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성서에서 볼 수 있는 완전한 신심의 모범인 리브가와 야곱
내가 성모 마리아와 마리아의 자녀들과 종들에 대한 관계를 설명한 그 모든 진리에 대해서,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구약성서(창세기 : 27장)에서 그 표본을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신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 리브가의 알선과 노력으로 아버지 이사악의 축복을 받은 야곱의 이야기이다.
우선 성서에서 이야기한 대로 그 역사를 말하고 다음에 나의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제 1절 야곱의 역사
형 에사오가 자기의 장자권을 동생 야곱에게 팔았다. 몇 년 후에 그 두 형제의 어머니 리브가가 완전한 비밀술책으로 자기가 사랑해 오던 야곱에게 이 장자권을 확정지어 주었다는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사악은 자기가 이미 늙었음을 알고 죽기 전에 자기 아들을 축복해 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맏 아들 에사오를 불러 사냥가서 잡아온 짐승으로 성찬을 베풀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나서 그 아들을 축복할 생각이었다. 리브가는 즉시 이러한 일을 야곱에게 알리고 나서 양떼 가운데서 작은 산양 두 마리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야곱이 두 마리 양을 가지고 온 뒤에 리브가는 그것으로 이사악이 평소에 좋아하는 성찬을 준비했다. 그리고 리브가는 보관해 두었던 에사오의 옷을 야곱에게 입히고 야곱의 손과 목을 산양의 가죽으로 덮어 쌌다. 눈 먼 아버지가 비록 야곱의 목소리를 들을지라도 더듬어 보아서 손이 거칠다는 이유로 야곱을 자기 형 에사오로 잘못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사악은 야곱의 목소리를 듣고서는 사실 놀랬다. 그래서 이사악은 야곱을 가까이 오라 해서 손에 덮인 가죽 털을 쓰다듬었다. “목소리는 과연 야곱의 목소리이지만 손은 역시 에사오의 손이구나”하고 이사악은 말했다. 이사악은 식사를 하고 야곱을 입맞추어 주면서 야곱의 옷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고 나서야 비로소, 야곱을 축복하여 그에게 하늘의 이슬과 땅 위의 풍성을 빌었다. 그리고 야곱을 자기의 모든 재산의 주인으로 만들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받을 것이며, 너를 축복하는 자는 축복받을 것이다.”하고 말하면서 축복을 끝맺었다.
이사악이 이 말을 마치자 마자, 에사오가 사냥가서 잡아온 것으로 준비한 음식을 가지고 돌아와서 식사 후에 있을 자기 아버지의 축복을 바랬다. 그 거룩한 태조 이사악은 일이 잘못 되었음을 알고 크게 놀랐으나, 자기의 축복을 취소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된 일에는 반드시 하느님의 안배가 있었음을 알고 오히려 그 축복이 유효하다고 선언했다. 성서에 있는 내용과 같이 에사오는 이 일에 크게 분통이 터져 동생의 모략을 비난하고, 자기 아버지에게는 축복이란 오직 하나 뿐인가 하고 되물었다.
교부들이 지적한 것처럼 여기서 에사오는 너무나 세속적이고 하늘과 땅의 위로를 동시에 누리려고 하는 사람으로 비유된다. 아버지 이사악은 에사오의 울부짖음에 못이겨 지상의 축복을 주어서 야곱의 지배하에 두었다. 이것 때문에 에사오는 야곱에 대해서 독살스러운 증오감을 품고 자기 아버지가 죽기만을 기다려 동생을 죽이려 했다. 야곱은 사랑하는 어머니 리브가의 충고와 도움을 충실히 따르지 아니 했던들 죽음을 모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 2절 그 역사의 해석
이 흥미있는 이야기의 해석 전에 먼저 말해 두어야 할 것은 교부들이나 성서 해석자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야곱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자녀들의 상징이며, 에사오는 세속적인 사람들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이 양자의 행동을 관찰하지 않을 수 없다.
1. 에사오는 속세 사람의 상징
(ㄱ) 형 에사오는 신체가 건장하고 궁술이 우수하여 항상 사냥에서 잡아 온 것이 풍부하였다.
(ㄴ) 그는 거의 집에 남아있는 일이 없고, 자신의 힘과 소질을 완전히 믿고 항상 산과 들에서 일을 해 왔다.
(ㄷ) 그는 어머니 리브가에게 효도하기 위해서는 별로 노력하지 않았다.
(ㄹ) 그는 탐식가로서 한 그릇의 불콩 요리를 위해서 자기의 장자권을 팔아 넘길 정도로 성찬을 좋아했다.
(ㅁ) 그는 카인과 같이 동생 야곱에 대해서 질투를 가득히 품고 지나치게 학대했다.
그것은 바로 세속의 자녀들이 취하는 태도이다. 세속의 자녀들은 세상의 모든 일에 있어서 그들의 능력과 재치를 신뢰하여 그들은 사실 강력하고 재치있고 현명하나, 천상의 일에 관해서는 너무나 무식하다.
그러므로 세속의 자녀들은 하느님께서 마련한 내적이며, 자기 고유의 집인 자기 영혼 속에 전혀 머물지 않거나, 혹은 조금 밖에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 그 속에서 성스러운 표양에 따라 삶으로써 자기 자신 속에 항상 하느님께서 임하시게끔 하지를 않는 것이다. 이러한 세속인들은 탈속이나 정신적 및 영신적 신심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또한 세속을 멀리하고 외적으로 보다도 내적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바보, 그냥 빌기만 하는 사람(기복적 신앙), 또는 소심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세속인들은 또한 하느님의 자녀들의 어머니인 마리아 공경을 위해서는 별로 노력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리아를 직접 미워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또 때로는 마리아를 찬미하기도 하고 마리아를 사랑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더구나 일종의 신심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마리아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정성된 사랑을 받으면 그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야곱과 같은 정성을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는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어진 자녀들과 종들이 성모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충실히 행하는 신심을 그들은 비난한다. 그들은 마리아의 신심이 영혼 구령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 어떤 고의적인 증오감을 가지지 아니 하고 성모 공경을 공공연히 경멸하지 않는 것으로만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으로 그들은 성모 마리아에게 의합하며 성모 공경을 위해서 되는 대로 어떤 기도를 형식적으로 해버리고 자기 생활을 고쳐 보려고 애도 쓰지 아니하면서도, 성모 마리아를 모시는 종으로 자처한다.
에사오의 자녀들은 세상의 기쁨을 주는 불콩요리 한그릇을 위해서 자기의 장자권, 즉 천국의 기쁨을 팔아 넘긴다. 그들은 웃고 마시며, 먹으면서 즐기고 놀기만 하면서 춤을 추고 에사오처럼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강복받기 위해서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 요약해서 말하면 그들은 세속 일에만 골몰하고 세속의 일과 향락을 위해서만 급급하다. 순간적인 쾌략을 위해서, 헛된 명예심을 위해서, 황금처럼 반짝이는 무가치한 세상의 물건을 위해서 성세 성사의 은헤와 때묻지 않은 순결성의 옷과 하느님의 상속을 팔아버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세속인들은 하느님의 자녀들을 매일 공공연하게 혹은 남모르게 미워하고 학대한다. 이들은 또 하느님의 자녀들을 괴롭히고 멸시하고, 비난하거나 모욕하고, 속이고, 협박하거나 내쫓고 넘어지게 한다. 그래서 그들 자신은 쾌락에 빠지고, 치부하고, 지위를 얻어 출세하고, 안락한 생활을 한다.
2. 야곱은 하느님의 자녀들의 상징
(1) 야곱이 취한 태도
(ㄱ) 동생 야곱은 신체가 약하고 마음이 너그럽고 대부분 집 안에 머무는 탈속덕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ㄴ) 그는 집에 남아 있어 어머니 리브가를 사랑하고 공경하면서 어머니를 모시는 것을 큰 행복으로 삼았다. 그는 어머니에게 의합하지 않은 일은 전혀 하지 아니하고 어머니의 뜻만 따르므로 어머니의 사랑을 더욱 크게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ㄷ)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순종하며 복종하고, 화를 내는 일 없이 자발적으로, 불평없이 사랑의 마음으로 어머니를 따랐던 것이다. 어린 야곱은 어머니의 살짝하는 눈짓에 의해서도 지체없이 행동하면서 일해 왔던 것이다. 어머니의 말이라면 그대로 믿었던 것이다. 야곱은 어머니가 자기 아버지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작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가지고 오라고 말했을 때, 한 사람의 식사를 준비하는 데 양 한 마리로 충분하지 않느냐는 등의 불평도 없이 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실천했던 것이다.
(ㄹ) 그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크게 신뢰하였다. 그는 자기 능력에 조금도 의탁하지 아니하고 순전히 어머니의 알선과 보호에 의탁했던 것이다. 어떤 일이 생기면 반드시 어머니를 불렀고 어떠한 의문이 생기면 어머니에게 질문했던 것이다. 실례를 들어 보면, 야곱이 이러한 일을 하면 자기 아버지의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를 받게 되지 않겠느냐고 어머니에게 물었을 때 리브가가 그러한 저주가 있다면 그 저주는 “내가 받겠다.”고 대답을 하자 야곱은 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믿고 신뢰했던 것이다.
(ㅁ) 마지막으로 야곱은 무척 노력하여 자기가 평소에 보아 온 어머니의 성덕을 따랐다. 그가 즐겨 집 안에 머물러 있었던 것도 매일 눈 앞에 보는 덕이 많은 어머니를 모방하고 생활이 타락된 부패한 동무들을 멀리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자기 아버지로부터 이중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자가 되었다.
(2) 하느님의 자녀들이 취하는 태도
(ㄱ) 하느님의 자녀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어머니의 모범을 따라 세속의 잡된 일을 멀리하는 탈속을 좋아하며 내면적인 생활을 위주로 하여 기도에 전념한다. 그들의 마음에는 마리아의 온전한 영광이 깃들고 그들의 전 생애는 기도로 일관되어 있고 탈속을 즐긴다. 빛의 자녀들이 가다 보면 외부 세상에 나가기도 하나, 그것은 일체 하느님의 뜻을 따라 그리고 사랑하올 어머니의 뜻을 따라 순명하기 위해서 나가는 것 뿐이다. 그들은 오직 자기들의 신분이 요구하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뿐이다. 그들이 외적으로 어떠한 큰일을 한다 해도 내적으로 성모 마리아와 일치하여 하는 일을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부에서 하는 일은 성덕을 위해서는 큰 일이 되며, 외부에서 하는 모든 일들은 한갓 어린이 장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그들의 다른 형제 자매가 활기에 넘쳐 솜씨를 갖고 성공을 하여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면서 큰 일을 이루어 내는 반면에 하느님의 자녀들은 성령의 빛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성모 마리아에게 완전히 복종하므로 세속을 멀리 떠나 있는 것을 더욱 아름다운 일이라고 알고 있다. 그들은 또한 에사오와 그의 자녀들처럼 세상에서 그들 자신의 힘에 의해서만 무슨 일을 이루는 것보다는 고요한 자리에 들어 앉아 있기를 더 좋아한다.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의 참된 부귀는 마리아의 집에 있노라” “그의 집에는 부귀영화가 깃들이고 그의 의로운 행실은 영원히 기억되리라”(시편 112:3) “나의 왕, 나의 하느님, 만군의 야훼여 당신의 제단 곁에는 참새도 깃들이고 제비도 새끼 칠 보금자리 얻었사옵니다.”(시편 84:3) 당신이 일찍 당신의 거처로 삼으셨던 마리아의 집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되나이까? 간선된 자의 집에서 사는 그는 당신의 모든 도움을 받아 눈물의 골짜기, 이세상에 있어면서도 완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덕에서 덕으로 올라가고 있나이다. “만군의 야훼여, 계시는 곳 그 얼마나 좋으신가!”(시편 84:1)
(ㄴ) 간선된 그들의 거룩하온 마리아를 진심으로 애모하여 자비로운 어머니를 주인으로서 진정으로 존경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마리아를 말로서 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하고, 겉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존경하고 있다. 마치 야곱처럼 마리아가 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나 피하고 마리아에게 의합하다고 생각한 것은 전부 실천하는 것이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에게 두 마리의 산양을 가져 왔으나, 그들은 몸과 영혼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성모 마리아에게 가져다 바친다. 이것은 야곱의 작은 산양 두 마리로 상징되는 것이다. 마리아는 그들을 마치 자기의 소유물처럼(잠언 3:9 참조) 받아들이고, 그들을 자기와 자기 죄에 있어서 죽게 하고 이기심에서 벗어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합하게 하신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끊어버리는 사람들을 친구와 제자들로 삼으시기 때문이다. 성모 마리아의 주선과 중재로 몸과 영혼은 모든 더러움에서 결백해지며, 하나의 값진 선물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억제하고 자신을 끊어버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봉헌되어 그 분의 강복받기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내가 지금까지 말해 온 바로써 마리아의 손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헌신한다는 신심가들이 실천적이고 용감한 사랑을 보여 주는 것 뿐이다.
(ㄷ) 하느님의 자녀들은 세상에 살아 계셨던 33년 가운데 30년 동안 어머니 마리아에게 완전히 순종하여 천주 성부께 영광을 돌려 보낸 예수 그리스도의 표양을 본받아 사랑하올 성모 마리아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내 말을 잘듣고 내가 하라는대로 하여라”(창세기 27:8)고 말한 리브가를 따른 어린 야곱처럼 또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대로 하여라”(요한 2:6)고 말한 마리아를 따른 가나 잔치의 사람들처럼 그들은 성모 마리아에게 순종하고, 그녀의 충고를 올바르게 따른다. 야곱은 어머니의 권고를 따랐기 때문에 보통으로서는 받을 수 없는 장자권을 받을 수 있었고, 또 가나 혼인 잔치의 사람들은 마리아의 권고를 따랐기 때문에 어머니의 청에 의해서 물을 술로 만든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기적을 볼 수 있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강복을 받고 하느님의 기적을 얻기에 합당한 모근 사람들은 성모 마리아에게 바친 순종의 덕으로 세상 마칠 때까지 이러한 은혜를 받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에사오의 자녀들은 성모 마리아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이러한 축복마저 잃어 버리게 된다.
(ㄹ) 간선된 하느님의 자녀들은 사랑하올 어머니 마리아의 능력과 온정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마리아의 도우심을 부르짖고, 마리아를 마치 안전하게 항구로 이끄는 북극성처럼 쳐다본다. 그들은 마음을 털어 놓고 마리아에게 괴로움과 어려움을 실토하여 마리아의 전달하심에 의해서 죄사함을 얻고, 환난과 불안 속에서 마리아의 모성적 사랑을 느끼고 인자하시고 감미로운 어머니 마리아에게 매달린다. 또 그들은 극히 작은 죄의 물듬도 깨끗이 씻고 마리아 안에서 영광스러운 왕좌를 지은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찾아내기 위해서 기묘한 방법으로 마리아의 사랑의 결백한 품 속에 완전히 숨어드는 것이다. 아!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아브라함의 품 속에 사는 것이 주께서 친히 그의 왕좌를 지은 마리아의 품 속에 사는 것보다 더 낫다고 믿지 말라”고 게릭 대수도원장을 말했던 것이다.
그 반대로 세속의 자녀들은 자기 자신에만 신뢰한다. 그들은 오직 눈에 보이는 것과 밖에 드러나는 것만을 좋아하고 마리아의 모성적인 사랑과 감미로움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마리아가 주는 안전함을 알지 못하고 간선된 하느님의 자녀가 마리아에게 갖는 굳은 신뢰도 알지 못한다. 그레고리오 성인의 말과 같이 그들은 불행 중에 있으면서도 세속적인 것을 갈망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와 마리아의 마음 가운데 있고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감미를 맛보려 하지 않는다.
(ㅁ) 마침내 빛의 자녀돌은 성모 마리아의 길을 따르고 마리아의 덕을 본받는다. 이렇게 하는데서 비로소 그들은 행복하고 경건해지고 틀림없는 구원의 표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나의 길을 따르는 자는 행복하다.”고 마리아 자신이 말했다. “내가 일러준 길을 따르면 복받으리라.”(잠언 8:32) 하느님의 도우심과 은총으로 나의 생애의 뒤를 따르고, 나의 성덕을 실천하는 자는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현세 생활 중에서도 행복하니, 그것은 나를 충실히 따르지 않는 사람보다 풍성한 은총과 위로를 더 많이 받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죽을 때도 행복하니 그들이 평화롭고 영원한 기쁨으로 인도 되기까지 나는 그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영원 속에 있어서도 행복하니, 그것은 살고 있는 동안 나의 성덕을 본받는 누구도 멸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어두움의 자녀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동안이나 죽을 때나 죽고 나서도 불행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성모 마리아의 성덕을 모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때때로 마리아 신심회에 가입하여 어떤 기도를 바치거나 혹은 외부적 신심을 실천하지만 그것은 오직 외부적인 데에만 머물기 때문이다.
“오 나의 사랑하올 어머니, 마리아여! 나는 뜨거운 마음으로 한번 더 당신께 아뢰나이다. 어긋난 신심에서 방황하지 않고 당신의 길, 당신의 충고, 당신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자는 얼마나 행복하겠나이까! 그러나 당신의 아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므로 마리아의 신심을 남용하고 모욕하는 자들은 얼마나 불행하나이까!
‘당신의 계명을 어기는 거만한 자들, 그 저주받을 자들을 꾸짖으소서’(시편 119:21)
–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中
–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