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날이 지났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지난 여러번 환시 때에는 겨우 한 뼘밖에 되지 않던 밀포기의 키가 지난번에 온 비와 그 후에 계속된 좋은 날씨 이후에는 많이 자라서 이삭이 생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가벼운 바람에 아직 여린 밀포기의 대가 물결친다. 가벼운 바람이 가장 이른 과일나무들의 새로 난 잎들을 살랑거리게 하는데, 그 나무들에서는 꽃이 겨우 떨어졌거나 꽃잎들이 아직 휘날리며 떨어지는 가운데, 더럽혀지지 않고 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그런 것과 같이 아름다운 연하고 반짝이는 연초록색 잎들이 돋아났다.
  철이 더 늦은 포도나무들은 아직 잎이 나지 않고 마디들이 드러난 채로 있으나, 얼기설기 얽힌 햇가지들에는 이 줄기에서 저 줄기로 싹들이 벌써 그것을 감싸고 있던 껍질을 부수었고, 아직 벌어지지 않은채로 있지만 장차 잎이 우거진 가지와 새 덩굴손이 될 것들이 들어있는 은회색의 솜털을 벌써 보이고 있다. 포도밭의 구불구불한 목질(木質)의 꽃줄장식은 부드러워지면서 새롭게 우아한 모습을 갖추는 것 같다. 벌써 뜨거운 해는 물을 들이고 식물성 방향(芳香)을 증류하는 일을 시작하고, 어제만 해도 아직 창백하던 것을 더 선명하게 물들이는 동안 뜨겁게 하여, 밭고랑과 꽃이 핀 풀밭과 곡식이 자라는 밭과 채소밭과 과수원, 작은 숲과 벽과 말리느라고 넌 빨래에서 여러가지 조금씩 다른 냄새를 풍겨 오직 하나인 후각(嗅覺)의 교향악을 만들어 놓는다. 이 교향악은 여름내내 계속되다가 포도송이가 눌려 포도주로 변하는 양조통 안에서 강한 포도즙 향기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나뭇잎 속에서 노래하는 새들과 양떼들 속에서 조용히 우는 양들과 숫양들이 하나의 합창을 이룬다. 비탈에는 남자들의 노래와 어린이들의 웃음소리와 여자들의 미소가 있다. 봄이다. 자연도 사랑하고, 사람도 내일이면 그를 더 부유하게 할 자연의 사랑을 즐기고, 이 잔잔한 깨어남 속에 더 강렬하게 불타는 그의 사랑도 즐긴다. 그에게는 아내가 더 사랑받는 것같이 보이고, 아내에게는 남편이 더 큰 보호자로 보이며, 두 사람에게 아이들은 더 사랑스러워 보인다. 지금은 미소요 일손인 아이들이 내일 늙었을 때에는 약해져 가는 노인들에게 역시 미소와 보호가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산의 기복에 따라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밭들 사이로 지나가신다. 혼자시다. 마지막 모직옷을 사무엘에게 주셨기 때문에 아마포옷을 입으셨다. 그러나 꽤 선명한 파란 가벼운 겉옷을 입고 계신데, 한 어깨에만 걸치셨고, 그것은 부드럽게 늘어져서 몸에 감겼는데, 그것을 한 팔에 걸쳐 가슴 앞에 들고 계신다. 팔에 걸친 겉옷자락은 땅으로 기어 다니는 아주 가벼운 바람에 조금씩 나부끼고 예수의 머리 위에서는 햇빛을 받아 머리카락이 반짝인다. 예수께서는 지나가시며, 어린이들이 있는 곳에서는 몸을 굽혀 죄없는 작은 머리들을 쓰다듬어 주시고, 그들의 조그마한 비밀이야기들을 들으시고, 어린이들이 달려와서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보여드리는 것을 감탄하며 보신다.
  너무 작아서 아직 뛀 적에는 비틀거리는 어린 계집아이가, 아마 저보다 조금 위인 오빠에게서 물려받은 너무 긴 옷 속에서 갑갑해하며 온다. 미소가 온통 그의 눈을 빛나게 하고 볼그레한 입술 사이로 작은 앞니를 드러내 보인다. 계집아이는 데이지 꽃다발을 들고 있는데, 몹시 가냘프고 작은 고사리 손이 들 수 있을 만큼 큰 꽃다발을 두 손으로 들고, 그 트로피를 들어 올리면서 말한다. “자! 이건 아저씨 거야. 엄마건 나중에 만들 거야. 여기 뽀뽀 해줘!” 그러면서, 예수께서 칭찬하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하시면서 꽃다발을 받으셨기 때문에 이제는 아무 것도 없는 작은 손으로 그의 작은 입을 친다. 계집아이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거의 균형을 잃을 정도로 신발을 벗은 발뒤꿈치를 쳐들며 그 작은 몸을 예수의 얼굴에까지 올리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소용이 없다. 예수께서는 웃으시면서 계집아이를 안으시고 큰 나무에 새가 앉아 있듯이 팔위에 웅크리고 있는 계집아이와 함께 시내의 맑은 물에 새 천들을 빠는 한떼의 여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신다. 그 천들은 그 다음 널어서 햇볕에 희어지게 할 것이다.
  물 위에 몸을 구부리고 있던 여자들이 인사를 하려고 몸을 일으키고, 그 중 한 여자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한다.
  “타마르가 선생님을 방해했군요…. 그렇지만 선생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겠다는 은근한 희망을 가지고 새벽부터 거기서 꽃을 따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 먼저 드리려고 했기 때문에 제게는 꽃을 한 송이도 안 주었답니다.”
  “이 꽃들은 어린이들처럼 죄가 없고. 또 꽃처럼 죄없는 어린 계집아이가 주었기 때문에 내게는 왕의 보물보다도 더 소중하오.” 그리고 계집아이에게 입맞춤을 하시면서 땅에 내려놓으시고 인사를 하신다.
  “주님의 은총이 네게 오기를 바란다.” 예수께서는 여자들에게 인사하시고 길을 계속하시면서, 밭이나 풀밭에서 인사를 하는 농부들과 목자들에게 답례를 하신다.
예수께서는 예리고로 가는 방향인 아래쪽으로 가시는 것 같다. 그러나 이내 뒤로 돌아오셔서 에프라임 북쪽에 있는 산들 쪽으로 다시 올라가는 다른 오솔길로 들어서신다. 이곳이 땅에 햇볕이 더 잘 들고, 북풍이 막혀서 곡식이 더 아름답게 자랐다. 두 밭 사이로 지나기는 오솔길 한쪽에는 거의 규칙적인 거리를 두고 과일나무들이 있는데 얼마 안 있어 열매가 될 싹들이 벌써 가지에 진주처럼 다닥다닥 달려 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오솔길을 건너지른다. 교차점에 로마인들이 사용하는 저 마일 표석(標石)들 중의 하나가 있는 것으로 보아 꽤 중요한 도표인 모양이다. 표석의 북쪽 면에는 “네아폴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그 이름 – 라틴인 자신들처럼 튼튼한 비명 글씨로 크게 새긴 – 아래에는 훨씬 더 작은 글씨로 “세겜”이라는 글자가 화강석에 겨우 새겨져 있다. 서쪽면에는 “실로-예루살렘”이라고 새겨져 있고, 남쪽을 향한 면에는 “예리고”라고 새겨져 있다. 동쪽에는 이름이 없다. 그러나 도시 이름은 없지만 인간의 불행의 이름은 하나 있는 것 같다. 과연, 로마인들이 유지보수하는 모든 도로에 그런 것과 같이 비가 올 때에 물이 흘러내리라고 파놓은 길옆의 도랑과 마일 표석 사이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 하나있는데, 어쩌면 죽었는지도 모르는 넝마와 뼈의 꾸러미와 같다. 예수께서는 봄 소나기로 흐드러지게 우거진 길가의 풀 가운데에서 그를 발견하시자 그에게로 몸을 굽히시고 그를 만지시며 부르신다.
  “여보시오, 어떻게 된 거요.”
  신음소리가 대답한다. 그러나 넝마 뭉치가 움직이고, 몸을 돌리더니, 죽은 사람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을 해골처럼 마른 얼굴이 나타난다. 피로하고 고통스러워하고 활기 없는 두 눈이 자기의 비참한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을 놀라서 쳐다본다. 그는 바싹 마른 손으로 땅을 짚고 앉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하도 약해서 예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일어나 앉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예수께서는 그를 도와 그의 등을 마일 표석에 기대게 하시고 물으신다.
  “무슨 일이오? 병들었소?”
  “예.” 매우 약한 “예” 소리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상태로 혼자서 길을 떠날 수 있었소? 아무도 없소?”
  그 사람은 누가 있다는 표를 한다. 그러나 너무 약해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주위를 둘러보신다. 밭에 아무도 없다. 정말 인기척이 없는 쓸쓸한 곳이다. 북쪽에는 거의 언덕 꼭대기에 집이 몇 채 있고, 서쪽에는 다른 둥근 언덕을 올라가며 밭이 풀밭과 작은 숲으로 변하는 푸른 비탈에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염소떼 가운데 목자들이 있다. 예수께서는 다시 그 사람을 내려다보시며 물으신다. “내가 도와주면 저 마을까지 갈 수 있겠소?”
  그 사람은 고개를 젓고, 눈물 두 줄기가 뺨으로 흘러내린다. 그 사람의 검은 수염으로 그 사람이 아직 젊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겠는데, 그의 뺨은 나이 많은 사람처럼 꺼칠꺼칠해 보인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말한다.
  “그들이 저를 내쫓았어요…. 문둥병이 무서워서… 저는 아닌데요…. 그래서 배가 고파… 죽어갑니다.” 그는 허약으로 죽어간다. 그는 손가락 하나를 입 속으로 집어넣더니 주리끼한 죽 같은 것을 꺼낸다.
  “보세요…. 저는 낟알을 씹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풀입니다.”
  “내가 저 목자를 찾아 가겠소. 따듯한 염소젖을 가져오겠소. 빨리할 거요.” 그러면서 거의 뛰다시피 하여 길 위쪽 200미터쯤 되는 곳에 염소떼가 있는 곳으로 가신다.
  예수께서는 목자에게로 가셔서 그에게 말씀을 하시고 사람이 있는 곳을 가리키신다. 목자는 몸을 돌려 바라보고, 예수의 청을 들어주어야 할지 망설이며 결정을 못한다. 그러다가 결정을 한다. 그는 모든 목자가 그런 것처럼 허리에 차고 있던 나무 공기를 떼어내서 한 염소의 젖을 짜 그릇에 가득 채워서 예수께 드린다. 예수께서는 조심조심 비탈을 내려오시고, 목자와 같이 있던 어린이 하나가 따라 온다. 예수께서 다시 굶주린 사람 곁에 오셨다. 그리고 그 사람 옆에 무릎을 꿇으시고 그를 받쳐 주시려고 한 팔을 그의 어깨 뒤로 돌리시고, 아직 거품이 이는 염소젖이 있는 그릇을 그의 입술에 갖다 대신다. 예수께서는 조금씩 몇 모금을 주시고, 그릇을 땅바닥에 내려놓으시며 말씀하신다.
  “지금 당장은 그것으로 넉넉하오. 한꺼번에 전부 먹으면 당신에게 해가 될 거요. 내가 준 염소젖을 당신의 위가 흡수하면서 기운이 나게 놔두시오.”
  그 사람은 반대하지 않는다. 그는 눈을 감고 입을 다문다. 어린 아이는 몹시 놀라서 그를 보고 있다.
  조금 후에 예수께서는 다시 그에게 그릇을 갖다 대고 더 오랫동안 마시게 하신다. 그리고 멈추는 시간을 점점 더 짧게 하시며 염소젖이 다 없어질 때까지 이렇게 하신다. 예수께서는 공기를 어린 아이에게 돌려주시고 그를 보내신다.
  그 사람은 천천히 기운을 차린다. 그는 아직 자신없는 움직임으로 보기 흉하지 않게 되려고 애쓴다. 그는 자기 옆에 풀에 앉으신 예수를 쳐다보며 감사의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사과한다.
  “선생님께 시간을 허비하시게 하는군요.”
  “괴로워하지 마시오! 형제들을 사랑하는데 쓰는 시간은 절대로 허비하는 시간이 아니오. 당신이 좀 나아지거든, 이야기 합시다.”
  “나아졌습니다. 팔다리가 다시 따뜻해지고 눈이… 저는 여기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가엾은 제 아이들! 저는 일체의 희망을 잃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희망을 그렇게도 많이 가졌었는데요!…. 선생님이 오지 않으셨더라면, 저는 죽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길바닥에서 ….”
  “그것은 사실 매우 슬픈 일이었을 거요.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당신 아들을 굽어보시고 도와주셨소! 좀 쉬시오.” 그 사람은 잠시 동안 하라는 대로 한다. 그리고 눈을 다시 뜨고 말한다.
  “저는 다시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오! 에프라임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
  “왜요?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소? 당신 그곳 사람이오?”
  “아닙니다. 저는 큰 바다 근처 얍니아 평야 사람입니다. 그러나 해안을 끼고서 갈릴래아의 가이사리아까지 갔습니다. 그런 다음 나자렛에 갔습니다. 저는 여기에(그러면서 배를 친다) 병이 있으니까요. 이 병을 아무도 고쳐주지 못했고, 이 병 때문에 밭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이 다섯이 있는 홀아비입니다…. 우리 고장의 – 저는 가자에서 태어났습니다. – 펠리시테인 아버지와 시로-페니키아 사람인 어머니에게서 난 어떤 사람, 갈릴래아의 라삐를 따라 다니던 우리 고장의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 하나와 같이 우리들에게 와서 그 라삐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도 그 사람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몹시 병이 중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시리아 사람이고 펠리시테 사람이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기에는 쓰레기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헤르마스테아는 갈릴래아의 라삐가 능력도 있고 친절도 하다고 말하더라. 그런데 나는 그의 말을 믿는다. 그래서 그분을 찾아가겠다’하고 그리고 더 나은 계절이 되자마자 아이들은 저희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병이 많은 재산을 먹어치웠기 때문에 제가 가지고 있던 얼마 안 되는 재산을 모아 가지고 라삐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여행 중에는, 특히 아무 것이나 다 먹지 못할 때에는 돈이 빨리 떨어집니다…. 그리고 아파서 걸음을 걸을 수 없어서 여관에 머물러 있을 때에는요. 세포리스에서는 제가 쓸 돈과 라삐에게 드려야할 것을 드릴만 한 돈이 없기 때문에 제 나귀를 팔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병을 고치기만 하면, 길을 가면서 무엇이든지 먹고 오래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서 내 밭과 다른 사람들의 밭에서 일을 해서 제 처지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었습니다…. 그러나 라삐는 나자렛에 계시지 않고 가파르나움에도 안 계십니다. 라삐의 어머니께서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라삐는 유다에 있어요. 세포리스의 요셉의 집에서나 베짜타에서나 게쎄마니에서 찾아보아요. 그 사람들이 자매가 어디 있는지 말해 줄 수 있을 겁니다’하고 그래서 걸어서 뒤돌아 왔습니다. 병은 커지고 돈은 줄어들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가 보라고 사람들이 그래서 갔었는데, 거기서 사람들은 만났지만 라삐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오래 전에 쫓겨났소. 그 사람은 최고회의의 저주를 받았소. 그 사람은 도망쳤기 때문에 어디 있는지 모르오’하고, 저는… 죽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오늘처럼 이요 오늘보다 더 하기까지 했습니다. 시내와 시골로 가서 백명이나 되는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와 같이 울었습니다. 저를 때리는 사람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성전 담 밖에서 구걸을 하기 시작한 어느 날 바라사이파사람 둘이 ‘이제는 나자렛의 예수가 에프라임에 있는 것을 알았으니…’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이렇게 약한 대로 얻어먹으면서, 옷은 점점 더 찢어지고. 병은 점점 더해가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길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들었습니다…. 오늘은 저기 저 마을에서 옵니다.
  저는 이틀 전부터 야생 회향(茴香)밖에 먹지 못하고 풀상추와 여물지 않은 낟알밖에는 씹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 얼굴이 창백하기 때문에 저를 문둥병자로 알고 돌을 던져 쫓았습니다. 저는 그저 빵만 달라고 청하고 에프라임으로 가는 길만 가리켜 달라고 했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쓰러졌습니다…. 그렇지만 에프라임에 가고 싶습니다. 저는 목적지에 아주 가까이 왔는데요! 제가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라삐를 믿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헤르마스테아도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데도 라삐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저를 낳은 분들의 죄를 보복하시려고 당신의 손을 제게 무겁게 느끼게 하실 수가 있습니까?”
  “참 하느님은 사람들의 아버지이시고 공평하시지만 인자하시오, 하느님께서는 믿음을 가진 사랑에게 상을 주시고 죄없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죄가 아닌 잘못을 갚게 하시지는 않소. 그러나 라삐의 거처를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당신은 왜 오늘보다도 더 죽는 줄로 느꼈다고 말했소?”
  “그것은 제가 ‘라삐를 찾기도 전에 잃었구나’하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 당신의 건강 때문에!”
  “아닙니다.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뿐이 아니라, 헤르마스테아가 라삐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는데, 내가 라삐를 알게 되었더라면 더 이상 쓰레기 같은 인간이 아니게 될 것같이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그분이 메시아라고 믿는 거요?”
  “그렇게 믿습니다. 메시아가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만 나자렛의 라삐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믿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런데 만일 나자렛의 라삐가 하느님의 아들이면, 할례를 받지 않은 당신의 청을 들어주리라고 확신하오?”하고 물으실 때 아주 환한 미소를 지으신다.
  “헤르마스테아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저는 확신합니다. 헤르마스테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의 구세주이시네. 그분에게는 히브리인이나, 우상숭배자나,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고, 다만 구원해야 할 인간들만이 문제가 되는 걸세. 주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위해서 그분을 보내셨으니까’하고 여러 사람이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었습니다. 내가 그분께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하고 말할 수 있으면, 그분은 제 청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오! 선생님이 에프라임 분이시면 저를 그분께 데려다 주십시오, 어쩌면 그분의 제자 중의 한분이신지도….”
  예수께서는 점점 더 미소하시며 그에게 권하신다.
  “당신을 고쳐 달라고 내게 청해 보시오….”
  “여보세요, 선생님은 친절하십니다. 선생님 곁에는 평화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라삐 바로 그분처럼 친절하십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라삐께서 선생님께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주셨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친절하신 걸 보면 그분의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들을 라삐의 제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친절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육체는 고칠 수 있다 해도 영혼은 고치지 못하신다 말하더라도 선생님께 모욕이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헤르마스테아가 그렇게 된 것처럼 영혼도 고쳐지기를 바랍니다. 의인이 되기를… 그런데 이것은 라삐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병자인 것 외에 죄인이기도 합니다. 저는 어느 날 육체가 죽고, 영혼도 육체와 같이 죽는 것을 보기 위해서제 육체의 병이 고쳐지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헤르마스테아는 라삐는 영혼의 생명이시고, 그분을 믿는 영혼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산다고 말했습니다. 저를 라삐에게 데려다 주십시오. 친절을 베풀어 주세요? 왜 웃으십니까? 혹 제가 헌금을 한 푼도 할 수 없으면서 병 고치기를 원하니 뻔뻔스럽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러나 병만 나으면, 저는 아직 밭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주 훌륭한 과일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삐께서 과일을 거두는 계절에 오시면, 라삐께서 원하시는 만큼 오랫동안 환대하며 갚아드리겠습니다.”
  “라삐가 돈을 받는다고 누가 말했소? 헤르마스테아가?”
  “아닙니다. 오히려 헤르마스테아는 라삐께서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제일 먼저 구제해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의사들에 대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고 또… 요컨대 모든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라삐의 경우는 그렇지 않소. 내가 장담하오. 그리고 당신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의 믿음을 여기서 기적을 청할 정도까지 이르게 하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을 정도까지 이르게 하면, 당신이 기적을 얻게 될 거요.”
  “참말입니까?…. 획실합니까? 물론 선생님이 라삐의 제자 중의 한분이시면,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잘못 생각하실 수도 없지요 그리고 비록 라삐를 뵙지 못하는 것이 섭섭하긴 하지만… 선생님께 복종하겠습니다…. 라삐는 그렇게 박해를 당하시니까 아마… 사람들이 당신을 보는 것을 원치 않으시겠지요…. 이제는 아무도 믿지 않게 되신 거지요. 라삐의 생각이 옳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분의 파멸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진짜 히브리인들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좋습니다. 저는 여기서 (그러면서 매우 어렵게 무릎을 꿇는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당신의 믿음이 받아 마땅한 것처럼 되기를 바라오”하고 예수께서 병에 명령하시는 손짓을 하시면서 말씀하신다. 그 사람은 일종의 현기증을 느낀다. 즉 뜻하지 않은 빛을 받는다. 그는 깨닫는다. – 그의 지능이 열리는 것으로 그랬는지 육체적인 감각으로 그랬는지, 또는 동시에 두 가지 모두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하도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아마 보려고 길 쪽으로 내려온 목자가 걸음을 재촉할 지경이다.
  그 사람은 얼굴을 풀 속에 묻고 땅에 엎디어 있다. 그래서 목자는 지팡이로 그를 가리키며 말한다.
  “죽었습니까? 어떤 사람이 볼장 다 보았으면 염소젖 말고 다른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머리를 흔든다.
  그 사람은 그 말을 듣고 튼튼하고 건강한 몸으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외친다.
  “죽었다구요? 나는 병이 고쳐졌습니다! 나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분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나는 이제 배도 고프지 않고 병으로 아프지도 않습니다. 나는 내가 결혼하던 날과 같습니다! 오! 복되신 예수님! 그런데 제가 어떻게 선생님을 더 일찍 알아뵙지 못했습니까?! 선생님의 연민을 보고 선생님의 이름을 알았어야 했는데! 선생님 곁에서 느끼던 평화로! 저는 바보였습니다. 이 불쌍한 종을 용서하십시오,” 그러면서 다시 땅에 엎드리며 경배한다.
  목자는 염소들을 놔두고 껑충껑충 뛰면서 작은 마을 쪽으로 달려간다.
  예수께서는 병이 고쳐진 사람 옆에 앉으셔서 말씀하신다.
  “당신은 혜르마스테아에 대해서 죽은 사람 이야기를 하듯 했소. 그러니까 당신은 그의 최후를 아는 거요. 나는 당신에게서 한 가지만 요구하오. 당신이 나와 같이 에프라임으로 가서 나와 함께 있는 어떤 사람에게 그의 최후를 이야기하라는 거요. 그런 다음 당신을 예리고에 있는 여자 제자에게 보내서 그 여자가 당신의 돌아가는 여행을 도와주게 하겠소.”
  “선생님이 원하시면 가겠습니다. 그러나 건강하게 된 지금은 제가 길에서 죽을까봐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풀을 먹고서도 살 수 있겠고, 또 제가 재산을 쓴 것은 방탕하게 쓴 것이 아니라 올바른 목적을 위해서 쓴 것이기 때문에 구걸을 하는 것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기를 내가 원하요. 그 여자 제자에게 당신이 나를 보았는데 내가 그 여자 제자를 여기서 기다린다고, 이제부터는 그 여자가 올 수 있고, 아무도 그를 귀찮게 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시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아! 저들이 왜 선생님을 미워할까요. 이렇게 친절하신 선생님을?”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라고 그들을 부추기는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오, 갑시다.”
  예수께서는 에프라임을 향하여 길을 떠나시고, 그 사람은 예수를 자신있게 따라 온다. 몹시 야윈 것만이 그가 병들었다는 것과 과거에 부자유를 겪었다는 것을 생각케 한다.
  그러는 동안 작은 마을에서 많은 사람이 내려오면서 손짓을 한다. 그들은 예수를 부르며 걸음을 멈추시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시고 오히려 더 빨리 걸으신다. 그러니까 그들은 예수를 따라 온다….
  예수께서 다시 에프라임 근처에 오셨다. 곧 해가 지게 되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농부들이 예수와 같이 있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예수께 인사를 한다.
  어떤 오솔길에서 가리옷의 유다가 갑자기 튀어나온다. 그는 선생님을 보고 깜짝 놀라 펄쩍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조금도 놀람을 나타내지 않으신다. 다만 그 사람에게 말씀하신다. “내 제자 중의 한사람이오. 이 사람에게 헤르마스테아 이야기를 해 주시오.”
  “어! 간단합니다. 그 사람은 우리 고장에 남아 있으려고 동료와 헤어지고자 한 다음에도 지칠 줄 모르고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 모두가 선생님을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선생님을 그의 고향에 알리고 싶고, 선생님의 이름을 가장 작은 모든 마을에 알린 다음에는 선생님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속죄하는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동정해서 빵을 주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그 사람에게 축복했습니다. 누가 그에게 돌을 던져도 역시 축복을 하며 물러가서 야생의 열매들과 바위에서 뜯어내거나 모래에서 끌어내는 연체동물들을 먹고 살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그를 ‘미치광이’ 취급을 했지만, 사실은 아무도 그를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가 길에서 죽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바로 제 마을 근처, 유다로 들어가는 길, 거의 국경에서였습니다. 그 사람이 무엇으로 죽었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를 전하는 것을 원치 않는 어떤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다고들 수군수군 말합니다. 그 사람 머리에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말이 그를 쓰려뜨렸다는 말도 있지만 저는 믿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먼지 속에 누워있으면서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엘룰달의 가장 맑은 밤의 마지막 별들과 아침의 떠오르는 해를 보고 미소 짓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은 새벽에 야채를 가지고 시내로 가던 야채 장수들에게 발견되었는데, 이 사람들이 제 오이를 가지러 들렀을 때에 제게 말했습니다. 달려 가 보았더니, 그 사람은 아주 평화롭게 누워 있었습니다.”
  “들었느냐?”하고 예수께서 유다에게 물으신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에게 선생님께 봉사하고 오래 살거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정확히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지나간 세월로 네 생각이 가려졌구나. 그러나 그가 전교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혹 내게 봉사를 하지 않았느냐? 그가 오래 살지 않았느냐? 하느님께 봉사하다가 죽는 사람의 그 쟁취보다 더 긴 수명이 어떤 것이냐? 길고 영광스러운 수명이?”
  유다는 내 마음에 몹시 거슬리는 그 야릇한 웃음을 웃으며 아무 말도 대꾸하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작은 마을의 사람들이 에프라임 사람 여럿과 만나서 예수를 가리키며 자기들끼리 말한다.
  예수께서 유다에게 명령하신다.
  “이 사람을 집으로 데리고 가서 음식을 마저 먹여라. 이 사람은 벌써 시작되는 안식일이 지난 다음에 떠날 것이다.” 유다는 순종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혼자 남으셔서, 이삭이 생기기 시작한 밀대를 살펴보시려고 몸을 굽히시며 천천히 걸어가신다. 에프라임 사람들이 예수께 묻는다.
  “밀이 훌륭하지요?”
  “훌륭하오. 그러나 다른 지방의 밀과 다를 것이 없소.”
  “물론이지요, 선생님. 어느 거나 다 밀이니까요! 그러니 같을 수밖에 없지요.”
  “그렇소? 그러면 밀은 사람들보다 낫소. 과연, 밀은 제대고 씨를 뿌리기만 하면, 유다에서나 갈릴래아에서나 또는 큰 바다를 끼고 있는 평야에서나 같은 열매를 맺소. 이와 반대로 사람들은 같은 열매를 맺지 않소. 또 땅도 사람들보다 낫소. 땅에 씨를 맡기기만 하면, 땅은 그 씨앗이 사마리아에서 왔든지 갈릴래아에서 왔든지 차별을 하지 않고 씨를 친절하게 대하기 때문이오.”
  “맞습니다. 그렇지만 왜 땅과 밀이 사람들보다 낫다고 말씀하십니까?”
  “왜냐구요?…. 조금 전에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을의 이 집 저 집의 문전에서 불쌍히 여겨서 빵을 하나 달라고 청했소.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유다의 어떤 곳에서 온 줄 알고 내쫓았소. 돌팔매와 ‘문둥병자’라는 외침으로 내쫓았는데, 문둥병자라는 이름은 그 사람이 야위였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었지만, 그가 떠나온 고장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었소. 그래서 그 사람은 길에서 굶어 죽을 뻔했소. 그러므로 그 마을 사람들, 내게 질문을 하라고 당신들을 보냈고 기적을 받은 사람을 보려고 내가 머무르고 있는 집에 오고 싶어하는 그 사람들은 밀과 땅보다 더 나쁘오. 그것은 비록 내가 오래 전부터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그들은 유다인도 사마리아인도 아닌 저 사람, 나를 한번도 본 적이 없고 내 말을 들은 적도 없지만, 내 제자들 중 한사람의 말을 받아들여 나를 알지 못하면서 나를 믿은 저 사람이 맺은 것과 같은 열매를 맺을 줄 몰랐기 때문이오.
  그리고 그들이 이 땅들보다도 더 나쁜 것은 그 사람이 다른 씨에서 왔다고 해서 배척했기 때문이오. 이제는 기진맥진한 사람의 굶주림을 만족시킬 줄 몰랐던 그들이 그들의 호기심의 욕구를 만족시키려고 오고 싶어 하오. 선생님은 쓸데없는 그 호기심을 만족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하시오. 그리고 그것이 없이는 당신들이 절대로 나를 따를 수 없을 중요한 사랑의 법칙을 모두 배우시오. 당신들의 영혼을 구해 줄 것은 내게 대한 사랑, 오직 이것만이 아니고, 내 가르침에 대한 사랑도 있어야 하오, 그런데 내 가르침은 인종이나 재산의 구별 없는 형제적인 사랑을 가르치오. 그러므로 내 마음을 몹시 슬프게 한 냉혹한 마음을 가졌던 그들은 돌아가라고 하시오. 그리고 내가 그들을 사랑하기를 바라면 뉘우치라고 하시오.
  당신들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인자하고 공정하기도 하고, 차별을 두지 않고 당신들을 갈릴래아 사람들과 유다 사람들만큼 사랑하지만, 이로 인해서 당신들이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 되었다고 교만해져서는 안 되고, 내 질책을 두려워하지 않고 악을 행해도 좋다는 허락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오, 나는 내 친척들이거나 내 사도들이거나 다른 어떤 사람에게 대해서나 정의가 원하는 것에 따라 칭찬도 하고 비난도 하오. 그리고 내 꾸지람에는 사랑이 들어 있소.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정의를 실천한 사람에게 어느 날 상을 줄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정의가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오. 그들에게 가서 이것을 알리시오, 그리고 이 교훈이 모든 사람에게서 열매를 맺기를 바라오.”
  예수께서는 겉옷을 잘 여미시고, 질문자들을 놓아두시고 빨리 에프라임 쪽으로 향하신다. 그들은 매우 당황해하며 동정심을 가지지 않았던 작은 마을 사람들에게 선생님의 말씀을 되풀이 하려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