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풀라를 소중히 여겨라. 그것은 구원의 보증이다. “이 스카풀라를 착용하여라. 그것을 입고 죽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한 불의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구원의 표지가 될 것이며 위험에서 보호되고 평화의 약속이 될 것이다.”
   이것은 1251년 7월 16일 성모님께서 성 시몬 스톡에게 하신 약속이다. 그러므로 스카풀라의 깊은 뜻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성모님은 하늘로부터 풍요로운 선물을 가지고 내려 오셨다. 그리고 우리 각 영혼에게 “그것을 신심깊은 마음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착용한다면 그것은 나의 의복이 될 것” 이라고 말씀하신다.
   “네가 그것을 입음으로써 너는 계속적으로 나를 생각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며 내가 항상 너를 생각하고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도와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은총의 기적

   한 사제가 어느 날 미국 시카고 근교의 작은 마을에 사는, 수년 동안 냉담해 온 어떤 남자의 임종 침상에 불려가게 되었다. 그 사제는 “그는 나를 보고 싶어 했다오. 그러나 그는 말하려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늘 가지고 다니던 작은 스카풀라를 보라고 권하며 ‘내가 이 스카풀라를 당신에게 준다면 이것을 착용하겠습니까?’ 라고 말하고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입겠다고 동의했습니다. 그리고는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그는 고해성사를 했고 하느님 안에서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라고 증언했다.
   이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지난 700년 이상 성모님은 이러한 방법으로 당신의 스카풀라를 사용하여 일을 해오셨기 때문이다.

   성 알퐁소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의 이교인들은 스카풀라를 입는 것에 대해 조롱하곤 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하찮고 시시한 것이라고 공공연히 비난합니다.” 그러나 역대의 여러 교황들이 그것을 승인했고 추천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스카풀라 발현 25주년 이후 복자 그레고리오 10세 교황은 스카풀라를 착용하고 무덤에 안장되기까지 했다. 그 뒤 600년이 지나 무덤을 열었을 때 그의 스카풀라는 아무 손상 없이 그대로인 채로 발견되었다.
   구속주회의 창립자인 성 알퐁소 리구오리와 살레시오 수도회의 돈 보스코 성인은 가르멜 성모님께 대해 아주 특별한 신심을 가졌고 두 성인 모두 갈색 스카풀라를 착용했다. 그들이 죽은 후 제의와 스카풀라는 무덤에 함께 묻혔다. 수년 후 그들의 무덤을 열었을 때 몸과 축성된 제의는 썩어서 먼지가 되었으나 착용하고 있었던 갈색 스카풀라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였다. 성 알퐁소의 스카풀라는 지금도 로마에 있는 그의 수도회에 전시되어 있다.

악마에게서 보호함

   복자 프란치스코 이페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왜 악마가 스카풀라를 전파하는 사람들을 대적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어느 날 그의 스카풀라가 땅에 떨어졌다. 그가 그것을 다시 착용했을 때 악마는 “우리에게서 많은 영혼을 빼앗아가는 그 의복을 벗어버려!” 라고 으르렁댔다. 그리고 나서 악마는 프란치스코에게 악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세 가지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고백하게 되었다. 첫째는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이요, 둘째는 거룩하신 성모님의 이름이요, 셋째는 거룩한 가르멜 산의 스카풀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세 가지에 거룩한 묵주기도를 첨가시킬 수 있다.
   위대한 성인 피터 클레버는 유익을 얻기 위해 스카풀라를 사용한 하느님의 영웅들 중의 하나였다. 매달 천 명의 노예를 실은 배가 남아메리카에 있는 콜럼비아의 카르테제나에 도착하곤 했다. 그는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 먼저 교사를 조직했다. 그리고 노예들이 세례를 받고 스카풀라를 착용하도록 했다. 몇 명의 성직자들은 성인의 열정을 신중하지 못하다고 비난했지만 성 피터는 성모님이 삼십만명 이상의 개종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지켜보실 것을 확신했다.

성모님은 한 선교사를 보호하셨다

   1944년 어느 날, 가르멜 수도회 소속의 어느 사제가 종부성사를 주기 위해 이스라엘 성지에 있는 포로 수용소로 불려갔다. 아랍 사람인 버스 운전사는 도로가 진흙구덩이라서 더 이상 갈 수 없다면서 그 사제를 수용소에서 4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강제로 내리게 하였다. 2킬로미터를 걸은 후 그 사제는 자신의 발이 진흙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단단한 곳에 발을 내딛으려고 애썼지만 그는 결국 진흙 웅덩이 속으로 미끄러졌다. 점점 가라앉아 죽게 될지도 모르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는 성모님과 스카풀라를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수도복에 걸쳐 입은 큰 스카풀라에 입맞추고 난 후 하느님의 어머니를 향한 깊은 신심으로 가르멜의 거룩한 산을 쳐다보았다.
   그는 “가르멜 산의 거룩하올 어머니, 저를 도와 주소서. 저를 구해 주소서!” 라고 소리쳤다. 잠시 후 그는 자신이 마른 땅 위에 있음을 알았다.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저는 갈색 스카풀라를 통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도움으로 구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내 신발은 진흙에 빠졌고 나는 온통 진흙으로 덮혀 있었지만 마리아를 찬양하면서 남은 길을 걸어갔습니다” 라고 말했다.

바다에서 구출된 사건

   오늘날까지 계속 전해져 오는 스카풀라에 관한 또다른 이야기는 1845년에 일어난 것이다. 그해 늦여름에 “대양의 왕” 이라는 이름을 가진 영국 배가 사나운 허리케인의 한가운데에 말려들게 되었다. 바람과 파도가 무자비하게 배에 휘몰아쳤을 때 한 개신교 목사가 자기 부인과 자녀들과 다른 승객들과 함께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구하며 갑판으로 겨우 기어 올라왔다. 곧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다. 그런데 선원 중에는 아일랜드인 존 맥아울리프란 젊은이가 있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그 젊은이는 자신의 셔츠를 열고 스카풀라를 벗어서 그것을 쥐고 사나운 파도 위에 십자성호를 그은 후 바다로 던졌다.
   바로 그 순간 바람은 잠잠해졌다. 한 줄기의 파도가 다시 한번 갑판 위를 씻어내렸다. 그 때문에 그 젊은이가 던진 스카풀라가 그 파도와 함께 실려왔다가 그의 발치에 놓이게 되었다. 피셔 목사는 맥아울리프의 행동과 그 기적을 주의깊게 지켜보았다. 그 젊은이에게 계속 의문을 가졌고, 사람들은 성모님과 스카풀라에 대해 듣게 되었다. 피셔 목사와 그의 가족은 너무나 큰 감동을 받게 되었으며 가능한 한 빨리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성모님의 스카풀라의 보호를 받는 기쁨을 누리고자 결심했다.

– 하워드 래퍼티 신부, OC
– 마리아 1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