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오늘 – 1905년 5월 30일 – 나는 안드레아 페라리 추기경님에게서 견진성사를 받았다.)

땅을 향기롭게 하고 눈을 즐겁게 하는 수없이 많은 꽃 가운데 무서운 유령과 같은 문둥병자가 우뚝 서 있다. 역한 냄새를 피우는 헌데 투성이이고, 나병균이 좀 먹은 사람이다.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소리를 지르며 다시 산비탈이 시작되는 곳으로 물러선다. 어떤 사람들은 조심성없는 사람에게 던지려고 돌들을 집기까지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시며 팔을 벌리고 외치신다. “조용하시오! 있는 곳에 그대로 있으시오, 그리고 겁내지 마시오. 돌들을 내려놓으시오. 이 가엾은 형제를 불쌍히 여기시오. 이 사람도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사람들은 선생님의 권위에 굴복하여 복종한다. 예수께서는 꽃이 핀 키 큰 풀들 사이로 문둥병자에게서 몇 발 떨어진 데까지 나아가시고, 문둥병자도 예수께서 그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깨닫고는 가까이 왔다. 예수께 가까이 와서 그는 땅에 꿇어 엎드린다. 그러니까 꽃이 핀 풀은 그를 받아들여 마치 향기로운 시원한 물처럼 그를 파묻는다. 물결치는 꽃들은 불행 위에 베일을 펴서 그것을 감추는 것 같다. 거기에서 나오는 애처로운 목소리만이 거기에 불쌍한 인간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주님, 주님이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저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얼굴을 들고 나를 쳐다보시오. 사람은 믿을 때에는 하늘을 쳐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당신이 애원하는 것을 보니, 당신은 믿고 있소.”
풀이 움직이면서 다시 갈라진다. 문둥병자의 얼굴이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난파(難破) 당한 사람의 머리와 같이 나타나는데, 머리카락과 수염이 없다. 피부가 아직 좀 남아 있는 두개골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헌 데가 없이 깨끗한 이마, 두 개의 화농(化膿)하는 미란(靡爛) 사이에 밀랍빛깔의 비늘처럼 벗겨지는 피부밖에 없는 곳에 손가락 끝을 감히 얹으신다. 그 두 개의 화농하는 미란 중의 하나는 털이 있는 피부를 파괴하였고, 또 하나는 오른눈이 있던 곳에 구멍을 하나 뚫어 놓았다. 관자놀이에서 코에 걸쳐 파져서 광대뼈와 코의 연골이 드러나보이게 하고 더러운 것이 잔뜩 들어 있는 저 커다란 구멍 속에 아직 눈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예수께서는 그 아름다운 손끝을 거기에 대시고 말씀하신다. “나는 원하오, 깨끗해지시오.”
마치 그 사람이 나병균에 좀 먹혀서 헌 데 투성이가 된 것이 아니라, 때가 잔뜩 끼었었는데, 거기에 액체로 된 세제(洗劑)를 부은 것처럼 문둥병이 사라진다. 맨 먼저 헌 데들이 아물고, 피부가 다시 맑아지고, 다신 생겨난 눈꺼풀 사이로 오른쪽 눈이 다시 나타나고, 누르스름한 이 위로 입술이 다시 덮인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아직 없는 채로 있고, 표피가 아직 성한 채로 있던 곳에 털무더기가 드물게 있을 뿐이다.
군중은 몹시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그 사람은 이 기쁨의 외침을 듣고 자기 병이 고쳐졌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는 그 때까지 풀 속에 가려져 있던 손을 쳐들고, 커다란 구멍이 있던 곳에 있는 눈을 만져본다. 커다란 헌 데가 두개골을 뒤덮고 있던 곳의 머리를 만져보고, 새로 생긴 피부를 만져본다. 그러다가 일어서서 가슴을 보고, 허리를 본다. … 모든 것이 건강하고 깨끗하다. … 그 사람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다시 꽃핀 풀밭에 주저앉는다.
“울지 말고 일어나 내 말을 들으시오. 의식을 지켜서 인간다운 생활을 다시 시작하시오. 그리고 모든 것이 행해지기 전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시오.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사제에게 보이시오. 당신의 병이 나음으로 뜻밖에 일어난 기적의 증거로 모세가 명한 제물을 바치시오.”
“주님, 제가 찬양해야 할 분은 주님이십니다!”
“내 가르침을 사랑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될 것이오. 가보시오.”
군중이 다시 가까이 와서 의무적인 거리 밖에 있으면서 기적을 입은 사람에게 축하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여행하는 데 쓸 여비를 줄 필요를 느껴 돈을 던져 준다. 어떤 사람들은 빵과 음식물을 던져 준다. 한 사람은 문둥병자의 옷이 누더기에 지나지 않아서 몸을 잘 가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겉옷을 벗어 똘똘 뭉쳐서 문둥병자에게 던져 준다. 이 사람은 그래서 품위있게 몸을 가릴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집단으로 있을 때에는 자비가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또 한 사람은 그에게 샌들을 주고자 하는 욕망을 물리칠 수가 없다. 그는 자기의 샌들을 벗어서 문둥병자에게 던져 준다.
“하지만 당신은?” 그가 하는 짓을 보시던 예수께서 물으신다.
“아이고! 저는 여기서 아주 가까운 곳에 삽니다. 저는 맨발로 걸을 수가 있습니다. 저 사람은 먼 길을 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과 또 이 형제에게 도움을 베푼 모든 사람에게 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보시오, 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시오.”
“예, 예, 저 분들과 주님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세상이 주님께 믿음을 가지도록.”
“안녕. 평안히 가시오.”
그 사람은 몇 미터를 가다가 돌아서서 외친다. “그런데 사제한테는 선생님이 저를 고쳐 주셨다고 말해도 됩니까?”
“안 되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사제에게는 ‘주님이 저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고만 말하시오. 이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니까요. 다른 말은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선생 둘레를 꽉 둘러써고 도무지 비켜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동안 해가 떨어졌다. 이제 안식일의 휴식이 시작된다. 마을들은 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의 마을도 먹을 것도 아무것도 애석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그것이 걱정이 되어서 예수께 말씀드린다. 제일 나이많은 제자들도 걱정을 한다. 여자들과 어린이들도 있다. 그런데 밤은 훈훈하고 풀밭의 풀은 부드럽지만, 별들은 빵이 아니고, 비탈에 있는 돌들이 먹을 것을 주지는 않는다.
걱정을 안하는 사람은 예수뿐이시다. 그 동안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을 먹고, 예수께서는 그것을 제자들에게 지적하신다. “정말이지 저 사람들은 너희들보다 나은 사람들이다! 저 사람들이 얼마나 태평하게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을 빨리 먹어 치우는지 보아라. 나는 그들에게 ‘하느님이 내일 당신 아들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리라고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은 물러가시오.’ 하고 말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그대로 남았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메시아가 말한 것을 거짓이라고 부인하시지 않고 당신께 바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으실 것이다.”
사도들은 어깨를 들썩하고 다른 일은 상관을 하지 않는다. 저녁 놀이 지난 다음 밤이 조용하고 아름답게 내려앉고, 새들이 부르는 마지막 소야곡(小夜曲) –세레나드) 후에는 시골의 정적이 모든 것 위에 퍼진다. 바람이 몇 번 살랑거리고, 첫 번째 별이 뜰 때, 그리고 개구리의 첫 번째 울음소리가 들릴 때 밤새 한 마리가 조용히 날아간다.
아이들은 벌써 잔다. 어른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이따금씩 어떤 사람이 선생님께로 가서 설명을 청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 밀밭 사잇길로 옷차림과 나이로 당당한 모습을 한 어떤 인물이 오는 것을 보고서도 놀라지 않는다. 그 인물 뒤에 사람들이 따라온다. 모든 사람이 그를 보려고 몸을 돌리고 속삭이면서 서로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킨다. 속삭임이 이 집단에서 저 집단으로 이어져 가고 되살아나다가 꺼지곤 한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집단들이 호기심에 끌려 가까이 온다.
위엄있는 모습을 한 그 사람은 어떤 나무 아래 앉아서 사람의 말을 듣고 계신 예수께로 가서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예수께서는 즉시 일어나셔서 마찬가지로 공손하게 답례하신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더할 수 없는 주의를 기울인다.
“저도 산 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굶은 채로 있지 않기 위해 떠나는 것을 보시고 선생님께서는 아마 제가 믿음이 없는 줄로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동기로 떠났습니다. 저는 형제들 중에 형제, 맏형 노릇을 하려고 했습니다. 제 생각을 선생님께 따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제 말씀을 들으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율법교사이지만 선생님께 적의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좀 저쪽으로 갑시다 ….” 그러면서 두 사람은 밀밭 사이로 간다.
“저는 순례자들의 음식을 마련하고자 해서 이 군중 모두가 먹을 빵을 만들도록 명령하려고 내려갔습니다. 이 밭들은 제 소유이니까 제가 율법에 정해진 공간에 있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그리고 여기서 산꼭대기까지는 안식일 동안에 걸을 수 있는 길입니다. 저는 하인들을 데리고 내일 오려고 했습니다만, 선생님께서 군중과 같이 여기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발 안식일 동안에 군중의 음식을 마련해 주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공연히 선생님의 말씀 듣는 것을 포기한 것이 마음에 언짢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당신 빛으로 선생께 보상을 주셨을 터이니까 결코 공연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선생을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다만 군중이 수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겠습니다.”
“저는 화덕을 모두 데우라고 하고, 식료품을 말리는데 쓰는 것까지 데우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먹을 만큼 빵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빵의 양을 말하려는 것이었습니다 ….”
“아이고! 그것은 제게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작년에 소출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올해에도 밀이삭을 보시지요. 저 하는 대로 그대로 두십시오. 이것이 제 수확을 위한 가장 좋은 보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 … 선생님께서는 오늘 제게 굉장한 빵을 주셨습니다. … 선생님, 그렇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정신의 빵이십니다! …”
“그러면 선생이 원하는 대로 합시다. 순례자들에게 가서 이 말을 합시다.”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됐습니다.”
“그런데 선생은 율법교사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율법교사입니다.”
“주께서 선생의 마음이 갈 자격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지 않으시는 것을 알아듣겠습니다. 진리로 데려가 주시기를 …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저희들에게는 오류가 많고 또 … 악의도 많으니까요.”
“선생은 누구십니까?”
“하느님의 한 아들입니다. 저를 위해 아버지께 기도해 주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평화가 선생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사람이 하인들과 같이 가는 동안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로 천천히 돌아오신다.
“누구였습니까? 무엇을 원하는 것이었습니까? 선생님께 기분 나쁜 무슨 말을 했습니까? 병자들이 있답니까?” 예수께서는 질문 공세를 받으신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른다. 아니, 사실은 그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것이 네게는 …”
“그 사람은 율법학자 요한입니다.” 하고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말한다.
“그러면 당신이 지금 말하기 때문에 그것을 알겠습니다. 그 사람은 그저 하느님의 아들들에 대해서 하느님의 종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일 그 사람의 친절 덕택으로 우리 모두가 음식을 먹게 되었으니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시오.”
“그 사람은 정말 의인입니다.” 하고 어떤 사람이 말한다.
“세심한 조심성과 규칙이라는 붕대로 갓난 아기 모양으로 칭칭 감겨 있기는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하고 또 한 사람이 말을 끝낸다.
“이 밭들이 그 사람의 것입니까?” 하고 이 고장 사람들이 아닌 많은 사람이 묻는다.
“그렇습니다. 문둥병자가 그 사람의 하인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가 그의 소작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이웃에 있게 허락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먹여 살리기까지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회화는 계속되는데, 예수께서는 빠져나오셔서 열 두 사도를 옆으로 부르셔서 그들에게 물으신다. “그래 이제는 너희들의 불신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하겠느냐? 아버지께서 내게 적의를 가진 일당에 속하는 어떤 사람의 손을 통해 우리 모두를 위해 빵을 주시지 않았느냐? 오!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 그러나 푹신한 풀밭에 가서 자거라. 나는 너희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도록 또 아버지의 인자하심에 대해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 기도를 하러 가겠다. 너희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산비탈이 시작되는 곳으로 가신다. 거기에 앉으셔서 기도를 하시느라고 정신을 가다듬으신다. 눈을 들어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무리를 보시고, 눈을 내리셔서 풀밭에 누워서 자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신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 보신다. 그러나 마음이 얼마나 기쁘신지 예수님은 빛으로 변모하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