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팔, 멜키올과 발타살은 어리벙벙했다. 약 30여 년 전에 그들은 동방에서부터 베들레헴까지 먼 길을 걸어가 아기예수께 경배를 드렸었다. 그러나 그때는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신비스러웠고 정말로 모든 것이 불가사의했다. 그러나 당혹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 후 그들은 각자 자기 나라로 돌아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들의 작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 전념해 왔다. 여러 해가 지나 그들은 그 아기가 자라서 위대한 예언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다음에는, 그가 그의 백성들에게 배척받고 로마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마침내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들었다. 이러한 모든 일은 보통 일이 아닌, 아주 특별하고도 정말로 놀라운 것이지만, 그 역시 당혹스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을 당황하게 만든 것은 이들 각자가 최근에 꾼 꿈이었다. 꿈 속에서 매일 밤 똑같은 목소리가 그들의 마음 속에다 속삭였다.

“일어나라, 충성스런 자여, 네 왕국을 떠나 동방 사막을 향해 가거라. 그리고 4월(Tammuz:유다력에 따른 것. 태양력으로는 6-7월:역주) 3일에 이시타바르의 오아시스에서 나를 만나라.”

이상한 일이지만 한 번도 가스팔, 멜키올과 발타살은 누가 그렇게 그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를 물어 볼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왕 중 왕께서만이 그처럼 절대적인 위엄을 지니고 당당하게 말씀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어리둥절한 채로 그들은 그 말씀에 따랐다.

4월 3일에 동방 박사 세 사람은 다시 한 번 함께 만났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별이 아니라 꿈 속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가 그들을 인도했다. 오아시스 한가운데에는 아주 멋지게 꾸며진 하얀 텐트가 있었다. 그들은 경외심을 지니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금방석 세 개가 반원형으로 놓여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들은 방석에 앉아 경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침묵 가운데 기다렸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찬란한 한 줄기 빛이 텐트 안을 가득히 비추더니, 키가 큰 사람이 눈부신 광휘에 둘러싸여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 사람은 세 사람에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잘 왔다. 나의 충실한 제자들아. 나는 수년 전 너희가 내 구유에 바쳤던 훌륭한 선물들에 대해 감사한다. 너희가 들은 대로 나는 죽었다가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여 이렇게 살아 있다.”

세 노인은 서로 쳐다보았다. 아, 그 소문들은 역시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가슴은 기쁨으로 타올랐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제 나는 너희가 특별한 방식으로 내 제자가 되었으면 한다. 너희는 오래 전에 내게 선물을 가져옴으로써 나를 섬기기 시작했으니, 이번에도 내게 다시 한 번 선물을 가져와 너희가 내 사랑 안에서 성장하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세 사람의 동의를 기다리시는 듯 잠깐 말을 멈추셨다. 그들은 그 멈춤의 의미를 알고 동의의 표시로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했다. 예수님은 미소를 머금고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내년 지금과 똑같은 시각에, 또한 그 다음해 이 년 동안에도 마찬가지로 내가 너희에게 요청하는 것을 가져와다오. 그러면 너희 중 누가 가장 내 마음에 드는 선물을 가져왔는지 알게 될 것이다.”

언제나 행동파인 가스팔이 강한 욕망으로 들떠서 말을 가로막았다.

“그런데 그 선물들 중에서 첫번째로 가져와야 할 선물은 무엇입니까, 나의 주님?”

예수께서는 그들을 다정스럽게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내년 이맘때에 내게 칼루타(Kaluta)를 가져와다오.”

그러고는 그분은 사라지셨다.

세 왕은 지혜가 많은 사람들이었지만 아무도 칼루타가 무엇인지 몰랐다. 그렇지만 가스팔과 멜키올은 땅바닥에까지 닿도록 머리를 조아리고는 중얼거렸다.

“주님이 말씀하셨으니 두말 말고 그대로 따라야지.”

그러고는 두 사람은 즉시 일어나서,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어떻게든 칼루타를 찾기 위해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다. 발타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기 나라로 돌아와 침착하게 그의 매일의 일과를 계속 수행해 나갔다.

그 다음 일 년 동안을 가스팔과 멜키올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칼루타’란 단어가 뜻하는 바를 알아 내려고 애썼다. 아무도 그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이 그 자체를 우연히 발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마침내 절망에 빠져 그들은 불만족스럽긴 하지만, ‘칼루타’란 단어와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듯 보이는 대상을 받아들임으로써 만족해야 했다. 가스팔은 ‘칼로티(Kaloti)’라 부르는 고대의 악기로 만족했고, 멜키올은 ‘칼리투(Kalitu)’라 부르는 희귀한 건포도로 만족했다. 각자는 예수님이 ‘칼로티’나 ‘칼리투’를 ‘칼루타’로 잘못 말씀하셨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이 칼루타를 찾아 사방팔방으로 정신 없이 쫓아다니는 동안에도 발타살은 다른 세상사에는 관심이 없는 듯 자기 일에 힘썼다.

세월이 흘러 세 사람은 다시 이시타바르의 오아시스로 돌아왔다. 가스팔과 멜키올은 전문가가 칼루타일 것이라고 조언해 준 ‘칼로티’와 ‘칼리투’를 가져왔다. 발타살은 빈손이었다. 이번에도 하얀 텐트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들이 들어가 금방석 위에 앉자 예수님이 말할 수 없이 위엄 있는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셨다. 그분이 물으셨다.

“자, 내게 칼루타를 가져왔느냐?”

가스팔은 악기를, 멜키올은 희귀한 건포도를 바쳤다. 예수님은 단지 고개만 끄덕이시고는 발타살을 향해 물으셨다.

“너는 어떻게 되었느냐, 발타살?”

발타살은 예수님을 올려다보며 “주님, 칼루타가 무엇인가요?” 하고 묻기만 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은 다정하게 미소를 띠셨다. 그분은 다른 두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아, 발타살이 나를 가장 기쁘게 해주는 선물을 가져왔다. 그는 내게 신뢰를 가져왔다.”

가스팔과 멜키올은 이해를 하지 못해 눈이 휘둥그래졌다. 예수님은 힘주어 말씀하셨다.

“그래, 발타살은 마치 내가 변덕스러운 일시적인 주인인 것처럼 맹목적으로 나를 섬기려 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친구로 대해 주었다. 설명을 요청함으로써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어떤 것을 내가 때가 오면 보충 설명해 주리라는 사실을 믿고 있다는 걸 보여 준 거야.”

두 사람은 예수님이 자신을 친구로 대해 주기를 바라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다소 놀랐다. 사실, 그들이 무엇이라고 거룩하신 하느님께 감히 설명을 요청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 앞에는 더욱더 놀라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으니….

예수님은 다시 한 번 세 사람 모두에게 말씀하셨다.

“내년 이 시각에 다시 와서, 옛날에 너희가 나를 경배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왔던 그 이후로 너희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이 무엇인지를 나에게 말해다오.”

그러고는 그분은 다시 돌연 사라지셨다.

그 다음 몇 달 동안을 가스팔과 멜키올은 그들의 지난 업적들을 면밀히 평가하며 보냈다. 오랫동안 통치해 오면서 그들이 행했던 모든 위업 가운데 한 가지만을, 어떤 것으로 그들의 주님께 제시해 드려야 할지 결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발타살은 평소와 똑같이 자신의 일을 묵묵히 열심히 해나갔다. 그의 생활에서 유일하게 달라진 것이라곤 이전의 그보다 훨씬 더 인내심이 많아지고 이해심이 깊어진 것 같아 보인다는 점뿐이었다.

예정되어 있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위해 동방 박사 세 사람은 모두 약속한 시각에 이시타바르의 오아시스에 나타났다. 예수님이 그들의 가장 큰 업적을 말해 달라고 하시자, 가스팔이 제일 먼저 나서서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진지하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본 결과, 제가 통치하면서 이루어 낸 가장 훌륭한 업적은 학문과 예술을 모든 측면에서 장려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시인한다는 뜻으로 머리를 끄덕이셨다.

그 다음에는 멜키올이 말했다.

“저의 가장 큰 업적은 우리 백성들을 영원히 가뭄의 공포로부터 보호해 줄 복합 관개시설을 전 국토에 설치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동의의 표시로 머리를 끄덕이시고는 발타살에게 물으셨다.

“그리고 넌 어떠냐, 발타살?”

발타살은 잠시 동안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별로 마음내켜 하지 않음이 분명했다. 마침내 그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주님, 불행히도 저는 제가 아직 어린 나이였을 때 왕으로서 달성하기로 계획을 세웠던 일들을 그렇게 잘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 노력의 결과처럼 보잘것 없는 것이긴 하지만, 다음과 같은 사실이 주님 앞에서 감히 말씀드리고자 하는 저의 유일한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세월이 흐르면서 제가 만나는 모든 이에 대해 좀더 부드럽게 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단한 일이 못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일을 할 때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예수님은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셨을 뿐 아니라 이렇게 말씀하시기까지 했다.

“이번에도 발타살아, 네가 나를 가장 기쁘게 해주었구나.”

그러고는 그분은 세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충실한 제자들아, 이것이 나의 마지막 요청이다. 다시 한 번 내년 이맘때 바로 이 장소에,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할 것이라고 믿는 제물을 내게 가져오너라.”

그러고는 또다시 사라지셨다.

늘 그랬듯이 가스팔과 멜키올은 그 다음 한 해 동안 미친 듯이 필사적으로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 이런저런 궁리와 추측을 하고 조사를 하며 보냈으며, 반면 발타살은 전혀 걱정이 없는 사람처럼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나갔다.

일 년이 흘러 세 사람은 다시 오아시스에서 만났다. 그들은 흰 텐트 안으로 들어가 금방석 위에 앉았다. 결국에는 가스팔은 그의 선물로 그 가치를 어림할 수도 없는,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진주를 선택했으며, 반면 멜키올은 학자로서의 그의 삶의 과업인, 그 자신이 천체를 관측해 기술한 완벽한 기록을 포함한 두루마리 양피지 문서를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발타살은 이번에도 빈손으로 왔다. 세 사람은 모두 조용히 기다렸다. 이번에는 예수님은 나타나지 않으시고 갑자기 그분의 목소리만 들려 왔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에 너희 제물을 놓고 가거라. 그리고 내일 새벽에 다시 와서 내가 그것들을 어떻게 했는지 보아라.”

가스팔과 멜키올은 그들의 선물을 놔두고 일어서서 텐트에서 나왔다. 때는 밤이어서 가스팔과 멜키올은 그 흰 텐트에서 돌을 던지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기로 했다. 거기서 그들은 밤새 머물며 동이 터오기를 기다렸다. 물론 그들은 발타살이 잠깐만이라도 그들과 함께 있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그들이 한 번도 눈을 떼지 않고 계속 텐트 입구를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발타살이 텐트 밖으로 나오는 것을 전혀 보지 못했다.

새벽이 되어 두 동방 박사가 다시 텐트에 들어갔을 때 텐트 안은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진주도, 두루마리 양피지 문서도, 발타살도 눈에 띄지 않았다. 오직 금방석들만 여전히 그곳에 그대로 있을 뿐이었다. 주님을 기다리기 위해서 그들이 방석에 앉자마자 예수님이 찬란히 빛나는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셨다. 이번에는 이전보다도 훨씬 더 위엄이 있으시고 경외심을 일으키게 하셨다. 그분은 두 손에 그들의 선물을 들고 계셨다. 그러나 진주는 전보다 천 배는 더 아름다워 보였고, 한편 양피지 문서의 글자 하나하나는 모두 금글자로 변해 있었다. 예수님이 설명을 해주셨다.

“이 선물들은 영원히 나의 왕국에 넘겨져서 그곳에서 나를 영원히 기쁘게 해줄 것이다.”

그러시고 나자, 눈부신 빛을 내는 두 번째 인물이 예수님 옆에 나타났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발타살이었다! 예수님이 덧붙여 말씀하셨다.

“여기 있는 너희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너희는 이제 그를 다시는 이 세상에서 보지 못할 것이다. 그도 역시 나의 왕국으로 넘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희는 지금 나의 영광 안에 함께 있는 그를 보게 된 것이다.”

물론 가스팔과 멜키올은 친구의 행운에 대해 기뻐했다. 그들은 진정한 친구들이었으며, 더 나아가 시샘이나 질투와 같은 속좁고 쩨쩨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리둥절했다. 어떻게 해서 발타살은 그렇게 특별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단 말인가?

그들의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시고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발타살이 너희 둘과 함께 이 텐트에 왔을 때 그는 빈손이었다. 그렇지 않았느냐?”

그들은 동의의 뜻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예수님이 설명을 계속하셨다.

“그것은 나를 가장 기쁘게 해줄 것이라고 그가 생각했던 것, 즉 어떤 물건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게 봉헌하려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는 이 말씀과 함께 하느님과 발타살은 사라졌다.

가스팔과 멜키올은 각자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면서 이 모든 일을 되새기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발타살이 진정 그들 가운데서 가장 큰 선물을 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 닐 기유메트 신부님: 『산들바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