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임테기 좀 봐주세요. 제발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이고 남자친구는 대학생인데요, 4월 ○○일 날 관계를 하게 되었습니다. 막생은 3월 ○○일부터 3월 ○○일까지였고요. 처음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엄청 불안했는데 남친 말로는 임신하려는 부부들도 6개월에서 1년 정도 계속 시도하는데 임신 잘 안 되는 사람 많다고, 한 번에 되면 기적인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그래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혹시나 해서 토요일에 학원 갔다 오면서 임테기는 사놨었거든요. … 두 줄 나온 것 같긴 한데, 둘 다 진한 색이 아니라 연한 분홍색이라서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임신 아니겠죠? 연하면 아닐 수도 있다는데….

아직까지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요. 엄마, 아빠한테는 당연히 말 안 했고, 남친한테도 평소처럼 연락했는데 혹시 진짜 임신 맞다면 남친한테 말했을 때 남친이 피하거나 연락 안 받거나 하면 어떡하죠? 제가 임테기 하기 전에 “아주 만약에 아기 생기면 나 책임질 거지?”라고 물어봤는데, “응. 책임져야지. 근데 임신은 진짜 아닐 거야” 이런 식으로 말해서 확신이 안 서요.

남친 집은 아직 못 가봤지만 어디 사는지는 알고, 남친 전화번호랑 집 전화번호는 아는데, 아주 혹시 남친이 연락 안 받거나 피하거나 그런 상황이면 남친 집에 찾아가거나 남친 집으로 전화하면 되겠죠? 게시판 가끔 보면 임신일 때 연락 끊거나 도망간다는 글을 봐서 그런데 다른 것보다 그게 제일 걱정돼서요. 보통 도망가거나 피하게 되면 아버지로서 책임지게 할 방법이 있나요? 그리고 저 임신 맞는 건가요? 지금도 정신이 없어서 제가 뭘 쓰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만약에 진짜 임신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알려주세요. 정신없고 온종일 가슴이 뛰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임테기 : 임신 테스트 기기의 줄임말, 막생 : 마지막 생리일의 줄임말)

엄마, 아빠와 한집에 살면서 아침에는 학교, 저녁에는 학원 가는 평범한 여학생이 익명 게시판에 쓴 글이다. 원문의 사진과 날짜를 보면 임신이 확실해 보인다. 이 중대한 사실을 “엄마, 아빠한테는 당연히 말 안 했고”에서 보듯이, 부모는 끝까지 모르거나 알더라도 제일 늦게 안다. ‘우리 애는 그렇지 않아!’라는 태도로 현실을 인정하지 않은 결과다.

이 여학생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성들이 쓴 글을 두루 읽어본 후에 임신이 확인되면 연락을 두절하는 남친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른 것보다 그게 제일 걱정돼서 그런데, 보통 도망가거나 피하게 되면 ‘아버지로서 책임지게 할 방법’이 있나요?”라고 묻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것이다.

미성년자라 할지라도 임신과 출산에 대해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게 하는 법이 우리나라에 있을까? 없다. 거의 모든 OECD 국가에서 강력하게 시행되는 ‘미혼부 책임법’이 우리나라에만 없다. 그러니까 한국에는 책임의 성교육을 시킬 수 있는 법적 사회적 토대가 전혀 없는 것이다.

자유만 있고 책임은 없는 한국인의 성(性)

한국은 임신과 관련한 남성과 국가의 책임이 법제에서 완전히 누락되어 있는데, 성적 자유는 무한대로 열려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청소년을 포함한 한국 남녀는 성관계가 자유 또는 권리라고만 생각하고 쉽게 성관계를 한다. 그 후 임신이 확인되면 대다수의 남친은 도망치고 여성은 비참한 처지에서 낙태로 떠밀리게 되는데, 현행 낙태죄는 여성과 의사만을 처벌하기 때문에 여성은 두 번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런 큰 한(恨)이 맺힌 여성들이 무수히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큰 한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대한(恨)민국이고, 이런 억울함을 가진 분들이 낙태죄 폐지를 거세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주류 언론은 낙태죄 폐지 목소리만 증폭시킬 뿐, 남성과 국가의 책임을 묻는 미혼부 책임법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며, 거의 모든 선진국에 이 법이 있다는 사실은 언급조차 하지 않으니 이는 더 놀라운 일이다.

이런 책임법의 부재 때문에 한국에서 발생하는 기현상은 또 무엇일까? 피임이 최선의 성교육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성은 그저 임신만 안 하면 되는 쾌락의 도구로 왜곡된다. 피임산업이 ‘책임을 피하는 기술(피임)’이 유일하고 완벽한 성교육인 것처럼 온 나라를 속이고 있는데, 정작 국민은 자신들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못 하고 있다. 호랑이 없는 산에 토끼가 왕이 되듯, 책임이라는 진실이 은폐된 세상에서 책임을 피하는 편법이 정석(定石)으로 호도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계속 반복, 악화된다.

성교육의 핵심은 피임이 아니라 책임

임신했어요

안녕하세요? 저 18살 여고딩입니다. 저 정말 어떻게 해야 될까요? 잠도 안 오네요. 임신한 지 얼마 안 됐어요. 근데 더 힘든 건 애 아빠 되는 사람이 누군지 확실하거든요. 근데 헤어진 사이라 연락도 못 해요. 안 좋게 헤어졌는데 그래도 연락하는 게 좋겠죠? 애 아빠가 싫다 해도 제 핏줄이 섞여 있는 내 새끼이기 때문에 제가 책임지고 절대 낙태를 하고 싶지는 않네요. 남친이 책임진다는 말에 혹 해버렸네요.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여학생의 소중한 생각을 현행법은 전혀 보호해줄 수 없다. 지금까지 살펴본 청소년 성관계에서 완전히 빠져 있는 중요한 주제 하나가 무엇일까. ‘책임’이다. 청소년들 머릿속에 ‘책임’이라는 단어는 있는데, 그 단어에 포함된 개념은 전혀 없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청소년들은 영화, 드라마, 뮤비 광고 등을 통해서 성을 배운다. 상업적 영상물이 보여주는 성의 세계에는 책임의 내용이 전혀 없다. 그렇기에 영상물을 통해서 웃고 즐기면서 성을 배워 익힌 세대의 무의식에는 책임의 가치가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상태에서 성관계 문턱을 넘는 청소년들이 많기 때문에 임신, 낙태, 영아 유기, 영아 살해 등의 사건이 대규모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성교육은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줘야 할까? 첫째는 남녀가 성적으로 결합하면 생명이 잉태된다는 ‘자연법’이다. 대자연의 순리를 인위적인 피임이 막을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둘째는 성관계에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윤리’다. 그리고 책임의 파트너십이 남녀 사이에서 나오려면 그 둘이 서로를 인격적으로 존중해야 하기에 셋째는 연애하면 당연히 할 일이 성관계가 아니라 상호 신뢰를 쌓는 일이 우선이라는 ‘행동 원칙’이다. ‘생명’, ‘책임’, ‘인격’이 세 주제가 ‘피임’보다 백 배는 더 중요한데, 피임산업이 주도하는 성교육은 진실은 은폐, 삭제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거짓을 진실처럼 둔갑시키고 있다.

피임의 길 VS 책임의 길

서인영(이하 서) : 순결 얘기를 왜 이렇게 많이 하는 거야? 진짜야?

강균성(이하 강) : 처음부터 지킨 게 아니라, 뒤늦게 깨달은 거지.

서 : 좋은 사람을 만났어. 그러면 정말 경험할 수 없는 거야?

강 : 경험 못 하지. 지금은. 지금은 내가 마인드가 그러니까. 경험을 하려면 결혼해서 경험하는 거야.

서 : 진짜 좋은데?

강 : 진짜 좋으니까 결혼해서 경험하는 거지.

서 : 그럼 오빠는 진짜 좋아하면 바로 결혼할 수 있다고?

강 : 그런데 그 진짜 좋은 거라는 감정이라는 안개가 한 번은 걷혀야 되거든. 그래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해. 안개가 걷혔는데도 그 사람을 향한 뭔가가 이 안에 있는 게 있어.

서 : 그때까지 그럼 여자가 원할 수도 있잖아? 참아야 돼?

강 : 그게 서로 마인드가 안 맞는 거야

서 : 진짜? 다른 건 다 맞는데….

강 : 그럼 내가 잘 이야기해줘야겠지. 조금만 참아달라. 결혼해서 하자.

서 : 그럼 뽀뽀도 안 돼? 아니 입에 키스 이런 거.

강 : 뽀뽀 돼!

서 : 아! 그 순결을 얘기하는 거야?

강 : 사실 이겨낼 수 있는 실력이 없어. 그래서 피해야 하는 거야.

서 : 그럼 뭐야. 오빠 여기서 좋은 사람 만나면 어떡해?

강 :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걸 피한다는 게 아니라, 둘이 그런 상황이 벌어질 만한 상황을 피해야 한다고. 예를 들어, 단 둘이 여행을 가거나. 밤늦게 누구네 집에서 만난다거나.

서 : 그럼 남자친군데, 여행도 못 가?

강 : 당일 날 빨리 와야지. 잠을 안 자고 와야지.

서 : 그렇다면 정말 불편한 여행이네.

강 : 잠을 잘 거면 각 방을 쓰든지 해야겠지. 안 그러면 못 참으니까. 그런데 이 생각을 왜 하게 되었냐 하면, 사랑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둘 만의 즐거움만이 있는 게 아니라, 하나가 또 더 있는 거야. 생명으로 연결되는 거. 거기에 대한 책임감이 중요해.

서 : 그건 조절할 수 있잖아?

강 : 뭘 조절해. 야! 그게 너 그거 100% 피임이 없어. 피임에는 100%가 없어. 진짜로. 100%가 없다니까!

서 : 어렵다 근데.

강 : 되게 어려워. 100%가 없다니까.

SBS 프로그램 ‘썸남썸녀’(2015년 5월 19일 방송)의 한 대목이다. ‘서’는 남녀가 연애를 시작하면 곧바로 여행도 갈 수 있고, 또 당연히 성관계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강’은 성관계가 필연적으로 생명과 연결되기 때문에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신뢰의 관계가 되기 전까지는 삼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둘은 강하게 충돌한다. ‘강’의 입에서 생명과 책임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서’는 “조절할 수 있잖아?”로 맞선다. 피임으로 임신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성관계를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뜻인데, ‘강’은 크게 웃으며 “100% 피임은 없다”로 응수한다. “성관계는 반드시 책임의 길로 가야 한다”는 진실의 언어가 대한민국 예능에 나온 최초의 사례다.

진실은 왜 전파되지 않을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강’의 말이 진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교육 현장에서 이러한 진실이 잘 전파될까? 생명과 책임의 주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 반면, 피임 교육은 왕성하게 퍼져나간다. 왜 그럴까? 피임 산업은 자금력이 좋기 때문에 콘돔ㆍ피임약만 사용하면 모든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는 듯한 환상을 심어주는 광고를 만들어서 매스미디어로 사회 전체에 뿌린다. 피임 교육이 가장 좋은 성교육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성교육 단체를 후원하고 피임 강사를 양성, 파견해서 한국의 성교육이 피임 위주로 편성되게 한다. 보이지 않는 돈의 손이 거짓말은 빠르게 확산시키고, 진실은 땅속에 묻어버리는 것이다.

‘강’은 완벽한 피임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는 경험으로 아는 진리다. 콘돔ㆍ피임약 다 쓰고도 임신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그 피해자들이 돈을 모아서 “100% 피임은 없다”고 광고하지 않기 때문에 이 진리가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대자연과 생명은 피임의 벽을 넘는다

필자의 제자 한 명이 급하게 결혼을 해서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가 다음과 같은 답을 받은 적이 있다.

“고백 아닌 고백을 드리자면 새 생명이 생겨서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결혼 시기를 더욱 앞당기게 되었어요. 저희가 처음에 참 당황스러웠던 것은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피임을 했는데도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저는 근종 치료 때문에 피임약 처방을 받았었고, 누구나 다 쓰는 피임기구도 빈틈없이 사용했는데 말이죠. 생명은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오직 하느님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어요.”

이 제자는 약도 정확하게 꼬박꼬박 먹었고, 콘돔도 완벽하게 사용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아이가 생겼는지 전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 둘은 결혼으로 책임을 다했지만, 임신이 확인되었을 때 이렇게 책임지는 경우가 많을까? 둘이 싸우고 낙태하고 결국 깨지는 경우가 많을까?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현실이 이렇다면 성교육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피임을 하더라도 혼인이나 가정 등의 장기적인 인생 계획과 무관한 성관계는 사람을 엄청나게 불행하게 할 수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강조해줘야만 한다.

교육은 진실과 책임을 강조해야

그러나 피임 교육은 청소년에게 이런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사춘기가 되어서 성적 욕망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죄악시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도 성관계를 할 자유가 있다. 성관계는 청소년 인권이다. 임신이 걱정된다면 콘돔피임약을 사용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빗나간 교육이 무척 많다. 청소년은 이런 선전에 속기 쉽다.

위의 내용을 따져보자. 전 세계에서 포르노를 제일 많이 보는 한국 청소년들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욕망이 정말 자연스러운 것일까? 상당히 왜곡되고 증폭된 욕망이다. 이 교육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청소년에게 성관계를 할 자유가 있을까? 있다. 과도한 욕망이라 할지라도 본인이 실현시키겠다면 할 수 있고, 그것이 청소년의 권리인 것은 맞다. 그렇다면 따라붙어야 할 교육은 그 자유에 대한 책임이어야지, 책임을 피하는 기술인 피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임신을 유발하는 유일한 행동을 청소년의 자유와 권리로 선언하면서 책임을 피하는 길을 가르치면, 결국에 이들이 낙태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비극적 상황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707037&path=201801
– 가톨릭 평화신문 기획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