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루요? 선생님?” 배의 조작과 항행의 준비를 마치고, 선생님을 따라갈 준비를 갖춘, 사람들이 가득 탄 작은 선대(船隊)의 선두에 자기 배를 타고 있는 베드로가 묻는다.
“막달라로 가자. 내가 라자로의 마리아에게 약속했다.”
“좋습니다” 하고 베드로가 대답하고는, 지그재그로 항행하여 좋은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키를 조작한다.
요안나는 선생님과 성모님과 글레오파의 마리아, 그밖에 마륵지암, 마태오, 알패오의 야고보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과 같은 배에 타고 있다. 요안나는 고요한 여름날 저녁 속에 잠겨있는 호수에 떠 있는 많은 배를 가리킨다. 저녁은, 마치 하늘에서 자수정이나 활짝 핀 등나무 꽃송이들의 폭포가 쏟아지는 것처럼, 석양의 붉은 빛을 부드럽게 해서 보라빛 도는 장막의 폭포를 만들어 놓는다. 요안나는 말한다. “저 배들 가운데에는 아마 로마 여자들의 배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고요한 저녁에 고기잡이를 하는 체하는 것이 그 여자들의 오락중의 한 가지입니다.”
“그렇지만 남쪽에 더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지적한다.
“오! 아니예요, 베냐민. 그 사람들은 빠른 배들과 능란한 뱃사공들을 두었어요. 그 사람들은 저기까지 와요.”
“그들이 할 걸로 말하면…” 하고 베드로가 투덜거린다. 그리고 항행과 고기잡이를 오락으로 보지 않고, 직업으로 보고, 엄격하고 유익한 법으로 규제되는 종교로까지 생각하는 어부의 고집을 가지고 입속으로 계속 중얼거린다. 항행과 고기잡이를 서투르게 사용하는 것이 그에게는 하나의 모독같이 생각되는 것이다. “그들의 향과 꽃과 향수와 그밖의 악마 같은 것들로 물을 썩게 하고, 그들의 음악과 새된 괴성과 그들의 이야기로 고기들을 혼란시키고, 그들의 연기나는 횃불로 고기들을 놀라게 하고 무턱대고 던지는 그들의 그물로 호수 바닥과 고기의 번식을 망친단 말이야…. 그것은 금지해야 할 거야. 갈릴레아 바다는 갈릴레아 사람과 이 고장 어부들의 것이지 창녀들과 한패거리들의 것이 아니란 말이야…. 내가 주인이었다면! 하느님의, 우리 하느님의 물이고 그분의 자식들의 물인 이곳에까지 그들의… 을 가져오는 이교도들의 배, 떠다니는 악의 소굴, 침대방인 배들아, 너희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텐데…. 오! 아니 저거 좀 봐! 저 배들이 바로 우리를 향해 돌진하는데! 아니, 저걸 볼 수 있어!…. 아니 저걸 가만둘 수 있어…. 아니….”
업신여김으로 숨이 막혀 얼굴이 시뻘개지고, 마치 지옥의 세력과 싸움이라도 하듯이 헐떡이며 이스라엘 사람과 어부로서의 온 정신을 내쏟는 베드로의 이 비난을 예수께서 중단시키신다. “그러나 네가 주인이 아닌 것이 좋다. 네가 주인이 아닌 것이 다행이다! 저들과 너를 위해서, 사실 너는 저들이 좋은 충동을 따르는 것을 막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 인간들을 인도하시는 영원한 자비에 의해서 그들의 정신에 -이교도의 정신이라는 것은 나도 동의 한다만, 천성적으로 착한정신 말이다.- 넣어진 충동을 말이다. 그 인간들은 히브리 나라에 태어나지 않고 로마 나라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서 죄가 없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마침 그들이 선한 것을 지향하는 것을 보시기 때문에 그들을 동정의 눈으로 보시는 것이다. 그리고 너는 사랑을 어기는 행위와 또 하나 겸손을 어기는 행위를 저지르겠기 때문에 너 자신에게 해를 끼칠 것이다….”
“겸손이라니요? 못 알아듣겠습니다…. 호수의 주인이면, 저는 호수를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을 텐데요.”
“아니다, 요나의 시몬아. 아니야, 네 생각은 틀렸다. 우리의 것인 물건들도 하느님께서 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한정된 시간 동안 소유를 하면서, 모든 것을 시간과 공간의 제한 없이 차지하는 분은 오직 한 분뿐이시라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한다. 한 분만이 주인이 시고, 사람들은… 오! 사람들은 큰 우주의 작은 조각들의 관리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주인은 내 아버지이시고 네 아버지이시며,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신 그분이시다. 게다가 그분은 하느님이시다. 따라서 모든 생각과 모든 행동이 지극히 완전하시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진리를 향한 저 이교도들의 마음의 움직임을 호의를 가지고 바라보시고, 또 바라오실 뿐 아니라 선을 향하여 점점 더 가속시킴으로서 그 움직임을 도와주시니, 사람인 네가 그것을 막으려고 하는 것은 결국 하느님께 어떤 행동을 못하시게 막는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느냐? 그런데 사람이 어떤 일을 언제 막느냐? 그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할 때이다. 그러므로 너는 하느님에 대해서 좋지 않은 일을 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결점이 있고, 또 인식과 판단 능력이 하도 한정되어 있어서 열에서 일곱번은 그릇된 판단을 할 정도이기 때문에 형제들을 판단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니, 하느님의 행동을 판단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나쁠 것이다. 시몬아, 시몬아! 루치펠은 하느님의 생각 중의 하나를 판단하고자 해서 그것을 틀렸다고 생각하고 자기를 하느님보다 더 옳다고 믿고 하느님 대신이 되고자 했다. 시몬아, 루치펠이 어떻게 하는데 성공했는지 너도 알지. 또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이 이 교오에서 왔다는 것도 알지….”
“선생님, 말씀이 옳습니다! 저는 지극히 불쌍한 놈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선생님!”
그리고 언제나 충동적인 베드로는 키의 손잡이를 놓고 예수의 발앞에 가서 엎드린다. 그러니까 갑자기 제멋대로 내버려진 배는 마침 빠른 물살을 타고 방향을 잃고 무섭게 빗나가, 클레오파의 마리아와 요안나, 그리고 베드로의 육중한 배가 이제는 그들을 덮치려고 하는 것을 본, 가벼운 쌍둥이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다행히도 마태오가 빨리 키의 손잡이를 다시 잡으니, 배는 앞뒤로 무섭게 흔들린 다음 항로를 도로 잡는다. 심하게 흔들린 것은 다른 배에 있던 사람들이 이 배를 멀리 미느라고 노들을 써 갑자기 흔들리게 하고 소용돌이를 일으켰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봐, 시몬! 언젠가 자네는 로마 사람들이 우리를 덮치려고 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서투른 뱃사공으로 취급하면서 욕을 했었지. 그러나 오늘은 자네가 처량한 꼴이 됐구먼…그것도 바로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이 어떻게 모두 배에서 일어서서 보고 있는지 바라보게…” 하고 가리옷 사람이 로마 사람들이 배들을 가리키면서 베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려고 말한다. 로마인들의 배는 막달라 앞의 거울같이 잔잔한 물에 하도 가까이 와 있어서 저녁의 보라빛 장막이 빛을 없애면서 더 어두워졌는데도 볼 수가 있을 정도이다.
“자낸 바구니 하나하고 물통 하나도 잃었네. 시몬, 갈고리를 가지고 건져 볼까?” 하고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다른 배에서 말한다. 그 사건이 있은 후에 모두가 베드로의 배 둘레로 모여들었기 때문에 야고보의 배도 이제는 아주 가까이에 와 있다.
“그렇지만 형은 어떻게 한 거야? 그런 일은 한번도 없었는데 말이야!” 하고 안드레아가 또 다른 배에서 큰 소리로 말한다.
그들은 모두 함께 말했는데, 베드로는 모두에게 차례로 대답한다. “그들이 나를 보았다구? 상관없어! 그들이 내 마음도 보았으면 좋았을 걸…. 좋아, 베드로야. 그 말을 하지 마라…. 그렇지만 자네가 내게 해를 까치지 않는다는 걸 알아두게. 그건 배를 잘못 다루어서 그런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모욕을 줄 수 있다는 좋은 원인으로 일어난 일일세…. 야고보, 걱정하지 말게! 낡아빠진 것들이 가라앉았는걸…. 내 안에서 저항하고 있는 낡은 사람도 그것들 다음으로 물속에 던져버릴 수 있으면 좋겠네! 나는 모든 것을 배까지도 잃더라도, 정말 선생님이 원하시는 대로 됐으면 좋겠네…. 내가 어떻게 했느냐구? 야! 하느님께까지 교훈을 하려고 하는 나 자신, 내 오만에 대해서 나는 배에 관한 일에 있어서까지도 바보라는 것을 증명한 거다…. 나로서는 잘된 일이다. 나 자신을 가지고 나 자신에게 비유를 만들어 들려준 거다…. 그렇지 않습니까, 선생님?”
예수께서는 찬성하신다는 것을 보이시기 위하여 미소를 지으신다…. 늘 앉으시는 자리인 고물에 앉으신 예수께서는 머리카락이 저녁바람에 가볍게 물결치는 가운데, 어두워가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흰 모습으로 마치 빛과 평화의 천사와 같이 황혼 속에 두드러져 보이신다.
로마인들의 배들이 그들 있는 곳으로 왔다.
“저 배들은 선체와 돛이 완전합니다…. 그리고 사공들은 어떻구요! 빠르기가 물총새 같습니다. 저들은 조그만 바람도 조그만 물살도 다 이용합니다….”
“배 젓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크레타섬과 나일강에서 온 노예들이예요”하고 요안나가 설명한다.
“나일강 삼각주의 뱃사람들은 매우 능란하지요. 크레타 섬의 뱃사람들도 그렇구요. 그렇지만 이탈리아의 뱃사람들도 매우 훌륭합니다…. 그들은 쉴라(Seylla, 이탈리아의 멧시나 해협(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 섬 사이에 있는)에 있는 유명한 암초)와 키립드(멧시나 해협의 무서운 소용돌이)를 돌파해서 다니거든요…. 그만하면 그들이 훌륭한 뱃사람이라는 걸 넉넉히 알 수 있지요”하고 베냐민이라고 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말한다.
“주님, 어디로 갑니까? 막달라로 갑니까. 그렇지 않으면… 보십시오. 막달라 사람들이 우리에게로 옵니다….”
과연 그 곳의 로든 작은 배가 호숫가나 작은 항구를 떠나 가파르나움의 배들 쪽으로 향하여 오는데, 사람들을 무서울 정도로 태우고 또 태워서 뱃전에 물이 찰량찰랑 할 지경이다.
“아니다. 시내가 바라보이는 여기 멀 곳에 남아 있자, 나는 배에서 말하겠다….”
“저 조심성없는 사람들이 빠져 죽으려고 해서… 그럽니다. 아니, 선생님, 보십시오! 호수가 은판처럼 고요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물은 역시 물이고… 짐은 역시 짐이거든요…. 그런데 저기… 저 사람들은 물 위에 있지 않고 뭍에 있는 걸로 믿고 있습니다…. 돌아가라고 명령하십시오…. 저 사람들 빠져 죽겠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사람아! 그래 너는 믿음을 가진 동안은 내가 권하는데 따라서 물위를 마치 단단한 땅 위를 걷는 것처럼 걸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저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짐과 빠져 들어가는 것 사이의 평형(平衡)법칙을 거슬러서 물이 사람을 너무 많이 태운 저 배들을 떠받쳐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정말 큰 기적의 저녁이 되겠군요…”하고 베드로가 배를 멎게 하려고 작은 닻을 내리면서 어깨를 들썩 하고 중얼거린다. 배는 이렇게 하여 일부분은 가파르나움, 일부분은 막달라, 일부분은 티베리아의 배들이 빙 둘러 있는 가운데 있게 되었다. 티베리아의 배들은 로마 여자들의 배인데, 그 배들은 조심성있게 가파르나움의 배들 뒤로 가서 호수 중심 쪽으로 자리를 잡는다.
예수께서는 그 배들에 등을 돌리시고, 막달라의 배들 쪽, 라자로의 마리아의 넓은 나무가 우거진 정원 쪽, 호숫가로 죽 이어져 있고, 밤에 그 흰 빛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작은 집들 쪽을 바라보신다.
이제는 이물과 노들이 휘젓지 않게 된 호수는 고요한 모습을 되찾는다. 그것은 떠오르는 달빛으로 은빛 물결무의가 생기고, 이물마다 켜 놓은 현등(舷燈)이나 등불의 불꽃이 호수에 반사되는 곳에는 황옥이나 홍옥 비늘을 깔아놓은 것 같은 거대한 수정판과 같다. 얼굴들은 붉고 노란 빛과 달빛의 대조로 인하여 이상하게 보인다. 어떤 부분은 매우 뚜렷이 나타나고, 어떤 부분은 겨우 보일까 말까하다. 어떤 얼굴들은 세로나 가로로 둘로 잘린 것 같아서, 이마나 턱 또는 한쪽 뺨만이 불빛을 받아, 얼굴 반쪽 옆얼굴은 아주 분명히 나타나고, 다른 쪽은 거의 가려져 있다시피 하다. 어떤 사람들의 눈은 반짝이는데, 어떤 사람들의 눈구멍은 비어 있는 것 같다. 입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사람들의 이는 미소로 인하여 반짝이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의 이는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수를 보도록 가파르나움와 배들과 막달라의 배들에서 많은 현등을 넘겨주어 예수의 발 앞에 놓고, 쓰지 않는 노에 달아서 이물과 고물의 뱃전에 놓고, 돛을 내린 돛대에까지도 매단다. 예수께서 계신 배는 이렇게 해서 불빛이 없는 배들이 빙 둘러싼 배들 가운데에서 빛나고 있고, 예수께서는 이제 사방에서 불빛을 받으셔서 잘 보이신다. 로마 사람들의 배들만이 그들의 붉은 초롱으로 비추어지는데, 매우 가벼운 바람으로 불꽃이 펄럭인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고 배가 앞뒤로 약간 흔들리는데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일어서시어, 강복하시려고 팔을 벌리시며 말씀하신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잘 듣도록 천천히 말씀을 계속하신다. 고요한 호수 위에는 힘차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퍼진다.
“조금 전에 내 사도들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비유 하나를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것을 여러분에게 말하겠습니다. 그것은 그 비유를 여러분 모두가 이해할 수 있어서 모두에게 유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들어 보시오.
어떤 사람이 오늘 저녁같이 고요한 저녁에 호수를 항행하고 있었는데, 자신만만하게 느껴져서 자기가 결점이 없는 사람이라고 거드름을 피웠습니다. 그 사람은 배를 부리는데 많은 경험이 있었고, 그런 이유로 인해서 그는 물 위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가 뛰어나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가운데에는 심심풀이로 온 사람이 많았고, 따라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일상적으로 하는 일에서 오는 경험이 없었습니다. 한편 그 사람은 착한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이 이유로 그는 자기가 모든 덕행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요컨대 그 사람은 실제로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날 저녁 자신 있게 배를 달리게 하면서 이웃에 대해서 감히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의 생각을 따르면, 그 사람은 하도 먼 이웃이어서 이웃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그 이웃 사이에는 국적이나 직업이나 믿음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었고, 그래서 그는 국민적이거나 종교적이거나 직업적인 아무런 연대관계로도 제지되지 않으므로, 안심하고 가혹하기까지 하게 이웃을 조롱하고 그곳의 주인이 아닌 것을 한탄했습니다. 만일 그가 주인이었더라면 그곳에서 이웃을 내쫓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비타협적인 신앙심으로,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자기가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하고 자기가 사는 곳에 살도록 허락하시는 것을 거의 비난하다시피 했습니다.
배에는 친구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를 정의로 사랑하고, 그 때문에 그가 지혜롭기를 원하는 매우 친절한 친구였고, 필요한 때에는 그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날 저녁 그 친구는 뱃사공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나? 사람들의 아버지는 오직 한분뿐이 아니신가? 그분이 우주의 지배자가 아니신가? 혹시 그분의 해가 모든 사람에게 내려와서 그들을 따뜻하게 해 주지 않는가? 혹시 그분의 구름이 히브리인들의 밭과 같이 이방인들의 밭도 적셔주지 않는가? 그리고 사람의 물질적인 필요를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데, 그의 영적인 필요에 대해서 같은 배려를 해 주시지 않겠는가? 그런데 자네는 하느님을 무엇을 하시라는 암시를 드리려고 하는 건가?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 하고. 그 사람은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비타협성에는 많은 무지와 많은 그릇된 생각이 있었지마는, 나쁜 뜻은 없었고, 하느님께 죄를 지으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이익을 옹호하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현인의 발 앞에 엎드려 바보처럼 말한 것을 용서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가 용서를 하도 성급하게 청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배와 배에 있는 사람들을 가라앉고 물에 빠지게 해서 큰 재앙을 불러일으킬 뻔 했습니다. 과연 용서를 서둘러서 청하느라고 키의 손잡이나 돛이나 물살은 걱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함이 있는 판단을 한 첫번째 잘못 다음에 서투른 조작을 하는 두번째 잘못을 저질러서, 자기가 보잘것없는 심판자일 뿐 아니라 서투른 뱃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증명했습니다. 비유는 이상과 같습니다.
이제는 들으시오. 여러분 생각에는 이 사람이 하느님의 용서를 받겠습니까. 받지 못하겠습니까? 이것을 기억하시오. 이 사람은 하느님의 행동과 이웃의 행동을 판단함으로써 하느님과 이웃에 대해서 죄를 지었었고, 하마터면 그의 동행들을 죽일 뻔 했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대답하시오….” 그리고 예수께서는 팔짱을 끼시고 모든 배로, 가장 멀리 있는 배에까지, 뱃전 위로 비죽 나온 귀족 부인들과 노젓는 사람들의 주의 깊은 얼굴들이 줄지어 있는 것이 보이는 로마인들의 배들에까지 눈길을 보내신다….
사람들은 잡담을 하며 서로 의논한다…. 겨우 들릴까 말까한 목소리들의 속삭임이 뱃전에 와서 가볍게 찰랑거리는 물소리에 섞인다.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용서를 받지 못하리라는 의견이었다.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첫째 죄에 대해서는 용서를 받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방향으로 확대되는 속삭임을 들으신다. 예수께서는 밤인데도 달빛 아래 두개의 사파이어처럼 빛나는 희한한 눈의 시선으로 미소 지으신다. 달빛은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빛나서, 여러 사람이 초롱과 현등을 끄고 달의 인광을 발하는 빛만이 비추는 가운데 있을 생각을 한다.
“시몬아, 이 불들도 꺼라”하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천체와 별이 가득한 이 하늘 밑에서는 별빛에 비해서 그 등불들이 불똥들처럼 초라하다.” 베드로는 군중의 심판을 듣기 위하여 긴장해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초롱들을 떼기 위하여 손을 내미는 동안 그를 쓰다듬으시며 물으신다. “왜 그렇게 불안한 눈길을 가지느냐?”
“선생님이 이번에는 제게 군중의 심판을 받게 하시니까요….”
“오! 왜 군중을 두려워하느냐?”
“그것은… 저와 같이… 군중도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몬아, 그러나 심판하시는 것은 하느님이시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저를 아직 용서해 주지 않으셨고, 이제는 저들의 판단을 기다려서 용서하고자 하십니다…. 선생님 생각이 옳습니다…. 저는 고치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가엾은 시몬에게 왜 하느님의 이 심판을 당하게 하십니까?….”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어깨에 손을 얹으신다. 베드로는 배 안 낮은 곳에 있고, 예수께서는 고물에 서 계시기 때문에, 즉 베드로보다 훨씬 위에 계시기 때문에 쉽게 그렇게 하실 수 있다. 그리고 그에게 미소를 보내신다…. 그러나 대답은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물으신다. “그러면요? 배 하나씩 하나씩 크게 말하시오.”아아! 가엾은 베드로! 만일 하느님께서 거기 있는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심판하셨더라면, 베드로를 단죄하셨을 것이다. 사도들의 배까지 포함해서 세 배만 빼고는 다른 모든 배가 그를 단죄한다. 로마사람들의 배는 의사를 표시하지 않고 질문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배들도 역시 그 사람이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이 배에서 저 배로 -로마 사람들의 배는 세 척이다. -그들은 엄지손가락을 거꾸로 하는 표시를 하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놀란 소의 눈 같은 눈을 들어 예수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한층 더 다정스러운 얼굴을 만나게 되는데, 그 새파란 눈에서는 일종의 평화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베드로는 사랑에 빛나는 얼굴이 그에게로 숙여지는 것을 보고, 자기가 예수께로 끌리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고의 반백이 된 머리가 예수의 옆구리에 기대지게 되고, 선생님의 팔은 그의 어깨를 꼭 껴안게 되었다.
“사람은 그렇게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그 사람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은 그에게서 용서받을 만한 거리도 발견하지 못하신다’고. 사실 용서는 죄를 가정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죄가 없었습니다. 머리를 저으며 중얼거리지 마시오.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여기에는 죄가 없었습니다. 죄는 언제 생깁니까? 죄를 지을 뜻이 있고, 죄를 짓는다는 자각이 있고, 어떤 행동이 죄가 된다는 자각을 하고 나서도 계속 죄짓기를 원할 때에 죄가 있는 것입니다. 덕행이건 죄의 행위이건, 모든 것이 어떤 행위를 하는 뜻에 달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분명히 좋은 행위를 하면서도, 좋은 행위를 한다는 의식 없이, 오히려 나쁜 행위를 한다고 믿으면서 하면, 그 사람은 나쁜 행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이 반대의 경우도 같습니다. 예를 하나 곰곰이 생각해 보시오. 어떤 사람이 원수가 한 사람 있는데, 그 원수가 병이 들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또 의사의 명령으로 병자가 찬 물을 마시면 안 되고, 어떤 액체도 마셔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표면상으로는 사랑으로 그러는 것같이 병자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병자가 ‘목이 말라, 목이 말라!’ 하고 신음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는 동정하는 체하면서 우물에서 떠 온 아주 찬 물을 서둘러서 먹여 주면서 말합니다. ‘이 사람아, 마시게. 나는 자네를 사랑하네. 그래서 그렇게 목이 타서 괴로워하는 걸 볼 수가 없네, 보게, 이렇게 시원한 물을 일부러 가져왔네. 마시게, 마셔. 병자를 도와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는 사람은 큰 상을 받으니까.’ 그리고 그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면서 그의 죽음도 가져다줍니다. 두 가지 자비의 행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는 착한 이 행위가 나쁜 목적으로 행해졌는데도 좋은 행위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좋은 행위가 아닙니다. 또 술꾼인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아들로, 무절제로 인해서 당하게 될 죽음에서 아버지를 구하려고 포도주 지하저장실을 잠그고, 아버지에게서 돈을 빼앗고, 술을 마셔서 건강을 해치게 될 마을에 가는 것을 엄격히 막으면서, 그의 아버지를 비난하고, 그것도 자기 아버지에게 마치 가장이나 된 듯이 비난을 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넷째계명을 어기는 것으로 생각됩니까? 표면상으로 아버지를 괴롭혀서 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착한 아들입니다. 그의 아버지를 죽음에서 구하기를 원하므로 그의 뜻이 착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뜻이 행위에 가치를 주튼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병사는 살인자입니까? 그의 정신이 살육에 동의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싸우되, 전쟁이라는 무자비한 법과 부하라는 그의 지위 때문에 강요되어서 그렇게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자와 애국자와 어부로서의 좋은 뜻을 가지고, 그의 생각으로는 모독하는 사람들인 그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은 그 뱃사람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어기는 죄를 짓지 않고, 다만 이웃 사랑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하느님에 대한 그의 원한은 건전하지 못하고 견식 있지는 않지만 착한 신자의 정신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께 대한 불경의 죄가 아니었고, 또 총서를 청하려는 좋은 욕망으로 배의 침로이탈을 일으켰기 때문에 살인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항상 구별을 할 줄 아시오. 하느님은 비타협적이시기 보다는 오히려 자비로우십니다. 하느님은 인자하십니다. 하느님은 아버지이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이것이야말로 참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참 하느님께서는 모두에게, 모두에게 가출을 열어 보이시며, 모든 사람에게 당신 나라를 가리키시면서 ‘오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마음대로 그렇게 하실 수 있는 것은 그분이 오직 한분뿐이시고, 보편적이시고, 창조주시 고, 영원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 여러분, 제발 부탁입니다. 공정하시오. 그리고 이것들을 기억하시오. 당신들이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것들을 알아듣는데 당신들은 알아듣지 못하게 되지 마시오. 종교와 조국에 대한 지나치고 도를 지나친 사랑도 죄입니다. 그것은 이기주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기주의는 언제나 죄의 이유와 원인이 되는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기주의는 마음속에 나쁜 뜻의 씨를 뿌려 하느님과 하느님의 계명에 반항하게 하기 때문에 죄입니다. 이기주의자의 정신은 하느님도 하느님의 진리도 똑똑히 보지 못하게 됩니다. 이기주의자 안에서는 교만이 연기를 뿜어 진리들을 가립니다. 교만해지기전에 보던 것처럼 진리의 순수한 빛을 보지 못하게 된 정신은 안개속에서 이유들에 대한 소송을 시작하고 거기에서 의심으로 넘어가고. 의심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과 그분의 정의에 대한 사람에서뿐 아니라, 하느님과 그분의 벌에 대한 두려움에서까지도 이탈하는 데로 넘어갑니다. 따라서 죄를 쉽게 짓게 되고, 지를 쉽게 짓는 데에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영혼, 이제는 그를 인도하는 하느님의 뜻을 가지지 못하게 되므로 죄인인 자기의 뜻의 지배에 빠지게 되는 영혼의 고독이 옵니다. 오! 죄인의 뜻은 매우 무자비한 사슬입니다. 그 사슬의 한 끝은 사탄이 잡고 있고, 사람의 발에 매여 있는 다른 끝에는 무거운 쇠공이 달려 있어서, 그를 진흙과 어두움 속에 노예로 몸을 굽게 한 채 붙잡아 둡니다.
그러니 사람이 죽을죄를 짓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이제는 자기 안에 나쁜 뜻밖에 가지지 않게 되었으니 그런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그 때에는, 그 때에만 하느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착한 뜻을 가지고 있으면 무의적(無意的)으로 덕행을 닦더라도 분명히 진리를 차지하게 되고야 맙니다. 착한 뜻은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지극히 거룩하신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착한 뜻을 가진 당신 자녀들을 도우시고 강복하시고 용서하시려고 사랑과 연민과 관용을 가득히 가지시고 굽어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배에 있던 사람은 죄를 지을 뜻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전적으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집으로 평안히 가십시오. 별들이 하늘 가득히 총총 박혔고, 달은 세상을 깨끗하게 감쌌습니다. 별들처럼 순종해서 집으로 가고, 달처럼 깨끗하게 되시오. 하느님께서는 순종하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행위 하나하나를 하느님과 형제들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영광과 형제들의 이익에 힘쓰겠다는 착한 뜻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강복하시려고 팔을 벌리시고, 예수를 둘러싸고 있던 배들은 멀어지며 서로 헤어져서 각기 제 갈길을 간다.
베드로는 너무 행복해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을 지경이다.
마태오가 그를 흔든다. “시몬, 자넨 주의를 하고 있지 않구먼? 나는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는데….”
“그렇구먼… 아이고! 선생님! 그러면 저를 단죄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몹시 걱정을 했었는데요….”
“걱정하지 말아라, 요나의 시몬아. 나는 너를 구하려고 전했지, 파멸시키려고 택하지는 않았다. 나는 너의 착한 뜻 때문에 너를 택했다…. 자, 요나의 시몬아, 키 손잡이를 잡고 북극성을 바라보고 자신 있게 나아가라. 언제나 자신있게…. 모든 항행에서… 하느님인 네 예수가 네 영적인 배의 이물에, 항상 네 곁에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네 예수는 항상 너를 이해할 것이다. 요나의 시몬아, 알아듣겠느냐? 항상 말이다. 그리고 네가 약한 어린 아이처럼 넘어질 수는 있어도, 넘어지겠다는 나쁜 뜻은 절대로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네 예수는 너를 용서할 것도 없을 것이다…. 기뻐하여라, 요나의 시몬아.”
그러니까 베드로는 너무 감격하여 말을 못하고, 사랑으로 숨이 막히다시피 하여 동의한다는 표를 하고 또 한다. 그리고 키 손잡이를 잡은 손이 떨린다. 그러나 바로 그의 곁에 온통 흰 빛에 감싸인 대천사같이 뱃전에 서 계신 선생님을 쳐다볼 때에 그의 얼굴은 평화와 안전과 사랑으로 빛난다.