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 평화!” 며칠 전에 앞으로 가서, 그들이 모은 병자들과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걸어서 건너는 곳 강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던 목자 제자들의 인사이다.
“너희들에게 평화. 나를 기다리는 지가 오래 되었느냐?”
“사흘째 됩니다.”
“나는 길에서 붙들렸었다. 병자들에게로 가자.”
“저희들은 병자들이 이웃 마을들로 왔다 갔다 하지 않고 들어 있을 천막들을 쳤습니다. 양젖은 저희 친구 목자들이 병자들을 위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양떼들을 데리고 여기서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고 제자들은 그곳으로 피해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지붕 노릇을 할 수 있을 만큼 우거진 작은 숲으로 예수를 인도하며 말한다. 그곳에는 말뚝들이나 이 나무줄기에서 저 나무줄기에 걸쳐서 쳐놓은 작은 천막이 스무 채쯤 있고, 그 아래에는 비참한 하층민 병자들의 무리가 기다리고 있는데, 지금 오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자마자 그들은 으레 하는 소리를 지른다. “다윗의 후손 예수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예수께서는 그들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기를 원치 않으셔서, 당신의 큰 키로 인하여 천막 안에서 서 계실 수가 없으므로 이 천막에서 저 천막으로 당신을 보이시기보다는 오히려 몸을 숙이시면서 천막마다 얼굴과 미소를 넣어 주신다. 그것이 벌써 하나의 은총이다. 예수의 등 뒤에 있는 해가 예수의 그림자를 병상과 야윈 얼굴이나 생기가 없는 팔다리 위에 드리운다. 예수께서는 짤막하게 “믿는 당신들에게 평화”라는 말씀만을 하시고는 다음 천막으로 건너가신다. 그런데 외침소리가 예수를 따라 온다. 예수의 말씀이 되풀이 되는 것과 같이 되풀이 되는 외침소리, 그 전의 천막에서 나오는 외침의 메아리인 것처럼, 예수께서 방금 떠나신 천막에서 되풀이 되는 외침이다. “나는 나았다. 다윗의 후손에게 호산나!” 그리고 처음에는 어두운 천막 안에 누워 있다가 나와서 선생님의 발자취에 모이는 하층민의 병자들, 지팡이와 목발들을 집어던지고, 그들이 누워 있던 들것의 담요로 몸을 감싸고, 이제는 쓸데없게 된 붕대들을 끌러 버리고, 특히 병이 나은 기쁨으로 어쩔 줄을 모르는 하층민의 병자들이다.
이제는 그들 모두가 병이 나았고, 예수께서는 말할 수 없이 다정스러운 미소를 지으시고 돌아다보시면서 말씀하신다. “주님이 당신들의 믿음을 갚아 주셨소. 함께 주님의 인자를 찬미합시다.” 그리고 시편 노래를 시작하신다. “온 땅에서 즐겁게 하느님께 환호하고 기쁘게 주님을 섬겨라. 환희 속에 주님 앞에 오너라. 주님이 하느님이시고, 그분이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을 인정하여라….”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대로 따라 한다. 아마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어떤 사람들은 흥얼거리면서 노래를 따라 한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노래를 하고, 그들의 얼굴의 환한 빛이 그것을 나타낸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완전하지만 메마른 노래보다는 분명히 이 흥얼거리는 콧노래를 더 잘 받아들이실 것이다.
마티아가 예수께 말씀 드린다. “주님, 주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 요한에 대한 말씀을 해 주십시오.”
“이 장소가 내 마음에 세례자의 모습을 한층 더 생생하게 생각나게 하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고 말씀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셔서 고운 풀이 쪽 깔린 조금 두둑한 띠 모양의 땅으로 올라가셔서 말씀을 시작하신다.
“여러분은 무엇을 찾아 이곳에 오셨습니까? 병자들 여러분은 육체의 건강을 찾아 왔는데, 여러분은 건강을 받았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말을 찾아 왔는데, 여러분은 그 말을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건강은 영의 건강을 찾는 준비가 되어야 하고, 이와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전하는 말도 여러분의 의덕을 준비하는 것이 되어야합니다. 육체의 건강이 살과 피의 기쁨에만 한정되고 영에 속한 것에 대하여는 무력한 채로 있으면 불행한 일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건강과 더불어 은혜를 주신 주님을 찬미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환희의 순간이 지나간 다음에도 주님께 대한 여러분의 감사의 뜻을 나타내는 것을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감사하는 마음은 주님을 사랑하겠다는 진정한 뜻으로 나타납니다.
하느님의 어떤 은혜도, 비록 그것이 활동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만일 사람이 그 대신에 자기 자신의 영을 하느님께 바치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곳은 요한의 전도를 들은 곳입니다. 여러분 중에 요한의 전도를 들은 사람이 분명히 몇 명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이 그의 전도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세례자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말을 했지만,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결과를 나타내지는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와 같이 많은 차이가 나는 것입니까? 그 차이가 어디에서 옵니까? 그 말을 받아 넣은 사람들의 서로 다른 의지에서 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 말들이 실제로 내게 대한 준비를 시켰고, 따라서 그들의 거룩함을 준비시켰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반대로 내게 대항하게 그들을 준비시켰고 따라서 그들의 불의를 준비시켰습니다. 그 말들은 보초의 외침같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런데 외침소리는 다만 하나뿐이었는데도 정신의 군대는 갈라졌습니다. 그들 중의 일부분은 그들의 사령관을 따라 갈 준비를 하였고 그들 중의 일부분은 나와 나를 따르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하여 무장하고 계획을 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패배할 것입니다. 내부에서 분열한 나라는 강할 수가 없고, 외국들은 그를 굴복시키기 위하여 그 사태를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의 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나 좋은 힘과 좋지 않은 힘이 있습니다. 지혜는 사람 전체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한 부분, 즉 좋은 부분만을 군림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 부분만을 택해서 그것을 여왕을 삼으려는 의지에 관하여는 세속의 아들들이 능력이 더 많습니다. 세속의 아들들은 그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할 때에는 완전히 악할 줄을 압니다. 그리고 그들 안에서 반항할 수 있을 좋은 부분은 쓸데없는 옷처럼 버립니다.
이와 반대로 세속에 속해 있지 않고 빛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은 세속의 아들들을 어렵게 본받아서 그들이 거부하는 옷, 그들 안에서 반항하려고 시도하는 나쁜 부분을 멀리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만일 눈이 죄짓는 기회가 되거든 그 눈을 빼 버리고, 손이 죄짓는 기회가 되거든 그 손을 잘라 버리라고, 왜냐하면 두 눈이나 두 손을 가지고 영원한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손이 잘린 채 영원한 빛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낫기 때문이라는 말을 내가 한 일이 있습니다.
세례자는 우리 시대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그를 안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그의 영웅적인 모범을 본받으시오. 요한은 주님과 자기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정의에 충실하기 위하여 한 눈이나 한 손보다 더한 것, 즉 자기 목숨까지도 버렸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그의 제자였고, 아직도 그를 사랑한다고 말할 사람이 아마 여럿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선생들에 대한 사랑은 그들이 가르친 것을 행하는 것으로, 그들의 의로운 행실을 본받는 것으로, 또 자기의 온 존재를 다해서 영웅적인 행동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자 이렇게 하면,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건강과 지혜의 선물이 효력없이 남아 있지 않고 단죄가 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우리 모두를 당신 나라에 들어오도록 기다리시는 나와 여러분의 아버지의 처소에 올라가는 사다리가 됩니다.
세례자의 희생, 즉 순교로 마무리 지어진 희생의 일생과 내 희생, 즉 희생의 일생, 그리고 내 예고자의 순교보다도 백배 천배 더 위대한 내 수단으로 끝나는 내 일생이 여러분의 이익을 위하여, 여러분을 위하여 효력없는 것으로 남아 있지 않게 하시오.
의인이 되고, 믿음을 가지고, 하늘의 말씀에 순종하고, 새 율법 안에서 새로워지시오. 좋은 소식이 여러분을 착한 사람이 되어 영원한 날에 인자하심, 즉 지극히 높으신 주님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얻게 해서 여러분에게 정말 좋은 것이 되게 하시오. 참 목자들과 거짓 목자들을 구별할 줄 알고, 내게서 배운 생명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주는 목자들을 따르시오.
빛의 명절, 성전 봉헌 축일이 가까웠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마음에 빛이 없으면, 명절과 주님을 위해 밝히는 수많은 등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오. 빛은 사랑이고, 등피(燈皮)는 착한 행실로 하느님을 사랑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성전 봉헌을 상기시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영을 하느님께 바치고, 그것을 사랑으로 다시 봉헌하는 것이 훨씬 더 훌륭하고 좋은 일이고, 주님의뜻에 맞는 일입니다. 의로운 영은 의로운 육체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는 제단을 둘러싸고 있는 벽과 같고, 영은 주님의 영광이 내려오는 제단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죄로 더럽혀졌거나 음란이나 나쁜 생각으로 좀먹힌 육체와의 접촉으로 더럽혀진 제단에는 내려오실 수가 없습니다.
착하게 사시오. 끊임없는 생활의 시련 속에서 착하게 살려고 하는 수고는 여러분이 겪은 것 이상으로 미래의 상급으로 갚아지를 지금 부터도 벌써 하루하루가 끝날 때에 의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평화로 갚음을 받습니다. 그들이 쉬려고 누워서, 옳지 않은 향락을 원해서 평화 없는 불안만을 얻게 되는 사람들의 악몽인 가책이 없는 그들의 베개를 발견할 때의 평화 말입니다.
부자들을 부러워하지 마시오. 아무도 미워하지 마시오, 다른 사람들에서 보는 것을 욕심내지 마시오. 무슨 일에서나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영원한 예루살렘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것을 생각하고 여러분의 처지에 만족하시오.
나는 여러분을 떠납니다. 나는 내 제자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러가겠으니까, 여러분 중의 많은 사람이 나를 다시 보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다시 보지 못할 여러분의 자녀들과 아내들에게 특별히 강복합니다. 또 그리고 남자 여러분… 그렇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강복하고자 합니다…. 내 강복은 가장 강한 사람들을 넘어지지 않게 하고 가장 약한 사람들을 다시 일으키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를 미워해서 배반할 사람들에게만 내 강복이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모두에게 함께 강복하시고 그 다음에는 여자들에게 강복하시고, 어린이들을 안아 주시고, 당신과 같이 남아 있는 다섯 사도와 전에 목자였던 제자들과 같이 걸어서 건너는 곳을 향하여 천천히 돌아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