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에 깃들이지 못하는 사형수 삶

『내일이면 저는 또 짐을 꾸려 전방(轉房)을 하게 됩니다. 3개월이 이토록 짧은 지…. 새삼스런 생각에 잠시 웃음을 머금어 봅니다. 제가 이

곳에 온 지도 10년이 넘었으니 그 새 40번 넘게 짐을 싸고 또 풀었나

봅니다. 이렇게 하루를 마감할 수 있는 것도 수많은 이들의 사랑과 기도 덕이겠지요』(한 사형수의 편지 중)

사형수임을 알려주는 빨간 명찰이 달린 수의를 조용히 집어들고 간간이 기침을 터트리는 동료들의 얼굴을 살피며 방 한구석에 있는 화장실로 걸음을 옮긴다. 캄캄하기만 한 바깥은 아직도 꼭두새벽임을 말해주고 있다. 차가운 물을 받아 조용히 온 몸에 끼얹으며 누구보다 먼저 하루를 맞는 미카엘(가명)씨는 이런 생활을 몇 년째 해오고 있다.

이부자리를 개고 앉아 조용히 기도를 바친다. 일과가 시작되는 아침 6시, 동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아침점호를 준비한다. 오늘 아침은 좀

특별하다. 전방하는 미카엘씨를 환송하기 위해 같은 방 동료들이 영치금들을 쪼개 특식을 마련한 것이다.

아침식사 후 동료들과 바치는 마지막 성무일도, 세례를 받지 않은 이들도 미카엘씨가 성무일도를 바칠 때면 습관처럼 함께 따라하던 터여서 어색하지 않다.

『병선이, 너 나가면 어머니께 잘 해드려. 나처럼 후회 말고』『예.

형, 희망을 잃지 마세요. 기도할게요』

3개월인데 그 새 또 많은 재산(?)이 쌓였다. 곧 집행유예로 나갈 병선이와 훈이를 위해 책과 한번도 입지 않은 새 내의를 건넸다. 초범으로

들어와 유독 자신을 따르던 형선이에게는 성서와 묵주를, 다른 동료들에게는 남은 옷가지와 책 등을 골고루 나눠주었다.

방을 나서는 그의 손에는 이부자리와 책 몇 권을 넣은 자루가 전부였다.

『처음엔 3, 40kg이 넘는 자루 대여섯개와 함께 전방을 다녔죠. 그러다 달랑 이부자리와 성서만을 들고 방을 나서는 다른 최고수를 보며

깨달은 게 있어요. 주님처럼 끊임없이 버리는 연습을 해야 언젠가는

제 자신도 미련없이 버릴 수 있겠지요』

『전방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제가 왔다는 소식에 마침 운동을 갔다오던 사람들이 방에 들어오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거예요. 눈만 마주

쳐도 쩔쩔매는 모습에 제 가슴에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아픔이 피어올랐습니다』

하느님 아들로 새로 난 사형수

미결수 수용실에서 일반재소자와 함께 생활하며「최고수」로 통하는

사형수, 그들에게 이런 경험은 낯선 편이 아니다. 미결수들은 의식적으로 사형수들을 「상전」대접 하려들지만 왕노릇하는 사형수는 없다.

『천사같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종교위원으로 10년 넘게 재소자들을 위해 봉사해오고 있는 ㅇ씨(51)는 사형수와의 첫 만남의 기억을 이렇게 떠올렸다.

『처음엔 내가 그런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지금은 맑디맑은 사형수들의 눈만 쳐다보면 눈물이 나고 만다는 ㅇ씨는 『사형수가 되고 싶어 사형수가 된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공동체의 책임을 역설했다.

솔선수범하고 오히려 다른 재소자를 교화시키는 사형수의 모습에 봉사자들에게는 그들의 과거가 큰 의미가 없다.

사형수가 남기는 그림자

사형수들은 3개월마다 방을 옮겨 다니면서도 기도와 일반 재소자와의

상담, 신앙생활 등을 통해 하느님을 전하는 것을 「최고수」로서의

소명으로 생각한다. 레지오 협조단원으로 활동하며 방 동료들과 기도모임을 갖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보속하는 삶을 통해 영혼의 씻김을 체험한 사형수는 이미 과거의

그가 아닙니다.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그에게만 매달려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지요』

자신이 만나고 있는 사형수 얘기를 할 때면 자신의 친아들 얘기를 하는 것 같다는 ㅇ씨는 신자들 사이에서도 사형존치론이 사라지지 않는

모습에 한숨을 내뱉는다.

『스스로가 만들어낸 두려움을 버리고 사형수들을 한번이라도 만나보세요. 사형이 얼마나 하느님을 아프게 해드리는 제도인지 아시게

될 것입니다』

『한번도 성당에 못 가봤지만 하느님나라는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옥에 들어와서야 하느님을 알게 돼 영세를 한 프란치스코(37)씨는

봉사자들은 물론 재소자, 교도관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사형수다.

『걱정마세요. 하느님을 제일 사랑하고 그 분을 가장 많이 알 때 가는

것도 은총 아니겠어요』

사회가 뒤숭숭해 사형집행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거세질 때마다 프란치스코씨는 오히려 이렇게 주위를 달랜다. 매일매일 최후의 날을 준비하면서 지낸다는 그의 삶은 흡사 봉쇄수도원 구도자의 길과 같다.

사형수라는 자신의 존재를 잊고 사는 것이다. 그의 눈빛을 보고 세례를 받게 됐다는 또 다른 사형수 스테파노씨는 『그의 눈빛만 봐도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알게되더라』는 말로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의 내력을 밝힌다.

『어떻게 죽으면 잘 살았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 때면 제가 받은 사랑, 배운 사랑을 다 나눠주고 하느님 곁으로 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사형수들이기에 이들을 한번이라도 만나본 이들이라면 그들의

눈빛을 가슴에서 지울 수 없다고 한다. 또 봉사자들이 사형수들을 두고 하는 하나같은 말은 그들이 「맑다」는 것이다. 자신의 괴로운 과거는 물론 부모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치부까지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아서일까.

『제가 이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니 당신께서 제 글을 읽어라도 주실까

몹시도 망설였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감히 용서를 청할 수 없어 용서를 구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저로 인해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으시도록 늘 기도 드리겠습니다』(어느 사형수의 편지

중)

눈물 자국이 선명한 편지지에서는 사형수의 진정이 읽혔다.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장 이영우 신부는 『일반인은 사형수의

절반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며 『생명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구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사형수의 얼굴들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쪽에서 시리도록 아파오는

통증을 느낀다는 봉사자들, 그들에게서는 사형수라는 존재로 인해 더욱 선명히 떠오르는 우리 사회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여러 해 동안 주님을 떠나있다 다시 찾게 됐다는 생각입니다. 이렇게나마 저를 붙잡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평화의 주님을 그리는 한 사형수의 말이 마음 한구석에 또 한줄기 안타까움의 그림자를 드리게 한다.

<서상덕 기자> sang@catholictime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