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정의, 사랑, 자유를 토대로 하는 모든 민족들의 평화에 대하여

교황 요한 23세의 회칙

지상의 평화

PACEM IN TERRIS

1963. 4. 11.

진리, 정의, 사랑, 자유를 토대로 하는
모든 민족들의 평화에 대하여
사도좌와 더불어 평화와 일치를 누리는 존경하는 형제들인
총주교, 수석주교, 대주교, 주교, 그 밖의 지역 직권자들에게
가톨릭 세계의 모든 성직자와 신자들에게
그리고 선의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회칙

존경하는 형제들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인사와 더불어 사도적 축복을 보낸다.

머 리 말

하느님의 질서와 세상의 질서

    1.*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는 모든 시대의 인류가 깊이 갈망하는 것으로서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질서를 충분히 존중할 때에 비로소 회복될 수 있고 견고해진다.

    2. 세상에는 살아 있는 생명과 자연의 힘을 지배하는 놀라운 질서가 있기 때문에 현대 과학의 발전과 기술의 발명이 가능하다. 그리고 자연의 힘을 지배하고, 그 선익을 향유하기 위하여 적당한 도구들을 창조하고, 그런 질서를 발견하는 것은 인간이 지닌 위대함의 소산이다.

    3. 그러나 과학의 발전과 기술의 발명은 무엇보다도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무한한 위대하심을 드러내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시편 저자가 외치듯이 지혜와 선의 귀중한 보화들을 인간에게 풍요롭게 주시려고 우주를 창조하셨다. “하느님,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1) “주님이 하신 일이 많고도 많건마는, 그 모두를 지혜로써 이룩하시었으니, 온 땅에 당신 조물 가득 차 있나이다.”2)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대로”3) 당신과 비슷하게 지성과 자유 의지를 지닌 인간을 만드시고, 세상의 주인으로 올려놓으신 것이다. 계속하여 시편 저자는 외치고 있다. “당신은 인간을 천사들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어주셨나이다.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삼라 만상을 그의 발 아래 두시었으니.”4)

인간의 질서

    4. 그런데 여전히 세상의 완전한 질서를 거스르는 개인들과 국가들 간의 불목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관계 개선은 무력의 사용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5. 또한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내밀한 마음 안에 질서를 새겨주셨는데, 이것이 양심을 일깨우며, 인간은 단순하게 이 양심을 따라야 한다. “인간은 그들 마음속에서 하나의 법이 있다는 것을 안다. 양심이 바로 그 근거가 된다.”5) 이 사실은 달리 설명할 수 없지 않은가? 하느님의 모든 업적은 또한 당신의 무한한 지혜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 반영이 더욱 분명할수록 그만큼 완전성의 정도는 높아지는 것이다.6)

    6. 그러나 가끔 그릇된 견해에서 탈선이 생긴다. 많은 사람들은 정치 공동체와 함께 인간의 관계를 우주의 비이성적인 자연 법칙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인간을 다스리는 법은 이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본성 안에 그 법을 새겨주셨는데, 우리는 그 법들을 어디서나 찾아야 한다.

    7. 이 법들은 인간이 어떻게 사회 안에서 이웃을 대해야 하는지를, 그리고 국가 구성원과 그 직무의 상호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분명하게 지시한다. 또한 이 법들은 어떤 원리들이 국가들의 관계를 통제하는지, 한편으로는 개인들과 국가들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들보다 더 넓은 세계 공동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이런 공동체의 설립은 보편적 공동선의 요구에서 나온다.

제 1 부  공동 생활의 질서

인간의 품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8. 질서 있고 풍요로운 공동 생활을 위해서는 모든 인간이 인격을 갖고 있다는 원리가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9. 즉, 인간은 지성과 자유 의지를 갖고 있고, 인간 본성에서 직접적으로 나오는 권리와 의무를 지닌 주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권리와 의무는 보편적이며, 불가침적이고,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7)

    10. 더구나 인간의 품위를 하느님의 계시에 따라 숙고한다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존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구원받았다. 주님의 은총은 인간을 하느님의 자녀와 벗이 되게 하고, 영원한 하늘 나라의 상속자들이 되게 한다.

1. 인간의 권리들

생존과 품위 있는 생활 수준에 관한 권리

    11. 모든 인간은 생존, 육신 전체, 생활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절대적인 권리를 갖고 있으며, 특히 양식, 의복, 주거, 숙식 등에 관한 권리가 있으며 의사들의 치료와 그 외 정당한 사회적 봉사 등을 받을 권리가 있다. 또한 인간은 병고, 노동력의 결여, 과부 신분, 노환, 실업 등에 처했거나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생존 방법을 상실하는 경우에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8)

윤리적이고 문화적인 가치에 관한 권리

    12. 윤리 질서와 공동선의 공통된 인식에 따라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인격 존중과 좋은 평판을 누릴 자유와, 예술을 연마하며 사상을 표현하고 전파하는 진리 탐구에 대한 자유를 갖는다. 그리고 또한 공적 사건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진상을 파악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13. 인간 본성에 따라 인간은 문화적 혜택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주어진 정치 공동체의 발전 정도에 따라 적절한 기초 교육을 받고, 특수한 기술을 습득할 권리를 갖는다. 인간들은 가능한 한 습득한 능력과 태도에 걸맞는 책임을 사회 생활에서 전개하기 위하여, 사회 발전의 역량에 따라 최상의 교육을 받을 필요성이 있다.9)

종교 자유에 관한 권리

    14. 인간은 올바른 양심의 명령에 따라서 하느님을 공경할 권리가 있는데, 바로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하느님께 대한 예배를 드릴 권리이다. 이는 락탄시우스(Lactantius)가 분명하게 언급한 바와 같다. “우리 인간은 창조주 하느님만을 인식하고 따르며, 그분께만 공경을 마땅히 드릴 목적으로 창조되었다. 인간이 하느님께만 묶여 있고 매여 있다는 신심에서 종교라는 이름이 유래하고 있다.”10) 본인의 선임자 레오 13세 교황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합당한 이 참된 자유는 인간의 품위를 높여준다. 그래서 이 자유는 어떤 폭력이나 불의로 박탈될 수 없다. 교회는 이런 자유를 항상 외쳤고, 소중하게 여겼다. 이 자유를 사도들이 변함없는 용기로써 지켰고, 호교론자들은 저술로써 옹호하였고, 수많은 순교자들은 그들의 피로써 거룩하게 하였다.”11)

신분 선택의 자유에 관한 권리

    15. 인간은 자기 신분 선택의 자유에 관한 권리가 있는데, 남녀가 동등한 권리와 의무에 따라 가정을 꾸밀 수도 있고, 사제 성소나 수도 생활의 성소를 따를 수도 있다.12)

    16. 자유롭고, 단일하며, 불가해소적으로 맺어진 계약에 기초하는 가정은 사회의 본래적이며 근본적인 핵심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가정의 안정을 도모하고, 가정의 특별한 사명을 채우는 경제적, 사회적, 교의적, 윤리적인 문제들을 관심 있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17. 부모들은 자녀들을 양육하고, 그들을 교육시킬 우선적 권리를 갖는다.13)

경제적 문제에 속하는 권리

    18. 경제적 영역에서 인간이 어떤 개인적인 주도권을 갖고 사업을 하거나 활동할 수 있는 권리는 선천적인 것이다.14)

    19. 이런 권리는 건강과 미풍 양속을 해치지 않고, 청소년들의 전인적 발전을 저지하지 않는 노동 조건과 불가피하게 연결된다. 여성들도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의무와 상반되지 않는 노동 조건하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15)

    20. 인간의 품위에서 개인이 책임을 질 수 있는 정도만큼 경제적 활동을 전개하는 권리가 나온다.16) 여기서 특별히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권리는 노동의 보수가 정의의 기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인데, 노동자와 그 가정이 인간 품위에 맞는 생활 수준을 유지하도록 충분하게 지급되는 일이다. 이에 대해서 본인의 선임자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천성적으로 부과된 노동의 의무는 개인들이 자기 생명과 자녀들의 생명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노동을 해야 한다는 자연법에 부합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생존을 위한 자연의 정언적(定言的) 명령이다.”17)

    21. 또한 인간 본성에 따라서 재물과 생산물에 대한 사유 재산권이 나온다. “이 권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효과적으로 보호해 주고 모든 분야의 활동에서 자유로운 직무 이행을 보장해 주는 권리이다. 마지막으로 그 권리는 가정 생활의 결속과 안정을 강화시켜 줌으로써 국가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한다.”18)

    22. 사유 재산권 안에 본질적으로 사회적 기능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19)

집회와 결사의 권리

    23. 인간의 본질적 사회성에서 집회와 결사의 권리가 나온다. 인간은 그들의 목적을 최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조직의 형태를 결성할 권리가 있다. 또한 인간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이런 결사를 통해 그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며 자신의 주도권을 행사할 권리를 갖는다.20)

    24. 회칙 「어머니요 스승」에서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개인으로서는 불가능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많은 연합체와 중간 단체들의 설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자유와 책임의 충분한 영역을 보장하기 위하여 이 권리는 필요하며 무엇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요소이다.21)

이주와 이민의 권리

    25. 모든 사람은 자기 나라의 경계 내에서 이사하거나 머물 수 있는 자유에 대한 권리를 지닌다. 또한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다른 나라로 이주하거나 거기에 머무는 것이 허락되어야 한다.22) 특정한 정치 공동체의 시민이라는 사실로 인해 같은 인간 가족의 일원임이 상실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사실은 한 인간이 세계 공동체 앞에서 인류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다.

정치 참여의 권리

    26. 인간의 존엄성에 따라 공공 생활에 적극 참여하고, 공동선 실현에 공헌해야 할 권리가 나온다. “인간을 사회 생활의 객체나 수동적 의미를 지닌 존재로 보아서는 안되고, 대신 인간은 그 자체로 주체, 기초, 목적으로 존재하고, 그렇게 남아 있도록 해야 한다.”23)

    27. 인간의 기본권은 또한 고유한 권리들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이기에 정의의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효과적이며, 공평하게 선포되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법적 질서에 따라, 인간은 법적 보장에 대한 항구한 권리를 갖게 된다. 이것으로 구체적 권리의 영역에서 인간은 모든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보호받게 된다.”24)

2. 인간의 의무들

한 인간의 권리와 의무

    28. 위에서 살펴본 자연법은 인간이 그 주체이며, 이 자연법은 다른 의무들과 분리할 수 없게 연결되어 있고, 이런 권리들과 의무들은 상호 의무를 부과하는 자연법에서 그 기원, 양식, 불멸성이 유래한다.

    29. 예를 들면 모든 인간의 생존권은 생명 보존의 의무와 연결되어 있고, 품위 있게 살 의무와 함께 윤택한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권리와 진리 탐구에 대한 권리는 항상 더욱 넓고 깊게 인식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진리 탐구의 의무와 밀접히 연관된다.

여러 인간들 사이의 권리와 의무

    30. 인간의 공동 생활에서 한 인간의 자연적 권리는 다른 사람들의 의무에 해당한다. 곧, 그런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 의무이다. 사실 인간의 모든 기본적 권리는 각개의 의무를 부과하는 자연법으로부터 효력을 갖는 분명한 지침을 이끌어낸다. 그러므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부과된 의무들을 잊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자들은, 한편으로 집을 지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파괴하는 위험한 행동을 하는 자들이다.

상호 협조

    31. 인간들은 날 때부터 사회적 존재이다. 그러기에 공동으로 살아야 하며, 상호 선익을 도모해야 한다. 인간의 공동 생활은 질서를 유지해야 하기에 그 권리들과 의무들은 서로 존중되고 잘 이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각자는 그런 권리들과 의무들이 더욱 성실하고, 더욱 효과적으로 보존되도록 혼신의 노력으로 기여해야 한다.

    32. 따라서 각 개인에게 생계에 대한 기본적 권리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곧, 모든 인간은 ‘충분하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33. 이런 공동 사회가 이루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은 자원이 풍부한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이는 상호간의 권리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 의무들을 채울 것을 요청한다. 모든 이들은 여러 가지 형태와 단계로 현대 문명이 요청하는 많은 사업체들에 협력할 것을 요청받는다.

책임의 자세

    34. 모든 인간은 고유한 존엄성에 따라 자유롭게 자기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할 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회 생활에서 권리들을 행사하고, 의무들을 수행하며, 여러 형태의 일들을 개인적인 결정에 따라서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곧 확신, 자기의 주도권, 책임감을 갖고 행동해야 하며, 무엇보다 먼저 외부의 압력이나 강압에 의해 행동해서는 안된다. 다만 폭력으로 유지되는 인간 사회는 비인간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 자신을 성숙시키고 완성시키기 위해 어떤 자극을 주고 추진하는 대신에 실제로 인간을 강압하고 강요하는 일이 진행되기도 한다.

사회 생활의 기초

    35. 인간의 사회 생활이 진리 위에 자리를 잡으면, 질서가 잡히게 되며 인간의 존엄성에 따라 풍요롭게 꽃피우게 된다. 사도 바오로는 적절하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지 말고 이웃에게 진실을 말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25) 이는 모든 이가 타인을 향한 상호 권리들과 의무들을 정직하게 인정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인간 사회는 정의에 따라 다른 이의 진리를 존중하고, 자기들 스스로의 의무를 이행하며, 사랑의 힘으로 다른 이의 요구와 필요들을 자기 것으로 느끼며, 자기의 재물들을 다른 이에게 나누어주며, 정신적 가치로 충만한 세상을 지향해야 한다. 또한 자기 행동의 책임을 지기 위해 이성적 본성에 따라 나타난 인간의 품위를 자유 안에서 실현하여야 한다.

    36. 사랑하는 형제여, 인간 사회는 무엇보다도 먼저 영적 실재를 보아야만 한다. 곧 사회는 진리의 빛 안에서 학식을 교환하고, 권리들을 행사하고, 의무들을 채우며, 윤리적 선을 행하도록 자극한다. 사회는 모든 합법적 수단을 통해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나누어야 하며, 서로 최선을 다해 항구하게 상호 관심사를 전달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영적 가치들이 항상 더 풍요롭게 완성되도록 열망해야 한다. 문화적 표현, 경제계, 사회 단체, 정치 운동들, 법적 질서들은 기본적인 방향과 계속적인 활성화에 도움을 주는 정신적 가치들이다. 그 외 모든 다른 외적 요소들을 사회는 끊임없이 발전시키면서 분석하고 표현해야 한다.

하느님과 윤리 질서

    37. 사회 생활에서 인간들의 질서를 지키는 일은 윤리적 성격에 속한다. 사실 이 질서는 진리에 바탕을 두며, 정의에 의해 실행되며, 타인을 위한 인간의 사랑으로 힘을 얻고 완전해지며, 자유 안에서 항상 새로워지고 더욱 바람직한 균형을 갖게 된다.

    38. 원칙적으로 볼 때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며 불변적인 이런 윤리 질서는 초월적이고 위격적인 하느님 안에 그 객관적 기초를 발견할 수 있다. 하느님은 최고선이시다. 그런 가장 깊은 원천으로부터 인간 사회가 적절히 완성된다면 인간의 품위는 그 진정한 생명력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26) 이에 대해 성 토마스 데 아퀴노는 분명하게 표현한다. “인간 이성은 영원법에서 나오듯이 인간 의지의 선을 평가하는 규범이다. 그런데 영원법은 신적 이성이다 … 인간적 의지의 선은 인간의 이성보다는 훨씬 영원법에 기인한다.”27)

현대의 경향

    39. 세 가지 현상들이 현 시대를 특징짓는다.

    40. 무엇보다도 노동자 계급의 경제-사회적 진보이다. 진보된 노동 운동의 첫번째 양상에서 보면 노동자들은 무엇보다도 경제-사회적 측면에서 그들의 권리들을 주장하는 일에 그들의 관심과 행동을 집중시키고 있다. 다음으로 정치적 권리에 대한 주장을 확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문화적 혜택에 적당한 형태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전세계 도처의 노동자들은 지성과 자유가 없는 사람들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아무렇게나 취급받아서는 안된다는 요구가 높다. 그들은 모든 사회 생활의 부분에서, 곧 경제-사회적 부분인 문화 생활이나 공적 생활에서 합당한 인간 주체로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41. 둘째로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정치 생활에 대한 여성의 참여 문제이다. 아마도 이는 그리스도교 문명권에 있는 지역에서는 더욱 빠른 성장을 하고 있으며, 그 외 후진된 전통이나 문명권에 있는 지역에서는 다소 느리게 진행되고 있으나 확대되어 가고 있는 상태이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존엄성을 날이 갈수록 더욱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다. 그들은 도구로서 취급받거나 무시당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 한 인간으로서 가정 생활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생활에서 대접받기를 요구하고 있다.

   42. 마지막으로 인간 사회는 최근에 그 사회-정치적 양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모든 민족들이 정치적 독립을 얻었거나 그 과정에 있기에, 머지않아 지배하거나 지배받는 국가는 없을 것이다.

   43. 모든 국가나 모든 대륙의 사람들이 독립 국가의 시민이 되었거나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어떤 국가도 오늘날 외부에서 오는 정치 세력에 예속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내려온 열등감은 해소되고 있으며, 일부 계층의 경제-사회적 특권, 성(性), 정치적 지위에서 오는 우월감이 점차 완화되고 있다.

   44. 그래서 모든 인간은 타고난 존엄성 때문에 평등하다는 확신이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인종 차별은 적어도 학문적이고 이론적인 차원에서 그 정당성을 찾을 수가 없다. 이는 우리가 언급한 원칙에 의해 인간 사회의 건설을 위해 대단히 큰 의미를 제공한다. 인간이 그 권리들을 의식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그들 의무를 전제하는 것이다. 이런 권리들의 소유는 이 권리들을 이행할 의무를 포함하는데, 바로 인간들은 인간적 존엄성을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인간들에게도 똑같은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45. 인간 사회의 관계들을 원리들과 의무들의 용어로 표현하는 것은, 곧 인간 존재는 영적 가치가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고, 진리, 정의, 사랑, 자유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으며 이 세상에 소속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인간들은 초월적이고 위격적인 참 하느님을 더 잘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인간 자신들과 하느님과의 관계는 인간들 마음 안에 살아 움직이게 되고, 이는 다른 이와 관계를 맺는 생명의 견고한 기초와 함께 최고의 기준이 될 것이다.

제 2 부  각 정치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과 공권력 간의 관계

권위의 필요성과 신적 기원

    46. 인간 사회가 충분하게 공동선 실현에 기여하지 못하거나 질서를 유지하는 권위가 없다면, 질서가 잡히지 않을 것이며 풍요로운 결실을 맺을 수 없다.
    사도 바오로가 가르치는 대로 그런 권위는 하느님께로부터 나온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은 권위는 하나도 없다.”28) 사도 바오로의 이 구절을 요한 크리소스또모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모든 통치자가 하느님께로부터 지명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각개 통치자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고, 통치권 자체를 논하고 있다. 권위가 있기에, 명령하는 자와 그에 복종하는 자가 있는 것이며, 이런 사실은 우연에서가 아니고 하느님 섭리의 배려에서 나오는 것이다.”29) 사실 하느님께서는 본래부터 사회적 인간들을 창조하셨기에 모든 사회는 “타인을 통치하는 자가 공동 목표를 향해 효과적으로 이끌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문명 사회를 유지하는 권위는 불가피한 것이다. 이런 권위는 사회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자연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결국 그 권위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30)

   47. 권력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성에 의해 조정된다. 따라서 윤리 질서를 따라야 한다. 이런 윤리 질서의 첫째 원리와 궁극적 목표는 하느님이시다. 이에 대해 비오 12세는 말한다. “살아 있는 존재들의 절대적인 질서와 인간의 목표는 ‘자율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나타내며, 곧 인간은 사회 생활의 기초와 완성인 침범할 수 없는 권리와 의무의 주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인간은 권력을 갖춘 필연적 사회인 국가를 인정하고 있는데, 이런 국가의 권력 없이 인간은 존재할 수도 없고 생존할 수도 없다“… 이러한 절대적 질서는 건전한 이성과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빛 안에서 볼 때 우리의 창조주 하느님 안에서가 아니면 그 기원을 찾을 수가 없으며, 정치 권력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은 하느님의 권위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31)

    48. 주로 형벌의 공포, 또는 상급을 받는 매력적인 것이나 상급만을 약속하는 권력은 인간을 공동선에로 효과적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움직인다면, 이는 인간의 존엄성 곧 지성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성을 거스르는 것이다. 권력은 무엇보다도 윤리적 힘이다. 그래서 통치자들은 개인 양심에 호소하여 각 개인이 모든 이의 공동선에 자발적으로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타고난 존엄성 때문에 모두 동등하므로, 아무도 다른 이를 압박할 수 없다. 오직 하느님만이 개인의 비밀스런 마음의 움직임을 알고 계시며 판단하실 수 있다.

    49. 그러므로 국가의 통치자들은 그들의 권력이 하느님의 권위에 속해 있고, 이에 참여하는 한 그들은 다만 윤리적으로 인간을 구속할 수 있을 뿐이다.32)

    50. 이렇게 시민들의 존엄성은 보호되고 있다. 공권력에 대한 복종은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참 의미는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존경의 행위인 것이다. 만물의 섭리자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설정하신 질서에 따라 인간 사회의 관계들을 다스리고 계신다. “하느님께 봉사한다는 것은 다스리는 것”이기에 하느님께 공경을 드림은 우리가 비하되는 것이 아니라, 고양되는 것이며, 그 숭고한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다.33)

    51. 권력은 이미 언급한 대로 윤리적 질서에서 요청되는 것이며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러기에 법과 명령들이 윤리적 질서나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입법되거나 선언된다면, 그런 권한은 양심을 구속할 힘을 갖지 못한다. 바로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오히려 하느님께 복종해야 하기”34) 때문이다. 그런 경우에는 권력의 본질이 훼손될 뿐 아니라 불의한 남용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성 토마스 데 아퀴노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인간의 법은 바른 이성에 합치하는 한, 영원법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이 이성과 반대될 때 악법이 되며, 이 경우 법으로서의 존재는 중지되며, 폭력 행위가 된다.”35)

    52. 그렇다고 권력이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은 국민들이 국가에 대한 권력 행사를 위해 통치자들을 선출하고, 공권력의 구조를 결정하고 통치자들의 한계들과 통치 과정들을 규정하는 일을 할 수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위에서 제시한 이론은 모든 순수한 민주주의 제도와 충분히 합치한다.36)

공권력의 목적은 공동선의 실현

    53. 모든 인간과 모든 중간 단체들은 공동선 실현에 특별히 기여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자신의 이익은 타인들의 필요와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통치자들이 정의의 기준에 따라 합당한 형식과 능력 안에서 자기들의 선행을 봉헌하며 봉사 활동을 해야 한다. 곧, 통치자들은 온전한 행위로 공동체의 선을 도모해야 하며, 적어도 국가의 안녕을 촉진해야 한다.

    54. 공동선의 실현은 공권력의 존재 이유가 되기 때문에 공동선의 본질적 요소들을 존중하고, 역사적 현실에서 요청되는 내용에 따라서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37)

공동선의 본질적 요소

    55. 확실히 여러 민족들의 특징은 공동선의 요소로 삼아야 한다.38) 그렇다고 그 특징들이 공동선을 제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공동선은 인간 본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시대에나 인간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공동선의 내용을 충분하고도 완전하게 밝힐 수 없다. 이와 같이 공동선의 기본 성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공동선의 실현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판단해야 한다.39)

    56. 두번째로는 공동선의 성격상, 시민들의 직책, 기여도, 조건들은 서로 다를지라도 한 정치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은 이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선임자 레오 13세가 가르친 대로 공권력은 어떤 시민이나 어떤 단체에 대해 편견 없이 모두의 이익을 증진시켜야 한다. “공권력은 어떤 방법으로든 한 개인이나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이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40) 약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들의 법적 이익을 주장하려고 할 때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 공권력은 정의와 공평을 고려하면서도 때때로 사회의 더욱 약한 사람들에게 좀더 주의를 표명해야 한다.41)

    57. 여기서 공동선은 전체 인간, 곧 정신의 요구만큼 육체의 필요성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공권력은 공동선을 여러 방법과 단계로 실현해야 하고, 동시에 가치 서열을 올바로 인식하여 존중하고, 영신적 선 못지않게 육체적 유익을 증진해야 한다.42)

    58. 위에서 지적한 원칙들은 회칙 「어머니요 스승」에서 제시한 내용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 다. 공동선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완성을 더욱 충만하게 더욱더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사회 생활의 모든 조건들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43)

    59. 육신과 불멸의 영혼으로 이루어진 인간은 현세에서 그 존재의 요구들을 다 채우지 못하며, 완전한 행복을 얻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공동선을 추구하는 방법은 영원한 내세의 목적에 도달하게 하는 데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하고 그 같은 목적의 실현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44)

공권력의 책임과 인간의 권리와 의무

    60. 현대에서 공동선의 실현은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함으로써 드러난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주요한 책무들은 무엇보다도 이런 권리들을 인식하고 존중하여 보호하고 증진시키는 것이며, 따라서 각 개인의 의무들을 더욱 쉽게 이행하도록 기여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 권리의 침범할 수 없는 국면을 보호하고, 그 의무들을 완수하는 것은 모든 공권력의 본질적 직무이다.”45)

    61. 그러므로 공권력의 행위가 인권을 무시하거나 침범하게 되면, 그 직무 수행에 실패하는 것이 며, 그런 잘못된 법령은 구속력을 상실하는 것이다.46)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조정하고 보호해야

    62. 공권력의 중요한 의무 중의 하나는 무엇보다도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조화 있게 조정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시민들의 권리 행사는 다른 시민들의 권리에 지장과 위협을 주어서는 안된다. 또한 개인의 권리 보호가 그 자신의 의무 수행을 지체시켜서는 안된다. 모든 권리들은 효과적으로 보호되어야 하고, 그것들이 침범당했다면 완전히 회복되어야 한다.47)

인간의 권리를 증진시킬 의무

    63. 이 밖에도 공동선의 요구는 바로 공권력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그 나타난 권리들을 쉽게 행사할 수 있게 하며, 각개 의무를 이행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하게 하는 일이다. 사실 경험이 증명하듯이 인간들 사이에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불균형에 대해 공권력의 적절한 대처 방안이 결여되면, 특히 오늘날에는 위기 상황이 더욱 확대되어 결과적으로 인간의 기본적 권리들은 그 기능을 상실한 채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또한 각개의 의무를 이행하는 일도 위험에 놓이게 될 것이다.

    64. 그러므로 공권력이 경제 발전과 사회 발전의 균형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생산 체계의 효과적 발전이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사회적 봉사를 위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곧 도로 건설, 수송, 통신, 식수, 주택, 위생, 교육, 종교 생활을 위한 적합한 조건, 휴식의 편의 등이다. 또한 공권력은 불의의 사고나 가정적으로 큰 책임을 이행하는 방법으로 보험 제도를 이용토록 하여 품위 있는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곧, 노동 능력이 있는 자들에게 그들에게 맞는 직업을 제공하고, 노동의 보수는 정의와 공평의 기준에 따라 지급되도록 하며,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고유한 책임하에서 행동하게 하며, 그들의 사회 생활을 풍요롭고 자유롭게 하는 중간 단체의 설립을 도와주며, 모든 이들이 적절한 방법과 양식으로 문화적 혜택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권력의 두 가지 활동간의 균형

    65. 인간 권리의 측면에서 공권력이 요청하는 공동선은 두 가지 활동을 전개한다. 하나는 권리를 조정하고 보호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권리를 촉진하는 것이다. 따라서 두 활동들이 잘 조화를 이루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특별한 지위에 있는 개인이나 사회 단체의 권리 보호에만 관심을 두는 행위는 피해야 한다. 이미 언급한 권리들을 증진하기 위하여 진정한 권리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과도하게 불합리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행위를 피해야 한다. “공권력의 경제에 대한 배려가 광범위하여 사회의 사사로운 분야에까지 미친다 하더라도, 그 개입은 개인의 행동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증진시켜야 하며 그럼으로써 인간 기본권의 보호를 보장하여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옳다.”48)

    66. 같은 원칙 아래 공권력은 사회 생활의 분야에서 의무를 용이하게 수행하고, 권리 행사를 증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전개해야 한다.

공권력의 구조와 기능

    67. 가장 완전한 공권력의 기구를 조직하거나 공권력이 입법, 행정, 사법의 특별한 기능을 수행하는 데 더 나은 양식이 어떤 것인가를 설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68. 공권력의 구조와 기능은 각개 정치 공동체의 역사적 상황, 곧 시대에 따라 변하고 국가에 따라 다양한 상황과 연관된다. 그래서 공권력의 세 가지 특별한 기능과 일치하는 삼권 분립에 기초한 정치 공동체의 법적 – 정치적 조직은 인간 본성 안에 있는 타고난 요구인 것이다. 그런 국가 형태 안에는 공권력의 기능과 권한의 영역이 법적 기준에 따라 결정되어 있다. 곧, 법적 기준들은 일반 시민들과 공권력들 간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권리를 이행하고 의무를 수행하는 시민을 위한 보호 장치가 된다.

    69. 여하간 법적 정치적 기구가 가능한 한 제공할 수 있는 복지 증진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국가 공무원들은 야기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그들은 적절한 방법으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도 불가피한 것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발전하기에 입법권은 객관적으로 공동선의 요구를 해석한 윤리적 질서와 헌법상의 규범을 존중해야 한다. 법을 적용하는 행정 권력은 현명하게 충분한 인식을 갖고, 구체적 경우들을 분명하게 평가해야 한다. 사법권은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말고, 공평하게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개인이나 중간 단체들은 권리 수행이나 의무 이행에 있어서 효과적인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이는 개인 상호간에 있어서나 공무원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동일하다.49)

법적 기구와 윤리적 질서

    70. 법적 기구가 정치 공동체의 성숙도에 일치하고 윤리적 질서와 조화를 이룰 때, 공동선 실현을 위한 기본적 요청이 완성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71. 그러나 우리 시대의 사회 생활이 다양하고, 복잡하며, 역동적이기에, 법적 체계가 현명하게 마련된다고 해도 사회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

    72. 더구나 개인들 상호간, 시민들과 중간 단체들, 한 국가의 공권력들 사이의 관계들이 가끔 모호하고 파괴적이기에, 법률을 융통성 있게 조정해야 한다. 공권력이 그 자체로 또는 특별한 경우에 적용하는 국가의 법적 체계를 보존하기를 원하거나, 통치자들이 사회의 중요한 요구에 봉사하기를 원하고, 법을 현대 생활 조건에 맞추고 새로운 문제들의 해결들을 찾기를 원한다면, 그들 자신의 법적 행동 영역의 한계와 성격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갖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또한 통치자들의 침착, 성실, 지혜, 항구성 등은 주어진 상황에서 무엇을 요구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것인지를 인식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50)

공적 생활에 대한 국민의 참여

    73.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양상들은 그들이 소속해 있는 정치 공동체의 성숙도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정치 참여 자체는 인간의 존엄성이 요구하는 사항이다.

    74. 정치 참여를 통해 복지의 새롭고 폭넓은 분야가 인간들에게 전개된다. 시민들과 공무원들 사이에 잦은 교류를 통하여 공동선의 객관적 요구를 더욱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공무원들의 일정 기간 내 근무는 그들의 나태함을 방지하며, 사회적 발전에 맞추어 사회를 쇄신하려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장점을 지닌다.51)

현대의 경향

    75. 현대 정치 공동체의 법적 조직에서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헌장을 간결하고 분명한 형식으로 기초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헌장은 흔히 헌법에 들어가거나 보완하는 부분이 된다.

    76. 두번째로는 헌법의 완성을 위해서 법적 용어를 확정하는 일이다. 곧, 헌법을 통해 공권력이 형성되고, 그들의 상호 관계, 그들 권한의 영역, 그들이 수행해야 하는 행동 지침과 국가의 형태들이 정해진다.

    77. 끝으로 국민과 공권력의 관계들을 권리와 의무의 용어로 설명하는 것이다. 곧, 공권력의 중대한 임무는 국민들의 권리와 의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보호하고 증진하는 일이다.

    78. 개인이나 단체의 의지는 권리와 의무가 나오게 되는 유일한 제일의 원천이 된다거나 이런 방법으로 헌법의 의무가 나오거나 공권력의 권위가 발생한다는 학설은 물론 수용할 수 없다.52)

    79. 이미 언급한 경향들은 현대 인간들이 자신의 존엄성을 더욱 현실감 있게 의식하고 있음을 의심없이 증명하고 있다. 이런 의식은 그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그들의 양도할 수 없고 침범받을 수 없는 권리들이 실정법적 장치를 통해 다시 강조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그들은 국가 공무원이 헌법의 규정에 따라 임명될 것과 법률의 한계 내에서 그들의 특별한 임무들을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