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II –

[ 1944년 5월 5일 ]

발또르따 :

   “어제 저녁 늦게 나타났던, 그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극한 은총의 환시를 신부님께 설명 드려보겠습니다. 환시는 제 영혼의 꿈같은 것으로 시작되어서 제 육신의 꿈으로 저를 이끌어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의식이 돌아와서 감각을 되찾았을 때 훨씬 더 명확하고 아름답게 나타났습니다. 글쓰기(이렇게 묘사하는 것은 실제와는 너무나 거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태양으로부터 떨어져있는 것만큼이나)를 시작하려하기 전에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쓰는걸 먼저해야하나, 아니면 고해성사를 먼저 해야하나?’.. 제 기쁨이 되는 이런 글쓰기를 열렬히 원했지만, 저는 고해성사를 한 뒤에는 글을 쓸 때의 육체적인 피로가 덜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성령의 빛이신 음성 – 이렇게 말한 이유는 그분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것같은 빛이었고, 빛 중에서도 가장 밝은 빛이었으며, 제 영혼을 위한 글쓰기에서 그분의 말씀은 소리요 빛이며 기쁨, 기쁨,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 제 영혼을 둘러싼 사랑의 섬광이신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먼저 고해성사를 하고 너의 기쁨인 것을 써라. 너에게 있어 고해성사는 모든 것에 앞서야 한다. 그것이 너로하여금 너의 기쁨을 마땅히 받을 만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모든 환시는 먼저 고해성사를 한데서 나게 될 것이고, 매 고해성사는 너를 더 높은 차원의 묵상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너는 이것으로 산다. 너는 이것으로 사랑받는다. 너는 이것때문에 축복받게 될 것이다. 희생하여라. 희생하여라. 너의 생명, 너의 사명, 너의 힘, 너의 영예. 네가 ‘우리’ 안에서 잠들게 될 때 너의 희생이 끝나게 될 것이고, 너는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저는 먼저 저의 매일 고해를 전심을 다해서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느끼지도 못했어요. 제 영혼의 눈은 웅대하고 장엄한 환시를 보았습니다. 그것이 제 육체적인 감각을 모두 없앴었습니다. 저는 순교자들이 그 소름끼치는 고통을 웃으며 견딜 수 있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고결함에 있어 순교자들에게 훨씬 하위인 저에게 있어서는 그 묵상(응시)이 제 영혼으로부터 제 육체적인 의식에 쏟아짐으로써 고통에 대한 감각이 없어집니다 : 피조물인 인간 가운데, 사랑으로 가장 완전한 순교자들에 있어서는 그 완전함을 통해 감추임 없이 하느님의 완전함을 봄으로써 그들의 육체적인 약함을 정말로 없애게 됨에 틀림없습니다. ‘보는’ 기쁨은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육신 감각의 고통을 없애줍니다.

   이제 그것을 묘사하도록 해보겠습니다 :

[ 환시 ] :

   저는 천국을 다시 보았습니다. 이젠 천국의 그 아름다움, 그 자연, 그 빛과 그 노래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 그것은 한마디로, 천국의 모든것입니다. 창조된 전 우주에게 앎과 조화와 필요한 모든 것을 저 높은 곳으로부터 내어주고 있는 그 하느님의 작품 자체가 그렇습니다. 아마 제가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를 보았던 올해 초 (아마 맞을겁니다)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리해볼께요.

   태양조차 쳐다보기 힘든 열등한 육체의 눈에 비해서는 영혼의 눈이 훨씬 그 ‘빛’에 견디기 적합해졌지만, 제 영혼의 눈이라도 이 고결한 아름다움의 묵상에 점차로 조금씩 길들여질 필요가 있습니다. – 태양은 하느님의 빛에 비한다면 촛불의 심지에 남은 연기나는 작은 불꽃과 같은 별입니다 – 하느님의 선하심으로, 저희에게 당신의 광휘를 드러내시길 바라시면서도 저희가 육신에 갇혀서 약해진 불쌍한 영혼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신 것입니다.

   오! 하느님께서 매 순간마다 창조하시는 당신의 새 창조물의 혼(魂)이 될 영(靈)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빛나며, 기쁨에 약동합니다! 그들을 봤어요, 그리고 저는 압니다. 우리들은… 다시 그분께 돌아가기 전에는, 그 빛과 찬란함을 단번에 견뎌낼 수는 없어요. 그래서 그분은 그 선하심 안에서 저희를 조금씩 조금씩 가까이 이끌어 주십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어제저녁에 저는 굉장한 ‘장미’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장미’라고 한건 신부님께 그 엄청난 광채의 중심을 둘러싼 환희의 빛이 원을 이루고 있는 것을 개념을 잡으시게 하려는거에요.

   무한한 ‘장미’였어요! 그 빛은 영원한 사랑의 가장 찬란한 빛인 성령으로부터 받는 것이었습니다. 토파즈(황옥)와 액화된 황금이 불꽃이 되는… 오!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어요. 불변의 사랑은 천국의 가장 높은 곳의 가장 찬란하고 흠없는 사파이어 안에 높이, 높이 홀로 확고히 위치하여 그 사랑으로부터 다함없는 빛의 물결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장미를 이루고 있는 복된 이들과 천사들 사이에 꽂히는 그 빛으로 그들을 빛나게 하였습니다. 그들을 꽤뚫는 그 사랑의 빛으로부터 모든 빛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성인들과 천사들을 구별하는건 아닙니다. 단지 그 천국의 꽃들이 둥글게 끝없는 화환을 이루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환시]에 의해 이미 철저하게 지복을 느끼고 있었고, 그분의 선하심에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그런것들이 구체화 되는 대신, 그 환시는 더 광대한 광휘로 펼쳐졌습니다. 이제는 그 빛에 적응이 되어 더 강한 빛을 견딜 수 있게 된 것같은 영혼의 눈으로 더 관찰하기를 허락하는것처럼, 마치 환시가 저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성부이신 하느님을 보았습니다 : 천국의 탁월한 광휘 가운데 광휘이신. 가장 찬란하고 가장 희며, 백열하는 빛으로된 윤곽. 생각해보세요, 신부님, 제가 그 빛줄기 가운데에서 그분을 확실히 구별했다면, 그분의 빛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렇게 강력하고 많은 빛으로 둘러쌓여 계시면서도 다른 모든 빛을 누르고, 오히려 모든 빛들이 그분의 광채에 대한 그림자처럼 보이게 합니다. 영(靈)은… 오! 영이 무엇인지 보게되다니! 그건 모든것이에요. 모든것. 정말 완벽합니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녜요. 천국의 어떤 영혼의 정감이라도 가장 완전한 영(靈)인 하느님께 닿을 수 없습니다. 그분의 비실체성-빛, 빛, 빛 이외엔 아니었어요-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성부이신 하느님을 대하는 것은 성자이신 하느님을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극히 성스러운 지체를 덮은 그분의 왕다운 찬란한 의복은 영광스럽게 변화된 육체를 싸고 있지만, 그 형언할 수 없이 완전한 아름다움은 숨기지 않습니다. 위엄과 선하심이 그분의 아름다움 안에서 융합됩니다. 불타는 숯처럼 보이는 그분의 다섯 상처에서는 다섯개의 빛의 칼날이 온 천국으로 내뿜어져 나오고 그 광채를 더해가며 그분의 영광스럽게 된 육체의 빛을 더합니다.

   그분께는 후광이나 왕관이나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분의 몸 전체에서 빛이 쏟아졌습니다. 그분과 그분의 어머니 성모님의 영화(靈化)된 육신의 특별한 빛이 가장 강렬하며, 살로부터 터져 나왔습니다. 정말 살이었지만 우리것처럼 불투명한 것이 아닙니다. 빛으로된 살이에요. 이 빛이 그분의 머리 둘레에 더 집중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후광에서 나오는게 아니에요. 전부 그분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분의 미소는 빛이었고, 빛은 그분의 응시였습니다: 그분의 지극히 아름다운 이마에서 빛이 뚫고 나왔습니다, 상처는 없었어요. 하지만 한때 가시가 꽂히고 피가 흘렀던, 그분에게 고통을 준 그 자리는 지금 훨씬 더 눈부신 빛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 기억에 1월에 봤던 환시에서와 같이, 손에 그분의 왕의 기(십자가)를 들고 서계셨습니다.

   그분보다 아주 약간 아래쪽에, 계단 한개 만큼 바로 아래쪽에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가 계셨습니다. 천상의 예수님처럼 아름다우셨습니다. 그녀의 완전한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천상의 아름다움으로 영광스럽게 된 것입니다.

   그분은 성부와 성자 사이에 서계셨습니다. (성부와 성자께서는 몇미터정도 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가운데 서계시면서 부드럽고 매우 하얗고 작고, 정말 예쁜 그 손들을 그녀의 가슴에 십자로 교차시켜 놓고 계셨고, 매끄럽고 완벽하며 사랑스럽고 정말 감미로운 그 얼굴을 약간 들고 계셨습니다. 성모님은 성부와 성자를 바라보시며 경배하고 계셨습니다.

   성모님은 지극한 흠숭으로 아버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지만 그분의 바라봄은 그 자체가 예배와 기도와 찬양의 목소리였습니다. 무릎을 꿇지 않고 계셨지만 그분의 표정은 그 어떤 무릎꿇음보다 더 엎드린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분 자체가 곧 흠숭이었습니다. 응시만으로도 그분은 ‘거룩하시다!’를 말하고 있었고, ‘당신을 흠숭하나이다!”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성모님은 지극한 사랑으로 그의 아들 예수님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지만 그분의 온 표정은 사랑의 어루만짐이었습니다. 그분의 사랑스러운 두 눈의 모든 애무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분는 앉아있지 않았고, 아들을 만지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응시는 성자의 태어남과 죽음의 때에 그녀의 무릎에서 모성적인 팔로 아들을 안았을 때처럼 아들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분의 얼굴로 ‘나의 아들!’, ‘나의 기쁨!’, ‘나의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와 아들을 기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우 자주 고개를 들고 성모님 바로 위에서 비추고 계신 사랑이신 성령을 더욱더 향하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럴때면 그녀에게서 나오는 진주빛의 눈부신 빛이 더욱 타올라서 마치 불꽃의 옷을 입은것같고 더욱 아름답게 되었습니다. 성모님은 ‘사랑’으로부터의 입맞춤을 받아서 그 겸손과 순결, 자애로움으로 끌어안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어루만짐을 돌려보내면서 ‘보소서. 저는 당신의 정배입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라고 하십니다. 마리아께서 성령의 광휘를 바라보실 때마다 성령은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습니다.

   마리아는 다시 그분의 눈을 성부와 성자께로 돌리십니다. 마치 사랑이 성모님께 맡겨지고, 그분이 분배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빈약한 이해력이라니! 다시 좀 낫게 표현해보겠습니다. 성령께서 그녀를 선택하셔서 모든 사랑을 그녀 안에 모으게 하시고 이를 성부께와 성자께로 가져오게 하시어 그 셋이 일치되고 서로에게 입맞춤을 보내며 단 하나가 되게 하시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 이 사랑의 시를 깨닫는 환희! 사랑의 대좌인 마리아의 사명을 알게되는 기쁨!

   하지만, 오직 하느님 다음으로 위대하신 우리 어머니 마리아에게만 성령님의 광휘가 집중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그릇이 아무리 아무리 크다고 해도, 바다를 모두 담을 수는 없잖아요. 모두 채우고 넘칠 것입니다. 바다는 지구 전부에 필요한 물을 갖고 있죠. 사랑이신 빛도 그러하셨습니다. 그 빛은 성부와 성자께로 끊임없는 사랑의 어루만짐을 내리쏟아서 그 광채 안에 하나의 고리로 휘감고 계십니다. ‘사랑’이신 성령에 대해 사랑으로 응답하시는 성부와 성자께 닿은 뒤 지복의 빛은 훨씬 더 커지고 복된 빛으로 되어 낙원 전체로 퍼지게 됩니다.

   이제 그 드러난 것을 상세히 적을께요….:

   우선, 천사들이 있습니다 : 복된 성인들보다 높이, 천국의 중심축이신 삼위이시며 하나이신 하느님과, 그와 함께 있는 순결한 보석 마리아를 중심축으로 둥글게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부이신 하느님과 훨씬 더 닮았습니다. 완벽하고 영원한 영혼. 빛으로부터 나온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갖고 오직 성부이신 하느님께만 모자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흠숭하고 있었습니다….. 천상의 하모니가 터져나옵니다. 무슨 하모니인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들 사랑의 감동으로 고동치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면 아무 말소리도 없었거든요; 그들의 엄청난 빛으로 입의 윤곽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고요한 물에 강렬한 태양이 비추는 것처럼 빛납니다. 그들의 사랑은 노래였어요. 그 하모니는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 아니라면 그것을 듣다가 기뻐서 죽을 정도일 것입니다.

   그 아래쪽으로, 복된 성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영화(靈化)된 육신은 성자 예수님이나 성모 마리아님과 매우 비슷합니다. 천사들에 비해서 약간은 더 고형체와 같이 보이는데요, 다시말하면 눈으로 보기가 더 쉽고 만질 수도 있을 것같이 보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육체적인 생김새가 서로서로 더 구분이 됩니다 – 그래서 그들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른인지 아기인지 알 수 있어요. 쇠약해보이는 노인은 볼 수 없었습니다. 나이들어 죽은 사람의 육체라도 영화된 후엔 그 육신이 황폐화된 것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젊은이에 비해서 나이든 이에게는 숭고함 같은 것이 더해있습니다. 그러나 지저분한 주름이나 머리가 벗어진 것이나, 이빨 빠진 입이나 허리가 휜 것 같이 인간들에게 있는 것들은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 나이는 최고가 마흔에서 마흔 다섯 살 정도로 보입니다. 그들의 눈빛과 생김새에 원로와 같은 품위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원기왕성한 생기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이들 가운데에서… – 오! 정말 수많은 성인들이에요!… 또한 얼마나 많은 천사들인지! 둥글게 둘러쌌던 대형이 흩어지며 무한히 광대한 짙은 푸른 빛의 광휘를 통해 빛의 행렬이 되어갑니다! 아득히, 아득히 멀리 천상의 수평선으로부터 여전히 웅장한 ‘알렐루야’ 소리와.. 수많은 천사와 성인, 천상 만군의 사랑인 빛이 퍼져옵니다…

   이 때에, 수많은 이들 가운데에서 눈에 띄는 영혼을 봅니다. 키가 크고, 엄해 보이면서 또한 선해 보입니다. 턱수염이 길게 가슴까지 내려오고, 손에는 돌로 된 판을 들고 있습니다. 그 판은 오랜 옛날 사람들이 뭔가를 써놓을 때 쓰는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왼손을 그 판들 위에 놓고 판을 잡고 있고,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제 생각엔 모세나 이사야같았어요. 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저를 바라보며 엄청나게 위엄있는 모습으로 미소지었습니다. 그게 다였어요. 하지만 그 눈빛이란! 그 눈빛만으로도 다른 이들을 위압하며 하느님의 신비를 꽤뚫어보는 듯 했습니다.

   저의 영혼은 성령의 빛 안에서 점점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세 위(位)가 융합될 때마다 하느님의 작품인 끊임없는 기적들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삼위가 일체되는 결합은 긴박하고 끊임없는 리듬으로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만족할줄 모르는 사랑에 대한 열망에 의해 고무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성부께서 영혼들을 창조하시는 것을 봅니다. 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아들을 따르는 영혼의 수를 더 많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오! 얼마나 아름다운지! 영혼들은 아버지께로부터 불꽃처럼 튀어나옵니다. 빛의 꽃잎처럼, 구형의 보석처럼.. –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어요. 새로운 영혼들이 끝없는 물결처럼 흘러나옵니다…아름다워라. 창조주에게 복종하여 기쁨 속에서 내려가고 육체와 결합합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나올 때 그 영혼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제가 천국에 있는 동안에는 원죄가 그들을 더럽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볼 수 없었습니다.

   성자께서는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열의로, 영혼들을 끊임없이 받으시고 심판하십니다. 그 목숨이 다한 영혼들, 심판을 위해 다시 그들의 원점, 기원으로 돌아온 영혼들을 말입니다. 저는 그 영혼들을 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감정의 변화를 보면 그들이 기쁨으로, 혹은 자비로, 혹은 냉혹함으로 심판받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 앞에 ‘성인’으로 나타나는 영혼에게는 눈부신 빛의 미소를! 그분의 왕국에 들어서기 전에 그분으로부터 떨어져나가서 정화되어야만 하는 영혼에게는 슬픈 자비의 빛이! 반역자로써 영원히 받아들일 수 없을 때는 노여움과 슬픈 분노의 섬광으로!

   이제 저는 천국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천국의 그 아름다움과 그 자연과 그 빛과 노래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천국은 사랑입니다. 천국 안에 모든 것을 창조하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모든 것이 의지하고 있는 그 근원도 사랑입니다. 모든 것이 도달하는 그 극치도 사랑입니다.

   성부께서는 사랑으로 창조하십니다. 성자께서는 사랑을 통해 심판하십니다. 마리아께서는 사랑을 통해 사십니다. 모든 천사들은 사랑으로 노래합니다. 복된 성인들은 사랑으로 ‘호산나!’를 외칩니다. 영혼들은 사랑으로 만들어집니다. 빛은 그것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노래는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생명은 바로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오! 사랑! 사랑! 사랑이시여! 저는 당신 안에 저를 없앱니다. 저는 당신 안에서 다시 일어섭니다. 당신께서 저를 태워버리시기에, 인간 존재로써 저는 죽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창조하시기에, 영적인 존재로써 저는 태어납니다.

   찬미. 찬미, 찬미합니다, 오 사랑이여! 성령이여! 찬미합니다. 찬양합니다, 찬미합니다, 사랑이여, 성부와 성자의 사랑이신 성령이여! 찬미합니다. 찬미합니다, 찬미합니다, 오 사랑이여, 성부와 성자를 사랑하시는 사랑이여! 찬미합니다. 저를 사랑하시는 사랑이시여. 찬양합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제가 찬양합니다, 당신을 사랑하게 허락하시고 당신을 알게 허락하시니 당신을 찬미합니다. 오 저의 빛이시여…”

   [“이렇게 다 쓴 다음에, 저는 제가 예전에 ‘천국’에 대한 묵상(응시)을 썼던 공책을 찾아봤습니다. 왜냐구요? 왜냐면 저는 언제나 저 스스로를 못믿어서 혹시라도 두개의 환시 내용에 상반되는게 있는지 보고 싶었거든요. 그런게 있다면 저는 자기 기만의 희생물임을 확인하게 되는거겠죠. 하지만 신부님, 없었어요. 상반되는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번 것이 훨씬 더 명확하게 나타났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이에요. 예전에 본 것은 1944년 1월 10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쓴 다음에는 한번도 다시 보지 않았었어요. 정말 단언할 수 있어요.”]

– IV –

[그리스도께서 앞서 나타난 환시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셨습니다 – 역주]

[1944년 5월 25일]

예수님 :

   “마리아야, 네가 사랑이신 분에 의해서 묵상(응시)할 수 있었던 그 천국에는 ‘살아 남은’ 자들 밖에 없다. 내일 모레 (미사 때) 읽혀질 예언서인 이사야 4장 (특히 4장 3절)에 나온 것과 같다. ‘살아 남은’ 존재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는 그 다음에 나와있다. 정의와 자애로써 그들의 더러움은 씻어지고 새로운 타락으로부터 보호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희 각각에게 주시는 이 정의와 자애는 너희가 그분께 다시 돌려드려야 하는 것이다. 이 정의와 자비로 영원한 장막의 그늘에 너희가 인도되어 머물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고통의 열기와 사탄의 암흑이 무해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암탉이 병아리를 모으듯이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그 날개로 은신처를 만들어서 모든 초자연적인 공격으로부터 방어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희를 사랑하시는 그분을 결코 떠나서는 안된다.

   나의 영혼(발또르따)아. 네게 보여준 예루살렘을 생각해보아라. 마음을 다하여 그것을 얻을 가치가 충분하지 않느냐? 열심히 추구하여 얻어내라. 내가 널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널 기다리고 있다. 오! 이 말은 모든 피조물에게, 적어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어도 모든 카톨릭 신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지만, 너무나 적은 사람들에게만 할 수 있구나!

   됐다. 마리아야, 네가 피곤하구나. 쉬거라. 천국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