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작은 요한(마리아 발또르따의 애칭임)아, 나를 따라오너라. 오늘의 봉헌된 사람들을 위한 지시를 네게 쓰게 하고자 한다. 보고 써라.”

예수께서는 아직 가이사리아 항구에 계시다. 어제 계시던 광장이 아니라 더 시내 쪽으로 들어간 어떤 곳에 계신데, 그래도 그 곳에서도 항구와 배들이 보인다. 여기에는 창고와 가게가 많다. 그리고 흙투성이인 이 곳에 땅바닥에까지 여러 가지 물건이 놓여 있는 거적들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아 장터 근처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장이 항구와 창고들 근처에 서는 것은 아마 뱃사람들과 배로 가져온 상품들을 사기 위하여 오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일 것이다. 이곳은 군중이 오가는 바람에 몹시 소란하다. 예수께서는 시몬과 사촌들과 함께 다른 제자들이 그들에게 필요한 식량을 사기를 기다리신다. 어린이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예수를 쳐다보니,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말씀하시면서 어린이들을 쓰다듬으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이방인들에게 가기 때문에 너희들이 불만인 것을 보니 내 마음이 언짢다. 그러나 나는 내 의무를 다 하고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너희 세 사람과 요한만이라도 친절하도록 힘써라. 다른 사람들은 너희들 하는 대로 따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수 있습니까? 요컨대 저 사람들은 우리를 업신여기고 압제하고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악습이 가득합니다.” 하고 알패오의 야고보가 변명을 하며 말한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너는 알패오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것을 기쁘게 생각하느냐?”
“예, 물론이지요. 그건 왜 물으십니까?”
“그리고 만일 하느님께서 네가 잉태되기 전에 네게 물으셨더라면, 그들에게서 태어나기를 원했겠느냐?”
“그렇구말구요.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
“그러면 이와 반대로 만일 네가 이교도에게서 태어났다면, 네가 이교도에게서 태어나기를 원했다고 비난하는 소리를 듣고 무엇이라고 말했겠느냐?”
“저는 … 저는 ‘이건 내 책임이 아니오. 내가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지만, 다른 사람에게서 태어날 수도 있었을 거요.’ 하고 말했을 것입니다. 또 이렇게도 말했을 것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고. 내가 잘못하는 것이 없으면 왜 나를 미워하오?’ 하고 말입니다.”
“네가 바로 말하였다. 이교도들이라고 해서 너희들이 미워하는 이 사람들도 같은 말을 할 수가 있다. 네가 참다운 이스라엘 사람인 알패오에게서 태어났다고 해서 네게 공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영원하신 분이 네게 큰 선물을 주셨으니까 너는 다만 거기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만 해야 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과 겸손으로 이 선물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참 하느님께로 이끌어오도록 힘써야 한다. 친절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다. 보아라. 얘야, 너 이리 오너라.”
한 모퉁이에서 다른 동무 둘과 놀고 있던 여덟 살쯤 된 어린이가 가까이 온다. 머리카락은 짙은 갈색인데 살갗은 대단히 흰 튼튼한 소년이다.
“이름이 무엇이냐?”
“루치우스, 까이우스 마이우스의 아들 가이우스 루치우스요. 난 로마 아이이고, 상처를 입고 여기 남아 있게 된 수비대 10인대장의 아들이예요.”
“그럼 저 애들은 누구냐?”
“토비아와 이사악이오. 그렇지만 이 말을 하면 안 돼요. 쟤들이 벌을 받으니까요.”
“왜?”
“쟤들은 히브리 아이들이고 나는 로마 아이거든요. 같이 놀면 안 돼요.”
“그렇지만 너는 저 애들과 같이 있는데, 왜 그러냐?”
“우리가 서로 좋아하니까요. 우리는 늘 같이 주사위 놀이를 하거나 뛰기 놀이를 해요. 그렇지만 숨어서 해요.”
“그럼 나는, 너는 나도 좋아하겠니? 나는 히브리 사람인데. 나도 히브리 사람이고 또 아이도 아닌데, 잘 생각해 봐라. 나는 선생님이다. 사제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있어요. 아저씨가 날 좋아하면 나도 아저씨를 좋아하고, 아저씨가 나를 좋아하니까 나도 아저씨를 좋아하는 거지요.”
“그걸 어떻게 아니?”
“아저씨가 친절하니까요. 친절한 사람은 좋아하니까요.”
“자, 사람들아, 사랑하기 위한 비결을 보아라. 그 비결은 친절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저러한 사람이 같은 믿음을 가졌는지 아닌지 생각해보지 않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린 가이우스 루치우스의 손을 잡고, 겁이 나서 대문 뒤에 숨어 있는 히브리 어린이에게 가셔서 쓰다듬어 주시며 말씀하신다. “착한 어린이들은 천사들이다. 천사들은 오직 한 고향만이 있다. 천국이다. 천사들은 오직 한 종교만을 가지고 있다. 오직 한 분 뿐이신 하느님의 종교이다. 천사들은 성전 오직 하나만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마음이다. 너희들은 천사들처럼 언제나 서로 사랑해라.”
“그렇지만 우리가 들키면 매를 맞아요 ….”
예수께서는 서글프게 머리를 흔드시고 대꾸를 하지 않으신다 ….
키가 훤칠하고 몸이 풍만한 여인이 루치우스를 부르니, 어린이는 “엄마!” 하고 외치면서 예수 곁을 떠나간다. 그리고 여인에게 “엄마 나 어른 친구가 하나 생겼어, 알아? 선생님이야! …” 하고 큰 소리로 말한다.
여인은 아들과 같이 가지 않고 오히려 예수께로 와서 묻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이 어제 항구에서 말씀하던 갈릴래아 분이십니까?”
“그렇소, 나요.”
“그럼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빨리 할 테니까요.” 그러면서 어린 아이와 같이 간다.
그 동안 다른 제자들도 마태오와 요한만 빼고는 다 돌아왔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야?” 하고 묻는다.
“로마 여잔가봐.” 하고 시몬과 다른 사도들이 대답한다.
“그래 뭘 청한 거야?”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어. 알게 되겠지.”
그 동안 사람들이 가까이 와서 호기심을 가지고 기다린다.
여인이 다른 로마인들과 같이 돌아온다. “선생님이 바로 그 선생님이십니까?” 하고 부잣집의 하인 같은 사람이 묻는다. 그리고 그렇다는 말을 듣고 청한다. “글라우디아의 친구의 어린 딸의 병을 고쳐 주시는 것이 선생님께 폐가 되겠습니까? 어린 아이가 숨이 막히기 때문에 죽어가는데 의사는 아이가 무슨 병으로 죽어가는지 모릅니다. 어제 저녁에는 건강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갑시다.”
그들이 어제 있던 곳으로 가는 길을 몇 걸음 가니 로마인들이 살고 있는 것 같은 집의 활짝 열린 대문에 이른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하고 말하고 그 남자가 빨리 들어갔다가 곧 다시 와서 말한다. “오십시오.”
그러나 예수께서 들어가시기도 전에 젊은 여자 한 사람이 집에서 나온다. 여자는 품위 있으나 분명히 괴로워하는 모습이다. 그 여자는 몇 달밖에 안 된 어린 계집 아이를 안고 있는데, 아이는 물에 빠져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고 축 늘어졌다. 치명적인 디프테리아에 걸려서 다 죽어가게 된 것 같다. 여인은 파선을 당한 사람이 암초를 피해 가듯이 예수의 가슴으로 피해 들어온다. 그 여자가 어떻게나 우는지 말을 할 수 없을 지경이다.
예수께서 어린 계집 아이를 받으신다. 아이는 손톱이 벌써 자줏빛이 된 고사리 같은 손에 작은 경련을 일으킨다. 예수께서 아이를 쳐드시니, 아이의 작은 머리가 힘없이 뒤로 늘어진다. 어머니는 히브리인 앞에서 로마인의 아무런 자존심도 보이지 않고, 예수의 발 앞에 먼지 속에 털썩 주저앉아, 얼굴을 들고, 머리카락은 반쯤 헝클어진 채 팔을 내밀어 예수의 옷과 겉옷에 매달리며 흐느껴 운다.
예수께서는 오른손 검지에 침을 묻혀 할딱이는 작은 입 속으로 집어넣고 깊숙히 들이미신다. 계집 아이는 몸부림을 치고 얼굴이 한층 더 꺼멓게 된다. 어머니는 “안 돼요! 안 돼요!” 하고 부르짖는다. 그리고 칼이 몸을 꿰뚫는 것처럼 몸을 뒤튼다. 사람들은 숨을 죽인다. 그러나 예수의 손가락은 화농한 점막 한 뭉치를 가지고 나온다. 계집 아이는 이제는 몸부림을 치지 않고 눈물을 몇 방울 흘린 다음 진정되어서 순진한 미소를 짓고, 귀여운 손을 흔들고, 먹이를 기다리면서 날개짓을 하고, 짹짹거리는 새처럼 입술을 움직인다.
“자 받으시오. 젖을 주시오. 이제 다 나았소.”
어머니는 너무도 어리둥절해서 어린 아이를 받아서 먼지 속에 주저앉은 채 그대로 아이에게 입맞춤을 하고 쓰다듬고 젖을 주고 하며, 몹시 흥분하여 어린 것 외에는 다른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한 로마인이 예수께 묻는다. “아니 선생은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가 있었습니까? 나는 총독의 주치의이고 학자입니다. 그런데 장애물을 제거하려고 해보았지만, 깊숙히, 너무 깊숙히 들어가 있었습니다! … 그런데 선생님은 … 그렇게 …”
“선생은 학자이시지만 참 하느님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때문에 찬미받으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곳을 떠나려고 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의 작은 한 떼가 개입할 필요를 느낀다. “선생은 어떻게 감히 외국 사람들에게 접근하셨습니까? 저들은 타락하고 부정해서 저들을 가까이하는 사람들도 저들과 같이 됩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은 –그들은 세 사람이다. – 엄하게 똑바로 바라보시고나서 말씀하신다. “당신은 악제가 아니시오? 오래된 상점들 근처에 사는 장사꾼과 거래를 맺어보려고 지난 티쉬리달에 여기 왔던 아조에서 온 사람이 아니오? 또 당신은 로마인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려고 여기 온 라마의 요셉이 아니오? 여기 왜 왔는지는 나나 당신이나 잘 알고 있지 않소? 그러면? 당신들은 부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오?”
“의사는 결코 외국인이 아닙니다. 의사는 육체를 치료하는데, 육체는 모든 사람이 같습니다.”
“영혼도 그렇지요. 육체보다도 더 그렇지요. 게다가 내가 무엇을 치료했소? 어린 계집 아이의 죄없는 육체를 고쳐 주었소. 그리고 나는 이와 마찬가지로 무죄하지 않은 외국인들의 영혼도 고쳐 주기를 바라오. 의사로서 또 메시아로서. 그러니까 나는 어떤 사람에게도 접근할 수 있소.”
“아닙니다. 못하십니다.”
“못한다고요, 악제? 그러면 당신은 왜 로마의 상인과 거래를 하고 있소?”
“그 사람이 내게는 상품과 돈으로만 이웃일 뿐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그의 살을 만지지 않고, 그 사람의 손이 만진 것만을 만지기 때문에 당신은 부정을 타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이로군요. 오! 눈 멀고 잔인한 사람들!
다들 들으시오. 바로 이 사람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예언자의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는 사제들에게 법을 물어보아라. <제물로 바쳤던 고기를 싼 옷자락에 빵이나 익힌 음식이나 포도주나 올리브 기름이나 그밖에 어떤 음식이 닿았다고 하여, 그런 것이 제물처럼 거룩해지느냐.>고 물어보아라. 사제들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였다. 악제가 또 <몸이 시체에 닿아 부정을 탄 사람이 어떤 음식을 만졌으면, 그 음식도 부정을 타느냐?> 하고 물으니 사제들은 <부정을 탄다.>고 대답하였다.’
당신들은 이와 같은 교활하고 거짓이고 통일성이 없는 행동방식으로 선을 배제하고 단죄하며 당신들의 이익에 유리한 것만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경멸도 혐오도 없어지게 됩니다. 당신들은 개인적인 손해를 피하기 위해서 어떤 물건이 부정하거나 다른 물건을 부정하게 만드는지, 또 다른 물건이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합니다. 그러면 거짓말하는 입을 가진 사람들, 당신들은 거룩하게 하지 못한다고 증언하면서, 어떻게 부정한 물건에 닿았던 것은 그것에 닿는 것을 부정하게 할 수 있다고 공언할 수 있습니까?
진리의 법의 사제로서 거짓말을 하는 당신들, 진리의 법을 새끼 꼬듯 배배 꼬아서, 오직 당신들의 이익에 도움이 될 어떤 것을 거기에서 끌어내려는 목적으로 그것을 이용하는 진리의 법의 사제로서 거짓말을 하는 당신들, 종교적인 구실로 당신들의 인간적인, 실로 인간적인 원한을 토로하는 위선자이고, 하느님의 것을 모독하는 사람이며,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을 욕하고 원수 취급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 당신들이 스스로 모순된 말을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까? 정말 잘 들어두시오. 당신들의 행위 하나하나, 당신들의 결론 하나하나, 당신의 행동방식 하나하나가 일련의 교묘한 기계장치에 의해서 움직이는데, 당신들의 이기주의, 격정, 성실성 결여, 증오, 지배욕, 샘 따위가 그 기계장치의 바퀴와 용수철과 중량과 졸라매는 끈 노릇을 합니다.
이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탐욕스럽고, 공포에 떨고, 증오심에 불타면서, 당신들은 당신네 특권계급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당신들보다 우월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오만한 공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들은 당신들에게 공포와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사람과 같은 사람 취급을 당해 마땅한 사람이 됩니다! 하깨가 말하는 것과 같이 곡식 스무 말의 무더기를 가지고 열 말의 무더기로 만들고, 포도주 쉰 통을 가지고 스무 통으로 만들로 나머지는 가로채는 당신들입니다. 당신들이 사람들에게 보여야 할 모범으로도 그렇고, 하느님께 드려야 할 사랑으로도 그렇고, 곡식섬 무더기와 포도주통 무더기에서 빼낼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가 고픈 사람들을 위하여 당신들의 재산을 가지고 거기에 보태야 할 터인데 말입니다. 당신들은 뜨거운 바람과 곰팡이병과 우박으로 당신들의 손으로 이룩한 모든 것이 불모의 상태로 돌아가는 일을 당해 마땅합니다.
당신들 중에서 내게 오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당신들이 보기에는 지저분한 사람들, 쓰레기 같은 사람들, 참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저 사람들, 또 저 사람들입니다. 그 하느님께서 말과 일로 당신을 나타내시는 그 사람들이 내게 옵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당신들은! 당신들은 벽감(壁龕)을 만들어 가지고 그 안에 들어앉아 있습니다. 우상들과 같이 비정하고, 냉담하게 향과 예배를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자신을 신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참 하느님을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당신들에게는 무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감행하지 못하는 것을 당신들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은 위험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이지 당신들은 우상들이고 또 큰 우상의 종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감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행하는 사람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서 하느님께서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가시오! 가서 내 뒤를 밟으라고 당신들을 보낸 사람들에게 보고하시오. 돈을 주는 사람들에게 상품이나 조국이나 성전을 파는 일은 부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장사꾼들을 나는 경멸한다고. 자신의 살과 피만을 위하고, 병을 고치기 위하여는 외국인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 것도 부정타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짐승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나는 혐오를 느낀다고 그들에게 말하시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오직 한 가지 척도(尺度)가 있을 뿐이지 두 가지 척도가 있지 않다고 그들에게 말하시오. 메시아이고 의인이고 조언자이고 놀라운 사람인 나, 주님의 성령과 그 분의 일곱 가지 은혜를 받을 사람, 외양을 보고 판단하지 않고 마음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에 따라 심판할 사람, 귀로 듣는 것에 따라 단죄하지 않고 각 사람 안에서 듣게 될 영의 목소리에 따라서 단죄할 사람, 비천한 사람들을 지켜 주고 가난한 사람들을 정의로 심판할 사람, 내가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나는 이 세상에서 흙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을 벌써 심판하고 치는 중이며, 내 호흡의 입김이 불경건한 사람을 죽게 하고 그의 소굴을 무너뜨리겠지만, 정의와 신앙을 갈망해서 주님의 지식을 넘치게 받기 위하여 내 산에 오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생명과 빛, 자유와 평화가 될 것이라고. 이것은 이사야서에 있는 말이지요?
내 백성이여! 모든 것은 아담에게서 오고, 아담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아버지께서 이룩하신 것이고, 나는 여러분 모두를 아버지께로 모아 갈 의무가 있습니다. 거룩하시고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아버지, 그래서 저는 방황하는 자식을 사랑의 목소리로 불러서 모으고, 물리면 죽는 뱀들에 대해서 모세가 높이 올렸던 막대기와 같은 제 목자의 지팡이 아래 모아 가지고 당신께로 데려갑니다. 당신이 당신의 나라와 당신의 백성을 가지시도록 하려고. 그리고 저는 각 사람 안에서 불보다도 더 빛나는 한 점, 즉 영원한 광채이신 당신에게서 오는 불티인 영혼을 보기 때문에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오, 영원한 갈망! 오, 지칠 줄 모르는 의지!
제가 원하는 것이 이것이고, 제가 열망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전체가 당신의 이름을 노래하는 땅.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인류.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구속. 그들 모두를 당신 뜻에 복종하도록 할 강한 의지. 천국에 끝없는 호산나 소리를 가득 채울 영원한 승리 … 오! 수많은 하늘! … 저기 하느님의 미소가 보입니다. … 그리고 이것은 사람들의 모든 냉혹에 대한 보상입니다.”
그 세 사람은 우박처럼 쏟아지는 비난을 받으며 도망쳤다. 다른 사람들은 로마인이건 히브리인이건 모두 입을 벌린 채 있다. 젖을 배불리 먹고 엄마의 품에서 조용히 자고 있던 어린 딸을 안은 로마 여인은 있던 곳에 그대로, 거의 예수의 발 앞에 있으면서 모성의 기쁨과 영적인 기쁨으로 눈물을 흘린다. 당신의 황홀경에서 번쩍이고 계신 것 같은 예수의 저항할 수 없는 결론을 듣고 우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당신의 눈과 정신을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시어 군중을 보시고 아기 어머니를 보신다. …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작별인사의 손짓을 하시고 나서 지나가시면서 젊은 로마 여자를 마치 그의 믿음 때문에 강복하시려는 듯이 손으로 살짝 스치신다. 그런 다음 당신 제자들과 함께 떠나신다. 그 동안 사람들은 아직 감동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

(젊은 로마 여자는, 혹 우연히 닮은 것이 아니면, 갈바리아로 가는 길에 쿠자의 요안나와 같이 있던 로마 여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여자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으므로 자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