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무염시태학술원 총장, 안드레아 M. 데스쿠르 추기경 (바티칸)

2001년 6월 7일, 바티칸의 교황청 무염시태 학술원 총장 안드레아 추기경님은 메쥬고리예 본당의 사제 앞으로 감사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메쥬고리예로의 동정 마리아의 20년째 방문 기념일 축하식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프란치스칸 공동체의 기도에 내 기도를 합하며, 메쥬고리예를 방문하는 모든 이에게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스플리트-마카르스카의 은퇴하신 대주교, 몬시뇰 프레인 프레닉 (크로아티아)

2001년 6월 13일, 스플리트-마카르스카의 은퇴하신 대주교, 몬시뇰 프레인 프레닉은 메쥬고리예 성모님 발현 20주년 기념 행사에 대해서 헤르체고비나의 프란치스코회에 서한을 보냈습니다. “성모님께서 여러분들의 관구에 발현하시고, 그를 통해 전 세계에 오신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러우실 것입니다… 선견자들이 처음의 기도하던 그 열정으로 언제까지나 견딜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파르노의 주교, 몬시뇰 마리오 첵치니 (이탈리아)

파르노(이탈리아 앙코나)의 주교, 마리오 첵치니 몬시뇰은 로마의 교황청 라테라노 대학의 특별 교수인데, 메쥬고리예에 개인적으로 이틀 동안 머물렀습니다. 성모승천대축일에는 이태리어 미사를 집전하였습니다.
몬시뇰 첵치니는 메쥬고리예에서 활동하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기를 원했지만, 그에게 고해성사를 받으려는 수많은 순례자들 때문에 그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주교님은 계속해서 고해소에 머물러있어야 했습니다. 몬시뇰 첵치니는 메쥬고리예의 평화의 모후의 성지를 떠나며 매우 긍정적인 인상을 갖고 그의 교구로 돌아갔습니다.

브루보스나, 사라예보의 대주교, 빙코 풀리이치 추기경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로마에서의 10번째 주교 시노드 “주교 : 세계의 희망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종” (2001년 9월 30일~10월 28일) 중에 빙코 풀리이치 추기경님은 [슬로보드나 달마치야]의 특파원, 실비예 토마세비치의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인터뷰 내용은 2001년 10월 30일, [슬로보드나 달마치야](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 출판되었습니다.  
“메쥬고리예의 현상은 지역 주교와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관할에 속해 있습니다. 그 현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때까지는 그러할 것입니다. 이른바 발현이 끝날 때 까지는 말이죠. 그 이후엔 또 다른 방법으로 조사가 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메쥬고리예는 두가지 측면에서 조사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가지는 기도와 고해 등의 신심 행위에 관한 측면입니다. 다른 한가지는 발현과 메세지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매우 엄밀하게 조사될 것입니다.”

맥켄지 교구의 주교, 몬시뇰 데니스 크로토우, OMI (캐나다)

맥켄지 교구의 주교,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수도회의 몬시뇰 데니스 크로토우는 2001년 10월 29일에서 11월 6일까지 캐나다 순례자들과 함께 메쥬고리예로 개인적인 순례를 했습니다.
“나는 올해 4월 메쥬고리예에 처음 왔었습니다. 4월 25일부터 5월 7일까지 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암행이었죠; 아무도 내가 주교인지 몰랐습니다. 나는 메쥬고리예에 관해서 들어왔었고, 내가 만일 사제로서 왔다면, 사제들의 맨 앞에 서야 할 것임을 알았었습니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원했고, 사람들이 어떻게 기도하는지 보기를 원했으며, 그들과 똑같이 있으면서, 메쥬고리예가 어떤 곳인지 좋은 견해를 얻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함께 있었습니다. 73명의 순례자들과 함께 왔었는데, 아무도 내가 주교인지 몰랐습니다. 단지 신자일 뿐이었죠. 마지막에, 비행기를 타기 위해 스플리트로 가기 전에 내가 말했습니다. “저어, 나는 주교입니다.” 내가 전혀 주교처럼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우 놀랐습니다! 나는 주교로 돌아가기 전에 메쥬고리예에 대해서, 한명의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느끼고 싶었습니다.
나는 책도 많이 보았고, 테잎도 들어봤습니다. 선견자들과 성모님의 메세지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고, 약간의 마찰도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분을 숨겼던 것이고, 그렇게 하여 메쥬고리예에 대한 나만의 의견을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감동했기 때문에 난 캐나다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순례단을 구성하고 싶거든, 내가 후원하겠습니다. 내가 돕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린 순례단을 조직했고, 지난 월요일, 10월 29일에 도착해서 11월 6일에 떠납니다. 8일을 온전히 이곳에서 보낼 것이고 사람들은 정말, 정말 메쥬고리예에서의 경험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오고 싶어할 것입니다!
나와 대다수의 사람들을 가장 감동하게 한 것은 바로 기도하는 분위기입니다. 개인적으로, 지난번과 이번에 역시 내가 감동한 점은 이것입니다. 선견자들은 큰 기적이나 뭔가 특별한 것이나 세계의 종말, 재앙과 징벌에 대해 전혀 강조하지 않습니다. 단지 성모님의 메세지를 강조합니다. 즉, 기도와 회개, 고해, 묵주기도를 바치고, 미사에 참례하는 것, 신앙을 실천하고, 자애를 실천하며, 가난한 사람을 돕는 등, 그것이 바로 메세지입니다. 비밀이 있지만, 선견자들은 그걸갖고 뭔가 크게 내보이려 하지 않습니다. 성모님의 메세지는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정말 기도를 잘합니다! 큰 소리로 찬양하고, 큰 소리로 기도합니다, 정말 기분이 좋아질 것입니다. 이곳이 진실하다는 것을 믿게 해줄 것입니다. 저는 다시 올 것입니다. 확실해요! 나는 당신을 위해 기도할 것이고, 당신께 강복을 줍니다.”

마리보르의 주교, 몬시뇰 프랑크 크램베르거 박사 (슬로베니아)

2001년 11월 10일, 슬로베니아 푸이스카 고라에서의 미사 강론 중에 주교님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셨습니다.
“메쥬고리예 성모님의 친구이자 순례자인 여러분 모두에게 문안합니다. 특별히, 오늘, 훌륭하고 대단한 손님, 프란치스코회 사제 요조 조브코 신부님께도 문안합니다. 그의 이야기로 그는 우리에게 메쥬고리예의 신비를 가까이 가져다주었습니다. 메쥬고리예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동네 이름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메쥬고리예는 성모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나타나시는, 은총의 장소입니다. 메쥬고리예는 넘어진 이들이 다시 일어나는 곳이고, 순례하는 모든 이들이 별을 발견하는 곳이며, 그 별은 새로운 삶의 방향을 보여주고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교구가, 아니 온 슬로베니아가, 전 세계가 메쥬고리예와 같이 된다면, 최근에 벌어졌던 일들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폴리의 은퇴한 대주교, 코라도 우르시 추기경 (이탈리아)

2001년 11월 22일에서 24일까지 추기경님은 평화의 모후 성지, 메쥬고리예를 개인적으로 방문하였습니다. 추기경님은 1908년 바리의 안드리아에서 태어나셨고, 몇몇 교구의 대주교를 지내셨으며, 마지막 임지는 나폴리였습니다. 1967년 교황 바오로 6세 성하께서 그를 추기경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는 교황 선거를 위한 비밀회의에 두번 참여했었습니다.
94세의 나이로 그는 메쥬고리예를 방문하고 싶어하였습니다. 건강 상태 때문에 배나 비행기를 이용하지 못하고, 나폴리로부터 차로 약 1450킬로미터의 거리를 달려왔습니다. 도착해서는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셨습니다. 선견자들을 만나고, 성모님이 발현하시는 동안 함께 있었습니다. 세명의 사제들이 함께 왔었는데, 몬시뇰 마리오 프랑코, 예수회 마씨모 라스트렐리 신부, 빈첸조 디 무로 신부였습니다.
추기경님은 “묵주기도”라는 소책자를 쓰셨었는데, 벌써 여섯번째 판이 출판되었습니다. 추기경님은 그 소책자에 “메쥬고리예와 다른 여러 곳에서 복되신 성모님께서 발현하십니다.”라고 쓰셨었습니다.
메쥬고리예에 머무신 동안 추기경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논의하러 온 것이 아니라, 기도하려고 왔습니다. 나는 완전하게 회개하고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이 곳에 오게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얼마나 큰 은총인지 모릅니다.” 선견자 마리아 파블로비치-루네띠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시는 동안 함께 자리했던 추기경님은 “성모님의 기도로 내 모든 죄를 용서받기 위한 은총을 얻어주셨음을 확신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산 라몬의 보좌주교, 몬시뇰 제랄드 안톤 제르딘, OFM (페루)

페루, 산 라몬의 보좌주교, 몬시뇰 제랄드 안톤 제르딘은 2002년 7월 4일에서 6일까지 메쥬고리예를 방문하였습니다. 주교님은 처음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키릴로스와 메서디스트파의 프란치스코회 관구에서 오셨습니다. 주교님이 메쥬고리예에 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신문에서 메쥬고리예의 발현에 관한 것들을 보았고, 사람들이 뭔가를 가져다 주는 것도 받아봤습니다. 특별히 감동한 점은, 사람들이 점점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려고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모든 상황을 이용해서 하느님께 다가가려 하는 것 말입니다. 사람들은 하느님께로의 문이 열린 것을 발견했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은총을 구하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입니다: 미사를 통해서 하느님께 언제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 변화되고, 더 좋게 되며, 더욱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자그레브의 어떤 복사단 아이들이 순례할 때 메쥬고리예에 몇시간정도 머물렀었습니다. 정말 짧았습니다. 이번엔 이틀을 머물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보러 왔지만, 그보다 많은 것을 경험합니다. 어제는 거룩한 미사를 봉헌했고, 오늘은 발현산에 올라가서 우리의 소명, 성직에 대한 사명을 묵상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퍼질 수 있도록 우리에게 필요한 선교사들,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하느님과 성모님께 청할 것입니다.”

오옘 교구의 주교, 몬시뇰 쟝 빈센트 옹도 (가봉)

주교님은 2002년 청소년대회 중에 동료와 함께 개인적으로 메쥬고리예에 방문하였습니다. 이미 사제였을 때 메쥬고리예를 방문한 적이 있었고, 주교가 된 후에는 처음이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는 가족과 함께였습니다. 오늘 나는 다시 가족과 함께 이곳에 있습니다. 개인적인 것이죠. 우리는 기도하기 위해, 성모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따라 살기 위해 이 곳에 왔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나의 교구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묵주기도와 성시간 기도… 하지만 이 곳이 훨씬 더 특별히 아름다운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구는 작은 그룹이거든요.
이곳에서의 발현이나 성모님의 현존에 대해서는, 이렇게 며칠 머물러서는 정확한 의견을 주기가 어렵습니다. 내게 식별을 위한 필요한 모든 요소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확실히 무언가가 이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선견자 마리야를 만나고 기도하는 동안 함께 자리할 수 있는 은총을 얻었었습니다. 그때 내 이성을 초월하는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분석적인 사고력은 뭐든지 설명하려 들지만, 내 생각엔 이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단지 감탄하는게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이곳에서 우리에게 촉구하십니다. 의심을 하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빛을 더욱 비춰주실 것입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살기 위한 것이지 특이한 것을 찾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세계 모든 곳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와서 하나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보면서 열광합니다 – 그것은 기도라는 언어였습니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봤을 때, 처음 겪는 일은 아닙니다. 파티마와 루르드에서도 발현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메쥬고리예를 말하고 있죠. 이러한 체험들이 과거에도 있었다면, 현재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나와 함께 가봉에서 온 우리 대표단은 메쥬고리예에 관해서 전할 것입니다. 광고까지는 하지 않겠지만요. 사람들은 메쥬고리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메쥬고리예의 소식지를 정기적으로 받아보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성모님은 당신을 평화의 모후라고 나타내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근심에 쌓여있는지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우리는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그 평화를 찾고 있습니다. 많은 순례자들을 만나게 되었었는데, 그들이 가진 고뇌와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모든 고통을 성모님께 맡겨서 내적인 평화를 얻고자 이 곳에 온 것입니다. 이 곳에 온 사람들은 관광객들로서 온 것이 아니라, 성모님 안에서 쉬기 위해 온 것임을 압니다.
우리 교구에서 보고 겪을 수 있는 것들이 이 곳에서와 다르지 않습니다. 각각의 본당에서는 젊은이들이 미적지근하고 열의가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런 모임(청소년대회)에 오게되면 그들은 살아있고, 따뜻하고, 깨어있는 교회를 찾게되며, 함께 기뻐하고 행복해합니다. 이렇게 이곳에서 경험한 것들은 어쩌면 강한 느낌으로 남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젊은이들, 이 어린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조심스러워야 할 것입니다. 그 느낌들은 메쥬고리예를 떠난 뒤에도 신앙을 계속해서 성장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강한 믿음의 경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카디프/웨일즈의 은퇴한 대주교, 몬시뇰 죤 워드, 프란치스칸 카푸친(영국)

몬시뇰 죤 워드는 2002년 10월 1일부터 6일까지 영국에서 온 순례자 그룹과 함께 메쥬고리예를 순례하였습니다. 10월 3일에 성 프란치스코 축일을 지내면서 그는 다른 프란치스코회 수사들과 함께했습니다.
몬시뇰 죤 워드는 자기 시간의 대부분을 고해소에서 보냈습니다.

토론토의 은퇴한 주교, 몬시뇰 피어스 레이시 (캐나다)

85세의 몬시뇰 피어스 레이시는 2002년 10월 12일부터 19일까지 캐나다 순례자들과 함께 메쥬고리예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1987년에 한번 메쥬고리예를 순례한 적이 있었습니다. 10월 13일 주일에는 (파티마의 성모님 기념일임을 강조하셨습니다) 20여명의 사제들과 함께 영어권 순례자 미사를 주례하였습니다. 성구실에 도착하면서 그의 첫번째 질문은 “성모님께서 아직 발현하십니까?”였습니다. 몬시뇰 레이시는 메쥬고리예가 파티마의 연속임을 믿는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나는 1987년에 메쥬고리예에 왔었습니다. 그때에는 모든 것들이 지금보다 발달되지 않고 소박했었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여전히 이 곳에 계시고 성모님께서도 그렇습니다. 당신은 어디를 가든지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이 사람들의 삶에 작용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마약과 알코올에 중독되어서 이 곳에 온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삶이 비참하고 비극적인 상태에 빠져 있다가 하느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당신을 드러내시고 명확히 보여주신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어떤 사제가 제게 말했습니다. 그가 고해를 듣다가 마침내 그만하고 나오려하자 사람들이 그를 다시 고해소로 되돌아가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곳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만족스럽게 느끼고 싶다면, 저 어마어마한 고백성사들로 충분합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내게 있어서는, 그게 메쥬고리예입니다.
내가 토론토에 있었을 때, 80명의 캐나다 주교님들이 교황님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바티칸에서 오신 몇몇 현역 몬시뇰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 중 누군가가 ‘메쥬고리예’라는 단어를 언급했고 나는 “당신은 메쥬고리예를 믿습니까?”라고 물었으며, 그는 “아니오!”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치 나에게 폭죽이 쏟아지는 듯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어리석음과 맞부딪치게 되었으니까요! 2천만명의 사람들이 이 곳에 왔습니다! 장님들도 이곳의 일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교황님께서도 저기 앉아계십니다. 성하께서도 믿고 계시구요. 직접 물어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대꾸하기를 “그건 단지 그분의 사적인 의견일 뿐이오!” 정말 여러가지 방법으로 비방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때로 하느님께서 어떻게 이런 우리를 참고 계시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내게는 성모님의 발현에 아무런 의문도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이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남들에게 신념과 신앙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본보기로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자유입니다. 우리가 믿음과 사랑으로 응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시간은 멈춤없이 흐를 것이고, 하느님께서는 그 모두를 묻으실 것입니다. 나를 포함해서!
메쥬고리예의 기본 메세지는 지극히 확고한 것입니다. 2002년을 살고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육신과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두가 원죄의 흔적을 갖고있습니다. 우리는 사도들의 시대와 다른 모든 세대에서와 똑같은 것을 필요로 합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며 우리들의 부르짖음은 모든 세대에서와 똑같이 크게 울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세지도 똑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없이 지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메쥬고리예의 놀라운 점입니다. 이곳은 하느님의 오아시스이며, 교회가 가져야할 생명력을 지닌 곳입니다. 어떤 이들은 전통이라는 단어를 오염된 것처럼 느끼지만, 전통은 오염된 것이 아닙니다. 종교를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 방황하는 사람들을 다시 하느님께로 되돌리는 것이 바로 사제의 본분입니다. 그분이 신이시며 이러한 곳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음에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다른 여러 곳도 가보았지만, 메쥬고리예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찬란히 빛나는 곳입니다.”

비엔나의 대주교 쉔보른 추기경 (오스트리아)

2002년 12월 1일, 비엔나의 성 스테파노 대성전에서의 교리 교육 중에 추기경님은 다음과 같이 메쥬고리예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메쥬고리예에 대하여, 교회의 판결이라는 관점에서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즉, 메쥬고리예는 하느님 나라의 강렬한 선교-본부가 명백하게 존재하는 그런 장소라는 것입니다. 그 곳에서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기도와 고해, 회개, 화해, 치유와 깊은 믿음을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