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아주 조용하다. 돌로 된 분수대에 떨어지는 분수의 물소리만이 깊은 적요를 깨뜨린다. 동쪽에는 집들의 벽을 끼고 아직 어둠이 깔려 있는데, 그 반대쪽에는 달이 집 꼭대기를 비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길이 넓어져서 작은 광장을 만든 그 곳에는 은백색 달빛이 내려와서 길의 조약돌들과 흙까지도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그러나 도개교(跳開橋)와 비슷하거나 또는 거리 쪽으로는 뚫린 구멍이 별로 많지 않고 또 이 시간에는 버려진 집들처럼 모두 닫혀서 어두운 저 집들의 받침대 같기도 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어져 있는 수많은 장식용 홍여 창틀들 밑은 아주 캄캄하여 시몬이 들고 있는 불그레한 횃불이 유난히도 환해 보이고 훨씬 더 주위를 잘 비추어 준다. 그 움직이는 붉은 빛을 받은 얼굴들이 분명히 나타나는데, 모두가 서로 다른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가장 엄숙하고 가장 평온한 얼굴은 예수의 얼굴이다. 그러나 피로로 인하여 얼굴이 늙어 보이고 평소에는 없던 주름살들이 나타나 죽음에서 다시 짜여질 그분 얼굴의 미래상을 드러내 보인다.
예수 곁에 있는 요한은 그가 보는 모든 것에 놀라고 애달픈 시선을 던진다. 어떤 이야기나 어떤 무시무시한 약속 때문에 겁에 질려, 자기보다 많은 것을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어린아이와도 같다. 그러나 예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예수의 다른 쪽 곁에 있는 시몬은 끔찍한 생각들을 되새기는 사람처럼 어둡고 속을 짐작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으며, 그래도 예수 다음으로는 매우 품위있는 모습을 보이는 유일한 사람이다.
끊임없이 변형되는 그 무리를 이루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동요하고 있다. 이따금씩 베드로의 쉰 목소리나 토마의 바리톤 목소리가 이상하게 울리며 들려온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토론하는데 한 사람은 이렇게 하자고 하고 다른 사람은 저렇게 하자고 한다. 그러다가는 그들이 말하는 것에 놀란 것처럼 목소리를 낮춘다. 그러나 모든 제안은 소용이 없다. 그것은 “암흑의 시간”이 실제로 시작될 참이고 사람들의 판단이 막연하고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그 말을 나한테 더 일찍 말해 주어야 했어” 하고 배드로가 화를 내며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말을 안했단 말이야. 선생님도 말씀 안하시고…”
“말씀하셨어! 바로 선생님이 자네한테 그 말을 하셨단 말이야. 아아니 동생! 네가 그를 모르는 것 같구나! … 하고.”
“나는 어떤 불안을 느끼고 ‘선생님과 같이 가서 죽자’하고 말했지. 생각나지? 그렇지만 정말이지 시몬의 유다가 그렇다는 걸 알았더라면!…” 하고 토마가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 어떻게 하려고 했나?”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묻는다.
“나 말이야? 지금이라도 자네들이 도와주면 그렇게 할걸세!”
“어떻게 말이야? 그를 죽이러 간단 말이야? 어디로?”
“아니야, 나는 선생님을 멀리 가시게 할 거야. 그것이 더 간단해.”
“선생님은 안가실걸!”
“나는 선생님께 가시자고 청하지 않을 거야. 나는 여자를 납치하듯 선생님을 납치해 갈걸세.”
“그거 나쁜 생각이 아닌데!”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그리고는 충동적으로 뒤로 돌아서서 마태오와 야고보와 같이 음모자들 모양으로 조용히 말하고 있는 알패오의 두 아들의 그룹에 끼인다.
“이거봐, 토마는 예수님을 멀리 가시게 하자고 말하네. 모두 함께. 게쎄마니에서 벳파게로 해서 베다니아에 가고… 거기서 어디론가 떠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하지? 선생님을 안전한 곳에 모시고 나면 돌아와서 유다를 없애버리는거야.”
“소용 없는 짓이야.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의 덫인걸.” 하고 알패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그리고 지금은 그 덫이 거의 다 퉁겨지게 되었어.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었어. 증오가 너무도 심하거든!”
“아니 마태오! 자네가 나를 화나게 하는군. 자네가 죄인이었을 때는 용기가 더 많았는데! 필립보, 말해 보게.”
외따로 떨어져 혼자 오면서 혼잣말을 하는 것 같던 필립보가 얼굴을 들고 걸음을 멈춘다. 베드로가 그에게로 가서 둘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다음 아까의 집단으로 다시 온다.
“나는 제일 좋은 장소가 성전이라고 생각하네” 하고 필립보가 말한다.
“자네 미쳤나?” 하고 두 사촌과 마태오와 야고보가 소리지른다.
“아니 거기서 선생님을 죽이려고들 하는데 말이야!”
“쉬! 웬 소리가 그렇게 커!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알고 있어. 그자들은 선생님을 사방으로 찾아 다니겠지만 성전에 와서 찾지는 않을 거야. 자네와 요한은 안나의 하인들 중에 친한 사람들이 있지. 돈을 듬뿍 집어 주면… 만사는 뜻대로 이루어지는 거야. 내 말을 믿어. 찾는 사람을 숨겨 두는 데 제일 좋은 곳은 간수의 집이야.”
“나는 그렇게 안하겠어” 하고 제배대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 말도 들어보게. 우선 요한의 말부터 들어보세. 만일 그랬을 때 그자들이 선생님을 붙잡으면? 나는 내가 배반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아…”
“그 생각은 못했네. 그러면 어떻게 한다?” 베드로는 풀이 죽었다.
“그러면 동정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우리가 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일, 즉 어머니를 멀리하는 일일세” 하고 알패오의 유다가 말한다.
“좋아! … 하지만… 누가 가나? 가서 뭐라고 말씀드리나? 친척인 자네가 가게.”
“나는 예수님과 같이 있을 거야. 이건 내 권리야. 자네가 가게나.”
“내가? 나는 사우라의 엘르아잘처럼 죽으려고 검으로 무장을 했는데, 나는 내 예수님을 지키기 위해 군단들 사이로 지나가면서 마구 칠거야. 수적으로 더 많은 자들의 힘으로 인해서 내가 죽어도 상관없어. 내 예수님을 지켰을 터이니까” 하고 베드로가 단언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가리옷의 유다라는 것이 확실한가?” 하고 필립보가 타대오에게 묻는다.
“난 그렇다고 확신해. 우리 중에 아무도 뱀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어. 그 사람밖에 없어… 마태오, 자네가 가서 마리아님께 말씀드리게…”
“내가? 그분을 속이라구?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를 내 곁에 두고 보라고, 그리고는?… 아! 안돼. 나는 죽으면 죽었지, 그 비둘기 같이 순진한 분을 배신하는 일은…”
목소리들이 뒤섞이어 하나의 웅성거림이 된다.
“들으셨습니까 선생님? 저희는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시몬이 말한다.
“안다. 내가 그것을 아는 데에는 그 말들이 필요치 않다. 그리고 그 말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에는 평화를 주지만 그의 영혼은 상하게 한다.”
“주님, 왜 그렇습니까? 사랑의 말들인데요.”
“순전히 인간적인 사랑의 말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지난 3년 동안에 나는 한 것이 없구나. 너희가 처음보다도 훨씬 더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에는 너희들 안에서 모든 더러운 누룩이 피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너희 탓은 아니다…”
“예수님, 도망치세요!” 하고 요한이 괴로워하며 말한다.
“나는 나 자신을 구한다.”
“그러세요?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요한은 말라서 까부라지다가 대가 다시 생생하게 되는 꽃과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 말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
“나는 죽음으로 가고, 너희는 믿음으로 간다.”
“그렇지만 금방 도망치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제일 사랑받는 제자는 다시 괴로움에 짓눌린다.
(역주: se sauver라는 동사는 ‘도망치다, 피하다’의 뜻과 ‘영혼을 구하다’의 뜻이 있다)
“나 자신을 구한다. 사실, 나 자신을 구해. 만일 내가 아버지께 순종하지 않으면 나는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순종한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울지 말아라! 내가 언젠가 말해 준 적이 있는 저 그리이스 철학자의 제자들보다도 덜 용감하구나. 그들은 독(毒)당근으로 죽어가는 그 스승 곁에 남아 있으면서 씩씩한 고통으로 스승을 위로하였다. 너는… 아버지를 잃은 어린아이 같구나.”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제 아버지를 잃는 것보다 더합니다! 선생님을 잃으니 말입니다…”
“너는 나를 계속 사랑하나까 나를 잃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는 망각으로 인해서 또 내세에서는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해서 우리와 헤어진 사람이 잃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에서도, 결코.”
그러나 요한은 설복되지 않는다.
시몬이 한층 더 예수께 가까이 다가와서 작은 목소리로 비밀을 털어놓는다.
“선생님… 저는… 시몬 베드로와 저는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하기로 바랐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모든 것을 아시니 말씀해 주십시오. 몇 시간 후에 잡히실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달이 중천에 이르기 전에.”
시몬은 고통과 짜증을 나타내는 몸짓, 심하게 말하자면 원통하다는 몸짓을 한다.
“그러면 모두가 소용없겠군요… 선생님,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은 요 며칠 동안 시몬 베드로와 제가 선생님을 혼자 내버려 두었다고 책망하다시피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선생님을 떠나 있은 것은 선생님을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월요일 밤, 베드로는 선생님의 말씀에 깊은 인상을 받고 제가 자는데 찾아와서 ‘자네를 믿고 말하네만, 자네하고 나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야 하네. 유다도 한몫 끼고 싶다고 말했네’ 하고 말했습니다. 오! 왜 우리가 그때 깨닫지를 못했을까요? 선생님은 왜 저희에게 아무 말씀도 안하셨습니까? 선생님은 아무에게도 그 말씀을 안하셨습니까? 정말 아무에게도? 혹 선생님도 그것을 몇 시간 전에야 깨달으신 것입니까?”
“나는 그것을 늘 알고 있었다. 그가 제자들 중에 끼기 전부터. 그리고 하느님 편으로 보나 사람 편으로 보나 그의 죄악이 완성되지 못하게 하려고 모든 방법을 써서 그를 나에게서 멀리하려고 애썼다. 내가 죽기를 원하는 자들은 하느님의 사형 집행인이고, 또 내 제자이며 친구인 그는 배반자이고 사람의 사형 집행인이기도 하다. 저 사람은 내 첫번째 사형 집행인이다. 왜냐하면 내 식탁에서 그를 내 곁에 두고 나 자신이 너희들에 대항해서 그를 보호해야 하는 노력으로 인해 벌써 나를 죽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합니까?”
“요한은 안다. 만찬이 끝났을 때 그에게 이 말을 해 주었다. 그런데 너희는 무엇을 하였느냐?”
“그러면 라자로는요? 라자로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까? 오늘 저희는 그의 집에 갔었습니다. 과연 라자로는 오늘 아침 일찌기 와서 제물을 바치고는 그의 저택에도 머무르지 않고 총독관저에도 들리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라자로는 자기 아버지가 가졌던 습관에 따라 늘 총독관저에 갔었거든요. 그리고 빌라도도 아시다시피 요사이는 시내에 있습니다…”
“그렇다. 모두가 성안에 있다. 빌라도와 함께 토마나 새 시온이 여기 있고, 가야파와 헤로데와 더불어 이스라엘이 여기 있다. 과월절이 이 백성의 모든 자녀들을 하느님의 제단 앞으로 불렀기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와 있다. 가믈리엘을 보았느냐?”
“예 그런데 그것은 왜 물으십니까? 내일도 또 보기로 되어 있습니다… ”
“가믈리엘이 오늘 저녁은 벳파게에 있다. 나는 그것을 안다. 우리가 게쎄마니에 이르면 너는 가믈리엘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여라. ‘조금 있으면 선생님이 21년째 기다리시는 표를 보시게 될 것입니다’ 하고, 다른 말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리고 나서 네 동료들과 같이 돌아오너라.”
“아니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오! 선생님, 다른 사람의 일을 모르는 위안도 가지지 못하신 우리 가엾은 선생님!”
“네 말이 맞았다! 모르는 위안! 가엾은 선생! 착한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많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착한 일들도 보고 그것을 기뻐한다.”
“그러면 선생님은 알고 계시군요… 저…”
“시몬아, 이제 내 수난의 시간이 되었다. 내 수난이 더 완전하게 되도록 하기 위하여 아버지께서는 시간이 가까와짐에 따라 내게서 빛을 도로 빼앗아가신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나는 암흑만을 가지게 될 것이고, 암흑이 어떻다는 것을, 즉 사람들의 모든 죄악이 어떻다는 것을 주시하게 될 것이다.
너는, 너희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특별한 사명으로 하느님께 불리지 않고서는 큰 수난 속에 포함되는 이 수난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사랑과 묵상 속에서까지도 물질적이기 때문에 내가 맞은 매와 구속자로서의 내 고통 때문에 울고 괴로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혹독할 그 정신적인 고통은 측량하지 못할 것이다. 내 말을 듣는 너희들은 정신적인 고통이 가장 혹독하다는 것을 알아라… 시몬아, 말을 해다오. 네 우정으로 나를 위하여 갔던 오솔길로 나를 인도해다오. 나는 시력을 잃어 실제로 있는 물건들을 보지 못하고 환상들을 보는 가엾은 사람이니까 말이다…”
요한이 예수께 바싹 다가서며 묻는다.
“네? 이젠 선생님의 요한도 안보입니까?”
“너는 보인다. 그러나 사탄의 안개 속에서 환상들이 불쑥불쑥 나타나고 악몽과 고통의 환영들이 나타난다. 오늘 밤에는 우리 모두가 이 지옥의 독기에 둘러싸여 있다.
사탄이 나 안에는 비겁과 불복종과 고통을 만들어 놓으려고 애쓸 것이고, 너희들 안에는 낙담과 공포를 만들어 놓을 것이다.
겁장이도 아니고 죄를 지은 사람들도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죄악과 공포를 가져다 줄 것이고, 이미 사탄에게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초자연적인 퇴폐를 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악에 있어서의 그들의 완전은 지극하여서 인간의 가능성을 초월하여 항상 초자연적인 것에 있는 완전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시몬아, 말해다오.”
“예, 화요일부터 저희는 알고, 막고, 도움을 구하기 위하여 왔다갔다 하는 일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무엇을 할 수 있었느냐?”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했다해도 별것이 아닙니다.”
“공포로 인하여 마음들이 마비되면 그 별것 아닌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이다.”
“저는 라자로와도 다투었습니다… 제가 이런 일을 당하기는 처음입니다… 그 사람이 무기력하게 보였기 때문에 충돌했습니다… 그 사람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입니다. 총독의 친구이거든요. 여전히 데오필로의 아들이구요! 그러나 라자로는 제 제안을 모두 물리쳤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친구가 바로 당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은 내게 혐오감을 일으킵니다!’ 하고 외치면서 그를 떠났습니다. 다시는 그의 집에 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그가 저를 불러서 ‘아직도 내가 배반자라고 생각할 수 있소?’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벌써 가믈리엘과 요셉과 쿠자와 니고데모와 마니엔과 끝으로 선생님의 형제 요셉도… 만나 보았었고, 그래서 그렇게 믿을 수가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라자로, 용서하시오. 그러나 나 자신이 죄인 선고를 받았던 때보다도 내 생각이 더 뒤죽박죽이 되어 있다고 느끼오’ 하고.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제 제 자신이 아닙니다… 아니 그런데 왜 웃으십니까?”
“이것으로 내가 전에 말한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사탄의 안개가 너를 둘러싸고 너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라자로가 무엇이라고 대답하더냐?”
“그 사람은 ‘당신을 이해하오. 오늘 니고데모와 같이 오시오. 당신을 보아야겠소’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갔습니다. 그동안 시몬 베드로는 갈릴래아 사람들한테 갔습니다. 그렇게 먼데서 온 선생님의 형제가 저희들보다 더 소식을 많이 알고 있거든요. 베드로는 알패오가 요셉의 친구로 시장 근처에서 사는 어떤 갈릴래아 노인하고 이야기하다가 우연히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아! … 그래… 집안의 아주 친한 친구이지…”
“그 노인이 시몬과 여자들과 같이 여기 있습니다. 또 가나의 가족도 있습니다.”
“시몬을 보았다.”
“그런데 요셉은 그의 친구로, 여자들로 인해서 인척이 된 성전에 있는 어떤 사람의 친구이기도 한 사람에게서 선생님을 붙잡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며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항상 예수를 공격했소. 하지만 사랑으로 그런 것이었고, 예수가 아직 강할 때에만 그랬소. 그러나 지금은 예수가 원수들의 처분에 맡겨진 어린아이같이 되었으니, 항상 그를 사랑한 친척인 나는 이제 그의 편이오, 이것은 핏줄과 마음의 의무요’ 하고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잠시 기쁜 시간에 보이셨던 차분한 얼굴을 다시 보이시면서 미소를 지으신다.
“그리고 요셉은 베드로에게 이런 말도 했습니다. ‘갈릴래아의 바리사이파 사람들도 모든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독사들이오. 하지만 갈릴래아 전체가 바리사이파는 아니지요. 그리고 여기에 예수를 사랑하는 갈릴래아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가서 예수를 지키기 위해 모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부엌칼밖에 없소. 하지만 몽둥이도 잘 다루면 무기가 되어요. 그리고 로마 군대가 개입만 하지 않으면 성전의 순라군들은 용기없는 어중이떠중이들이라 이내 눌러 이길 것이요.’ 그래서 베드로는 요셉과 같이 갔습니다. 저는 그동안 니고데모와 같이 라자로의 집에 갔습니다. 저희는 그를 설복해서 저희와 같이 와서 그의 집을 열어 선생님과 같이 있게 하기로 결정했었습니다. 그런데 라자로는 저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 순종해서 여기 남아 있어야 해요. 두 배의 고통을 당하기 위해서…’ 참말입니까?”
“그렇다. 내가 그에게 이 명령을 내렸다.”
“그래도 라자로는 제게 검들을 주었습니다. 그 검들은 그의 것입니다. 하나는 제게, 하나는 베드로에게 주라구요. 쿠자도 제게 검을 주고자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많은 사람들과 대항하는데 칼 두 자루가 무엇입니까? 쿠자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사실이라고 믿지를 못합니다. 그는 맹세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며 회의에서는 명절을 즐길 생각 밖에 안한다고 그럽니다… 여느 때처럼 맛있는 것이나 먹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쿠자는 요안나에게 유다에 있는 그들의 집 중 하나에 물러가 있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요안나는 여기 그의 저택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없는 듯이 들어박혀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요안나는 떠나지는 않습니다. 요안나는 쁠라우띠나와 안나와 니까, 그리고 글라우디아가의 로마 부인 두 사람과 같이 있습니다. 그 여자들은 울며 기도를 드리고 또 어린이들에게 기도를 드리게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기도를 드릴 때가 아니고 피를 흘리는 때입니다. 저는 제 안에 ‘열성당원’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끼고 원수를 갚기 위해 죽일 생각이 간절합니다!…”
“시몬아, 만일 내가 너를 저주 받은 자로 죽게 하기를 원했더라면, 너를 비탄에서 빼내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매우 엄격하시다.
“오! 용서하십시오, 선생님… 용서하세요. 저는 술취한 사람 같아서 헛소리를 합니다.”
“마나엔은 무엇이라고 하더냐?”
“마나엔은 그것이 사실일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사실이면 자기는 선생님을 따라 형벌까지도 받겠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그런 것처럼 너희는 자신이 만만하구나!… 사람 안에는 얼마나 교만이 많으냐! 그리고 니고데모와 요셉은? 그 사람들은 무엇을 알고 있더냐?”
“저보다도 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얼마전 어떤 모임에서 요셉이 최고회의를 공격했습니다. 요셉은 그들이 무죄한 사람을 죽이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들을 살인자로 취급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안에는 모든 것이 불법이오. 그분이 말을 잘했소. 주의 집에 반종교적인 가증스런 것이 들어앉았다고. 이 제단이 더럽혀졌기 때문에 파괴될 것이라고.’
그들은 요셉이 요셉이기 때문에 돌로 쳐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부터 그들은 그에게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가믈리엘과 니고데모만이 친구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가믈리엘은 말을 하지 않고, 니고데모는… 니고데모도, 요셉도 가장 실제적인 결정을 하기 위한 최고회의에는 불려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니고데모와 요셉, 그리고 토마가 겁이 나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다른 시간에 불법으로 모입니다.
아! 제가 잊고 있었군요!… 목동들이요. 그들도 갈릴래아 사람들과 같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수효가 얼마 안됩니다! 만일 라자로가 저희 말을 들어 총독을 만나러 갔더라면! 그렇지만 저희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저희가 한 일입니다… 많이 했지만…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너무 시달려서 들판으로 돌아다니며 재칼처럼 부르짓고 진탕 먹고 마셔 바보처럼 되고 악당처럼 막 죽여서, 라자로가 말하고 요셉과 쿠자와 마나엔과 가믈리엘이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이 쓸데없다’는 이 생각을 없애버리고 싶을 지경입니다…”
열심한 사람은 이제 사람이 변한 것 같다….
“스승은 무엇이라고 하더냐?”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가야파의 뜻이 어떤지를 모르오. 하지만 당신들이 말하는 것은 다만 그리스도를 위하여 예언되었다는 말을 하겠소. 그런데 나는 그 예언자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동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오. 하느님의 벗인 착한 사람 하나가 죽임을 당할 것이오. 하지만 시온은 얼마나 많은 그와 비슷한 사람의 피를 마셨소?!’
그리고 저희가 선생님의 천주성을 강조했더니, 그분은 ‘표를 보면 믿겠소’ 하고 고집스럽게 반복했습니다. 그분은 선생님의 사형선고 투표에 기권하고 또 할 수 있으면 선생님께 선고를 내리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겠다는 약속까지도 했습니다. 그것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아요! 내일까지만 갈 수 있으면… 그렇지만 선생님께서 내일까지 못간다고 하시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너는 라자로의 집으로 가거라.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을 그리로 데려 가도록 힘써라. 사도들뿐 아니라 제자들이 시골길을 방황하는 것을 만나거든 그들도 데려 가거라. 목동들도 만나서 이 명령을 주도록 해보아라. 베다니아의 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배다니아의 집, 즉 인심이 좋은 집이다. 온 백성의 증오를 무릅쓸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그리로 피신해서 기다리라고 하여라…”
“그렇지만 저희는 선생님을 버려두지 않겠습니다.”
“서로 흩어지지 말아라. 갈라져 있으면 너희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단결해 있으면 아직 하나의 힘이 될 것이다. 시몬아, 이것을 내게 약속해라. 너는 조용하고 충실하며 말을 하고 명령을 할 줄 안다. 베드로에게까지도. 그리고 너는 내게 대하여 큰 의무가 하나 있다. 나는 네게 순종을 강요하기 위하여 그 일을 처음으로 상기시킨다. 보아라, 우리는 키드론에 있다. 거기서 너는 나병환자로 나를 향해 올라왔고, 깨끗해진 몸으로 여기서 떠나갔다. 내가 네게 준 것 대신 내게도 다오. 내가 사람에게 준 그것을 너도 사람에게 다오. 지금은 내가 나병환자다…”
“안됩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하고 두 제자가 함께 괴로와하며 말한다.
“사실이 그렇다! 베드로와 내 형제들이 가장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내 정직한 베드로는 자기가 죄인인 것으로 느껴서 마음이 편안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 형제들은… 그들의 어머니와 내 어머니를 쳐다볼 용기가 없을 것이다. 그들을 네게 부탁한다.”
“주님, 저는 누구에게 맡겨집니까? 주님은 제 생각은 안하시는군요?” 하고 요한이 간청한다.
“오, 내 어린아이야! 너는 내 사랑에 맡겨져 있다. 네 사랑이 강하기 때문에 어머니처럼 너를 인도할 것이다. 네게는 명령도 지시도 필요치 않다. 너를 사랑의 물 위에 남겨둔다. 그 사랑이 물은 네 안에서 고요하고 깊은 강물처럼 흐르기 때문에 네 장래에 대하여는 아무 걱정을 하지 않는다.
시몬아, 들었느냐? 내게 약속해 다오. 내게 약속해줘!”
그렇게까지 번민하시는 예수를 보기가 괴롭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이으신다.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오! 고맙다! 축복을 받아라!”
모두가 모였다.
“”이제는 헤어지자. 나는 기도를 드리러 저 위로 올라간다. 나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간다. 너희들은 여기 남아 있어라. 그리고 무슨 괴로운 일을 당하면 불러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의 머리칼 하나도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나를 위하여 기도하여라. 증오와 공포를 버려라. 한 순간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기쁨이 넘칠 것이다. 웃어라. 그래서 내 마음속에 너희 미소를 간직하게 하여라. 그리고 다시 한번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한다. 벗들아, 잘들 있어라. 주께서 너희들을 보호해 주시기 바란다…”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헤어져 앞으로 나아가시고, 그동안 베드로는 시몬에게서 횃불을 건네받는다. 시몬은 이미 진이 많은 나뭇가지들에 횃불로 불을 붙였었다. 그래서 그 나뭇가지들이 올리브 나무 재배지 가장자리에서 탁탁 소리를 내며 타서 노가주나무 냄새를 퍼뜨린다.
예수를 어떻게나 간절하고 고통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지 예수께서 돌아서시어 누가 당신을 바라보았는지를 찾으시는데 타대오를 보기만 해도 슬퍼진다. 타대오는 바르톨로메오 뒤로 숨어서 침착해지려고 입술을 깨문다.
예수께서는 강복이기도 하고 작별 인사이기도 한 손짓을 하시고 나서 길을 계속가신다. 이제는 매우 높게 올라온 달이 그 빛으로 예수의 키 큰 모습을 둘러싼다. 그 모습을 정신화하고 그분의 붉은 옷을 더 밝게 하고 머리칼의 금빛을 더 창백하게 함으로써 더 크게 만드는 것 같다. 예수 뒤에는 횃불을 든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이 걸음을 재촉한다.
그들은 올리브 나무 재배지의 시골풍의 원형극장 같은 것의 첫번째 급경사의 가장자리에 이를 때까지 걸음을 계속하는데, 그 원형극장에는 불규칙적으로 생긴 작은 광장이 입구 노릇을 하고, 올리브 나무 계단으로 산에 올라가는 여러 가지 급경사가 단(段) 역할을 한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말씀하신다.
“걸음을 멈추어라, 그리고 내가 기도드리는 동안 기다리고 있어라. 그러나 잠은 자지 말아라. 나는 너희가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제발 부탁이지만 기도해라! 너희 스승은 괴로움에 매우 시달리고 있다.”
과연 예수께서는 매우 매우 시달리고 계시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신 것같다. 위압적인 눈으로 조용히 미소 지으시면서 쩡쩡 울리고 매력이 넘치는 목소리로 군중들에게 말씀하시던 아름답고 강하고 사나이다우시던 예수는 이제 어디 계신가? 그분은 벌써 극도의 불안에 붙들리신 것 같다. 뛰어왔거나 운 사람 같으시다. 그분의 목소리는 지쳤고 몹시 괴로워하는 목소리이다. 슬프고, 슬프고, 또 슬픈… 모습이다.
베드로가 대답한다.
“선생님 안심하십시오. 깨어서 기도드리겠습니다. 부르기만 하시면 가겠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떠나 가신다. 그동안 세 사람은 깨어 있는데 도움이 되라고, 그리고 많이 내리기 시작하는 이슬을 막기 위하여 불을 피우려고 나뭇잎과 가지를 주우려고 몸을 굽힌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등을 돌리시고 동쪽을 향하여, 그러니까 달빛을 앞으로 받으시면서 걸어 가신다. 나는 큰 고통으로 인하여 그분의 눈이 한층 더 확대되어 있는 것을 본다. 어쩌면 피로로 인한 적갈색이 눈을 더 크게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미궁(薇弓)의 그림자로 더 크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알 수가 없다. 그분이 눈을 더 크게 뜨시고 눈이 더 쑥 들어가 있다는 것만은 알겠다.
예수께서는 머리를 기울이고 올라가시는데, 다만 이따금씩 피로하고 숨이 찬 것처럼 한숨을 쉬시면서 머리를 위로 드신다. 그 때에는 아주 서글픈 눈으로 조용한 올리브 나무 재배지 쪽을 바라보신다. 예수께서는 비탈진 곳을 몇 미터 올라가시고 나서 어떤 급경사 주위를 맴돌고 계신데, 이렇게 하여 이 급경사는 저 밑에 남겨 두신 세 사도와 당신 사이에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몇 데시미터밖에 올라가지 않던 급경사가 계속 올라가 멀지 않아 약 2미터까지 이르렀다. 예수께서는 그래서 조심성 없는 눈이건, 호의적인 눈이건간에 어떤 눈에도 도무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예수께서 어떤 지점에서 좁은 오솔길을 가로막고 있는 큰 바위까지 계속 걸어 가신다. 그 바위는 아마 그 너머 예루살렘이 위치한 성벽에 이르기 전에 있는 황량한 공간까지 더 빨리 내려오며 아무 나무도 없는 비탈을 떠받치기 위하여 놓아둔 것 같다. 그 비탈은 위쪽으로도 계속 올라가며 다른 급경사와 다른 올리브 나무들이 나온다. 큰 바위 바로 위에 옹이 투성이고 뒤틀린 올리브 나무 한 그루가 비스듬히 서 있다. 그 올리브 나무는 어떤 질문을 하려고 자연이 놓아 둔 이상한 의문부처럼 보인다. 나무 꼭대기에 잎이 무성한 가지들이 줄기의 질문에 답변을 하는데, 어떤 때 가지가 땅 쪽으로 늘어져 있을 때에는 그렇다는 대답을 하고, 어떤 때 잎들 사이로 계속적인 파도같이 지나가는 가벼운 바람에 좌우로 움직일 때에는 아니라는 대답을 한다. 그 가벼운 바람이 때로는 흙냄새 만을 풍기고, 때로는 올리브 나무의 쌉쌀한 냄새를, 때로는 장미꽃과 은방울꽃 향기를 풍기는데, 이 장미꽃과 은방울꽃 향기는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다.
작은 오솔길 저 쪽에는 다른 아래 쪽으로 올리브 나무들이 있는데, 바위 바로 아래 쪽에 있는 올리브 나무 하나는 벼락을 맞고도 살아 남았는지, 또는 어떻게 잘라서 그랬는지 원줄기에서 두 줄기가 마치 주조(鑄造)된 커다란 V 자의 두 가지처럼 서 있고, 잎이 우거진 가지들이 바위 이쪽 저쪽으로 나뉘어 있어 마치 동시에 바위를 보고 감추기를 원하던가 아주 조용한 은회색 바탕을 만들어 주고자 하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그곳에서 발을 멈추신다. 예수께서는 달빛을 받아 아주 희게 보이는 시가지를 바라보지 않으신다. 반대로 시내 쪽으로 등을 돌리시고 팔을 펴서 십자 모양을 하시고 얼굴을 하늘로 드신 채 기도하신다. 말하자면 달이 예수의 머리 위에 수직으로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와 달 사이에는 올리브 나무의 빽빽한 잎들도 있어서 달빛이 나뭇잎들 사이로 겨우 새어 들어와 끊임없이 움직이는 빛의 반점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는다.
길고 열렬한 기도이다. 때때로 한숨을 내쉬시고 어떤 말을 더 분명히 들리게 하신다. 그것은 성시도 아니고 주기도문도 아니다. 그것은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필요성에서 용솟음쳐 나와서 이루어진 기도이다. 당신 아버지께 하는 하나의 참된 변론이다.
나는 내가 알아듣는 몇 마디 말로 그것을 이해한다.
“아버지께서는 아십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모든 것을, 그러나 저를 도와 주십시오… 때가 왔습니다… 저는 이제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말씀’에는 일체 도움의 필요성이 사라집니다. ‘말씀’이 아버지께 순종한 것과 같이 ‘사람’이 ‘구속자’로서 아버지를 만족시켜 드리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저들을 위하여 아버지께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저들을 제가 구원하겠습니까? 이것을 아버지께 여쭈어보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이 이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세속과 육신과 마귀에게서 구원되기를… 아버지께 또 청해도 되겠습니까? 아버지, 이것은 정당한 청입니다. 저를 위한 청이 아니고, 아버지의 피조물이며 자기 영혼까지 진흙을 만들어 버리고자 한 인간을 위한 청입니다. 저는 그 진흙이 다시 아버지의 뜻에 맞는 정신의 썩지 않는 본질이 되라고 그것을 제 고통과 제 피속에 집어넣습니다…
악마는 사방에 있습니다. 오늘 밤에는 그놈이 왕입니다. 왕궁에도 있고, 집들에도 있고 군대 가운데에도, 성전에도 있습니다… 성안은 그놈들로 가득 차 있어서 내일은 지옥으로 변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몸을 돌려 바위에 등을 대시고 팔짱을 끼신다. 그분은 예루살렘을 바라다보신다. 예수의 얼굴은 점점 더 침울해진다. 예수께서는 중얼거리신다.
“예루살렘은 눈같이 하얗게 보이지만 오직 죄악에 지나지 않는다. 저 안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병자를 고쳐 주었는가! 얼마나 말을 많이 하였는가!… 내게 충실한 것같이 보이던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예수께서는 고개를 숙이시고 이슬로 반짝이는 짧은 풀이 덮인 땅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신다. 그러나 비록 고개를 숙이고 계시지만, 그분의 얼굴에서 물방울이 땅으로 떨어지면서 반짝이는 것을 보니 울고 계시다는 것을 알겠다. 그런 다음 머리를 드시고 팔짱끼신 팔을 풀고 머리 위에 합장을 하시고 이렇게 합장한 손을 흔드신다.
그런 다음 걷기 시작하신다. 피워 놓은 나뭇가지를 태운 불 옆에 앉아 있는 세 사도들에게로 돌아오시니, 그들은 반쯤 잠들어 있다. 베드로는 어깨를 나무줄기에 기대고 팔짱을 낀 채 깊이 든 첫잠에 취하여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다. 야고보는 동생과 함께 땅 밖으로 드러난 뿌리에 그 껄껄함을 덜 느끼려고 그들의 겉옷을 깔아 놓고 앉아 있다. 비록 베드로보다 덜 편안하지만 그들도 졸고 있다. 야고보는 머리를 요한의 어깨에 맡기고, 요한은 머리를 형의 머리 위로 기울이고 있는데 마치 어렴풋이 든 잠이 그들을 그런 자세로 고정시켜 놓은 것 같았다.
“자고들 있느냐? 한 시간을 깨어 있을 수가 없었구나. 나는 너희들의 격려와 기도가 몹시도 필요한데 말이다!”
세 사람은 소스라쳐 놀라며 부끄러워한다. 그들은 눈을 비비며 변명의 말을 중얼거리는데, 힘든 소화(逍化)를 그들의 잠의 첫째 원인으로 돌린다.
“포도주와… 음식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됐습니다. 그것은 잠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저희들은 말을 하기가 싫었고, 그 때문에 잠이 들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큰 소리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 기도를 드리고 깨어 있어라. 너희를 위해서도 그럴 필요가 있다.”
“예, 선생님. 선생님께 순종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돌아가신다. 달이 어떻게 강하게 그분의 얼굴을 비추는지 그 은색 빛이 그분의 붉은 옷을 점점 더 창백하게 한다. 마치 그 옷에 희고 빛나는 먼지를 끼얹은 것 같다. 나는 그 달빛으로 그분의 낙망하고 괴로워하는 늙은 얼굴을 볼 수 있다. 눈은 여전히 확대된 채로 있다. 그러나 눈물로 흐려져 있는 것 같다. 입에는 권태를 나타내는 주름이 잡혀 있다.
예수께서는 몸을 한껏 구부리시고 더 천천히 그 바위로 돌아가신다. 예수께서는 바위 앞에 무릎을 꿇으시고 팔로 바위에 기대신다. 바위는 반들반들하지는 않지만, 그 중간쯤 높이에 누가 일부러 가공이라도 한 것같이 일종의 젖가슴 같은 것이 있다. 작은 이 젖가슴 위에는 내가 이탈리아에서도 본 적이 있는 작은 백합과 비슷한 화초가 한 그루 나 있다. 작은 잎들은 둥글지만 가장자리가 까칠까칠하고 두터우며, 매우 가는 줄기 끝에는 작은 꽃들이 피어 있다. 바위의 회색 바탕과 진초록색 잎에 뿌려진 작은 눈송이와도 같았다. 예수께서 꽃들 곁에 손을 얹으시니, 작은 꽃들이 뺨을 스친다. 깍지를 끼신 손에 얼굴을 얹으시고 기도하시기 때문이다. 조금 후에 작은 꽃잎들의 차가운 기운을 느끼시고 얼굴을 드신다. 예수께서는 그것들을 들여다보시고 쓰다듬으시며 그 꽃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들은 순결하다!… 너희는 나를 위로하는구나! 어머니의 작은 동굴에도 이같은 작은 꽃들이 있었지… 어머니는 그 꽃들을 좋아하셨다. ‘내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나보고 <너는 몹시 작으면서도 하늘의 이슬이 하나 가득 찬 백합꽃이다> 하고 말씀하셨지’ 하고 말씀하셨으니까 말이다… 어머니! 오! 어머니!”
예수께서 흐느껴 울기 시작하신다. 깍지낀 손에 머리를 얹으시고 약간 꿇어앉아 우시는 것을 보고 들을 수가 있는데, 손은 손가락을 끼시고 으스러져라 하고 조이신다.
“베들레헴에서도… 어머니께 그 꽃들을 갖다 드렸지요. 그러나 이제 누가 이 꽃들을 어머니께 갖다 드리겠습니까?…”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 들린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는 다시 기도와 묵상을 시작하신다. 그 묵상이 슬픔것임이 틀림없다. 아니 슬픈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고민스러운 것임에 틀림없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일어나시어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중얼거리시면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시고, 얼굴을 들었다가 다시 내리시고 여러 가지 몸짓을 하시며, 커다란 고민에 빠져 있는 사람의 동작과 같은 기계적이고 불안스런 몸짓으로 손을 눈과 빰과 머리에 갖다 대시기 때문이다. 그것을 말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묘사하기는 불가능하며, 그분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분의 고민에 끌려 들어가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손짓을 하신다. 그런 다음 도움을 청하기 위한 것처럼 다시 하늘을 향하여 팔을 쳐들기 시작하신다. 더운 것처럼 겉옷을 벗으신다. 그 겉옷을 들여다보신다… 그분에게는 무엇이 보이는가? 그분의 눈은 당신의 고통밖에는 다른 것을 보지 못하며, 모든 것이, 당신 어머니가 짜신 이 겉옷조차도 그 고통을 더해 준다.
예수께서는 겉옷에 입을 맞추시면서 말씀하신다.
“용서하십시오, 어머니! 용서하세요!”
당신 어머니의 사랑으로 잣고 짜고 한 천에 용서를 빌으시는 것 같다… 겉옷을 다시 입으신다. 예수께서는 고통에 짓눌리신다. 고통을 이겨내시려고 기도를 하고자 하신다. 그러나 기도와 더불어 추억과 걱정과 의심과 회한이 다시 몰려온다… 도시와… 사람…의 이름과… 사건들이… 눈사태 모양으로 와르르 몰려온다.
예수께서는 빠르고 불규칙적이기 때문에 나는 따라갈 수가 없다. 그분의 복음전파 생활상이 그분의 눈 앞에 떠오른다… 그리고 배반자 유다를 다시 데려온다. 어떠한 고민인지 그 고민을 이기시려고 베드로와 요한의 이름을 외치실 정도이다.
“그들이 이제 오겠지. 그들은 정말 충실하다!”
그러나 “그들은” 오지 않는다. 다시 부르신다. 무엇인가 보이는 것같이 무서워서 떠시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두 형제가 있는 곳으로 빨리 도망치신다. 그들은 꺼져가며 회색 재속에 붉은 빛 만을 내고 있는 나뭇가지가 탄 불 몇 덩어리 둘레에서 더 편안히, 더 깊이 잠들어 있다.
“베드로야! 너희들을 세 번이나 불렀는데, 너희들은 무엇을 하고 있냐? 너희는 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니 내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너희는 깨닫지 못한단 말이냐? 육체가 너희를 이기지 못하게 하여라. 너희 중의 아무에게나 말이다. 정신은 날래지만 육체는 약하다. 나를 도와다오…”
세 사람은 더 천천히 잠이 깬다. 그러나 끝내는 눈이 휘둥그레져 가지고 변명을 한다. 그들은 겨우 몸을 일으켜 우선 앉았다가 완전히 일어선다.
“근데 좀 생각해 보십시오!” 하고 베드로가 중얼거린다. “이런 일은 저희가 전에는 당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정말 그 포도주 탓입니다. 포도주가 독했습니다. 또 이 추위도 그렇구요. 추위를 느끼지 않으려고 옷을 껴입었습니다(과연 그들은 겉옷을 껴입었는데, 머리까지도 뒤집어 썼었다). 그리고 불이 약해지자 더 추워졌고, 잠이 왔습니다. 선생님이 저희들을 부르셨다고 말씀하시지만, 제가 그리 깊게 잠들었던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자, 요한, 나뭇가지를 찾고, 몸을 움직이세. 괜찮아질 것입니다. 선생님, 안심하십시오, 이제부터는!… 일어나 있겠습니다…”
그러면서 마른 나뭇잎 한 줌을 나뭇가지가 탄 불 위에 얹고, 그동안 야고보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숲에서 노가주 나무나 그와 비슷한 종류의 초목 한 덩어리를 잘라 가지고 와서 나뭇가지들 위에 얹어 놓는다.
불꽃이 높고 환하게 올라가며 예수의 불쌍한 얼굴, 그것을 쳐다보고 울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몹시 슬픈 얼굴을 비춘다. 그 얼굴의 빛이 극도의 피로 속에 전부 사라져 버렸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나를 죽이는 고통을 느낀다! 오! 그렇고 말고! 내 영혼이 죽도록 슬프다. 벗들아!… 벗들아! 벗들아!”
그러나 예수께서 그 말씀을 하시지 않는다 하여도 그분의 모습은 참으로 죽는 사람의 모습, 그것도 가장 괴로워 하고 가장 비탄에 잠긴, 버림받아서 죽어 가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흐느낌인 것 같다…
그러나 세 사람은 잠으로 인하여 너무 둔해져 있다. 그들은 눈을 반쯤 감고 비틀거리며 걸을 정도로 거의 술에 취한 것같이 보인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신다… 그러나 자존심을 해치지는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머리를 흔드시고 한숨을 쉬시고는 계시던 자리로 가신다.
예수께서는 서신 채 팔을 십자로 벌리시고 다시 기도하신다. 그런 다음 전과 같이 무릎을 꿇으시고 작은 꽃들 위로 얼굴을 숙이시고 기도하신다.
곰곰이 생각하신다. 말씀을 안하신다… 그런 다음 발뒤꿈치 위에서 몸이 풀어질 정도로 땅에 엎드리다시피 하시고 큰 소리로 신음하고 흐느끼기 시작하신다. 점점 더 고민하시면서 그분은 아버지를 부르신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 이 잔은 너무 씁니다! 저는 마시지 못합니다! 마시지 못해요. 이것은 제 능력을 지나치는 것입니다. 저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못합니다. 아버지, 이 잔을 당신의 아들에게서 치워 주십시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제가 이 잔을 받아 마땅할 무슨 일을 했습니까?”
그런 다음 침착해지셔서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아버지, 만일 제 목소리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청하거든 제 목소리를 듣지 마십시오.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지 마시고, 오직 아버지의 종이라는 것만을 기억하십시오. 제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잠시 그대로 계시다가 숨이 막힌 고함을 지르시고는 깜짝놀란 얼굴을 위로 들어올리신다. 잠깐 동안 그러시고는 정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신 채 그대로 계신다. 사탄이 우리를 몹시 괴롭히는 동안 그 위에 세상의 모든 죄악이 짓누르고, 그 위에 암흑과 재와 쓸개와 저 두렵고, 무섭고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인 하느님의 버림이 내려오는 내 약한 인간이다…
그것은 영혼의 질식이고, 우리와 하느님 사이에 어떤 유대가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될 때, 그것은 세상이라는 저 감옥에 산 채로 갇히는 것이고, 가시투성이며 불이 활활 붙어서 우리에게로 다시 떨어지는 우리 자신의 기도로 결박이 되고 입이 틀어막히고 돌로 맞는 것이며, 우리 고민의 목소리와 눈길이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 닫힌 하늘에 부딪는 것이고, “하느님의 고아”가 되는 것이며, 그 때까지 잘못 생각한 것에 대한 미칠 듯한 감정과 극도의 불안과 의혹이며, 하느님께 쫓겨나고 영원한 저주를 받았다는 확신이다. 그것은 지옥이다.
오! 나는 그것을 안다! 그리고 나의 그리스도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정말 못보겠다. 그리고 그 고통이 지난 해에 나를 들볶았던 고통, 그것을 다시 생각만 해도 아직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놓는 그 고통보다도 백만배나 더 혹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참다운 임종의 고통의 헐떡거림과 한숨 속에서 신음하신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저리 가라!… 아버지의 뜻이! 그 뜻이! 그 뜻만이!… 아버지, 아버지의 뜻이, 제 뜻 말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제 뜻은 무익합니다. 제게는 주님 한 분밖에 안계십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이 그분이십니다. 유일한 율법은 순종이고, 유일한 사랑은 구속입니다… 아니다. 나는 이제 어머니도 안계시고, 생명도 없고, 천주성도 없고, 사명도 없다. 마귀야, 네가 어머니와 생명과 내 천주성과 내 사명을 가지고 나를 유혹해도 소용없다. 나는 인류를 어머니로 가졌기에 인류를 위하여 죽기에 이르도록 그를 사랑한다. 생명은 그것을 내게 주셨다가 다시 요구하시는 분께, 모든 생명의 최고의 지배자께 돌려드린다. 천주성은 그것이 이 속죄를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내가 그것을 입증하며, 사명은 내가 죽음으로써 그것을 완수한다. 내게는 이제 주 내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 사탄아, 물러가라! 나는 이 말을 한 번, 두 번 하였고, 지금 세 번째 다시 하는 것이다.
‘아버지 될 수 있는 일이면 이 잔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나는 하느님의 것이다.”
그런 다음 이제 말씀을 안하시고 오직 헐떡임 사이에서 “하느님! 하느님! 하느님!” 하고 말씀하실 뿐이다. 예수께서는 심장이 뛸 때마다 하느님을 부르시고, 심장이 뛸 때마다 피가 넘치는 것 같다. 어깨에 걸쳐 있는 천에 그 피가 배어서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환한 달빛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빛깔처럼 보인다.
예수의 머리 위에는 더 환한 빛이 형성되어 그분에게서 약 1 미터 되는 곳에 나타난다. 너무 강한 빛이어서 땅에 엎디어 있는 분까지도 벌써 피로 무거워진 굽실굽실한 머리칼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것을, 피로 인하여 눈이 흐려졌는데도 불구하고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예수께서는 머리를 위로 들어올리신다… 달이 가엾은 얼굴 위에 빛나고 있고, 금성의 청백색 다이아몬드 빛 같은 천사의 빛은 한층 더 빛난다. 그러자 땀구멍에서 스며나오는 피속에 무서운 죽음의 고통이 나타난다. 속눈썹과 머리칼과 콧수염과 수염이 피에 젖고 피를 뒤집어썼다. 피가 관자놀이에서 흘러 나오고, 피가 목의 정맥에서 나오고, 손에서 피가 방울져 떨어진다. 예수께서 손들을 천사의 빛을 향하여 내미시는데, 넓은 소매가 팔꿈치 쪽으로 미끄러져 내리자 그리스도의 아래팔에서 피땀이 흐르는 것이 보인다. 얼굴에서만 눈물이 붉은 얼굴 모습을 통하여 분명한 두 줄기 선을 그어 놓는다.
예수께서는 다시 겉옷을 벗어서 손과 얼굴과 목과 아래팔을 닦으신다. 그러나 땀은 계속 나온다. 예수께서는 옷감을 두 손으로 꼭 눌러 쥐시고 얼굴에 대고 누르시는데, 옷감이 자리가 바뀔 때마다 짙은 붉은 색 옷감에 자국이 분명히 나타나는데, 그 흔적은 검게 보인다. 땅에는 풀이 빨갛게 물들었다.
예수께서는 거의 까무라치실 것 같다. 숨이 찬 것을 느끼시는 것처럼 목에 맨 옷끈을 끌르신다. 손을 심장에 갖다 대셨다가 머리에 대시고 마치 부채질을 하듯이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드시며 입을 반쯤 벌린 채로 계신다. 예수께서 바위를 향하여, 아니 오히려 비탈 꼭대기를 향하여 느릿느릿 가셔서 거기에 등을 기대신다. 그리고는 마치 벌써 돌아가신 것처럼 머리를 가슴 위로 푹 숙이시고 양팔은 몸 옆으로 늘어뜨리신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계시다.
천사의 빛이 아주 천천히 줄어든다. 그러다가 마치 달빛에 빨려 들어간 것같이 되고 만다.
예수께서는 다시 눈을 뜨신다. 힘들게 머리를 드시고 바라보신다. 혼자이시다. 그러나 덜 고민하시는것 같다. 한 손을 뻗어 풀 위에 버려두었던 겉옷을 당신께로 끌어 당기시어 얼굴과 손과 목과 수염과 머리칼을 닦기 시작하신다. 마침 비탈 가장자리에 돋아난 이슬을 흠뻑 머금은 큰 잎을 따셔서 그것으로 얼굴과 손을 씻으시고 또 다시 닦으시고 하여 몸을 마저 깨끗하게 하신다. 그 일은 다른 잎 여러 개를 가지고 여러 번 하셔서 그 무서운 땀의 흔적을 지워버리신다. 그분의 옷만이 얼룩이 져 있는데, 특히 어깨 위와 팔 굽는 곳, 목과 허리와 무릎 부분이 더 그러하다. 예수께서는 옷을 들여다보시고 머리를 흔드신다. 겉옷도 들여다 보신다. 겉옷이 너무 얼룩져 있는 것을 보신다. 예수께서는 겉옷을 개켜서 바위 위, 작은 꽃들 근처의 요람처럼 생긴 곳에 놓으신다.
몸이 약해지신 탓에 어렵게, 무릎을 꿇으시기 위하여 돌아서신다. 예수께서는 겉옷에 머리를 갖다대시며 기도하시는데, 겉옷 위에는 손이 얹혀 있다. 그런 다음 바위를 짚으시며 일어서시어, 또다시 가볍게 비틀거리시면서 제자들을 찾아 가신다. 그분의 얼굴은 매우 창백하다. 그러나 이제는 당황한 얼굴이 아니다. 비록 핏기는 없고 평소보다 더 슬프기는 하지만 숭고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얼굴이다.
세 제자는 그들의 겉옷을 뒤집어쓰고 꺼진 불 옆에 완전히 누워서 깊이 잠들어 있다. 그들이 숨을 깊이 쉬는 것이 들리는데, 그것은 요란스럽게 코를 골려는 시초이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지만 소용이 없다. 몸을 굽혀 베드로를 너그럽게 흔들어 깨우실 수밖에 없다.
“뭐야? 누구야?” 베드로는 잠을 깨며 정신이 멍하고 자기의 진초록색 겉옷을 보고 놀라며 말한다.
“아무도 아니다. 내가 너를 불렀다.”
“아침이 되었습니까?”
“아니다. 이경이 거의 끝나 간다.”
베드로는 정신이 아주 둔해져 있다. 예수께서 요한을 흔드시니 요한은 자기 위에서 유령의 얼굴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겁에 질린 고함을 지른다. 그만큼 예수의 얼굴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것같이 보인다.
“오!… 선생님이 죽은 사람처럼 보였어요!”
예수께서는 야고보도 흔들어 깨우신다. 야고보는 자기 동생이 부르는 줄로 알고 “그들이 선생님을 잡아 갔니?” 하고 말한다.
“아직 아니다. 야고보야” 하고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그러나 이제는 일어들 나서 가자. 나를 배반한 자가 가까이 와 있다.”
아직 어리둥절한 세 사람은 일어난다… 올리브 나무, 달, 밤꾀꼬리, 산들바람, 평화…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말없이 예수를 따라온다. 여덟 사람은 꺼진 불 곁에서 다소간 잠들어 있다.
“일어들나거라!” 하고 예수께서 고함치신다.
“사탄이 오는 동안 결코 자지 않는 자 사탄과 그 추종자들에게 하느님의 아들들은 자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어라.”
“예, 그러겠습니다. 선생님.”
“사탄이 어디 있습니까, 선생님?”
“나 예수는…”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확실치 않은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동안 그들은 겉옷을 다시 입는다… 유다의 지휘를 받으며 조용한 작은 장소에 불을 붙인 많은 횃불로 환하게 비추면서 쏟아져 들어오는 순라꾼들의 무리 앞에 겨우 질서있게 나타날 만한 이유밖에는 없었다. 그들은 병정으로 가장한 산적 무리와 같았고, 악마와 같은 웃음으로 보기 흉하게 되는 도형수(徒刑囚)와 같은 얼굴들이었다. 성전의 열성분자들도 몇 명이 있다.
사도들은 모두 한편 구석으로 몰려 간다. 베드로가 앞에 있고 다른 사람들은 뒤에 몰려 있다. 예수께서는 계시던 곳에 그대로 계시다.
유다는 다시 그분의 가장 좋은 시절의 빛나는 눈이 된 예수의 시선과 맞서서 쳐다보며 다가온다. 얼굴도 숙이지 않는다. 오히려 하이에나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와서 예수이 오른쪽 빰에 입맞춘다.
“벗아, 그래 무엇을 하러 왔느냐? 너는 입맞춤으로 나를 잡아 넘기느냐?”
예수께서는 스승의 위엄을 가지고 처음 말씀을 하신 다음 어떤 불행을 감수하는 사람의 몹시 슬퍼하는 어조를 쓰신다.
유다는 잠시 머리를 숙였다가 다시 든다… 비난에도 뉘우침에 대한 일체의 권고에도 무감각인 채.
병정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밧줄과 몽둥이들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오며 그리스도 외에 사도들도 붙잡으려고 한다. 물론 가리옷의 유다는 빼놓고.
“누구를 찾소?” 하고 예수께서는 침착하고 장엄하게 물으신다.
“나자렛 사람 예수요.”
“내가 그요!””
예수의 목소리는 우뢰와 같다. 살인자인 세상 앞에서, 무죄한 사람들의 세상 앞에서, 자연과 별들 앞에서 예수께서는 자신만만하고 성실하고 공개적인 이 증언을 당신 자신에게 하신다.
예수께서 벼락을 내리치셨더라도 그보다 더한 일을 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모두가 낫으로 베는 밀이삭 다발처럼 쓰러진다. 서 있는 사람은 유다와 예수와 사도들 뿐이다. 사도들은 병사들이 쓰러지는 광경을 보고 용기가 다시 살아나 예수께로 가까이 오면서 어떻게나 노골적으로 유다를 위협하였던지, 유다는 때맞게 껑충 뛰어 시몬의 명인다운 칼솜씨를 피하게 되었다. 검으로 무장하지 않은 사도들이 뒤에서 던지는 쓸데없는 돌팔매와 몽둥이에 쫓기며 유다는 키드론 개울 저 쪽으로 도망쳐 어떤 어두운 골목길로 사라진다.
“일어들 나시오. 다시 묻지만 누구를 찾소?”
“..나자렛 사람 예수요.”
“나라고 당신들에게 말하였소” 하고 예수께서는 부드럽게 말씀하신다. 그렇다. 부드럽게.
“그러면 이 다른 사람들은 가만 내버려 두시오. 내가 가겠소. 검과 몽둥이들을 내려놓으시오. 나는 도둑이 아니오. 나는 항상 당신들과 같이 있었소. 왜 그때 나를 붙잡지 않았소? 그러나 지금은 당신들의 때이고 사탄의 때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동안 베드로는 예수를 묶으려고 벌써 밧줄을 내미는 사람에게 가까이 가서 서투른 칼질을 한다. 칼끝을 썻더라면 양처럼 그의 목을 땄을 것이다. 베드로는 그 사람의 귀를 자르기만 하였는데, 그 귀는 매달린 채 많은 피를 흘린다. 그 사람은 죽는다고 부르짖는다. 앞으로 나오려는 자들과 번쩍거리는 검들과 단도들을 보고 겁을 먹은 자들 사이에 약간의 혼란이 일어난다.
“그 무기들을 내려 놓아라. 명령이다. 만일 내가 원하면 나를 지킬 하느님의 천사들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나으시오. 할 수 있으면 우선 당신의 영혼이 낫기 바라오.” 그리고 밧줄을 향하여 손을 내미시기 전에 귀를 만져 고쳐 주신다.
사도들은 무질서한 비명들을 지른다… 그렇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유감스럽게 여기지만, 사실이 그렇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어떤 사람은 저 말을 한다. 한 사람이 “선생님은 우리는 저버리셨습니다.” 하고 말하면 또한 사람은 “아니 선생님이 미치셨어!” 하고 외치고, 또 한 사람은 “그러니 누가 선생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하고 외친다. 소리지르지 않는 사람은 도망친다…
그래서 예수께서 혼자 계시다… 혼자서 병정들과 같이… 이리하여 길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