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위 일체의 신비

– 마리아 발또르따가 받은 영적인 계시中

   역자의 말 : 훌륭한 신학자이자 학덕 높은 성직자였던 Hippo의 주교님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리스도교 교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신비인 ‘성 삼위 일체’에 대해 매우 오랫동안 심각하게 고민하며 이해하려고 애썼다는 이야기에 대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있다.
   하루는 ‘어떻게 세 위격이 하나의 하느님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며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는데, 한 꼬마가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어린 아이는 계속해서 조개 껍질로 바닷물을 퍼서는 모래사장에 있는 작은 구멍에 붓고 있었다. 물가로 와서는 조개껍질에 물을 다시 채우고 다시 구멍 쪽으로 가곤 하기를 계속해서 하고 있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서 아이에게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물었다.
   아이는 미소를 지으며  “바다를 이 구멍에 옮겨 담고 있어요.”라고 대답하였다.
   어린 아이의 천진함에 유쾌해진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다. “얘야, 네가 평생동안 그 일을 한다고 해도, 너는 다 하지 못할 것 같구나. 바다는 그 작은 구멍에 담기에는 너무나 넓고 깊단다.”
   아이는 엄숙한 표정으로 아우구스티누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렇지만 당신이 고민하고 있는 신비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 전에 나는 이 일을 마칠 것입니다.” – 그리고난 뒤 아이는 사라졌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때서야 그 아이가 이 신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헛된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하느님께서 보낸 심부름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래에 나온 삼위 일체의 신비에 대한 받아쓰기와 환시는 현대의 주목할만한 신비가인 마리아 발또르따가 표시된 날짜에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로 가장 잘 알려진 발또르따는 그 밖에도 많은 환시와 받아쓰기를 기록해서 세 권으로 정리했다. 각각은  ‘1943년 노트’, ‘1944년 노트’, ‘1945-50년 노트’이다. 아래에 나온 네 파트의 ‘계시’는 앞의 두 권에서 정리된 것이고 이 사이트를 위해 특별히 번역된 것이다. 그것들은 발또르따가 그녀가 본 환시를 묘사한 것과, 어떤 환시에 대한 해설을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아쓰기 형식으로 받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느님의 자비로 현대의 인간들과 오늘날의 교회에 주어진 이러한 천상 모습의 일견이 이것을 읽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천국에서 그리스도의 충실한 신자들을 기다리는 가장 위대한 신비에 더욱 깊이 들어설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 I –

[ 1943년 7월 1일 ]

   (이 날은 성혈 대축일이었다. 1970년부터 성체 축일과 성혈 축일이 합해져서 그리스도 성체 성혈 대축일로 정해졌고,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목요일이나 주일에 지내고 있다.)

예수님 :

   “너희의 지극히 제한되어 있는 지성과 초기 단계적인 미발달된 영성(靈性)에게 하느님의 본질에 대한 신비를 ‘알게’ 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소위 영적인 존재라고들 하는 많은 이들 가운데에서 진정 영적인 이들에게는 그 신비를 조금은 더 알게 할 수 있다. 성자를 사랑하는 이들, 나의 피에 의해 참된 표시를 받은 이에게는 이 신비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나의 피는 앎이며, 나의 사랑은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천국에서 위대한 축일이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성혈을 쏟아 부은 어린양에게 천상 만군이 오늘 ‘거룩하시다(Sanctus)‘를 부르고 있다. 너(발또르따)는 존경받아야 마땅한 나의 피를 존경하는 몇안되는-너무나 적은- 이들 중 하나이다. 나의 피를 존경하고 숭배하는 이에게는 이 피가 처음 흘려진 때부터 영원한 생명과 초감각적인 지식을 말해 준다. 나의 피를 더 사랑하고, 존경할수록, 더 간구하고, 더 믿을 수록 너희 모두를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많은 죄악들이 사라질 것이다.

   나의 성혈은 모세가 알린 어린 양의 모습에 불과할 때, 보호의 십자 표시(Tau)로 예언된 모습에 불과했을 때 말하여졌었다. 흘려진 후엔 사도들의 입을 통해 말하여 졌다; 묵시록에서는 성혈의 권능에 대해 외치고 있다; 신비가들의 입을 통해서 초대하고 있다. 하지만 사랑받고 있지 않다. 기억되지 않는다. 간절히 바라며 간구되지 않는다. 나의 교회는 많은 축일이 있지만 가장 귀중한 나의 피에 대한 축일은 부족하다. 나의 성혈 안에 구원이 있는데도!

   오늘, 나의 성혈의 축일에 너에게 신비를 깨우쳐주겠다. 따라하여라: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너에게 말하려는 것이 ‘우리’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의 인간적인 서투름(괴로움,중압감) 때문에, 성부와 성령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형상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무한한 아름다움을 가진 무형의(영적인) 존재이며, 너의 인간적인 감각으로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리하여 네가 하느님이며 사람인 나에게 청하듯 삼위에게 청하기 위해 전심으로 삼위를 생각하는 것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너는 우리의 삼위 일체의 신비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존재’와도 비교(비유)할 필요가 없다. 그분은 스스로 존재하신다. 그 존재 안에, 그것이 모든 것이다. 존재는 육신을 갖고있지 않다. 영원하신 그분은 육신이 없다.”

환시 :

   “보라 : 하느님은 빛이시다. 그분의 숭고한(영적인) 실체에 반(反)하지 않고 언제나 하느님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우리의 영원 불변한 아름다움의 보옥. 그는 천국의 심연에 확고히 정주되어, 내 교회의 승리자의 모든 영혼들을 그에게 끌어가며, 용기를 잃고도 살 줄 아는 내 교회의 투사의 모든 영혼들을 그에게 빨아들인다.
   우리의 삼위 일체, 우리의 셋이며 하나인 본질, 이는 영원 안에서 모든 존재하는 것을 이룬 그 자리에 단 하나의 광채 안에 정주해 있다.

   따라하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다음은 마리아 발또르따가 그녀의 영적 지도자 로무알도 밀리오리니 신부님에게 쓴 글이다. 아마도 신부님이 더 자세한 설명을 요청하신 것 같다.]-

발또르따 :

   “제가 본 것을 완전히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말’은 부족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저는 보고 있었습니다만,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처럼 제 정신이 본 것을 다시 얘기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림 그리는 데에는 정말 자신 없지만, 형상을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가운데 점이 있고 그 점을 중심으로 하는 세개의 원형을 그려봅니다. 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어요. 빛이 없고, 세 원형들과 그 가운데의 점 사이의 관계의 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표시죠. 실제 그것은 생명력 넘치고, 움직이고 있으며, 천상의 복이 넘치는데.

   확실히 저는 천년을 산다해도 이 이성적인 환시의 아름다움을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의 도움이요, 나의 위로, 나의 힘, 나의 방패 – 나의 모든 것이 될 것입니다. 나를 그 자체 안으로 끌어들이는 극도로 강력한 힘이고, 그것에 닿기위한 형언할 수 없는 욕망을 줍니다. 저는 태양 아래에 살겠지만요, 제가 태양을 뭐라고 말해야할지? 아주 멀기도하고 아주 가깝기도 한.. 천국의 가장 깊은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불에 대한다면 태양은 다 타버리고 차가워진 별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에 잠겨져서, 그의 빛에 의해 살아 있는, 모든 우주 만물.. 그 위로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멀리, 넓게 넘쳐 흐르는 느낌을 받습니다. 또한 동시에, 특별히 제게 이런 비할 데 없는 기쁨을 갖게 허락해주신 하느님이신 선(善)을 통한 제 존재와 다른 모든 존재들이 모두 하느님이신 이 생명의 핵심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주 섬세한 식물에 종모양의 병을 덮어둔 것처럼 모든 존재들은 만물을 비추는 그의 빛살 아래에 거둬들여지고, 보호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진부한 비유로 제가 다 망쳐버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좋은 표현은 모르겠어요)

   간단히 말하자면, 제 자신이 하느님의 눈길 아래에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은 기쁨, 온정, 힘, 그리고 무한하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쁜 평화의 느낌입니다. 세 신성한 위격을 하나인 엄청난 광휘로 일치시키고 일체인 하느님의 빛으로 만드는 그런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아름다움의 보옥(나의 주님께서 방금 이름붙이신것과 같이!) 아래에서 사는 것은 정말이지 천상의 기쁨입니다. – 내가 겪은, 내가 겪어야할 모든 괴로움들을 다 없애버릴 지복인 것입니다.

   이제 저는 정말 ‘천국’이 뭘 말하는지 알았습니다. 바로 하나이며 셋인 그 큰 빛을 언제나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마리아 발또르따)

– II –

[ 1944년 1월 10일 ]

발또르따 :

   “이렇게 아름다울수가! 이렇게 아름다울수가! 제가 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영성체(성찬식)때에 제게 불러일으켜진 것을 아주 명백하고 꼼꼼히 신부님께 묘사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신부님은 제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아시죠. 그렇지만 성체와 일치하는 순간에 제가 받았던 것은 지복이나 기쁨의 영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점차로 저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그림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림이 아니에요; 그건 일종의 묵상(응시)이었습니다. 아무 기도도 없이 한시간은 족히 이 황홀한 묵상에 넋을 빼앗겨 있었습니다.

   성체를 받아모신 직후에 시작되었어요. 신부님이 제 반응과 제 응답이 늦었다는 것을 아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발또르따가 아파서 방에만 있게되어 영적지도 신부님이 그 방에서 미사를 집전하시곤 했었다. 미사 끝부분의 기도와 응답에 대해 언급하는 것 같다.) 저는 이미 그것에 완전히 몰입해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환시가 항상 – 보다 더 생생하게 저에게 다가올 때면 큰 소리로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나서는 침묵하며 마치 잘 때처럼 눈을 감아요. 하지만 이럴 때엔 제 온 자신이 더는 못할 정도로 깨어있어요.

   환시의 마지막 부분이 제가 쓰는 동안에도 계속됩니다. 수많은 천상의 존재들의 응시 아래에서 씁니다. 그들은 제가 쓰면서 세세한 부분을 덧붙이거나 변형시키지 않고 제가 본 것만 쓰는지 보고있어요. 여기 제가 본 것을 씁니다 :

[ 환시 ] :

   예수님을 받아모시자마자, 저는 저의 엄마, 마리아가 제 옆에, 침대의 왼편에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오른팔로 저를 안아서 당신 쪽으로 끌어당기셨습니다. 그녀는 12월[1943]에 작은 동굴 환시에서처럼 희고 긴 옷을 입고 흰 베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순간에 저는 감미로운 황금색 빛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색체에 둘러싸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의 영혼의 눈은 제 위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그 금빛 찬란한 빛의 근원을 쳐다보려 했습니다. 제 방은 바닥과 벽과 가구는 그대로였지만 지붕이 없어졌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무한한 푸른 하늘을 보았습니다.

   이 천국의 하늘빛에 비둘기 형상의 불이 성모 마리아의 머리에서 똑바로 위쪽에 공중에서 떠있었습니다. 제가 마리아의 뺨에 제 뺨을 기대고 있었기 때문에 곧 제 머리 위이기도 했습니다. 성령은 똑바로 곧추선 자세로 펴진 날개가 있었습니다. 자리를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떨리고 있었습니다. 떨릴 때마다 파동과 섬광과 찬란한 불꽃이 터지듯 나왔습니다. 바로 그에게로부터 금빛 광선이 원추형으로 세차게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원추의 꼭대기는 비둘기 형상의 가슴에서 시작되었고, 바닥은 성모 마리아와 저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우린 서로 이 원추 안으로, 이 막 안으로, 이 기쁜 빛의 포옹을 했습니다. 빛은 매우 밝았지만 눈이 부시지는 않았습니다. 비둘기 형상의 성령으로부터 광선이 쏟아질 때마다 그 빛은 눈에 새로운 힘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비둘기 형상의 성령이 떨릴 때마다 빛이 존재했고 더 많아졌습니다. 초인적인 힘에 의해 제 눈이 크게 떠지는 것처럼 느껴졌고, 한 피조물의 눈이 아닌 영광스럽게 된 한 영혼의 눈으로 느껴졌습니다.

   제 위쪽에 떠있으면서 타오르고 있는 ‘사랑’ 덕택으로 더 볼 수 있는 능력을 받고나서는 제 영혼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창천을 배경으로 지극히 높으신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정말로, 그분의 형상은 비물질적인 빛의 윤곽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의 아름다움 – 그것은 묘사하려하지 않겠습니다. 인간의 능력 밖이니까요. 그분은 왕좌에 앉아 계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왜 이렇게 말하냐면, 그분은 헤아릴 수 없을 무한한 위엄으로 앉아 계신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옥좌나 팔걸이가 있는 의자나 천개(天蓋)는 보지 못했습니다. 지상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앉을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저의 왼쪽 방향에 계셨고 (십자가에 달리셨던 나의 주 예수님 쪽으로 향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분의 성자의 오른쪽이죠), 헤아릴 수 없는 높은 곳에 계셨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분의 지극한 빛의 용모에서 가장 작은 부분만을 본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창을 향해 보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무한한 사랑의 얼굴로 보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시선을 따라가서 예수님을 봤습니다. 제가 항상 보던 주님인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왕이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성모님의 것처럼 빛이 나며 지극히 흰 빛깔의 긴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마치 ‘빛’으로 만들어진 옷 같았습니다. 그분은 정말 아름답고, 강하고, 당당하며, 완전하고, 눈부시게 찬란했습니다. 그분은 서계셨는데, 오른 손엔 그분의 기(旗), 권장(權杖)을 들고 계셨습니다. 키가 크신 나의 주 예수님보다 더 긴 지팡이였습니다. 목자의 지팡이와 비슷했는데, 양치기 지팡이처럼 끝이 굽은게 아니라 가로로 있는 막대기로 끝납니다. 바로 십자가 모양이었어요. (여기에 발또르따는 매우 긴 라틴 십자가를 그려놓았습니다)…., 짧은 막대기에 걸려있는 매우 빛나는 흰 실크로 된것같은 기(旗)(여기에 발또르따는 십자군 방패같은 것을 대략적으로 그려놓았습니다)에는 양쪽면에 보라색 십자가가 표시되어있었습니다. 그 작은 기(旗)의 위엔 마치 액체 다이아몬드로 쓴것같은 빛의 글씨가 있었습니다 – 그 칭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성자께서는 오른손으로 지팡이의 기(旗)쪽을 잡고 높이 들고 계셨고, 왼손으로는 옆구리의 상처를 가리키고 계셨기 때문에 그 상처들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상처들에서 지구를 향해 퍼져 내려오는 광선 때문에 엄청나게 눈부시게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른손의 상처는 손목 쪽에 있었고, 우리의 동전만한(이탈리아 돈 10 첸테지모를 그려놨습니다) 매우 밝게 빛나는 루비처럼 보였습니다. 왼손의 상처는 더 손바닥 가운데쪽에 있고 더 넓었으며 엄지손가락 쪽으로 길게 있었습니다.(오른쪽으로 긴 작은 타원을 그려놨군요). 상처들은 불타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상처는 안보입니다. 오히려 나의 주님의 육신은 너무나 아름답고 모든 부분이 완전했습니다.

   성부께서는 그분의 왼쪽으로 (우리가 볼땐 오른쪽으로) 성자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성자께서는 성모님과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말하건데, 그분이 사랑으로 저를 바라보지 않으셨다면, 저는 그분의 눈빛과 표정의 엄청난 광휘를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분은 알려진대로(로마서의 ‘진노의 날’?) 정말로 두려운 위엄을 갖추신 진정한 왕이십니다.

   환시가 지속될수록 작은 세부사항들을 감지하는 능력과 거대한 빛 가운데서 더 많이 볼 수 있는 능력이 커졌습니다.

   사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저는 성 요셉을 보았습니다. (구유가 있는 곳의 모퉁이 근처) 그분은 그리 크지 않으셨습니다. 성모님과 비슷한 정도였습니다. 건장해 보였습니다. 곱슬거리고 짧은 회색 머리와, 사각으로 자른 턱수염이 있고, 코는 길고 날씬한 매부리코였습니다. 코의 우묵한 곳에서부터 두 주름이 내려와서 입가의 수염까지 뺨을 가르고 있었습니다. 눈은 검고 매우 선량해 보였습니다. 그 눈에서 저는 저의 친아빠의 사랑 가득하고 인자한 눈빛을 보았습니다. 그분의 얼굴에는 선함이 가득하고, 슬픔이 아닌 사려깊은 모습과 위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빙카의 꽃잎같은 보라빛의 푸른 튜닉(가운같은 웃옷)을 입고, 담황갈색의 망토를 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게 그분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모든 의로운 이의 보호자이다.’

   그때, ‘빛’이 제 영혼을 방의 다른 쪽으로 불렀습니다. 그쪽은 제 친구 마르타의 침대가 있는 쪽이었는데, 저는 제 천사를 보았습니다. 그는 성모님 쪽으로 무릎을 꿇고 그분을 공경하기 위해 보여졌습니다. 그는 흰 옷을 입고 있었고, 그의 팔은 가슴에서 십자로 놓여있으며 손은 양 어깨에 닿아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깊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깊은 경의를 표하는 자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아름답고 긴 날개를 보았습니다. 매우 하얗고, 끝이 날카로우며, 확실히 지상에서 천국으로 재빨리 날기 위해 만들어진 진짜 날개였습니다. 지금은 그의 양 어깨로 모아져있습니다. 그는 그의 자세로써 제게 가르침을 주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계속 그를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제 오른편 가까이 다가와서 제 오른쪽 어깨에 손을 얹는 것을 느꼈습니다. 즐거운 사랑의 빛나는 얼굴을 한 나의 성 요한이었습니다. (발또르따가 특별히 사랑하는 복음사가 성 요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발또르따를 ‘작은 요한’이라고 부르십니다. 발또르따가 특별히 성 요한을 사랑해서이기도 하고, 성 요한처럼 발또르따도 예수님의 가슴에 안겨 오늘날의 교회에 내려주는 초자연적인 계시를 많이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더없는 행복을 느낍니다. 극치에 다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며 저는 그 지복의 한복판에 몰입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훨씬 강렬한 불꽃을 튀기는 하느님의 성령과 나의 주 예수님의 상처는 저의 보는 능력을 더욱 더 키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천상의 교회, 승리의 교회를 봅니다! 신부님께 잘 묘사해보이겠습니다.

   높은 곳에는, 언제까지나, 성부와 성자께서, 그리고 그 두분의 위, 두분의 사이에는 성령께서 그 광휘로써 하나로 일치시키고 계셨습니다.

   그 아래쪽에는,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푸른 하늘빛 가운데의 하늘빛인 두 경사면이 모이면서 축복받은 골짜기를 이루고, 수많은 그리스도의 복된 성인들이 있었습니다. 어린 양의 이름으로 도장찍힌 사람들로써, 그들은 빛이었으며, 그 빛은 노래였고, 그 노래는 흠숭이며, 그 흠숭은 지극한 행복입니다.

   왼편으로는, 증거자의 계층(位)이 있었고, 오른편엔 순결한 이들의 계층(位)이 있었습니다. 순교자(희생자)의 계층은 볼 수 없었는데, 성령께서 순교자들은 순결한 사람과 합류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순교’는 그 영혼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처럼 다시 순결한 상태로 되돌려 놓기 때문입니다. 그 양편의 모든 이들은 모두 예수님과 마리아님처럼 빛나는 긴 하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골짜기의 푸른 하늘빛 바닥과 푸른 하늘빛 벽에서는 마치 사파이어가 번쩍이는 것처럼 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다이아몬드로 엮어진 것 같은 그들의 옷에서 빛이 쏟아져 나옵니다. 무엇보다도, 영적인 육체와 얼굴이 바로 빛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른 ‘육체’인 것을 알아차리고, 신부님께 묘사해보겠습니다.

   살아있고, 고동치며, 완전하고, 만질 수 있는 살로 된 육신과 영혼 – 오직 예수님과 마리아의 육체만이 그랬습니다 : 두 영광스러운 육신, 진정한 육체였습니다. 그리고, 빛 그 자체로 이루어진 육체는 (하느님의 이 하찮은 피조물이 인지할 수 있기 위해서) 영원하신 아버지와 성령, 그리고 나의 천사가 그러했습니다. 그 다음엔, 보다 고형체에 가까운 빛 :성 요셉과 성 요한입니다. 아마 제가 그들의 존재와 말을 듣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육체인 흰 불꽃은, 수많은 천상의 복된 성인들이었습니다.

   증거자들 가운데에는 돌아서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지극한 거룩한 성삼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순결한 이들 가운데는 몇몇이 돌아서 있습니다. 저는 그 가운데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이들처럼 빛나는 흰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은 특유의 전형적인 히브리인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저를 호의를 갖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때 세명의 복된 영혼들이 저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짓습니다. (성녀의 영혼인 것을 알았습니다). 저를 부르는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젊었습니다. 모든 복된 이들은 제게 모두 비슷한 나이인 것으로 보입니다 : 모두 젊고 완벽하고 비슷하게 아름다웠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과 마리아님 정도였습니다. 이 세 천상의 영혼들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지만, 둘은 종려나무 가지를 갖고 있고, 한명은 어떤 꽃을 갖고 있기 때문에 – 종려나무가지는 순결한 사람들 중에서 순교자들을 구별하는 유일한 표시입니다- 제 생각엔 그들이 ‘아녜스’와 ‘체칠리아’와 ‘리지외의 데레사(소화데레사)’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제가 선한 뜻을 가졌다고 해도, 그 사람들 모두의 ‘알렐루야’ 소리는 어떻다고 표현할 수가 없군요. 강력한 동시에 애무와 같이 부드러운 ‘알렐루야’였습니다. 모든 이들의 하느님을 향한 ‘호산나’ 소리가 울릴 때마다 그들은 더욱 생생하게 웃으며 빛났습니다.

   환시는 여기서 끝나고, 그 강렬함 속에서 이렇게 결정체를 이룹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저를 떠났고, 그와 함께 성 요한과 성 요셉이 떠났습니다 : 첫번째 분은 성자의 앞의 자리로 돌아갔고, 다른 이들도 순결한 이들 사이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찬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