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마음이 곧은 사람들에게 이 알려지지 않은, 그리고 정말 매우 설명적인 복음의 한 페이지가 주어졌다. 요한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그의 복음서를 쓰면서 이 사실을 암시했다. 그가 다른 어떤 복음사가보다도 그 천주성을 더 명백하게 설명하는 그의 선생님의 소원을 따라 알려지지 않은 이 세부사항을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그의 모든 행동과 그의 모든 말을 겸손하고 조심성 있는 수줍음으로 감싸는 처녀 같은 신중함을 가지고 알린다.
내 생애의 가장 중대한 사실에 대해 나와 속내 이야기를 할 수 있던 사람인 요한은 내가 그에게 주던 이 특별한 호의를 보라는 듯 자랑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너희들이 주의해서 읽기를 바란다마는, 오히려 반대로 요한은 그런 사실들을 알리는 것을 괴로워하는 것 같고 ’이것이 우리 주님을 찬양하는 진리이기 때문에 말해야 하지만, 나 혼자 만이 이것을 안다는 것을 보여야 하는 것에 대해 용서를 청한다’고 말하는 것 같으며 그가 혼자만 아는 세부사항을 암시를 할 때에는 간결한 말로 한다.
요한이 나와 만난 것을 이야기 하는 그의 복음서 첫 장을 읽어라.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다시 있다가… 그 두 제자는 요한의 말을 듣고…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 간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안드레아가 먼저 만난….’ 요한은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안드레아를 돋보이게 하고, 자기는 그의 뒤에 가서 숨는다.
가나에서 요한과 나와 함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한다. ‘예수도 제자들과 함께 초대를 받아 와 계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다.’ 믿을 필요가 있는 것은 다른 제자들이었다. 요한은 벌써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믿기 위하여는 기적을 볼 필요가 있었던 것처럼 자기를 다른 제자들과 함께 쓸어 넣는다. 내가 첫번째로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쫓아낼 때, 니고데모와의 대화와 사마리아 여인과의 삽화 때의 목격자였던 그가 절대로 ‘내가 거기 있었다’는 말은 하지 않고, 그가 가나에서 채택했던 방침을 지켜, 그가 혼자 또는 다른 제자 한 사람과 같이 있었더라도 ‘예수의제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해서, 자기의 이름은 결코 말하지 않고, 마치 자기가 가장 충실한 제자 항상 충실한, 완전히 충실한 제자가 아니었던 것처럼 언제나 동료들을 앞에 내세운다. 최후의 만찬의 삽화를 암시하는데 요한이 가졌던 세심성을 기억하여라. 이 삽화에서는 요한이 다른 재자들도 그렇다고 인정하는 귀염둥이였다는 것이 나타나며, 다른 제자들은 선생님의 비밀을 알고자 할 때에는 그의 도움을 청했었다. ‘제자들은 누구를 가리켜서 하시는 말씀인지를 몰라 서로 쳐다보았다. 그때 제자들 중에서 예수가 귀여워하던 제자가 예수의 품에 안겨 있었는데,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눈짓을 하여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여쭈어 보라고 하였다. 그 제자가 예수의 가슴에 기대 있었기 때문에 (주님, 그게 누굽니까?) 하고 여쭈어 보았다.’
또 게쎄마니 동산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함께 부름을 받은 제자로서도 자기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나는 주님을 따라 갔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 이렇게 말한다.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라 갔다. 그 제자는 대사제와 잘 아는 사이여서 예수를 따라 대사제의 집 안뜰까지 들어갔다.’ 요한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내가 붙잡힌 후 처음 몇 시간 동안에 요한을, 요한과 베드로를 보는 위안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그것을 자랑하지 않는다. 수난 때에 주요 인물 중의 한 사람이고, 수난 현장에 끊임없이 있던 유일한 사도이며, 미친듯이 날뛰는 예루살렘 앞에서 사랑과 연민을 가득 안고 그리스도 곁에, 어머니 곁에 용맹하게 있으면서도, 십자가에 못박힘과 죽은 사람의 말이라는 두드러진 삽화를 이야기할 때조차 자기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그저 ‘제자’이고, 이름 없는 사람이고, 그의 사명이었다가 그의 영광이 된 ‘제자’라는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이 없다.
하느님의 어머니의 ‘아들’이 된 그가 이 명예를 얻은 뒤에도 자찬하지 않고, 부활 때에도 이렇게 말한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라자로의 마리아에게서 무덤이 비어 있다는 말을 들은) 곧 떠나 무덤으로 향하였다…. 두 사람이 같이 달렸지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 가 먼저 무덤에 다다랐다. 그는 몸을 굽혀 보았다…. 그러나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우아한 겸손의 표현이다! 귀염둥이이고 충실한 제자인 그가 베드로를 먼저 들어가게 한다. 비겁해서 죄를 지었다지마는 우두머리인 베도로를 말이다. 요한은 베드로를 심판하지 않는다. 베도로는 그의 대사제인 것이다. 요한은 대사제를 자기의 거룩함으로 도와주기까지 한다. ‘우두머리’ 자신들도 그들의 아랫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도록 그들이 필요할 수도 있고, 또 실제로 필요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도자들’보다 나은 아랫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오 거룩한 아랫사람들아, 그들이 잘 질 줄을 모르는 무거운 짐 때문에 몸이 구부러지거나, 명예의 흥분으로 눈이 멀고 취한 ‘우두머리들’을 불쌍히 여기기를 절대로 거절하지 말아라. 오 거룩한 아랫사람들아, 너희 윗사람들의 키레네 사람들이* 되어라. 내 작은 요한아 -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네게 말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 너희들은 앞으로 먼저 달려가서 ‘베드로들’을 인도하고 나서, 그 다음에는 그들의 직책에 대한 경의로 그들을 들어가게 하려고 걸음을 멈추고, 또 -오! 겸손의 걸작품!- 이해하고 믿을 줄을 알지 못하는 ‘베드로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자기들도 ‘베드로들’과 같이 우둔하고 의심 많은 사람들처럼 보이고, 또 그렇게 믿게 하기에 이르는 ‘요한들’이 되어라. 티베리아 호수에서 있은 마지막 삽화를 읽어 보아라. 다른 때에도 여러번 행한 행위를 되풀이하여, 호숫가에 서 있는 사람을 주님으로 알아본 것도 역시 요한이었다. 그런데 음식을 함께 나눈 다음에 ‘저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하는 베드로의 질문에서도 요한은 역시‘제자’이지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니었다.
자기에게 관한 것에서는 요한이 자기를 낮춘다. 그러나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을 점점 더 숭고한 빛으로 빛나게 할 어떤 것에 대한 것일 때에는 요한은 덮은 보를 젖히고 비밀을 드러낸다. 그의 복음서 6장에서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달려들어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려는 낌새를 알아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피해 가셨다.’ 그런데 그가 믿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이 시간을 알린 것은, 그리스도가 사람, 선생님, 메시아, 구세주, 왕이라는 여러 가지 자격으로 당한 유혹과 겪은 투쟁이 다양하고 복잡했다는 것을 신자들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였고, 또한 사람들과 사람들을 영원히 선동하는 사탄이 그리스도를 깎아 내리고 쓰러뜨리고 파멸시키기 위하여 그에게 쓰지 않은 계략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사람과 영원한 사제와 선생님과 주님을 사탄과 인간의 온갖 악의가 좋은 것처럼 제시된 구실의 탈을 쓰고 공격했다. 시민, 애국자, 아들, 사람으로서의 격정이 모두 공격할 수 있을 약한 부위를 발견하기 위하여 자극되거나 시도되었다.
오! 처음의 유혹과 마지막의 유혹밖에는 곰곰 생각하지 않는 내 자녀들아, 너희들에게는 구세주의 피로 중에서, 마지막 피로만이 ‘피로’로 보이고, 마지막 시간들만이 고통스러워 보이고, 마지막 체험들만이 쓰라리고 실망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잠시 동안 내 입장이 되어 보아라. 동포들과의 평화, 그들의 도움, 사랑하는 나라를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정결의식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 갈라진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고 다시 모을 수 있는 가능성, 고통과 노예상태와 독성(瀆聖)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가능성을 사람들이 너희들에게 어렴풋이 예상하게 한다고 생각해 보아라. 또 사람들이 너희에게 왕관을 바친다고 생각하면서 내 입장이 되어 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한 시간 동안 사람으로서의 내 마음을 가져 보라고만 말한다. 그리고, 매혹적인 제안을 받고 너희들이 어떻게 되었겠는지 말하라고. 하느님의 사상에 충실한 승리자가 되었겠느냐? 그렇지 않고 오히려 패배자가 되었겠느냐? 그러한 제안을 받고,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거룩하고 영적인 사람이 되어 나왔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유혹에 동의하거나 위협에 굴복해서 너희 자신을 파멸시켰겠느냐? 또 내 착한 제자들을 나쁜 길로 들게 하고, 이제는 정체가 드러나 그이들의 음모가 폭로된 것으로 인하여 미친 듯이 화가 난 내 원수들과 공공연한 싸움을 시작하게 함으로써, 내 사명과 내 애정에 있어서 내게 상처를 주기 위하여 사탄이 그의 무기를 어느 정도에까지 이르게 하는지를 확인하고 나서 어떤 마음으로 거기서 나왔겠느냐?
요한이 말을 제대로 했는지, 이것 또는 저것이 어느 정도가지 진실인지 재보고, 대조하고, 따져보려고 손에 콤파스와 자를 들고, 현미경과 인간적인 과학 또 율법학자들의 유식한 체하는 논리들을 가지고 있지 말아라. 어제 보여준 삽화에 요한의 글을 겹쳐 놓아서 상황들이 서로 일치하는지 보려고 하지 말아라. 요한은 늙음으로 인한 결함으로 잘못 생각하지 않았고, 작은 요한은 병자의 약함으로 잘못 생각하지 않았다. 작은 요한은 그가 본 대로 말했다. 큰 요한은 사실이 있은 후 많은 세월이 지나서 그가 아는 대로 이야기했고, 장소와 사실을 아주 재치 있게 연결시켜 가면서, 그만이 아는 악의가 없지 않은 그리스도의 대관(戴冠) 시도의 비밀을 알렸다. 백성들 가운데 나자렛 선생님을 이스라엘의 왕을 삼겠다는 생각이 생긴 것은 다리케아에서 첫번째로 빵을 많아지게 한 뒤였다. 그곳에는 마나헨과 율법학자와 다른 사람도 여럿 있었는데, 그들의 정신은 아직 불완전하지만 성실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생각을 받아들여, 선생님을 공경하고, 선생님께 대한 옳지 않은 투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그 사상의 전파자가 되었었다. 그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인간적인 왕권에 대한 꿈과 많은 것으로 더럽혀진 조국을 거룩하게 하겠다는 희망으로 눈이 어두워진 온 이스라엘에 퍼져 있는 그릇된 생각이었다.
또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처럼, 많은 사람이 순박하게 이 사상에 찬동하였다. 대다수는 나를 해치기 위하여 이 사상에 찬동하는 체하였다. 이들은 내게 대한 증오로 결합해서 그들을 항상 갈라놓았던 패거리들 사이의 증오를 잊고 서로 결합하여,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 결정했던 죄악을 합법적인 것으로 보이게 하기 위하여 나를 유혹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내 편에서 약함이나 교만을 보이기를 바랐었다. 이 교만과 이 약함, 그런 다음 그들이 내게 바치는 왕관을 받으면, 그들이 내게 대해 하려고 하던 비난들을 정당화하였을 것이다. 또 그리고… 그런 다음 이것을 가지고 가책에 시달리는 그들의 음험한 정신을 편안하게 하는데 썼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믿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자기 자신들에게 ‘나자렛의 선동자를 벌한 것은 로마이지 우리가 아니다’라고 말했겠기 때문이다. 그들은 원수의 합법적인 제거, 그들의 구세주를 그들은 원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선언을 시도한 이유는 이런 것들이었다. 그 뒤에 따라온 더 강한 증오를 이해하는 관건은 이런 것이었다. 끝으로 그리스도의 심오한 가르침은 이런 것이었다. 그것을 이해들 하느냐? 이것은 하느님과 나 자신의 사명, 내 친구들, 몽상가들, 내 원수들, 사탄과 사탄이 나를 유혹하기 위하여 사용하던 사람들에 대한, 그리고 사물과 사상에 대한, 겸손과 정의, 순종, 용기, 조심성, 충실성, 용서, 참을성, 경계, 인종(忍從)의 교훈이다. 사람의 거룩한 목적, 즉 하늘과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곰곰 생각해서 받아들이거나 물리치거나 해야 하고,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해야 한다.

작은 요한아, 내게 있어서 사탄의 시간 중의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그리스도가 그런 시간들을 겪은 것과 같이 작은 ‘그리스도’들도 그런 시간들은 겪는다. 그 시간들을 교만하지 않고 낙담하지 라고 겪고 극복해야 한다. 그 시간들이 목적이 없지 않다. 좋은 목적이 없지 않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 시간 중에 하느님께서는 충실한 사람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도와주신다. 그런 다음 사랑이 내려와서 충실한 사람들을 왕을 삼는다. 또 그뿐 아니라 이 세상의 시간이 끝난 다음에는 충실한 사람들은 영원한 승리자로 나라에 올라가 영원한 평화를 누린다….
가시관을 쓴 작은 요한아, 내 평화가. 내 평화가….

*역주: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키레네 사람 시몬에 대한 암시로 생각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