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크리스마스이브,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만 해도 어머니나 나는 다음에 일어날 조그만 기적을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열두 살, 독일과 벨기에 국경 부근에 있는 휴르트겐 숲속 오두막집에 살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아버지가 주말이면 찾아와 머무르면서 사냥을 즐기곤 하던 집이었다. 연합군 폭격기가 우리가 살던 아아헨 마을을 파괴하자 아버지는 어머니와 나를 이곳에 보냈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4마일 떨어진 국경 도시 몬샤우의 민방위대에 근무하고 있었다.

   “숲속은 안전할 거다.”고 아버지는 우리를 떠나보내면서 말했다.
   “네가 어머니를 보살펴드려야 한다. 이제 너는 우리 집의 기둥이야.”

   크리스마스를 아흐레 앞두고 독일군의 폰 룬드슈테트 원수는 2차대전을 통해 가장 필사적인 막판의 공세를 취하고 있었다.

   노크 소리를 듣고 내가 문을 열러 나가는 순간에도 전투의 소음이 내방에서 들려가고 있었다. 가까운 곳의 대포 소리가 밤의 숲속을 뒤흔들었고, 비행기들이 끊임없이 머리 위로 날고 있었다. 탐조등의 불기둥이 밤하늘의 어둠을 찢으며 이곳저곳으로 부산스레 움직였다. 수천수만의 연합군, 그리고 독일 병사들이 가까운 곳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또 죽어가고 있었다.

   첫 번째 노크 소리가 들렸을 때 어머니는 곧 촛불을 불어 껐다. 내가 문 쪽으로 가는데 어머니가 한발 앞서 문을 열었다.

   눈 쌓인 겨울나무들을 배경으로 철모를 쓴 병사들이 유령처럼 서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눈 위에 누워있는 세 번째 사내를 가리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와 나는 거의 동시에 그들이 미국 군인임을 알아챘다.

   “적군이다!”

   어머니는 나의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나의 어깨 위에 한손을 올려놓고 잠시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무장한 그들은 우리의 허락 없이 강제로라도 우리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냥 서서 눈으로 간청하고 있었다. 눈 위에 쓰러져 있는 부상자는 이미 죽은 것 같았다.

   “들어오시오” 어머니가 독일어로 말했다.

   그들은 곧 부상자를 들어다 내 침대 위에 눕혔다.
   그들은 독일어를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프랑스 말을 써 보았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프랑스 말을 알고 있었다.

   부상자를 살펴보러 가면서 어머니가 나에게 말했다.

   “저 두 사람의 발가락이 언 것 같구나. 재킷과 구두를 벗겨줘라. 그리고 밖에 나가 눈을 한 들통만 퍼다 다오.”

   나는 곧 그들의 퍼렇게 언 발을 눈으로 비벼주었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땅딸막하고 머리가 검은 군인이 짐이고, 크고 날씬한 친구는 로빈임을 알았다. 부상자 해리는 문 밖 숲속에 쌓인 눈처럼 파르라니 창백한 얼굴로 내 침대에 잠들어 있었다. 그들은 부대에서 낙오되어 독일 군으로부터 몸을 숨겨가며 꼬박 사흘 동안 숲속을 방황했던 것이다.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더부룩했지만 방한복을 벗은 그들은 큰 소년들처럼 보였다. 어머니는 그들을 소년처럼 대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나가서 헤르만을 잡아와라. 감자도 여섯 개 가져오고.”

   그것은 크리스마스 계획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헤르만이란 어머니가 싫어하는 나치의 제2인자인 헤르만 괴링의 이름을 따 붙인 통통한 수탉으로, 크리스마스이브에 오기로 된 아버지를 위하여 살찌게 먹여온 것이었다. 그러나 몇 시간 전 아버지가 못 오실 것이 확실해지자 신년 축하용으로 쓰기로 용도를 변경해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어머니는 그 계획을 다시 바꾼 것이다.

   짐과 내가 음식 만드는 것을 돕는 동안 로빈은 해리를 보살폈다. 해리는 허벅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피를 많이 흘려 거의 죽게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침대보를 길게 잘라 붕대를 만들었다. 곧 구운 닭고기의 냄새가 방안 가득히 퍼졌다. 어머니를 도와 식탁을 차리고 있을 때 문 쪽에서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또 길 잃은 미군이겠지 생각하며 나는 주저 없이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5년이나 끈 전쟁 동안 내 눈에 익은 군복을 입은 군인 넷이 서 있었다.

   “독일 군인이다!”

   나는 그들을 보는 순간 놀람과 공포감으로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아직 어린 아이였지만 나는 그 정도의 상식은 가지고 있었다. 적군을 보호하는 것은 반역죄며 총살감이라는 것을, 어머니도 공포감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 말을 잃고 서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얼마 후 밖으로 나가 그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프뢸리에 바이나하텐(메리 크리스마스)!”

   군인들 역시 “프뢸리에 바이나하텐”하고 대답했다.
   “우리들은 부대를 잃었습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이 집에서 쉴 수 없을 까요?” 하사가 말했다.

   “물론 되고말고요.”

   공포에 잠긴 낮은 목소리로 어머니가 대답했다.

   “여러분은 따뜻한 음식을 냄비가 빌 때까지 먹을 수 도 있습니다.”

   반쯤 열린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를 맡고 독일 군인들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한껏 엄숙한 음성을 지어 이렇게 말을 이었다.
   “지금 다른 손님 셋이 계신데 아마 천하다고 생각하지 않을지는 모르겠소.”

   그리고는 내가 그때까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준엄한 목소리로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예요. 이곳에서 총질을 하면 안 돼요!”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안에 누가 있습니까?” 하사가 물었다.

   “미국 군인!”

   어머니는 추위에 언 독일 군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보았다.
  
   “들어 보세요.”
   어머니는 천천히 말했다.
   “여러분은 내 아들 같고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 그래요. 부상을 입은 소년 하나가 죽음과 싸우고 있고 그의 두 친구도 여러분처럼 길을 잃고 배고파 지쳐있어요. 오늘 밤만은…”

   어머니는 하사를 향해 어조를 좀 높여
   “이 크리스마스이브만은 사람을 죽이는 일을 잊읍시다.” 하고 조금은 부드러운 말투로 달래듯 말했다.

   하사는 멍하니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실제보다는 몇 십 배나 더 길게 느껴지는 2, 3초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때 어머니가 다시 입을 열어 망설이는 그들에게 결단을 내려주었다.
   “자, 이야기는 그만 두고.”

   그리고 손뼉을 치고는
   “무기는 이 장작더미에 놔요. 다른 사람들이 음식을 모두 먹어치우기 전에 어서 서둘러요!”

   어머니의 말에 군인들은 마치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고분고분 문 앞에 있는 장작더미 위에 무기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뒤돌아서서 미군 짐에게 프랑스 말로 몇 마디 했다. 그는 다시 영어로 동료에게 어머니의 말을 전하고 나서 자기들의 무기를 어머니에게 건네주었다. 이윽고 독일 군과 미군들이 좁은 방에 꼭 끼어 서자 어머니는 시종 미소 띤 얼굴로 모든 사람에게 좌석을 지정해주면서 앉도록 했다. 의자는 셋밖에 없었지만 어머니의 큰 침대를 끌어다 새로온 두 사람을 짐, 로빈과 함께 그곳에 앉게 했다.

   분위기는 살얼음과 같았으나 어머니는 곧 저녁 준비를 했다.
  
   입이 넷이나 더 늘었는데 비해 헤르만의 크기는 그대로였다. 어머니는 나에게 속삭였다.

   “빨리 가서 감자와 귀리를 더 가져와라. 저들은 배가 고프단다. 배가 고픈 사람은 화를 내기 마련이거든.”

   창고에서 식량을 찾는 동안 나는 해리의 신음 소리를 들었다. 돌아와 보니 독일 군 하나가 안경을 쓰고 해리의 상처를 돌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물었다.

   “간호병이군요?”
   “아닙니다. 하지만 몇 달 전까지 하이델베르그에서 의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는 꽤 유창하게 들리는 영어로, 추위 덕분에 헨리의 상처가 곪지는 않았다고 미군들에게 말했다.
   “과도한 출혈 때문입니다. 쉬면서 영양을 섭취하면 괜찮을 것입니다.”

   서로간의 적의와 의심이 가시면서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모두 식탁에 앉았을 때 다시 보니 어린 내 눈에까지도 군인들은 아주 어려 보였다. 쾰른에서 온 하이츠와 빌리는 16살이었고, 23살 난 하사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 하사는 배낭에서 포도주 한 병을 꺼냈고, 하이츠는 호밀빵 한 덩어리를 꺼내놓았다. 어머니는 그 빵을 잘게 썰어 식탁 위에 놓았다. 그리고 포도주 반병은 부상당한 소년을 위해 따로 남겨두었다. 어머니가 기도를 드렸다.

   귀에 익은 “주님, 오셔서 저희들의 손님이 되어 주십시오.” 라는 구절을 읊조릴 때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나는 식탁 주위를 돌아보았다. 전쟁에 시달린 군인들, 다시 소년이 된 그들, 미국에서 그리고 독일에서 모두 집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그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자정 직전에 어머니는 문 앞 계단으로 나가 모두들 베들레헴의 별을 보자고 제의했다. 잠들어 있는 헨리를 제외한 우리 모두는 어머니의 곁으로 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을 찾던 그 침묵의 순간에 전쟁은 멀리 그리고 거의 우리의 머리에서 자취 없이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우리 집에서의 그 사적 임시 휴전은 다음날 아침까지도 계속되었다.

   해리는 이른 새벽에 깨어 어머니가 떠 넣어주는 죽을 받아먹었다. 그는 원기를 많이 회복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독일군 하사에게서 얻은 포도주 반병에 달걀과 설탕을 섞어 마시게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오트밀을 먹었다. 장대 두개를 주워다 어머니가 가장 아끼는 식탁보를 이용해서 해리를 위한 들것을 만들었다. 하사가 미군들에게 부대를 찾는 길을 알려주었다. 짐이 꺼내어 펴놓은 지도 위의 한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물줄기를 따라가면 제1군이 상류에서 재편성하고 있는 것을 만나게 될 거요.”
   의학도가 앞에서 하사의 말을 영어로 통역해주었다.

   “몬샤우로 가면 안 됩니까?”
   짐이 물었다.

   “나인(안 됩니다)!”
   하사가 짐에게 대답했다.
   “우리 독일 군이 몬샤우를 점령하고 있거든요.”

   어머니가 그들에게 무기를 돌려주었다.
   “여러분 몸조심하세요. 모두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길 바래요. 하느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같이 하시길…”

   독일 군과 미군들은 악수를 나누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아섰다. 그들의 모습이 숲속으로 사라지고 난 다음 어머니의 어깨 너머로 성서를 들여다보았다. 펼쳐진 곳에는 크리스마스 이야기 즉 그리스도의 구유 속에서의 탄생,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어떻게 멀리서 선물을 가지고 찾아왔는가 하는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어머니의 손가락은 마태복음 2장 12절의 끝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다.”

– cbck에 ‘이 베드로’님이 올려주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