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106호(3~4월) p26 -라디스 J.치자크 신부
“만일 내 요청이 채워진다면…”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묵주기도의 성모님은 1917년 7월13일 발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내 요청이 채워진다면 러시아는 회개할 것이며 세상에는 평화가 올 것이다…”
루치아 수녀는 1989년 11월8일 편지에 이렇게 썼다.
“그렇습니다. 1984년 3월25일 성모님의 요청이 채워졌습니다.”
이것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바티칸에 있는 파티마 성모상 앞에서 역사적인 단체 봉헌을 한 것에 관해 말한 것이다.
성모님은 당신의 약속을 지키신다.
역사는 성모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 파티마에서 첫 번째 발현이 있은지 67주년인 1984년 5월13일, 봉헌 후 두 달이 안되어 소련에서 북쪽 함대 지원을 위한 주요 군수품 저장 창고의 80%를 파괴시키는 한 폭발사건이 일어났다.
* 1984년 12월13일,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폭발은 소련의 가장 큰 군수품 기지를 파괴시켰다.
* 소련의 국방장관인 마샬 유스티노프가 1984년 12월19일 살해되었다. 3일 후 새 국방장관인 마샬 소도로프가 죽었다.
* 봉헌 후 1년 되던 해인 1985년 3월에 소련의 대통령 체빈코가 죽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이 되었다. 고르바초프는 글래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언론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정책을 실시했다. 결국 그것이 공산주의 붕괴를 가져오게 했다.
* 1989년 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폴란드는 반 공산주의가 이끄는 정부로 돌아섰다.
* 1989년 10월7일, 거룩한 로사리오 성모님의 기념일에 헝가리 공산당이 유럽의 민주주의 체제로 전향하는 투표를 했다.
*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철의 장막이 무너진 것은 우리들의 생애에서 볼 수 있으리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이었다.
* 1989년 12월1일, 고르바초프는 교황 바오로 2세를 만났고 종교의 자유를 약속했다. 교황은 이 만남을 “시대의 징표”, 그리고 “약속의 풍부한 징표”라고 언급하셨다. 또한 교황은 이 만남이 “하느님의 섭리”였다고 말씀하셨다.
* 1990년 3월15일, 교황청은 소련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 1990년 5월에 파티마 레이리아의 아마랄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상황을 통해 성모님께서 요청하신 봉헌이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 1990년 6월13일, 헝가리의 파스카이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다.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의 여러나라들에서 심각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일어난 사건들을 인간적인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믿음을 가진 정치인들은 이 변화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음을 인정한다. 우리는 성모님의 약속이 실현되었고 이 변화들은 성모님의 중개의 결과라는 것을 확신한다.”
* 1917년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이래로 1990년 10월13일 첫 번째 종교행사가 크레믈린 내의 성모승천 성당에서 개최되었다. 그 전에 이 성당은 무신론자들의 예술회관으로 사용되었었다.
* 1990년 11월11일, 폴란드가 공산주의에서 해방됨을 경축할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아니오, 내가 아니라 파티마에서 확언하신대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업적입니다.”
* 1991년 8월19일, 공산주의자들은 고르바초프를 전복시키려 했다. 바로 며칠 후인 8월22일 여왕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에 붉은 공산주의는 패배했다.
* 몇 달이 지난 1991년 10월13일 첫 번째 러시아 순례객들이 파티마에 왔고 그 날은 여섯 번의 파티마 성모발현이 있은 지 74주년 되는 해였다. 이 역사적 사건은 소련에서 150개의 TV방송으로 그리고 많은 라디오 방송으로 두 번이나 중계되었다.
* 1991년 12월8일,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마리아 대축일에 소련은 최후를, 민주 공화국은 시작을 알렸다. 12년 후 러시아의 대통령으로 새로 당선된 보리스 옐친이 로마에서 교황을 만났다.
*1991년 성탄에 공산주의 깃발이 마지막으로 내려졌다. 12월30일 바르샤바 조약이 끝나는대로 열 다섯 공화국이 소련의 지배에서 해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