시작하였고, 오래지 않아 베게 되어 있다. 북쪽에는 높은 산의 만년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바로 그 아래 동쪽에는 갈릴래아의 바닥 깨진 거울처럼 나타나는데, 수없이 많은 그 파편들은 햇빛에 불이 붙은 사파이어들과 같다. 바다는 그 파랗고 금빛나는 반짝임으로 눈을 부시게 하는데, 그 물 위에는 대단히 맑은 하늘을 건너지르는 솜 같은 구름 몇 점과 돛 몇 폭의 움직이는 그림자만이 비친다. 산의 풀에는 줄기 사이로 여기저기에 금강석같이 반짝이는 이슬이 몇 방울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아직 아침 이른 시간인 모양이다. 겐네사렛 호수 저쪽으로는 멀리 떨어진 평야들이 있는데, 아마 이슬이 증발하여 생기는 엷은안개 때문에 호수를 연장하는 것 같다. 그러나 초록 무늬가 섞인 오팔 빛깔을 띠고 있고, 좀 더 멀리에는 산맥이 보이는데, 그 변덕스러운 사면(斜面)은 청명한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그린 그림을 연상케 한다.
어떤 사람들은 풀이나 돌에 앉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서 있다. 사도들의 집단은 전원이 있지는 않다. 베드로와 안드레아, 요한과 야고보가 보이고, 다른 두 사람 나타나엘과 필립보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집단에 들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모르겠다. 아마 제일 나중에 온 사람인 것 같다. 사람들은 그를 시몬이라고 부른다. 수많은 군중 가운데 섞여서 내가 구별을 못하는지는 몰라도 다른 사도들은 거기에 없다.
설교는 시작된 지가 벌써 꽤 되었다. 산상 설교인 것은 알겠다. 그러나 진복 팔단은 벌써 발표되었다. 설교가 끝나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렇게 하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큰 상을 받을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착한 사람들에 대하여 자비로우시고 백 배로 갚아 주실 줄을 아시니까요.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평평한 곳으로 가는 오솔길 쪽에 있는 군중 가운데에서 큰 동요가 일어난다. 가장 예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돌아다본다. 주의가 딴 곳으로 쏠린다. 예수께서도 말씀을 중단하시고,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신다. 짙은 청색옷에 팔짱을 끼시고 야산의 동쪽 봉우리 위로 지나와서 얼굴에 스치는 첫 번째 햇살을 받으시는 예수께서는 근엄하고 아름다우시다.
“서민들 비켜요.” 하고 성난 남자 목소리가 외친다. “미녀가 지나가시는데 비켜요.” … 한 껏모양을 낸 멋쟁이 넷이 앞으로 나오는데, 그 중 한 사람은 토가(Toga: 로마인들이 입던 길고 펑퍼짐한 옷)를 입고 있은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로마인이다. 그들은 손들을 서로 어긋나게 곁에서 아직 큰 죄녀인 막달라의 마리아에게 자리를 만들어 그 위에 태우고 온다.
마리아는 매우 아름다운 입으로 웃으며 온통 땋아늘이고 컬을 한 금발인 머리를 뒤로 젖힌다. 땋아 늘이고 컬을 한 머리카락은 값진 머리핀들과 진주를 여기저기 박은 금판으로 고정시켰는데, 금판은 왕관처럼 이마 윗쪽을 죄었고, 거기에서 컬을 한 가벼운 머리춤들이 내려와 재치있는 기교로 더 커보이고 더 매력있게 된 그의 빛나는 눈을 가린다. 그런 다음 왕관형 머리장식은 귀 뒤로 가서 대단히 흰 드러난 목으로 내려진 땋아늘인 머리 속으로 사라진다. 그뿐 아니라 … 살갗이 드러난 것은 목을 훨씬 지나간다. 어깨는 견갑골(肩甲骨)까지 드러났고, 가슴은 훨씬 더 많이 드러났다. 그의 옷은 양쪽 어깨 언저리에 가는 금사슬 두 줄로 매어져 있고, 소매는 없다. 말하자면 전체가 베일로 가려져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순전히 살갗이 햇볕에 그을리는 것을 막는 데 소용되는 것이다. 옷은 대단히 얇고, 여자가 응석을 부리듯이 그의 숭배자 중의 이 사람 또는 저 사람에게로 몸을 기대곤 하므로 마치 벗은 몸으로 그들에게 몸을 던지는 것 같다. 내 생각에는 로마인이 제일 그 여자의 마음에 드는 사람인 것 같다. 그것은 미소와 눈짓이 특히 그에게로 많이 가고, 어깨에 여자의 머리를 더 자주 받기 때문이다.
“자, 여신이 만족을 얻었다.” 하고 로마인이 말한다. “로마가 새로운 비너스에게 말을 태워 주었고, 저기 네가 보고 싶어하는 아폴로가 있다. 그러니 그를 현혹시켜라. … 그렇지만 우리에게도 네 매력을 좀 남겨다오.”
마리아는 웃는다. 그리고 재빠르고 선정적인 움직임으로 땅에 뛰어내린다. 그 바람에 금으로 만든 버글이 달린 흰 샌들을 신은 그의 발과 다리의 일부분이 드러난다. 그리고 전체를 베일과 같이 곱고 대단히 흰 모직으로 만든 매우 넓은 옷이 가리고 있다. 옷은 고리가 벗겨진 금 버클이 달린 허리띠로 허리에 졸라매졌으나 대단히 낮게 바로 엉덩이 위쪽에 걸쳐 있다. 그리고 여자는 많은 야생 은방울꽃과 수선화가 있는 초록빛 고원에 요술로 피어난 육체의 꽃처럼, 부정한 꽃처럼 우뚝 선다. 그 여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아름답다. 작고 새빨간 입은 쪽 고른 흰 이 위에 부각되는 카네이션 같다. 얼굴과 몸은 빛깔로나 모양으로나 아무리 까다로운 화가나 조각가라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넓은 가슴에 균형이 잘 잡힌 둔부(臀部), 자연적으로 나긋나긋하고 가슴과 둔부에 비해 가는 허리하고, 그 여자는 로마인이 말한 것처럼 여신과 같다. 볼그레한 대리석으로 조각한 여신상 같다. 그 위에 얇은 천이 옆구리에 걸쳐졌다가 많은 주름이 지면서 앞쪽으로 드리워진다. 모든 것이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공들여 꾸몄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신다. 그러니까 그 여자는 로마인이 풀 사이에서 꺾은 은방울꽃의 어린 싹으로 살갗이 드러난 어깨와 가슴을 간지르기 때문에 웃고 몸을 약간 돌리면서 뻔뻔스럽게 예수를 마주 쳐다본다. 마리아는 거짓으로 노여워하는 체하며 베일을 젖히면서 말한다. ‘내 순진함을 존중하시오’하고. 그러니까 네 사람은 깔깔거리며 요란스럽게 웃는다.
예수께서는 계속 마리아를 뚫어지게 바라보신다. 웃음소리가 좀 가라앉자 마치 꺼져 가던 설교의 정열이 여자가 나타남으로 인하여 다시 살아나는 듯이 예수께서는 말씀을 다시 시작하시고 그 여자를 더 이상 바라다보지 않으신다. 이제는 이 뜻밖의 사건으로 동요하고 분개하는 것 같은 청중을 바라다보신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다시 말씀을 시작하신다. “나는 여러분에게 율법을 충실히 지키고 겸손하고 자비롭고, 같은 부모에게서 난 형제들 뿐 아니라, 같은 인간의 기원을 가졌기 때문에 여러분의 형제가 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했습니다. 용서하는 것이 원한보다 더 유익하고, 냉혹한 것보다 동정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습니다.그러나 이제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단죄하도록 하는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니면 단죄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엄격하면서 자기 자신들에 대하여는 엄격하지 않은 율법교사들과 바리사이파사람들처럼 하지 마시오. 그들은 외부적인 것으로 외면밖에는 더럽힐 수 없는 것은 부정하다고 부르면서 가슴 속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마음의 부정을 받아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부정한 사람들과 함께 계시지 않습니다. 부정은 하느님의 소유물인 것, 즉 영혼들을, 특히 이 세상에 퍼져 있는 천사들인 어린이들의 영혼을 타락시키기 때문입니다. 악마적인 맹수와 같은 잔인성으로 이 천사들의 날개를 뽑고, 저 하늘의 꽃들에게 물질의 맛을 알게 해서 진흙탕 속에 집어넣는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불행해요! … 그런 사람들은 이런 죄를 짓게 되는 것보다 차라리 벼락을 맞아 타죽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부자들과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 당신들은 불행합니다! 한가함과 돈이 침대와 베개 노릇을 하는 가장 큰 부정이 바로 당신들 가운데에서 부글부글 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들은 실컷 먹었습니다. 욕망의 음식이 당신들 목에까지 올라와서 목을 조릅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배고플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아무것도 배부르게 할 수 없고 달랠 수 없는 무서운 굶주림일 것입니다. 지금은 당신들이 부자입니다. 당신들의 재산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선행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당신들은 그 재산을 가지고 당신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악이 되는 것을 만듭니다. 당신들은 어느 날 견딜 수 없는 가난을 맛보게 될 것인데, 그 날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당신들이 웃고 있지요. 당신들을 승리자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당신들의 눈물이 지옥의 연못을 채울 것이고 또 끝없이 흐를 것입니다.
간음이 어디에 숨어 있습니까? 처녀들의 타락이 어디에 숨어 있습니까? 부부로서의 잠자리이외에 방탕의 잠자리를 두세 개 가지고 거기에다 돈을 뿌리고 육체의 기운을 낭비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의 가족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느님께서 주신 건강한 육체이지, 더러운 짐승보다도 못하게 만드는 더러운 방탕으로 지쳐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닌 건강한 육체의 기운을 말입니다. 여러분은 ‘간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음란한 욕망을 가지고 여자를 보는 남자나 음란한 욕망을 가지고 어떤 남자에게로 가는 여자는 그것만으로도 벌써 마음으로 간음을 했다고 나는 말합니다. 어떤 이유도 간음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어떤 이유도. 남편에게 버림을 받고 소박을 맞아도 소박맞은 여자에 대한 동정도. 여러분의 영혼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그 영혼이 다른 영혼과 정절의 계약을 했으면 거짓말을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한 영혼들은 그것을 가지고 죄를 지은 그 아름다운 육체와 더불어 꺼지지 않는 불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차라리 육체의 팔다리를 자르더라도 지옥에 떨어짐으로 육체를 영원히 죽이지는 마시오. 악습이 우글거리는 악의 소굴인 부자들인 당신들, 다시 인간이 되시오. 하늘이 혐오감을 일으키게 되지 않도록 인간이 되시오 ….”
마리아는 처음에는 매력과 빈정거림의 시와 같은 얼굴로 들으면서 가끔 업신여기는 웃음을 터뜨리곤 하였다. 그러다가 설교가 끝날 무렵에는 성이 나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자기를 바라다보지는 않으시지만 자기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의 분노는 점점 더해진다. 그는 분개한다. 그리고 끝내 참고 견디지를 못한다. 마리아는 멸시하는 태도로 베일로 몸을 감싸고 그를 멸시하는 군중의 눈총을 받고 그의 뒤를 쫓아가는 예수의 목소리에 쫓기면서 비탈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달아나는데, 그의 옷조각이 길가에 있는 엉겅퀴와 찔레에 걸려 떨어져 나간다. 마리아는 분노와 멸시의 웃음을 웃는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또 보일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다시 시작하신다.
“여러분은 이 사건으로 인해서 분개해 있습니다. 진흙에서 멀리 떨어진 높은 곳에 있는 우리의 피난처를 사탄의 휘파람으로 휘저어 놓은 것이 이틀이나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기가 피난처가 아니니, 이것을 떠나기로 합시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을 위해서 빛이 많은 이 넓은 지평선 안에서 ‘가장 완전한 사람’의 이 법전(法典)을 끝마치고자 합니다. 여기서는 정말로 하느님께서 조물주의 위엄을 가지고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의 놀랄 만한 업적을 보면서 주인은 하느님이시지 사탄이 아니라는 것을 굳게 믿을 수가 있습니다. 마귀는 조그만 풀 한 포기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위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이 모두 햇볕을 받고 있습니다.그래서 거북하지요. 그러니까 비탈 여기저기로 흩어지시오. 그늘이 있고 시원합니다. 원하시면 식사를 하시오. 나는 같은 문제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여러분은 늦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후회하지 마시오. 여기서 여러분은 하느님과 함께 계십니다.”
군중이 외친다. “예, 예, 선생님과 함께요.” 그러면서 사람들은 동쪽 여기저기에 있는 작은 숲 속으로 가서 야산의 비탈과 나뭇가지로 벌써 너무 뜨겁게 된 해를 피하도록 한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천막을 걸으라고 말씀하신다.
“아니 … 정말 떠납니까?”
“그렇다.”
“그 여자가 왔기 때문에요, 그 여자가? …”
“그렇다, 그러나 이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말아라. 특히 열성당원에게 말하지 말아라. 라자로 때문에 매우 괴로워할 것이다. 나는 하느님의 말씀이 이교도들의 업신여김을 받게 허락할 수는 없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
“그러면 또 한 가지도 알아라.”
“선생님, 무엇 말씀입니까?”
“어떤 때는 입을 다물어야 할 필요 말이다. 나는 너를 믿는다. 너는 내게 대단히 소중하다.그러나 너는 또 충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해서 마음에 상처를 주는 비판을 하게도 된다.”
“알겠습니다. … 라자로와 시몬 때문에 그러지 말라는 말씀이지요.”
“또 다른 사람들 때문에도 그렇다.”
“오늘 또 다른 사람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또 언제나. 그래서 내 요나의 시몬의 충동적인 성격을 항상 감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 가서 시킨 대로 하여라.”
베드로는 가면서 동료들을 불러 도와 달라고 한다.
가리옷 사람은 한 구석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예수께서는 그가 듣지 못하기 때문에 세 번이나 부르신다. 마침내 몸을 돌리며 “선생님, 저를 부르셨습니까?” 하고 묻는다.
“그렇다, 너도 가서 음식을 먹고 동료들을 도와라.”
“저는 배고프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시장하지 않으시지요.”
“나도 시장하지 않다. 그러나 반대되는 동기로 그렇다. 유다야, 너는 마음이 흔들렸느냐?”
“선생님, 아닙니다. 피로합니다 ….”
“이제는 우리가 호수로 갔다가 유다로 간다. 유다야, 네 어머니에게로 가는 것이다. 내가 네게 약속했었지 ….”
유다는 기분이 나아졌다. “저만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까?”
“그야 물론이지. 유다야, 나를 많이 사랑하여라. 나는 내 사랑이 너를 모든 악에서 보호해 줄 정도로 네게 있었으면 좋겠다.”
“선생님 … 저는 사람이지 천사가 아닙니다. 저는 피로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잠이 오는 것도 죄가 됩니까?”
“네가 내 품에서 자면 그렇지 않다. 저기 저 사람들을 보아라, 저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하냐, 그리고 이 곳의 경치는 또 얼마나 좋으냐! 그러나 유다도 봄에는 매우 아름답겠지.”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다만 거기에는 산들이 여기보다 더 높아서 봄이 더 늦습니다. 그러나 꽃들은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사과밭은 화려합니다. 제 사과밭은 어머니가 돌보아 주시는 덕택으로 가장 아름다운 사과밭 축에 듭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 곳을 산책하시고 비둘기들이 낟알을 얻어 먹으려고 그 뒤로 종종걸음을 쳐서 따라가는 광경은 정말이지 마음을 가라앉히는 광경입니다.”
“그렇겠지. 내 어머니가 너무 피곤하지 않으시면 네 어머니한테 모시고 갔으면 좋겠는데. 두 분이 다 착한 분들이니까 서로 좋아하실 것이다.”
이 생각에 마음이 끌려 유다는 다시 평온해진다. 그는 입맛 없음과 피로를 잊고 기쁘게 웃으면서 동료들에게로 뛰어간다. 그는 키가 크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매듭을 푼다. 그리고 어린 아이처럼 기뻐하며 빵과 올리브를 먹는다. 예수께서는 연민의 정을 가지고 그를 바라다보신다. 그리고 사도들에게로 가신다.
“선생님, 여기 빵과 달걀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이 달걀을 빨간 옷을 입은 저 부자더러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들으니까 행복합니다, 선생님은 말씀하시느라고 기진맥진하십니다. 당신 달걀을 하나 주시오. 이것이 당신에게보다는 선생님께 더 유익할 것입니다.’ 하고.”
“아니, 베드로야!”
“선생님, 아닙니다! 선생님은 젖이 마른 젖통을 빨고 있는 아기같이 창백하시고, 산란기가 지난 다음의 물고기처럼 야위어가는 중이십니다. 저 하는 대로 가만 놔두십시오. 저는 저 자신을 나무랄 만한 거리를 가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제 달걀을 이 뜨거운 재속에 넣을 참입니다. 제가 나뭇가지들을 태운 것입니다. 이 달걀을 마시세요. 얼마나 … 며칠이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빵과 올리브와 양젖 조금밖에 먹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이 여러 주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흠! 꼭 하제(下劑)를 먹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모든 사람보다 잡숫기는 덜 잡수시면서 모든 사람을 위해 말씀하시지요. 자 달걀 받으십시오. 미지근할 때 마시세요. 몸에 이로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시키는 대로 하신다. 그리고 베드로가 빵만을 먹는 것을 보시고 물으신다. “그런데 너는? 올리브는 어쨌느냐?”
“쉬! 나중에 제게 소용이 될 것입니다. 저는 그것들을 약속했습니다.”
“누구에게?”
“어린 아이들에게요. 그렇지만 고놈들이 끝까지 조용하게 있지 않으면 올리브는 제가 먹고 고놈들에게는 씨를 줄 것입니다. 즉 찰싹 때려줄 것입니다.”
“아니, 참 잘한다!”
“어! 절대로 때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렇지만 개구장이짓 때문에 맞을 만큼 전부 때렸더라면 저는 열곱절은 더 맞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유익하긴 합니다. 제가 매를 맞았기 때문에 이만큼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에 베드로의 솔직함을 보고 웃는다.
“선생님, 오늘은 금요일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그런데 사람들이 … 사람들이 먹을 것을 제 때에 장만할 수 있을지 또는 그들의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맞아! 오늘은 금요일이야!” 하고 여럿이 말한다.
“상관없다.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해주기는 하자.”
예수께서는 일어나셔서 수풀들 사이에 흩어져 있는 군중 한 가운데 새 자리로 가신다. “우선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일깨우겠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만, 제 때에 집에 돌아가지 못할까 봐 염려하는 사람이나 하느님이 당신 자녀들에게 내일 먹을 것을 주시리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도중에 밤이 닥치지 않게 지금 곧 떠나도 좋습니다.”
전체 군중 가운데에서 50명쯤이 일어난다. 다른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예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을 시작하신다.
“여러분은 ‘간음하지 말아라.’ 하는 말을 옛날에 했었다고 배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다른 곳에서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내가 이 죄에 대해서 여러 번 말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이 죄가 한 사람에게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두 세 사람에게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단단히 유의하시오. 내 말의 뜻을 설명하겠습니다. 간음죄를 짓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죄를 짓고, 공범자에 대해서도 죄를 짓고, 배반을 당한 아내와 남편을 죄로 이끌어감으로써 죄를 짓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 때문에 실망을 할 수도 있고, 자기 자신들이 죄를 짓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행동으로 행하여진 죄에 대한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보다 더한 말을 하겠습니다. ‘행동으로 나타난 죄 뿐 아니라, 죄를 지으려는 욕망이 벌써 죄가 된다.’고. 간음이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사람이 아닌 남자나 여자에 대한 흥분한 욕망입니다. 욕망으로 벌써 죄를 짓기 시작하고, 유혹으로 죄를 계속하고, 설득으로 보충하며, 행위로 모든 것을 완성합니다.
어떻게 시작합니까? 보통 부정한 눈길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내가 전에 말한 것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부정한 눈은 깨끗한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눈을 통해서 목마름이 목구멍으로, 굶주림이 몸 안으로, 흥분이 핏속으로 들어갑니다. 육체의 갈증, 허기증, 흥분입니다. 이것이 열광의 시초입니다. 상대자, 즉 어떤 사람이 욕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이 정숙한 사람이면 열광하는 사람만이 혼자서 이글이글 타는 숯불 같은 열화로 돌아가고 말거나 복수를 하기 위해서 중상을 하기에 이릅니다. 만일 그 사람이 외설스러운 사람이면 그 눈길의 공범자가 되고, 그러면 죄로 떨어지는 것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여자를 원하면서 바라보는 사람은 벌써 간음을 행했으니, 그의 생각으로는 벌써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하고. 그렇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여러분의 오른쪽 눈이 여러분에게 죄를 짓게 하는 기회가 되거든 그 눈을 뽑아서 멀리 던져 버리시오. 영원히 지옥의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것보다는 애꾸눈이 되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리고 만일 오른손이 죄를 짓거든 그것을 잘라 버리시오. 몸 전체가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더 낫습니다. 불구인 사람은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사할 수 없다는 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세에서는 불구로 난 사람들이 성인이거나 또는 덕행으로 불구가 된 사람들은 천사들보다도 더 아름답게 되어서 하늘 나라의 기쁨 속에서 하느님을 섬길 것입니다.
또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면 그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배척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는 내가 너를 위하여 만들어 준 동무이다. 너희들은 이 세상에서 자라고 불어서 땅을 채우고 땅을 너희 권력에 복종시켜라.’ 하고. 그러자 아담은 하느님에게서 완전한 상태로 나온 그의 이성이 아직 죄로 흐려지지 않았었기 때문에 높은 이해력이 가득차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마침내 내 뼈에서 생겨나 뼈, 내 살에서 생겨난 살이 나타났구나. 이 사람을 비라고(Virago), 즉 또 다른 나 자신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왔으니까.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버리고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그리고 더 커진 찬란한 광채로 영원한 빛은 아담이 말한 것을 미소로 인정하셨고, 이것이 개정할 수 없는 최초의 법이 된 것입니다. 이제 점점 더 커지는 남자의 냉혹 때문에 사람인 입법자가 새 법률을 만들 수 밖에 없었고, 남자의 점점 더 커가는 변덕 때문에 제동을 걸어서 ‘그러나 아내를 버렸으면 너는 그 여자와 다시 살 수는 없다.’고 말해야 하였지만, 이것이 최초의 법, 즉 지상낙원에서 생기고 하느님께서 인정하신 본래의 법을 말소하지는 못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분명히 증명된 간통의 경우가 아니고 자기 아내를 버리면 그 아내를 간음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고. 사실, 버림을 받은 여자가 90퍼센트의 경우 어떻게 하겠습니까? 재혼을 할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겠습니까? 아! 이 문제에 대하여는 할 말이 많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행동방식으로 본의 아닌 근친상간(近親相姦)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음란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이 흐릅니까? 그렇습니다. 음란입니다. 이것에는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솔직하시오. 정신이 올바르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이 외설스러우면 모든 것이 관능성의 만족의 원인이 되기에 적합합니다. 여자의 불감증, 일에 있어서의 우둔과 무능, 까다로운 성질, 사치를 좋아함, 이 모든 것은 서로 사랑하면 극복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병과 성미 급함까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처음과 같이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 때에는 가능하고도 남은 것을 불가능한 것으로 보게 되고, 그래서 가엾은 여자를 거리로 내쫓아 파멸로 보냅니다.
자기 아내를 버리는 사람도 간음을 하고, 이혼한 후 그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도 간음을 하는 것입니다. 죽음만이 결혼을 해소합니다. 이것을 잘 기억하시오.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불행한 선택을 했으면, 그 결과를 십자가를 지듯이 달게 받으시오. 여러분은 두 사람이 불행할 것이지만 성인일 것이고, 여러분의 자녀들을 더 불행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할 것입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더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할 그 죄 없는 자녀들을 말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배우자가 죽는 경우에도 여러분이 백번 천번 깊이 생각하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 여러분이 가졌던 것, 또 하느님께서 ‘그만하면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만족할 줄 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홀아비나 과부인 여러분이 죽음을 부모의 축소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완전이 올라가는 것이라고 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죽은 어머니를 대신해서까지도 어머니가 되고,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서까지도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한 영혼 안에 두 영혼을 가지고 죽는 사람의 입술에서 자녀에 대한 사랑을 거두고,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당신에게서 온 아이들 걱정은 하지 말고 평안히 떠나오. 나는 당신 몫과 내 몫으로 아이들을 계속해서 두 번 사랑하고, 아버지와 어머니 노릇을 하겠소. 그래서 고아라는 불행이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게 하겠소. 아이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딴 세상으로 간 어머니나 아버지의 신성한 자리를 차지하는 남자나 여자에 대하여 재혼한 배우자의 아이가 가지게 되는 자연적인 질투심을 느끼지 않게 될 거요.’ 하고.
여러분, 마치 벌써 서쪽으로 기울어지는 해와 더불어 날이 끝나려는 것과 같이 내 가르침도 끝나갑니다. 이 산 위에서 만나서 들은 말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이 말들을 마음 속에 새겨 두시오. 그리고 자주 그것을 다시 읽으시오. 이 말들이 여러분의 끊임없는 인도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약한 사람들에 대해 친절하시오. 판단을 받지 않기 위해서 판단을 하지 마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런 말로 환기시키실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너는 이렇게 판단하였다. 그러므로 너는 그것이 나쁜 일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너는 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잘 알고 있어서 죄를 지었다. 이제 네가 받을 벌을 받아라.’ 하고.
사랑이 벌써 사죄(赦罪)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항상 여러분 안에 사랑을 가지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올바르게 지키시려고 많은 도움을 주신다고 해도 그 때문에 교만해지지 마시오. 오히려 완전의 사다리가 아무리 길더라도 올라가려고 애쓰시오. 그리고 피로하고 무식한 사람들, 갑작스러운 실망의 희생이 된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시오. 우선 여러분의 눈에 있는 들보를 치울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 왜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왜 그렇게 주의해서 들여다봅니까? 여러분의 눈에 있는 들보로 인해서 여러분의 눈이 보이지 않을 지경인데, 어떻게 이웃에게 ‘당신의 눈에서 티를 꺼내 줄 터이니 가만 계시오.’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위선자가 되지 마시오. 먼저 여러분의 눈에 있는 들보를 꺼내시오. 그 때에는 형제에게서 그에게 상처를 도무지 입히지 않고 티를 꺼낼 수 있을 것입니다.
경솔도 사랑의 부족처럼 피하시오. 나는 여러분에게 ‘피로하고 무식하고 예기치 않았던 실망의 희생이 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무식한 사람들을 가르치고, 기진맥진한 사람을 격려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그들의 날개를 부러뜨린 사람들에게 새 날개를 주는 것은 사랑이지만, 악마 숭배에 젖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진리를 알려 주는 것은 조심성 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그 진리들을 낚아채 가지고 예언자인 것처럼 행동하고 단순한 사람들 사이에 슬그머니 들어가서 하느님의 일을 곡해하고 왜곡하고 독성적(瀆聖的)으로 더럽힐 것입니다. 절대적인 존경, 말할 줄 알고 입을 다물 줄 아는 것, 곰곰히 생각할 줄 알고 행동할 줄 아는 것, 이런 것들이야말로 개종자들을 얻고 하느님을 섬기기 위한 참된 제자의 덕행입니다. 여러분은 이성을 가지고 잇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올바르게 행동하면,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이성을 한층 더 잘 인도하기 위하여 모든 빛을 주실 것입니다. 영원한 진리들은 진주와 같다고 생각하시오. 값진 진주보다는 도토리와 구정물을 더 좋아하는 돼지들에게 진주를 던져 주는 것을 우리는 본 일이 없습니다. 그 놈들은 진주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아버리고, 그 다음에는 속은 것이 화가 나서 여러분에게 달려들어 갈기갈기 찢어놓으려고 할 것입니다. 거룩한 물건들은 개들에게 주지 마시오.
여러분, 오랫동안 말했습니다. 내 말을 귀담아 들으시오. 내 말을 듣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집을 지으려고 하면서 바위가 많은 땅을 택하는 생각 깊은 사람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초를 다지는 데 고생을 할 것입니다. 곡괭이와 정을 가지고 일하고, 손을 단단하게 하고 허리를 피로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바위 틈에 석회를 붓고 요새의 담과 같이 벽돌을 빽빽하게 쌓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집이 산과 같이 튼튼하게 올라갈 것입니다. 그러면 악천후가 오거나 폭풍우가 오거나 비가 많이 와서 강물이 넘치게 되거나 바람이 불거나 파도가 후려치더라도 집은 모든 것을 견디어낼 것입니다. 기초가 튼튼한 믿음을 가진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이와 반대로 내 말을 들으면서도 깊이 파고 들어가게 하지 않고, 내 말을 가슴 속에 새겨두려면 노력을 해야 하고, 고통을 겪고, 너무나 많은 것을 뽑아버려야 하겠기 때문에 내 말을 가슴 속에 새겨두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게으르고 어리석어서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악천후가 오기가 무섭게 빨리 지은 집은 무너지기도 빨리 해서 어리석은 사람은 집의 잔해와 자기 자본의 소멸을 애석해 하면서 바라다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비용을 들이고 고생을 하면 고칠 수 있는 무너진 집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그러나 잘못 지어서 무너진 영의 건물에서는 다시 짓는 데 쓰일 만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내세에서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잔해밖에 내보일 것이 없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다 끝났습니다. 이제 나는 호수 쪽으로 내려갑니다. 여러분에게 한 분이시고 세위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강복합니다. 내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군중은 외친다. “저희들은 선생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같이 가게 해주세요! 선생님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를 따라오기 시작한다. 예수께서는 올라오셨던 쪽으로 내려가지 않으시고, 반대쪽으로 내려가시며 직접 가파르나움을 향하여 가신다. 내리막은 더 가파르다. 그러나 훨씬 더 빨라서 이내 산 밑에까지 내려왔다. 거기서부터는 꽃이 핀 푸른 들판이 시작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오늘은 이것으로 족하다. 내일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