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 5. 6. 산또메로(데라모). 이달 첫토요일

1.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들아, 너희가 내게 바친 이 오월의 첫토요일인 오늘, 너희는 특별한 모양으로 나를 공경하고 있다. 너희 ‘천상 엄마’와 함께 기도하고 형제애를 나누면서 ‘다락방’에 모여 있으니 말이다.

2. 그것이 내 깊은 고통에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티없는 내 성심에 얼마나 큰 기쁨을 안겨 주는지 모른다! 내 (호소)에 응답한 너희를 통해, 이제 온 교회 안에 나에 대한 신심이 또다시 꽃피고 있는 것이다.

3. 그래서 나는 지존하신 성삼께서 내게 주신 큰 능력을 이 시대에 발휘하여, 내게 분노를 터뜨리며 입으로 강물같은 물을 토해 나를 휩쓸어 버리려고 드는(*묵시 12,15 참조) 내 원수 ‘붉은 용'(*묵시 12,3)의 공격을 무력하게 할 수 있다. 그 강물은 (바로) 너희 ‘천상 엄마’의 모습을 흐리게 하려 꾀하는 새 신학이론의 총체이니, 이는 나의 특권을 부정하고 나에 대한 신심을 축소 조정하며 내 신심에 열심한 사람들을 조롱하기 위한 것이다. ‘용’의 그러한 공격으로 말미암아 이 시대에는 허다한 신자들 사이에 나에 대한 신심이 점차 감소되었고, 어떤 곳에서는 아예 사라져버린 실정이다.

4. 그러나, 큰 독수리의 두 날개(*묵시 12,14)가 이 천상 엄마를 구하러 온다. 큰 독수리는 ‘하느님의 말씀’, 특히 내 성자 예수님의 ‘복음에 담겨 있는 말씀’이다.

5. 사(四) 복음서 중에서 독수리는 성 요한의 복음서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이 복음서가 그 중 가장 높이 날아올라, 바로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 하느님의 마음 속으로 깊이 진입하면서, ‘말씀’의 신성과 영원성 및 (성부·성령과의) 동질성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힘있게 확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6. 독수리의 두 날개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사랑하고 간직함과 은총과 애덕으로 실행함이다. 신덕과 애덕이라는 이 두 날개 — 즉,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행한 것 — 가 나로 하여금 내게 덤벼드는 모든 강물의 공격을 뛰어넘어 높이 날아오르게 함으로써, 나의 진정한 위대성을 세상에 드러낸 것이다.

7. 그리하여 나는 광야에서 나의 피난처를 찾았다. 내가 늘 머무는 처소가 있는 이 광야(*묵시 12,12.14 참조)를 이루는 것은, 나를 받아들이고 내 말을 귀여겨들으며 내게 온전히 자신을 맡기고 내 티없는 성심에 봉헌한 모든 자녀들의 마음과 영혼이다. 여기서 거처하면서 나는 오늘날 나의 가장 큰 기적을 행하고 있다: 가장 작은 내 아기들의 마음과 영혼 안에서, 즉 그들의 삶 안에서 말이다. 그것은 바로, 신덕과 애덕의 길로 나를 따라오게 인도함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간직하게 하며, 날마다 용감하고 항구하게 그 말씀을 실행하며 살도록 그들을 도와 주는 일이다.

8. 나는 침묵 중에 은밀히, 즉 내가 거처하는 광야에서, 내게 봉헌한 자녀들이 오늘날 ‘복음’을 믿고 오직 ‘복음’의 지혜에 의해 인도를 받으며 언제나 ‘복음’을 살아 내도록 하려고 힘있게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9. 내가 몸소 세계 전역에서 ‘마리아 사제운동’을 일으켜 군대를 기르며 그들을위해 준비한 일이 바로 이것이니, 이 시대에 오로지 ‘하느님의 말씀’만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실행함으로써, 나와 함께 큰 독수리의 두 날개, 곧 신덕과 애덕의 두 날개가 인도하는 대로 그들 스스로를 내맡기게 하는 것이다.

10. (요컨대) 나의 처소가 있는 광야에서 내가 오늘날 이루고 있는 큰 기적은, 내 작은 아들들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용감히 증거하며 빛나는 성덕의 모범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11. 이와 같이, 나는 침묵 중에 은밀히, ‘용’을 (쳐부술) 내 큰 승리를 날마다 예비하고 있다. ‘티없는 내 성심’이 (그렇게) 세상에 개선할 때를.

1989. 5.14. 성지 띤다리(시칠리아). 성령 강림 대축일

1. 사랑하는 아들들아, 너희는 오늘 ‘성령’께 흠숭과 간청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오순절’에, ‘예루살렘 다락방’에 나와 함께 모여 있었던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내려오셨던(*사도 1,13-14 및 2,1-3 참조) 그분께 말이다. 이 너희 시대에도 너희는 나와 함께 기도의 ‘다락방’에 모여, 신뢰를 지니고 항구하게 성령께 간청하고 있거니와, 이러한 다락방 기도회가 이제는 전세계에 퍼져 있다.

2. 나는 오늘날 ‘마리아 사제운동’을 통해, 이 ‘천상 엄마’와 함께 기도하는 ‘지속 다락방’에 모이도록 교회의 모든 자녀들을, 즉 모든 주교와 사제와 수도자와 평신도를 초대하고 있다.

3. 이 새롭고 영적이고 보편적인 ‘다락방’이 있는 곳은 바로 내 ‘티없는 성심’이다. 너희는 내게 너희 자신을 영원히 맡기는 봉헌 행위를 통해 마땅히 이곳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러면 너희 (간구의) 목소리에 내 소리를 합하여, ‘두번째 성령 강림’이라는 ‘선물’이 교회와 온 인류 위에 내리게끔 할 수 있는 것이다.

4. 오로지 ‘주님의 영’만이 인류로 하여금 하느님께 완전한 영광을 드리는 (길로) 되돌아오게 하실 수 있다. 오로지 ‘주님의 영’만이 일치와 거룩함의 광채로 빛나도록 교회를 쇄신하실 수 있다. 오로지 ‘주님의 영’만이 너희의 이 세기에 도처에서 극성을 부리며 인류를 유혹하고 속여넘기는 거대한 ‘붉은 용’의 권세와 그 승승장구하는 힘을 쳐부수실 수 있다.

5. 거대한 ‘붉은 용’은 하느님을 부인하고 고집스럽게 배척하는 오류를 곳곳에 퍼뜨린 무신론적 공산주의이다. 거대한 ‘붉은 용’은 마르크스적 공산주의이니, 이는 열 개의 뿔과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짐승(*묵시 13,1 참조)이다; 열 개의 뿔은 인류로 하여금 하느님의 십계명에 불복하도록 하려고 도구로 사용하는 (대중)전달 매체들의 힘을 (말함)이요, 권세와 왕권의 상징인 왕관을 각각 쓰고 있는 일곱 개의 머리는 무신론적 공산주의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 그 이데올로기의 힘과 정치적 군사적 세력으로 지배하고 있는 나라들을 가리킨다.

6. 그 ‘용’의 거대함은 무신론적 공산주의가 반대를 받음 없이 점령한 영토의 거대함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것의 색은 붉은 색이니, 수많은 정복의 도구로 피와 전쟁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7. 거대한 ‘붉은 용’은 이 세기에 걸쳐 이론적 실천적 무신론이라는 오류로 인류정복에 성공을 거두어 왔고, 지금에 와서는 세상 모든 나라에 유혹의 손길을 뻗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배제한 새 문명 — 물질주의적이고 이기적이고 쾌락주의적이고 메마르고 냉혹한 새 문명을 이룩하는 데 성공했으니, 이는 그 자체 안에 타락과 죽음의 씨를 품고 있는 문명이다.

8. 거대한 ‘붉은 용’은 성삼위 하느님의 지배와 그분의 영광으로부터 온 인류를 탈취하여, 성부께서 당신 영광을 위해 성자를 통해 창안하신 계획의 완전한 실현을 (저지하려는) 악마적인 임무를 띠고 있다.

9. (그래서) 주님께서는 당신의 ‘빛’으로, 성령께서는 당신의 신적 권능으로 나를 다시 옷 입혀 주시어, 나로 하여금 하늘의 큰 표징, 곧 ‘태양을 입은 여인'(*묵시 12,1)으로 나타나게 하셨다. 거대한 ‘붉은 용’의 지배로부터 인류를 되찾아 지존하신 성삼께서 완전한 영광을 (받으시게끔) 모두를 도로 데려오는 것이 나의 사명인 까닭이다.

10. 이런 이유로 나는 세상 곳곳에서 내 가장 작은 아들들의 군대를 기르면서, 그들에게 티없는 내 성심에 자신을 봉헌하라고 요구해 왔다. 그러면 내가 그들로 하여금 믿음과 애덕으로 오직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살도록 인도한다. 내 천상 정원에서 내가 몸소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 그들을 양육하는 것이다.

11. 그리하여, 나는 날마다 내 주님의 옥좌 대전으로 나아가 깊은 흠숭을 드리면서, 내 티없는 성심의 황금문을 열어 내 작은 아들들을 모두 팔에 안고 봉헌한다. 그리고 이렇게 아뢴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 하느님, (세상이) 전반적으로 당신을 부정하는 이때, 저는 당신의 더없이 크신 영광을 위해 나날이 길러가는 이 작은 아들 모두를 통해, 어머니로서의 보속을 예물로 바치옵니다.”

12.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주님은 젖먹이와 어린아이들의 입을 통해 가장 완전한 찬미를 받으시는 것이다.(*시편 8,1-2 참조)

1989. 6. 3. 밀라노(이탈리아).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기념일), 이달 첫토요일

1. 사랑하는 아들들아, 오늘 너희는 이 ‘천상 엄마의 티없는 성심’ 축일을 기리기 위해 기도의 ‘다락방’에 모여 있다. 나는 내 ‘티없는 성심’에 봉헌하라고 세계 도처에서 너희를 불렀고, 너희는 자녀다운 사랑으로 아낌없는 응답을 내게 보내 주었다. (그래서) 이제, 내 호소를 받아들이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녀들로써 내 군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2. 내 티없는 성심이 교회와 온 인류에게서 마땅히 영광을 받을 때가 되었다. 이 배교의 시대, 정화와 대환난의 시대에, 오직 내 티없는 성심만이 유일한 피난처요, 구원과 평화의 하느님께로 너희를 인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내 티없는 성심은 오늘날 특히, 거대한 ‘붉은 용'(*묵시 12,3)의 추종자들과 ‘태양을 입은 여인'(*묵시 12,1)을 따르는 이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전투에서 확실한 승리의 표징이다.

3. 이 가공할 전투에서 ‘용’을 원조하려고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이 바로, 표범같이 생긴 짐승(*묵시 13,1-2 참조)이다.

4. ‘붉은 용’이 마르크스적 무신론이라면 이 ‘검은 짐승’은 프리메이슨(*反교회 비밀결사)이다. ‘용’은 (외부로) 드러나게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검은 ‘짐승’은 눈에 띠지 않게 몸을 숨기고 도처에 파고드는 방식으로 암암리에 활동한다. 발은 곰의 발과 같고 입은 사자의 입과 같은 이 짐승(*묵시 13,2)은 사회홍보 수단, 곧 선전을 통하여, 어디서나 간교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곱 개의 머리는 프리메이슨의 다양한 롯지(*Lodge: 프리메이슨의 지부 집회소 및 그 구성원)들을 가리키는데, 이것이 곳곳에서 교활하고 음험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5. 이 검은 짐승은 또한 열 개의 뿔을 가지고 있고 그 뿔마다 주권과 왕권의 표상인 관이 씌워져 있다.(*묵시 13,1 참조) 열 개의 뿔로 프리메이슨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성서적 세계에서 뿔은 언제나 사람의 목소리를 키우는 확성기로 사용되었다. 그 목소리를 더 잘 알아듣게 하기 위한 방편, 다시 말해 강력한 의사전달 수단이었다.

6. 이런 이유로 하느님께서는 열 개의 뿔로써 당신 ‘뜻’을 백성에게 알리셨다. 열 개의 (산양)뿔(나팔 소리를) 통해 그분의 ‘법’, 즉 십계명을 선포하신 것이다.(*출애 19,13.16.19 참조) 이를 받아들여 지키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 기쁨과 평화의 길을 걷는 삶을 살게 된다. 성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당신성자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성자께서 이루신 ‘구원(사업)’에 참여한다. 예수님은 ‘갈바리아’에서 완성하신 그분의 ‘희생제사’로 우리에게 얻어 주신 ‘은총’을 통해, 다름아닌 하느님의 생명을 영혼들에게 주시는 것이다.

7. ‘구원의 은총’은 일곱 성사를 통해 주어진다. ‘은총’과 더불어, 영혼 안에 초자연 생명의 씨앗인 덕행도 심어진다. 가장 중요한 덕행은 향주삼덕과 사추덕(四樞德)이니, 곧 신덕, 망덕, 애덕 및 지덕, 용덕, 의덕, 절덕이다. 이 덕행들은 신적 태양 (광선)인 일곱 가지 ‘성령의 선물'(*1고린 12,7-11 참조)을 받음으로써 싹트고 자라며 (날로) 더욱 성장하여, 영혼을 사랑과 성덕의 빛나는 길로 이끌어간다.

8. 성부와 성자께서 가르쳐 주시고 성령께서 밝혀 주신 이 길을 인간이 걷지 못하도록 하려고 방해(공작을 펴며) 싸우는 것 ─ 간교하면서도 끈질기게 싸우는 것이야말로, ‘검은 짐승’, 곧 프리메이슨의 일이다. 사실, ‘붉은 용’은 온 인류가 하느님을 배제하고 부정하며 살게 할 목적으로 활동하기에 무신론이라는 오류를 퍼뜨리지만, 프리메이슨은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묵시 13,1 참조)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짐승은 입을 벌려 하느님께 대한 모독의 말을 뱉아내며 하느님의 이름과 그분의 처소를, 그리고 하늘에 거처하는 모든 이들을 모독한다.(*묵시 13,5-6. 참조) 가장 큰 모독은 오직 하느님께만 드려야 할 예배를 여러 피조물이나 사탄에게 바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프리메이슨의 그 괴악한 행위 배후에서 검은 미사와 악마숭배가 도처로 퍼져나가고 있다. 더욱이,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영혼 구원을 가로막으려 드는 프리메이슨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무효화하려고 기를 쓴다.

9. (요컨대) 주님께서는 십계명으로 당신 ‘법’을 주셨고, 프리메이슨은 스스로 지닌 열 개의 뿔의 권세로 하느님의 그 ‘법’과는 정반대인 법을 어느 곳에나 두루 퍼뜨리는 것이다.

10. — “나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출애 20,3 참조) ─ 고 하신 주님의 계명에 대해 프리메이슨은 다른 거짓 우상들을 세운다. 허다한 자들이 그런 우상들 앞에 엎드려 절하고 있는 오늘날이다.

11. ─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출애 20,7 참조) ─ 는 계명에 대해서 프리메이슨은 음흉하고 악마적인 온갖 수법을 동원하여 하느님과 그분의 그리스도께 대한 모독으로 반역하고, 무엄하게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무슨 상품의 상표 수준으로 비하시키며, 그분의 생애 및 신적 ‘위격’에 관한 독성적인 영화를 제작하기도 한다.

12. —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출애 20,8 참조) ─ 는 계명에 대해서 프리메이슨은 주일을 주말로, 즉 스포츠며 경기며 오락거리로 (즐기는) 날로 변질시킨다.

13. ─ “부모를 공경하라.”(*출애 20,12)─ 는 계명에 대한 프리메이슨의 반역은 가정을 부부 중심의 새로운 유형이거나 심지어 동성애자들의 동거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14. ─ “살인하지 말라.”(*출애 20,13) ─ 는 계명에 대해서 프리메이슨은 곳곳에서 낙태를 합법화시키고 안락사를 받아들이게 하며 인간 생명의 가치에 대한 마땅한 존중이 거의 사라지게 하는 데 성공했다.

15. ─ “간음하지 말라.”(*출애 20,14) ─ 는 계명에 대해서 프리메이슨은 온갖 형태의 음란을 정당화하고 부추기고 선전하며, 심지어 자연을 거스르는 음행까지 정당화한다.

16. ─ “도둑질하지 말라.”(*출애 20,15) ─ 는 계명에 대해서 프리메이슨은 절도, 폭력, 유괴 및 약탈 행위가 점점 더 널리 성행하도록 부추긴다.

17. ─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출애 20,16 참조) ─ 는 계명에 대해서 프리메이슨은 사기와 허위와 위선이 갈수록 퍼지게끔 책동한다.

18. ─ “남의 재물이나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출애 20,17 참조) ─ 는 계명에 대해서 프리메이슨은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속여 양심 밑바닥까지 타락시키려 든다.

19. 그리하여, 영혼은 주님의 ‘법’에 불복하는 악한 타락의 길로 휩쓸려 들어가 죄속에 잠기게 되고, 따라서 ‘은총’과 하느님의 생명을 선물로 받지 못하게 된다.

20. ─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사는 삶의 열매인 향주삼덕과 사추덕에 대해서 프리메이슨은 습관적으로 죄의 상태에서 사는 삶의 열매인 칠죄종(七罪宗)의 확산으로 대립한다. (즉) 신덕에 대해서는 교만으로, 망덕에 대해서는 음욕(迷色)으로, 애덕에 대해서는 인색으로, 지덕에 대해서는 분노로, 용덕에 대해서는 나태(懈怠)로, 의덕에 대해서는 질투로, 절덕에 대해서는 탐욕으로 대립하는 것이다.

21. 칠죄종의 희생물이 된 자는 누구나 하느님께만 합당한 예배를, 바로 그 모든 죄의 화신인 거짓 신에게 바치도록 점차 유인된다. 여기에 가장 중대하고 끔찍한 독성(瀆聖)죄가 있다. 그래서 ‘짐승’의 머리마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이름(*묵시 13,1) 이 적혀 있다. 프리메이슨의 각 집회소가 하는 일이 바로, 그런 여러 (거짓) 신들을 경배하게 만드는 것이다.

22. (‘짐승’의) 첫째 머리는 교만라는 모독적 이름을 달고 있다. 신덕과 대립하는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의 이성과 교만과 기술과 진보라는 신을 숭배하도록 몰아간다.

23. 둘째 머리는 음욕이라는 모독적 이름을 달고 있다. 망덕과 대립하는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섹스 내지 음행을 신으로 숭배하도록 이끈다.

24. 셋째 머리는 인색이라는 모독적 이름을 달고 있다. 애덕과 대립하는 이것이 어디서든지 돈을 신으로 숭배하는 (풍조를) 퍼뜨린다.

25. 넷째 머리는 분노라는 모독적 이름을 달고 있다. 지덕과 대립하는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불목과 분열을 신으로 숭배하게끔 유도한다.

26. 다섯째 머리는 나태라는 모독적 이름을 달고 있다. 용덕과 대립하는 이것이 여론과 핍박에 대한 공포라는 우상에의 숭배를 널리 파급시킨다.

27. 여섯째 머리는 질투라는 모독적 이름을 달고 있다. 의덕과 대립하는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폭력과 전쟁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도록 이끈다.

28. 일곱째 머리는 탐욕라는 모독적 이름을 달고 있다. 절덕과 대립하는 이것이 향락주의와 물질주의와 쾌락이라는 우상을 찬양하며 숭배하게끔 인간을 이끈다.

29. 프리메이슨의 ‘롯지'(*지부 집회소)들이 오늘날 교활하게 활약하며 임무로 삼고 있는 일이야말로, 어디서든지 인류로 하여금 하느님의 거룩한 법을 업신여기게 하는 것이요, 십계명을 공공연히 반대하면서 하느님께만 합당한 예배를 거짓 우상에게 바치게 하는 것이다. 그런 거짓 우상은 이성(理性), 육체, 돈, 불목, 지배욕, 폭력, 쾌락인데, 이를 숭배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일로에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악과 악습과 죄의 어두운 종살이 (상태)로 서둘러 빠져드니, 하느님의 심판을 받는 죽음의 순간에는 영원한 불구덩이인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다.

30. 이제 너희는 이 시대에, ‘검은 짐승’ 곧 프리메이슨의 무섭고 음흉한 공격에 대항하는 내 ‘티없는 성심’이 얼마나 안전한 너희의 피난처이며 하느님께로 데려가는 확실한 길인가를 깨달았을 터이다. 티없는 내 성심에는 너희 ‘천상 엄마’가 쓰는 전략이 설계되어 있다.

31. 이런 이유로 나는 내 모든 자녀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십계명을 지키고, ‘복음’을 곧이곧대로 실천에 옮기며, 하느님의 은총 안에 머무는 데 필요한 도움을 얻기 위해 자주 성사들을 받되, 무엇보다도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자주 받도록 가르친다. (또한) 활기있게 덕행을 닦으며 언제나 선과 사랑과 순결과 성화의 길을 가도록 양성한다.

32. 그리하여, 나는 내게 자신을 봉헌한 내 작은 아들들인 너희를 (도구로) 써서, ‘검은 짐승’이 너희 (앞길)에 파두는 간교한 함정을 폭로하고, 결국에 가서는 그 짐승이 오늘날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거슬러 개시한 대공격을 헛된 것으로 만들 작정이다. 특히, 프리메이슨이 더없이 크게 참패했을 때, 마침내 승리를 거둔 내 ‘티없는 성심’은 온통 찬란한 광채에 싸여 세상에 나타날 것이다.

1989. 6.13. 동고(꼬모). 파티마의 성모 (두 번째 발현 기념일)

1. 사랑하는 아들들아, 너희는 오늘, 1917년 6월 13일, 파티마의 볼품없는 코바다이리아 (계곡)에 두번째로 발현했던 나를 기념하고 있다. 그 당시 나는 이미 너희가 이 시대에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해 예언했고, ‘태양을 입은 여인'(*묵시 12,1)인 나와 하느님을 배제하고 살도록 인류를 유인하는 ‘붉은 용'(*묵시 12,3) 사이에 벌어진 대전투에 대해서도 예고했다.

2. 나는 또한 너희를 ‘하느님의 법’으로부터 멀리 떼어 놓음으로써 죄와 악습의 희생물이 되게 하려는 프리메이슨의 간교한 암약(暗躍)에 대해서도 예고했다.

3. 그때 나의 바람은 무엇보다도, 오늘날의 ‘교회’를 위협하는 중대한 위험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는 것이었다.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 자행되는 악마적 공격이 많기 때문이다.

4. 그 목표를 달성하려고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있는데, 이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검은 짐승'(묵시 13,1 참조)을 지원(支援)하러 오는 것으로서, 어린양처럼 두 개의 뿔이 달린 짐승(*묵시 13,11)이다.

5. 성서 속의 어린양은 항상 희생제물의 상징이었다. 히브리인들이 에집트를 탈출하던 밤,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그들 집의 (좌우) 문설주에 뿌림으로써 모든 에집트인들에게 내린 징벌로부터 모면할 수 있었으니(*출애 12,3.6-7 참조), ‘히브리인들의 과월절’은 해마다 이 사건을 기념하는 것으로서 어린양을 잡아 희생제물로 바치며 나누어 먹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갈바리아’에서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셨다. 그분 자신이 ‘우리의 파스카’ (제물), 즉 세상의 모든 죄를 없애시는(이사 53,12 참조), 참된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3)이 되신 것이다.

6. 어린양처럼 두 개의 뿔이 달린 짐승. 희생제물의 표상인 두 개의 뿔은 ‘사제직’의 표상과 긴밀히 연관된다. (그래서) 구약 성서 속의 ‘대사제’는 두 개의 뿔이 달린 모자를 썼고, 교회의 ‘주교’는 사제직의 완전성을 가리키는 주교관 — 두 개의 뿔이 달린 — 을 쓴다.

7. 표범같이 생긴 짐승(*묵시 13,2)은 프리메이슨을 가리킨다. (그런데) 어린양처럼 뿔이 두 개 달린 짐승은 교회 내부에 침투한 프리메이슨, 다시 말해서 교회 프리메이슨을 가리킨다. 이는 특히 ‘교계제도의 구성원들’ 사이에 퍼져 있다. 이 프리메이슨의 교회 침투에 대해서는 파티마에서 이미 예고한 것이니, 그때 나는 ‘사탄’이 교회 고위층까지 파고들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프리메이슨은 거짓 신을 경배하게 함으로써 영혼들을 멸망으로 유인하는 것을 임무로 삼지만, 교회프리메이슨은 새로운 우상, 곧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를 세움으로써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파괴하는 것을 임무로 삼는다.

8. —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마태 16,16)이시며, ‘강생하신 말씀'(*요한 1,14 참조)이시다. 그분은 참 ‘하느님’이시고 참 ‘사람’이시니, 당신의 신적 ‘위격’ 안에 인성과 신성을 결합시키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복음에서 당신이 바로 ‘진리’요 ‘길’이요 ‘생명'(*요한 14,6 참조)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당신 자신에 대한 가장 완전한 정의(定義)를 내려 주셨다.

9. — 예수님은 ‘진리’이시다. 우리에게 ‘아버지’를 계시하시고, 그분의 분명한 ‘말씀’을 주시며, 하느님의 ‘계시’ 전체를 완성에로 이끄시기 때문이다.

10. — 예수님은 ‘생명’이시다. 그분의 ‘구원(사업)’으로 얻게 해주신 ‘은총’을 통해 우리에게 하느님의 생명을 주시며, 은총 전달의 효과적 수단으로서 ‘성사들’을 제정하셨기 때문이다.

11. — 예수님은 ‘길’이시다. 그분은 구원에 이르기 위해 걸어야 할 길로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고, 이를 통해 우리를 성부께로 이끌어가신다.(*요한 14,6 참조)

12. 예수님이 ‘진리’이신 까닭은, 살아 계신 ‘말씀’인 그분이야말로 모든 신적 ‘계시’의 원천이요 봉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교회 프리메이슨은 자연주의적 합리적 해석이라는 것으로 그분의 신적 말씀을 흐리게 한다. 말씀을 더욱 잘 이해하게 하고 받아들이게 하려고 한다면서 말씀의 모든 초자연적 내용을 삭제한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 전반에 걸쳐 오류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오류의 확산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많은 사람이 참 신앙에서 멀어지고 있으니, 내가 파티마에서 “많은 사람이 참 신앙을 잃을 때가 오리라.” 고 예언했던 대로 되고 있는 실정이다. 신앙 상실이 (곧) 배교인즉, 교회 프리메이슨은 모든 이를 배교로 유인하려고 음흉하고 악마적인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13. 예수님이 ‘생명’이신 까닭은, 은총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교회 프리메이슨의 목표는 죄를 정당화하는 것, 죄를 더 이상은 악으로서가 아니라 선하고 가치있는 무엇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즉) 인간 본성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이라고 부추겨 (범죄케) 함으로써 참회가 움틀 수 있는 (양심의) 뿌리를 파괴하고, 그런 죄에 대해서는 고해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온 교회에 두루 퍼져 있는 이 고약한 암의 악한 열매로서, 개인적인 고해가 곳곳에서 사라지고 있다. 영혼들은 죄 상태에서 살게끔 이끌려지고, 그러니 예수께서 우리에게 얻어 주신 ‘생명’의 선물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14. 예수님은 ‘복음’을 통해 (우리를) 성부께로 인도해 주시는 ‘길’이다. (그러기에) 교회 프리메이슨은 여러 문학적 유형을 적용하여 ‘복음’을 합리주의적 자연주의적 해석으로 조각조각 찢어대는 주해 방식을 조장한다. 결국, 예수님의 기적과 부활(사건)의 역사적 현실성을 부정하기에 이르렀고, 그분의 신성 자체와 구원 사명마저 의혹에 붙여버리고 만다.

15. — 어린양처럼 두 개의 뿔이 달린 짐승은 (그렇게) 역사적 그리스도를 파괴한 이후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를 파괴하려고 기를 쓰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하나이다. 오직 하나 뿐이다: 그것은 ‘베드로’를 (반석으로) 하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교회이다. 예수님에 의해 세워져 그분의 신비체를 이루는 교회 역시, 그분과 마찬가지로, ‘진리’요 ‘생명’이요 ‘길’이다.

16. — 교회는 진리이다. 예수께서 신앙의 유산 전체를 온전히 보존하도록 맡기신 것은 오직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그것을 교계 제도적 교회에, 다시 말해 교황과 교황에 일치한 주교들에게 맡기셨다. (그러기에) 교회 프리메이슨은 모든 그리스도교가 각각 진리 일부를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그들 모두를 수용하도록 유도하는 그릇된 교회일치 운동을 통해 이 사실을 파괴하려 든다. 가톨릭 교회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교 신앙을 융합하여, 보편적인 세계교회 건설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17. — 교회는 생명이다. 교회가 ‘은총’을 주기 때문이니, 교회에만 은총의 효과적 수단인 ‘칠(七)성사’가 있는 것이다. 특히, 교계 제도적 성직자의 ‘사제직’을 통해 ‘성체’를 낳는 능력을 부여받은 것은 오직 교회 뿐이기에 교회는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입으신 ‘몸’과 신성을 지니시고 ‘성체’ 안에 참으로 현존하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 프리메이슨은 갖가지 교활한 방식으로 ‘성체 성사’에 대한 교회의 신심을 공격하려 든다. (공동의 식탁에서) 함께 나누는 식사적 측면에만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의 희생 제사적 의미를 최소화하며, 축성된 제병 안에 참으로 계시는 예수님의 위격적 현존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참된 현존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모든 외적 표시, 이를테면 (성체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던가 드러나게 흠숭의 시간을 갖는다던가 ‘감실’을 등불과 꽃으로 둘러싸던가 하는 경건한 관습이 점차로 폐지되고 있다.

18. — 교회는 길이다. 이는 교회가 성령 안에서, 성자를 통해, 완전한 일치의 길을 따라 (너희를) 성부께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성부와 성자께서 하나이시듯 너희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요한 17,11 참조) 예수께서는 당신 교회가 온 인류의 일치의 표지요 도구가 되기를 바라셨다. 교회는 일치의 모퉁잇돌인 베드로를 기초로 하여 세워졌기에 성공적인 일치를 이루게 되었고, 교황은 베드로의 그 카리스마를 계승한다. 그러기에 교회 프리메이슨은 간교하고 음흉하게 교황을 공격함으로써 교회일치의 기초를 파괴하려고 힘쓴다. 교황을 거슬러 불일치와 반대의 음모를 꾸미고, 그를 헐뜯으며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지원하고 상찬하며, 주교들과 신학자들의 비판과 논쟁을 널리 퍼뜨린다. 이와 같이 일치의 기초 자체를 붕괴시키고 있으므로, 교회가 갈수록 심하게 분열된다.

19. — 사랑하는 아들들아, 무엇보다도 그 무서운 함정에 너희가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고 방어해 주려고, 나는 너희더러 내 ‘티없는 성심’에 너희 자신을 봉헌하여 내 모성적 피난처 안으로 들어오라고 초대해 왔다. 내 ‘운동’의 봉헌 행위를 통해, 일체의 출세욕을 끊어버리라고 촉구해온 것이다. 그리하면 프리메이슨이 그 비밀 집회에 내 사랑하는 수많은 아들들을 끌어 넣으려고 사용하는, 더없이 강하고 위험한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 나는 너희를 용감한 신앙의 증인이 되게 하면서 ‘진리이신 예수님’께 대한 큰 사랑에로 이끌고, 큰 성덕에로 인도하면서 ‘생명이신 예수님’께 데려간다. (또한) 오로지 ‘복음’만을 말씀 그대로 실천하고 선포하는 삶을 살도록 당부하면서 너희를 ‘길이신 예수님’께로 데려간다.

20. 그리고, ‘교회’에 대한 더없이 큰 사랑에로 너희를 인도한다.

21. 너희가 굳건하고 용감하게 온갖 오류에 대항하는 한편, 가톨릭 신앙의 모든 진리를 힘있게 선포하는 사람이 되게끔 하면서, 나는 너희를 ‘진리인 교회’에 대한 사랑에로 이끈다.

22. 충실하고 거룩한 사제가 되도록 도와 주면서, 나는 너희를 ‘생명인 교회’의 일꾼이 되게 한다. (그러니) 항상 영혼들의 필요에 응하여 아낌없는 극기(의 정신으)로 ‘화해의 성사’ 집전에 헌신하고,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께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타오르는 불꽃이 되어라. 너희가 (사목하는) 교회에서는 제대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사’를 향하여 공공연한 흠숭과 보속의 시간을 자주 갖는 (관습을) 회복하기 바란다.

23. 나는 너희를 변화시켜 ‘길인 교회’의 증인이 되게 한다. 또한 교회 일치의 귀한 도구가 되게 한다. 이런 이유로 ‘교황’과의 각별한 일치를 내 ‘운동’의 두번째 서약으로 (정해) 준 것이다. 너희의 사랑과 충성을 통해, 교회의 완전한 일치라는 신적 계획이 다시금 찬란한 광채를 발하며 (실현될) 것이다.

24. 그리하여, 교회 프리메이슨이 오늘날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 펴고 있는 어두운 세력에 대응하여, 나는 내 사제들과 평신도 군대의 힘있는 광채로 맞서고 있다. 만민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분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따르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분의 교회 역시 더욱더 사랑과 옹호를 받으며 거룩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25. 특히 이 (군대)를 통해 ‘태양을 입은 여인'(인 나)의 승리가 빛나게 될 것이고, 내 ‘티없는 성심’의 더할 나위 없이 찬란한 개선도 이루어질 것이다.

1989. 6.17. 밀라노(이탈리아). 이달 셋째 토요일

1. 사랑하는 아들들아, 이제 너희는 ‘태양을 입은 여인'(*묵시 12,1)인 너희 ‘천상 엄마’의 계획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군대를 (거느리고) 모든 악의 세력에 대항해서 대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 엄마의 계획 말이다. 그 목적은 (물론), 나의 큰 승리를 통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 하느님께 완전한 영광을 돌려 드리는 데 있다.

2. (내) 작은 아들들아, 나와 함께, 온 인류로 하여금 하느님을 거역하게 하려 드는 ‘용'(*묵시 12,3)과 싸우자꾸나.

3. 작은 아들들아, 나와 함께, 영혼들을 멸망에로 유인하고자 하는 ‘검은 짐승'(*묵시 13,1 참조)인 프리메이슨과 싸우자꾸나.

4. 작은 아들들아, 나와 함께, ‘어린양처럼 생긴 짐승'(*묵시 13,11)인 교회 프리메이슨과 싸우자꾸나. 이것이 교회생활 내부에 파고들어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파괴하려 든다. 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새로운 우상, 즉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를 세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5. — 교회 프리메이슨은 프리메이슨의 다양한 롯지(*지부 집회소)로부터 명령과 권력을 받아 모든 사람을 이 비밀 결사의 단원으로 끌어넣으려고 암암리에 활동한다. 그래서 야심을 품고 있는 자들에게는 손쉬운 출세 가능성(을 비춰 주며) 부추기고, 돈에 목마른 자들에게는 재물을 듬뿍 뿌리며 (유혹한다). (또한) 그들과 한패인 자들에 대해서는 다른 이들을 뛰어넘어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도록 술수를 쓰지만, 그들의 계획에 동조하지 않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는 음험하면서도 여지없는 방식으로 뒷전으로 밀어내고 만다. 과연, ‘어린양처럼 생긴 짐승’은 첫째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짐승 앞에서 행사하고, 땅과 땅 위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첫째 짐승을 경배하게 한다.(*묵시 13,12 참조)

6. 교회 프리메이슨은 그 짐승을 위해 우상을 세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 우상을 경배하게 한다.(*묵시 13.14-15 참조)

7. — 그러나, 주님의 거룩한 법 중 첫째 계명에 의하면, 오로지 하느님께만 엎드려 경배해야 한다. 어떤 형태의 것이든 예배는 오로지 하느님께만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하느님’ 자리에 강하고 힘있고 지배력있는 ‘우상’을 대치한다. 어찌나 권세있는 우상인지, 그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 죽임을 당하게 (*묵시 13,15 참조) 할 정도이다. 또한,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모두 그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낙인을 받게(*묵시 13,16) 할 만큼 힘센 우상이어서, 그 낙인으로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숫자를 몸에 지니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물건을) 사거나 팔거나 하지 못하게 한다.(*묵시 13,17) 누구에게서든지 섬김과 경배를 받도록 하기 위해 세워진 이 거대한 우상이야말로, 내가 지난 번 메시지에서 이미 밝혀 주었듯이,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이다.

8. 하지만, 그것의 이름은 무엇이겠느냐?

9. — 묵시록 13장 (*18절)에 이렇게 쓰여 있다: “바로 여기에 지혜가 있어야 한다. 지각이 있는 사람은 그 짐승의 숫자를 풀이해 보라: 그것은 어떤 사람의 이름을 표시하는 숫자이니 그 수는 666(육백육십육)이다.” 지성이 하느님 지혜의 빛에 의해 비추임을 받으면 666이란 수로부터 한 인간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다. 이 수가 가리키는 이름은 바로 ‘반(反)그리스도’이다.

10. 오래된 뱀, 악마 또는 ‘사탄’, ‘붉은 용'(으로도 불리는) 루치펠이 이 마지막 시대의 거짓 그리스도이다. 요한 사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심을 고백하지 않는 영(靈)은 모두 거짓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단언(*1요한 4,3 참조)했거니와, (어린양처럼 생긴 짐승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절하게 하려고 세운 (첫째) 짐승의 우상이야말로 거짓 그리스도(의 우상)이다.

11. 이제, 그것의 숫자 666을 풀이해 보아라. 그러면 그 수가 어떻게 하여 한 인간의 이름을 가리키는지를 알 수 있다. 333이란 수는 ‘(하느님의) 신성’을 지칭한다. 루치펠은 하느님보다 더 높아지고자 하는 교만 때문에 하느님께 반기를 들었다. 333은 하느님의 신비를 가리키고 그분보다 더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666이라는 표시를 지니기에, 이 수는 루치펠, 곧 사탄의 이름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 대적하는 자, 곧 ‘거짓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리키는 것이다.

12. 333은 첫째, 하느님의 단일성의 신비를 표현하고,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위격’ 안에 결합된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 본성을 지칭하고, 셋째, ‘하느님의 세 위격’의 신비, 즉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신비를 가리킨다. 따라서 첫째 둘째 셋째로 표현된 이 신비들은 가톨릭 신앙의 본원적 신비이니, (바꾸어 말하면 다음과 같다:)
1) 하느님의 유일성과 삼위일체.
2)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

13. 333은 (이와 같이 ‘하느님의) 신성’을 가리키는 숫자이고, 하느님보다 더 높아지고자 한 자는 666이란 숫자로 지칭된다.

14. 666은 그 자체로 서기 666년을 가리킨다. 역사상 이 시기에, 하느님의 삼위일체의 신비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슬람교라는 현상을 통해, ‘거짓 그리스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슬람교는 무력을 휘둘러 옛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어디랄 것 없이 도처를 쑥밭으로 만들면서 유럽을 침공했다. 그것이 ‘그리스도교 세계’ 전체를 다 파괴할 수 없었던 것은, 오로지 ‘교황’의 줄기찬 간청을 들은 이 어머니의 특별한 중개 때문이었다.

15. 666은 그 배수로 서기 1332년을 가리킨다. 역사상 이 시기에 ‘거짓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을 근본적으로 공격함으로써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직 과학과 이성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철학자들을 통해, 인간 이성을 진리에 대한 유일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점차로 (퍼지게) 되었고, 현세기까지 이어진 큰 철학적 오류가 거기서 발생한 것이다. 이성을 진리에 대한 유일한 (판단) 기준으로 (여기며) 그 중요성을 과장한 나머지, 필연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의 파괴라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과연 프로테스탄트적 개혁은 그것과 아울러 신적 ‘계시’의 원천인 (교회의) ‘전승’을 배척하였고 ‘성서’만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렇게 수용된 성서마저 (단지) 이성으로 해석되는 (운명을) 겪어야 했고, 교계제도적 교회 — 그리스도께서 신앙의 보고(寶庫)를 보존하도록 맡기신 교회 — 의 진정한 ‘교도권’ 역시 완강한 배척을 받게 되었다. (더욱이) 누구나 ‘성서’를 읽고 자신 식으로 자유롭게 해석하며 이해하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이 파괴되었다. (이와 같이) 역사상 이 시기에 ‘거짓 그리스도’가 한 일이 바로 교회 분열이었다. 그 필연적인 결과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참 신앙이 점차 유실되어 여러 갈래의 새로운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16. 666은 그 세 배의 수로 서기 1998년을 가리킨다. 역사상 이 시기에 프리메이슨은 교회 프리메이슨의 협력으로 그 자체의 큰 계획을 성공적으로 달성할 터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대신하는 우상, 즉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를 세운다는 계획이다. 그리하여, ‘첫째 짐승’을 위해 세워진 그 우상을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경배하게 할 것이고, (물건을) 사거나 팔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낙인을 받게 할 것이니(*묵시13,17 참조), 그것은 바로 거짓그리스도의 낙인이다. 그러기에 너희는 정화와 대환난과 배교의 극점에 이르른 것이다. 배교가 일반화될 터인즉, 거의 모든 사람이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를 따라갈 것이기 때문이다.(*묵시 13,8 참조) 그러면 문이 열리고, 바로 거짓 그리스도의 화신인 인간이 나타날 것이다!

17. 사랑하는 아들들아, 그래서 나는 너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가리키는 ‘묵시록’의 여러 페이지들에 관해 너희를 깨우쳐 주고 싶었다. 너희 ‘천상 엄마’와 사납게 날뛰는 모든 악의 세력 사이의 대전투가 가장 고통스럽고 결정적인 (국면을 맞을 시기를) 너희가 나와 함께 대비하게 하려는 것이다.

18. 용기를 내어라! 내 작은 아들들아, (부디) 굳건한 사람들이 되어라. 이 어려운 시기의 너희 사명은 적의와 투쟁과 박해를 감내하면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충실히 남아 있는 것이다. 너희는 ‘거짓 그리스도’의 막강한 세력과 맞설 임무를 띠고 싸워 결국은 승리를 거둘, 작은 양떼(*루가 12,32)에 속하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19. 나는 너희 모두를 기르고 보호하며 축복한다

– [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 403-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