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1장 7-11절
“그 무렵에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요르단강으로 요한을 찾아와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에게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과연 어떤 맛일까?>
같이 사는 꼬마 친구들이 가끔씩 제게 떼를 씁니다. “신부님, 어떻게 해야 세례 받을 수 있어요?”, “세례 준비 기간이 왜 그렇게 길어요? 저 잘할 자신 있는데, 속성으로 좀 안될까요?”
세례 받기를 너무도 간절히 청하는 몇몇 꼬마들에게 “도대체 세례 받고 싶어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로 불러서 조용히 물어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대체로 “영성체”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미사 도중에 자기들끼리 나가서 하얀 뭔가를 받아먹는데, 도대체 그게 뭘까? 과연 어떤 맛일까?”하는 것이 너무도 궁금하답니다.
그리고 다들 딱 까놓고 말들은 안 했지만 대체로 작년에 있었던 세례식을 기억하는 듯 했습니다. 세례식 때 후보자들이 다들 그럴듯하게 옷들을 차려입고 신부님들과 함께 입장하는 모습들, 세례식에 끝난 후 답지하는 선생님들의 선물들, 꽃다발들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세례를 받아야겠다는 소망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듯 했습니다.
세례를 받는 사람들 가운데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기도를 통해서 육신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가정에 우환이 많아서 세례 받으면 좀 낫겠지 하는 바램으로” 세례 받기를 원한답니다.
세례 받기를 원한다는 것은 성인(聖人)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성인은 또 어떤 사람입니까? 성화(聖化)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성화의 길은 걷는 사람은 보다 완전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완전한 사람 가운데 가장 완전한 사람이 예수님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세례를 받겠다는 것은 또 다른 예수님이 되겠다는 의사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극심한 고통을 체험한 인간, 가장 깊은 슬픔을 체험한 인간, 십자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고통과 십자가의 인간이셨습니다.
결국 세례를 받겠다는 것은 세례식 이후의 뒤풀이, 금으로 된 묵주반지, 세례와 동시에 주어지는 그럴듯한 세례명 등 잿밥과는 거리가 먼 행위입니다. 또한 세례는 건강이나 성공, 만사형통의 보증수표가 절대 아닙니다.
세례식의 기쁨은 잠시입니다. 즉시 다가오는 것이 고통이요 십자가입니다. 결국 그리스도 신자가 되겠다는 말은 이 세상에서 손해보겠다는 것, 세상과 거꾸로 살겠다는 의사표명입니다.
세례를 받겠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바보 같은 인생을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이 세상에 전부를 걸지 않겠다는 각오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고통과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가겠다는 결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