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주: 옛날에 노예나 죄수들을 시켜 노를 젓게 하던 돛단배.
예수께서 크고 꽤 아름다운 광장 한가운데에 계시다. 그 광장에서 해변까지 매우 넓은 길이 나 있다. 바로 조금 전에 갤리선 한 척이 항구를 떠나 바람과 노에 밀려 먼 바다로 나간다. 다른 갤리선 한 척은 돛들을 졸라매고 배를 적당한 위치로 돌리느라고 한 쪽 노들만 움직이는 것을 보아 항구로 들어오려고 조종하고 있는 중이다. 항구가 광장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에 있을 것이 틀림없다. 광장 옆으로는 바깥벽에 뚫린 구멍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으로 되어 있는 넓은 집들이 늘어서 있다. 가게는 없다.
“이제는 어디로 갑니까? 선생님은 동양인들의 동네보다는 오히려 이리로 오려고 하셨는데, 이곳은 이교도들이 사는 곳입니다. 누구더러 선생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십니까?” 하고 베드로가 물으면서 예수께 이리 온 것을 비난한다.
“우리는 저기 바다 근처 저 모퉁이로 간다. 거기서 말하겠다.”
“물결에 대구요?”
“물결도 하느님께 창조되었다.”
그들은 그리로 간다. 이제는 그들이 바로 그 구석에 있는데 거기에서는 조금 전에 본 갤리선이 천천히 들어와서 정박하는 항구가 보인다. 선원 몇 사람이 부두를 거닐고 있고, 과일 장수 몇 사람이 물건을 팔려고 위험을 무릎쓰고 로마 배 있는 데로 간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수께서는 벽에 기대 서시어 정말 물결을 보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사도들은 이 상황을 별로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으면서 예수의 주위에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서 있고, 어떤 사람들은 의자 노릇을 하는 것 같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바위에 앉아 있다.
“자기가 권력이 있고 건강하고 행복한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이제는 내게 무엇이 필요한가? 또 누가 필요한가? 아무도 필요치 않다. 내게는 없는 것이 없고, 나 혼자서 살 수 있다. 하느님의 법률이나 명령 또는 도덕의 명령들이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법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하고.”
장사꾼 하나가 쩡쩡 울리는 이 목소리를 듣고 돌아서서 예수께로 오는데, 예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신다. “지혜가 없고 믿음이 없는 남자와 여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해서 자기가 크건 작건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지만, 그가 악과 유사성(類似性)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나타냅니다.”
사람들이 갤리선과 다른 여러 배에서 내려 예수께로 온다.
“인생은 오늘은 고요하다가 내일은 성난 파도가 일어나는 바다보다도 더 변덕이 심하다는 것을 곰곰히 생각할 때에 사람은 자기가 하느님과 덕행과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말로 나타내지 않고 행동으로 나타냅니다. 변하는 바다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안락과 권력이 내일은 비참과 무능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때에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잃은 사람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저 갤리선에는 전에 행복하고 권력이 있다가 지금은 노예가 되고 죄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죄 있는 사람으로, 따라서 두 번 노예로 간주되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한 번은 그들이 아무 보람없이 무시했던 인간의 계율의 노예가 됩니다. 보람없이 무시했다는 것은 인간의 계율은 그대로 있고 그것을 어기는 사람들을 벌하기 때문입니다. 또 한 번은 자기의 잘못을 미워하기에 이르지 못하는 죄 있는 사람들을 영원히 차지하는 사탄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선생님이 여기에 오시다니?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오시기를 바랍니다. 뿌블리우스 귄띨리아누스. 당신이 보다시피 내가 왔습니다.”
“그것도 바로 이곳 로마인들의 동네에. 저는 선생님을 다시 뵐 줄을 생각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말씀을 듣는 것은 기쁩니다.”
“나도 기쁩니다. 저 갤리선에는 노젓는 사람이 많습니까?”
“많습니다. 대부분이 전쟁포로들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십니까?”
“배 가까이 가고 싶은데요.”
“오십시오. 당신들은 비키시오.” 하고 가까이 왔던 얼마 안 되는 사람들에게 명령하니 그들은 욕설을 중얼거리면서 빨리 비킨다.
“그냥 놔두시오. 나는 사람들이 빽빽이 있는 데 끼여 있는 것이 습관이 되었어요.”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더 멀리는 안 됩니다. 군용 갤리선이니까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느님께서 이것을 당신에게 갚아주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기 시작하는데, 로마 군인은 그 훌륭한 제복 차림으로 예수 곁에서 보초를 서는 것 같다.
“비통한 사건의 결과로 노예가 된 여러분, 즉 한 번만 노예가 된 여러분, 일평생을 노예로 있을 여러분. 그러나 그들의 사슬 위에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 한 방울, 그들의 살에 고통의 흔적을 남기는 매 한 대 한 대가 그들의 수갑을 풀어주고, 죽지 않는 어떤 것을 꾸며주며, 마침내 그들에게 하느님의 평화를 열어줍니다. 하느님은 가엾고 불행한 당신 자식들의 친구이시고, 이 세상에서 고통이었던 모든 것 대신에 많은 기쁨을 그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갤리선 안에서는 예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갤리선 노젓는 죄수를 지키는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온다. 물론 갤리선 노젓는 죄수들은 그들 중에 끼여 있지 않다. 그러나 노들이 나온 구멍들을 통해서 예수의 힘있는 목소리가 그들에게까지 오는 것을 들을 것이 틀림없다. 예수의 목소리는 물이 빠져나가는 이 시간에 조용한 공기 속으로 퍼진다. 귄띨리아누스는 어떤 병사가 불러서 떠나갔다.
“나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저 불행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고통을 잘 참아 받아서 그 고통이 다만 갤리선과 인생의 사슬을 더 빨리 끊는 불꽃이 되게 해서 인생이라는 이 보잘 것 없는 하루를 하느님을 갈망함으로 태워버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둡고, 폭풍우가 몰아치고 공포와 궁핍이 가득한 하루와 같은 인생을 태워버리고, 다시는 공포도 고통도 없는 빛나고 청명한 하느님의 태양 속으로 들어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비통한 운명의 희생자들이여, 여러분의 고통 중에서 착하게 살 줄 알고 하느님을 갈망하기만 하면 천국의 크나큰 평화와 무한한 자유 속에 들어갈 것입니다.”
뿌블리우스 귄띨리아누스가 다른 병사들과 같이 돌아오고, 그 뒤에는 노예들이 든 가마 하나가 오는데, 병사들이 그 가마 앞에 길을 비키게 한다.
“하느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하느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는 굴복한 민족들의 자식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갈리아 사람들, 이베리아 사람들, 트라키아 사람들, 게르만 사람들, 켈트 사람들, 여러분은 여러분의 숲 속에 하느님을 나타내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혼은 하늘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예배의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러분의 육체 안에 영혼을 넣어 주신 참 하느님을 발견할 줄을 모릅니다. 그 영혼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인 우리의 영혼과 같고, 여러분을 굴복시킨 강력한 로마인들의 영혼과 같으며, 선에 대해서 같은 의무와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영혼에 대하여 선, 즉 참 하느님께서 충실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역시 선에 대하여 충실하시오. 여러분이 지금까지 숭배한 하나나 여러 신들, 어머니의 무릎에서 그 이름을 배운 신들, 여러분이 고통을 당하는데 그 신에게서 위로가 오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은 생각하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신, 여러분이 하루하루를 절망 속에서 지내며 미워하고 저주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신은 참 하느님이 아닙니다.
참 하느님은 사랑과 연민 자체이십니다. 혹 여러분의 신들이 이러했습니까? 아닙니다. 그 신들은 냉혹, 잔인성, 거짓말, 위선, 악습, 도둑질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랑을 받으리라는 바람과 이렇게 많은 고통을 당한 뒤에는 쉬게 된다는 확신이라는 최소의 위안도 없이 여러분을 내버려둡니다. 여러분의 신들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사랑이시요 연민이신 하느님, 그분이 존재하신다고 내가 확실히 말하는 하느님은 하늘과 바다와 산과 수풀과 나무와 꽃과 짐승과 사람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승리한 사람의 마음에 이 세상의 불쌍한 사람들에 대하여 당신의 연민과 사랑과 비슷한 연민과 사랑을 넣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오 유력자들이여, 지배자들이여, 그대들도 모두 같은 근원에서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시오. 불행히 그대들의 손아귀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악착스럽게 굴지 말고, 잘못을 하나 저지른 탓으로 갤리선의 걸상에 붙들어매지게 된 사람들에 대하여 인정을 베푸시오.
사람은 수없이 죄를 많이 짓습니다. 다소간 은밀한 죄를 안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곰곰히 생각하면, 여러분은 같은 죄를 지었으면서도 벌을 받지 않고 있는데, 여러분보다 운이 좋지 못해서 같은 죄를 지었다고 벌을 받은 형제들에 대하여 친절을 베풀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정의는 그 판단에 있어서 이다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정의도 이와 마찬가지로 불확실하면 불행한 일일 것입니다. 죄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지만 죄지은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이 죄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무죄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는지 알려고 애쓰지 맙시다. 그것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에 대하여 불공평하고 증오를 가득 품은 사람에 대한 너무나 큰 비난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죄를 짓기는 했지만 강력한 힘에 밀려 죄악을 저지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들의 잘못은 부분적으로 변명이 됩니다. 따라서 갤리선 담당자 여러분은 인정을 가지시오. 인간의 정의 위에는 훨씬 더 높은 하느님의 정의가 있습니다. 왕과 노예, 바위와 모래알을 창조하신 분이신 참 하느님의 정의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노를 젓는 여러분도, 갤리선 노예 담당자들인 여러분도 내려다보십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이유없이 잔인하게 굴면 여러분에게는 불행이 올 것입니다. 참 하느님의 메시아인 나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그것을 확실히 말합니다. 여러분이 죽으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영원한 갤리선에 묶어놓고 피에 물든 채찍을 마귀들에게 맡기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여러분이 한 것과 같은 고문을 당하고, 여러분이 때린 것과 같은 매를 맞을 것입니다. 그것은 죄지는 사람을 벌할 것을 규정하는 인간의 법률이 있기는 하지만, 벌할 때에 도를 지나쳐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기억할 줄 아시오. 오늘 권력있는 사람이 내일 비참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영원하십니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고 싶습니다. 특히 여러분의 사슬을 끊고 여러분에게 잃어버린 자유와 고국을 돌려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갤리선의 노예인 형제 여러분, 비록 여러분이 내 얼굴은 보지 못하지마는, 나는 여러분의 마음과 그 마음의 모든 상처를 모르지 않습니다. 강한 사람들의 노예가 된 불쌍한 사람들인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줄 수 없는 자유와 이 세상의 조국 대신에 더 고상한 자유와 더 훌륭한 고향을 주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해 포로가 되어 내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구제하기 위하여 나 자신을 바치겠습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즉 사람들이 여러분을 그렇게 부르는 것처럼 이 세상의 치욕이 아니고, 오히려 가혹한 전쟁과 준엄한 재판에서 알맞은 정도를 잊어버린 사람들의 수치가 되는 여러분을 위해서도 이 세상에 새로운 계율을 세워놓겠고, 하늘에는 즐거운 거처를 만들어놓겠습니다. 울고 있는 하느님의 아들들이여, 내 이름을 기억하시오. 이것은 벗의 이름입니다. 여러분이 형벌을 받는 중에 이 이름을 부르시오. 만일 여러분이 나를 사랑하면, 비록,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서로 보는 일이 없더라도 여러분이 나를 차지하리라는 것을 확실히 믿으시오. 나는 여러분의 친구인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참 하느님의 이름으로 나는 여러분을 위로합니다. 평화가 빨리 여러분에게 오기를 바랍니다.”
대부분이 로마인인 군중이 예수 주위에 모여들었다. 예수의 새로운 사상에 모든 사람이 놀랐다.
“아이고! 선생님은 제게 새로운 일들을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생각한 적은 이제껏 없었지만,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느낍니다 ….”
뿌블리우스 귄띨리아누스는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감격도 하면서 예수를 쳐다본다.
“여보시오, 사실이 이렇습니다. 만일 사람이 깊이 생각한다면 절대로 죄를 짓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고! 아이고! 기막힌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만일 사람이 깊이 생각하면 …’ 이라고 말씀하셨지요 ….”
“ … 그러면 절대로 죄를 짓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아니, 그건 사실입니다! 아이고! 선생님은 당신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아십니까?!”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과 결합해 있기만 하면 나처럼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로마인은 점점 더 감탄하는 “아이고!” 소리를 연발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저 갤리선 노예들에게 위안을 주어도 되겠습니까? 나는 돈이 있습니다. …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들이 알도록 과일 한 개, 사탕 한 알이라도.”
“그걸 이리 주십시오.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저기에 큰 권한을 가지고 있는 부인이 있으니, 그분께 물어보겠습니다.” 뿌블리우스는 가마있는 쪽으로 가서 겨우 벙싯 벌어진 커어튼 근처에서 말한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전권을 받았습니다. 간수들이 악용을 하지 못하게 나누어 주는 것을 가서 감시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로마제국의 군인이 전쟁포로인 노예들에 대해서 동정을 베푸는 유일한 경우가 될 것입니다.”
“첫번째이지, 오직 한 번만 있을 것은 아닙니다. 노예가 없어지는 날이 언젠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내 제자들이 갤리선 죄수들과 노예들 가운데 내려가서 그들을 형제라고 부를 것입니다.”
“아이고” 소리가 또 한바탕 조용한 공기를 뚫고 지나간다. 그동안 뿌블리우스는 갤리선 노예들을 위하여 과일과 포도주가 넉넉히 마련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는 갤리선에 올라가기 전에 예수의 귀에 대고 말한다. “저 안에는 글라우디아 쁘로꿀라가 있습니다. 그 부인이 선생님의 말씀을 더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선 선생님께 무엇인가를 청하고 싶어합니다. 가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가마 쪽으로 가신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커어튼이 겨우 벌어지면서 30대의 아름다운 여자가 보인다.
“지혜의 갈망이 부인에게 가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은 영혼이 하늘을 기억한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우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면 우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 그것이 영원합니까?”
“영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하느님을, 자기를 창조하신 하느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영혼이란 어떤 것입니까?”
“영혼은 참으로 인간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은 글라우디아 일족 출신이라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지요. 사람은 하느님의 집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보다 더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글라우디아 씨족의 피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원이 있고 또 끝이 있을 권력있는 가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영혼을 통해서 하느님의 피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혼이 인간의 창조주이신 영원하시고 강력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의 신령한 피이기 때문입니다. – 하느님은 지극히 순수한 영이시니까요. – 그러므로 사람은 그에게 있는 영혼으로 영원하고 강력하고 거룩합니다. 그리고 이 영혼은 하느님과 결합해 있는 한 살아 있습니다.”
“저는 이교도입니다. 그러니까 제게는 영혼이 없군요 ….”
“당신에게도 영혼이 있습니다. 다만 그 영혼이 혼수상태에 빠져 있을 뿐입니다. 영혼을 깨워 진리와 생명에 눈뜨게 하시오 ….”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
“정의가 당신의 마음을 끌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가시오.”
“너희들이 보다시피 여기에도 청중이 있었다.” 하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로마인을 빼놓고는 누가 선생님의 말씀을 알아들었겠습니까? 그들은 야만인인데요!”
“누가 알아들었겠느냐고? 모두 다 알아들었다. 평화가 그들에게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나를 기억할 것이다. 우리를 환대해 주는 집에 가서 식사를 하자.”
“선생님, 저 여자는 선생님이 저 병자를 고쳐주신 날 제게 말을 한 바로 그 여자입니다. 저는 그 여자를 보고 알아보았습니다.” 하고 요한이 말한다.
“그러니까 이곳에도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너희도 알겠구나. 그러나 너희들이 매우 만족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내가 이스라엘을 위해서만 오지 않고 모든 민족을 위하여 왔으며 또 너희를 준비시킨 것도 모든 민족을 위해서라는 것을 너희들에게 믿게 할 그날은 내가 많은 일을 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잘 들어두어라. 너희 선생에게서 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기억해두어라. 아무리 하찮은 사실이라도 언젠가 사도직을 위한 하나의 준칙(準則)이 되지 않을 것은 하나도 없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연민 가득한 서글픈 미소를 지으신다.
오늘 아침에는 예수님이 내게도 미소를 보여 주셨다. … 나는 너무도 낙망했기 때문에 여러가지 일로 인해서 울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데서 오는 피로, 그것도 하느님에게서 오는 그 많은 인자와 작은 요한(마리아 발또르따의 애칭임)에게 있어서의 그 많은 피로가 아주 쓸 데 없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글을 쓰는 데서 오는 피로가 그 중 작은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울면서 선생님을 불렀다. 그리고 선생님은 친절하게도 나만을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내 생각을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예수님은 어깨를 들썩하셨다. 그것은 이와 같은 뜻이었다. “세상과 세상이 말하는 이야기들을 내버려두어라.” 그리고 나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아니 뭐라고? 나를 더 이상 도와주고 싶지 않다고? 세상이 내 말을 알고자 하지 않는다고? 그러면 내가 그 이야기들을 충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되풀이해 말하는 데에서 느끼는 기쁨과 네가 그 이야기들을 듣는 데에서 느끼는 기쁨을 위해서 우리 서로 이야기하자꾸나. 사도직에서 오는 권태! … 어떤 일보다도 더 견디기 어려운 권태! 그것들이 가장 청명한 날을 어둡게 하고, 가장 맛있는 음식을 아주 쓰게 만든다. 모든 것이 재와 진흙이 되고 메스껍고 쓰게 된다. 그러나 내 영혼아,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못 가졌기 때문에 죽어가는 속인(俗人)들의 권태와 의심과 비참의 무거운 짐을 우리가 대신 지는 시간이다. 이것이 우리가 더 행동하는 시간이다. 이 말은 작년에도 벌써 네게 했었다.
세상을 잠그는 모든 것에 잠긴, 즉 사탄이 보내서 세상이 빠져 죽는 물결에 잠긴 영혼이 ‘이렇게 해서 뭘 하나?’ 하고 자문한다. 그러나 그의 하느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영혼은 물에 빠져 죽지 않는다. 잠시 동안은 빛을 잃고 영적인 권태의 메스꺼운 물 속에 삼켜지지만, 그런 다음에는 더 싱싱하고 더 아름답게 되어 빠져 나온다. 네가 말하는 ‘나는 이제 아무 짝에도 소용 없어’ 하는 말은 이 권태의 결과이다. 너는 이제 아무 짝에도 소용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나이고, 그러니까 너는 항상 대변자로서의 네 역할을 훌륭하게 할 것이다. 물론 만일 내 선물을 무겁고 매우 귀중한 보석 모양으로 인색하게 땅에 묻든가 조심성 없이 쓰든가 하는 것을 내가 본다든지, 또는 사람들의 악의로 인해서 어떤 경우에는 그 선물과 그 선물이 거쳐서 오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보증을 해야 하는데, 게을러서 그런 보증으로 보호하려고 힘쓰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을 내가 보게 되면, 나는 ‘이젠 그만이다’ 하는 말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 말을 돌이킬 수 없는 말이 될 것이다. 오늘은 꼭 소나기를 맞는 작은 꽃과 같은 내 작은 영혼을 빼놓고는 모든 사람에게 이 말로 충분하다. 그래 이 애무를 받으면서도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의심할 수 있느냐? 자! 네가 전시에도 나를 도와주었으니, 지금도 또 도와다오. … 할 일이 정말 많다.”
그래서 나는 내 예수님이 긴 손으로 나를 쓰다듬어 주시고 지극히 다정스러운 미소를 보내시는 가운데 진정되었다. 예수님은 나만을 위해서 오실 때는 항상 그러시는 것처럼 흰 옷을 입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