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들의 무리가 데리고 가는 짐승에 변화가 있었다. 이제는 염소가 없어지고, 그 대신 양 한 마리와 작은 어린 양 두 마리가 있다. 젖이 통통 불은 살찐 양과 어린애들같이 명랑한 어린 양들이다. 새까만 염소는 덜 신기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의 마음에 더 드는 아주 작은 양떼이다.
“나는 마륵지암을 행복한 작은 목동을 만들게 암염소가 한 마리 올 것이라고 너희들에게 말했었다. 그런데 너희들이 숫염소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암염소 대신에 양들이 왔다. 그것도 베드로가 열망하던 것과 같이 흰 양이 말이다.”
“그건 틀림없습니다. 저는 뒤에 벨제붓(마귀의 또 다른 이름)을 달고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과연 그렇습니다. 그놈이 우리와 같이 있은 뒤로는 난처한 사건의 연속이었으니까요. 저희들 뒤를 따라다니는 마력이었습니다.” 하고 가리옷 사람이 성이 나서 확인한다.
“그럼 좋은 마력이었지. 우리가 무슨 나쁜 일을 당했느냐 말이야?” 하고 요한이 태연하게 말한다.
모두가 그의 무분별을 비난하려고 소리를 지른다. “아니, 자넨 모딘에서 사람들이 그들을 어떻게 비웃는지 보지 못했어?” “그리고 내 동생이 떨어진 것이 자넨 아무렇지도 않은 걸로 생각되나? 중상을 입을 수도 있었단 말이야. 다리가 부러지거나 척추가 부러졌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그를 데리고 왔겠어?” “그리고 어젯밤의 막간극(幕間劇)이 자네에겐 매력적으로 보였나?”
“나도 모두 보고 모든 것을 관찰했어. 그리고 우리가 좋지 못한 일을 아무것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을 찬미했어. 악이 우리를 향해서 오기는 했어. 그러다가 언제나 그런 것처럼 도망쳤어. 그리고 만남은 분명히 모딘에서도 포도재배인들에게도 씨를 뿌리는 데 소용이 됐어. 그 사람들은 적어도 상처입은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고 확신하고 달려 왔었지. 그리고 애덕을 어겼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보상하려고 했어. 또 지난 밤 도둑들을 만난 것도 그랬어. 그 도둑들이 우리를 해치지 않았고, 우리는, 즉 베드로는 염소 대신으로 양들을 얻었는데, 그건 그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선물로 준 거였어.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지금은 상인들이 준 돈주머니들과 여자들이 바친 것 덕택으로 돈을 많이 가지게 됐어. 그리고 모두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그것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이었어.”
“요한의 말이 옳아.” 하고 열성당원과 유다 타대오가 말한다. 그리고 유다 타대오는 이렇게 말을 맺는다. “갑자기 일어나는 모든 일이 정말이지 장래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있은 다음에 일어나는 것 같아 내가 떨어지는 바람에 늦어서 마침 그 곳에 보석투성이의 여자들과 살찐 양떼를 거느린 목자들과 돈을 잔뜩 가진 저 상인들같이 산적들에게는 굉장한 희생물인 사람들과 동시에 있게 되다니! 예수님, 진실을 말씀해 주셔요. 어떤 일이 있을는지 알고 계셨어요?” 하고 유다 타대오가 예수께 묻는다.
“내가 여러 번 너희들에게 말했지만, 나는 사람들의 마음 속을 꿰뚫어보고, 아버지께서 달리 처리하지 않으시면 장차 무슨 일이 있을지도 안다.”
“그러면 왜 어떤 때 잘못을 저지르십니까? 적의를 품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나 아주 적대적인 도시에 가는 것같이 말입니다.” 하고 가리옷의 유다가 묻는다.
예수께서 그를 뚫어지게, 아주 뚫어지게 들여다보시다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말씀하신다. “그것은 잘못된 일들이 아니라, 내 사명의 필요들이다. 병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고, 무식한 사람들에게는 선생이 필요하다. 그런데 병자들과 무식한 사람들이 의사와 선생을 배척한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착한 의사들이고 착한 선생들이면 그들을 배척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간다. 그 사람들에게 가는 것이 그들의 의무니까. 그래서 나는 그곳으로 간다. 너희들은 내가 가는 곳에서는 일체의 저항이 사라지기를 바라지.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에게도 폭력을 쓰지 않고, 잘 알아 듣도록 타이른다. 강제권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사용되고, 하느님께 비춤을 받은 정신이 그 강제력이 하느님 게시다는 것과 하느님께서 가장 강하시다는 것을 확신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와 많은 사람을 구원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사용된다.”
“어젯밤과 같이 말이지요, 예?” 하고 베드로가 묻는다.
“어젯밤에는 산적들이 우리가 깨어서 그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겁을 집어먹은 거야.” 하고 가리옷 사람이 분명히 업신여기는 태도로 말한다.
“아니야, 그자들은 말로 설득된 거야.” 하고 토마가 말한다.
“맞아! 자넨 언제든지 기다릴 수 있어! 그 사람들은 말 몇 마디로 설득된 참으로 정다운 영혼들이었어. 그 말이 예수님의 말씀이었어도 말이야! 나는 우리 가족 전체와 나와 또 베싸이다의 많은 사람들이 아도민의 협로에서 습격을 당한 그때에 이걸 알게 되었어!” 하고 필립보가 대답한다.
“선생님, 말씀 좀 해주십시오. 어제부터 선생님께 이 말을 여쭈어보려고 했습니다. 아무 불행도 오지 않게 하는 것은 결국 선생님의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고 선생님의 의지입니까?” 하고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묻는다.
예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 말씀을 안하신다.
마태오가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선생님의 의지가 그 사람들의 마음의 냉혹함을 극복시키고, 말하자면 그것을 마비시켜 선생님으로 하여금 말씀을 하시고 구원하실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생각해.”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혼자서 거기 남아 계시면서 숲을 바라다보신 거야. 선생님은 당신의 눈길과 그 사람들에 대한 신뢰와 방어물도 안 가지신 당신의 침착으로 그 사람들을 굴복시켰어. 선생님은 막대기 하나도 안 가지고 계셨거든! …” 하고 안드레아가 말한다.
“좋아. 그러나 이건 모두 우리가 하는 말이야. 우리들 생각이란 말이야. 나는 선생님의 의견을 알고 싶어.”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여기서 격렬한 토론이 일어났는데, 예수께서는 그냥 내버려두신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강요하지 않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으므로 저 산적들에게도 폭력을 쓰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말한다. 바르톨로메오가 이렇게 말한다. 반대로 가리옷 사람은 약간 토마의 지지를 얻어 사람의 눈길이 그렇게 많은 힘을 가진다고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마태오가 이렇게 대꾸한다. “그런 힘도 가지고 있고 훨씬 그 이상의 힘도 가지고 있어. 나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회개하기에 앞서 벌써 선생님의 눈길로 인해서 회개했어.” 각자가 자기 견해를 고집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의견과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격렬하게 대립한다. 요한은 예수처럼 말이 없다. 그리고 자기의 미소를 숨기려고 고개를 숙이면서 빙그레 웃는다. 베드로는 동료들의 논거가 그를 설득하기에 이르지 못하므로 다시 공격을 시작한다. 베드로는 예수의 눈길이 그 어느 누구의 눈길과도 다르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다고 말하면서 당신이 예수님, 즉 메시아이시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또는 여전히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알고 싶어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나뿐 아니라 거룩함과 깨끗함과 결함이 없는 믿음으로 하느님과 융합된 사람은 누구든지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보다도 한층 더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의 눈길도, 만일 그 어린이의 영이 하느님의 영과 결합하여 있으면, 삼손처럼 흔들지 않고서도 우상들의 사랑을 무너뜨릴 수 있고, 야수와 야수같은 사람들을 온순하게 만들 수 있고, 죽음을 물리치고 정신의 병을 이길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주님 안에 하나가 되고 주님의 연장이 된 어린이의 말로 병을 고치고, 뱀의 독을 없애고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할 수 있다. 그의 안에서 하느님께서 행하시기 때문이다.”
“아! 알았습니다!” 하고 베드로가 말하면서 요한을 보고, 보고, 또 본다. 그런 다음 지금까지 마음 속으로 하던 일련의 추리의 결말을 지으면서 말한다. “이렇군요! 선생님은 하느님으로서, 또 하느님과 결합하신 사람으로서 그 힘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과의 일치에 이르거나 이미 이른 사람도 그와 같이 됩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잘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너는 그 일치의 비결이 어떤 것인지, 그 힘의 비밀이 어떤 것인지는 묻지 않느냐? 그러나 사람들은 똑같이 성공할 가능성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그렇게 되지는 못한다.”
“맞습니다! 하느님과 일치해서 사물들을 지배하는 그 힘의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기도나 또는 비밀의 말 ….”
“조금 전에 시몬의 유다는 우리가 겪은 모든 낭패를 염소에게 돌렸었다. 짐승들에게 붙어 있는 마력이란 것은 없다. 역시 우상숭배이고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는 미신을 쫓아내라. 그리고 마력을 실현하기 위한 말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적을 행하기 위한 비밀의 말도 없다. 오직 사랑이 있을 뿐이다. 내가 어젯밤에 말한 것과 같이 사랑은 난폭한 자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갈망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킨다. 사랑은 하느님이시다. 완전한 사랑의 공로로 완전히 차지한 하느님을 너희들 안에 모시고 있으면, 눈은 불이 되어 모든 우상을 불태우고 상(像)들을 쓰러뜨리고, 말은 힘이 된다. 사람들은 사랑이신 하느님께 반항하지 않는다. 마귀는 완전한 미움이기 때문에 마귀만이 사랑에 반항하고, 그와 더불어 마귀의 자식들도 사랑에 반항한다. 다른 사람들, 즉 격정에 사로잡히기는 했으나 마귀에게 자기를 스스로 팔아넘기지는 않은 약한 사람들은 사랑에 반항하지 않는다. 그들의 종교가 어떤 것이든, 아무리 믿음이 없건, 그들의 정신적인 천함의 수준이 어떠하건 그들은 위대한 승리자인 사랑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게 되도록, 빨리 그렇게 되도록 힘써라. 그러면 너도 하느님의 아들들이 하는 것,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을 할 것이다.”
베드로는 요한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리고 알패오의 아들들과 야고보와 안드레아도 지성이 활발히 움직이며 탐구한다.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아니, 그럼 주님, 제 아우에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주님은 제 아우 말씀을 하시는 거지요. 기적을 행하는 어린이는 제 아우지요! 그렇습니까? 그래요?”
“요한이 무슨 일을 했느냐? 요한은 생명의 책을 한 장 넘겨서 읽었고, 그래서 새로운 신비들을 알게 되었다. 그뿐이다. 요한은 장애물들을 고찰하고, 어려운 점들을 따져보고, 이익이 되는 것을 계산하느라고 지체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희들보다 앞서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땅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땅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요한은 빛을 보고 빛을 향해 간다. 꾸준히. 그러나 요한을 가만 놔두어라. 불꽃에 한층 더 불살라지는 영혼들은 그들에게 기쁨을 가득 채워주고 그들을 불사르는 열정 속에서 방해를 받아서는 안된다. 그들을 불타게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것이 최고의 기쁨이고 가장 큰 피로이다. 하느님께서는 영혼 – 꽃들이 계속 햇볕을 쬐면 뜨거워서 타 죽는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들에게 밤시간을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들에 있는 꽃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이 영혼 – 꽃들에게 신비스러운 침묵과 이슬을 주신다. 하느님께서 사랑의 장사를 사랑 속에 가만히 놓아두실 때에는 너희들도 그를 내버려두어라. … 너희들도 요한이 벌써 도착한 그 곳에 도착하게 되고, 그보다도 더 멀리 가게 되면 – 요한도 너희도 모두 그보다 더 멀리 갈 테니까 말이다. – 사랑에 사로잡히고 사랑의 연장이 된 영혼들이 느끼는 존경과 침묵과 그늘이 왜 필요한지 이해할 것이다. 너희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말아라. ‘그때에 나는 사람들이 아는 즐거움을 가지게 될 거다. 그런데 이웃의 마음은 마치 어린이들의 마음과 같이 이상한 것에 끌리기를 바라기 때문에 요한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하고. 그렇지 않다. 너희가 거기에 도달하면, 너희도 지금 요한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침묵과 그들에 대한 같은 소원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너희들 가운데 있지 않게 되었을 때에는, 회개나 거룩함의 정도에 대해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너희들은 항상 겸손을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기억하여라. 만일 어떤 사람에게 교만이 남아 있으면 그의 회개에 대해 착각하지 말아라. 만일 다른 사람들이 ‘성인’이라고 말하는 어떤 사람들이 교만의 지배를 받으면, 그 사람이 성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라. 사기꾼과 위선자처럼 성인인 체하고 기적의 흉내를 낼 수는 있겠지마는 성인은 아니다. 그의 외관은 위선이고, 그의 기적들은 악마 놀음이다. 알아들었느냐?”
“예, 선생님 …” 모두가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긴다. 그러나 입은 다문 채로 있지만, 그들의 눈길과 그들의 얼굴 표정에서 그들의 생각을 분명히 짐작할 수 있다. 알고자 하는 큰 욕망이 에테르처럼 그들에게서 풍겨나와 그들 주위에 감돌고 있다 ….
열성당원이 동료들에게 따로 말을 하고 또 틀림없이 그들에게 더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권고할 기회를 가지기 위하여 그들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고 애쓴다. 나는 열성당원이 사도들의 무리 가운데에서 많은 역할을 한다는 느낌을 가진다. 그가 선생님을 썩 잘 이해한다는 것 말고도 그는 동료들의 조정인이고 화해자이고 조언자이다. 그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벌써 요안나의 땅에 와 있네. 저 대지에 있는 마을이 베델이고, 꼭대기에 있는 저 저택이 요안나가 태어난 성관(城館)이야. 공기 중에 있는 이 냄새를 맡나? 이건 아침 햇살에 향기를 풍기기 시작하는 장미들이야. 저녁에는 향기가 강하지. 그러나 이런 신선한 아침에 해가 떠오를 때 꽃잎들이 벌어지는 동안 아직 꽃잎에 맺혀서 수백만 개의 금강석처럼 반짝이는 이슬이 뒤덮여 있는 장미들이 보기에 더없이 아름답단 말이야. 해가 질 때에는 완전히 발달한 꽃들을 전부 따는 거야. 이리들 오게. 언덕 꼭대기에서 저쪽 사면의 비탈로 폭포처럼 넘쳐 흐르는 장미밭 전체를 어떤 지점에서 보여 주고 싶네. 이건 꽃의 폭포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그 다음에는 밀물처럼 다른 언덕 두 군데로 다시 올라가네. 마치 꽃으로 뒤덮인 원형 경기장 같고, 꽃으로 된 호수 같아. 찬란해! 길의 경사가 더 가파르지만, 이 길로 올라갈 만한 가치가 있어. 저기서는 이 낙원 전체가 내려다 보이니까. 그리고 우리는 성관에 이내 가게 될 거야. 요안나는 거기서 그들만이 이 모든 재산을 지키는 농부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어. 그러나 그 농부들은 이 계곡을 아름다움과 평화의 에덴 동산이 되게 하는 여주인을 몹시 사랑해서 헤로데의 모든 친위대원들보다 더 나을 정도야. 자, 보십시오, 선생님 친구들, 보게.” 그러면서 그는 장미꽃이 뒤덮인 반원형으로 된 언덕들을 손으로 가리킨다.
바람과 너무 뜨거운 햇살과 우박을 막아줄 소임을 가진 아주 키가 큰 나무들 밑 어느쪽으로 눈을 돌리든지 보이느니 장미나무들이요, 또 장미나무들이다. 초목들을 가볍게 가리지마는 누르지는 않는 저 가벼운 피난처 밑으로 해가 퍼지고 공기도 퍼진다. 정원사들이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그 피난처 아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나무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 가지각색 장미나무가 수천 수만 그루가 있다. 난쟁이 장미나무, 키가 작은 나무, 키가 큰 나무, 키가 매우 큰 나무들도 있다. 나무들 밑이나 푸르른 풀밭 위에 꽃으로 수놓은 방석 모양으로 무더기로 배치된 것들도 있고, 개울가에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또는 언덕들을 전부 포함하는 동산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관개용수를 저장하는 못 주위에 둥그렇게 울타리를 이루기도 하고, 꽃으로 장식된 머리카락으로 나무들 둘레에 감기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꽃줄장식과 화환을 이루기도 한다. 진짜 꿈과 같은 멋진 동산이다. 키도 가지가지, 색조(色調)도 가지가지가 있어 서로 어울리고, 차빛깔의 장미의 상아색을 다른 꽃부리들의 핏빛같이 새빨간 빛깔 곁에 배치하기도 하고, 어린 아이의 뺨과 같은 빛깔에서 가장자리로 가면서 분홍빛을 띤 흰빛깔로 약해져 가는 진짜 장미꽃들이 그 수의 덕택으로 여왕으로 군림하기도 한다.
모든 제자가 그 많은 아름다움 앞에서 깜짝 놀란 채로 있다.
“그렇지만 요안나는 이 모든 것을 가지고 뭘 하는 건가?” 하고 필립보가 묻는다.
“즐기는 거지.” 하고 토마가 대답한다.
“아니야. 꽃에서 향유를 뽑아내서 꽃가꾸는 하인 수백 명과 향유를 뽑아내는 단골손님들에게 일거리를 주기도 해. 로마인들이 그 향유를 몹시 탐내지. 요나타가 지난번 수확의 회계서를 내게 보여주면서 그 말을 했어. 그런데 저기 알패오의 마리아 아주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있구먼. 우리들을 보았어.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부르고 있어 ….”
과연 요안나와 두 마리아가 오는데, 마륵지암이 그들보다 앞서 껴안으려고 팔을 벌려 뛰어 내려온다. 여자들은 빨리 예수와 베드로를 향하여 와서 예수 앞에 엎드린다.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어머니는 어디 계신가요?”
“선생님, 장미밭에 엘리사와 같이 계십니다 오! 엘리사는 병이 다 나았습니다. 엘리사는 세상과 과감히 맞서서 선생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이 일에 저를 쓰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요안나야, 네가 고맙다. 유다에 오는 것이 유익했다는 것을 알겠지? 마륵지암아, 여기 네 선물이 있다. 이 아름다운 꼭두각시와 이 아름다운 양들, 마음에 드니?”
어린 아이는 너무 기뻐서 숨이 멎을 지경이다. 그가 예수께로 가니 예수께서는 꼭두각시를 그에게 주시려고 몸을 굽히시고 그를 똑바로 들여다보시려고 그대로 계신다. 그러니까 어린 아이는 달려들어 목을 껴안으며 있는 힘을 다해서 힘껏 입맞춤한다.
“이렇게 해서 너는 양들처럼 온순해지고 이 다음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착한 목자가 되는 거다. 그렇지?”
마륵지암은 기쁨으로 눈을 반짝이며 숨을 몰아쉬면서 예, 예, 예 하고 말한다.
“이제는 베드로에게로 가거라. 나는 어머니께로 가겠다. 저기 장미나무로 된 울타리를 따라 뛰어오시는 어머니의 베일 한 자락이 보인다.”
예수께서는 성모님께로 달려가시어 오솔길이 꼬부라지는 곳에서 품에 안으신다. 성모님은 첫번 입맞춤을 하신 다음 아직 가쁜 숨을 몰아쉬시며 설명하신다. “엘리사가 뒤에 온다. … 나는 네게 입맞춤을 하려고 뛰어왔다. … 왜냐하면 아들에 네게 입맞춤을 안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 그리고 엘리사 앞에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엘리사가 많이 변하기는 했다. … 그러나 자기에게는 영원히 거부된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보고는 그의 마음이 항상 고통을 겪는다. 저기 온다.”
엘리사는 마지막 몇 걸음을 급히 옮기고는 예수의 옷에 입맞춤하려고 무릎을 꿇는다. 이제는 벳수르의 비극적인 여인이 아니라, 고통과 고통이 얼굴의 눈길에 남긴 흔적이 눈에 띄는 엄숙한 늙은 여인이다.
“선생님, 제가 잃었던 것을 돌려주신 것 때문에 이제와 영원히 찬미받으십시오.”
“엘리사, 당신에게 점점 더 평화가 많이 있기를. 엘리사를 여기서 만나서 기쁩니다. 일어나시오.”
“저도 기쁩니다. 주님, 주님께 말씀드릴 것과 청할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내가 며칠 동안 이곳에 머무를 것이니까 시간이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같은 제자들을 소개할 터이니 이리 오시오.”
“아이고! 그럼 주님은 제가 말씀드리고자 한 것을 벌써 아셨군요? 주님의 생명인 새 생명에 다시 나고, 주님의 가족인 가족을 만들어 가지고, 주님의 아들들인 아들들을 다시 만나기를 원하는 것을. 벳수르의 제 집에서 나오미에 대한 얘기를 하시며 말씀하신 것과 같이. 주님, 저는 주님의 은총으로 새로운 나오미가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주님은 찬미받으십시오. 저는 이제 슬픈 여자도 아니고 석녀(石女)도 아닙니다. 저는 다시 어머니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허락한다면 주님의 어머니도 아직 조금 되고, 또한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아들들의 어머니가 되겠습니다.”
“예, 그렇게 되세요. 제 어머니는 그 때문에 질투를 하지 않으실 것이고, 엘리사가 여기 온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내가 엘리사를 사랑하겠습니다. 이제는 엘리사를 형제들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엘리사에게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로 갑시다.”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엘리사의 손을 잡고 그의 새 가족에게로 인도하신다.
여행은 끝나고, 이제는 오순절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