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라와 아녜스는 열심한 신자로서 22세, 23세의 아가씨들이었고 독일에서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나 비교적 친근감있게 잘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그중에 글라라는 열심한 신자였고, 반면 아녜스는 그다지 신심이 두텁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글라라는 아녜스에게 친철하게 신앙 지도를 했습니다.
아녜스는 1937년에 결혼했고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결혼한 그 해 가을에 아녜스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당하자 아녜스의 어머니는 아녜스와 친했던 글라라에게 그녀의 불의의 죽음과 어제 장례식을 마쳤다는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글라라에게 알렸습니다.
소식을 들은 글라라는 깜짝 놀랐고, 글라라는 급작스런 죽음을 당한 그녀가 그동안 하느님 앞에 나아갈 준비를 했었는지에 대해 걱정했습니다.

다음날 글라라는 미사 참례를 하고 난 후 친구 아녜스의 영혼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기도한 그날 밤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정을 알리고 10분 정도가 지났는데 죽었던 아녜스가 추하고 고통으로 이그러진 모습으로 글라라 앞에 나타나서,

” 글라라, 나를 위해 기도하지 말아요. 나는 지옥에 있으니까요. 그리고 당신 앞에 나타나서 나의 일을 이야기 하는 것은 당신이 친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현재 있는 지옥은 남을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당신 앞에 나타나 이야기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왔으며, 나는 당신도 여기(지옥)에 와서 언제까지나 함께 고통을 받게 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 말을 듣고 당신은 노여워하겠지요. 그러나 지옥에 있는 우리 모두는 전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들의 의지는 모두가 죄악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4년 전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를 기억합니까? 당신은 내가 당신을 만나기 반년 전부터 그 곳에서 일하고 있었지요. 내가 처음 그 회사에 들어가 낯설음을 느낄 때 당신은 나를 친절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때 나는 당신의 사랑에 대해 무척 칭송했지요. 그러나 지금은 당신의 수고에 대해 고마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언젠가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을 기억하는지요?
나의 양친은 나를 낳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잘못 임신하여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내게는 14세, 15세 되는 두 언니가 있었습니다. 그 때 나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지금도 내가 존재하지 않았었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내가 세상에 태어났던 것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나에게 밀려온 이 고통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나의 영혼이 지금이라도 소멸될 수만 있다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존재한다는 것은 괴롭습니다. 정말 나는 싫습니다. 그러나 나의 망해버린 영혼은 언제까지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나의 부모는 서로 시골에서 도시로 나와 살면서 알게 되었고, 그들은 각기 항상 교회에도 안나가고 신앙심도 없는 사람들과 교제하며 지냈습니다. 나의 부모는 결혼하기 1년 반 전부터 서로 알게 되었고, 그들은 결혼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결혼 전에 벌써 임신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들의 결혼식은 교회에서 거행했고, 그들은 결혼 후에 1년에 기껏해야 한 두 번 정도 미사에 참여했으며, 그들은 자식인 나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매일매일의 현실 생활에는 열심했으며, 그래서 가정은 다 좋은 환경이었고 경제적으로 그렇게 넉넉하진 못했으나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자라온 나이지만 지금 나는 기도, 미사, 신앙 생활, 성수(聖水), 교회 등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것은 생각하기도 괴로운 하느님의 은총을 우리는 단호히 거절했고, 또 모르는체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런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에겐 아주 큰 고통입니다.

우리는 지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쉬지도 걸어다니지도 못합니다. 다만, 쇠사슬에 묶이어 서로 맹수와 같이 이빨을 갈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세상 사람들이 시원한 물을 마시듯이 우리들은 증오만을 마시고 있습니다.

우린 첫째 하느님을 증오합니다. 나는 이것을 당신에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으나, 하느님의 명령이라 하는 수 없이 당신에게 이야기 합니다.

지금 천국에 있는 성인(聖人), 성녀(聖女) 들은 직접 하느님을 뵈옵고 받들어 모시고 있습니다. 그들은 베일로 가리워지지 않으신 하느님을 받들어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천국의 성인들의 희락(喜樂)은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분개하고 있습니다.
또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강제적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보고 끝까지 그리스도를 사랑하겠지요.
그러나 나는 당신께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를 갈고 있습니다. 말하기조차 싫습니다.
평소부터 하느님께 속해 있기를 싫어하다가 죽은 후에 하느님을 만날 영혼은 벌을 받기 때문에 하느님을 멀리하고 싫어합니다. 지옥에 있는 우리는 죽은 후 하느님에게서 영원히 떨어져 나온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지옥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요?
그 이유는 죽을 때 나의 의지(意志)는 이미 하느님을 배반하기로 굳게 굳게 덩어리지어 있었기 때문이었고, 언제까지나 하느님을 반대했던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진정 지옥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자비를 베푸십니다. 예컨대 내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지옥의 고통을 심하게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자하신 하느님께서는 나를 더욱 빨리 죽게 하셨던 것입니다. 나는 지금 이를 갈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들은 지금 지옥의 불꽃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느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욱 괴롭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나는 아버지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아녜스야, 첫 영성체 할 때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흰 드레스란다” 하신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을 당신에게 이야기했을 때 당신은 크게 놀랐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끄럽지 않을 뿐 아니라 당신에게 조소하고 있습니다.

나는 12살 때 첫 영성체를 했습니다. 그 때는 세속적인 낙(樂)에 집착했을 때라 신앙심이 없던 나는 기뻐해야 했던 첫 영성체가 그다지 기쁘지 않았었습니다. 많은 어린아이들이 7세만 되면 첫 영성체를 하는데 나는 이것을 분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린 아이들이 대죄를 범한 후에 저 흰빵(성체)을 먹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독성(瀆聖)죄를 범하게 하고 싶습니다.
나는 때때로 고백도 했고 성체를 영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은 신심이 없는 나에게 “당신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은 멸망합니다” 하고 말했지요. 실제로 나는 그 당시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옥에서 단련받은 인간들은 세상에 살 때 기도를 하지 않았거나, 기도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가는 길은 기도가 제일이며, 그리스도의 어머님께 기도하는 것은 더욱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결코 그리스도의 어머니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마귀가 그리스도 어머니께 대한 신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손을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분노가 머리에까지 채워져 있으면서도 할 수 없이 이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이 기도하는 것은 지상에서 제일 쉽고 간단한 것인 것 같습니다. 간단한 기도를 바칠 때 하느님은 그 영혼을 구하십니다. 즉 조금씩이라도 기도하는 자에게 하느님은 꾸준히 힘을 주시고 죄인이라도 하느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나의 죽기 마지막 몇 년간은 전혀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가 없을 때 하느님의 도움은 주어지지 않으며 또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주셔도 우리는 거절합니다.
세상에 있을 때는 순간순간 낙도 위로도 바뀌며 있었으나 지금 여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언제까지나 변함없는 고통만의 연속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나는 하느님의 은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은총을 주셔도 나는 거절했고 하느님을 도외시했습니다. 나는 악마의 힘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악마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느끼고 있습니다. 매일 내가 또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희생을 드렸다면 나는 악마의 손아귀에서 구원되었을 것입니다.

지상의 세계에서 마귀가 접하는 경우는 매우 적으나 마귀는 많은 사람들의 옆에 있으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혹하고 침범합니다. 그 마귀는 비록 인간의 자유의지는 훔치지 못하나 하느님을 따르지 않는 자에게 하느님의 시련, 즉 마귀의 침범이 계속됩니다.

나도 이 마귀들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러나 마귀가 인간을 지옥으로 끌어 들이려 할 때 우린 기뻐합니다. 지옥에는 몇 백만의 악한 천사가 있습니다. 그들은 혼자 다니기도 하고 형편에 따라서는 군단이 되어 사람들을 습격합니다. 우리들처럼 나쁜 인간들이나 악령들은 당신들을 감동케하여 유인하지는 못합니다. 그러한 일은 악한 천사가 하는 일입니다.

나는 지상에 있을 때 항상 하느님께 반항만 해왔습니다. 그것은 당신도 잘 몰랐을 것입니다. 당신은 나를 보통의 신자로 알고 있었겠지요? 나는 그때가 기뻤습니다. 나는 교회의 유지비 (교무금)도 때로는 냈습니다. 나는 결혼 전에 고백을 하고 성체도 모셨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규칙이었고, 다만 관습으로 기도하기에 나나 그이(남편)도 동의했습니다.

나와 그이는 결혼 후 원만한 생활을 했습니다. 나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지만 그이(남편)는 아이 하나만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도 나의 원의대로 되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매일매일 깨끗한 드레스와 알뜰히 가꾼 아름다움을 과시하면서 또한 화려한 가구들도 갖추고 놀러가는 것 등에 매일 기쁘기만 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실로 1년 남짓한 생활이었지만 희희낙낙한 생활을 했으며 거기서 세속적으로는 행복했던 생활을 해왔지만, 그것이 내적으로는 허전하고 무엇인가 빈 생활이었습니다.
또 생각지도 않았는데 죽은 백모님의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고, 그이도 보수가 올랐으므로 다시 새집을 마련하게 되었고 더 화려하게 집을 꾸미고 더욱 더 즐거움만 찾는 생활을 계속 하였습니다.

나는 그 당시 옛 사람이 남겨 놓은 지옥이 담긴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항상 그 때마다 조소하였습니다. 그 그림 속에는 지옥에 떨어진 영혼을 악마들이 시뻘겋게 타는 숯불로 지지며 괴롭히는 등 그러면서 새로 떨어진 영혼들을 그 길고도 튼튼한 꼬리로 후려치는 등… 가지 가지의 지옥에 대한 그림을 보며 조소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지옥에 와서 직접 당하고 나서야 그 그림이 과장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서에 쓰여진 대로 그 불은 끝없이 계속 타는 불이며,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대로 “저주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영원한 불러 가라”고 한 그대로 입니다.

당신은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탈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하시겠지요. 당신은 당신의 손가락을 불 속에 넣어 보십시오. 거기서 당신의 영혼도 육체와 같이 괴로울 것입니다. 영혼은 절대로 타지 않습니다. 즉 그 지옥의 불꽃 속에서 영원한 고통만 당하며 더욱 더 괴로움만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더욱 더 큰 고통은 하느님을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혹시 당신은 지상에 살 때 하느님을 도외시했는데 죽은 후에 하느님을 못뵈온다 해서 무슨 괴로움이 있을까? 하고 자못 이상히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탁자 위에 예리한 칼이 하나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칼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섬짓하게 해주며 무서운 생각마저 들게 해 주지요. 만일 있는 그대로 탁자 위에만 놔 둔다면 피부에 직접 닿지 않으므로 감각적으로는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칼로 자신의 육체를 찌를 때 얼마나 많은 아픔과 피를 흘리겠습니까?
우리가 지상에 있을 때 하느님과 같이 있지 않았지만 그러나 죽어서도 하느님을 볼 수 없다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또 지옥에 있는 영혼들은 똑같이 같은 정도의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많은 사람일수록 하느님과 더 떨어지게 되고 거기서 오는 괴로움은 더욱 더 크기만 합니다.

지옥에 있는 그리스도 신자들은 타종교인이나 무신앙자였던 사람들보다 더 큰 고통을 받습니다. 이유는 신자였던 사람들은 비신자나 타종교인보다 더 많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고 더 많이 하느님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도 악한 생활을 해서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은 그저 약한 의지로 인해 지옥에 떨어진 사람보다 더 괴로움을 받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며, 여기서는 모두가 공평하게 자신이 지은 죄에 비례해서 고통을 받습니다.

나의 죽음은 이러합니다.
나는 단지 일 주일 전에 사고를 당해 이곳(지옥)에 왔을 뿐인데 한 10년간이나 이곳에 있는 느낌이 듭니다. 일 주일 전 나는 그이와 함께 소풍을 떠났습니다. 그날 소풍은 무척 즐거웠고 그날의 기묘한 쾌락은 나를 하루종일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녁 때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자동차 운전을 하던 그이가 맞은 편에서 오던 자동차의 불빛에 눈이 부시어 그만 앞차와 충돌하게 되었고, 그 때 우리 차는 무척 빠른 속도로 달렸습니다. 당시에 나는 “예수여” 하고 외쳤으나 그것은 기도하는 의미에서 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 때 전신이 무척 아팠다고 느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고통은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날 아침 교회에 가서 미사참례를 했으면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이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일생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주어진 은총의 권고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쾌락에 도취했던 나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당신은 우리 그이와 어머니의 그 뒤의 일까지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상에서 자신이 행한 것은 지금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또 자신의 영혼에 관해 무관심했음에 대해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의 육신이 죽을 때 무의식 속에서 잠시나마 밝은 빛이 내 영혼을 비추었습니다. 나는 마치 연극을 보는 것과 같이 자신의 영혼에 대해 보고 있었습니다. 나의 전 생애에 하느님이 주신 풍성했던 은총,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어졌던 하느님의 은총도 보았습니다. 나는 흡사 살인 현장을 보는 것과 같이 무서웠고, 진정 나의 영혼은 내 자신이 멸망시켰습니다.
통회할까요?
나는 절대로 통회하지 않겠다고 했고 언제까지나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도망가는 길이었습니다. 마치 카인이 자기 형제 아벨을 죽이고 그 곳에서 도망가듯이 나의 영혼도 하느님 앞에서 도망했습니다. 도망해서 도착한 곳이 지옥이었고 여기서 사심판이 결정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재판관이 되어 여기에서 떠나라고 하셨고, 나의 영혼은 누런 빛깔의 그림자와 같은 영원히 괴로워야 할 곳! 영원한 고통만을 기다리는 지옥! 영원히, 꺼지지 않고 맹렬히 타오르는 뜨거움만이 계속되는 불 속으로 나의 영혼은 거침없이 뛰어들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을 외면하고 무서운 그 곳으로…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

이것이 나의 전부입니다. ”

하고 그녀의 영혼은 외로이 글라라 앞에서 서서히 아주 멀리 멀어져 갔습니다.

-본 기록은 1979년 ‘성모의 기사 신심회 한국지부’에서 교회의 인가를 받아 발행한 소책자 ‘멸망한 영혼의 소리'(1985년 재판 발행본)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