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를 조롱하기 위해 ‘성인’이라고 부르며 저를 몹시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 하소연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저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슬퍼하지 말아라. 너는 거룩하다. 나는 사람들이 사랑을 가지고 너를 거룩하다고 일컬을 날에 온 세상에 그 사실을 알리겠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2000년 대희년 자비심 주일에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나라 출신의 한 수녀를 큰 기쁨으로 성인 품에 올리셨다.
   그 평범한 수녀는 폴란드 출신이며 이미 가톨릭 교회 내에서 유명했던 사랑 받는 한 수녀였다. 그런데 그 수녀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훌륭한 소명을 선물하셨던 것이다. 그 소명이란 인류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하도록 해 주는 것이었다.
    “하느님의 자비는 너무나 커서 인간의 이성도 천사도 영원히 그 깊이를 잴 수 없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자신의 일기장에서 자기의 소명이 오직 한 가지만이기를 간청하고 있다.
   “오, 저의 예수님, 당신의 모든 성인들은 당신의 한 가지 특징을 내뿜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신 성심의 인호가 박히기를 원합니다. 저는 이 성심을 찬양할 것입니다. 오 예수님, 당신의 자비는 저의 마음과 영혼에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나 미래의 삶에서 저의 징표입니다. 저의 마음을 자비롭게 해 주시고 모든 고통을 참아내게 해 주소서. 저는 제 마음을 나쁘게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마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첫 번째 부르심

   헬레나는 1905년 8월 25일, 글라고비에츠 마을의 한 농부 가정에서 열 자녀들 중의 셋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매우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똑똑하고 명랑한 어린이였으며 아껴둔 몇 푼 안되는 돈을 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누어 주는 등, 마을의 다른 어린이보다 품행이 뛰어났다. 후에 그녀는 이렇게 회생하고 있다.
   “7살 때 나는 하느님의 궁극적인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내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매우 똑똑하게 들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완전한 생활을 재촉하는 목소리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 목소리에 따를 수 있는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목소리를 설명해 줄 사람을 찾아내지 못했었습니다.”
   2년 동안 학교 교육을 받은 뒤, 일곱 살 난 똑똑한 소녀는 가정 일을 돕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소를 먹이는 풀밭에서 언제나 자기를 에워싸고 따라다니던 어린이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설교를 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이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사막에 숨어 기도하는 은수자가 되어야 한다고 설교했다고 그의 오빠 스타니슬라우스는 말했다. 헬레나는 첫영성체를 한 뒤부터 점점 더 기도하기를 좋아했다. 그녀는 특히 밤에 기도하기를 좋아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녀의 이러한 지나친 행동”을 막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그러나 어린 소녀는 “그런데, 엄마, 나는 나의 수호천사가 나를 기도하도록 깨어 있게 한다고 믿고 있어요”하고 대답했다. 그녀는 주일에 입는 옷을 여자 형제들과 나누어 입어야만 했기 때문에, 평상시에 입는 작업복을 입은 채로 교회의 한 쪽 구석에 숨어서 미사에 참례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이 그녀에게는 조금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열 네 살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직장에 들어갔다. 그러나 1년 뒤에 그녀는 집에 돌아와서 긴급히 제안을 했다. “엄마, 나는 수도원에 가야만 해요.” 부모들은 결단코 안된다고 했고 열여덟 살 때까지도 허락을 받지 못했다. 헬레나는 싸우다가 지쳐, 다른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세속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잊을 수 없는 무도회

   예수님께서 그물을 손질하는 사람들을 사도로 부르신 것처럼, 그 순간까지 당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던 파우스티나 수녀를 그렇게 갑자기 부르셨다. 그것은 기억에 남을 만한 만남이었다.
   “나는 쓸데없는 말들로 시간을 보내고, 은총에는 귀를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내 영혼을 만족시켜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쾌락에 빠져 보아도 헛일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하느님을 피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하느님의 피조물(인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는 은총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언니와 함께 무도회에 나갔습니다. 축제는 절정에 달했는데, 내 영혼은 이상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춤을 추고 있는 동안에 나는 갑자기 예수님께서 내 옆에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백하고 기진맥진하고 상처투성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너는 얼마나 오랫동안 내가 너 때문에 괴로워하도록 버려둘 셈이냐? 너는 나를 얼마나 기다리게 할 작정이냐?’ 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무 말도 없는 침묵이 흘렀습니다.
   나에게는 음악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기쁨에 날뛰던 무리들도 내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오직 예수님과 나만 있었습니다. 나는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언니 옆에서 나와 앉았습니다. 그 뒤 나는 당장 무도회장을 살며시 빠져 나와서 스타니스라우스 코스타카의 주교좌 성당으로 달려갔습니다. 날은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고 성체 앞 마루바닥에 엎드려,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물었습니다. 나는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바르샤바로 가거라, 그리고 거기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가라.’
   나는 당장 일어나 집으로 갔습니다. 부모님께 작별인사를 하는 것은 언니에게 맡기고, 물건을 가져 갈 사이도 없이, 옷 한 벌만 챙겨서, 바르샤바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수도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참금이 필요했는데, 그녀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직장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녀는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고 경건하고 명랑했으며 어린이들의 온갖 장난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이 소녀는 머리를 두툼하게 땋아 내리고 얼굴에 주근깨가 있는 매우 착한 소녀였다. 그래서 그녀의 주인은 그녀를 매우 사랑했고 높이 평가하여, 그녀가 다른 데로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녀는 여러 차례 수도원에 받아달라고 청했으나 헛일이었다. 그 때마다 그들은 이렇게만 말했다. “이 소녀는 지참금도 없고, 교육도 안 받아서 글도 간신히 읽고 잘 쓰지도 못하며, 보잘것없고 다 떨어진 옷만 입으니, 분명 관심이 쏠리는 지원자가 아니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계속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마침내 또다시 나는 수도원의 현관문을 두드렸습니다. 이젠 총장이 되어 있는 수녀원장은 나를 참된 주인에게로 보냈습니다. 나는 기쁨에 넘쳐 성당에 들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집의 주인님, 저를 받아들이시렵니까? 나는 당장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는 너를 받아들인다. 너는 내 마음 안에 있다.’ 내가 되돌아오자 수녀원장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 주님께서 너를 받아들이셨느냐?” 나는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수녀원장은 “그분께서 너를 받아들이셨다면 나도 너를 받아들인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수도원에 입회할 수 있었습니다.”
   헬레나 코발스카는 1924년 8월 1일, 열아홉 살의 나이로 자비의 성모회 수녀회에 입회했다. 그리고 몇 년 뒤 파우스티나 수녀가 자기의 일기장에 이렇게 써둔 것은 옳은 일이다.
   “모든 것은 당신의 자비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그 자비로 끝납니다.”

평범한 것 안에 특별한 것이 있다

   젊은 지원자가 청원자가 되어 집안 일을 돌보도록 정해졌다. “3주일이 지난 뒤 나는 기도와, 내 영혼이 하고자 하는 다른 일들을 할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엄격한 수도원에 입회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녀에게 “나는 너를 여기에로 불렀다. 나는 여기서 너에게 많은 은총을 내려줄 것이다.”고 하셨을 때 그녀는 안심을 했다. “그리고 나는 이 날부터 행복하고 만족스러워했습니다.”
   그 뒤 13년 동안 수도원에서 “그녀는 단순하고 겸손한 봉사를 통해 수도회의 여러 집들을 반질반질하게 갈고 닦았다.”고 그의 동료수녀는 회상하고 있다. 어느 때 “파우스티나 수녀를 왜 한 수도원에서 다른 수도원으로 자주 옮기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원장수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불평과 반항을 하지않고 자리를 옮겨가는 수녀를 찾아내기란 쉽자가 않습니다. 그런데 파우스티나 수녀는 불평과 반항을 하지않는 사람에 속합니다. 그녀는 모든 일에 열성을 다합니다. 비록 자기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라도 말입니다.” 원장수녀는 말을 이었다. “그녀는 순종이 모든 것을 다 대신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이 그렇습니다!”
   파우스티나 수녀의 요리기술과 빵 굽는 기술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정원사로 일할 때 “주님, 그런에 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하오니 저를 도와주소서”하고 기도하면서, 나흘 동안 악착같이 일하다 지쳐 기절을 한 적도 있었다. 동시에 어느 때는 부엌 수녀 혼자 일이 너무나 많아 저녁에 불을 끌 때까지 씻지 못한 식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적도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자발적으로 부엌에서 일하는 수녀를 돕기도 했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자기의 일기장에 이렇게 써 놓기도 했다. “나는 남들이 어려운 일이 있어 나를 필요로 할 때에는 기꺼이 그들을 대신해 일해 주었습니다. 나는 내가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예수님게 기쁨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가장 작은 일이라도 그것을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행하면, 그것은 헤아리 수 없는 큰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얼굴에 항상 미소를 지으며 남을 기꺼이 도와주려는 청원자의 착한 마음씨를 다른 이들이 자주 이용한 것은 의심할 나위도 없다. 여러 동료 수녀들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그녀가 어리석었거나 아니면 이미 성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정상적인 인간은 자기를 그렇게 다루면 절대로 참아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온순함과 겸손과 정신적인 원만함에 있어서 다른 모든 사람들에 비해 뛰어났다. 그녀는 매우 잘 순종했으며, 투덜거리거나 불평을 하는 일이 없었다. 그녀는 매우 참을성이 많았다. 사람들은 그녀가 하는 것은 모두 오직 한 분만을 위해 하는 것은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녀는 세속의 부부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마음 속으로 그렇게 사랑했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오직 그분만을 생각했다.
   그녀는 정말로 일상적인 일을 할 때에도 하느님의 면전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일하려고 애썼다. 루드비나 수녀는 “우리들이 스토브를 청소하고 재를 대야에 퍼 담을 때마저도, 그녀는 우리들이 여러 가지 일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했습니다.” 하고 회상하고 있다. 젊은 수녀들의 의견도 일치하고 있다. “그녀는 우리처럼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소성당 안에서의 그녀의 태도는 우리들을 감탄케 했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무릎을 꿇고 장궤를 하고 있었으며 움직이지도 않고, 쓰러지지도 않고 주위에서 생기는 어떤 일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왔다갔다했으나 그런것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그를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드러내 놓고 질투도 하고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신은 시험을 당해 본 일이 한 번도 없지요? 당신은 모든 것을 쉽게 지내왔을 거예요!” 라고 하는 둥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하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커다란 모욕을 당한 뒤 근심에 가득 차 성당으로 달려간 일도 여러번 있었다. 그녀는 성당에서 바늘에 찔려 피가 흐르는 고통을 느꼈다. 사람들에게 그 상처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내 정신 안에서 성합을 열고, 내 머리를 그 성합의 모서리에 댔습니다. 내 눈물이 모든 고통을 이해하시는 분의 심장에 똑똑 떨어졌습니다.”

고통스러운 시험을 당한 수련자

   파우스티나 수녀는 스물한 살 때 착복식을 하는 동안에 기절을 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앞으로 당하게 될 모든 고통들을 미리 보여주셨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절망한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만들기 위해 당신의 신부를 고통의 학교에서 그녀는 모든 희망과 모든 느낌에 대해 신뢰하는 것을 배웠다.
   “수련자 1년 기간이 끝날 무렵 점점 짙어지는 어둠이 내 영혼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내 정신이 흐려지고, 신앙의 진리가 어리석은 것같이 생각되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하느님에 관해 말할 땐 내 마음이 돌덩어리처럼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도에서 아무런 위안을 찾지 못했으며, 불안이 나를 휘감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를 들여다보면 죄와 허무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가장 간단한 기도형식도 알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기도시간, 아니 투쟁의 시간을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한 시간 동안 기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세시간 동안.” 그런데 마침내 고통을 당하고 계시는 주님이 그녀의 영혼에 나타나시어, 사랑 어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신부는 신랑을 닮아야만 해. 나는 가끔 가장 큰 은총을 기도의 마지막에 주려고 준비하고 있는 때가 있단다.” 이러한 때에도 파우스티나 수녀에게는 그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는 영신 지도자가 없었다.
   시련 받은 내적인 삶과 비범한 은총을 가지고 그녀는 아무런 도움을 얻지 못하면서도 고백소에서 원장수녀에게로, 원장수녀에게서 고백신부에게로 돌아다녔다. “하느님께서 피조물과 그렇게도 가깝게 내적인 관계를 맺기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원장 수녀는 생각했었다. 그리고 일반 수녀들은 가만히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하느님의 은총은 나에게는 커다란 고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주님과의 만남을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환상의 희생물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면그럴수록 예수님은 당신의 선물을 가지고 나를 뒤쫒아 왔습니니다.” 2년 반이 지난 뒤에야 주님께서는 그녀에게서 시험을 거두어 들어셨다. “순종만이 나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빛이 나에게 흘러 넘쳤습니다. 이 때부터 내 영혼은 어린이가 자기의 아버지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느님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침내 파우스티나 수녀의 서원식에는 그녀의 부모들고 와서 딸의 행복한 모습을 보았다. 이들은 그 때까지 그녀를 원망하고 있었기에 딸을 보고 매우 놀라워했다.

값진 혼인 꽃다발

   스물일곱 살 난 파우스티나 수녀는 1933년 5월 1일 종신서원식에 “하늘과 땅”을 초대했다. 그런데 이 “혼인식 날”에 앞서 혹독한 고통의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 나에게 한 편의 그림을 그리라고 명령하셨던 그 날까지는 모든 것을 참고 견딜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를 히스테리 환자처럼, 또는 사기꾼처럼 취급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가혹한 단죄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성당에 있을 때나, 일을 하고 있을 때나, 숙소에 있을 때나 언제나 나를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사람들이 나의 침대를 파헤쳐 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저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원장 수녀도 못 마땅해 했다. “주님께서 당신같이 보잘것없고 불완전한 사람을 신뢰하고 말씀을 하신다는 생각을 당신 머리에서 없애버리시오! 예수님께서는 성인(聖人)들과만 일을 하십니다! 이런 점을 잘 기억하세요! … 그래 좋아요. 내가 캔버스와 물감을 마련해 주겠어요. 그러니 그 일을 해보세요.”
   원장 수녀는 한참 뒤에야 파우스티나 수녀가 매우 슬프게 그 자리를 떠났으며, 많은 동료 수녀들에게 자기가 주님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신서원을 하기 전 8일간의 피정 동안에, 평수녀였던 파우스티나 수녀는 매우 욕심 많은 한 수녀의 방을 정돈해 주어야만 했었다. 이 수녀는 파우스티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댔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이런 모든 고통과 불쾌한 일들을 엮어 내 결혼식을 위한 꽃다발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하고 말하고 있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마지막 “예”에 대한 준비로서 로마에서 온 계몽된 엘터 수도신부에게 자기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고해성사를 보았다. 이 신부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수녀님, 마음을 가라 앉히세요. 예수님께서는 수녀님의 스승이십니다. 예수님께 대한 수녀님의 사랑은 히스테리도 아니고, 꿈도 아니고, 환상도 아닙니다.” 고 설명했다. 그리고 파우스티나 수녀는 “이 순간부터 마음 속에서 하는 말을 의심하는 일은 없대로 없을 것입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해에 파우스티나 수녀는 마침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약속하신 영신 지도자 소포코 신부를 알게 되었다. 파우스티나 수녀가 이 신부에게 “내 모습을 그려라”라는 예수님의 부탁에 관해 말하자. 처음에 신부는 반대하는 듯이 말했다. “당신의 영혼 안에 하느님의 모습을 그리시오!” 그러나 이 기쁜 소식을 잘 알아들은 유일한 성인(聖人)같은 이 고해신부는 마침내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바대로 그림을 그려 전람회를 하도록 허락하였다. 이 훌륭한 일을 할 수 있게 된 파우스티나 수녀의 기쁨은 얼마나 컸겠는가!
   그러나 파우스티나 수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미움으로 가득 찬 악마는 못된 헤꼬지를 했고, 그녀는 이미 받은 은총으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곧 파우스티나 수녀가 자기의 수호천사에게 도움을 청하자 악마는 당장 사라졌다. 이 수호천사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집까지 따라왔다. “그의 이마에는 불꽃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몇 주일 뒤 그녀가 원장수녀에게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새로운 수도원을 창립하라고 위탁하셨다고 설명했을 때, “이런 이상한 일들은 이제 끝을 냅시다.”하고 말하며 원장수녀는 파우스티나 수녀를 바르샤바에서 윌나로 옮겨가게 했다.

– 마리아 10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