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꽃이 만발한 과수들과 올리브나무들 사이로 걸어가신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향기로운 가벼운 바람에 흔들리는 이슬로 이렇게 진주 장식을 한 것 같은 올리브 나무의 은빛 잎조차도 꽃같이 보인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금은 세공사의 작품 같아서 눈은 그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벌써 푸른 잎이 뒤덮인 감복숭아 나무들은 다른 과수들의 흰빛 분홍빛 무더기에 돋을 새김한 것같이 두드러지고, 그 밑으로는 포도나무들이 연한 새잎들의 톱니꼴을 보이고 있는데, 그 잎들이 어떻게나 연하고 부드러운지 꼭 아주 고운 벽옥(碧玉)이나 귀중한 비단 조각 같다. 저 위에는 판판하고 조용하며 장엄한 진한 터어키옥색의 하늘, 사방에 새의 노래소리와 꽃향기, 신선한 공기는 기운을 회복시켜 주고 기쁘게 한다. 참으로 4월의 즐거움이 사방에서 미소짓고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 사도들, 열 두 명 가운데 계시며 말씀을 하신다.
  “나는 너희들에게만 말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여자들은 먼저 보낸 것이다. 너희와 함께 있기 시작한 그 처음 시기에 너희들 중에서 나와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었다. ‘나를 거스르는 사람들의 나쁜 행동에 대한 이야기로 내 어머니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말아라’라고. 그 행동들이 몹시도 심각한 것으로 보였었다… 사람의 아들을 죽음으로 끌고갈 사슬의 시작이었던 그 행동들을 목격한 너희 세 사람 – 요한, 베드로, 그리고 너 가리옷의 유다 – 이제 지금의 행동들을 바위에 비교한다면 그 때의 행동들은 하늘에 날리는 모래알에 비길 만하였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에는 너희들도, 내 어머니도, 나도 인간의 악의에 대하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선에 대해서도 악에 대해서도 그렇다. 사람은 한번에 꼭대기에 올라가지 못한다. 차례로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이다. 고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착한 너희들은 선으로 올라가서, 그때에 분노했었지만, 분노하지 않게 되었고, 악마같은 행동에 몸바치는 사람이 어느 정도의 타락에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고, 또한 내 어머니와 내가 그로 인하여 죽지 않고 사람에게서 오는 모든 고통을 견디어 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튼튼하게 하였다. 모두가 선에 있어서나 악에 있어서나, 또는 고통에 있어서.
  그러나 우리는 아직 꼭대기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오! 너희들은 꼭대기가 어떤 것인지, 선과 악과 고통의 정상이 얼마나 높은지 모른다!
  나는 그때 내가 한 말을 너희들에게 되풀이하겠다. 사람의 아들이 지금 말하려는 것을 내 어머니에게 일러바치지 말아라. 내 어머니가 그 때문에 너무나 고통을 당하실 것이다. 사형수에게는 떨지 않고 집행을 기다릴 수 있도록 동정의 마음으로 마취음료가 주어진다. 너희들의 침묵은 구속자의 어머니인 내 어머니에게 동정의 음료가 될 것이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너희에게 막연한 것으로 남아 있지 않도록 예언들의 뜻을 알려 주고자 한다. 그리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나와 함께 더욱, 더욱 함께 있어다오. 낮 동안에는 내가 모든 사람의 것이 되겠지만, 밤에는 제발 나하고 같이 있어 다오. 너희들과 같이 있고 싶다. 내가 혼자라는 것을 느끼지 않을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는 매우 괴로워하신다. 사도들은 그것을 보고 몹시 불안해한다. 그들은 예수께로 바싹 다가선다. 유다까지도 제자들 중에서 가장 정답기나 한 것처럼 스승 곁으로 바싹 다가설 줄을 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어루만지시고 말씀을 계속하신다.
  “나는 내게 아직 주어진 이 시간에 너희들 안에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완성하기를 원한다. 처음에 요한과 시몬과 유다와 함께 나는 내 출생에 관한 예언들의 진리를 알려 주었다. 예언들은 아무리 훌륭한 화가라도 그렇게 할 수 없을 만큼 내 새벽에서 황혼까지 나를 묘사하였다. 바로 새벽과 황혼이야말로 예언들이 가장 돋보이게 한 두 대목이기도 하다. 하늘에서 내려온 그리스도, 구름이 비처럼 땅에 내리게 한 의인, 숭고한 싹이 사형에 처해져서, 벼락을 맞은 서양삼나무 같이 꺾어질 것이다.
  그러면 그의 죽음에 대하여 말하자. 탄식하지 말고 머리를 내젓지 말아라. 마음 속으로 원망하지 말고 사람들을 저주하지 말아라. 그것은 아무 소용 없는 짓이다.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이제 과월절이 가까왔다.
  ‘이 달이 너희들에게는 첫째 달이 될 것이다.’ 이 달이 세상에게는 새 시대의 시작이 될 것이다. 그 시대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이따금씩 새 시대를 갖다 놓으려 애쓰겠지만 쓸데없는 일일 것이다. 그들의 우상의 이름을 가진 새 시대를 갖다 놓으려고 하는 자들은 분쇄되고 타격을 받을 것이다. 하늘에는 하느님 한 분밖에 안계시고, 땅에는 메시아, 즉 하느님의 아들, 나자렛의 예수밖에 없다.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원할 수 있고 옥새를 찍을 수 있다. 육체와 진흙인 것에 찍지 않고 세월이고 정신인 것에 찍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달 십일에 사람마다 한 가문에 한 마리씩, 한 집에 한 마리씩 새끼 양을 마련해 놓아라. 만일 식구가 적어 새끼 양 한 마리가 너무 많거든 한 사람이 먹을 분량을 생각하여 옆집에서 그만큼 사람을 불러다가 먹도록 하여라.’ 왜냐하면 제물과 희생은 완전해야 하고 모두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은 조각 하나도 남아서는 안되고, 또 남지도 않을 것이다. 어린 양을 실컷 먹을 사람은 너무나 많다. 시간 제한이 없는 잔치에 셀 수 없이 많은 수효, 그리고 먹고 남은 것이 없기 때문에 태워 버리기 위한 불이 필요 없다. 바쳐질 부분과 증오로 물리쳐질 부분이 희생의 불 자체, 곧 그의 사랑으로 타 버릴 것이다. 오 사람들아, 나는 너희들을 사랑한다. 나 자신이 선택한 열 두 명의 친구인 너희들,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와 인류의 열 세 핏줄이 그 안에 들어 있는 너희들. 내가 너희들 안에 모든 것을 모아 놓았고, 너희들 안에 모든 것이 모인 것을 본다… 모든 것이.”
  “그러나 아담의 몸의 핏줄 속에는 카인도 있었습니다. 우리 중의 아무도 자기 동료에게 손을 들지 않았잖습니까. 그리고 아벨은 어디 있습니까?” 가리옷의 유다가 묻는다.
  “네가 잘 말하였다. 아담의 몸의 핏줄에는 카인의 핏줄도 있었다. 그리고 아벨은 나다. 양떼를 기르는 목자이며 맏배와 결점이 없는 것을 바치고, 모든 제물 중에 자기자신을 바쳤기 때문에 주의 마름에 들었던 부드러운 아벨이다. 오 사람들아, 나는 너희들을 사랑한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제물바치는 사람들의 일을 촉진시키고 완성한다.
  ‘어린 양은 흠이 없는 일년 된 수컷이어야 한다.’ 하느님의 어린 양에게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도 첫날에 있던 것과 똑같다. 아버지와 같은 그는 그의 천주성에서 늙음을 모른다. 그의 인격은 오직 한 가지 늙음, 오직 한 가지 권태 밖에는 모른다. 그것은 그가 온 것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는 헛된 것이라는 실망에서 오는 환멸이다. 내가 어떻게 죽임을 당하였는지 너희가 알게 될 때 – 자기의 주님이 헌데투성이인 문둥이로 변한 것을 볼 눈들이 지금은 내 곁에서 눈물이 잔뜩 고여서 경치좋은 야산을 보지 못하는구나 – 이렇게도 말하여라. ‘그분은 이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그분에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셨고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서 배척을 당하셨기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하느님의 아들에게는 시간의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제사의 어린 양과 다르지만, 흠없고 주께 바쳐진 남자이기 때문에 제사의 어린 양과 비슷하다. 그렇다. 사형 집행인들, 나를 무기로나 의지로나 배반으로 죽일 사람들은 ‘그가 죄가 있었다’고 말하면서 자기들이 한 일을 정당화하고자 하겠지만 쓸데없는 일일 것이다. 진실한 사람이면 아무도 나를 죄 있다고 비난할 수 없다. 너희들은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우리는 죽음 앞에 있다. 나도 죽음 앞에 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 누구냐고? 베드로야, 누구인지 알고 싶으냐? 모두가 그렇다. 죽음은 시시각각 다가와서 조금도 예상하지 않는 사람을 붙잡는다. 아직 살아야할 긴 일생을 가진 사람들도 시시각각 죽음 앞에 다가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시간은 영원에 비하면 섬광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의 시간에는 가장 오랜 일생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며, 가장 처음 행동부터 시작하여 오래된 수십년의 행동이 무더기로 돌아와서 ‘보라, 어제 너는 이러저러한 일을 하였었지’하고 말한다. 어제! 사람이 죽을 때에는 언제나 어제이다! 인간이 그렇게 열렬히 소망하는 명예와 재산은 언제나 먼지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몹시 좋아하던 과일의 맛도 모두 잃는다! 여자? 돈? 권력? 학식? 무엇이 남느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양심과 하느님의 심판 만이 남아 있는데, 인간의 보호와 재산을 빼앗기고 자기의 행동만을 짊어진 가난한 양심이 하느님 앞에 나서는 것이다.
  ‘그 어린 양의 피를 받아 그 집 입구 좌우 문설주와 문 상인방에 바르라고 하여라. 천사가 지나가면서 피의 표가 있는 집들은 치지 않을 것이다.’ 내 피를 받아라. 그 피를 죽은 돌에 바르지 말고, 죽은 너희 마음에 발라라. 이것이 새로운 할례이다. 그리고 나는 온 세상을 위하여 나 자신에게 할례를 행한다. 나는 무익한 부분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훌륭하고 건강하고 순결한 남성을 파괴하여 그것을 완전히 희생하여, 잘된 내 지체에서, 터진 내 혈관에서 내 피를 받아 인류 위에 구원의 반지를, 하늘에 계신 하느님, 기다리시는 아버지와의 영원한 혼례 반지를 만든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자, 이제 아버지께서는 저들을 쫓아내지 못하십니다. 아버지의 피를 배척하시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모세는 말한다. <그리고 히솝(hysope)묶음을 가져다가 피를 묻혀 좌우 문설주에 바르시오.>’ 그러면 피만으로는 부족하냐? 부족하다. 내 피에다 너희들의 뉘우침을 합해야 한다. 구원이 되는 뼈저린 뉘우침이 없으면 너희를 위하여 죽는 것이 무익할 것이다.
  이것이 성서에서 구속하는 어린 양에 대하여 말하는 첫 번째 말씀이다. 성서에는 이 말씀이 가득 차 있다. 해가 새로 떠오를 때마다 이 가지들에 꽃이 더 빽빽이 되는 것과 같이 한 해가 지나가고 다른 해가 되를 잇는 데 따라서, 그리고 구속의 때가 가까와옴에 따라서 꽃이 더 많이 핀다.
  그리고 이제는 즈가리야와 더불어 너희에게 말한다. 예루살렘 대신 너희에게 말이다. ‘보라 지극히 부드러운 네 왕이 암나귀와 나귀 새끼를 타고 온다. 네 왕은 가난하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억압하는 권력자들을 물리칠 것이다. 그는 부드럽다. 그러나 강복하기 위하여 올린 그 팔이 마귀와 죽음을 이길 것이다. ‘그는 평화의 왕이기 때문에 평화를 선포할 것이다.’ 그는 십자가에 못박혀서 그의 지배를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확장할 것이다. ‘소리 지르지 않고, 부러뜨리지 않고, 빛이 아니고 연기인 자를 끄지 않는 그가, 힘이 아니고 약함인 그가 모든 비난을 받아 마땅한 그가 진리에 따라 잘잘못을 가릴 것이다.’ 오 시온성아, 네 메시아, 오 주의 백성아, 네 메시아, 오 땅의 백성아, 네 메시아다.
  ‘슬퍼하지도 않고 난폭하지도 않다.’ 사실 너희들도 보다시피 내게는 패배자의 화난 슬픔도 없고, 악인이 갖는 원한의 슬픔도 없고, 다만 마귀가 어느 정도까지 사람을 차지할 수 있는지를 보는 사람의 신중함이 있을 뿐이다. 너희들이 보다시피 내 의지가 한번만 움직여도 재를 만들어 흩어 버릴 수 있는 내가,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이끌어오기 위하여 3년 동안 끊임없이 손을 내밀었는데, 지금도 손을 내밀 것이고, 손에 상처를 입을 것이다! ‘슬퍼하지도 않고 난폭하지도 않은 채, 나는 내 나라를 세우게 될 것이다.’ 세상의 구원이 있는 저 그리스도의 나라를.
  영원하신 주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불렀고 네 손을 붙잡았으며, 너를 백성들과 하느님 사이의 계약을 삼았고, 너를 만방의 빛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빛이 되었다. 소경들의 눈을 뜨게 하는 빛, 귀머거리들에게 말을 듣게 하는 말씀. 오류의 암흑 속에 있던 사람들에게 지하 감옥의 문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모든 것인 내가 죽을 참이다. 죽음의 암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죽음으로. 너희는 알아듣겠느냐?….
  예고된 첫 번째 일들이 이제 실현될 참이다. 내가 예언자와 더불어 이 말을 하는 것이다. 다른 말들은 마귀가 우리를 갈라놓기 전에 해주마.
  저기 안쪽에 시온이 보인다. 암나귀와 나귀 새끼를 데리러 가거라.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것들이 스승 예수께 필요합니다.’ 그리고 내 어머니에게 내가 어머니 계신 곳으로 간다고 말씀드려라. 어머니는 다른 마리아들과 같이 저기 비탈 위에 계신다. 어머니는 나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이것이 내 인간적인 개선이지만… 어머니의 개선도 되어야 한다. 항상 일치하여 있는, 오! 일치하여 있는!…
  그런데 날카로운 발톱질로 어머니의 심장의 심장, 즉 그의 아들을 뜯어내는 하이에나의 마음은 어떤 것이냐? 그것이 사람이냐? 아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여인에게서 난다. 그래서 본능적으로도 윤리적인 반성으로도 한 어머니를 치지는 못한다. 자기 어머니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마귀이다. 그러나 마귀가 승리한 여인을 모욕할 수 있느냐? 모욕을 하려면 그 여인에게 손이 미쳐야 한다. 그러나 사탄은 하느님의 장미꽃의 순결한 빛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면? 너희들은 그가 누구라고 말하겠느냐? 너희들은 말을 하지 않겠느냐? 그러면 내가 말하겠다.
  가장 교활한 마귀가 가장 타락한 사람과 혼합되어, 마치 독사의 이빨 속에 독이 들어 있듯이, 그 여인에게 접근할 수 있는 그 사람 안에 들어 있으면서, 여인이 마음놓고 있는 틈을 타서 물 수 있는 것이다. 사탄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한 기괴한 잡종은 저주받을 것이다! 내가 그를 저주하는 것이냐? 아니다. 이 말은 구속자의 말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하느님의 도시이기도 하고 사탄의 도시이기도 한 기괴한 예루살렘에게 한 것과 같은 말을 이 기괴한 잡종의 영혼에게 한다. ‘오! 너에게 주어진 이 시간에 네가 구세주에게 올 줄을 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라고.
  내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없고, 내 능력보다 더 큰 능력이 없다! 아버지께서도 내가 ‘원합니다’하고 말할 때에는 동의하신다. 그런데 나는 심연에 떨어져서 그 속에서 내게 팔을 내미는 사람들에게는 연민의 말밖에는 할 줄을 모른다. 가장 큰 죄인의 영혼아, 네 구세주가 죽기에 임박하여 심연으로 몸을 구부리고 그 손을 잡으라고 네게 권한다. 나는 아무래도 죽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그러나 너는… 내가 아직도 사랑하는 너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네 벗인 나의 영혼은 자기가 그 끔찍한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이 친구의 행동으로 인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소름 끼치며 몸을 떨지 않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지치셔서.. 입을 다무신다…
  사도들은 말을 하며 서로 물어본다.
  “아니, 누구 말씀을 하시는 건가? 그게 누굴까?”
  유다는 아무 부끄러움도 없이 거짓말을 한다.
  “틀림없이 거짓 바리사이파 사람들 중의 하나일 거야… 나는 요셉이나 니고데모, 또는 쿠자나 마나엔을 생각하네… 이들 모두가 권력과 돈을 탐하고 있거든… 나는 헤로데나 … 최고회의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 선생님은 그 사람들을 너무 믿으셨어! 자네들도 알지. 그들이 어제도 안왔었지 않아? 그들은 선생님께 과감하게 맞설만한 대담성이 없단 말이야…”
  예수께서는 듣지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앞으로 가셔서 마리아들과 마르타와 같이 계시는 어머니께로 가셨다. 경건한 여인들 중에는 쿠자의 요안나 만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