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어남과 첫기적

  그 옛날, 서기 480년부터 543년 사이에 있었던 일이에요. 모든 백성들이 한결같이 우러러보고 감탄한 삶을 살았던 성인 한 분이 계셨으니, 그 이름이 베네딕토 성인이었어요.
  그는 어릴 적부터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인해 일반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과 길을 걸어갔던 분이었어요. 처음에 그는 귀족 가문의 훌륭한 자제로서 가문의 명예와 함께 온갖 부귀 영화를 물려받을 수 있는 귀한 신분에 있었어요. 그렇지만 베네딕토는 자신의 고결함을 지키기 위해 일찍부터 이런 생활을 거부 했어요.
  베네딕토의 깊은 마음속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베네딕토는 이 세상이 황막한 사막과 같다고 여겼어요. 또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마치 악취가 넘치는 쓰레기더미 같은 것으로 보는 특별한 생각을 가졌던 분이에요.
  그래서 어느 날, 부유하고 사치스러운 아버지의 집과 명예와 모든 것을 버린 채 방랑의 길에 올랐어요. 당시의 풍습대로 어릴 적부터 돌봐 준 유모만 그를 따라 나섰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앙피드(수비아코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란 시골에 도착했어요. 베네딕토 성인과 그 유모는 이곳의 성 베드로 성당과 붙어 있는 작은 방에 살게 되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네딕토 성인에게 이상한 일 하나가 일어났어요. 유모가 밀을 빻기 위해 옆집에서 체를 하나 빌려 왔어요. 그런데 그만 선반 위에 올려놓았던 체가 실수로 떨어지면서 산산조각 나 버렸답니다. 돌려 줄 일에 근심에 빠진 유모는 고향에 살았을 적의 유복함을 떠 올리며 서러운 마음이 되어 울고 있었어요. 베네딕토 역시 유모를 동정하는 마음이 생겨 몹시 울적해졌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부서진 체를 모아서 하염없이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기도를 끝낸 뒤 눈을 뜬 베네딕토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어요. 자신의 손에 완전한 형태의 체가 들려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베네딕토는 기쁜 얼굴로 유모를 소리 내어 불렀어요. 유모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그녀는 동네로 뛰어 나가서 사람들을 불러모아 이 기적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소문은 날개 돋친 듯 이 마을 저 마을로 삽시간에 번져 나갔어요. 마침내 마을 사람들은 그 체를 베네딕토 성인의 높은 덕을 기리기위한 증거물로 삼아 성당 문 앞에 높이 매달아 두기로 했어요.
  그러나 베네딕토 성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얕은 칭찬을 그는 처음부터 달가워하지 않았어요. 세상의 모든 것과 등지기로 결심했던 것도 세상일이 더러운 쓰레기와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자신이 처음으로 행한 기적 앞에서 새로운 번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하느님께 진실로 기대어 올린 기도가 세상 사람들의 입에 가볍게 거론되고 칭찬을 받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그 칭찬에 만족하여 편안한 생활을 하느니, 차라리 하느님을 위해 더 고달픈 길을 찾아 떠나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 길을 가기 위해 고향도 떠나 오지 않았던가.”
  이런 진심 때문에 베네딕토 성인은 유모가 잠든 틈을 타 말없는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 아무도 없는 먼 곳을 향해 떠났어요. 그곳은 인기척이 끊긴 지 오래인 수비아코의 한적한 시골이었습니다.  

2. 굶어 죽기 전 하느님의 도움으로

  수비아코로 가는 길에 베네딕토 성인은 새로운 만남을 갖습니다 혼자 산길을 걷다가 로맹 수사라는 분을 만난 것이에요. 그들은 세상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 만났기에 서로 적잖이 놀랐어요. 베네딕토를 만나 의외로 즐거워진 로맹 수사는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가는 길’인지 물었고, 베네딕토 또한 가슴 속의 모든 뜻을 털어놓았어요. 로맹 수사는 베네딕토 성인의 진심을 충분히 이해하고, 남몰래 그를 아낌없이 돕기로 다짐했답니다.
  수비아코에 다다른 성인은 대단히 가파른 낭떠러지에 있는 동굴 속으로 몸을 숨겨 버렸어요. 그후 3년여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로맹 수사 외에는 그 누구도 모르게 홀로 이 동굴에 숨어 기도 생활만 하게 됐어요.
  식량은 로맹 수사가 수도원에서 빵을 남겨 두었다가 가파른 절벽 위 동굴 앞에까지 방울을 매단 긴 끈을 통해 베네딕토 성인에게 전달하곤 했어요.
  베네딕토 성인이 깊은 수도 생활로 하루가 다르게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서자 심술궂은 마귀의 시기가 시작되었어요. 마귀는 빵 줄에 매단 방울을 심심하면 깨 버리고 킬킬거리는 웃음소리만 메아리로 남기며 사라지곤 했어요. 로맹 수사는 마귀의 온갖 방해와 싸우며 베네딕토 성인을 도우려 안간힘을 써야 했어요. 베네딕토 성인도 육체적으로 한계에 도달하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가고 달이 바뀌면서, 하느님께서는 드디어 감동하시어 곧 이곳 수비아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한 신부님에게 직접 나타나셨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부활 축일을 앞두고 너에게 전할 말이 있어 내가 왔다.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잘 들어라. 저 수비아코의 가파른 낭떠러지에 큰 동굴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나의 사랑스러운 종이 몹시 굶주려 신음하고 있다. 그를 위해 좋은 음식을 마련하여 갖다 주어라.”
  신부님은 하느님의 나타나심에 크게 놀라 다음날, 온 산을 이리 저리 헤매면서 있는 힘을 다해 베네딕토 성인이 있는 동굴을 찾아냈어요. 이미 베네딕토 성인은 기진맥진하여 동굴 안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하느님의 말씀’이 확인돼 다시 놀란 마음을 가라앉힌 후 성인에게 깊은 절부터 했어요.
  “일어나세요. 오늘은 승리의 날이며 영광의 날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축일이오니 음식을 나눕시다-.”
  두 사람은 주님을 찬양하면서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음식을 나눴어요. 식사와 이야기를 마치 신부님은 자기 본당으로 돌아갔어요.
  같은 날 , 또 하나의 사건이 베네딕토 성인에게 이어졌어요. 산을 돌아다니던 목동들이 짐승의 가죽을 몸에 두르고 있는 성인을 짐승으로 보고, 그물을 던져 잡았어요. 그물을 풀고 보니, 오히려 하느님의 순결한 종이라는 것을 알고 기절할 듯 놀라고 말았어요. 무례한 목동들은 그 후 대단히 성실하고 신앙적인 사람들로 바뀌어 갔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뒤 베네딕토 성인의 이름은 그 근처 마을들로 더욱 널리 알려졌어요.  

3. 욕망의 마귀를 몰아내고

성스러운 생활을 시기한 마귀가 다시 베네딕토 성인에게 나타났어요. 베네딕토 성인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맹렬한 욕정의 불길이 온몸을 사정 없이 휘감기 시작한 것이에요. 한때, 성인은 얼핏 지나치던 중 한 여인을 눈여겨본 일이 있었는데, 마귀의 장난으로 성인의 눈앞에서 그 여인이 실제로 달려오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히게 되었던 것이죠. 베네딕토 성인은 온몸을 뜨겁게 하는 그 유혹을 이겨 내지 못하고, 적막하고 쓸쓸한 광야를 떠나 그 여인을 찾아보려는 마음을 먹기까지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느님의 노한 음성이 들려오는 것을 깨달았어요. 성인은 성령의 힘에 의지하여 다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마음의 눈이 다시 밝아져 제 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바로 옆에 쐐기풀과 가시 덤불이 얽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어요.
  성인은 욕정을 잊기 위해 입었던 옷을 모조리 벗어 던지고 알몸이 되어 가시밭에서 뒹굴기 시작했어요. 성인의 온몸은 찢기고 긁혀 상처가 가득했으며, 피가 줄줄 흐르게 되었어요. 이런 어려운 일을 통해 베네딕토 성인은 몸의 유혹을 오히려 몸의 고통으로 맞바꾸어 영혼을 깨끗하게 지키는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당당하고 의연하게 남에게 덕행을 가르칠 수 있는 위대한 선생님이 되어 갔던 것이죠.

4. 깨어진 살해 음모

  이즈음, 베네딕토 성인이 살고 있는 수비아코 근처의 비코바로라는 곳에 수도원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의 수도원장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어요. 수도원의 수사들은 한결같이 베네딕토 성인을 새 원장으로 모시기를 원했어요. 그러나 성인은 번번이 거절했어요. 자신의 생화과 마음의 길이 수도원 형제들의 방식과는 너무도 거리가 있다는 것이 그 거절 이유였죠. 그러나 수사들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저희들을 지도할 수 있는 분은 당신뿐’이라고 애원했어요. 마침내 성인은 그들의 간곡한 애원을 하느님의 뜻으로 보고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 했어요. 그동안 멋대로 규칙 없이 생활해 온 수사들이 너무도 엄격한 규칙을 강조하는 외고집쟁이 원장을 모시게 된 것을 후회하고 욕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들은 급기야 베네딕토 성인을 아무도 모르게 없애 버리려는 음모까지 꾸미게 됩니다. 성인이 마실 포도주 잔에다가 감쪽같이 독약을 풀어 넣었어요.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고 있던 베네딕토 성인이 포도주를 먹기 전에 십자 성호를 그었을 때, 다시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큰 돌이 유리잔을 내리치듯 포도주가 담긴 잔이 짤그랑 소리를 내며 저만큼 내동댕이쳐 박살이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또 다시 하느님의 도움이셨어요.
  수사들의 음모를 알게 된 베네딕토 성인은 몹시 슬퍼졌어요. 그러나 끝까지 인내하며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넓은 아량과 침착성으로 수사들을 향해 무거운 입을 열었어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나의 형제들의 모든 잘못을 깨끗이 씻어 주고 용서하기를 바라나이다! 그분이 용서해 주신다면 어찌 내가 용서하지 못하겠는가? 친애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미워하는가? 그러기에 일찍이 여러 차례 나의 생활과 그대들의 생활이 일치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제 그대들의 청을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음이 분명해졌다. 그대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원장님을 새로 모시는 것이 그대들과 나를 위해서,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리라.”
  그 말을 남긴 후 베네딕토 성인은 호젓한 외딴 곳으로 다시 떠나고 말았어요. 하느님과 대면하며 오직 자기 자신과 함께 사는 것을 유일한 기쁨으로 삼는 생활로 돌아간 것이죠.
  성인은 그동안 수도원 형제들의 잘못된 점을 일일이 고쳐 주고, 바른 길로 끌어 가기 위해 바빠 자기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어요.
  그 후 베네딕토 성인은 좋은 일을 더 많이 하여 덕행을 쌓아 갔고, 무수한 기적을 행동으로 보여 줌으로써 더욱더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수도원 열두 개를 직접 자신이 만들고, 각 수도원에는 열두 명의 수사들이 한 분의 원장을 모시고 지도를 받아 살도록 했어요.  

5. 바위에서 솟은 샘  

  베네딕토 성인이 세운 수도원은 여러 개 있었으나, 그 가운데서 세 개는 대단히 높은 산꼭대기에 있었어요. 세상과 멀리 떨어지고 너무도 조용해 수도하기에는 참 좋은 곳이었지만, 하나의 큰 불편함이 있었어요. 물이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수사들은 매일매일 현기증이 날 정도로 고생스럽게 물을 길어 올려야 했어요. 저 아래의 호수로부터 가파른 낭떠러지 위로 물을 길어 올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많은 기적 같은 일을 행하신 베네딕토 성인에게 그 해결을 부탁 드려 보기로 했습니다. 세 수도원의 수사들이 의견을 모아 수도원을 다른 곳으로 옮겨 줄 것을 베네딕토 성인에게 말씀 드렸어요.
  성인은 일단 그들을 부드러운 말로 위로하여 돌려보냈어요.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수도원이 있는 산꼭대기의 바위 위로 올라갔어요.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였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그곳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간절한 기도를 올렸어요. 그리고 다음날, 수사들을 불러 말했어요.
  “저 산꼭대기의 바위틈 사이에 작은 돌멩이가 세 개 있을 것이다. 그곳을 파면 물이 나올 테니, 앞으로는 그 물을 사용하도록 하여라.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리라. 산꼭대기의 바윗덩어리에서도 옥같이 맑은 물이 흘러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시리라.”
  수사들은 믿기지 않았지만, 그곳으로 올라가 바위를 파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게 원일입니까. 구덩이를 조금 파자 맑은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은 그칠 줄 모른 채 솟아나서 마냥 흘러서 넘치고 또 넘쳤어요. 결국 그 물길은 도랑을 만들고, 점점 시냇물이 되어 각 수도원에 이르는 계곡을 따라 끊임없이 흘러가게 되었답니다.  

6. 물 속에 빠뜨린 포샤  

  별다른 재주도 없고, 마음도 약한 고오트 족 한사람이 수사가 되고 싶어 베네딕토 성인을 찾아왔어요. 성인은 그의 뜻을 존중하여, 너그럽게 그를 받아들였어요.
  하루는 그가 호숫가의 주변에 정원을 만들어서 뭔가 자신의 힘으로 수도원을 위해 일을 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싶었어요. 그 작업의 시작으로 호숫가의 무성한 가시덤불을 포샤(13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많이 사용된 낫의 일종)로 베어 내기 시작했어요. 작업 중에 그의 눈앞에 굵은 가지 하나가 나타났어요. 그것을 베기 위해 포샤를 크게 휘두르는 순간, 그만 포샤의 쇠붙이가 자루를 빠져나가 호수에 ‘첨벙’ 빠지고 말았어요. 포샤는 당시 수도원에서 소중한 농기구였어요. 수사는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잔뜩 겁을 집어먹게 되었어요. 궁리 끝에 걱정스러운 얼굴로 같은 수도원에 있는 마오로 수사를 찾아가 사실대로 말했어요. 마오로 수사는 그를 달랜 후 즉시 베네딕토 성인에게 이 일을 알려 드렸어요.
  성인은 호숫가로 나와 벌벌 떨고 있는 수사를 위로한 뒤 포샤 자루를 물 속에 담궜어요. 그런데 이게 또 웬일입니까. 물살이 쏴아 움직이더니 포샤의 쇠붙이가 물위로 떠올라 베네딕토 성인이 쥐고 있는 본래의 자루 속으로 ‘척’ 들어박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를 지켜본 마오로 수사와 그 수사는 눈앞에서 벌어진 이 희한한 일에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베네딕토 성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포샤를 다시 수사에게 내밀었어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어요.
  “처음에 마음 먹은 대로 정원을 만들도록 해라. 무엇보다 하느님을 마음으로부터 잃지 않도록 항상 힘쓰라.”

7. 물위를 달린 마오로

  베네딕토 성인이 묵상 중에 있던 어느 한가한 날 오후였어요. 블라시도 수사가 호수로 물을 길으러 갔어요. 빈 물통을 호수에 휙 던졌습니다. 호수의 물결에 물통이 밀려오면 그것을 건져서 물을 길으러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물통을 손에서 놓는 순간을 놓쳐 버려 그 자신이 물통과 함께 호수 속으로 ‘텀벙’ 빠져 버린 것이에요.
  물결이 거센 쪽으로 밀려가면서 블라시도는 대단히 위험한 여울목으로 떠내려가 버렸어요. 수도원 안에서 묵상 중이던 베네딕토 성인은 이 시고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어요. 성인은 멀리서도 이 사실을 알았던 것이에요. 마오로 수사를 급히 불렀어요.
  “블라시도가 지금 호수에 빠져 떠내려가고 있으니, 빨리 쫓아가서 구해 주어라.”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성인으로부터 강복을 받은 마오로 수사는 성인의 명령대로 부리나케 뛰었어요. 오직 블라시도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만 한 채 박차고 달리는 마오로 수사는 자신이 땅이 아닌 호수 위를 뛰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거예요. 수사의 발길이 닿을 때마다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어 올라 보석처럼 반짝거렸어요. 그리고 마침내 블라시도 수사의 머리카락을 재빨리 움켜쥐고서 호숫가까지 끌고 나오는 데 성공했답니다. 한숨을 돌린 마오로 수사는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방금 자기가 블라시도를 구해 낸 곳에는 땅이 없었던 것이에요. 온통 넓은 호수의 가득한 물뿐! 마오로 수사는 기쁨과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에 존경과 감사의 눈물을 흘렸어요.
  그러나 그는 이 일이 자신의 하느님에 대한 순종 때문에 일어난 일로 자랑스런 마음을 갖지 않으려 했어요. 오직 베네딕토 성인의 명령에 의해 일어난 기적 현상으로 생각하고 그 영광을 베네딕토 성인에게 돌리려 애를 썼어요. 이 아름다운 겸손의 미덕을 지켜보던 블라시도 수사가 심판관처럼 말했어요.
  “나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내가 끌려나올 때 나의 머리 위로 베네딕토 원장님의 망토 자락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나와 보니 마오로 수사가 아니었겠어요?”  

8. 까마귀의 심부름

   베네딕토 성인의 높은 덕은 갈수록 널리 널리 퍼져 나가고 있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성인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어요. 성인을 만난 사람들 중에 종교가 다른 사람들까지 종교를 바꾸어 주님이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하려는 일도 많이 일어났어요. 한마디로 베네딕토 성인은 모든 이들의 가슴에 빛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에요.
  그런데 오히려 반대로 성인을 견딜 수 없어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것도 성직자였습니다. 바로 이웃 마을 본당 신부인 플로렌시우스였어요. 그는 성인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 신부의 마음에는 사악한 마귀가 도사리고 있어 베네딕토 성인을 시기하고, 밤낮으로 성인을 해칠 궁리만 하고 있었던 것이죠.
  신부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베네딕토 성인이 일반인들의 엄청난 존경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어요. 성인의 마땅하고 완전하며 성스러운 생활, 그것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싫었던 것이죠. 그는 그런 생활 방식이 신부의 안락한 삶을 위협하는존재로 여겼던 것이에요.
  마침내 그는 성인을 죽이면 자신의 마음이 홀가분해질 것이라는 나쁜 마음을 품게 되었답니다. 베네딕토 성인의 존재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는 독이든 빵을 구워 성인에게 갖다 주기로 했어요. 노릇하게 잘 구워진 빵 안에는 치명적인 독이 감춰져 있었고, 빵은 더욱 정성스럽게 포장되었어요. 신부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귀한 선물처럼 속여서 성인에게 전달했어요. 성인은 신부의 사랑에 감사하며 기꺼이 신부가 구운 빵을 받았어요. 신부는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베네딕토 성인이 숨졌다는 소식이 날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나 마을에서는 어떠한 사건도 벌어지지 않은 듯 고요하기만 했어요. 왜일까요. 베네딕토 성인이 가진 작은 습관 중에 미처 신부가 알지 못한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식사 때만 되면 성인에게는 야생 까마귀 한 마리가 언제나 곁으로 날아와 성인이 던져 주는 빵 부스러기나 먹을 것 등을 받아 입에 물고 가곤 했던 것이에요. 까마귀는 이날도 날아왔어요.
  그런데 성인은 묵상 기도 중에 이미 신부가 선물로 보낸 빵 속에 독이 들어 있다는 영감을 받았어요. 성인은 처음엔 주저하다가 마침 날아온 까마귀에게 빵을 몽땅 던져 주며 명령했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빵을 물어다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도록 먼 곳에 갖다 버리고 오너라!”
  까마귀는 한 입에 덥석 빵을 물더니 어딘가로 멀리 날아가 버렸어요. 세 시간이 지나서야 빵을 아주 멀리 갖다 버린 까마귀가 다시 먹이를 받기 위해 지친 날개를 퍼덕이며 돌아왔어요. 베네딕토 성인은 신부가 자기에게 품고 있는 증오가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어 깊은 슬픔과 큰 고통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성인을 죽이는 데 실패한 플로랜시우스 신부는 더 마음이 나빠졌어요. 이번에는 성인의 제자들이라도 망쳐 놓아 성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가능하면 그 제자들의 영혼을 모조리 암흑 속에서 죽어 가게 만들고 싶어 이를 악물었어요. 궁리 끝에 신부는 성인이 살고 있는 수도원의 정원 안에 아주 젊고 매력 있는 예쁜 일곱 명을 골라 들여보내기로 했어요. 수도원으로 들어선 처녀들은 온갖 몸짓으로 성인의 제자들을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찍이 정욕의 욕망이 얼마나 끈질긴지 겪었던 베네딕토 성인은 제자들의 영혼이 무너질 일을 생각하니 참을 수 엇이 괴롭고 슬펐어요. 성인은 제자들을 너무도 염려한 나머지 결국 신부의 눈앞에서 자신이 사라지기로 작정했어요. 성인은 자기가 지은 모든 성당과 수도원을 정리했습니다. 각 책임자들에게 자기의 권리를 넘겨 주며 더욱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당부한후 몇몇 수사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떠나기로 했어요.
  하느님은 이를 모조리 헤아리고 계셨어요. 플로렌시우스 신부는 성인이 멀리 떠나게 되자 승리감에 어쩔 줄을 몰라 했어요. 난간의 벽에 기대어 성인이 떠나는 모습을 감상하며 혼자 음흉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 순간, 신부가 몸을 기대고 섰던 건물의 벽이 와그르르 무너지며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신부의 몸을 덮쳤어요. 플로렌시우스 신부는 외마디 비명도 질러 보지 못한 채 무너진 건물 더미에 짓눌려 참혹하게 죽고 말았어요. 성인의 제자 마오로 수사는 이 사실을 아직 마을 동구 밖도 벗어나지 못한 베네딕토 성인에게 알리기 위해 뛰었어요. 그리고 소리 쳤어요.
  “원장님 돌아오세요! 기쁜 일이 생겼어요. 원장님을 증오하던 신부님이 갑작스럽게 죽고야 말았습니다. 이제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오로의 고함 소리를 듣고 성인은 다시 탄식했어요.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듯한 제자의 목소리에 성인의 깊은 영혼은 오히려 배신감마저 느꼈던 것이죠. 성인은 아무 말 없이 기뻐 날뛰는 마오로 수사에게 어렵고도 무거운 마음의 반성을 하도록 해 단단히 그 대가를 치르도록 했답니다. 그리고 성인은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겨 갔어요. 성인은 대단히 높은 산 중턱에 있는 몬테 카시노란 마을로 가 새롭게 자리를 잡았답니다  

9. 환상 속에 치솟는 불길  

  어느 날, 베네딕토 성인의 수도원에 어떤 지점을 깊게 파야만 하는 일이 생겼어요. 파내려가다 보니 수사들은 청동으로 만든 우상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어요. 우상 조각을 아무렇게나 내던지는 순간, 갑자기 큰 불길이 부엌에서 솟구쳤습니다. 불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번졌어요. 마침내 온 수도원이 넘실대는 불꽃 속에 완전히 파묻혀 깡그리 타 버릴 것만 같았어요. 수사들은 황급히 샘물을 길어 퍼붓는 한편 큰소리를 질러 불이 난 것을 알렸어요. 무엇보다도 베네딕토 성인을 불길에서 구해야 하고, 혹시 기도하거나 묵상 중에 있는 수사들을 대피시켜야 했기 때문이에요. 이 소리에 베네딕토 성인은 즉시 밖으로 뛰쳐나왔어요.
  그러나 성인이 밖에 나와 보니 그것은 진짜 불길이 아니었어요. 또 한번 마귀의 장난이었어요. 수사들은 아직도 눈앞의 불길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설쳐 대고 있기만 했어요. 성인이 제자들을 곁으로 불렀어요. 그리고 성호를 그으라고 말씀했어요. 성인의 명령에 따라 미친 듯이 일렁이는 불길 앞에서 수사들은 정신을 가다듬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어요. 그때야 비로소 그들의 눈에는 진짜 수도원의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났습니다. 부엌뿐 아니라 온 건물이 아주 말짱했던 것이죠. 마귀가 모든 사람들의 눈을 가려 그 능력을 드러낸 거짓 불꽃 장난이었던 것이에요.  

10. 부상 당한 수사의 치유

  며칠 후 담이 너무 얕은 것을 보고 담장을 좀더 높이기 위해 수사들이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였어요. 자기 방에서 홀로 기도 중인 베네딕토 성인에게 또 마귀가 나타났습니다. 일을 하고 있는 수사들을 골려 줄 것이라고 했어요. 성인은 재빨리 사람을 보내 수사들에게 일러두었어요.
  “형제들이여, 저 심술궂은 마귀가 곧 올 것이니, 정신을 바짝 차리도록 하고, 특히 몸조심들을 하도록 하라.”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애써 쌓고 있던 담이 그만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면서 로마 십대장의 아들인 젊은 수사가 큰 부상을 입고 말았어요. 뼈가 으스러질 정도의 심한 부상이었어요. 성인은 부상을 입은 수사를 자기에게 데려오도록 명령했습니다. 다른 수사들은 그를 이불로 잘 감싸서 조심스럽게 운반했어요.
  베네딕토 성인은 항상 자신이 기도할 때 사용하는 방안의 돗자리 위에 환자를 눕혀 놓도록 한 후, 수사들은 모두 방에서 나가도록 했어요. 방문을 걸어 잠근 성인은 보통 때보다 훨씬 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성인이 기도에 빠져 있는 동안 거의 실신해 있던 수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더니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 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깊은 상처를 입은 몸은 긁힌 흔적 하나 없이 말끔해져 있는 것이었어요. 제아무리 젊은 수사라도 이제는 죽고 말리라는 마귀의 코가 납작해졌습니다. 오직 하느님께 의지하고 그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하느님께 맡겨 드린 성인의 위해한 기도가 직접 마귀를 물리친 힘이 되었던 것이죠.

11. 토틸라 왕의 교활함

  베네딕토 성인이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가졌을 뿐 아니라 과거의 숨은 사실도 알아낸다는 소문은 멀리 퍼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고오트 족의 왕 하나가 이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성인을 찾아 떠났어요. 수도원 근처에 이르렀을 때 왕은 걸음을 멈추고 신하 한 사람을 성인에게 보내 자기들 일행의 도착 사실을 알렸어요.
  수도원은 고오트 족 왕을 평소 좋지 않게 생각했지만, 방문을 쾌히 허락하고 영접을 준비 했어요. 그런데 왕은 이때 베네딕토 성인을 시험하고픈 꾀가 생겼어요. 왕은 자기의 기사 릿고에게 왕의 복장과 신발과 왕관을 사용하여, 그에게 가짜 왕의 행세를 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불테릭과 루데릭과 블랭뎅이라는 세 신하에게 그를 보좌하도록 하여 베네딕토 성인을 감쪽같이 속아 넘기도록 작정했어요.
  가짜 왕 곁에는 충성과 존경을 다하는 듯 신하와 기사들이 그를 빙 둘러싸서 장엄한 행렬 속에 성인의 수도원으로 향하도록 만들었어요. 그 대신 진짜 왕 자신은 몇몇 신하만 거느린 채 중요하지 않은 인물처럼 꾸미고는 수도원으로 들어갔어요.
  성인은 멀리서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며 먼저 입을 떼었어요.
  “아들아, 네 몸에 맞지 않는 왕관과 의복을 빨리 벗도록 하라. 네 것을 걸치지 않고 남의 것을 탐내다가는 큰 봉변을 당할 터이니, 그 왕관과 옷들을 빨리 벗어 네 뒤를 따르는 주인에게 돌려 주어라.”
  성인의 말을 듣고 가장 놀란 것은 가짜 왕 행세를 하며 들어서던 기사 릿고였어요. 릿고는 성인을 두려워한 나머지 땅에 엎드려 고개를 들지 못했어요. 진짜 왕인 줄 알고 따르던 시종들도 일제히 영문도 모르 채 성인의 발 아래 엎드렸어요. 그때, 몇몇 신하는 달려가 진짜 왕에게 베네딕토 성인이 순식간에 가짜 왕을 알아냈다는 사실을 상세히 보고했어요. 진짜 왕도 기가 질려, 먼 발치에서 성인을 향해 넙죽 땅에 엎드려 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토틸라 왕 앞으로 다가와 엄하게 말했어요.
  “과거에 너무 많은 나쁜 짓을 하였으니, 이제부터라도 죄악에서 손을 떼야 합니다. 이 이상 나쁜 짓을 하면 하느님께서 노하실 것입니다. 앞으로 왕께서는 로마로 돌아가시게 될 것이며, 그 후에는 또 바다를 건너가 9년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10년째 되는 해에 이 세상과 이별하게 될 것입니다.”
  왕은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었어요. 이때부터 왕은 잔인하고도 포악했던 짓을 후회하고 한결 성격이 부드러워졌어요. 얼마 후 토틸라 왕은 로마로 가서 한동안 있다가 시칠리아 섬에서 약 9년 동안을 다스리고, 10년째 되던 해에 성인의 예언대로 이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어요.  

12. 몰래 감춘 작은 술병

  엑스힐라투스라고 하는 사람이 베네딕토 성인에게 선물을 드리기 위해 주인의 명령을 받고 심부름을 왔어요. 그는 주인이 건네준 나무로 만든 작은 술병 두 개를 가지고 오는 도중에 하나가 탐이 나서 아무도 모르게 슬쩍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멀리 숨겨 놓았어요.
  “아들아, 네가 감춰 둔 술병을 마시기 전에 먼저 조심스럽게 기울여 보아라. 그러면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엑스힐라투스는 너무 놀란 나머지 황급하게 그곳을 빠져 나왔어요. 베네딕토 성인의 말을 떠올리며 과연 병 안에 술 아닌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인의 말씀이 진실이 아닌지 한 번 시험해 보기 위해 작은 병을 꺼내어 조심스럽게 살그머니 기울여 보았어요. 술 향기가 진동했어요.
  그랬더니 별안간에 큰 독사 한 마리가 툭 튀어나오더니 대가리를 곤두세우고 쏜살같이 자기한테로 달려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이고,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
  그는 완전히 혼비백산하여, 쏜살같이 줄행랑을 치는 수밖에 없었어요. 어디까지 도망을 쳤는지도 모를 만큼 멀리 달아난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려서 뒤를 돌아다보니 독사는 사라져 더 이상 자기를 쫓아오지 않았어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넋이 빠진 채 베네딕토 성인을 생각했어요. 성인을 속이려고 한 자신의 겁 없음에 기가 찰 지경이었죠. 그나마 독사에게 목숨을 빼앗기지않은 것은 ‘술병을 조심스럽게 기울여 보라’하던 성인의 말씀 때문이었음을 알고, 더 없이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 후 엑스힐라투스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다시는 이런 나쁜 짓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답니다.  

13. 교만함에 대하여

  베네딕토 성인의 수도원에는 유명한 변호사인 아버지의 곁을 떠나 수사가 되기 위해 수련을 받는 청년이 한 명 있었어요. 성인은 평소 그를 기특하게 생각했습니다. 세상에서의 편안한 생활을 버리고 수도원에 들어왔을 뿐 아니라 그 변호사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기도 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는 자신의 신분을 생각해서인지 다른 수사들보다 더욱 겸손하며 성인이 시키는 대로 아무 불평 없이 열심히 일을 했어요. 어느 날 밤, 그는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성인의 식탁을 비추고 서 있었어요. 그런데 문득 교만한 생각이 머리에 떠올라 점점 커지기 시작했어요.
  “흥, 내가 램프를 켜 들고 서 있어야만 하다니, 그리고 내가 서 있는 동안에 유유히 식사를 하는 저 초라한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또 그를 위해 봉사하는 나는 뭐란 말인가? 주제넘게도 음식도 잘도 삼키는구나! 정말 아니꼽기 짝이 없군…”
  수사가 이런 생각에 빠져 들고 있는 순간, 베네딕토 성인이 지르는 고함 소리가 들려 왔어요.
  “형제여, 그대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심장 위에 빨리 십자 성호를 그어라. 주저치 말고 성호를 빨리 그어라!”
  수사에게서 램프를 뺏은 성인은 다시 수사를 향해 입을 열었어요.
  “조용히 앉아서 반성하도록 하라. 남을 위하여 자신을 바치고 볼품 없는 일을 하는 것이 수사로서 그렇게 아니꼽고 부끄러운 일이란 말인가?”
  다른 수사들이 성인의 때아닌 고함 소리에 놀랐어요. 궁금하여 꾸중을 들은 그 수사에게 그 이유를 캐물었어요. 수사는 자신이 한때나마 교만한 생각에 빠졌던 일과 베네딕토 성인이 화를 내신 일을 자세하게 고백했어용. 가장 은밀한 생각 속에서 하는 말까지도 이렇듯 성인의 고막을 울리니 다른 수사들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때부터 모든 수사들은 베네딕토 성인에게만은 어떤 것도 숨길 수 없음을 알고, 더욱더 베네딕토 성인을 한마음으로 존경하고, 열심히 수도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14. ‘미래를 아는 눈’에 의한 설계도

  어느 날 오후, 열렬한 신자 한 사람이 테라신(몬테카시노에서 약 50Km쯤 떨어진 곳으로 지중해 쪽에 위치하고 있음) 마을 근처에 있는 자기 땅을 베네딕토 성인에게 바치겠다고 했어요. 그는 이 땅에 수도원을 지어 주기를 희망하면서 그 일을 하기 위해 수사들을 여러 명 보내 달라고 간청해 왔어요.
  성인께서는 그 뜻을 받아들여, 자기 바로 밑에서 일해 온 수사들을 책임자로 정하고, 파견하기 전에 당부의 말씀을 하셨어요.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도착하는 즉시 일에 착수하지 말고 나의 지시를 기다려라. 며칠 지나서 어느 날에 내가 직접 그곳에 가서 성당을 지을 지점과 또 식당과 응접실, 기타 필요한 부속 건물들을 지응 지점을 지적할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여라.”
  수사들은 목적지에 도착하여 성인의 지시대로 일에는 손대지 않고, 성인이 직접 오실 날을 기다렸습니다. 성인이 오시기로 약속한 날 밤, 성인이 수사들의 꿈에 나타났어요.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들은 간밤에 꾸었던 꿈에 대해 서로 얘기들을 나눴어요. 그러나 의견이 모아지지 않아, 그냥 꿈으로만 생각하기로 하고, 다시 성인이 직접 오시기만을 기다리기로 했어요. 그러나 성인은 약속한 날이 훨씬 지나도 도무지 나타나질 않았답니다. 그래서 수사들은 다시 성인께로 돌아오고 말았어요.
  “원장님께서는 분명히 저희들에게 직접 가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지시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성인이 대답하시기를,
  “형제들이여, 어찌하여 그와 같이 말하는가? 내가 약속한 시간에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인가?”
  수사들이 다시 입을 모아 말했어요.
  “언제 원장님께서 오셨다는 말씀입니까? 저희가 눈이 빠지게 원장님을 기다렸는데, 아무도 원장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자 성인이 다시 입을 열었어요.
  “내가 두 형제에게 나타나 어느 곳에 무엇을 지어야 한다고 똑똑히 지시하였으니, 즉시 돌아가서 꿈에 들은 그대로 빈틈없이 일을 진행시키도록 하라.”
  성인의 말씀을 듣고 감탄한 수사들은 모두 모여 그날 밤 꿈을 다시 되짚어 보게 되었고, 아주 세밀하고도 구석구석까지 철저하게 지적하여 완전한 설계도가 이뤄지도록 이미 수사들의 꿈에서 전부 지시했음을 알게 되었어요. 수사들은 새삼 감탄하며 다시 일터로 돌아와 수도원을 훌륭하게 건설할 수 있었답니다.  

15. 두 수녀의 구원예물

  베네딕토 성인이 살고 있는 수도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훌륭한 가문의 태생인 두수녀가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두수녀는 자신들의 가문이 훌륭하다는 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겸손과 순명과 청빈을 지켜야하는 수도 생활에서도 그들은 자기들의 가문을 자랑하고, 하찮은 신분의 사람들을 멸시하곤 했어요. 뿐만 아니라, 그 수녀들은 기분에 따라 속되고 천한 말을 마구 뇌까리곤 했어요. 수녀들이 살고 있는 이 집에는 허드렛일도 하고 심부름도 하는 사환이 하나 있었는데, 신앙이 깊어 모든 일을 정성으로 하는데도 이 수녀들로부터 멸시하고 천박한 말을 듣기 일쑤였어요.
  하루는 참다 못한 사환이 베네딕토 성인을 찾아가 지금까지 겪었던 온갖 굴욕과 비참함을 낱낱이 알려 드리게 되었답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그 사환에게 수녀들에게 전할 말을 일어서 돌려보냈습니다.
  “자매들의 나쁜 말투를 하루 속히 고치십시오. 만일 나의 권고를 무시하고 고치지 않는 다면, 내가 자매들에게 배령 성체(영성체를 받아 모심)의 금지령을 내릴 것이오.”
  성인께서 시간의 여유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녀들은 성인의 말에는 아랑곳없이 여전히 그 입에 나쁜 말씨만 골라 담았습니다. 오히려 사환이 성인에게 고자질한 것으로 판단하고 더욱 사환을 학대했어요.
  이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수녀는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되었어요. 성당에서 수녀들의 장례 미사를 장엄하게 드리던 날, 전례에 따라 한 부제가 일어나서 큰 목소리로 외쳤어요.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 성체를 모시지 못할 불경스러운 죄를 지은 이가 있다면 곧 이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하라!”
  이때 마침 돌아가신 수녀들의 유모가 관습에 따라 죽은 수녀들의 영혼을 위해 예물을 바치러 제대 앞으로 나아갔어요. 수녀들의 잠들어 있는 관을 들여다보며 마지막 애도를 표하려던 유모는 그만 기절 초풍하고 말았어요. 화환으로 치장된 관 속에 누워 있던 수녀들의 시체가 벌떡 일어나더니 어슬렁어슬렁 걸어서 성당 문 밖으로 나가 버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광경을 지켜본 신자들과 성당에 모여 있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넋이 나갈 정도로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눈앞에서 유유히 걸어나가는 두 수녀가 유령인지, 혹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모든 사람의 눈이 착란을 일으켜 똑같이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가늠 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미사는 계속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자들은 모두 속으로는 아찔해 하면서도 조용히 미사에 참례했어요.
  그런데 그런 일은 그날뿐이 아니었어요. 수녀들의 시신이 안치된 그 성당에서 미사를 올릴 때마다 수녀들은 무덤에서 떨쳐 나와 성당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영성체가 다 끝난 뒤에야 다시 돌아와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거듭되었어요.
  “별 희한한 일도 세상에 다 있구나. 왜 부제님이 영성체 때 죄지은 영혼은 나가라는 말만 떨어지면, 죽은 시신들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성당 밖으로 나간단 말인가?”
  죽은 수녀의 유모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어요. 그러다가 문득 그 언젠가 수녀들이 살아 있을 때 베네딕토 성인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어렴풋이 기억하게 되었어요.
  “그 상스러운 말씨를 고치지 않는다면 기절 벌(영성체를 받아 모시지 못함)에 처하겠소!”
  이 말을 다시 마음속으로 되풀이하면서 유모는 즉시 베네딕토 성인에게로 달려갔어요. 성인은 그 이야기를 들은 후,
  “이 예물을 하느님께 바치십시오. 그러면 저 수녀들은 더 이상 기절 벌을 받지 않게 될 것이오.”
  하면서 죽은 수녀들을 위해 손수 예물을 챙겨서 유모에게 주었어요.
  유모가 성인한테서 받은 예물을 하느님께 바친 날, 미사 중에 여전히 전과 마찬가지로 ‘영성체를 모실 수 없는 사람은 곧 나가라’고 큰소리로 외쳤어요. 또 죽은 수녀들이 뚜벅뚜벅 걸어 나갈까봐 모두들 숨죽이고 있었어요. 그러나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수녀들이 무덤에서 일어나던 일을 다시 볼 수 없었어요.
  그 사건이 있은 후에 모든 사람들은 베네딕토 성인의 기도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어요. 성인 때문에 기절 벌을 받아 교회 밖으로 버림 당해야 했던 두 수녀가 다시 베네딕토 성인의 노려과 희생의 예물 덕택으로 그리스도의 품안으로 돌아오게 된 신비한 사실을 가슴에 새기며 새삼 성인의 위대함을 깨닫게 된 것이죠.  

16. 하늘로 가는 베네딕토 성인의 길

  베네딕토 성인은 지상 생활을 끝마치시던 바로 그 해, 자기 곁의 사랑스러운 제자들과 또 먼 곳에 떨어져 살고 있는 제자들을 모두 불러 모았어요.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이 언제 죽을 것이며, 또한 자기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증거로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분명히 미리 말해 두었어요. 이 모든 것은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고, 비밀로 간직하도록 일러두었어요.
  성인이 미리 지목한 날, 즉 이 세상을 떠나기로 한 날이 엿새가 남았을 때, 그분은 자기 무덤의 문을 열어 두게 하였어요. 그리고 그날부터 성인의 몸은 급격하게 쇠약해져 갔어요.
  마침내 6일째 되는 날, 성인은 미사를 올리고 성혈을 모시며 이 세상과 하직하는 마지막 전례에 있는 힘과 정성을 다해 영성체를 끝마치셨어요. 그리고는 탈진 상태에 빠져 수사들의 팔에 기댄 채 몸을 가누시고 양팔을 하늘 높이 들어 기도하면서 마지막 숨을 거두셨어요.
  이때 성인을 가까이서 모시던 수사들 중의 한 사람은 베네딕토 성인과 함께 있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먼 곳에 떨어져 있었는데 둘 다 똑같은 성인의 영혼 길을 보았어요. 그들이 본 것은 아른거리며 시선이 닿는 곳의 끝까지 드리워진 큰길이었어요. 그 길에는 무수한 촛불들이 일렬로 휘황하게 빛나고 있었으며, 동쪽으로 곧게 난 그 길은 베네딕토 성인의 방을 거쳐 하늘에 잇닿아 있는 황홀한 길이었어요.
  이 길 위에 찬란한 하늘의 빛으로 둘러싸인 한 깨끗한 사람이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우아하고 매혹적인 것이었는지, 존경하는 마음이 스스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왔어요. 그런데 그분이 이들 수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어.
  “저 길이 누구를 위한 길인지 아는가?”
  고 물었어요, 수사들은 전혀 모르겠다고 하였더니, 그분께서는 다시
  “저 길은 하느님께서 지극히 아끼시는 베네딕토가 천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고 하였어요.
  멀리 떨어져 있던 수사들은 이 말을 듣고 베네딕토 성인이 미리 예견하신 징후가 나타났으니, 성인이 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을 즉시 알게 되었어요. 이 증언들은 성인의 임종을 곁에서 지켜 본 수사들의 증언으로도 확인된 것이었어요. 사람들은 베네딕토 성인의 시신을 이방인의 신 아폴론을 위하여 건설되었던 제단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성스럽게 세워 올린 성 요한 성당에 안치했어요. -끝-

마치면서 : 성서공부를 하면서 가장 먼저 나의 눈과 귀를 열어주신 성인 베네딕토! 십자가와 성호의 신비를 다시한번 일깨워 주시분~이기에 꼬옥~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모든 성인을 다 알수는 없겠지만, 베네딕토 성인만은 세세히 알리고 싶은 마음! ^^;;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 전달되었으면 좋겠네요. (김 스테파노 형님 쓰심 ^^)

본 글은 가톨릭 출판사에서 출판된 성인 베네딕토를 옮겼슴을 알려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