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하느님의 어머니신 성마리아 성당안. 미사때마다 복사하는 안토니오 소년이 기도를 외우면서, 성마리아 성당의 제단에 막 수선화를 꽂아놓으려 할 때였다.

“어명이다. 어명! 천주학쟁이는 꼼짝 말라!”

때는 1597년 1월1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내린 천주교에 대한 대박해 명령!
교토와 오사카에 물밀 듯 밀어닥친 포졸들은 성당을 습격해서, 신부를 비롯하여 회장과 그 밖에 평소 지목하고 있던 중진급 신자들을 마구 체포하였다. 그 수효는 24명. 사절로서 루손에서 온 베드로 바우티스타 신부, 마르티노 드 아기라 신부, 프란치스코 브랭코 신부 및 3 명의 수사. 이들은 스페인 사람들로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이다. 바울로 미키, 요한 소오안, 야고보 요시스미, 이 3명의 수사는 예수회 회원들로 일본 사람들이다. 나머지는 프란치스코회의 성당에 출입하고 있는 일본인 신자들로서, 그 중에는 토마스 고사키, 안토니오, 루도비코 이바라키 등 3명의 소년도 끼여 있는데 루도비코는 11세의  철모르는 어린이였다.
대체 이 사람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는 것인가? 이들이 무슨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일까? 이 세상 동쪽 끝의  조그마한 섬 속에 갇혀 있어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일본인들에게 진정한 인간의 길을 가르쳐준 것은 이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발달된 유럽 문화를  전해준 것도  이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미개한 이 나라의 도처에 병원을 세우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운것도  이 사람들 아니었는가! 이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히데요시도 이에 대해서는 적지않게 감사의 뜻을 표명한 바 있었으나 다만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다.
24명의 천주학쟁이는 교토의 거리에서 조리돌림을 당했고 이치죠 거리의 모퉁이에서 오른쪽 귀를 잘리웠다.
눈보라를 머금은 북풍이 세차게 몰아쳐, 잘리운 귀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흘러 내리면서 얼어붙었다.
1월3일, 교토를 떠나 나가사키로 호송하게 되었다. 오사카, 사카이, 니시노미야… 여기는 니시노미야의 숙소…
황혼이 희미하게 사라져가는데 홀로 앉아 있는 토마스 고사키 소년은 문득 고향인 이즈에 있는 자기 집 생각이 났다.
화로 옆에서 엄마는 동생들과 저녁밥을 먹고 있겠지. 편지를 쓰자. 어둑한 황혼 아래서 소년은 고향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어머니,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로 신부님을 비롯해서 아버지와 저는 나가사키로 끌려가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된다고 합니다.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날을 즐거움으로 삼고 여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안심하십시오. 다만 훌륭한 최후를 마칠 수 있도록 저를 위해 기도 해주시기 랍니다. 리는 한 발짝 먼저 천당에 가서 어머니가 오시는 날을 기디리고 있겠습니다. 이 세상의 즐거움이란 저녁 안개와 같이 이내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더욱더 신앙을 굳게 하시기 바랍니다. 어머니! 그리고 내가 죽은후에 두 동생을 훌륭한 신자로 키워주십시오. 그럼 천당에서 뵈옵는 날을 즐거움으로 기다리며…”

스마 ,아카시, 빙고를 지나 아키로 접어드는 길. 관광 유람의 길이라면 아름답고 즐거울 세토나이가이. 목에는 칼이 씌워지고 두 팔은 묶인 채찍질을 당하며 이끌려 가면서, 돌부리에 부딪쳐 쓰러지면 또다시 모진 매질로 “빨리 가라, 빨리 가”하고 재촉한다.
눈보라로 날을 밝히고 눈보라로 날을 보내는 강변 길, 꼬불꼬불 장장 300리, 날을 거듭하기 30일. 어떤 일이 있더라도 도중에서 쓰러져버리지는 않으리라. 모두 다함께 나가사키에서 순교의 영광을 차지하자고 다짐을 수없이 한다. 도중에서 다른 두사람이 더 들어와 일행은 26명.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순교에의 길을 걸었다.
제일 나이 많은 64세의 노인 야고보 요시스미의 어깨를 루도비코가 두드려주고 있다.
“할아버지, 괜찮으시겠어요?”
“걱정 마라. 루도비코, 너야말로 용기를 잃어선  안 된다. 어른이 한걸음에 갈 데를 너는 조그만  발로 두 걸음씩이나 걸어야 하니까.”
“뭘요. 수호천사가 내 다리를 옮겨 놔주고 있으니까 얼마든지 걸을 수 있어요. 할아버지가 지쳐 넘어지면 제가 업고 가겠어요.”
나가도 고을을 거쳐 우마가세키를 지쿠시미치의 히젠 나고야성에 도착했다. 여기에는 나가사키로부터 집행위원 대리자 데라자와 한사부로가 이들 일행을 인계하러 내려와 있었다. 데라자와는 제일 나이 어린 루도비코의 귀여운 모습을 보자, 차마 이런 어린이를 참혹하게 십자가에 매달아 죽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똑똑하게 생긴 소년을 어떻게든 살려내서, 그를 양자로 삼아 장차 신분이 높은 무사로 키워내고자 마음먹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말로 루도비코를 꾀었다. 그러나 루도비코는 꾐에 넘어가지 않았다. 마침내 데라자와는 이렇게 말했다.
“루도비코, 네 목숨은 내 손에 달려 있다. 내 말을 들으면 네 목숨을 살려준다.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 네 목숨은 없다. 정말 무서운 고통을 당하면서 죽게 된다. 알겠니?”
“나으리 , 그 친절하신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대체 나으리의 말씀이란 무엇인가요?”
“그건 말할 것도 없이 네가 믿는 천주학을 버리라는 거다.”
“그건 안 될 말씀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요… 나는 어린아이니까 잘 모릅니다만, 이 세상에서 50년동안 편히 사는 것 보다는 천당에서 영원히, 오래오래 즐겁게 사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나고야에서 가라쓰. 그리고 가레키네. 오무라 만을 배로 건너 당도한 도키쓰의 해변. 배 위에 묶여 앉은 채 차가운 밤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한밤을 지새운 다음날은 2월5일. 급기야 오늘은 그 멀고 먼 여로도 끝나고 나가시키에 이르게 된다.
입춘이 지난 하늘은 청명하게 개었고,26명의 신자들은 성령의 도우심을 기도하면서 도키쓰미치오를 지나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일행이 우라카미를 지날 때, 길가에서 “요한아!” 하고 조그마한 목소리로 소오안을 부르면서 뛰쳐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요한이 되돌아보니 거기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이쓰지마로부터 480리의 바다를 노저어, 아들을 격려하러 달려온 것이다.
“앗! 아버지, 어머니!”
“오 요한아. 오래 보지 못한 동안에 아주 훌륭해졌구나!”
“요한아, 무사히 여기까지 왔구나.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네, 어머니. 끝까지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이 베일은 엄마에게, 이 상패는 아버지에게 저의 마지막 선물로 드리겠어요.”
“기도해라. 아버지와 어머니도 함께 기도 할테니까.”
걸어가면서 주고받는 부모와 자식간의 이별의 인사… 소오안의 귀에 들여오는 부모님의 기도하는 목소리도 점점 뒤로 멀어져 갔다…
” 예수, 마리아, 요셉, 임종의 고통에서 우리를 도와주소서. 예수, 마리아, 요셉,당신들의 보호하에서 평안히 숨을 끊을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26명의 신자는 죽기전에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받고 싶다는 원의를 관리들에게 여러 번 이야기 한 결과, 간신히 우라카미의 성라자로 병원에서 고해성사만을 받으라는 허락이 내렸다. 성인 지위에까지 오르게 될 정도로 훌륭한 사람들이, 고해성사를 받지 않으면 안 될 죄를 지었을까 하고 관리들은 생각했지만, 아름다운 옥에는 티끌만한 흠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완덕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여느 사람이라면 대수롭게 생각지도 않는 조그마한 결점까지도  크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아 천주여, 나는 주님께서 그처럼  싫어하시는 죄를 지어,무한한 사랑이신 성부를 배반했음을 깊이 뉘우치나이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성혈의 공덕으로써 내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고해성사를 받고 난 지금은 이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어 더욱 밝은 마음으로 형장을 향해 최후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꾀꼴 꾀꼴꼴…꾀꼴 꾀꼴꼴.”
“아 , 꾀꼴새가 노래를 부르는구나.”
“소리가 참 예뻐요.”
“꾀꼴 꾀꼴 꾀꼴 꾀꼴꼴…”
산모퉁이를 돌아섰다.
“앗, 보입니다.”
“나가사키…”
“나가사키다. 마침내 여기까지 왔구나. 루도비코, 기운을 내자.”
“할아버지, 빨리 가세요.”
“아아, 바로 저기다.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구나.”
“저 형장은 마치 골고타와 비슷하지 않아요?”
“오, 정말. 저곳에서 예수님과 똑같이 십자가에 매달릴 수가 있다니… 참말 고마우신 은혜다…”
26명은 이제 여로의 피곤도 잊고, 찬미가를 부르면서 형장으로 빠른 발걸음을 옮겼다.
우라카미에서 나가사키로 들어가는 교외 다테야마의 산 기슭 니시사카.바다가 가까운 언덕  위에  형장이 준비되어 있었다. 십자가는 시가를 향해 한 줄로 다섯 발짝 간격으로 세워져 있었다. 26명의 신자들은 넘치는 기쁨을 얼굴에 나타내면서도 온순하고 겸손하게 하느님의 도우심을 기도하면서, 침착하게 형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쉴 생각도 하지 않고 제각기 자기 이름이 적혀 있는 십자가를 찾아 그 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오늘 바로 이 시간에, 순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안토니오, 안토니오야!”
대울타리 밖에서 안토니오의 이름을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 이름을 불리운 안토니오 소년!
“앗, 엄마!”
부르짖는 어머니, 그리고 달려가는 아들. 서로 꼭 얼싸안고 싶었으나 그들 사이를 갈라놓는 대울타리. 잠깐 동안 지나가는 이 세상의 모자의 인연. 이것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 이별이라 생각하니 그래도 어머니의 마음은, 아무리 하느님의 은혜라 할지라도 아직 피어보지 못한 꽃봉오리인 이 어린 자식을 이대로 죽게 하고 싶지 않다는 얕은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니라.
“도요토미 나으리도 너무하시지… 너 같은 어린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아니에요. 엄마. 도요토미 나으리나 관리들을 원망하지 마세요. 나에게 창을 들이대는 사람도 원망해서는 안 되요.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엄마와 아들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을 사이도 없이 달여온 관리가 “자, 십자가에 매달 시간이다.” 하고 호령호령하면서, 안토니오 소년의 조그마한 손을 움켜잡고 십자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이 쪼맨한 얼라를 이리 큰 밧줄로 잡아맬 수 있능교?”
“야, 임마, 멀 그리 꾸물거리나?”
“내사 이 일은 몬하겠다꾸마. 이 얼굴 좀 보레이. 꼭 하느님 같지 않능교! 이리 예쁜 얼라가 어이 나쁜 일 했을라고?”
“머꼬? 멀 그리 중얼거리능교? 이게 우리들의 밥줄이 아닝교?”
“이제 내사 이런 일 그만둘란다.”
“허, 이 문딩이 천주학쟁이가 됐나?”
“그래. 아직은 안 됐다만도 이제부터 될지도 모르겠다. 보레이, 이 많은 이들이 모두가 어찌 이리도 싱글벙글하며 십자가에 달리능교? 이를 보이 틀림없이 천주학은 좋은 교라…”
저녁 바람이 차가운 오후 5시. 이나리사야마에  이제 막 자취를 감추려는 저녁 해가 서쪽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바로 그때, 26개의 십자가는 거룩한 순교자들을 땅 위로부터 높이 올려 매달았다.

십자가 위에서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바울로 미키의 최후의 말.
“내가 지금 이 마당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창으로 찔려 죽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했다는 죄목 때문입니다. 이것은 실로 고마우신 하느님의 은총에 의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내가 지금 십자가에  달리면서까지도 거짓말을 한다고는 생각지 않으시겠지요. 나는 똑똑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실로 하느님의  가르침을 믿는 것 이외에 사람을 살리는 길은 없습니다.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여러분! 순진한 마음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어주십사 하는 그것입니다.”

“준비는  다 됐는가?”
“네.”
“그럼 집행하라!”
“예수, 마리아!”
“내 영혼을 주님께 맡기나이다.”
“에잇! 얏!”
“천당, 천당…”
그러자, 하늘과 땅은 일순간에 캄캄해지고 세 줄기의 커다란 불기둥이 우뚝 솟아 나왔다.
“오오, 하느님이 노하신거다.”
“하느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무서워 떨고 있는 군중. 황망히 달아나는 관리들.
“오오 정말 이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데라자와 집행 대리인을 비롯해서 일동은  그만 땅에 엎드려 죄없는 사람들을  사형에 처한 것을 후회하였다. 시체는 십자가에 매달린 채 80일 동안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랫동안 있어도 조금도 상하지 않고, 베드로 노인의 늙은 얼굴에도 루도비코의 어린 얼굴에도 청순한 미소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죽은 사람의 살을 좋아하는 새들까지도  멀리서 순교자들을 경배할뿐 이었다. 이 밖에도 병자가 나았다든가 하는 여러 가지 기적이 일어났다. 순교자의 피는 선교의 씨앗이라고… 사형 입회인을 비롯해서 회심하여 입교하는 자가 속출하게 되어, 11년후에는 나가사키에 3만명 이라는 천주교 신자가 생겨났다.
순교한 성지에는 포르투칼인의 손에 의해 중앙에 십자가가 세워졌고, 26그루의 벚꽃나무가 심겨졌다. 나가사키 항구를 찾아오는 외국 선박들은 이 항구에 들어올 때와 나갈때에 축포를 울려 경의를  표했다.
이 사실이 로마의 교황청에  전해지자 즉시 조사가 시작되었으며, 교회법에 따라 26명의 순교자는 성인품에 올려져 1862년 2월8일, 로마의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시성식이 거행되었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모여든 대주교와 주교 ,신부, 그리고 신자들은 20만에 달했다.
교황 성하께서는 조서를 내리시어,” 일본에서 순교한 베드로 바우티스타 신부 이하26명은 성인 지위에 오르니, 온 세계 만국은 매년 2월 6일을 이들의 축일로 정하여 기념하도록 하라.” 고 선언하셨다.
이리하여 전세계 교회가 일본인 성인을 존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