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를 낳고 몸이 좋지 않아 둘째 아이를 낳기 전까지 자연유산으로 인해 여러 명의 태아를 잃었다. 하혈을 하고, 계류유산이라 하여 뱃속에서 이미 아기는 죽어 있었다.
남편은 “애 낳으려다 우리 각시 죽이겠다.”며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고 만류했지만 외아들인 남편을 위해, 또 내 아들도 외아들을 만들고 싶지 않아 더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째 아들 임신 기간에도 기침, 감기 등으로 아기 낳기 전 3개월 동안 거의 눕지도 못할 정도였다. 자연유산으로 죄스러워 예수님을 바라 볼 순 없었지만 이 죄인을 위해 십자가상에서 고통 받고 계시는 예수님을 묵상할 수 있었다. 용서를 청하면서 어렵게 둘째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임신 중에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해서 그런지 큰아들 베드로는 세살이 되었을 무렵 백일기침으로 새파랗게 죽어가 이 병원 저 병원을 쫓아 다녔다. 둘째 바오로는 소화기능이 좋지 않아 자주 토하며 유아기를 보냈다. 믿음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 보다는 오로지 내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고 아이가 아프다는 핑계로 레지오에 빠지기도 했다.

잦은 유산과 빈혈로 약을 많이 먹고 있는 중에 셋째 아기를 임신하게 되었다. 우리 부부에게는 큰 걱정이었다. 약을 먹고 있는 중이라 정상적인 아기를 낳을 수 있을지, 남편과 걱정하면서 기도할 뿐이었다.
성당에서는 낙태는 살인죄라 하여 금하고, 낙태된 태아들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는 시기였다. 그때 기도 중에 하느님께서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너는 너의 잘못으로 태아가 여러 명 낙태되었으니 보속으로 이 아이를 잘 길러 나에게 바쳐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우리 부부는 모든 걱정을 하느님께 맡기고 아기를 낳기로 결정했다. ‘하느님께서 나의 죄를 씻어 주시려고 기회를 주시는 거다. 당신께서 쓰시려면 이 아이를 건강하게 지켜 주시겠지.’하며 마음을 굳히고 나니 가슴이 벅차고, 나를 이토록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가 저절로 나왔다.
그때부터 아이를 위해 매일미사, 기도, 희생, 봉사를 봉헌하며 태교를 시작했는데 성서읽기, 성가를 들으며 아이와 대화를 했다. “그래, 아가, 엄마가 죄가 많아 하느님께서 엄마의 죄를 씻어 주시려고 널 보내셨단다. 그러니 엄마와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야 한다.”
미사 때 영성체 하러 제대 앞으로 나갈 때마다 “예수님, 우리 아기도 예수님 가까이 왔습니다. 축복해 주세요.” 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렸다. 임신 중에도 조심스럽게 성가대, 레지오, 구역장, 제대청소 봉사를 했다. 임신 7개월 정도 되던 어느 날, 무언가 느낌이 이상한 증세를 보여 병원에 가니 전치태반이라는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태아가 태반을 깔고 앉아 있어서 태아가 조금만 더 자라면 하혈을 심하게 해 태아와 산모가 모두 위험하다면서 입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아들을 가진 나는 입원할 여건도 되지 않아 집에서 조심하겠다고 다짐하고 돌아왔다.

그때부터 남편과 아이들이 나를 도와주었고 나는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안에서만 생활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친정어머니께서 병환으로 돌아가셨고, 그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남편 회사에 큰 어려움까지 겹쳤다.
그때 “무서워 떨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느님 야훼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여호1,9)는 하느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으며 우리 아기는 하느님께서 잘 보살펴 주시겠지 하는 믿음이 생겼다.
산달이 가까이 되어 진찰실에 가면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기의 머리가 크고 무거운데도 전치태반에 이상이 없는 것은 기적이라고 하셨고, “기적이다 못해 아주머니는 참 복인이십니다.”라고 하셨다.
아기가 더 크기 전에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셨지만 날짜를 채울 때까지 기다려 보자고 우겨대며 기다렸다. 예정일 가까이 되어 우리 복덩이는 태어났다.
그날부터 남편 회사의 어려웠던 일도 정리가 돼가고 모든 일이 평온을 되찾았다. 사도요한으로 유아세례를 받은 요한이는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인데도 성품이 착하여 모든 일을 스스로 잘하고, 성당 복사도 하면서 사랑이 많은 어린이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신부님이 꿈인 요한이가 유치원 시절에는 동그란 과자를 “예수님의 몸.”하면서 내 입에 과자를 넣어주곤 하였고, 예수님께 고백성사를 보아야 한다며 작은방 문을 잠그고 들어가곤 했다.
지난 어버이날 요한이가 쓴 일기의 일부다. “아버지, 어머니 정말로 감사한 게 있어요. 그것은 바로 하느님을 알려 주시고 하느님과 아버지, 어머니 덕에 사랑을 배웠다는 거예요. 제가 죽을 때까지 은혜를 갚아도 모자랄 거예요. (중략)”

우리 가족은 ‘아빠는 믿음으로, 엄마는 사랑으로, 자녀는 순종으로’를 가훈삼아 하루하루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임경란,  전주교구 서신동성당 교우
– 가톨릭 다이제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