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지남에 따라 군중은 점점 많아진다. 남자, 여자, 노인, 어린이, 부자, 가난한 사람 다 있다. 스테파노 – 헤르마패도 이사악이 우두머리가 되어 있는 오랜 제자들과 아직 합쳐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거기 있다. 또 노인과 여인으로 어제 이루어진 새로운 한 쌍도 있다. 그들은 맨 앞에 그들의 위로자 곁에 있는데, 어제보다는 훨씬 더 여유가 있어 보인다. 노인은 딸이 혼자 버려두었던 여러 달 또는 여러 해의 공백을 메우려는 듯이 그의 꺼칠꺼칠한 손 하나를 여인의 무릎에 얹었고, 여인은 건전한 정신을 가진 여자에게는 선천적으로 있게 마련인 어머니답고자 하는 필요로 그 손을 쓰다듬는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투박한 강단으로 올라가시려고 그들 곁을 지나가시는데, 지나가시면서 노인의 머리를 쓰다듬으신다. 노인은 예수를 벌써 하느님처럼 쳐다본다. 베드로가 예수께 무슨 말을 하는데, 예수께서는 “상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 손짓을 하신다. 그러나 나는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었다. 그래도 베드로는 예수 곁에 그대로 있는데, 곧 이어서 유다 타대오와 마태오가 그의 곁으로 온다. 다른 제자들은 군중 가운데 섞여 있다.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 바랍니다!
어제 나는 기도와 맹세와 단식재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다른 완전들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이 완전들도 역시 기도와 신뢰와 진실과 사랑과 신앙심 따위입니다.
내가 말하려는 첫 번째 완전은 충실한 종의 착한 뜻으로 재물을 올바르게 써서 그만큼의 천상 재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재물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보배는 영원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유물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재물을 돌볼 수 없게 되고 그것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죽는 것이 걱정이 됩니까? 그러면 그것을 하늘로 옮겨 놓으시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이 세상의 것은 하늘에 들어가지 못하고, 또 선생님도 돈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돈을 하늘로 옮겨 놓을 수 있습니까?’ 하고. 그렇게는 못합니다. 여러분은 물질적인 돈을 모든 것이 영적인 하늘로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돈으로 얻은 이익은 가져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금전을 은행가에게 줄 때에 왜 주십니까? 은행가더러 그 돈이 이익을 내게 해달라고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물론 그 돈을 그대로 돌려달라고 잠시 동안이나마 포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 열 달란트에 대해서 열에다 하나를 보태서 또는 그 이상을 보태서 돌려 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기쁘고, 은행가를 칭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 사람은 정직은 하지만 바보다.’ 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열에 하나를 보태지 않고 아홉만을 돌려 주면서 ‘나머지는 잃었소.’ 하고 말하면, 여러분은 그를 고발해서 감옥에 집어넣게 합니다.
돈에서 나오는 이익이란 무엇입니까? 혹 은행가가 여러분의 데나리온(신약 시대의 로마의 은화)을 심고 물을 주어 자라게 합니까? 아니지요. 이익은 사업을 약삭빠르게 운영함으로써 생기는 것이어서, 저당과 이자가 붙는 대부로 빌려준 돈에 대한 정당한 이자로 돈이 불어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잘 들으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이 세상 재물을 어떤 사람들에게는 많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살아가기에 필요한 만큼만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네게 달렸다. 나는 그 재물들을 네게 주었다. 이 수단을 가지고 내 사랑이 네 이익을 위하여 바라는 것과 같은 목적을 이룩하여라. 내가 그 재물을 네게 맡긴다마는 네가 그것에서 악을 나오게 하라고 맡기는 것은 아니다. 내가 네게 대해서 가지는 존중 때문에, 또 내 선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네 재산이 이 참 고향을 위하여 이익을 내게 하여라.’
그리고 이 목적에 이르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은 재물을 위해서 살면서, 재물 때문에 가혹하게 굴고, 재물 때문에 이웃과 하느님의 저주를 여러분에게로 끌어당기면서 이 세상에서 재물을 모으려고 하지 마시오. 세상 재물은 그럴 만한 값어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재물에 대한 안전성이 전혀 없습니다. 도둑이 언제든지 훔쳐 갈 수 있고, 불이 나서 집들이 파괴될 수도 있고, 초목이나 가축떼의 병으로 실과나 가축들이 전멸할 수도 있습니다. 재산을 노리는 위험이 얼마나 많습니까! 집과 같은 부동산이거나 금과 같이 변하지 않는 것이거나, 식물과 동물이 그렇듯이 살아 있는 모든 것과 같이 본질적으로 소멸하게 되어 있는 것이거나, 손상될 수 있는 값진 옷감이나 다 그렇습니다. 벼락이나 화재나 홍수가 집을 덮칠 수 있고, 도둑이나 곰팡이병이나 가뭄이나 쏠아 먹는 동물 등이나 곤충들이 밭에 해를 끼칠 수 있고, 현도병(眩倒病)이나 열병이나 불구가 되는 것이나 전염병이 가축들에 해를 끼칠 수 있으며, 값진 옷감은 좀이 먹을 수 있고 비싼 가구를 쥐들이 갉을 수 있고, 식기는 깨질 수 있고, 촛대와 예술적인 쇠격자문은 녹이 슬 수 있습니다. 이래서 모든 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것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지상의 재물을 가지고 초자연적인 재물로 만들면, 그 재물은 세월과 사람과 일기불순에서 오는 일체의 손상을 모면하게 됩니다. 도둑이 들어가지 못하고 아무런 불행도 생길 수 없는 하늘에 여러분의 보화를 쌓으시오. 여러분의 일을 자비롭게 세상의 모든 불행에 적용하시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돈을 어루만지고, 하고 싶으면 입맞춤도 하시오. 순조로운 수확,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린 포도나무, 수없이 많이 달린 올리브의 무게로 가지가 휘는 올리브 나무, 새끼를 많이 낳고 젖이 퉁퉁 불어서 커진 양들을 보고 기뻐하시오. 이 모든 것을 하시오. 그러나 보람없이 인간적으로 하지 말고, 사랑과 찬미로, 기쁘게 그리고 초자연적인 계산으로 그렇게 하시오.
‘하느님, 이 돈, 이 수확물, 이 나무들, 이 양들, 이 장사 때문에 감사드립니다! 내게 몹시 유익한 양들아, 나무들아, 풀밭들아, 장사야, 고맙다! 영원하신 분이여! 당신의 호의로 굶주리는 사람들과 헐벗고 집없고 병들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이렇게도 많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건들아, 너희들의 호의로 이런 좋은 일을 많이 하게 되었다. … 작년에는 열 사람에게 이렇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 자선을 많이 했는데 돈이 더 많고, 수확물이 더 풍부하고 가축떼가 더 많아졌습니다. – 작년보다 두 곱절, 세 곱절 더 주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개인적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저와 함께 기뻐하고, 영원하신 주님이신 당신을 저와 함께 찬미하게 하겠습니다.’ 이것이 의인의 기도입니다. 행동과 합해서 여러분의 재물을 하늘로 옮겨 가는 이 기도는 그 재물을 여러분을 위해 영원히 보존해 줄 뿐 아니라, 사랑의 거룩한 결과로 더 불어난 것을 여러분이 보게 해줄 것입니다.
여러분의 보화를 위험을 초월한 저 너머 하늘에 쌓아 두어서 황금과 집과 밭과 가축떼들이 불행을 당할 수 없게 할 뿐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마음이 세상의 정신에 의해 공격을 받고 탈취되고 타락하고 타고 죽임을 당할 수 없게 하시오. 여러분이 이렇게 행동하면 여러분의 보화를 여러분의 마음 속에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느님 안에 있게 될 복된 날까지 여러분 안에 하느님을 모시고 있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결과를 줄이지 않도록 초자연적인 정신으로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을 잊지 마시오. 기도와 단식재에 대해서 그렇게 말했지만 자선과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선행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행하는 선행을 세상의 관능성의 모독에서 보호하시오. 여러분의 선행을 인간적인 칭찬으로 더럽혀지지 않게 보존하시오. 향기로운 장미꽃을 더럽히지 마시오. 주님의 뜻에 맞는 향기를 내는 참다운 향로인 여러분의 사랑과 여러분의 선행의 향기로운 장미꽃 말입니다. 선행을 더럽히는 것은 교만의 정신과 선을 행할 때에 사람의 눈에 띄기를 바라는 욕망과 칭찬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사랑의 장미꽃이 만족을 얻은 교만이라는 끈적끈적한 달팽이에 의해 더러워지고 상하며, 향로 위로는 교만한 자가 배불리 먹은 짐승처럼 만족하고 있는 자리에 고약한 냄새가 나는 지푸라기들이 떨어집니다.
오! 사람들이 여러분 이야기를 하게 만들려고 행하는 저 자선의 행위들! 그러나 그런 자선 행위는 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훨씬 나아요! 자선 행위를 하지 않는 사람은 냉혹으로 죄를 짓습니다. 칭찬을 받으려고 자기가 얼마를 주었는지 돈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이름을 밝히면서 자선 행위를 하는 사람은 그의 헌금을 알림으로써 교만으로 죄를 범합니다. 그것은 마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시오.’ 하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사람은 돈을 받은 사람의 이름을 알려서 그 사람의 자존심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에 사랑의 부족으로 죄를 짓습니다. 또 인간적인 칭찬을 모으기를 원해서 정신적인 인색으로 죄를 짓습니다. … 그것은 지푸라기같이 값어치 없는 것 이상의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천사들과 더불어 여러분을 칭찬하시게 하시오.
여러분은 자선을 베풀 때에,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려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서만 자선을 베푸는 위선자들이 하는 것처럼 행인들의 주의를 끌려고 나팔을 불지 마시오. 그들도 상을 받았으니, 하느님에게서 다른 상은 받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잘못과 자만에 빠지지 마시오. 오히려 여러분이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그만큼 숨기고 조심성있게 하시오. 그리고 잊어버리시오. 여러분은 두꺼비처럼 자만하면서 여러분이 한 행위를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지 마시오. 두꺼비는 희미한 눈으로 연못에 비친 제 모습을 감탄하며 들여다보다가, 고요한 물에 비친 구름과 나무와 연못가에 멈춰선 마차의 모습을 보고는 제가 그 물건들과 비교해서 너무도 작은 것을 보고 바람으로 몸을 부풀리다가 터져 죽고 맙니다. 여러분의 사랑 자체도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무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작은 사랑을 하느님의 사랑과 같게 하려고 부풀리고 부풀리고 또 부풀리면, 여러분 안에 교만의 바람을 가득 채워서 결국은 파멸하고 말 것입니다.
잊어버리시오. 행위 자체를 잊어버리시오. 여러분에게 여전히 빛이 남아 있을 것이고, 꿀같이 달콤한 말이 남아 있을 것인데, 이것으로 여러분의 인생은 빛나고 즐겁고 지극히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그 빛은 하느님의 미소이고, 그 꿀은 영적인 평화인데, 이 영적인 평화는 역시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여러분에게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감추어진 악도 보시고, 스스로를 감추는 선행도 보시고, 거기에 대해 여러분에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
“선생님, 선생님의 말씀이 거짓이라고 스스로 부인하시는군요!”
예기치 않은 교활한 공격이 군중 가운데에서 온다. 모두가 그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린다. 베드로가 말한다. “제가 말씀드렸지요! 어! 그자들 중의 하나가 있으면 …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군중 가운데에서는 모욕하는 사람을 휘파람을 불어 야유하기도 하고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예수께서만 침착하게 계시다. 예수께서는 이마에 햇빛을 받으시며 똑바로, 짙은 파란색 옷을 입으신 몸으로 바위 위에 꼿꼿이 서 계시다.
모욕하는 사람은 군중의 반응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한다. “선생님은 좋지 못한 선생이십니다. 선생임 자신이 하지 않는 것을 가르치시니까요. 그리고 …”
“입닥쳐요! 썩 물러가시오! 창피한 걸 아시오!” 하고 군중이 외친다. 그리고 또 이렇게도 외친다. “당신의 율법교사들이나 찾아가시오! 우리는 선생님만 계시면 충분하오. 위선자들은 위선자들과 같이 있으시오! 거짓 선생들! 고리대금업자들! …” 그리고 그들은 더 계속할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천둥소리 같은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조용하시오! 저 사람이 말하게 가만 놔두시오.” 그러자 사람들은 소리는 지르지 않는다. 그러나 성난 눈짓을 하며 비난하는 말을 중얼거린다.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이 하지 않는 일을 가르치십니다. 선생님은 남이 보지 못하게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어제는 많은 사람이 있는 앞에서 ‘여기 남아 있으시오, 내가 배불리 먹여 주겠소.’ 하고 두 거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거지 두 사람은 남아 있으라고 하여라. 그들은 축복 받은 손님일 것이고 우리의 음식을 맛있게 할 것이다.’ 하고 말했소.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나는 그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할 생각이란 말은 안 했소. 적어도 빵 하나쯤 못 가진 거지가 어디 있소? 그들에게 우리의 진정한 우정을 주는 것은 우리에게 기쁜 일이었소.”
“아! 그렇지요! 선생님은 꾀가 많아서 어린 양인 체할 줄을 아시지요! …”
노인이 일어나서 몸을 돌리고 지팡이를 쳐들며 외친다. “악마 같은 혀를 가진 자야, 거룩하신 분을 비난하는 너는 아마 무엇이든지 다 아는 줄로 생각하고 네가 아는 것을 가지고 비난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로구나. 너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시고 네가 모욕하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는 것처럼 이 분의 행동도 모른다. 그것을 아는 것은 천사들과 기쁨이 넘치는 내 마음 밖에 없다. 여러분, 들으시오, 모두 들으시오. 그리고 이 성전의 쓰레기 같은 자가 말하려는 것처럼 예수님이 거짓말쟁이이고 교만한 분인지 알아보시오. 예수님은 …”
“이스마엘 할아버지, 입다무세요! 제게 대한 사랑으로 입을 다무세요! 제가 할아버지를 행복하게 해드렸으면, 입을 다물어서 저도 행복하게 해주세요.” 하고 예수께서 애원조로 말씀하신다.
“거룩하신 아드님, 순종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말만은 하게 해주십시오. 하느님을 대신해서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분 위에 충실한 늙은 이스라엘 사람의 축복이 있으라고. 이 축복은 하느님께서 나와 새로 얻은 내 딸 사라를 위해 내 입술에 넣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네 머리 위에는 축복이 없을 것이다. 나는 너를 저주하지 않는다. 나는 저주로 내 입을 더럽히지 않겠다. 내 입은 하느님께 ‘저를 받아들여 주십시오.’ 하고 말씀드려야 한다. 나는 나를 버린 딸도 저주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벌써 상을 주신다. 그러나 비난을 받으시는 죄없는 분과 그에게 강복을 주시는 하느님의 벗인 이스마엘을 두둔할 어떤 사람이 있을 것이다.”
노인의 연설에 함성이 뒤따른다. 노인은 다시 앉고, 어떤 사람이 비난의 집중 공격을 받으며빠져나가 멀어져 간다. 그런 다음 군중이 예수께 외친다. “거룩하신 선생님 계속하시오. 계속하세요! 저희들은 선생님 말씀만 듣습니다. 그러니 선생님도 저희들의 말만 들으십시오. 저 저주 받은 까마귀 같은 자들의 말은 듣지 마십시오! 그자들은 저희가 그들보다 선생님을 더 좋아하는 것을 질투합니다! 그렇지만 선생님께는 거룩함이 있고, 그들에게는 타락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말씀하세요. 집이나 장사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 말하겠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고, 저 불쌍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시오. 내가 용서하는 것과 같이 여러분도 용서하시오. 여러분이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서도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주실 테니까요.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원한을 품고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아버지께서도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행한 선에 대해서 상을 주십사고 하느님께 청하지 않더라도 상을 주실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상을 받으려고, 또는 내일에 대한 보장을 얻기 위해서 선을 행하지 마시오. ‘그러면 이제는 내가 쓸 것도 아직 있을 것인가? 또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게 되면 누가 와서 나를 도와주겠는가? 내가 한 것처럼 내게도 해줄 사람을 만나게 될까?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줄 것이 없게 되어도 사람들은 아직 나를 사랑할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혀 선을 재가면서 행하지 마시오.
생각들 해 보시오. 나는 부자들 가운데에 유력한 친구들도 있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에도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이지 유력한 친구들이 가장 사랑하는 친구들이 아닙니다. 내가 그 친구들의 집에 가는 것은 자만하거나 내 이익을 얻으려고 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난합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보화를 손에 넣어서,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서 그것을 빵으로 바꾸고,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집으로 바꾸고, 헐벗은 사람들을 위해서 옷으로 바꾸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서 약으로 바꿨으면 합니다. 여러분은 아마 ‘선생님은 병을 고치실 수 있는데요.’ 하고 말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나는 그것도 할 수 있고 다른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믿음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만일 사람들의 마음에서 내게 대한 믿음을 얻어 만나지 못하면, 나는 할 수 있는 것도 하기를 원하는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믿음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자선을 베풀고 싶고, 또 그 사람들이 사람의 아들에게 기적을 청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 대 인간으로 그들을 돕고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나는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면서’하느님의 이름으로 자선을 베풀어 주시오.’ 하고 청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상류사회에 친구들을 두었습니다. 장차 내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에도 역시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것인데, 나는 거기에 없어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기적을 행하지도 못할 것이고, 믿음으로 인도하기 위해 자선도 베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는 내 친구들이 나와 교제하면서 자선을 베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지를 알았을 것이고 내 사도들도 나와 접촉하면서 형제들을 위해 사랑으로 자선을 베푸는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구제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제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게서 가진 모든 사람이 내게 준 것 보다도 더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나 만큼이나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어떤 것을 내게 주었고, 그로 인해서 나는 매일 밤 의인의 손이 내 머리에 얹히고, 나는 내 잠을 보호하기 위한 그 분의 축복을 받으며 자러 가던 내 어릴 적 일과 젊었을 적이 생각나서 기쁘게 되었습니다. 어제 이 가난한 벗은 그의 축복으로 나를 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걱정하지 마시오. 여러분이 자선을 베풀 만한 것을 가지지 못했더라도 사랑과 거룩함만 가지고 있으면 충분합니다. 여러분은 가난하고 기진맥진하고 몹시 슬퍼하는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러분에게 가진 것이 별로 없는 것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든지 필요한 것은 가지게 될 것입니다. 자기의 미래가 어떨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무엇을 먹고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깊이 생각하지 마시오. 여러분의 영의 생명이 여러분의 배와 지체보다 훨씬 더 귀하고, 그것이 음식과 옷보다 훨씬 더 큰 값어치가 있다는 것은, 육체의 생명이 음식보다 더 값어치가 있고, 육체가 옷보다 값어치가 더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아버지께서도 그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그것을 아시오. 새들을 보시오. 새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어 들이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 두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먹여 주시기 때문에 굶어 죽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피조물인 사람들인 여러분은 새들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 중의 누가 온갖 솜씨를 다해서 자기 키를 한 자만이라도 늘일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키를 반 뼘도 늘일 수 없는데, 어떻게 여러분의 길고 행복한 노후를 보장할 여러분의 재산을 늘여서 여러분 미래의 처지를 바꿀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죽음 보고 ‘내가 원하는 때에 데리러 오너라.’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왜 내일 일을 걱정합니까? 그리고 왜 입을 옷이 없을까 봐 그렇게 걱정을 하십니까? 들에 있는 백합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보시오.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고 옷감을 뜨려고 포목전에도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정말이지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조차도 저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입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피었다가 내일은 아궁이에 땔감으로 쓰이거나 짐승 떼를 기르는 데나 소용되고, 결국은 재나 두엄이 될 들꽃도 하느님께서 그렇게 입히시니, 당신의 아들들인 여러분에 대하여는 훨씬 더 마음을 쓰실 것입니다.
믿음이 별로 없는 사람들같이 되지 마시오. ‘내가 늙으면 어떻게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불확실한 장래 때문에 걱정을 하지 마시오. 이런 걱정은 하느님의 아버지다운 감정에 대한 빛나는 확신을 가지지 못한 이방인들이나 가지라고 하시오. 여러분은 그런 확신을 가졌고, 또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필요를 아시고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아버지를 믿으시오. 여러분은 우선 정말 필요한 것들, 즉 믿음, 친절, 사랑, 겸손, 자비, 순결, 정의, 온순 세 가지나 네 가지 주요한 덕행, 그리고 또 모든, 다른 모든 덕행도 찾아서 하느님의 친구가 되고, 그 분의 나라에 들어갈 권리를 가지게 되도록 하시오. 그러면 나머지 모든 것은 여러분이 청하지 않아도 덤으로 받게 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성인보다 더 부유하고 더 안심할 수 있는 부자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인과 함께 계시고, 성인은 하느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성인은 육체를 위하여는 아무것도 청하지 않는데, 하느님께서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그러나 성인은 그의 영을 위하여는 일하는데,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서는 당신 자신을 주시고, 내세에서는 천국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걱정할 값어치가 없는 것을 위해서 걱정을 하지 마시오. 여러분이 불완전한 것을 슬퍼하되, 세상 재물을 많이 가지지 못한 것을 슬퍼하지 마시오. 내일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지 마시오.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기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내일이 되었을 때 내일 생각을 하시오. 왜 오늘부터 내일을 생각합니까? 인생은 벌써 어제의 괴로운 추억과 오늘의 괴롭히는 생각으로 넉넉히 차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거기에다 또 내일은 ‘어떨까?’ 하는 고민거리를 보탤 필요를 느끼겠습니까? 하루의 걱정은 그날 겪는 것으로 족합니다! 지금 있는 걱정에 장차 있을 걱정을 보태지 않더라도 인생에는 벌써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걱정이 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훌륭한 말씀인 ‘오늘’이라는 말을 항상 하시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그 분의 자식들이 되시오. 하느님과 함께 ‘오늘’이라고 말하시오.
그래서 오늘 나는 여러분에게 내 강복을 줍니다. 이 강복이 새로운 오늘인 내일이 시작될 때까지, 즉 내가 다시 하느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평화를 줄 때까지 여러분과 같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