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완전히 새벽이 되지는 않았다. 예수께서는 황폐하게 된 도라의 과수 원 가운데에 계시다. 죽거나 죽어가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그 중에 는 벌써 쓰러지고 뽑힌 나무도 많이 있다. 예수의 둘레에는 도라와 죠가나의 농부들과 사도들이 더러는 서 있고 더러는 쓰러진 나무줄기에 앉아 있다.
예수께서 말씀을 시작하신다. “새 날이 밝아오고 새 출발이 시작될 참입니다. 그런데 떠나는 것은 나만이 아니고 여러분도 다른 주인에게로 넘어가기 때문에 물질적으로는 아니지만 정신적으로는 떠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착하고 경건한 다른 농부들과 합쳐져서 오직 하나의 가정을 이룰 것인데, 거기서 여러분은 그렇게 하는데 기만책을 쓰지 않고는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서로서로 믿음을 부축해 주시오. 서로서로 도우시오.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너그럽게 보아 주시오. 서로서로 교화의 원인이 되도록 하시오.
이런 것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비록 다른 방식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어제저녁 사도들에게서 구원은 사랑에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어떻게 사랑이 둔중한 인간성을 초자연적인 성질로 바꾸는지, 사랑이 없으면 죽인 다음 익히지 않은 짐승처럼 썩거나 썩히는 것이 될 수 있고, 또는 적어도 불을 피우기에 알맞은 나무가 되지 못하고 물 속에서 썩는 나무처럼 무익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사람을 가지고 사랑이 어떻게 벌써 하느님의 분위기 속에서 사는 사람이 되게 하고, 따라서 부패를 면하고 이웃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게 하는지를 순박하고 훌륭한 말로 여러분에게 지적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정말이지 우주의 큰 힘은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말을 결코 싫증내지 않고 계속 하겠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주님께 대한 사랑을 아담과 하와가 거절한 데서 생겨난 죽음과 병들을 위시해서 이 세상의 모든 불행이 사랑이 없는 데에서 옵니다.
사랑은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반란자입니다. 반란자는 그가 반란을 일으킨 대상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쟁이나 경쟁을 하다가 망하는 어떤 가정이나 두 가정의 파멸 같은 전반적이거나 개인적인 다른 불행들은 또 어디에서 옵니까? 이기주의에서 오는데, 이것은 사랑의 결핍입니다. 그리고 가정의 파멸과 더불어 하느님의 벌로 물질적인 파산도 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일찍이든 늦게든 사랑없이 사는 사람을 항상 벌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곳에 전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 전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나를 미워하고, 어떤 사람들은 공포심을 가지고 나를 보고, 또는 새로운 벌 모양으로 내 예를 들고, 또는 벌이 무서워서 감수합니다 -전설은 내 눈길이 이 밭들에 저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눈길이 아니었고, 옳지 않고 잔인한 사람의 이기주의에 대한 벌이었습니다. 만일 내 눈길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의 땅을 불태워야 한다면, 정말이지 팔레스티나에는 푸르름이 별로 남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한 모욕은 절대로 복수를 하지 않고, 이웃에 대한 이기주의의 죄에 고집스럽게 남아 있고 계명을 독성적(瀆聖的)으로 비웃는 사람들은 아버지께 맡깁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들을 설득하려고 애쓰는 말과 그들을 사랑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잔인해집니다. 나는 언제나 손을 들어 뉘우치는 사람에게 ‘네 죄를 사해 준다. 안심하고 가거라’ 하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변하기를 원치 않는 냉혹에 동의해서 사랑을 모욕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을 항상 머리에 새겨 두어서 사물을 저의에 알맞는 빛으로 보도록 하고, 또 존경으로 인해서 생겼거나 분노를 곁들인 공포로 인해서 생겼거나, 어쨌건 진실과는 다른 전설들을 논박하도록 하시오.
여러분은 다른 주인에게로 갑니다. 그러나 이 땅을 떠나지는 않습니다. 이 땅의 지금 상태로 보아서 이 땅을 보살피는 것은 어리석은 일로 보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이 땅에서 여러분의 의무를 다하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이제까지는 무자비한 벌이 무서워서 이 땅을 돌보았습니다. 이제는 그 일을 또 하되, 여러분이 받은 것과 같은 취급을 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하시오. 나는 여러분에게 이런 말까지도 하겠습니다. 즉 여러분이 인정 있는 대우를 받으면 그럴수록 여러분에게 인정을 쓰는 사람에게 일로써 인정을 갚기 위하여 기쁜 열성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고. 주인들이 그들에게 딸린 사람들에 대해 인정을 가져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이런 것을 기억하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모두가 같은 조상에서 나왔고, 사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벌거숭이로 나서, 죽은 다음에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이 썩고 재산이라는 것이 그것을 가진 사람들의 일의 결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든 부정직하게 든 그것을 모은 사람들에게서 오는 것이며, 그것을 영광으로 여길 것이 아니고 그 때문에 사람들을 압제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신 진짜 주인이 엄한 눈초리로 보시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 재산을 사랑과 조심성과 정의를 가지고 써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매수되지 않으시고 보석과 금전으로도 사로잡을 수 없고 우리의 착한 행동 덕택으로 우리의 벗을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니까 주인들이 그들에게 딸린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 하인들도 주인들에게 착하게 굴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분을 이 비천한 처지에 두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순박하게 착한 뜻을 가지고 행하시오. 여러분은 나쁜 부자의 비유를 아시지요. 여러분은 하늘에서 상을 받는 것은 금이 아니라 덕행이라는 것을 알지요. 덕행과 하느님의 뜻에 대한 순종은 하느님을 사람의 벗으로 만들어 줍니다. 사람들의 행동을 통하여 하느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일이 잘 되어 나갈 때에는 쉽습니다. 그러나 나쁜 상황에서는 어렵습니다. 그런 상황으로 인해서 하느님께서 인자하지 않다고 정신이 생각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사탄의 유혹을 받은 사람이 여러분에게 행하는 나쁜 짓을 이기고, 여러분에게 눈물을 자아내는 이 장벽 너머로 고통의 진리와 그 아름다움을 보시오. 고통은 악에서 옵니다. 그러나 이 힘이 존재하고 또 그것이 하느님의 아들들의 영적인 금에 대한 시금석이기 때문에 그것을 없애지는 못하시는 하느님께서 그 악으로 하여금 그 독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약즙을 뽑아내도록 강요하십니다. 그것은 고통이 그 날카로움으로 인해서 그들을 점점 신령하게 만들어서 그들을 성인이 되게 할 만한 그런 반응을 착한 사람들에게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착하고 공손하고 순종하시오. 주인들을 판단하지 마시오. 그들은 벌써 심판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명령하는 사람이 의인이 되어서 여러분의 길을 더 쉽게 하고 그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의무는 다하기가 힘들면 힘들수록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공로가 더 크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주인을 속이려고 하지 마시오. 부정한 수단으로 얻은 돈과 식료품은 부유하게 하지도 못하고 배부르게 하지도 못합니다. 여러분의 손과 입술과 마음을 깨끗하게 간직하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밭에 매달려 있더라도 하느님의 눈에 귀엽게 보이며 여러분의 안식일과 의무적인 명절들을 지키는 것이 될 것입니다.
정말이지, 자기 자신과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안식일과 이스라엘의 큰 명절들에 대한 계명을 지키라고 하는 율법에 복종하지 않음으로 실제로는 계명을 어기면서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듣기 위해 계명을 지키러 가는 사람들의 위선적인 기도보다는 여러분의 피로가 더 가치 있을 것입니다. 기도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일 여러분의 마음이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거룩하게 사랑하면, 안식일과 명절들의 의식을 여러분에게 거기에 참례하지 못하게 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행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강복하고 떠납니다. 해가 뜨는데, 더위가 너무 심해지기 전에 야산에 도달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그리 멀지 않으니 우리는 멀지 않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죠가나의 새 하인과 이전 하인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 농부들 가운데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강복하시며 지나가서 떠나신다.
말라 죽은 큰 사과나무 뒤에 반쯤 숨어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못 본 체하시며 지나가려고 하시자 갑자기 나타나면서 말한다. “저는 죠가나의 관리인입니다. 죠가나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의 선생님이 오시면 내 땅에 머무르시게 하고 하인들에게 말씀을 하시게 내버려두게. 그분은 좋은 일만 가르치시니까 그렇게 하면 나는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 걸세, ‘그리고 어제는 오늘부터 이 사람들이(그러면서 도라의 농부들을 가리킨다) 저와 같이 있게 되고 이 땅이 죠가나의 것이 된다는 것을 제게 알리면서 편지에 이런 말을 써 보냈습니다. ‘선생님이 오시면 말씀하시는 것을 귀담아 듣고 거기 따라서 행동하게. 우리에게 불행이 닥쳐오지 않도록. 선생님께 많은 경의를 표하게, 그러나 선생님이 이 땅에 대한 저주를 취소하시려는지 보게’ 하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죠가나가 이 땅을 사는 데에 명예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사람이 벌써 그렇게 한 것을 후회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땅은 목장이나 만드는 것이 고작일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들었소?”
“예, 선생님.”
“그러면 당신과 당신 주인이 하느님의 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처신해야할지 알 것입니다. 이것을 주인에게 알리시오. 그리고 당신에게 관해서는, 농사꾼의 피로가 어떤지를 실제로 알고 또 주인에게 잘 보인 당신이 그의 명령을 조절도 하시오. 그러나 당신 영혼을 잃는 것보다는 주인의 호의와 당신자리를 잃은 편이 던 낫소 안녕.”
“그러나 저는 선생님께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나는 우상이 아니오. 나는 은총을 주기 위해 타산적인 경의를 받을 필요가 없소. 당신이 들은 것을 실천해서 당신 정신으로 나를 공경하시오. 그러면 하느님을 섬긴 것이 될 것이고, 동시에 선생님도 섬긴 것이 될 것이오.”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여자들과 그 뒤에 따라오는 모든 농부들의 앞장을 서서 밭들을 지나가셔서, 다시 모든 사람의 인사를 받으시며 야산 쪽으로 가는 길로 들어서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