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계신데, 바로 안토니아탑 근처에 계시다. 가리옷 사람만 빼고 모든 사도가 예수와 같이 있다. 많은 군중이 성전 쪽으로 급히 간다. 사도들이나 다른 순례자들이나 모든 사람이 명절빔을 입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 오순절(五旬節) 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거지가 군중 속에 섞여 든다. 그들은 동정을 구하는 말로 그들의 불행을 구슬프게 되풀이하며 회당 가까이나 군중이 지나가는 네거리 같은 제일 좋은 자리를 향해 간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불행의 사연을 늘어놓으면서 설명하려고 애쓰는 그 불쌍한 사람들에게 동냥을 주시면서 지나가신다. 사도들이 가믈리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예수께서는 벌써 성전에 가셨었나 보다하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가믈리엘은 강의를 듣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인 스데파노가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알렸는데도 예수와 사도들을 못 본 체한 모양이다.
또 바르롤로메오가 동료들에게 “저 율법교사가 ‘도살장의 양의 무리’라고 한 말은 무슨 뜻이지?” 하고 묻는 것도 들린다.
“그 사람은 자기에게 관계되는 어떤 일에 대해서 말하는 거였어.” 하고 토마가 대답한다.
“아니야, 그 사람은 우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어. 난 그걸 똑똑히 보았어. 그리고 두 번째로 한 말이 처음한 말을 확인하는 거였어. ‘오래잖아 어린 양도 털이 깎이고 도살장으로 끌려 갈 거야’ 하고 말했거든.”
“맞아 나도 들었어.” 하고 안드레아가 확인한다.
“그건 그렇고! 나는 뒤로 돌아가서 율법교사의 동료에게 시몬의 아들 유다의 일을 알고 있는지 묻고 싶어 못 견디겠어”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야! 이번에는 유다가 진짜 병이 들었기 때문에 안 온거야. 우린 그걸 알고 있어. 아마우리 여행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모양이야. 우리는 더 잘 견디어내지만, 그 사람은 여기서 편안하게 살았거든. 그래서 잘 피로한단 말이야” 하고 알패오의 야고보가 대답한다.
“그래, 우리도 그건 알고 있어. 하지만 율법교사가 이렇게 말했어. ‘저 집단에 카멜레온이 빠졌는걸’ 하고. 카멜레온은 마음대로 빛깔을 바꾸는 저 짐승이 아니야?” 하고 베드로가 묻는다.
“맞아, 시몬. 하지만 그 사람은 틀림없이 유다가 늘 옷을 갈아입는 것을 두고 말한 거야. 유다는 젊기 때문에 옷에 집착한단 말이야. 관대하게 보아주어야 해…” 하고 열성 당원이 타협적인 어조로 말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야. 그렇기는 해도!… 정말 이상한 말들이야!” 하고 베드로가 결론을 내린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항상 위협하는 것 같아” 하고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사실은 우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래서 위협이 없는데서 까지도 위협을 보고 있는 거야” 하고 유다 타대오가 지적한다.
“그리고 잘못이 없는 데서도 잘못을 본단 말이야” 하고 토마가 결론을 내린다.
“그건 사실이야! 의심이란 건 추한 거야. 유다의 건강이 오늘 어떤지 누가 알아? 우선은 그 사람이 그 낙원과 천사들이 곁에 있는 것을 즐기고 있단 말이야.… 나도 병이 들어서 그런 즐거움을 모두 맛보았으면 좋겠어!” 하고 베드로가 말하자 바르톨로매오가 “그 사람이 이내 낫기를 바라세. 더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여행을 끝내야 해” 하고 대답한다.
“오! 치료를 받고 있을 거야,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선생님이 거기에 대해 유념하실 거야” 하고 안드레아가 잘라 말한다.
“우리가 그 사람과 해어질 때 그 사람은 열이 많았어. 어떻게 열이 그렇게 왔는지 모르겠어…” 하고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그러자 마태오가 대답한다. “열이 어떻게 오느냐구? 와야 하니까 오는 거지. 그렇지만 아무렇지 않을 거야. 선생님이 도무지 걱정을 안 하시는 걸. 위험을 보셨으면 선생님이 요안나의 저택을 떠나지 않으셨을 거야.”
과연 예수께서는 조금도 걱정을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마륵지암과 요한과 말씀하시며 동냥을 주시면서 앞서 가신다.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에게 많은 것을 설명하시는 것이 틀림없다. 그에게 이것저것 세밀한 것을 가리키시는 것이 보이니까 말이다. 예수께서는 성전 동북쪽 모퉁이의 끝쪽을 향해 가신다. 거기에는 어떤 문 못 미쳐 회당들이 있는 곳을 향하여 가는 많은 군중이 향하여 가는 많은 군중이 있다. 그 문을 “양떼의 문”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저것은 제물을 씻는 못인 베싸이다의 못이다. 지금 물을 잘 보아라 지금은 물이 얼마나 고요한지 볼 수 있지? 그러나 조금만 있으면 움직이는 것같이 되어서 부풀어 올라 저 습기표에 이르는 것을 보게 될 거다. 저 표가 보이지? 그때에는 주의 천사가 내려오고, 물은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천사가 온 데 대한 경의를 표한다. 천사는 물에 빨리 몸을 잠그는 사람을 낫게 하라는 명령을 가져온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보이지?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이 정신이 산만해서 물이 처음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한다. 또는 동정심이 없어서 힘센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마구 밀어낸다. 하느님의 표가 있을 때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 언제 나타나시는지 또는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는지 도무지 알 수 없으니까 항상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 건강의 이유로라도 절대로 이기적인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저 사람들이 누가 제일 먼저 만지느냐 또는 누가 그럴 필요가 더 많으냐 하는 것을 따지고 있기 때문에 저 불행한 사람들이 천사가 오는 은혜를 놓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설명을 마륵지암에게 하시는데 마륵지암은 정신을 차리고 눈을 크게 뜨고 예수를 쳐다보고 그동안 물도 살펴본다.
“천사를 불 수 있어요? 천사를 보았으면 좋겠어요.”
“네 나이 또래의 목동이었던 레위는 천사를 보았다. 너는 똑똑히 바라 보아라 그리고 천사를 찬미할 준비를 하고 있어라.”
어린 아이는 이제 정신을 딴 데로 팔지 않는다. 그의 눈은 물과 물 위로 번갈아 본다. 그리고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기다리고 있는 병약자, 소경, 신체장애자, 마비환자들인 하층민을 바라다보신다. 사도들도 정신 차리고 살펴본다. 해는 물 위에 여러 가지로 조명 효과를 일으키고 못을 둘러싸고 있는 다섯 줄의 회랑을 환하게 비춘다.
“보세요! 보세요!” 하고 마륵지암이 외친다. “물이 부풀어 오르고, 흔들리고, 반짝거려요! 저 빛 좀 보세요! 천사가!…” 그러면서 어린 아이는 무릎을 꿇는다.
과연 못 안에서 물이 움직이는 동안 그것을 부풀어 오르게 하여 가에로 밀어 올리는 엄청나게 큰 급작스런 물결로 부피가 늘어나는 것 같다. 물은 햇빛에 거울처럼 반짝인다. 잠시 동안 눈부신 빛이 보인다. 한 절름발이가 빨리 물에 잠겼다가 이내 물에서 나오는데, 이미 큰 흉터가 나 있지만 완전히 나은 다리를 가지고 나온다. 다른 사람들은 원망을 하면서 다리가 나은 사람과 다툰다. 그들은 요컨대 그 사람은 아직 일을 할 수 있지만, 자기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말다툼은 계속된다.
예수께서는 휘둘러보시다가 병상에서 조용히 울고 있는 마비환자를 보신다. 예수께서 그에게로 가까이 가셔서 몸을 숙이시고 그를 어루만지시면서 물으신다.
“울고 있소?”
“예. 아무도 저를 도무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 남아 있고 또 남아 있어도, 모두들 다 낫지만, 저는 낫지 못합니다. 저는 누워 있는 지가 38년이나 됩니다. 저는 모든 재산을 다 썼고, 가족은 다 죽었습니다. 이제는 먼 친척에게 얹혀 있는데, 그 사람이 아침에 저를 이리 데리고 오고 저녁 때에 다시 데려갑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그 사람에게는 정말 짐이 됩니다! 아이고! 저는 죽고 싶습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당신은 그렇게도 참을성이 있었고 믿음이 있었소! 하느님께서 당신의 원을 들어주실 거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제게는 낙심의 시간이 많이 옵니다. 선생님은 친절하시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나은 사람은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여기 남아서 불쌍한 형제들을 도와줄 수 있을 텐데요….”
“사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해야 될 거요 그러나 원한은 품지 마시오. 그 사람들은 그 생각을 못하는 것이지,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오. 병이 나은 기쁨 때문에 이기주의자가 되는 거요. 그들을 용서하시오….”
“선생님은 친절하십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안하시겠지요. 저는 못의 물이 움직일 때에 손으로 여기까지 기어 올려고 해봅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다른 사람이 저를 앞질러 갑니다. 그런데 저는 못가에 남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짓밟힐 테니까요 또 제가 여기 남아 있다 하더라도 누가 저를 도와 내려가게 하겠습니까? 선생님을 더 일찍 보았더라면 선생님께 그렇게 해달라고 청했을 텐데요….”
“정말 낫고 싶소? 그러면 일어나서 당신 병상을 들고 걸으시오!” 예수께서는 명령을 하시려고 몸을 일으키셨다. 그런데 몸을 일으키면서 마비환자도 일으키신 것 같아서, 그가 일어서더니, 믿지 못하는 것처럼 떠나가시는 예수의 뒤를 따라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을 내디디고, 자기가 정말 걸을 수 있기 때문에 소리를 지르니 사람들이 돌아다본다.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청합니다. 말쏨해 주십시오. 혹 하느님의 천사이십니까?”
“나는 천사보다 더한 사람이오. 내 이름은 연민이오 평안히 가시오.”
모두가 모인다. 그들은 보기를 원하고, 말하기를 원하고, 낫기를 원한다.
그러나 성전의 경비원들이 달려온다. 내 생각에는 그들이 못도 감시하는 모양이어서 그 요란스러운 군중을 위협해서 쫓아버린다.
마비환자가 그의 병상을 -네 바퀴에 얹어놓은 막대기 두 개에 낡은 천을 박은 것-들고 행복스럽게 가면서 예수께 외친다. “선생님을 다시 찾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이름과 얼굴을 잊어버리지 않겠습니다.”
예수께서는 군중에 섞이셔서 성곽을 향하여 다른 쪽으로 가신다. 그러나 예수께서 아직 마지막 회랑에 지나가지 않으셨는데, 가장 나쁜 계급의 유다인들이 예수께 무례한 맡을 하고자 하는 욕망에 이글이글 불타면서 돌퐁에 밀려서 오는 것처럼 온다. 그들은 찾고 둘러보고 유심히 살핀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에 대한 말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가시는데 그들은 실망하며, 경비원들이 알려주는 것에 따라 나아서 기뻐하고 있는 마비환자에게 대들어 비난을 한다. “왜 짐대를 가지고 가오? 오늘은 안식일인데 당신은 그렇게 해선 안되오.”
그 사람은 그들을 바라다보고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내가 아는건 나를 낫게 한 분이 ‘병상을 들고 걸어라’ 하고 말했다는 것뿐입니다. 내가 아는 건 이겁니다.”
“그건 틀림없이 마귀요 당신에게 안식일을 어기라고 명령했으니까 말이오.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소? 누구였소? 유다인이었소? 같릴래아 사람이었었소? 개종자였소?”
“난 모릅니다. 그분이 여기 있었는데, 내가 우는 것을 보고 가까이 와서 내게 말을 했고, 나를 고쳐 주었어요. 그분은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갔습니다. 그 애가 그분의 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한 나이에는 아들을 둘만하니까요”
“어린 아이? 그럼 그 사람이 아니야!… 이름은 뭐라고 했소?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소? 거짓말하지 마오!”
“그분은 이름이 연민이라고 했어요.”
“당신은 바보요! 그건 이름이 아니란 말이오!” 그 사람은 어께를 으쓱하고 간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자가 틀림없어. 율법교사 아니아와 자케오가 그자를 성전에서 보았대”
“그러나 그자는 아이가 없단 말이야!”
“그렇지만 그자야. 제자들과 같이 있었어.”
“하지만 유다는 거기 없었어. 우리가 잘 아는 건 유다야. 다른 사람들은… 상관없는 사람들일 수도 있어.”
“아니야, 그들이었어.”
그리고 말다툼이 계속된다. 그동안 회랑뜰에는 병자들이 가득 찬다.…
예수께서는 다른 쪽으로 해서 성전에 다시 들어오신다. 더 시내쪽으로 향해 있는 서쪽이다. 사도들이 예수를 따르고 있다. 예수께서는 사방을 둘러보신다. 그러다가 마침 찾으시던 것을 밭견하신다. 그것은 요나타인데, 그도 역시 예수를 찾고 있다.
“선생님, 그 사람 좀 낫습니다. 열이 떨어집니다. 선생님의 어머님께서도 다음 안식일까지는 오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요나타, 고맙소 당신은 시간을 잘 지켰소”
“썩 잘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라자로네 막시민에게 붙잡혔었습니다. 막시민이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솔로몬 회랑으로 갔습니다”
“내가 그에게로 가겠소. 평화가 당신과 합께 있기를. 그리고 유다 외에도 내 어머니와 여자 제자들에게도 내 인사를 전하시오.”
그리고 예수께서는 솔로몬 회랑 쪽으로 급히 가신다. 과연 거기서 막시민을 만나신다.
“라자로는 선생님이 여기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중요한 말씀을 드리려고 선생님을 뵙고자 합니다. 오시겠습니까?”
“물론, 지체없이 가겠네. 이번 주중에 갈 것이라고 말해도 되네.”
막시민도 다른 말 몇 마디를 하고 나서 간다.
“여기까지 다시 왔으니 또 기도하러 가자”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시며 히브리인들의 안마당 쪽으로 가신다.
그러나 바로 그 곁에서 주님께 감사하러 온 병이 고쳐진 마비환자를 만나신다. 기적을 받은 사람은 예수를 군중 가운데에서 보고 기쁘게 인사를 하고, 예수께서 떠나신 다음에 못에서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올 마친다. “제가 건강한 몸으로 여기 온 것을 보고 놀란 어떤 사람이 선생님이 누구시라는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메시아이시라고 그것이 사실입니까?”
“내가 메시아요 그러나 당신이 물이나 다른 힘에 의해서 나았더라도 하느님께 대한 같은 의무 즉 당신의 건강을 선을 행하는 데 써야 하는 의무는 항상 가지고 있을 거요 당신은 나았소. 그러니까 좋은 의향을 가지고 가서 당신 생활의 활동을 다시 시작하시오. 그리고 다시는 절대로 죄를 짓지 마시오. 하느님께서 더 이상 당신을 벌하실 일이 없게 하시오. 안녕. 평안히 가오.”
“저는 나이가 들었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을 섬기고 선생님을 믿기 위해 선생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나는 아무도 물리치지 않소. 그러나 오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 보시오. 만일 결심을 하게 되거든 오시오.”
“어디루요? 저는 선생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모릅니다.…”
“세상을 두루 다니오. 어딜 가나 당신을 내게로 인도할 제자들을 만나게 될 거요. 주님께서 당신을 가장 잘 비추어 주시기를 바라오.”
예수께서 이제는 당신 자리로 가셔서 기도를 드리신다.…
나는 기적을 받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유다인들을 찾아갔는지, 또는 이들이 망을 보고 있다가 그를 붙잡고 지금 그에게 말한 사람이 그를 기적으로 낫게 한 사람이냐고 물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그 사람이 유다인들과 말을 하고 나서 떠나가는데 이들은 예수께서 다른 여러 마당으로 건너가 성전에서 나가시려면 그리로 내려오셔야 하는 제단 근처로 간다. 예수께서 오시자 그들은 인사도 하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은 그렇게 많은 비난을 받고도 계속 안식일을 어깁니까? 그러면서 선생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공경하라고 하십니까?”
“보냄을 받은 사람으로요? 그보다도 훨씬 더합니다. 아들로서 그래야지요 하느님께서 내 아버지이시니까요. 그렇더라도 나는 내 사명을 계속 다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한순간도 그치지 않고 일을 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일을 하시고 나도 일을 합니다. 착한 아들은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하고, 또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일을 하기 위해서이니까요.”
사람들이 말다툼하는 것을 들으려고 가까이 온다. 그중에는 예수를 사람들도 있고, 예수께 은혜를 입은 사람들도 있고, 예수를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사랑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분을 미워하고, 많은 사람은 태도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사도들이 예수를 에워싼다. 마륵지암은 겁을 집어먹다시피 하고, 그의 작은 얼굴은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섞인 유다인들은 그들의 분노를 소리 높이 외친다. “당신이 감히 그런 말을! 오! 자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다니! 신성 모독자! 하느님은 존재하시는 분이시고, 아들을 안 가지고 계십니다! 아니 가말리엘을 부르고, 사독을 부르게. 선생님들을 모아서 이 사람 말을 듣고 창피를 주시라고 하게.”
“흥분들 하지 마시오. 그분들을 부르시오. 그분들이 지식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면, 하느님은 한 분이시되 아버지와 아들, 성령 이렇게 세위이시고, 맡씀, 즉 생각의 아들은 예언자들이 예언한 것과 같이 이스라엘과 세상을 죄에서 구하시려고 오셨다고 말할 것입니다. 나는 말씀이오. 나는 예고된 메시아요. 그러므로 아버지이신 분을 내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하느님께 대한 모독이 되지 않소. 당신들은 내가 기적을 행하고, 그 기적 덕택으로 군중을 내게로 끌어들이고 그들을 설득하기 때문에 불안해 하고 있소. 당신들은 내가 기적을 행하기 때문에 내가 마귀라고 비난하고 있소. 그러나 벨제붓이 옛날부터 세상에 와 있고, 또 사실 그를 충성스럽게 숭배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소… 그렇다면 왜 벨제붓은 내가 하는 일을 하지 못하오?”
사람들이 속삭인다. “사실이야! 저분이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예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신다. “나는 분명히 말하오. 그것은 벨제붓이 알지 못하는 것을 나는 알고, 그가 할 수 없는 것을 나는 할 수 있기 때문이오. 내가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은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기 때문이오. 어떤 사람이 누가 하는 것을 본 그것을 자기 힘으로 하게 되지 못하오. 아들인 나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본 그것밖에 하지 못하오. 그것은 내가 아버지와 영원히 하나이고, 본성과 능력이 아버지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오. 아버지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아들인 나도 하오. 벨제붓과 다른 사람들은 내가 아는 것을 앝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것을 할 수가 없소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인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나를 한없이 사랑하시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하시는 모든 일을 내게 보여 주셨고 지금도 보여 주셔서 세상에 시간이 있기 전에 당신이 하늘에서 하시는 일을 내가 이 은총의 때에 세상에서 하게 하셨소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점점 더 큰일을 내게 보여 주셔서 내가 그것을 행하게 하시고 당신들이 그것을 보고 경탄하게 하실 거요.
아버지의 생각은 그분의 행동에 무진장으로 나타나오. 나도 역시 아버지께서 생각하시고 당신 생각으로 원하시는 것을 무진장으로 이루기를 원하기 때문에 아버지를 본받소 당신들은 사랑이 결코 지쳐버리는 일없이 무엇을 만들어대는지를 알지 못하오. 우리는 사랑이오. 우리에게는 한계가 없소 그리고 사람의 세 가지 단계, 즉 하등 단계, 상등 단계, 영적 단계에 적용될 수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소 과연 아버지께서 죽은 사람들을 부활시키시고 그들에게 생명을 돌려주시는 것과 갈이 아들인 나도 내가 주고자 하는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있소. 그리고 아버지께서 아들에 대해 가지고 계신 무한한사랑 때문에 하등부분에 생명을 돌려주는 능력을 내게 주셨을 뿐 아니라 상등 부분에도 생명을 돌려주는 능력을 주셔서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정신의 오류와 나뿐 열정에서 구해 내게 하셨고, 영직인 부분에도 생명을 돌려주는 능력을 주셔서 사람의 정신에 죄에 대한 무관계성(無關係性)을 돌려주게 하셨소. 사실 아버지는 일체의 심판을 아들에게 말기셨기 때문에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오. 아들에게 일체의 심판을 말기신 것은 아들이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인류를 산 사람이기 때문이오. 그리고 아버지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정의로 그러시는 것이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돈을 지불하는 사람에게 그 물건을 주는 것이 정당하기 때문이오. 그리고 아버지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이미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과 같이 모두가 아들로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오.
만일 당신들이 아버지를 아들에게서, 또는 아들을 아버지에게서 갈라놓고, 또 사랑을 기억하지 않으면. 당신들이 하느님을 그분이 사랑받으셔야 하는 모양으로. 즉 진실과 지혜로 사랑하지 않고, 그분이 기묘한 삼위일체이신데 한 분만을 공경하기 때문에 당신들이 이단의 죄를 짓는다는 것을 아시오. 따라서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는 것과 같소 그것은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일부분만이 흠숭받는 것을 감수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전체가 흠숭받기를 훤하시기 때문이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완전한 사랑의 생각으로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오. 그러므로 그 사람은 하느님께서 올바른 일을 할 줄 아신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이오.
나 진정으로 말하지만 내 말을 귀담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단죄를 받지 않고, 오히려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오. 그것은 하느님을 믿고 내 말을 받는다는 것은 죽지 않는 생명을 자신 안에 받는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오. 죽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시간, 그리고 마음 속에 생명을 주는 그 목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은 사람은 샅게 될 시간이 오고 있소 아니 많은 사람에게는 그 시간이 벌써 와 있기도 하오. 율법교사 양반, 무슨 말을 하겠소?
“나는 죽은 사람들은 이제 아무 것도 듣지 못하게 되었고, 그러니까 당신은 머리가 돈 사람이라고 말하겠소”
“하늘은 당신이 말하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과 당신의 지식은 하느님의 지식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당신에게 설득할 것이오. 당신들은 초자연척인 것을 너무도 인간화해서 이제는 단어(單語)들에 직접적이고 현세적인 의미밖에 주지 않게 되었소. 당신들은 하가다(Haggada)를 틀에 박힌 말투로, 즉 당신들의 말투로 가르치고 그 진실한 비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소. 그래서 이제는 영을 제압하는 인간성에 눌려서 기진맥진해진 당신들의 영혼으로 당신들이 가르치는 것조차도 믿지 않게 되었소.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당신들이 이제는 은밀한 세력과 싸우지 못하게 된 이유요.
내가 말하는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의 죽음이오. 그들의 귀로 내말을 듣고, 그것을 마음 속에 받아들이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 올 것이오. 그 사람들은 비록 영으로 죽었다 하더라도 생명을 도로 얻을 것이오. 내 말은 퍼지는 생영이기 때문이오. 그리고 나는 내가 주고자 하는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있소. 그것은 내가 내 안에 완전한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완전한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과 같이 아들도 자기 자신 안에 완전하고, 꽉 차고 영원하고, 한없고, 전해줄 수 있는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오. 그리고 생명과 더불어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심판할 권한도 주셨소. 그것은 아버지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고, 그래서 사람을 심판할 수 있고 또 심판해야 하기 때문이오.
그리고 내가 내 말로 행하는 이 첫째 부활, 즉 영척인 부활을 보고 놀라지 마시오. 당신들은 훨썩 더 믿기 힘든, 둔해진 당신들의 영혼으로는 더 믿기 힘든 부활들을 볼 것이오. 나 분명히 말하지만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적인 영의 부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오. 멀지 않아 하느님의 아들의 목소리가 무덤 속으로 스며들어가 그곳에 있는 모든 이가 그것을 들을 날이 올 것이오. 그리고 선을 행한 사람들은 무덤에서 나와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같 것이고, 악을 행한 사람들은 영원한 유죄선고의 부활로 갈 것 유선고의 부활로 갈 것이오.
나는 이것을 나 자신의 뜻으로, 오직 내 뜻만으로 행한다고 또 행하겠다 말하지 않고 내 뜻과 일치한 아버지의 뜻으로 한다고 말하오. 나는 내가 듣는데 따라서 말하고 판단하는데, 나는 내 뜻을 찾지 않고 나를 보내신 분의지 않고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찾기 때문에 내 판단은 옳소.
나는 아버지에게서 떨어져 있지 않소.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도 내 안에 계시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생각을 알고, 그것을 말과 행위로 나타내오.
내가 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증언하기 위해 말하는 것이 나를 당신 모두와 같은 사람으로밖에는 보려고 하지 않는 당신들의 불신하는 정신으로서는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되지 못하오. 그러나 내게 유리한 증언을 하는 다른 사람이 하나 있소. 그런데 당신들은 그 사람을 큰 예언자로 존경한다고 말하고 있소. 나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아오. 그러나 그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당신들은 그의 증언이 내게 적대적인 당신들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소. 당신들은 의로운 사람, 이스라앨의 마지막 예언자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소. 그것은 그 증언이 당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는 그가 사람에 지나지 않고, 따라서 잘못 생각할 수 있다고 당신들이 말하기 때문이오.
당신들은 요한이 당신들이 바라는 맡, 당신들이 내게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 내게 대해서 당신들이 생각하고자 하는 말을 내게 대해서 말하기를 바라면서 그에게 짙문을 하라고 사람들을 보냈었소. 그러나 요한은 참된 증언을 했소. 그래서 당신들은 그 증언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소. 예언자가 당신들의 마음 은밀한 속에 나자렛의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그린데 당신들은 군중이 무섭기 때문에 예언자가 미쳤다고, 그리고 그리스도도 미쳤다고 말하오. 그러나 나도 사람의 증언은 받지 않소.  그 사람이 이스라엘에서 가장 거룩한 사람일지라도 말이오. 나 분명히 말하겠소. 그는 불을 켜서 빛을 발하는 동불이었소. 그러나 당신들은 그의 빛을 이용하기를 별로 원하지 않았소. 그 빛이 내게 비쳐져서 그리스도의 정체를 당신들에게 알게 하려고 했을 때 당신들은 그 빛을 말로 덮어씌우는 것을 내버려두었고, 벌써 그전에 그 빛으로 주의 그리스도를 보지 않으려고 그 빛과 당신들 사이에 벽을 쌓아 놓았소.
나는 요한의 증언을 고맙게 생각하오. 그리고 아버지께서도 그것을 고맙게 생각하시오. 그래서 요한은 그가 한 증언 때문에 큰상을 받을 것이고, 그 때문에 하늘에서 빛나기도 할 것이고, 하늘에 있는 모든 사람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태양으로 빛날 것이며, 진리에 충실하고 정의를 갈망한 모든 사람이 빛날 것과 같이 빛날 것이오. 그러나 나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중요한 증언 증언보다 더 중요한 증언을 가지고 있는데, 그 증언은 내 업적이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내게 하기를 허락하신 행동, 이 업적은 그것은 내가 행하고 그것들을 아버지께서 내게 일체의 귄한을 주시면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증언하기 때문이오. 따라서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보내셨고, 아버지께서 내게 유리한 중언을 하시오.
당신들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고 그분의 얼굴을 뵌 적도 없소.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뵈었고 지금도 뵙고 있고, 그분의 목소리를 들었고 지금도 듣고 있소. 당신들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사람을 믿지 않기 때문에 당신들 안에 머무르는 그분의 말씀을 가지고 있지 않소.
당신들은 성경을 앎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믿기 때문에 성경을 공부하오. 그런데 당신들은 바로 성경이 내게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시오? 그러면 왜 계속해서 내게로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소? 내가 그것을 말하겠소. 그것은 어떤 것이 만성이 된 당신들의 생각과 반대되면 당신들은 그것을 배척하기 때문이오. 당신들은 겸손을 가지고 있지 않소. 당신들은 이렇게 말하지를 못하오. ‘이 사람, 또는 이 책은 진실을 말하는데, 나는 잘못 생각하고 있다‘ 하고. 당신들은 요한에 대해서 이렇게 했고, 성경에 대해서도, 또 당신들에게 말하든 말씀에 대해서도 그렇게 했소. 당신들은 교만에 사로잡혔고, 또 당신들의 목소리에 얼이 빠졌기 때문에 볼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게 되었소.
당신들은 내가 당신들에게 찬미를 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줄로 생각하시오? 그렇지 않소, 나는 사람들에게서 오는 영광을 찾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다는 것을 아시오? 내가 찾고 또 원하는 것은 당신들의 영원한 구원이오. 이것이 내가 찾는 영광이오. 내가 구원된 사람들을 차지하지 않으면 있을 수가 없는 구세주로서의 내 영광, 내가 구원하는 사람들의 수와 더불어 늘어나는 내 영광, 내가 구원한 영들과 지극히 순수한 영이신 아버지에 의해서 내게 주어지기로 된 구세주로서의 내 영광이오. 그러나 당신들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오. 나는 당신들의 정체를 아오. 당신들은 당신들 안에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소. 당신들은 사랑이 없소. 그렇기 때문에 당신들은 당신들에게 말하는 사람에게로 오지 않고, 사랑에게로 오지 않고, 사랑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오. 거기서는 당신들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오. 아버지 안에 있는 나를 당신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도 당신들을 알지 못하시오. 당신들은 나릍 알고자 하지 않고 있소.
나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는데, 당신들은 나를 받아들이지 않소. 그러면서 당신들은 제 스스로 오는 아무라도 당신들의 마음에 드는 말을 하기만 하면 받아들일 기분을 가지고 있소. 당신들은 스스로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말하오? 아니오. 당신들은 믿음의 사람들이 아니오. 서로 영광을 구걸하고 오직 하느님에게서만 오는 하늘의 영광은 찾지 않는 당신들이 어떻게 믿을 수 가 있소? 진리인 영광은 이 세상에만 집착하는 이해 관계,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악습에 젖은 인류를 어루만지기만 하는 이해관계에는 만족하지 않소.
나는 아버지께 가서 당신들을 비난하지 않겠소.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오. 당신들을 비난하는 사람이 벌써 있소. 당신들이 기대를 걸고 있는 저 모세가 그 사람이오. 모세는 당신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자기를 믿지 않는다고 당신들을 책망할 것이오. 그것은 모세가 내게 대한 말을 썼는데, 그가 내게 대해서 써 남긴 것에 따라서 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오. 당신들은 그를 걸고 맹세를 하는 위대한 사람인 모세의 말을 믿지 않소. 그러니 내 말을, 즉 당신들이 믿지 않는 사람의 아들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소? 인간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논리적이오. 그러나 여기서는 우리가 영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당신들의 영혼이 여기에 관련이 되어 있소. 하느님께서는 당신들의 영혼을 내 행동에 비추어 살펴보시고, 당신들이 하는 행동들을 내가 가르치러온 것과 대조하시오. 그리고 하느님께서 당신들을 심판하시오.
나는 이제 가오. 당신들은 오랫동안 나를 만나지 못할 것이오. 그리고 이것이 당신들에게는 승리가 아니라 벌이라고 생각하시오. 가자.”
그리고 예수께서는 군중을 가르고 나아가신다. 군중은 더러는 말이 없고 더러는 옳다고 속삭인다. 그들의 함성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무서워서 속삭임이 된다. 예수께서는 떠나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