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명수호 대학생회를 알게 된 것은 작년 9월 서울대교구의 ‘한마음 한몸 생명 운동본부’ 전담수녀로 일을 하면서 부터였다. 한 선배의 부음과 그 죽음에 냉담한 이웃들의 반응을 보면서 모이게 된 그들을 촛불을 밝히고 로사리오 기도가운데서 시대적 아픔의 원인을 찾았다고 한다.
하느님이 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인 생명의 존업에 대한 도전, 곧 부모가 자녀를 죽이고 자녀가 부모들을 죽이는 ‘죽음의 문화’가 이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음을 보고 그들은 그 문화에 반기를 들고 결연히 일어섰고 그리하여 ’94년 5월에 ‘생명 수호 대학생회’를 발족하였다.
‘생명 수호 대학생회’는 반생명적인 현상을 고발하고 저항하기 위한 젊은이들의 단체로 현재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몇몇 학생들로 이루어져 있다. 진리 탐구의 문화 창조를 주요 기능으로 삼고 있는 대학 그곳에서 기존 가치체계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학생 운동이라면 이것이야말로 학생운동 중의 운동이 될 것읻. 그것도 가장 시급한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응답이다. 한 생명은 온 우주를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한 존재라는 역설적 진리를 인식하고 죽음의 문화에 대항하여 생명 문화를 수호하려는 모임인 이 모임은 무고한 생명 힘없고 방어능력이 없는 생명들에 대한 유린에 대해 더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정의의 외침이다.
“당신이 강간당한 여성에게서 잉태된 생명을 낙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강간당한 여성과 생명을 경멸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고의 저변에는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에 대한 경멸이 깔려 있다.”
강간당한 여성에게서 생겨난 생명에 대한 공격, 즉, 낙태는 거주지와 출신 성분에 따른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편견을 말해준다. 모든 인간은 출신 성분과 장소에 구분없이 평등하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낙태하지 않고 생명을 선택한 여성에 대하여 결코 손가락질할 권한이 없다. 그들은 비가톨릭 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가톨릭 신학자들 사제들 수도자들 평신도들 심지어는 의사들마저 오랫동안 대면하기를 거절해왔던 논재들을 내놓는다. 복음을 위한 투사이기 보다는 적절히 타협할 줄 아는 처세가나 통계자가 되고싶은 유혹에 직면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지는 경고문과 같다.
그들은 현실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함에 있어 순수성과 참신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사명 의식에서 나온 기발한 착상이며 실천적 행동이다.
“성병이나 원치 않는 임신 예방을 위해서는 콘돔을 사용하라.’는 말은 마치 ‘폐암 예방은 필터있는 담배로’라고 말하는 유치한 선전과 다를 바 없습니다.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있듯이 유일한 폐암 예방법은 금연을 통해서 입니다.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AIDS예방법은 절제를 통해서 입니다.’담배는 폐암을 유발할 수 있으며, 특히 청소년과 임산부에게 위험합니다.’라는 문구를 담배갑에 넣듯이 콘돔에도 ‘위험한 성행위는 당신에게 AIDS 등의 성병을 유발할 수 있으며 콘돔사용 실폐율은 특히 청소년에게 매우 높습니다.’ 와 같은 문구를 넣어야 합니다. 콘돔의 이러한 실패율에 대한 정직한 정보제공은 건강권과 생명권에 관한 정보이기에 국민들에게 정확히 인식되어야 하며 남성보호 차원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들에게까지 피해가 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생명 수호 대학생회’를 학생 운동으로 소개하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분단 이후 우리나라의 최대 당면과제는 민주화와 통일로 집약되어 왔다. 그리고 그러한 민주화와 통일에 기폭제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 학생 운동이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학생운동의 최고 관심은 민족의 생존이라는 목표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 이후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정부는 인구 증가를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들고 출산 저하를 통한 인구 억제 정책으로 산아 제한을 적극권장하였다. ‘ 잘살아보세.’ ‘둘만낳아 잘 기르자.’ 등의 정부의 세뇌 교육은 자녀들이 많으면 못살고 돈만 많으면 잘사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이러한 독단적인 정책에 대한 반기가 ‘생명 수호 대학생회’가 갖는 강한 역사 인식을 보여준다.
“그동안 의료인들은 독재 정권의 독단적인 정책으로 조장되어온 낙태 집행과 ‘죽음의 문화’의 하수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제는 문민 시대가 왔고 권력을 위해서라면 폭력을 불사하던 사람들이 역사의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의료인들이 자신의 양심으로 엄숙히 선서한 바를 거스르는 반생명적인 행위를 중지하지 않는다면, 독재 정치의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심판대에 서게 될 날이 분명 오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이들은 시대를 앞선 선구자적 사명감과 순교자적 정신을 지니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키며 언젠가 그들에게 던져질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준비하는 이땅의 젊은이들이다. 또한 이 운동의 저변에는 강렬한 민족의식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젊은이가 줄어들고 노년층이 많아 지는 나라들에서는 국방을 이행할 젊은이가 부족한 관계로 핵무기와 같은 가공할 만한 전쟁 수단에 의존하게 됩니다. 핵무기의 개발은 그 나라가 치매에 빠진 노인처럼 변해간다는 노화와 망령의 증거입니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걸 줄 아는 용기있는 나라만이 세계 안에서도 젊은 부강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명 수호 대학생회’의 생명 수호 운동도 기존의 학생 운동이 보여주고 있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다만 주지해야 할 사실은 그들이 한국 초대 교회처럼 자생적으로 태동되었고 그들 스스로 교회에 이 질문들을 제기해왔고 그리고 성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그 답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각종 미신에 대해서 성수를 뿌린다. 인공피임의 높은 실패율과 부작용을 고발하고 ‘safe sex’가 AIDS 위험율을 감소시키고 성병을 예방할 것이라는 미시니 적절한 정보하에 십대들이 ‘safe sex’를 할 것이라는 미신등이 그것이다. 그들은 초대 교회로부터 내려온 교회의 가르침이라는 성수로 현대의 문란한 성 풍속도를 씻어내고 있다. 대안은 절제이며 하느님 말씀대로 생활하는 것이다. 안락사 인공피임 낙태 시험관 아기는 모두 한 연결 고리에 꿰어 있는 죽음의 목걸이와 같다는 걸 알린다. 또한 교회 안에서 귀중한 가르침으로 자리잡혀가는 자연 가족 계획법으로 새로운 페미니즘의 지평을 열어보인다.
“여타의 인공 피임과는 달리 여성의 생리 주기가 존중되는 자연스러운 가족 계획법이며 부부간의 인격적인 만남이 가능한 전인격적인 방법입니다. 또한 자연에 협력하여 피임뿐만 아니라 임신도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여성 자신에 대한 앎으로부터 자기 존중과 진정한 페미니즘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책임하고 무지한 상태로 수많은 부작용들을 가지고 있는 인공피임에 자신의 소중한 생식력을 쉽사리 맡기지 마십시오.”
또한 생명 수호 운동은 비폭력적인 학생 운동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가장 큰 모토가 온 우주에 가치를 둔 한 생명이라도 살리는데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생명 수호 대학생회’가 부단한 자기 정화와 선택적 휴머니즘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 한 이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죽음의 문화’에 대항하는 파수꾼의 역할과 ‘생명 문화’를 꽃피울 작은 겨자씨의 역할을 독특히 해낼 것으로 본다.
이런 학생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길 간절히 비는 마음 뿐이다.
– 배미애/마리진 (착한목자수녀회 수녀)
– 1996년 5월 가톨릭 다이제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